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부모님 말씀집

天 聖 經

CHEON SEONG GYEONG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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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하나님은 태초에 말씀으로 피조세계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심정과 사랑 생명 혈통을 말씀에 담아서 창조하셨기에 인간과 만물이 존재하는 데는 일정한 원칙과 법도, 곧 천도(天道)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완성된 인간의 모습은 말씀의 실체화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속성인 절대신앙 절대사랑 절대복종을 상속받아 말씀을 지킴으로써 본연의 인간의 창조 본성을 갖게 됩니다.

인간시조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고 타락하여 죄악의 속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즉, 말씀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참사랑의 부모이기에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복귀섭리를 전개하십니다. 그 방법은 이 땅에 메시아를 보내시어 재창조를 하시는 것입니다. 메시아는 말씀의 실체로 오시어 창조가 그랬듯이 말씀으로 재창조하여 섭리를 완성시킵니다.

2천년 전에 오셨던 예수님께서도 말씀의 실체로 오셔서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대민족은 말씀을 불신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고, 예수께서는 재림을 약속하셨습니다.

2천년 후에 다시 오시는 메시아, 구세주, 재림주님도 말씀의 실체로 오시고 인류를 말씀으로 재창조하여 창조이상을 완성하게 합니다. 곧 하늘로부터 온 분명한 징표는 이 세계를 구원할 진리의 말씀입니다.

바로 참부모님께서는 말씀의 실체로 오시어 그 말씀으로 복귀의 성업을 완수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천의를 따라 ‘하나님 해방과 인류의 구원’을 위해 평생을 희생해 오시며 신과 인간, 세계와 역사, 영계 그리고 사탄의 정체와 천상의 모든 비밀을 밝혀 가르치셨고 그 말씀을 실현하셨습니다. 그 모든 말씀은 현재 412권의 <<말씀선집>>을 비롯한 500여권의 저서 속에 나타납니다.

참부모님께서는 ‘하나님의 해방과 인류 구원 및 세계평화’를 위해 밝혀 나오신 천상의 비밀인 500여권의 저서 가운데서 주제별로 발췌 정리한 16권을 한 권으로 합본한 본서를 <<천성경(天聖經)>>이라 명명해 주셨습니다.

본서는 제1권 참하나님, 제2권 참부모, 제3권 참사랑, 제4권 참가정, 제5권 지상생활과 영계, 제6권 인간의 삶과 영혼의 세계, 제7권 예절과 의식, 제8권 죄와 탕감복귀, 제9권 축복가정, 제10권 성약인의 길, 제11권 우주의 근본, 제12권 환태평양 섭리, 제13권 참하나님의 조국광복, 제14권 참효의 생활, 제15권 천일국 주인의 생활, 제16권 참가정과 가정맹세 순으로 편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경륜에는 소생급 재창조를 위한 구약(舊約)말씀, 장성급 재창조를 위한 신약(新約)말씀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과정을 지나 하나님의 왕권 즉위식(2001.1.13)을 기점으로 천일국(天一國)시대가 열리고 하나님이 직접 주관하는 사랑과 평화의 신천지가 <<천성경>>의 말씀으로 안착되게 됩니다. 곧 천성경은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완성케 하는 질리의 말씀입니다.

주제별로 엄선된 본서는 하나님의 말씀이자 참부모님의 말씀입니다. 독자 여러분은 본 <<천성경>>을 통해 하나님과 참부모님의 심정과 참사랑을 체득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절대 유일 불변 영원의 속성이 실체화된 참부모님의 숭고하신 삶은 곧 말씀입니다. 특별히 인류 조상의 타락 이후 자녀 잃은 슬픈 하나님의 부모의 심정과 복귀섭리의 한 맺힌 역사를 온 몸으로 실현해 오신 참부모님의 삶이 형상화된 말씀이기에 생명의 영원한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일평생을 오직 하나님 해방과 더불어 하나님의 왕권을 안착시켜 드리고 인류를 창조본연의 참된 자녀로 인도하기 위해 수고해 오신 참부모님께 무엇으로 감사를 다 드릴 수가 있겠습니까? 양위분께서는 각 가정과 삶의 현장에 훈독회(訓讀會)를 안착시키어 본서의 말씀이 실천적 삶으로 결실되기를 소망하십니다.

독자제위께서 본서를 매일 훈독해 나감으로써 숭고하신 참부모님의 사랑과 심정 그리고 삶의 가르침을 깊게 이해하시고, 하늘 앞에 참된 자녀로서 천일국의 전통을 세워 나가기를 소망합니다.

천일국5년(2005년) 1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제목 차례>

머리말  1

      제1권 참하나님    43

제 1 장  하나님의 본체  43

 1) 하나님은 무형의 주체시다    43

  ① 무형으로 계시는 하나님     43

  본래는 자연히 알게 되어 있었다     46

 2) 무형의 하나님은 체가 필요하다       47

  ① 체를 쓰기 위해 아담 해와 창조 

  아담은 종지조상, 유형의 하나님이다

 3) 하나님은 인격적인 신        52

  ① 하나님은 지 정 의를 가진 인격신

  신인일체의 인격신을 요구한다

 4) 하나님은 아버지시다 56

  ① 하나님과 인간은 부자의 관계

  하나님은 제일 가깝게 계신 분

 5) 법도 안에서의 전지전능이다  64

  ① 원칙적 기반 위에서 전지전능하다

  사랑만이 절대 기준이다 

  하나님도 사랑 앞에는 절대복종이다

 6) 사랑으로 무소부재하신다     72

  ① 사랑만이 경계를 넘나든다

  우주에는 사랑이 없는 곳이 없다

 7) 기존 신관들의 문제점        75

  ① 기성신관은 이율배반적이다

제 2 장  하나님과 창조역사      81

 1) 하나님의 창조 동기는 사랑   81

  ① 창조의 역사는 완전 투입

  사랑을 통한 창조이상 실현

 2)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        86

  ①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지었다

  사랑과 생명의 핵심을 모두 투입

 3) 아담 해와를 통한 사랑이상   89

  ① 아담을 무형이신 하나님의 체로 지었다       

  부부는 제 2 창조주의 자리  

 4) 사랑이상은 가정 중심으로 완성된다   95

  ① 하나님의 창조이상은 4위기대 완성   

  창조이상은 가정 완성으로 이뤄진다  

 5) 하나님이 만물세계를 지으신 뜻       99

  ① 만물을 지으신 목적 

  신비의 우주, 그 규모와 구조        

  자연은 사랑이상을 가르쳐주는 교재  

  자연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라    

제 3 장  복귀섭리역사와 신관의 변천     109

 1) 구약시대 하나님은 천사였다  109

  ① 구약시대는 종의 시대였다   

  구약시대에는 천사가 하나님 대신 사역했다   

  왜 천사가 인간 구원에 가담하는가?  

 2) 여호와 하나님의 정체        114

  ① 여호와 하나님의 속성       

  종교에는 신부 종교와 천사장 종교가 있다    

 3) 예수님이 부자관계 신관 천명        116

  ① 신약시대는 양자의 시대     

  양자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       

 4) 성약 완성시대는 신인 일체의 시대    120

  ① 참자녀는 혈통 전환, 중생을 거쳐야 한다     

 5) 창세 이래 처음으로 하나님 현현      123

  ① 비로소 하나님이 모습을 드러내신다  

제 4 장  참아버님이 본 하나님   126

 1) 역사적인 원과 한과 고통의 하나님    126

  ① 인간 타락으로 부모의 자리를 잃어   

  복귀의 한, 자녀 찾아 6천 년        

 2) 아들딸 잃은 충격, 슬픔의하나님      132

  ① 영원한 독자를 잃은 하나님  

  하나님의 역사적 비참상     

 3) 구속되신 하나님, 영어의 하나님      135

  ① 하나님이 설 자리를 잃었다  

  하나님이 하나님 노릇 못하고 있다   

 4) 사탄을 처단하지 못하는 이유 139

  ① 사탄이 참소하는 이유       

  하나님은 법도를 지키신다   

 5) 하나님을 해방시켜 드리자    146

  ① 하나님은 영어에 구속된 입장        

  하나님 해방은 인간이 해야 한다     

 6) 하나님의 해원성사와 효자의 길       152

  ① 참아버님이 걸어오신 복귀의 길      

  하나님의 해방을 위한 한평생        

      제2권 참부모      167

제 1 장  참부모란       167

 1) 참부모라는 말의 의미        167

 2) 참의 기원   167

  ①'참'이란    

  참의 기원  

 3) 참의 원기(原器)     171

 4) 참과 참사람 174

 5) 참부모가 뭐냐       176

  ① 두 석판과 참부모   

  참부모의 정의      

  참부모는 인격의 실체       

 6) 우리가 알아야 할 '참부모'의 어의(語義)      182

  ① 참부모란 말은 귀하다       

  참부모란 말은 자랑스럽고 엄청나다  

  참부모란 말은 놀라운 말    

  참부모란 말은 무서운 말    

제 2 장  메시아와 참부모        186

 1) 역사와 참부모       186

  ① 타락과 참부모      

  역사의 소원        

  역사와 참부모      

  복귀섭리 역사는 참부모를 찾기 위한 역사

 2) 메시아는 참부모     191

  ① 메시아는 참부모이다        

  메시아의 현현 과정 

  메시아의 사명      

 3) 예수님과 참부모     195

 4) 재림과 참부모       196

  ① 준비해야 할 메시아 맞이    

  재림주의 할 일     

제 3 장 참부모의 필요성 199

 1) 보편적 부모도 필요  99

 2) 세상 부모와 참부모  200

 3) 참부모가 와야 할 이유       202

 4) 참부모 출현의 전제 조건     203

 5) 참혈통은 참부모를 통해야    203

 6) 참부모가 절대 필요한 이유   204

 7)  참부모의 결정은 선견적 예지 예정권 205

 8) 선거로 선출될 수 없는 참부모        206

제 4 장 참부모의 사명 207

 1) 참부모의 입장 207

 2) 참부모의 길 208

 3) 참부모가 되기 이전의 과정   210

 4) 참부모의 권한과 사명        213

 5) 참부모의 사랑       215

제 5 장 천국과 참부모   217

 1) '천(天)'자와 '부모(父母)'자의 또다른 의미   217

 2) 땅에서 참부모를 모셔야 되는 이유    218

 3) 천국은 참부모를 통해야 가능 219

 4) 천국과 참사랑       220

 5) 참부모와 영생       222

 6) 참부모와 나라       223

제 6 장 참부모와 우리   226

 1) 통일교회의 가르침의 핵심    226

  ① 부모 철학  

  참된 가정-우주의 중심을 결정       

  하나님의 사랑과 참부모의 사랑      

  부모와 식구        

 2) 참부모 재세시 동참하는 가치 230

 3) 참부모의 수고와 우리        233

  ① 참부모는 우리에게 절대 필요        

  우리는 참부모에 접붙인 가지       

  우리를 위한 참부모님의 수고       

  우리에 대한 참부모님의 기대       

  우리가 갖추어야 할 수준    

 4) 은총과 자각 237

  ① 참부모란 말은 처음 나타난 말       

  참부모란 말은 복음 중의 복음       

  참부모로 미래가 보장       

  참부모의 가치      

  감사해야 할 우리   

  참부모와의 인연은 숙명적인 업(業)  

  책임해야 할 우리   

 5) 우리의 할 일        235

  ① 우리의 책임        

  우리의 사명        

 6) 생명시해야 할 것    248

  ① 자기주장 불가      

  하나돼야   

  참부모를 사랑해야  

  참부모를 모셔야    

  순종해야   

  전통을 이어받아야  

  참부모를 자랑해야  

  참부모에게 진 빚을 갚아야  

제 7 장 참부모 중심한 생활      256

 1) 참부모의 날과 참부모        256

 2) 참부모란 말을 완전히 알아야 257

 3) 참부모의 언어를 배우라      258

 4) 민요(民謠) 속의 계시        260

 5) 참부모 이름으로 기도        262

 6) 참부모 이름의 위력  263

 7) 참부모 이름으로 영영세세 영광을 누린다      263

 8) 참부모의 심정 전수와 상속   264

  ① 심정의 전수        

  아들딸은 부모 것을 상속 받는다     

 9) 유의할 내용 266

제 8 장 3대 주체사상과 참부모 선포      268

 1) 3대 주체사상과 부모주의     268

  ① 3대 주체사상은 우리의 소원 

  3대 주체사상은 참부모사상  

  3대 주체사상의 골자        

  부모주의   

 2) 참부모 선포 271

  ① 참부모 선포 배경   

  참부모 선포의 기준 

  참부모 선포 장소   

  참부모 선포 후 나타나는 현상       

   ´u 팔정식 발표로 급변해지는 오늘의 세계     

   ´v 악마의 세력은 사망권으로 진입    

   ´w 통일의 운세권 도래       

     ? 장래에는 싸움이 없다     

  참부모 선포는 놀라운 사실  

  참부모 선포 후 우리의 처신 방향   

  참부모 선포 후 우리의 할 일        

   ´u 선포 앞에 감사하자       

   ´v 실적 쌓기        

   ´w 참부모 환영대회 개최     

  북쪽 부모와 남쪽 참부모    

  종주들과 참부모    

 3) 참부모 선포와 왕권  291

  ① 본래는 아담 가정이 왕궁 출발지     

  왕권 설정  

  왕권 복귀  

 4) 부모님 사진 모시기  297

  ① 부모님 사진을 모시는 이유  

  부모님 사진의 위력 

      제3권 참사랑      307

제 1 장 참사랑이란      307

 1) 사랑은 평화와 행복의 원천   307

 2) 사랑은 무한히 주고 또 주는 것       312

 3) 사랑이 개재될 때 조화가 이뤄진다    316

 4) 사랑의 특권은 동위권, 동참권, 상속권        321

 5) 사랑으로 완성된다   323

제 2 장 사랑의 실제     328

 1) 하나님의 사랑       328

  ①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의 목적은 신인애(神人愛)일체 이상      

 2) 참부모의 사랑       338

  ① 원죄 없는 참조상, 인류의 구세주   

  참사랑으로 인류를 낳아 주신다     

 3) 부모의 사랑 344

  ① 부모의 사랑은 본질의 사랑이다.     

