하나님이 바라셨던 아담 해와의 모습

나무가 크기 위해서는 점점 더 주고받는 작용이 잘 벌어져야만 됩니다. 그래야 더 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자식을 기를 때는 자기를 사랑하는 이상의 사랑과 심정을 가지고 키워야 됩니다. 그렇게 부모의 책임을 다하게 되면, 그 자식이 부모의 사정을 알고 그가 또 자기 자식을 가지게 되면 그렇게 키울 수 있는 것입니다.그렇게 될 때에 비로소 그는 부모의 슬픔이 자기의 슬픔이요, 부모의 기쁨이 자기의 기쁨이요, 부모의 할 일이 자기가 할 일이요, 부모의 책임수행이 자기의 책임수행이라고 할 수 있는 자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부모가 명령하지 않더라도, 그 부모의 원수를 자기의 원수로 대하고, 부모의 일을 자기의 일로, 부모의 책임을 자기의 책임으로, 부모의 사정을 자기의 사정으로서 감당해 나가겠다고 나서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식을 세우는 것이 창조의 원칙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리의 주관권을 정해 놓으시고 바라셨던 것은 `이렇게 해라' 하고 명령을 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가만히 있더라도, 그것을 스스로 알아 가지고 자동적으로 나설 수 있는 아담 해와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창조원칙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원리결과주관권에서 벗어난 아담 해와와 만나려고 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부모가 하라고 명령을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의에 의해서 하고, 부모의 마음을 알고서 그 이상까지도 책임을 다 하겠다고 나설 수 있는 자식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온 인류의 아버지로서 복귀섭리 전체를 책임진 하나님의 비밀을 상속시킬 수 있는 기반이 땅 위에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상속시킬 수 있는 동기는 누가 마련해야 되느냐? 상속의 터전을 닦을 때 까지는 부모가 하는 것이지만, 상속받는 순간에는 자기가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5%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원수를 갚고 승리하는 것은 하늘이 전부다 마련해 주더라도, 승리는 자기가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내 책임을 대신하여 짊어지고 나를 길러 주신 부모의 심정을 깨달아 가지고, 그 심정적 인연과 일치된 가운데 그분의 슬픔은 나의 슬픔이요, 그분의 싸움은 나의 싸움이요, 그분의 원수는 나의 원수라고 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둘도 없는 아버지께서 뜻과 더불어 수고한 인연을 가지고 찾아 온 것을 감사하면서 그 이상의 자리를 내가 이룩하고 죽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내가 먼저 죽어야겠다고 작심하고 나설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비로소 상속의 인연이 벌어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