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한 아담을 부르시던 하나님의 심정

영원한 선의 이념을 중심삼고 즐겨야 할 인간의 행복과 희망은 여기서 부터 중단되어 버렸습니다. 영원한 이념을 중심삼고 영원한 행복과 평화를 누려야 할 하나님과 인간, 창조주와 만물의 희망이 여기에서 근본적으로 파괴되었다는 이 한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여기에 인간의 서러움과 하나님의 서러움이 잠재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지으실 때 있는 정성을 다하여 지으셨습니다. 더구나 만물의 주인공이 아담·해와를 지으실 때에는 정성을 다하고 있는 정력을 다 기울였으며, 수고 중의 수고를 하여 하나님이 임재 할 수 있는 성전으로 지으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원리를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신 것도 그들을 인간과 영원히 동거하게 하여, 그 모습을 보고 당신이 즐거워하는 동시에 인간이 즐거워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동시에 인간도 기뻐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런 창조의 목적을 세우셨는데, 아담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한번도 이러한 때를 맞지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러한 때를 다시 찾으려 하신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아담·해와가 타락한 후에 하나님께서 아담을 대하여 `아담아, 아담 아!' 부르시던 그 서러운 심정을 여러분이 알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 즉 창조주를 배척하는 아담·해와를 대하여 하나님도 그들을 배척해야 할 입장에 있었으나, 하나님께서는 다시 아담을 찾아 `아담아, 아담아!' 하고 부르셨습니다. 그것은 아담·해와 두 사람만을 대한 부르심이 아니라 역사적인 부르심이었다는 것을 우리들이 알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창조 이후 아담을 부르시던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오늘날까지 이땅의 인간들은 몰랐던 것입니다. 당시에 아담을 부르신 그 음성은, 오늘날에 와서는 6000년 한(恨)의 역사를 대신한 서러움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창세 이후 타락권내에 있는 전체의 한을 대신한 서글픈 심정으로 아담을 부르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아담으로부터 6000년이란 긴 역사를 지내왔으나 하나님께서는 당시의 일을 현세에 연결시켜 오늘날 제2아담 제2해와인 우리를 대하여서도 그와 같이 부르고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타락 이후 섭리의 뜻을 받들어 나온 신앙자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심정을 느껴서 하나님이 아담·해와를 대하여 부르시는 그 음성을 듣지 못하는 이땅을 대하여 통분해 했고, 하나님 대신 슬퍼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타락 이후에 아담·해와를 부르시던 하나님의 그 안타까운 심정, 즉 허락치 않은 자리에 나아가 타락하게 된 아담의 모습을 대하게 될 때 형용할 수 없이 안타까웠던 아버지의 심정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들이 그 심정을 부둥켜 안고 같은 마음으로 안타까와하게 될 때, 하나님은 이 땅 위의 인간을 대하여 다시 구원섭리를 해 나가실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역사과정을 통해 수많은 선지 선열들을 세워가며 여러분을 부르고 계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타락한 아담·해와를 부르시던 그 음성이 아직도 들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 이후 1600년이란 기나긴 세월 동안 변함없이 간곡한 심정으로 아담을 부르셨으며, 하늘 대하여 충성할 수 있는 노아 한 존재를 붙들고 비로소 `노아야, 노아야!' 하고 부르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역사적인 음성을 우리는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