  나누고 또 나누어도 완전한 부모의 사랑

 4) 부부의 사랑 351

  ① 부부사랑은 만우주의 꽃이다 

  부부사랑은 나누어지면 불완전 

 5) 성애(性愛)  359

  ① 성(性)은 사랑의 본궁, 하늘의 지성소 

  사랑법은 배워아는 것이 아니다     

 6) 자녀의 사랑 366

  ① 자녀는 부모 사랑의 결집체  

  참된 자녀의 도리는 '효'    

 7) 형제의 사랑 369

  ① 형제사랑은 만민동포애의 모형       

 8) 애국, 애세(愛世), 인류애    371

  ① 효자-충신, 성인-성자의 길로        

 9) 자연사랑 (自然愛)   373

  ① 하나님이 만물세계를 지으신 뜻      

  자연은 사랑이상을 가르쳐 주는 교재 

제 3 장 사랑과 결혼     381

 1) 참결혼은 우주적 합일의 사랑을 이루는 것     381

 2) 남녀의 사랑, 서로가 필요로 하는 사랑 384

 3) 축복 결혼식은 하나님 사랑의 전수식이다       388

제 4 장 사랑과 가정     391

 1) 사랑이상 실현은 가정에서 이뤄진다    391

 2) 가정은 천국생활을 위한 사랑의 훈련도장       395

제 5 장 사랑과 영계     399

 1) 영계의 공기는 사랑, 사랑이 생명요소다        399

 2) 사랑의 인격체는 지상생활에서 구비해야        406

      제4권 참가정      417

제 1 장 창조 본연의 참가정      417

 1) 아담과 해와를 통한 하나님의 뜻      417

 2) 하나님께서 절대로 필요로 하는 것    418

 3)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상대자       419

 4) 아담과 해와를 창조하신 목적 420

 5) 아담과 해와의 첫사랑의 시기         421

 6) 모든 존재는 사랑을 통해서만 완성된다        422

 7) 인간들이 자랑할 수 있는 가장 큰 자랑거리    424

 8) 참가정으로서 전통을 세웠어야 할 아담가정    425

제 2 장 가정을 중심한 사랑의 법도       427

 1) 가정을 중심한 하나님의 사랑의 법도  427

 2) 가정에 3대가 공존해야 하는 이유     428

 3) 부모는 곧 사랑의 기원       419

 4) 형제자매가 필요한 이유      430

 5) 할아버지는 집안에서 하나님 위치     431

 6) 조부모와 손자와의 관계      432

 7)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의 참된 의미  433

제 3 장 가정은 천국의 중심모형  435

 1) 가정은 모든 존재의 중심모델 435

 2) 가정은 우주 사랑을 접할 수 있는 사랑의 교재 436

 3) 사랑의 왕국에 입적하기 위한 사랑의 수련장   437

 4) 가정은 천국의 모형 교과서   438

 5) 가정은 3시대의 사랑이 결집된 핵심체 440

 6) 가정은 심정적인 훈련장소    441

 7) 인간의 영원한 본향은 가정   442

 8) 가정은 천주주의를 완결시키는 최종기준       443

제 4 장 사랑을 중심한 인생행로  445

 1) 인간은 왜 태어났는가        445

 2) 사랑을 중심한 창조 본연의 삶        446

 3) 인간의 영원한 생명의 요소는 사랑    447

 4)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것일까 448

 5) 사랑과 기쁨의 상속을 위한 하나님의 축복     449

 6) 사랑의 센터를 찾아가는 인생행로     451

 7) 3시대를 가는 인생노정       452

 8) 지상생활은 영계의 박자를 맞추기 위한 훈련장소       453

제 5 장 창조 본연의 남녀사랑    456

 1) 창조 본연의 남녀사랑        456

 2) 남자와 여자가 태어난 이유   457

 3) 남자와 여자는 서로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   458

 4) 사랑은 상대로부터 온다     459

 5) 이성간에 사랑의 조화를 이루면       460

 6) 참사랑에 취한 본연의 인간   461

 7) 사랑은 극히 자연스러운 데서 이루어진다      462

제 6 장 사춘기의 변화와 참된 결혼       464

 1) 결혼의 의의 464

 2) 결혼은 왜 하는가    465

 3) 참된 결혼관 466

 4) 사춘기란 어떤 때인가        467

 5) 사춘기에 일어나는 신체적 변화는 무엇 때문인가       468

 6) 사춘기의 첫사랑     469

 7) 결혼의 적기-사랑은 어느 때부터 연결되는가   471

 8) 몸과 마음이 일치된 사랑     472

제 7 장 참된 부부의 사랑        474

 1) 창조 본연의 부부관계        474

 2) 부부의 사랑이 필요한 이유   475

 3) 이상적인 부부의 관계        477

 4) 하나님도 취할 수 있는 참된 부부의 사랑      478

 5) 보면 볼수록 더욱 보고 싶은 게 부부의 사랑   479

 6) 부부사랑의 발전과정         481

 7)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왜 슬픈가    482

 8) 영원히 죽을 때까지 이루어야 할 부부의 사랑  483

제 8 장 참된 부모의 사랑        486

 1) 무엇이든 주고싶어 하는 부모의 마음  486

 2) 자식이 더 낫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 487

 3) 부모의 사랑은 만고불변의 사랑       489

 4) 모든 것을 희생하는 부모의 사랑      490

 5)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절대적이다        491

 6) 끝이 없는 부모의 사랑       493

 7) 부모의 사랑은 모든 사랑의 기준이요, 전통이 된다     494

제 9 장 참된 자녀교육   496

 1) 부모는 자녀에게 무슨 교육을 해야 하는가     496

 2) 부모는 자녀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497

 3) 부모가 먼저 본을 보여 줘야 한다     498

 4) 부모는 친구 중의 친구요, 스승 중의 스승     500

 5) 사랑의 채찍         501

 6) 공부는 무엇 때문에 하는 것인가      502

 7) 참된 부모와 스승의 가르침   504

 8) 세계와 더불어 살 수 있는 교육       505

제 10 장 복귀해야 할 인류의 참가정      507

 1) 하나님의 구원섭리의 목적    507

 2) 사탄의 소유물이 된 아담가정         508

 3) 타락인간의 소원     509

 4) 복귀의 최종 목표는 아담가정을 복귀하는 것   510

 5) 예수님이 이루셔야 할 복귀의 가정    512

 6) 재림주님을 중심한 복귀의 가정       513

 7) 통일교회는 본연의 참가정을 찾기 위한 곳     514

 8) 참가정주의와 참부모종교     516

제 11 장 가정은 영원한 행복의 터전      518

 1) 가정이 왜 좋은가    518

 2) 가정은 영원한 행복의 터전   519

 3) 가정은 천국 완성의 기본단위 520

 4) 사랑의 이상 실현은 가정에서부터     522

 5) 천국은 가정단위로 들어가는 곳이다   523

 6) 천리법도가 사위기대 원칙으로 되어 있어    524

 7) 가정을 통해 인간이 가야 할 천도     526

 8) 통일교회는 가정천국을 이루자는 것   527

제 12 장 참가정을 찾아서        529

 1) 자기를 위해서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529

 2)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지성소    530

 3) 남자의 주인은 여자, 여자의 주인은 남자      531

 4) 사랑에는 발전도 혁명도 없다 533

 5) 여자는 절개, 남자는 지조    534

 6) 타락은 프리섹스의 뿌리요, 개인주의의 조상   535

 7) 절대순결과 참가정운동을 통한 세계평화 실현  536

      제5권 지상생활과 영계     543

제 1 장 유 무형세계에서의 인간의 존재   543

 1) 인생 노정   543

  ① 인생 노정에 대한 기도문    

  사람이 원하는 목적 

  태어난 이유        

  순간(하루)과 일생 관계     

  유아기와 3단계 질서        

  우리들의 인생길    

  우리가 찾아가야 할 본향    

  인생 최고의 갈 길  

  출생의 기준과 생애의 기준  

   ´u 잘못된 출생의 기준       

   ´v 생애(生涯)의 기준        

 2) 인간의 위격(位格)   550

  ①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목적        

  인간은 영계와 육계의 매개체        

  몸과 마음 그리고 영인체    

  완전작동과 공명    

 3) 인간 생명의 본질    553

  영적인 것이 인간의 본질    

  만물의 영장이란 뜻 

  속사람과 겉사람    

  지상생활의 목적은 영육 완성        

 4) 육신생활의 고귀성   555

  ① 육신생활은 영계생활을 위한 준비    

  육신생활의 귀중성  

  습관성이 중요하다  

  육신생활의 표준    

  육신 쓰고 기록된다 

  땅에서의 삶이 너무 중요하다        

  육신 쓰고 책임분담 

 5) 축복과 영생 560

  ① 영생문제를 알아야 할 이유  

  영생의 길  

     ㉮ 일생과 영생문제   

     인간은 영원한 생명을 추구         

     영생과 종교       

   영생해야 하는 이유       

     영생을 위한 삶   

   영생논리란       

   제일 중요한 영생문제     

   결국 인간은 영생에 귀결돼야      

   믿음과 영생 문제         

   통일교인과 영생  

   영생에 필요한 관념       

  사랑과 영생        

   ㉮ 사랑과 직결된 영생        

   참사랑과 영생     

   절대 필요한 참사랑        

   사랑과 관계된 사후의 세계        

   위해서 살아야 영생       

  축복과 영계        

   ㉮ 사랑의 위력       

   부부의 영인체     

   결혼과 영계       

   축복가정의 영계 입장     

   축복은 약속      

   축복의 영광      

제 2 장 죽음과 영계     574

 1) 인생필연지도(人生必然之道)  574

  ① 영생과 거리가 먼 몸        

  대부분의 생애들    

  죽음은 인생필연지도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       

 2) 죽음에 대한 이해    577

  ① '돌아간다'는 말 뜻         

  우리가 가야 할 곳  

  돌아가는 날은 귀한 날      

  두 가지의 죽음     

  죽음의 의미        

  죽음은 3세계를 연결하는 과정       

  죽기 전에 해야 할 것      

   ㉮ 최후의 경계선을 넘으라    

   형상과 심정과 신성을 본받으라     

   죄를 짓지 말라    

   세계를 위해 살고 죽어야  

   많은 일을 하라   

   공적 일을 하라   

   사랑을 체휼(體恤)해야    

  영계 가기 전에 남겨야 할 것들     

   ㉮ 사랑의 무덤을 남겨야      

   영계의 소유권은 전도로 결정       

   아들딸을 많이 낳아야 할 이유      

  죽음 앞에서의 자세 

  영계에 들어갈 때   

   ㉮ 죽음이 임박했을 때        

   영계에 들어갈 때  

   영계 수속에 필요한 증명서         

  죽어 봐야 확실히 알아      

  위해 살면 하나님 가까이 간다       

  심 판      

 3) 높은 영계에 가자면  606

  ① 종교인들의 표준은 영계     

  영계에서의 소유권 결정기준 

  사람을 사랑해야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가정의 기대를 이루어야     

  심정권 전통을 중심삼고 살아야      

  저나라에 패스하는 티켓     

제 3 장 영계    610

 1) 육신 갖고 체휼 가능한 영계  610

  ① 영계와 때  

  앞으로의 시대      

  영적 체험도 필요   

  영적 체휼의 과정   

  영적 감각의 발전 방법     

  군림(실체역사)     

 2) 영계는 어떤 곳이냐  620

  ① 영계와 육계        

   ㉮ 영계, 육계의 중심  

   영계와 육계의 일체       

  분명히 실존하는 영계       

  영계는 믿음의 원동력       

  영계를 창조하신 때 

  영계가 어디냐      

  영계는 어떤 곳인가 

3) 영계의 내용과 상황   625

  ① 타락으로 생긴 영계에 대한 무지     

  영계는 즉각적 감지 가능권  

  영계의 중심       

  영계의 조직(계급체계)    

  영계에서의 의식주  

  영계에서의 지식과 권력의 쓸모     

  영계에서의 사람 관계      

  영계의 중심은 사랑 

   ㉮ 영계의 공기는 사랑       

   영계는 사랑 중심의 삶을 사는 곳  

  영계는 심정의 세계 

  영계의 상황        

  영계의 생활        

  영계에서 할 일     

 4) 영계의 입장과 실상  638

  ① 영계의 입장        

  영계의 실상        

  영계의 자랑        

  ④ 통일교회와 영계    

  한국 풍습과 영계   

  한국말과 영계      

  ⑦ 영계의 활동무대    

  영계의 소유        

  하나님과 영계      

제 4 장 천국    643

 1) 천국에 대한 이해    643

  ① 천국의 소재지(所在地)      

  기독교와 천당      

  예수님과 낙원      

  심정과 천국        

  육신과 지옥        

  지옥인도 천국을 소원      

  지상천국과 천상천국       

  천국에 대한 바른 관        

 2) 천국 가기 위한 준비         658

  ① 천국의 거점(據點)  

  천국 가는 기준     

  천국의 시발        

  천국의 본질        

  천국의 틀  

 3) 천국 갈 수 있는 요소와 조건 662

  ① 천국 갈 수 있는 요소       

   ㉮ 고생이 필요       

   사랑이 필요       

   실적을 가져야     

   위해서 살아야    

  천국 갈 수 있는 생활        

   ㉮ 우리의 입장       

   천국 못 가는 경우         

   천국을 위한 우리 생활     

   우리와 천국      

  4위기대와 천국     

   ㉮ 천국은 가정이 들어간다    

   예수님과 가정     

   4위기대와 천국    

 4) 천국문과 천국 입성  675

  ① 인간의 심문(心門)  

  개천문이란 무엇인가        

   ㉮ 개천문해야 할 이유        

   개천문의 시원(始原)       

   참부모와 천국문   

   개천문 앞에 선 우리의 자세       

  책임분담을 통한 천국행     

  천국과 지옥은 자신이 선택한다      

 5) 천국과 지옥에 관계된 지시 말씀      681

  ① 천국과 지옥관 설정         

  영생과 지상생활의 중요성   

제 5 장 메시아와 영계   683

 1) 예수님과 영계       683

 2) 재림주와 영계       684

 3) 참부모와 영계       685

  ① 육신의 부모와 참부모의 차이        

  참부모가 축이다    

  참부모 중심        

  참부모와 맺어진 인연의 강도(强度) 

 4) 선생님과 영계       691

  ① 선생님의 영적 조건 성립과 그 기반  

  영계로 가는 특허권 

  영계의 통일과 지상세계 통일 

  심정과 실적에 따른 영계에서의 대우 

  영적 체험의 생활화 

  사랑을 남기고 가야 하는 영계       

 5) 참부모 가정과 영계  697

  ① 영계의 장자권 성립 

  영계에 세운 사랑의 센터    

  지상과 영계의 왕권 확립   

제 6 장 우리와 영계의 입장      702

 1) 인생의 결실과 생령체(生靈體)        702

 2) 심판과 공인(증명서)         705

  ① 심판의 종류        

  천국 가는 패스포트를 준비하라      

 3) 영계 입적(入籍)     711

  ① 천국 시민이 누리는 자유    

  영계 갈 때 갖고 가는 예물  

  3대 주체사상을 통한 천국   

  입적의 조건        

  영계의 족장이 되는 사람    

제 7 장 우리와 영인과의 관계    718

 1) 영적 현상과 영인 해원(解怨)         718

  ① 선영계와 악영계    

  영적 현상  

  영계에서 온 편지   

  영인의 소원        

  영인 해원(解怨)    

