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찾으시는 참된 사람

여기까지 제2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는 외적 환경이 주어져서 내적 환경을 개인 가정 민족 국가적으로 터전을 정비해 가지고 거기에 기반을 만들게 되었었다. 거기에 약속한 재림주를 맞으려는 내적 기반이 있었으면 하나님은 거기서 그 한 일을 중심으로 하고 세계적 승리의 천국 혹은 승리의 목적의 세계를 시작하시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까지 영적섭리를 통해서 해오신 바의 목적인 것이다.

그러나 현세에 있어서 10억에 가까운 수많은 크리스찬이 있으나 내외 아울러 승리의 기반을 만들어서 하나님의 절대적 목적을 향한 그의 소원을 가지고 하나님이 소원하는 자리에 서서 하나님의 사정과 심정에 부합하는 그러한 생활을 하고 있는 참된 크리스찬이 있을 것인가 생각해 보면, 그런 사람들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구하고 계시는 사람이 없는 이 세계에 있어서 정말 하나님의 참아들로서 서려면, 현세에 있어서는 우주적인 십자가를 앞에 하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세계 인류 전부가 하나님의 심정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개인 혹은 가정 혹은 단체를 맞을 것 같으면 문제없지만, 역으로 반발하고 배반한다고 하는 입장에 설 것 같으면 지금 하나의 세계에 가까워지고 있는 현세의 모든 것이 우리들을 대적하는 최후의 사탄이 되는 것이다.

일본에 있는 형제들은 1억의 백성을 사랑하고 일본 땅을 사랑한다고 한다. 그 심정 이상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목적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소원을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관계를 사랑하고 그 인연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이 일본을 맡길 수 있는 참된 개인은 누구일 것인가? 문제는 그것이다. 그 가정은 어디에 있는가? 또 그 단체는 어디에 있을 것인가? 이러한 중대한 요건을 앞에 하고 모인 것이 우리 통일교회다.

심장의 고동은 시간을 틀리지 않고 움직이고 있다. 그 혜택에 대해서 우리들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들은 활동한다. 우리들은 미래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 이것은 참된 소원이고 참된 움직임인 것이다. 참된 심장의 고동소리를 들으면서 자기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1억의 운명을 담당한 일본의 형제들은 이러한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겁낼 것은 없는 것이다. 달리 사랑할 수 있는 것도 없는 것이다. 이 이상의 가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왜 그러냐 하면, 인연 자체가, 관계 자체가, 소원 자체가, 목적 자체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몰라서는 안 된다.

여기에서 세계적 혁명이라고 하는 명제가 말해지는 것이다. 지금까지 역사과정에 있어서 종교의 개혁은 있었고, 정치의 개혁은 있었고, 혹은 어떤 사정을 전환시킬 수 있는 혁명은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이 아무리 혁명을 하고 어떠한 변화를 초래했다 하더라도 그 권내의 변화, 그 권내의 개혁, 그 권내를 바로잡는데 그쳤었다. 그 권내를 초월하는 혁명이 어디에 있었던가.

세계적 변화를 초래하고 하나님 자신이 우리들이 살고 있는 지상에서 찾으시려는 그 중심에 서서, 그 혁명과 그 변혁을 지도할 수 있는 그러한 세계적인 움직임이 지상에 있었던가? 아직까지 없었다.

하나님은 한 때에 있어서, 하나의 환경에 있어서, 이른바 하나의 지점에 있어서 승리한 한 사람을 세워서 이러한 하나님의 목적에 합당한 전체의 심정을 지고 세계적인 혁명을 할 수 있는 한 사람을 찾고 구해 나오신 것을 알아야만 한다.

이러한 진리의 세계는 생사의 세계인 것이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입장에 있어서 하나님 자신이 어떠한 방법을 통하여 그 장면 장면의 입장을 타고 넘게 하려고 하신다. 만일 인류가 그것을 넘을 수가 없으면 그 환경을 파괴하고 전인류를 파괴하고 있는 관계를 타개해 나오신 것이다.

그러나 참의 세계에 대한 승리자가 지상에 나타나지 않으면 하나님이 목적으로 하는 이상천국은 될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을 듣게 될 때, 그 목적을 실현한다고 하는 것은 생각하면 간단한 일이지만 실제로는 용이한 것이 아니다. 어떤 때 선생님은 하나님에게 기도하였다. '선한 하나님의 목적, 선한 하나님의 인격, 그 목적에 합당한 인격을 가지고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으로 하여 그것을 무대로 하나님의 사정을 중심삼고 만물을 대하고 있는 참된 하나님의 구하시는 창조본연의 사람, 그 사람은 어디에 있습니까? 과거에 있었습니까? 현재에 있습니까? ' '없다' '미래에 있겠습니까?''나는 모른다……'

하나님 자신도 모르신다. 그것은 책임분담의 5%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비참한 복귀역사는 하나님 자신이 여하한 권력을 가지고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이 사정에 관해서 하나님이 아무리 눈물을 흘리셔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이 중대한 기준을 해결할 수 있기 위해서는 사람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러분이 타락론에 의해서 배운 바 대로 인간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인간이 알지 못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신이니까 그 신이 하려고만 든다면 못하실 일은 없다고 생각하는 신자는 많지만,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하실 수 없는 것이 있다고 하는 것을 깨닫는 사람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자신에게 있어서 슬픔의 경지에 빠뜨려진 순간의 체험이라고 하는 것은 표현해 낼 수 없다. 거기에서 우리들은 그 슬픔의 경지, 그 비참한 경지, 그러한 경지를 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경지를 넘지 않으면 이 생사의 국경이라고 할까, 아니면 성벽이라 할까 그것을 넘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