  영계 통일  

 2) 지상인과 영인과의 관계      725

  ① 지상인과 영인      

  영인들의 영계에서의 입장   

  영인의 수가 지상인보다 많다       

  유리영(流離靈)들   

  영인 구분은 마음이 알고 한다       

  지상인의 삶의 가치 

 3) 조상들과 우리       731

  ① 우리를 굽어보는 조상들    

  우리가 조상보다 나아야     

  성묘도 해야 한다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영계의 조상들  

 4) 영적 새시대 도래(到來)     734

  ① 초감각시대 도래(到來)      

  천승일 발표로 새로운 시대 진입    

  통일식(統一式)과 영계 협조 

  일심식(一心式)과 조상 협조 

 5) 재림부활과 영인 협조        738

  ① 과거 선인(先人)들의 영계 위치      

  영계 동원과 협조   

  영계와 조상        

  영인들의 소원     

  재림부활과 중생    

   ㉮ 재림부활  

   중생론에 대한 답변        

      제6권 인간의 삶과 영혼의 세계     755

제 1 장 인생이 가야 할 길       755

 1) 우리들의 인생길     755

  ① 한치 앞도 못 내다보는 인생살이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일생은 영계로 가는 준비기간        

  생애는 너무 짧다   

 2) 죽음에 대한 바른 이해       765

  ① 죽음은 인생 필연의 길      

  죽음은 3세계를 연결하는 과정       

  죽음은 더 좋은 세계로 옮겨가는 것  

  죽음은 새 차원으로의 승화(昇華)다  

  죽음 앞에서의 자세 

  축복으로 영생의 길이 열린다       

   ㉮ 제일 중요한 것은 영생문제 

   사랑에서 영생개념이 나온다        

   축복과 영생       

 3) 지상생활의 가치     790

  ① 지상은 사랑의 열매를 거두는 곳     

  지상은 천국백성의 생산지  

  저나라 소유권은 지상에서 결정     

  육신을 쓴 지상생활이 낱낱이 기록된다       

  육신 쓰고 지은 죄는 지상에서 탕감해야 

  자연속으로의 순응적 삶이 귀하다    

 4) 천국에 들어가는 비결        811

  ① 천국은 황족의 명예를 갖고 들어가는 곳 

  4대 심정권의 사랑의 실체가 천국 간다       

  마음에 동화된 생활을 해야 한다     

  절대성을 중심삼고 천국?지옥이 갈라진다

  부부사랑이 사랑이상의 중심 꽃     

  천국은 가정단위로 들어간다 

  위해서 살면 천국 간다      

제 2 장 영계는 어떤 곳인가?     839

 1) 영계의 실상과 법도  839

  ① 영계는 시공을 초월한 무한의 세계   

  영계는 사랑전능의 세계     

  영계의 공기는 사랑이다     

  영인들의 삶, 영인들의 상호관계     

  영계에서의 의식주 문제는 자유자재  

  영계의 권력은 사랑의 권력이다      

  영계는 하나님의 법도와 질서의 세계 

 2) 천국과 지옥 866

  ① 천국은 사랑이상의 세계     

  천국은 서로 위하며 사는 세계      

  천국은 지상천국을 거쳐가는 곳     

  예수님과 낙원      

  지옥은 하나님의 사랑과 관계없는 곳 

  천국과 지옥은 자신이 선택한다      

 3) 영인과 지상인의 관계        890

  ① 영계는 선영계와 악영계로 갈라져 있다       

  영인들의 영계에서의 입장  

  영인들의 완성도 지상인을 통해야    

  영계의 협조와 확신 

  유리(流離)하는 영들        

 4) 조상들과 우리       902

  ① 우리는 조상들의 결실체    

  조상들의 구원은 우리가 한다        

  축복가정과 제사    

 5) 영계를 알아야 한다  909

 6) 심판(審判)  910

  ① 하나님에게는 원수의 개념이 없다    

  참부모님은 사랑의 치리법으로 심판  

  죄 지으면 가정재판에, 일족이 심판한다      

제 3 장 참부모님과 영계 925

 1) 참부모님의 권한과 사명      925

  ① 참부모님은 체(體)를 쓰신 하나님    

  우주의 축(軸), 지상?천상의 통치자  

  참부모님을 통해 천국 간다  

 2) 참부모님과 천국 건설        934

  ① 참부모가 되기 위해 어인(御印)을 받아야     

  천국 건설과 지상?천상세계의 통일   

 3) 참부모님과 사랑의 역사      942

  ① 성인과 살인마도 한자리에서 축복    

  참축복의 천주화로 영계?육계 평준화 

  지상, 천상지옥, 참사랑으로 해방     

  천국 입적과 축복가정의 영계       

   ㉮ 입적을 하려면     

   통일권 영계도 중간영계, 감옥이 있다      

 4) 참부모님 가정과 영계역사    956

  ① 흥진님과 영계 장자권 성립  

  조상해원식과 청평역사(淸平役事)    

 5) 단 하나의 소원이 남아 있다면        961

       제7권 예절과 의식       973       

제 1 장 하나님에 대한 모심의 예법       773

 1)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야 한다 773

  ① 하나님과 인간은 부자의 관계        773

  일체된 생활을 해야 한다    774

 2) 모심의 마음가짐과 태도      776

  ① 모심으로 생활의 천국화 이룩        776

  법도를 어기면 노여워하신다 778

 3) 참아버님의 하나님 섬기는 법 780

  ① 지성감천(至誠感天) 780

  효자의 길  781

제 2 장 참부모에 대한 모심의 예법       784

 1) 참부모님은 축복가정의 중심  784

  ① 참부모님의 아들딸이 되려면 784

  참부모님을 얼마나 모셔 봤는가?     785

 2) 참부모님을 사랑하고 자랑하자        787

  ① 참부모님은 인류 전체의 소망        787

  가정마다 참부모님 존영 모시기      789

 3) 참부모님 모시는데도 법도가 있다     791

  ① 시의시대의 법은 최고의 법  791

  인간이 귀한 것은 인륜도덕 때문     792

제 3 장 예배와 교회 생활예절    793

 1) 교회에 대한 올바른 인식     793

  ① 교회는 말씀, 인격을 종합하는 곳    793

  교회는 가정의 연장이다     794

 2)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경외의식      796

  ① 예배시간은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796

  밤예배, 새벽집회, 철야정성 799

 3) 교역자가 가져야 할 자세     800

  ① 교역자는 공적(公的)이어야 한다     800

  식구 지도는 정성으로       802

  남녀 문제와 공금에 엄격해야 한다   804

 4) 설교는 은혜와 감동이 있어야 한다    805

  ① 설교의 실제        805

  참아버님의 설교    807

 5) 헌금은 법도에 맞게 드려야 한다      808

  ① 십일조 드리는 법   808

  생활에도 십일조가 있다     811

  탕감기금   812

 6) 하나님은 공적 기도를 받으신다       813

  ① 인사하는 데도 인사법이 있지 않느냐?        813

  참부모님 이름으로 기도한다 815

 7) 전도는 사랑찾기 운동이다    816

  ① 전도는 제2의 나를 만드는 것        816

  수련과정과 7일 금식        819

 8) 탕감과 봉사와 헌신 생활     819

  ① 탕감길을 가야 한다 819

  봉사와 헌신        820

 9) 식구간의 법도와 예절        823

  ① 식구는 천정으로 맺어진 인연        823

  식구간에 가인 아벨 관계가 있다     824

  누가 아벨이고 누가 가인인가        825

 10) 타인과의 관계      827

  ①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말라  827

  타인과의 관계      828

제 4 장 축복가정의 전통과 생활예절      830

 1) 축복가정의 생활법도 830

  ① 가법과 예절이 바로서야 한다        830

  함부로 살아서는 안 된다    832

 2) 신앙생활로 본이 되는 가정   833

  ① 신앙생활이 자녀 교육이 된다        833

  기도생활은 밥먹는 일보다 더 중요   834

  축복가정은 족장    835

 3) 참사랑으로 위해 사는 생활   837

  ① 왜 위해 살아야 되는가?     837

  위해 사는 자가 중심이다    838

 4) 부모가 세워야 할 사랑의 법도        839

  ① 부모는 친구보다 가깝게     839

  전통을 상속해 주는 부모    841

 5) 부부가 지켜야 할 예절       842

  ① 부부는 생활의 동반자       842

  부부는 신앙의 동역자       844

 6) 자녀를 신앙적으로 키운다    845

  ① 품에 품고 천법을 가르쳐야  845

  신앙교육이 더 중요 847

 7) 형제간의 우애       848

 8) 근검절약, 검소한 가정생활   849

  ① 검소한 생활        849

  절약정신   850

 9) 일상생활의 예절     852

  ①         852

  얼굴       852

  머리       853

  손톱과 발톱        853

  걷는 것    853

  앉는 모양  854

  자는 것    854

  건강       854

  말 854

 10) 순결에 대한 가르침 855

  ① 사춘기에는 계율을 잘 지켜라        855

  나는 하늘의 자녀다 857

 11) 성별의식의 생활화  858

  ① 성염       858

  성초       859

   ㉮ 심정초    859

   해산초    859

   애천초    860

   통일초   860

 12) 축복가정의 일상 생활 의례  861

  ① 경배식     861

  가정예배   861

  훈독회     862

  가정맹세   863

 13) 축복가정의 제사    863

  ① 조상숭배법은 본래 하늘법   863

 14) 축복가정의 평생의례        865

  ① 출산       865

  축복       866

  승화식     867

 15) 기념일을 맞는 마음자세     868

  ① 기념의식의 의의    868

  의식을 위한 예복은 단정히  869

       제8권 죄와 탕감복귀      869

제 1 장 탕감, 복귀원리의 근거    869

 1) 간접주관권과 직접주관권     869

  ① 간접주관권 869

  직접주관권 871

 2) 인간에게 책임분담이 있다    874

  ① 책임분담을 주신 이유       874

  책임분담을 못한 결과       877

 3) 책임분담을 완성하면 878

  ① 책임분담 자유화권이 필요   878

  완성한 자리는 천지일체화 가정      880

 4) 책임분담의 발견과 그 중요성 882

 5) 책임분담을 수행하는 자세    885

  ① 책임분담은 모든 분야의 과정에 있다         885

  책임분담 수행 자세 885

제 2 장 죄, 인간 타락의 내적 의미        887

 1) 환부역조(換父易祖)가 곧 타락        887

  ① 사탄 마귀가 우리의 아버지  887

  타락하지 않았다면

 2) 타락은 사탄 중심한 혈통 전환        893

  ① 원수의 혈통을 받았다       893

  혈통적인 원죄는 유전한다   895

 3) 사탄은 하나님의 사랑의 간부 896

  ① 사탄은 타락한 천사장 누시엘        896

  사탄은 사랑의 원수 898

 4) 선악과는 해와의 생식기      899

  ① 하체를 가린 것이 죄의 표시다       899

  선악과는 생명과 사망의 갈림길      901

 5) 타락의 한, 하나님의 복귀의 심정     903

  ① 사랑의 원수, 타락의 한     903

  사탄의 참소조건    905

 6) 참부모의 축복과 혈통 복귀   908

  ① 메시아로서 참부모가 필요하다       908

  재림사상의 핵심은 혈통 복귀        910

제 3 장 탕감과 복귀의 공식      913

 1) 모성복귀로 본 리브가, 다말, 마리아의 역사   913

  ① 해와의 타락과 리브가, 다말의 속임의 역사   914

  다말을 중심한 복중 근본복귀        915

  예수 노정에서의 마리아의 사명      917

 2) 참아버님의 역사적 탕감노정  921

  ① 탕감노정을 가는 사람의 마음자세    921

  참어머님의 간택    925

 3) 8단계 탕감노정과 8정식      927

  ① , 횡의 8단계 탕감복귀노정 927

  사탄의 활동과 8단계의 승리 927

  8정식(八定式)      930

 4) 장자권 승리와 부모권, 왕권 복귀     931

  ① 장자권 복귀        931

  부모권 복귀        935

  왕권 복귀  936

 5) 복귀역사 전개와 섭리국가의 사명     938

  ① 2차 대전 이후 기독교문화의 흐름    938

  해와국가 일본의 사명       939

  세계적인 로마국가 미국의 사명      941

  탕감복귀 역사는 돌아오는 운세      944

제 4 장 탕감노정과 우리의 생활  945

 1) 복귀의 길은 인지당행지도    945

  ① 탕감복귀는 재창조의 길     945

  탕감길을 가야 하는 이유    947

 2)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      947

  ① 메시아를 위한 기대 947

  결국은 혈통복귀가 문제     950

 3) 왜 탕감복귀가 필요한가      951

  ① 탕감복귀해야 할 두 가지    951

 4) 탕감조건은 자신이 세워야 한다       954

  ① 다른 사람이 대신 세워줄 수 없다    954

  책임분담하는데의 마음가짐  956

 5) 탕감법 없이는 사탄분립 안된다       956

  ① 나는 분수령에 서 있다      956

  사탄권(타락권)을 벗어나려면        959

 6) 신앙은 탕감법을 지켜나가는 것       960

  ① 신앙과 탕감        960

 7) 탕감길은 절대복종, 절대순종의 길    964

       제9권 축복가정   967

제 1 장 참부모와 축복   967

 1) 축복의 의의와 가치  967

  ① 축복이란 무엇인가  967

   ㉮ 축복의 의의       967

   축복의 가치       970

   축복은 인류가 거쳐가야 할 공식노정        973

  축복으로 본 참된 결혼관    975

   ㉮ 참 결혼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기 위한 것    975

   결혼은 사랑 완성을 위해 한다      977

   결혼은 천지합덕, 우주합일의 길     978

  축복을 받아야 하는 이유    980

   ㉮ 타락으로 거짓부모에서 태어났다    980

   원수의 혈통을 받았다      983

   메시아로서 참부모가 필요하다      985

 2) 참부모와 중생과 혈통전환    987

  ① 참부모는 어떤 분이신가?    987

   ㉮ 참부모는 원죄 없는 종지조상       987

   참사랑으로 인류를 낳아주신다      989

  중생섭리의 핵심    990

   ㉮ 거듭남의 참된 의미        990

   중생을 하려면     992

  참부모의 중심사상은 혈통전환       993

  혈통전환의 3단계 과정      995

   ㉮ 성주(聖酒)식      995

   축복 결혼식       998

   3일 행사-실체복귀식      999

 3) 축복가정의 책임     1001

  ① 참부모와 일체권을 이뤄야   1001

  성(性)의 절대적인 가치관 확립      1004

  이상적 부부생활이 중요     1008

  축복은 이상가정 완성에 있다        1010

제 2 장 참부모와 축복의 역사    1014

 1) 참부모와 제3 선민권 1014

  ① 축복가정은 참부모의 새로운 종족권  1014

  축복가정을 통한 제3 이스라엘권의 편성      1015

  제3 이스라엘 입적은 축복으로       1017

 2) 축복가정의 역사     1018

  ① 36, 72, 124가정의 역사     1018

  430가정은 민족을 대표한 것 1022

  777, 1800, 6000, 6500가정의 역사   1024

  소생적 국제결혼-3만가정   1028

  장성적 국제결혼-36만가정  1030

  완성적 국제결혼-360만가정 1033

제 3 장 축복가정의 섭리적 의의  1036

 1) 36가정      1036

  ① 3가정을 먼저 축복  1036

  36가정을 세운 뜻   1037

  3차에 걸쳐 축복… 별별 일화가 많아 1041

 2) 72가정      1043

  72가정 축복의 의의 1043

 3) 124가정     1047

  ① 124가정을 찾아 세운 뜻     1047

  헌공식과 120개국 성지택정  1050

 4) 430가정     1050

  ① 430가정의 수리적인 의의    1050

  430가정은 종족적 메시아의 가정     1055

 5) 777가정     1056

  ① 777가정은 세계를 대표하는 가정     1056

 6) 1800가정    1062

  ① 1800쌍을 축복하게 된 배경  1062

 7) 6000가정    1065

  ① 6000가정은 종횡의 종교권을 열어 놓은 것    1065

 8) 6500가정    1067

  ① 6500가정은 교체축복 케이스 1067

 9) 3만가정     1069

  ① 3만가정은 3시대 3수를 대표한 가정  1069

 10) 36만가정   1076

  ① 36만가정은 세계적인 등뼈가정       1076

 11) 360만가정  1082

  ① 360만가정 축복으로 해방시대 맞아   1082

  ② 360만쌍이 3600만쌍으로     1087

 12) 3억6천만가정       1089

  ① 3억 6천만가정 축복으로부터 제 4차 아담권시대 출발  1089

 13) 기성가정의 축복의의        1093

 14) 독신가정의 축복의의        1098

제 4 장 축복가정과 입적 1103

 1) 축복가정 입적과 우리의 조국 1103

  ① 입적이란 무엇인가? 1103

  입적은 나라 축복시대에 있다        1105

  입적하려면 주권국가가 필요 1107

  우리가 찾아야 할 조국      1109

 2) 입적을 위한 조건    1111

  ① 소유권-혈통권-심정권 전환  1111

   ㉮ 소유권전환        1111

   심정권전환        1114

  종족적 메시아 사명을 해야 한다     1116

   ㉮ 종족적 메시아의 사명      1116

  하늘나라 지파와 족보 편성  1121

  민족 대이동 시대가 온다    1123

 3) 사위기대 입적 통일축복      1124

  ① 3시대 대전환 일체권 통일축복식     1124

  사위기대 입적      1125

  ③ 입적가정에 대한 참부모님 훈시      1126

   ㉮ 순결한 혈통을 사수하라    1126

   ㉯ 일심정착(一心定着)        1126

   ㉰ 자녀에 대한 참사랑 실천 교육      1126

   ㉱ 국경철폐와 교체결혼       1126

   ㉲ 조국광복과 천국창건       1126

   ㉳ 훈독경, 원리 암기 1126

   ㉴ 가정맹세 실현화   1126

   ㉵ 정오정착(正午定着)        1126

  축복가정 부인 동원과 조국광복      1127

 4) 입적 시대와 우리의 책임     1128

  ① 입적과 참부모님의 은사     1128

  축복가정의 전통을 세우자   1129

       제10권 성약인의 길       1132

제 1 장 인생관  1132

 1) 인생이 무엇이냐     1132

  ① 지금까지 인생문제는 미로   1132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1133

 2) 인간은 원인되는 존재가 아니다       1134

  ① 본래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 태어난 인간      1134

  인간이 태어난 본연의 목적  1136

  사랑 때문에 산다   1138

 3) 인간의 가치는 위대하다      1139

  ① 인간의 가치는 하나님적 가치        1140

  인간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전    1142

 4) 인간본성의 참된 생활        1144

  ① 마음에 동화된 생활을 해야  1144

  심신일체 이루어야 완성인간 1145

  마음이 곧 스승이요, 가까운 하나님  1147

 5) 참된 인간이 가는 길 1151

  ① 인간이 찾아가야 할 길      1151

  참된 인간의 갈 길  1154

  위하는 법도를 세운 이유    1155

제 2 장 가정관  1158

 1) 이상적인 가정은 어떤 가정인가       1158

  ① 가정이 왜 좋은가?  1158

  가정에서 사회애, 민족애, 인류애가 싹터     1161

 2) 가정은 천국 완성의 기본 단위        1163

  ① 가정은 지상천국-천상천국의 초석    1163

  가정은 참사랑의 훈련도장   1166

 3) 참가정의 이상과 가치        1170

  ① 참부모, 참부부, 참사람     1170

  참가정의 이상과 가치       1174

 4) 천국은 가정단위로 들어간다  1177

 5) 가정맹세    1181

  ① 가정맹세를 할 수 있는 자   1181

  가정맹세의 내용    1182

   ㉮ 천일국 주인 우리가정은 참사랑을 중심하고 본향땅을 찾아 본연의 창조이상인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을 창건할 것을 맹세하나이다.  1182

   ㉯ 천일국 주인 우리가정은 참사랑을 중심하고 하나님과 참부모님을 모시어 천주의 대표적 가정이 되며 중심적 가정이 되어 가정에서는 효자, 국가에서는 충신, 세계에서는 성인, 천주에서는 성자의 도리를 완성할 것을 맹세하나이다.    1182

   ㉰ 천일국 주인 우리가정은 참사랑을 중심하고 4대 심정권과 3대 왕권과 황족권을 완성할 것을 맹세하나이다.       1183

   ㉱ 천일국 주인 우리가정은 참사랑을 중심하고 하나님의 창조이상인 천주대가족을 형성하여 자유와 평화와 통일과 행복의 세계를 완성할 것을 맹세하나이다.   1184

   ㉲ 천일국 주인 우리가정은 참사랑을 중심하고 매일 주체적 천상세계와 대상적 지상세계의 통일을 향해 전진적 발전을 촉진화 할 것을 맹세하나이다.  1185

   ㉳ 천일국 주인 우리가정은 참사랑을 중심하고 하나님과 참부모님의 대신 가정으로서 천운을 움직이는 가정이 되어 하늘의 축복을 주변에 연결시키는 가정을 완성할 것을 맹세하나이다. 1186

   ㉴ 천일국 주인 우리가정은 참사랑을 중심하고 본연의 혈통과 연결된 위하는 생활을 통하여 심정문화세계를 완성할 것을 맹세하나이다.       1187

   ㉵ 천일국 주인 우리가정은 참사랑을 중심하고 성약시대를 맞이하여 절대신앙, 절대사랑, 절대복종으로 신인애 일체이상을 이루어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의 해방권을 완성할 것을 맹세하나이다.   1188

제 3 장 국가 - 세계관   1189

 1) 인류가 추구해 온 하나의 국가, 세계   1189

  ① 아담주의, 아담국가, 아담의 세계    1189

  그 나라는 우리 모두의 소원 1191

 2) 이상사회-국가-세계의 구조   1194

  ① 인류 대가족 사회   1194

  공생-공영-공의의 사회      1196

  언어도 하나        1197

 3) 인류의 중심사상은 참사랑주의        1199

  ① 아담주의는 부모주의        1199

  부모주의는 참사랑주의      1200

 4) 민주세계와 공산세계의 미래  1203

  ① 민주세계와 공산세계를 하나로       1203

  종교와 철학을 수습할 두익사상      1206

 5) 하나님 중심한 주권이 복귀되면       1208

  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세계        1208

  그 나라를 찾아가야 한다    1210

제 4 장 성약인의 길     1212

 1) 참부모님의 승리권 확정      1212

  ① 8정식(八定式)-장자권, 부모권, 왕권복귀     1212

  천부주의로 부모권, 왕권으로 넘어가 1214

 2) 섭리적 총결산과 참부모님의 대선포   1215

  ① 참부모(메시아) 선포        1215

  하나님축복 영원 선포식(7?1절)      1217

  탕감해소 선포식    1218

  천지부모 천주안식권 선포(7?8절)    1219

  지옥 해방과 천국 개문을 위한 선포  1222

  총영계 영인 해방식 - 전체 해방 통일식의 기도       1222

  참축복천주화와 사탄혈통 근절 완성해방 선포식       1224

  성약시대와 천상지상천국 완성 선포  1226

  참부모님 동서양(지구성) 승리 축하 선포     1228

  참부모님 천주승리 축하 선포        1229

  천지부모 천주통일해방 선포(9.9절)  1231

  제4 아담시대(이십절) 선포  1234

 3) 자르딘 7대선언과 새 에덴 창건       1234

  ① 제1선언:새소망 농장(New Hope Farm) 선언   1234

  제2선언:절대?유일?불변?영원한 이상가정    1234

  제3선언:제1?제2?제3의 창조주 선언 1235

  제4선언:숙명적 제안 해원(자르딘 새소망농장) 선언  1236

  제5선언:가정적 4?4절 선포 1238

   ㉮ 영계에도 사위기대가 이루어지고 지상에도 사위기대가 이루어졌다.    1238

   ㉯ 부모와 자녀가 사위기대를 찾았고 이상가정의 씨를 부렸다.   1238

   ㉰ 1세대와 2세대가 하나되었다.       1238

   ㉱ 남(판타날)과 북(알래스카)이 하나되었다.(하늘과 땅이 하나됨)       1238

   ㉲ 사탄혈통이 단절되고 하나님 편으로 혈통이 전환되었다." (1998년 9. 8(4?4절) 알래스카 코디악)       1238

  제6선언:총영계 영인 해방식 - 전체 해방 통일식     1239

  제7선언:천주적 4?4절 선언 참축복 천주화와 사탄혈통 근절 완성 해방 선포식  1239

 4)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1240

 5) 타락의 고개를 넘으려면      1241

  ① 부모의 길과 자녀의 길은 다르다     1241

  자녀의 길은 절대 순종의 길이다     1242

  의무와 수칙        1244

 6) 제4 아담권 자유자주의 시대  1246

  ① 제4 아담시대는 자연복귀시대        1246

  자기 이름으로 기도하는 시대        1247

  제2 창조주격, 자기를 창조하는 시대 1248

 7) 사랑의 황족이 되라  1249

  ① 천국은 황족의 명예를 갖고 가는 곳  1249

  사랑의 사람이 되라 1253

      제11권 우주의 근본        1254

 1) 하나님의 이성성상의 대전개  1254

  ① 하나님은 이성성상의 중화적 본체    1254

   ㉮ 하나님은 중화적인 사랑의 본체     1254

  피조세계는 이성성상을 닮아 나왔다  1258

  하나님의 우주 창조 동기는 사랑     1261

 2) 우주는 주체와 대상으로 되어 있다    1265

  ① 쌍쌍제도가 우주 존재 원칙  1265

  주체와 대상은 사랑의 관계  1578

 3) 우주의 근본은 사랑이다      1273

  ① 우주의 중심은 사랑이다     1274

  인간은 만우주의 사랑의 중심        1278

   ㉮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지었다   1278

   인간성장의 길은 하나님 자신의 전개과정    1279

   인간은 피조만물의 중심    1282

  피조세계는 인간을 위한 사랑의 박물관       1285

   ㉮ 피조세계를 지으신 뜻      1285

   만물세계는 인간을 위한 사랑의 교재        1287

 4) 진화론이냐 창조론이냐?      1292

  ① 진화론의 근본적인 오류     1292

   ㉮ 종의 구분은 엄격, 절대 제3자 개입 배척    1292

   힘의 작용 법칙과 진화론의 허구

   사랑의 논리로 볼 때 진화론은 틀린 것      1302

   진화론은 이미 시대에 뒤진 사상    1306

제 2 장 인간 창조와 사랑이상의 완성     1309

 1) 사랑의 절대 가치    1309

  ① 인간의 남과 여     1309

  남자와 여자를 완성시키는 것은 생식기       1313

  생식기는 근본문제 해결의 출발점과 종착점   1316

 2) 생식기는 3대 본궁 하늘의 지성소     1319

  ① 사랑과 생명과 혈통의 본궁  1319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완성시키는 기관        1325

  생식기는 하늘이 임재하는 지성소    1329

 3) 신인일체와 사랑이상 완성    1331

  ①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사랑의 결착점       1331

  신인애 이상(神人愛理想)의 근본원리 1335

   ㉮ 신인일체를 어떻게 해명할까        1335

   신인일체의 거점   1338

   참혈통의 뿌리는 하나님    1342

  왜 결혼이 중요한가?        1344

   ㉮ 결혼의 목적은 하나님을 닮는 것    1345

   부부 사랑과 절대성        1348

 4) 생식기는 최고의 신비, 최대의 관심   1351

  ① 생식기는 제일 정성들여 만든 곳     1351

  생식기의 주인이 서로 바뀌었다      1352

  참사랑은 더러운 것도 소화  1356

  생식기를 중심으로 종횡의 균형을 맞춰야     1358

  사랑은 배워 아는 것이 아니다       1362

 5) 생식기를 통해 천국과 지옥이 갈라진다        1363

제 3 장 인간 타락과 복귀        1367

 1) 인간 타락의 내적 의미       1367

  ① 인간 타락은 사랑의 사고였다        1367

  선악과는 해와의 생식기다   1371

  사탄마귀는 음란으로 타락했다       1374

  타락으로 사탄의 혈통을 받았다      1378

  뱀이 꼬였다는 말의 뜻      1380

 2) 타락의 결과 1382

  ① 타락인간과 타락한 세계의 모습      1382

   ㉮ 청소년 문제와 프리섹스    1382

   성도덕의 문란     1385

   동성애    1386

   근친상간  1389

  잘못된 성개방문화, 어떻게 수습할까?        1394

   ㉮ 사랑의 질서가 문란한 끝날 1394

   절대순결, 혈대를 더럽히지 말라    1396

 3) 참부모와 근본복귀   1400

  ① 근본문제 해결은 타락의 기원을 알아야       1400

  왜 참부모가 필요한가?      1402

  혈통 복귀는 축복을 통해 이뤄져     1404

  최후의 목표는 참가정 이상 실현     1406

      제12권 환태평양 섭리      1408

제 1 장 21세기는 해양의 시대    1408

 1) 바다는 미래 인류의 보고(寶庫)       1408

  ① 바다는 인류 식량난의 해결처        1408

  해저 개발, 무한자원이 거기 있다    1412

  미래는 수중시대, 바다공간을 개척한다       1413

  에너지 보급원은 바다밖에 없다      1417

  해양강국이 세계를 지배한다 1417

 2) 참부모님이 행하신 해양섭리  1419

  ① 북미 중심한 해양섭리       1419

   ㉮ 미국 수산업       1419

   세일로 유통조직   1424

   알래스카 수산업   1425

   오션 처치와 해양훈련      1434

  남미 중심한 해양섭리       1436

   ㉮ 자르딘 새에덴 건설        1436

   판타날 성지       1441

   동물박물관        1446

  한국 중심한 해양섭리       1448

   ㉮ 천승호(天勝號)    1448

   일흥수산  1449

   조선소   1449

   제주도를 국제 낚시터로 개발       1451

 3) 바다에는 배울 것이 많다     1455

  ① 바다처럼 천하를 품고 살아야        1455

  바다 생활은 굉장하고 신기해        1457

  바다는 위대한 자연의 힘을 가지고 있다      1460

제 2 장 해양레저산업과 취미산업 1463

 1) 해양레저산업의 개발 1463

  ① 레저산업에는 낚시와 사냥이 적격    1463

  가라앉지 않는 배, 원-호프  1465

  각광받을 미래 레저산업─낚시       1467

   ㉮ 바다낚시의 재미와 맛      1467

   바다 낚시할 때의 요령     1470

   낚시를 배우면 굶어 죽지 않는다    1473

   바다 낚시는 정신적인 것   1476

 2) 인간과 취미생활     1480

  ① 미래세계는 취미생활의 시대 1480

  취미산업은 평화세계로 이끌어 가는 지름길   1481

  취미산업시대를 위해 준비해야       1482

제 3 장 환태평양시대와 도서국가연합 창설        1485

 1) 지금은 환태평양시대 1485

  ① 왜 태평양시대가 오는가     1485

  태평양시대의 중심국은 한국과 일본  1491

 2) 도서국가연합의 창설 1494

  ① 도서국가연합 창설 배경     1494

  창설대회 개요      1496

  참부모님의 창설대회 기조연설       1496

 3) 하와이 중심한 해양섭리      1499

  ① 일본과 하와이      1499

  하와이가 해양섭리의 중심이 되는 이유       1500

제 4 장 하나님섭리로 본 해양문명        1501

 1) 인류문명사와 발전 추이      1501

  ① 문명권을 중심한 세계역사의 흐름    1501

  이스라엘, 로마, 영국이 실패한 이유 1503

  미국은 20세기의 로마국가   1506

 2) 도서문명이 갖는 의미        1509

  ① 최대의 해양도서국가인 영국 1509

  영국 문명과 일본 문명의 차이       1510

 3) 해와국가로서의 일본의 사명  1513

  ① 일본은 해와국가다  1513

  일본을 해와국가로 택한 이유        1515

  어머니 국가로서의 일본의 사명      1520

제 5 장 모든 문명의 결실은 반도에서     1525

 1) 반도문명과 한국     1525

  ① 세계문명의 조류    1525

  원리적으로 본 반도문명의 역할      1527

 2) 한반도와 섭리적 사명        1530

  ① 한반도는 세계의 축소체     1530

  한반도 중심한 통일문화권   1531

  한반도 통일은 세계통일의 모형      1535

  아담국 복귀를 위한 섭리적 전개     1538

   ㉮ 일본, 미국, 독일을 중심한 섭리    1538

   2차대전 전후의 탕감복귀섭리       1539

   아담, 해와, 천사장국가의 섭리     1542

  우리가 찾아야 할 조국      1543

   ㉮ 조국광복은 인류 모두의 소원       1543

   새로운 조국의 정초석을 놓자       1546

      제13권 참하나님의 조국광복        1548

제 1 장 참하나님의 조국광복     1548

 1) 참하나님이 소망하는 조국    1548

 2) 우리의 조국을 찾아가야 한다 1551

 3) 조국광복의 기수     1554

 4) 우리는 조국광복을 위한 독립군       1555

 5) 조국광복은 참사랑으로       1557

 6) 조국광복을 위해 가져야 할 신념과 자세       1559

제 2 장 가정교회는 섭리의 내적 기반     1560

 1) 가정교회란 무엇인가?        1560

 2) 가정교회 활동의 시초        1564

 3) 가정교회의 활동 전개        1566

  ① 종족적 메시아 자격을 부여하는 조건 1566

  심방, 봉사, 교육 등 다양한 활동전개        1569

 4) 360호 가정교회 완성 1572

  ① 360호의 수리적인 의미      1572

  가정교회는 섭리의 종착지   1573

제 3 장 통, 반 격파 운동을 왜 해야 하나? 1575

 1) 통, 반 격파 운동을 다시 하는 이유    1575

 2) 승패의 마지막 보루는 통반   1577

 3) 남북통일 방안도 통반 격파 운동      1581

 4) 통반 격파는 가정 중심삼고 해야      1584

 5) 통반 격파 활동의 조직 확대  1588

  ① 사회인사 중심으로 조직 확대        1588

  지역봉사활동으로 조직 확대 1591

  교육 강화로 조직 확대      1592

  교학통련과 2세 중심의 섭리 1594

  종족적 메시아 활동과 통반 격파     1596

 6) 통일운동과 여성의 역할      1599

제 4 장 종족적 메시아 활동을 하라       1602

 1) 지금은 동서남북 통일의 시대 1602

 2) 종족적 메시아 선포의 의의   1607

 3) 종족적 메시아의 책임을 준 이유       1608

 4) 참된 심정을 본향땅에 심자   1613

 5) 이 시대 우리가 해야 할 일   1615

  ① 참부모님을 증거하자        1615

  가정마다 부모님 존영 모시자        1616

  종족 부흥회를 하자 1617

  훈독회를 조직화하라        1619

제 5 장 재출발을 위한 우리의 자세       1621

 1) 재출발의 결심       1621

 2) 참부모님의 전통 상속의 자세 1622

 3) 참사랑을 심자       1625

 4) 사랑의 뿌리를 고향에 내려라 1628

 5) 영계의 협조와 확신  1629

 6) 우리의 본향과 천국 입적의 길        1633

  ① 고향은 창조본연의 세계     1633

  천국에 입적 하려면 1635

제 6 장 참부모가 전수하는 세계와 남북통일 교본  1639

 1) 세계와 남북통일은 참사랑으로        1639

 2) 천주는 나의 고향과 조국     1646

 3) 참사랑은 누구나 원한다      1652

 4) 종말시대 인류와 미국(세계)이 나아갈 길      1657

 5) 하나님의 왕자 왕녀가 가야 할 생애 노정      1663

      제14권 참효의 생활        1676

제 1 장 충효의 의의     1676

 1) 충효사상은 한국인의 중심사상        1676

 2) 성인 성자는 충효의 완성자   1678

제 2 장 참된 충성과 효도        1680

 1) 참된 충효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스스로 행하는 것      1680

 2) 가정을 이루고 부모와 나라를 완성시키는 참충효       1682

 3) 참된 충효는 순종하며 위하는 사랑을 베푸는 것        1683

제 3 장 충효의 도리     1685

 1) 생명까지 아끼지 않는 진정한 충효    1685

 2) 대상의 마음을 읽고 참사랑을 베푸는 참충효   1689

 3) 무조건 순종하고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참효자 1692

제 4 장 하나님에 대한 충효      1694

 1) 하나님의 소망       1694

 2)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절대 충효       1698

 3) 예수의 충효 1701

제 5 장 효도와 충성과 종교는 불가분의 관계      1703

 1) 효도와 충성과 종교는 불가분의 관계  1703

제 6 장 충효와 참사랑의 유무는 천국행과 지옥행의 척도   1706

 1) 충효와 참사랑의 유무가 천국행과 지옥행의 척도       1706

제 7 장 하나님과 참부모님       1709

 1) 참부모님은 충효의 표본      1709

 2) 참부모님에 대한 충성은 하나님에 대한 충성   1710

       제15권 천일국 주인의 생활        1714

 1) 참사랑은 하나님의 뜻이 머무는 중심  1714

 2) 하나님과 참부모와 일체를 이루기 위한 참사랑         1717

 3) 하나님 사랑의 절대대상은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해와    1720

 4) 참사랑의 첫무대는 참가정    1727

제 2 장 천국과 참가정   1729

 1) 하나님의 창조이상은 사위기대와 참가정       1730

 2) 참가정은 천국 백성의 생산공장       1734

 3) 천국 백성의 교육은 참가정에서       1737

 4) 천국의 기반은 참가정으로부터        1739

제 3 장 하나님과 참부모 1745

 1) 참부모는 하나님과 인류의 소망       1745

 2) 하나님은 종적 부모, 참부모는 횡적 부모      1754

 3) 하나님을 해방시키는 참부모  1757

 4) 참부모는 천국의 통로        1761

제 4 장 천일국 백성이 되는 길   1768

 1)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소망   1768

 2) 천일국은 본연의 고향        1772

 3) 천일국 백성의 태도와 자격   1776

 4) 천국의 소유권을 얻으려면 하늘백성을 많이 데려가야   1785

 5) 천일국 주인의 생활  1790

  ① 일심-일체-일념-일화        1790

  순결 8단계 1792

  하나님과 참부모를 위한 모심의 삶   1794

 6) 천주천지참부모님 승리권 상속        1797

  ① 이름       1797

  말씀       1799

  실적       1801

 7) 천지부모님 천일국 개문 축복성혼식과 천주천지부모 평화통일 축복가정왕 즉위식 1803

  ① 천지부모님 천일국 개문     1803

  천지부모님 천일국 개문 축복성혼식 축도     1803

  천주천지부모 평화통일 축복가정왕 즉위식 기도       1804

  천주천지부모 평화통일 축복가정왕 즉위식 축도       1805

      제16권 참가정과 가정맹세  1807

제 1 장 가정맹세 선포와 전제조건        1808

 1) 가정맹세가 나오게 된 배경   1808

  ① 지금은 개인이 아닌 가정시대        1808

  성약시대 안착과 가정시대의 출발    1810

  가정연합 창립… 세계가정화시대로   1814

  가정맹세를 세운 이유       1817

 2) 가정맹세의 의의와 가치      1819

  ① 가정맹세의 중요성  1819

  가정맹세는 복귀의 총론을 집약시킨 것       1821

  가정맹세의 중심사상은 '참사랑'     1823

  가정맹세를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    1824

  가정맹세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1826

 3) 가정맹세와 축복가정의 전통  1828

  ① 모심으로 생활의 천국화 이룩        1828

  참부모님과 일체된 생활을 해야 한다 1830

  전통과 가법을 바로 세워야  1832

제 2 장 가정맹세 각절 해설      1835

 1) 가정맹세 1절 해설   1835

  ① 천일국 주인        1835

   ㉮ 천일국이란        1835

   천일국 주인의 모습과 생활 1836

  우리 가정은 참사랑을 중심하고      1838

   ㉮ 가정맹세 전제조건은 '참사랑을 중심'       1838

   참사랑은 하나님하고만 관계된 사랑

   참사랑의 기반은 참가정    1841

  본향 땅을 찾아     1843

   ㉮ 본향 땅의 참된 의미       1843

   우리가 찾아가야 할 본향 땅        1845

  본연의 창조이상   1848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을 창건 1851

   ㉮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의 출발기지는 가정     1851

   천국 창건은 축복가정의 임무       1854

   환고향과 종족적 메시아 사명 완수  1856

 2) 가정맹세 2절 해설   1859

  ① 대표적 가정, 중심적 가정이 되어    1859

   ㉮ 아담가정이 대표적 가정, 중심적 가정       1859

   축복받은 가정은 본연의 가정과 같은 가치   1861

  가정에서는 효자, 국가에서는 충신, 세계에서는 성인, 천주에서는 성자의 도리를 완성   1864

   ㉮ 필연적으로 가야 할 효자, 충신, 성인,      1864

   성인과 성자의 차이        1870

   인간이 가야 할 참된 길    1872

 3) 가정맹세 3절 해설   1876

  ① 4대 심정권과       1876

  3대 왕권과 1882

   ㉮ 3대 왕권은 창조 이상의 기본 틀    1882

   장자권, 부모권, 왕권복귀  1885

  황족권을 완성할 것을       1888

   ㉮ 천국은 사랑의 황족권이 가는 곳    1888

   황족권이란?       1890

   황족권은 직계 자녀가 아니다       1894

   황족권을 중심하고 국가 편성 시대로        1895

 4) 가정맹세 4절 해설   1897

  ① 하나님의 창조 이상 1897

  천주대가족 1898

   ㉮ 천주대가족의 기본은 가정  1898

   공생-공영-공의사회의 핵심은 사랑  1899

  자유와 평화와 통일과 행복의 세계   1901

   ㉮ 우리 이념은 통일된 하나의 세계    1901

   사랑만이 자유와 평화와 행복의 요소

  5) 가정맹세 5절 해설   1906

  ① 주체적 천상세계와 대상적 지상세계의 통일   1906

   ㉮ 천상세계가 주체다 1906

   천상세계와 지상세계를 통일시켜야  1908

  전진적 발전을 촉진화       1912

   ㉮ 매일 전진적 발전을 촉진화 하라    1913

   참사랑의 하이웨이로 닦자  1915

 6) 가정맹세 6절 해설   1917

  ① 하나님과 참부모님의 대신가정       1918

  천운(天運)을 움직이는 가정 1919

  하늘의 축복을 주변에 연결시키는 가정       1921

 7) 가정맹세 7절 해설   1923

  ① 본연의 혈통과 연결된 가정  1923

  위하는 생활을 통하여       1925

  심정문화세계를 완성        1927

 8) 가정맹세 8절 해설   1929

  ① 성약시대를 맞이하여        1929

   ㉮ 성약시대란 무엇인가       1929

   참부모님의 승리로 성약시대 선포   1931

  절대신앙, 절대사랑, 절대복종으로   1934

   ㉮ 하나님의 창조원칙과 절대신앙, 절대복종    1934

   절대신앙, 절대복종하면 천국으로 직행      1938

   일체의 기준은 절대신앙, 절대사랑  1939

  신인애 일체 이상을 이루어  1941

   ㉮ 신인애 일체 이상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     1941

   신인일체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1942

   신인애 일체이상을 정착화해야      1945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의 해방권       1946

   ㉮ 지상과 천상천국 건설은 참사랑으로 1946

   해방권을 완성할 것을 맹세하자     1948

찾아보기        1950

      제1권 참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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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하나님의 본체

 

 1) 하나님은 무형의 주체시다

 

  ① 무형으로 계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어떠한 형체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크다고 하면 무한대요, 작다고 하면 무한히 작은 분이십니다. (10-13)

 

하나님은 과연 계시는가? 누가 꼬집어서 ‘아야'하고 소리치는 것보다도, 배가 고파 밥을 먹는 것보다 더 사실적으로 느낄 수 있는 하나님이 있느냐? 문제는 거기에 있습니다. 진짜 하나님이 계시다고 할 때, 문제는 다 해결됩니다.

인간에게는 마음이 있습니다. 마음은 보이지 않아 없는 것 같지만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 머리에 있느냐, 심장 가운데에 있느냐? 마음은 내 몸 어디에나 있습니다. 내 몸 가운데 없는 데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도 이 세계가 하나님의 몸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이 세계 어디에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볼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힘이 보여요? 하나님은 에너지의 본체이기 때문에 영계에 가서도 볼 수 없습니다. (105-175)

 

지혜로운 하나님,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하나님은 중앙에서 마음대로 거동할 수 있는 무형적인 존재로 계시면서 주관하는 것이 제일 편리하겠다고 생각하신 겁니다. 하나님은 무형이니만큼 존재세계를 마음대로 뚫고 오더라도 조금도 지장이 없습니다. 여러분, 몸뚱이로 하나님이 와서 마음대로 지나가더라도 여러분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꾸벅꾸벅 졸고 있는 여러분들의 몸뚱이를 마음대로 밟고 지나가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편리합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은 생각 끝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으로 계시는 것이 제일 편리할 것이다 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됐다 하는 논리는 가당한 논리입니다. (138-141)

 

우리는 공기가 통하는 것을 모릅니다. 공기가 통하고 있지만 그걸 못 느낍니다. 공기가 통하는 것도 못 느끼는데 하나님이 통하는 것을 알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형의 신으로 계시는 것이 최고의 편리한 방법입니다. 그러면서 이 큰 우주를 보자기로 싸고도 남을 수 있는, 그러한 하나님이 아니면 안 됩니다. 무형의 하나님이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이 우주보다 더 큰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138-167)

 

여러분! 사랑 가지고 있어요? 생명 가지고 있어요? 여러분의 혈통을 이을 수 있는 정자나 난자 다 가지고 있지요? 양심도 가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사랑을 본 적이 있어요? 생명, 혈통, 양심을 봤어요? 그 존재의 현상은 알지만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마음으로 느껴서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같은 논리로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할 때, 또는 하나님을 봤느냐 못 봤느냐 물을 때, 못 봤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음 속에 하나님이 들어와 계시면 마음이 압니다. 하나님이 마음 속에 들어오면 바람벽도 뚫어볼 수 있고, 가만히 앉아 몇천 년 전에 죽은 성인들을 운행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마음 속에 들어오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영원을 시간으로는 포착할 수 없지만 영원 안에 시간이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안 보여도 마음은 압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사랑하느냐 할 때 답변하기 곤란하지요? 하나님은 무형의 신이기 때문에 어디든지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씨의 눈 속에도 들어가고, 심장 속에도 들어가고…. 어디든지 안 가는 데 없이 다 통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디서 사느냐? 집이 어디냐? 하나님이 사는 집은 우리 마음의 한복판입니다. 남자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남성적 심정이 머무르고, 여자의 마음에는 여성적 심정이 들어가 산다는 것입니다. (128-317)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온 천하를 요리하시는 하나님이 여기 있다고 합시다. 힘으로 말하자면 태백산도 날려 버리고 지구성도 구멍을 낼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인데, 그러한 하나님을 여러분의 눈으로 보면서 살라고 한다면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나님이 안 보이길 잘했다는 것입니다. 보이면 여러분은 신경쇠약에 걸려서 한 시간도 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안 보이는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됩니다. 이건 웃을 얘기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한 얘기는 내가 그러한 문제를 중심삼고 심각하게 겪었던 경험담입니다. 남의 말을 한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더듬어 나온 경력 보고와 같은 이야기입니다. (38-222)

 

만일 이 세계에 공기가 한 되밖에 남아 있지 않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하나님이 짖궂은 분이라면 세계 통일은 문제없습니다. 아마 5분 이내에 통일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공기를 몽땅 끌어 가면서 ‘너희들 통일 할 거야, 안 할 거야?' 하게 되면 세계 인류가 합창으로 ‘통일하겠습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일시에 통일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이 공기 가지고 그렇게 안 하시는 것은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공기가 없으면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 이렇게 공기는 생명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입니다. 그런데 공기에 대해 고맙다는 생각도 하지 않고 도둑놈같이 먹어치우고 있습니다.

천주의 대주재 되시는 하나님이 인간의 눈에 보이게 된다면 하나님을 서로 빼앗겠다는 싸움을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이 싸움을 막을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 보이기를 잘한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보였다면 미국과 소련이 서로 자기 하나님이라고 싸우겠어요, 안 싸우겠어요? 싸운다는 것입니다. 그 싸움을 누가 말릴 수 있겠어요? 하나님은 전지하사, 이런 싸움이 있을까봐 무형으로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이기를 바라는 것은 망령된 행위입니다. 안 보이기를 잘했다는 것입니다. (41-260)

 

이 우주는 신비에 싸여 있습니다. 그 크기가 210억 광년이나 되는 대우주입니다. 1광년은 빛이 1년 동안 가는 거리를 말합니다. 1초 동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이나 돌 수 있는 빛인데, 이 빛이 1년 동안 나아가는 것이 1광년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큰 우주를 지배할 수 있는 주인은 얼마나 크겠느냐? 키가 크다면 얼마나 크겠느냐? 하나님이 그렇게 크다면 하나님 자신이 거추장스러운 몸을 끌고 다닐 수 있겠느냐? 철커덕 철커덕 다닌다면 얼마나 불편하겠느냐? 한번 움직이면 우주가 전부 놀라 자빠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혜로운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주인이 되자.'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138-16)

 

하나님이 얼마나 무거울까요? 그걸 생각해 봤어요? 하나님이 얼마나 무거워요? 근수로 달면 몇 근이나 될까요? 몇 억만 톤이 될까요? 무겁다면 그 몸으로 다니려면 큰일이지만 하나님은 무형이시기 때문에 이상적입니다. 지갑에 넣고 다녀도 무게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또 무형이기 때문에 아무리 좁은 바늘귀로도 오갈 수 있습니다. 마음대로 운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크다 하면 크고 작다면 무한히 작기도 하여 이 우주 어디든 마음대로 운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36-101)

 

제일 귀한 물건이 있다면 언제든지 가지고 다니면서 한시도 그 물건과 떨어지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최고 보물이라 할 수 있는 하나님을 갖고 있다면, 그분을 어디에 모시고 싶어하느냐? 안전하게 모실 수 있는 창고가 있다면 어디일 것이냐? 그 창고는 바로 우리 마음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을 안전하게 모실 수 있는 창고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형이기 때문에 유형의 존재를 자기보다도 중요시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래야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또, 사람은 자기 몸뚱이보다도 보이지 않는 마음과 하나님을 더 중요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1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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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본래는 자연히 알게 되어 있었다

 

인류가 타락하지 않고 본성의 선한 부모를 통해 태어났던들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논란은 필요치 않았을 것입니다. 나면서부터 자연히 안다는 것입니다. 아기가 뱃속에서부터 젖먹는 법을 배워 가지고 나옵니까? 나오자마자 눈앞에 젖이 있으면 빨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자동적으로 알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인류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자동적으로 알고, 자동적으로 해결하고, 자동적으로 가야 할 입장인 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전부 다 망각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를 의심하는 결과의 세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참한 사실입니다. (20-306)

 

사람은 이 우주의 피조만물 가운데에서 걸작품입니다. 얼마나 걸작품이냐 하면, 여러분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고도 멋진 걸작품입니다. 그러면 절대적인 하나님이 계셔 가지고 사람을 만들었다면, 하나님 자신이 말하는 것, 보는 것, 느끼는 것을 사람이 모르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53-51)

 

하나님을 닮은 아담과 해와가 인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었다면, 그 모습을 통해 언제나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인지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면 하나님에 대해 의심을 가질 수가 없게 됩니다.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언제나 볼 수 있고, 부르면 곧 나타나도록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와 같은 기준이 된다면 누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인하겠습니까? 부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다, 하나님이 있다.'하는 것은 말뿐이 아닙니다. 원리를 통해 주체와 대상 관계를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은 불가피하게 있어야 된다는 입장이 아니라 하나님은 내가 생각하기 전에 있었던 분이요, 내 모든 감각, 나의 일체를 주관하는 분이다 하는 입장이어야 합니다.

그것을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알고 인식하는 것이 원칙이 아니라 인식하고 아는 것이 원칙입니다.

우리가 추우면 춥다 하는 것을 알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추운 것을 느껴 가지고 알지 않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신이 계시다면 신이 계신 것을 여러분이 느껴야 되겠습니다. 세포로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 경지가 문제입니다. 다시 말하면, 체휼적 입장을 어떻게 우리가 확정짓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58-291)

 

여러분이 자다가도 ‘아버지!' 할 수 있고, 혼자말로도 ‘아버지!' 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밥먹는 것을 잊어버리고 잠자는 것을 잊어버리면서 그 생활 이면에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아버지!' 하게 되면, 아버지 손이 잡힙니다. 꿈같은 사실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아버지!'하면 아버지 품에 안깁니다.

이러한 표현적 권에서 체휼적 감정을 어떻게 체득하느냐 하는 것은 신앙생활에서 무엇보다도 귀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한 체휼의 감도, 느끼는 그 도수, 그 양의 여하가 그 사람의 신앙기준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의 심정을 가졌다면 어디에 옮겨 가서 ‘내가 이것을 해야 된다.' 하게 될 때는, ‘하늘이여, 같이해 주시옵소서.'하기 전에 벌써 하나님은 같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여러분이 느끼게 될 때는 ‘고마우신 하나님' 하게 되는 것입니다. (58-299)

 

통일교회 원리는 하나님을 무형의 절대적 주체로, 이성성상(二性性相)의 중화적 주체로 계시는 분이라고 합니다. 이성성상으로 계시는 하나님 자신의 분성적 실체(分性的實體)로 아담과 해와를 만들어 놓고, 이들이 장성하여 사랑을 중심삼고 횡적으로 연결될 때, 종적인 입장에서 중심이 되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건 무슨 말이냐 하면, 아담과 해와가 성숙하게 되면 하나님의 남성 성품은 아담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여성 성품은 해와의 마음 속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갈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이성성상의 주체로 계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아담과 해와의 마음 속에 임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38-240)

 

하나님은 이성성상의 중화적 존재라고 말하지요? 중화적 입장에서 사랑을 중심삼은 통일적 존재라는 것은 아직까지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사랑을 중심삼고 통일적 존재라는 그것을 첨부해야 됩니다. (223-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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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무형의 하나님은 체가 필요하다

 

  ① 체를 쓰기 위해 아담 해와 창조

 

하나님은 어째서 아담과 같은 형(形)을 필요로 하는가. 만물은 형상적인 꼴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은 무형의 존재이십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형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크다고 하면 무한대(無限大)요, 작다고 하면 무한히 작은 분이십니다. 그런 분의 어떤 표준적인 형을 형성하고 형체를 나타낸다 하여도 실체를 가진 만물은 그 하나님에게 직접 주관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실체를 가진 피조세계에 는 실체를 가진 주인적 인격과 형을 갖춘 존재가 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지상 만물의 주관뿐만 아니라 무한한 영계도 주관하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천사장이나 여러 형체를 가진 실체, 그리고 무형의 실체까지도 주관하려면 그 중심적인 타입, 곧 형상(形狀)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35-156)

 

아담을 중심으로 영육 양면의 세계, 무형실체세계(無形實體世界)와 유형실체세계(有形實體世界)를 주관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인간 창조목적입니다. 따라서 하나의 인격적인 실체와 관계를 맺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아담 완성과 더불어 하나님의 형상 완성, 곧 형(形)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지으실 때 그의 형태, 인상(人相), 인격 등이 무형세계의 중심에 계시는 하나님과 같은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아담을 만들었습니다. 형(形)이 없으면 형(形)의 세계를 주관할 수 없는 것입니다. (35-158)

 

하나님이 왜 아담과 해와를 지었느냐? 하나님은 무형으로 계신 분이기 때문에, 실체의 형상을 가진 아버지 어머니가 안 돼 가지고는 형상의 자녀를 사랑할 수 없기 때문에 체(體)를 입기 위한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의 창조목적은 첫째, 아담이 몸으로써 무형의 하나님이 체를 입는 것이고, 둘째는 체를 입음으로 말미암아 진동적인 충격이 옵니다. 말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충동적인 자극에 기쁨을 느끼는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은 중심축을 가진 수직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면적이 없습니다. 면을 찾자는 것입니다. (232-183)

 

영계에 가도 하나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안 보입니다. 힘이 보여요? 하나님은 에너지의 본체이기 때문에 영계에 가서도 볼 수 없습니다. 체(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체세계를 지도하고 주관하기 위해서는 실체를 써야 됩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냐? 아담이 타락하지 않고 완성되어 지상에 살다가 천상에 가면 아담 형상을 입은 하나님이 됩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보이는 아담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담이 ‘하하하' 웃는 것은 하나님이 ‘하하하' 웃는 것이고, 그것은 곧 우주가 ‘하하하' 웃는 것이 됩니다. (105-175)

 

무형의 신으로 계시는 하나님으로는 이 우주를 상대로 자극을 못 느낍니다. 마음 자체만 가지고는, 아무리 자극을 해도 무형만으로는 감동이 없습니다. 같은 것이니까, 같아서 자극이 안 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서로 상충된 것, 더운 물과 찬물이 합하면 폭발하지요? 그런 자극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141-9)

 

하나님은 영계에서도 무형입니다. 모형이 없습니다. 그래서 모양을 가진 인간의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모양을 갖지 않으면 중심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222-328)

 

하나님의 최후의 창조목적은 체(體)를 쓰는 것입니다. 실체세계를 주관하기 위해서는 무형의 하나님으로서는 안 되기 때문에 만민의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체를 쓰고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감각기관을 가지고 자극을 느낄 수 있는 주체와 대상으로 서기 위해서는 체를 입어야 됩니다. (25-294)

 

실체세계를 지으신 하나님이 무형이 되어 가지고는 실체세계를 지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체가 필요합니다. 창조하신 목적이 하나님도 실체를 씀으로써 실체의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그 실체가 아담과 해와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완성했더라면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의 마음 자리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중심한 왕권을 이루는 것입니다. 왕권이 성립됨과 더불어 부모권이 성립되는 것이요, 부모권과 더불어 본연의 아담은 장자권이 됩니다. 오늘날의 차자권이 필요없습니다. 아담 자체가 장자 중의 장자이고, 해와도 장녀 중의 장녀입니다. 그렇게 되면 두 아들딸은 인류의 부모 중의 부모가 됩니다. 부모인 동시에 영원한 세계의 왕이 되는 것입니다. (214-7)

 

왜 하나님이 사람으로 하여금 체를 가지게 했느냐? 체 없는 하나님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혼자 있으면 좋을 텐데, 체를 왜 지어 가지고 문제가 되게 만들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은 무형의 신입니다. 무형의 하나님이 체를 입은 인간 조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체를 입고 오는 아들딸을 대하려니까 체를 입은 하나님의 자리에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의 몸이 하나님의 몸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담의 마음과 같은 자리보다 한층 더 차원이 높은 세계의 단계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223-128)

 

하나님은 무형이어서 형체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형체를 입고 나타나야 합니다, 또 형체를 가진 인간과 만물을 주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의 형체를 입고 나타나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아담과 해와와 하나님이 일체가 되기 때문에 아담과 해와의 마음과 같은 분이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의 마음의 자리에 하나님이 임재해 가지고 하나되었기 때문에 결국은 아담의 내적인 주인, 내적인 아담과 같은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90-187)

 

왜 사람을 창조했느냐? 이 우주는 실체가 있으니 실체 주인인 아담과 해와를 중심삼고 관리 주도할 수 있는 입장에 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영계에서 무형으로 계시기 때문에 지배할 수 없으니 실체의 탈을 쓰고 실체의 몸을 씀으로 말미암아 저나라에서, 지구성에서 생산되어 오는 자기 아들딸 되는 후손들을 실체를 가지고 지배할 수 있는 왕이 되기 위해 사람을 지은 것입니다.

그 왕의 얼굴이 아담의 얼굴입니다. 왕을 만들었으니 왕후가 필요합니다. 왕후가 누구예요? 해와가 왕후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지상의 조상인 동시에 천상세계의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199-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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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아담은 종지조상, 유형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첫째, 체(體)를 입기 위해 아담과 해와를 창조하셨고, 둘째로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창조하셨습니다. 이러한 아담과 해와가 완성하여 둘이 하나될 수 있는 사랑의 실체가 되면 하나님이 임재하여 인류 앞에 사랑의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형상적 실체부모가 된 아담과 해와가 실체의 자녀를 번식함으로써 이상세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을 통해 영계와 지상세계가 연결되기 때문에 영계와 지상세계를 연결시키기 위한 목적으로도 인간을 지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랑을 중심삼고 아담과 해와에게 임재하심으로써 인류의 참된 부모, 실체의 부모로 계시다가 아담과 해와가 저나라에 가면 영계에서도 아담과 해와의 형상으로 체를 쓰시고 부모의 자리에 현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실체를 쓴 하나님의 몸으로 만든 아담이 인간의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담은 실체의 하나님입니다. 무형의 하나님이 실체의 세계를 주관하기 위해서는, 실체의 몸뚱이가 있어야만 보고 듣고 하겠기에, 하나님의 실체로 지은 이가 아담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해와는 누구냐? 해와는 아담의 아내입니다. 실체의 아내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이 실체를 쓴 하나님이라면 해와는 실체를 쓴 하나님의 아내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이 아내를 얻는다니 기가 막히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아담은 실체를 쓴 하나님의 몸뚱이요, 해와는 실체를 쓴 하나님의 아내로 창조되었던 것입니다. (22-236)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필요로 하는 데는 두 가지의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는 사랑의 이상을 성사하자는 것입니다. 둘째는 무형의 하나님이 형상을 쓰고 나타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형의 하나님이 유형의 형상을 쓰고 유형세계와 관계맺을 수 있는 기초, 그 핵심이 아담과 해와라는 것입니다. (92-145)

 

하늘나라에 무형의 하나님이 혼자 있어 가지고 뭘합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 가지고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인간의 부모가 되려면 체를 갖고 느낄 수 있어야 됩니다. 이런 인간과 같은 체를 입어야 되겠기 때문에, 체를 입으려니 부득이 아담과 해와를 이중적 존재로 짓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33-86)

 

체(體)를 가진 아버지가 됨으로써 보이지 않는 무형과 유형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주가 하나되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그런 체를 갖출 수 있는 모습으로 아담과 해와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담과 해와를 하늘나라의 왕궁에, 왕좌에 오르게 하여, 그 왕과 왕후의 마음 속에 하나님이 계셔서 지상세계와 무형세계를 통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왕국을 만드는 것입니다. 왕국은 사랑의 왕국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만이 영과 육이 합하게 되어 있지 다른 것 가지고는 합할 수 없습니다. (143-74)

 

해와는 미래에 있어서 하나님의 왕녀입니다. 왕녀인 동시에 장래 하나님의 상대였습니다. 해와를 사랑의 상대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부인이 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사랑을 나눠 주기 위해서는 몸이 필요합니다. 체가 필요한 것입니다. 저나라에 가보면 하나님은 무형입니다. 공중에서 태양 같은 빛이 24시간 언제나 떠 있습니다. 공중에서 하나님이 전부 무형으로 관리하는 것입니다. 그 무형의 하나님이 실체를 가진 인간의 사랑의 대상으로는 허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형의 하나님이 사랑이상의 절대 작품이요, 파트너로서 체를 가진 아담과 해와를 지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의 모양이냐 하면 아담과 해와의 모양입니다. 하나는 내적인 아버지요, 하나는 외적인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는 내적인 부모요, 하나는 외적인 부모라는 것입니다. (199-294)

 

하나님은 사랑을 같이하기 위해 천지를 창조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를 무형의 하나님이 영원한 사랑의 실체로 등장시키는 것입니다. 사랑의 중심 실체로 등장시키는 것이 인류의 선한 참조상, 참부모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참부모를 못 가졌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통일교회에는 참부모의 교리가 있습니다. (38-139)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왜 만들었느냐? 무형의 신 가지고는 이 실체세계를 주관하지 못 합니다. 무형의 신 가지고는, 보이지 않는 신 가지고는 이 보이는 세계, 창조물, 우주세계를 지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을 중심삼고 체(體)를 입어야 됩니다. 그래서 창조를 한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체를 입으면 내적 외적 자극이 벌어집니다. 자극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166-202)

 

무형의 하나님은 실체가 없으니 그 형체를 대신한 것이 참부모입니다.

참부모는 개인적인 부모요, 가정적인 부모요, 종족적인 부모요, 민족적인 부모요, 국가적인 부모요, 영계에 가서도 앞으로 참부모의 형상으로 하나님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위대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레버런 문이 위대한 것이 뭐냐 하면, 레버런 문의 형상을 하나님이 쓰겠다는 것입니다. (98-196)

 

하나님은 무형의 하나님입니다. 무형의 하나님이 유형의 하나님으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유형의 하나님이 뭐예요? 타락하지 않은, 우리가 말하는 참부모입니다. (201-83)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영적이고 무형이시기 때문에, 인간은 직접 하나님으로부터 가르침과 중생의 체험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중심인물을 세워 인간이 그를 통해 가르침을 받고 중생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분이 바로 유형, 무형의 참부모입니다. (91-101)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만든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우리 인간의 형상을 보면 체(體)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무형의 하나님은 체가 없습니다. 체를 입지 않고는, 체를 갖지 않고는 영계나 지상세계를 치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계시더라도 하나님이 인간의 부모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체를 입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 체를 입은 대표가 누구냐 하면 아담과 해와입니다. 타락하지 않은 아담과 해와의 체를 입고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해와는 인류의 시조인 동시에 천지를 주재하는 하나님입니다. 실체를 가진 하나님, 즉 영원한 무형세계의 하나님의 형상을 대신 입고 나타난 자리에서, 부모의 자리에서 세계를 통치할 책임이 아담과 해와에게 있었다는 것입니다. (133-86)

 

하나님은 하나님과 인간이 주체와 대상으로서 종적인 사랑의 관계를 완성하는 것만을 목표로 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종적인 사랑을 완성하여 아담과 해와의 횡적 사랑의 결실을 가져오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 순간이 바로 내적 부모이신 하나님이 외적 부모인 아담과 해와와 완전 일체를 이루기 위해 임재하시는 사랑이상 성취의 순간입니다. 무형의 부모이신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의 형상을 쓰고 유형세계에 영존하시는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이때 아담과 해와는 참부모, 참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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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하나님은 인격적인

 

  ① 하나님은 지?정?의를 가진 인격신

 

오늘날 많은 기독교 신자들은 하나님은 유일무이하신 분이요, 절대적인 분이요, 창조주요, 지고지선한 자리에 계시기 때문에 피조 인간, 즉 피조물과 창조주는 관계를 가질 수 없다고 봅니다. 피조물은 속된 것이고, 창조주는 절대적이고 신성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개념을 중심삼고 볼 때, 아무리 지고지선하신 하나님이요, 아무리 저속한 피조물이라 할지라도 사랑의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인격적인 내용이 같아야 됩니다. 심정적 내용이 같아야 합니다. 인격을 갖춘 사람과 성품이 같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138-240)

 

하나님은 어떠한 신이냐? 인격적 신입니다. 지?정?의를 합한 내용을 갖춘 인격적 신입니다. 그런 인격적 신이 최고로 원하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에 그 사랑의 대상으로 우리 인간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이건 놀라운 사실입니다. (143-144)

 

하나님은 제일원인적인 존재인데 그가 인간을 어떻게 만들었겠느냐? 하나님같이 만들었다는 겁니다. 하나님같이 만드는 데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서 그 형상대로 만들었습니다. 그 말은 무엇이냐 하면 내가 아버지를 닮은 동시에 아버지는 누구를 닮았겠어요? 나를 닮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답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모색해 보게 될 때,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나 같은 분이다 하면 이건 쏙 들어오는 것입니다. (127-232)

 

하나님이 누구를 닮았겠느냐.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하나님이 사랑하는데 하나님 닮은 것과 사랑하겠어요, 하나님과 닮지 않은 동물과 사랑하겠어요? 하나님은 좋아할 수 있고,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상대적인 것을 필요로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그런 상대라면 인간을 중심삼고 볼 때 신은 인격적인 신이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러면서 인간과는 모든 요소가 백 퍼센트 화합해야 됩니다. 몸과 마음의 소성에 있어 전부가 화합할 수 있는 신이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정의(知情意)를 가진 신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62-258)

 

하나님이 계신다면 인간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하나님이 인간과 관계를 갖기 위해서는 인격적 신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인격적 신이 되려면 인간과 같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마음이 있고, 몸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런 소성이 있느니만큼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도 인간과 더불어 공동목적을 가질 수 있는 그 본체라면 인간을 닮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성성상이라는 개념은 거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167-243)

 

하나님은 사람같은 인격을 가졌을까요? 사람 같으면 하나님이 남성이겠어요, 여성이겠어요? 그러면 남성같이 달린 것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하나님은 무슨 성상이라고 그랬어요? 이성성상의 주체인데 오목 볼록이가 있겠어요, 없겠어요? 그걸 생각해 봤어요?

하나님이 웃겠어요, 안 웃겠어요? 하나님이 웃는 것을 봤어요? 하나님도 눈이 있겠어요, 코가 있겠어요, 입이 있겠어요, 귀가 있겠어요, 몸뚱이가 있겠어요?

기성교회 신자들 가만 보면 엉터립니다. 하나님이 눈이 있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눈 진짜 봤어 하면 모릅니다. 하나님이 누구 닮았어? 누구 닮긴 하나님 닮았지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대답이 어디 있어요. 하나님이 누구 닮았어요? 아들딸 닮았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인격적 신이어야 합니다. 인격적 신으로서 하나님이 나에게 인격적 최고의 기준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인격적 최고의 기준이 뭐예요? 그것은 돈도 아니고 권력도 아니고 사랑입니다. (182-47)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도 인격적 신이어야 됩니다. 사람과 같아야 합니다. 인격적 신이라는 것은 지?정?의(知情意)를 갖추어 감정이라든가 또는 뜻을 중심삼고 목표라든가, 그런 모든 것이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174-142)

 

하나님은 모르는 게 없습니다. 지식의 대왕이시고, 능력의 대왕이시며, 전지전능하시다는 것입니다. 또, 무소부재합니다. 안 계신 곳이 없습니다. 그분이 필요한 것이 뭐예요? 다이아몬드? 그건 언제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황금? 보석? 아닙니다. 하나님이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혼자서 ‘아이구, 나 사랑있어 좋다.'하며 ‘히히히' 그러겠어요? 하나님이 필요한 게 뭐냐? 하나님도 인격적 신이라 하면 입이 있겠지요? 코도 있고, 눈도 있고, 귀도 있고, 손발도 있고, 마음도 있고, 심정도 있을 것입니다. 인격적 신이라면 말입니다. (142-9)

 

하나님이 도대체 어떠한 분이냐? 전지전능하고, 뭐 무소부재해 가지고 그저 한마디면 세계를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그런 하나님을 우리는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 본심은 어떠한 하나님을 원하느냐? ‘사랑을 가지고 내 어머니 아버지 이상 되는 사랑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분이구나. 우리나라에 의로운 국왕이 있으면, 의로운 대통령이 있으면 그 국왕 이상, 그 대통령 이상 되는 분이구나.' 이런 분을 원합니다. 대통령은 4년마다 갈리기 때문에 얼룩덜룩하여 그거 뭐 존경할 것이 못 되지만 말입니다. (147-259)

 

오늘날 이 세계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이 계시다 할진대, 그 하나님은 지?정?의(知情意)를 갖춘 하나님이심에 틀림없습니다. 왜? 인간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인륜을 중심삼은 지정의가 아니라 천륜을 중심삼은 지정의입니다. (9-272)

 

절대적인 하나님이 슬퍼할 수 있겠느냐, 없겠느냐?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슬픈 자리를 피할 수 있겠어요, 없겠어요? 그 슬픔을 상관할 수 있겠어요, 없겠어요? 이거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 같은 사람은 그거 그냥 못 넘어갑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슬픔이 없어야 된다 한다면, 그 하나님은 지?정?의를 가진, 희로애락의 감정을 가진 인간의 아버지가 될 수 없습니다. 논리적으로 모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보다도 더 많은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는 주체가 돼야 됩니다. (203-260)

 

하나님에 대해 바르게 증거하는 종교 단체는 없습니다. 불교나 유교, 모두 똑같습니다. 하나님이라고 하면, 벌써 어안이 벙벙해집니다. 그들은 인격적인 하나님, 지?정?의(知情意)를 겸비한 하나님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통일교회는 신인일체(神人一體)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게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227-112)

 

통일교회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똑똑히 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정?의를 갖춘 인격적 신인 동시에 사랑의 주체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똑똑히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랑의 신은 천정(天情)이 중심이다 이겁니다. 천정의 중심자리는 왔다갔다 할 수 없습니다. (21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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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신인일체의 인격신을 요구한다

 

하나님도 지?정?의(知情意)를 가진 분이시니만큼 나름대로의 소원이 있고 사정이 있고 심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고 하나님의 심정이 무엇이고 하나님의 사정이 무엇이냐? 인간의 사정보다도 먼저 이것만 알면 됩니다. 이것만 알면, 자연스럽게 사람의 소원이 무엇인지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왜? 사람의 목적은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목적은 인간이기 때문에 맞먹습니다. 인간의 사정을 잘 알고 소원을 잘 알고 심정을 잘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소원, 하나님의 사정,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151-177)

 

사랑을 논하려면 인격적인 신이 아니고는 안 됩니다. 정서와 인격적으로 사람과 같은 소성을 가진 신이어야 되는데 그러한 신을 제시한 종교는 기독교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한 것은 위대한 발견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버지임을 발견했다는 사실은 지금 선생님이 말씀하는, 하나님을 내적 아버지와 외적 아버지로 보고 실체에 일치하는 사랑으로 통일적인 권한을 만들려고 하는 그 기준, 확실히 이 기준까지는 발견 못 했지만 그런 내용을 암암리에 해명할 수 있는 표제를 걸었다는 사실이 놀랍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일신(唯一神)을 논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종교는 세계적 종교요, 세계가 이 종교를 중심삼고 뭉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종교로 말미암아 세계가 하나될 수 있는 길을 세워 나간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139-230)

 

오늘날 수많은 도(道)가 있지만, 심정을 통과할 수 있는 하나의 도가 역사노정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도가 기필코 나타나야 됩니다. 만일 그것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안 계신 것입니다. 인간이 지켜야 할 사회적인 윤리와 도덕을 가르쳐 주는 도도 있고, 무한한 영계를 가르쳐 주는 도도 있지만, 윤리도덕과 무형세계에 대한 가르침을 통합하여 하나의 심정의 골자 위에 올려 놓는 종교가 있어야 됩니다. 그런 종교를 찾아보니 기독교였습니다. 기독교는 심정의 종교입니다.

인간은 타락함으로써 하나님을 잃어버렸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라는 것을 모르게 되었습니다. 실체를 갖춘 참부모를 잃어버렸는데, 기독교는 그 참부모를 소개해 줄 수 있는 종교입니다. (9-126)

 

철학의 최후의 종착점은 신을 발견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 신은 어떠한 신이냐? 절대적인 신, 불변의 신, 유일의 신입니다. 신을 발견하는 데 있어 그 신은 우리 인간에게 필요한 인격적 신이어야 됩니다.

우리 인간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우리 인간이 생각하는 모든 안팎을 갖추고, 뜻을 갖추고, 이상을 갖춘 인격적 신이어야만 되겠다는 것입니다. 모든 면에서 통할 수 있는, 정서적인 면이나 뜻적인 면이나 혹은 지식적인 면에서 우리 인간과 통할 수 있는, 완전히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신이 아니고는 아무리 신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와는 완전히 상관을 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인격적 신이 되어야 한다는 표제 밑에서 철학은 신을 숭상하지 않아왔다는 것입니다. (138-141)

 

하나님이 누구를 닮았어요? 아들딸 닮았습니다. 여러분이 누구예요?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격적 신입니다. 하나님이 두리뭉수리하면 되겠어요? 기독교가 놀라운 것은 인격, 사랑을 중심삼고, 지정의를 중심삼고 정서적인 인격적 신을 논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위대합니다. 그리고 유일신을 논했습니다. (177-232)

 

하나님이 인격적 신이라면 하나님에게 사랑이 필요하겠어요, 필요하지 않겠어요?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딸로 태어나 하나님을 대해 아버지라 하면, 아버지가 필요하듯이 나도 필요한 것이요, 내가 필요하듯이 아버지도 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184-192)

 

인격적인 신이 있다면 그 신을 중심삼고 무엇이 연결돼야 되느냐? 여러분, 하나님 하게 되면 높은 걸 말하잖아요? 거기에 내 몸뚱이가 연결되겠어요? 아닙니다. 마음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인격적인 신 되시는 제1 원인이신 존재 하나님을 중심삼고 인간이 수직과 같은 마음을 중심삼고 살아가는 것이고, 지구성이 태양계를 중심삼고 그 각도를 맞추고 축을 이뤄 공전하면서 하루 이틀, 365일을 도는 것과 마찬가지로 돌며 사는 것이다 이렇게 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194-147)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 가지 않으면 세계가 미래의 희망을 남길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 논리로서 결론을 짓게끔 되어있습니다.

여기에서 통일교회가 나와서 하나님이 있다고 하는 실존성과 지(知)?정(情)?의(意)의 완성 기준에 선 인격적 신을 인정하고 심정권을 중심으로 한 이상세계를 실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처음으로 신과 인간의 관계를 확실히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13-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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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하나님은 아버지시다

 

  ① 하나님과 인간은 부자의 관계

 

하나님과 인간은 부자의 관계인데, 어떻게 해서 그런 관계가 맺어졌느냐? 신비스러운 경지에 들어가서 이 우주의 중심이 뭐냐고 묻게 되면, 부자지관계(父子之關係)라는 답을 얻게 됩니다. 우주의 중심이 뭐냐? 한마디로 부자의 관계입니다.

천지의 중심과 우주의 근본은 무엇입니까 하고 하나님께 기도해 보면 아버지와 아들딸의 관계, 부자의 관계라고 합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육친의 아버지 어머니, 아들딸과의 관계인 줄 알겠지만, 하나님과의 근본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인간을 창조하셨는가 하면, 혼자 있으면 자극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쁨이란 상대 관계에 의해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혼자서는 기쁨의 자극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상대적 위치에 서면 비로소 최고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성상이 그대로 실체화됩니다. 하나님이 슬퍼지면 인간도 슬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제아무리 연구해 보아도 결론은 여기에 도달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부자의 관계라고 했는데, 부자의 관계가 가진 특정한 내용이 무엇이냐? 아버지와 아들이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장소는 사랑이 교차되는 그 중심, 생명이 교차되는 그 중심, 이상이 교차되는 그 중심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랑과 생명과 이상은 한 자리에 있습니다. 그 자리에 가면 하나님도 사랑이요 나도 사랑이요, 하나님도 생명이요 나도 생명이요, 하나님도 이상이요 나도 이상입니다. 그것을 결정할 수 있는 최초의 인연이 부자관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주게 될 때, 얼마만큼 주고 싶어 하겠느냐? 하나님의 사랑은 이만큼이면 됐다 하는 한계를 두고 주는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무한정으로 주고자하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몽땅 주고도 ‘너로 말미암아 네 안에 살고 싶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게 하는 본질이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하나님도 사랑 가운데 들어가서는 종살이를 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들이 자신의 밥상 위에 올라가 똥을 싸도 그것을 바라보고 기쁨을 느낍니다. 사랑은 법을 초월합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인간에게 사랑을 주었다고 해서, ‘나는 완전히 다 주었는데 너희는 왜 안 주느냐? 이럴 수 있느냐?' 하지 않습니다. 절대적인 사랑을 가진 하나님은 아직까지도 주고 싶은 사랑을 다 못 주어 안타까워합니다. 자아를 주장할 수 없는 하나님입니다. 완전한 사랑을 주고자했던 것이 하나님의 인간 창조의 목적이라면, 하나님은 지금까지 완전한 사랑을 주지 못했으니 인간세계에 대해 사랑을 주고 싶어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이기에 생각할수록 좋은 것입니다. ‘나는 다 줬으니 이제는 너희가 가져와라.'하는 하나님이라면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아버지요,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하나님의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 골수 중의 골수를 몽땅 투입하여 창조한 인간이기에 인간이 하나님을 끌면 끌려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 때문에 창조했습니다. 사랑 때문에 창조했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보는 것이 더 좋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존재세계 앞에 나타날 때 사랑의 본질로 나타납니다.

자식은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의 실현체요 투입체입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생명의 연장체입니다. 또한 어머니 아버지의 이상의 구현체입니다. 자식은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과 생명과 이상의 기반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부모는 그 자식을 보면 볼수록 사랑스럽고, 보면 볼수록 생명이 약동하고, 보면 볼수록 이상적인 상대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은 절대적인 상대로서 사랑 관계를 중심으로 태어난 존재입니다. 그 자리가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아들딸이 되는 자리입니다. 만일 그 이상의 자리가 있다면 인간의 욕망은 또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할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최고를 추구하기 때문에 그 이상의 것이 있다고 하면 우리 인간에게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응당 하나님은 인류의 아버지고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을 때 무가치하게 짓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가치하게 지었다면 하나님은 이상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이기에 무엇이든지 다 압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모르고 지었다면 그 하나님은 불완전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이기 때문에 우리 인간을 지을 때 절대적인 상대로 지었습니다.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지극히 선한 분이요, 모든 만물의 근본이 되는 분이요, 사랑의 주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한 후 온 우주의 귀한 모든 것을 인간에게 주고 싶어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참으로 믿을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고,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제일 귀한 것을 고스란히 넘겨주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면 아들딸을 짓는 데에 있어서 시시하게 만들고, 못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전지전능한 하나님과 같은 동등한 자리요, 동위(同位)의 자리에 설 수 있게 만드셨기 때문에 우리의 양심은 최고의 것을 희망하는 것입니다. (53-216)

하나님이 절대적인 분이시라면 그 절대적인 분이 왜 인간을 지었느냐? 돈 때문에 지은 것도 아니요, 지식 때문에 지은 것도 아니요, 권력 때문에 지은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기 때문에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은 아버지이고 인간은 아들딸이라는 것이 하나의 축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 축이 만일 연결됐더라면, 인간과 하나님이 사랑으로 일체된 관계를 그 어떤 것이 작용하더라도 절대 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할 때 완전히 투입함으로써 보다 가치있고 이상적인 완전형으로 전개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를 지어놓고 그들을 위해 있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자기를 위하던 때에서 상대를 위하는 때로 전개되었습니다. 이상적인 존재는 자기를 위하지 않습니다. 이상적인 존재는 남을 위하는 데에, 대상을 위하는 데에 있습니다. 이 원칙이 우주의 근본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훌륭하고, 아무리 절대자이고, 전지전능한 분이라 하더라도 혼자서는 좋을 수 없습니다. 행복이라는 명사, 혹은 좋다는 말은 혼자서는 성립되지 않는 말입니다. 반드시 상대적 관계를 갖춘 자리에 있어야 좋고 행복하다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혼자 있으면서 행복하다는 사람이 있느냐? 아무리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도 혼자 있어서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노래를 잘 부르는 성악가가 아무도 없는데 혼자 노래를 불렀다고 합시다. 그래서 행복하겠느냐?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주고받는 것이 있어야 좋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도 좋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완전히 투입해서 사랑의 대상을 창조했습니다. 그렇게 한 것은 하나님도 사랑의 대상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혼자서는 못 합니다. 아무리 절대자라도 그 절대자 앞에 사랑의 대상이 있어야 사랑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사랑의 대상으로 인간을 지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을 지을 때 아무렇게나 지은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말씀으로 지었다고 했는데, 아무렇게나가 아닙니다. 천신만고 끝에 자신의 1백 20퍼센트, 몇백 배를 투입해서 지었습니다.

기성교인들은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생각할 때,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니 말씀으로 지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술 부리듯 그렇게 지은 것이 아닙니다. 있는 지성을 다하고 자기 일신을 전부 투입해서 아들딸을 창조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사랑합니다. 우리도 정성을 안 들이고, 피와 살을 투입하지 않은 것은 사랑하지 않습니다. 내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 내 사상 중의 사상, 내 전체 중의 전체를 투입했기 때문에 희망의 대상으로 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의 이상적 출발점을 어디에 두었느냐?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너, 나한테 와서 달라붙어라' 하는 흡수가 아닙니다. 투입입니다. ‘달라붙어라'가 아니라 투입입니다. 그 말을 돌이켜 하면, ‘위해 존재하는 원칙'에 이상적 출발점을 두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 투입했습니다. 하나님 자신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는 사랑이다.'라고 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밤에도 좋아하고, 낮에도 좋아하고, 일하면서도 좋아하고, 쉬면서도 좋아하고 춤추면서도 좋아하고, 울면서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에게는 사랑이 있다. 몽땅 있다.'고 한 것입니다. ‘몽땅'이라는 말은 그 속에 전부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제일 좋아하는 분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입니다. 그런 사랑을 몽땅 가지고 있는 하나님이기에 그 사랑을 맛보면 죽더라도 놓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분으로서 아까울 것이 없고, 갖추지 못한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갖추고 있지만 그 전부의 가치보다도 귀하게 내세우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입니다. 사랑 이외에는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108-223)

 

창조이상 완성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그것은 하나님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창조이상 완성이기 때문에 창조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창조물의 중심은 인간입니다. 때문에 인간의 완성이 없는 한 하나님의 완성은 있을 수 없습니다. 신인일체(神人一體)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신과 일치될 수 있는, 신의 뜻에 일치될 수 있는, 신의 뜻을 중심삼고는 과정적 뜻이 아니라 완성적 뜻의 중심의 핵과 일치될 수 있는 그게 무엇이냐? 그게 하나님의 전능성(全能性)이냐? 전능성가지고도 안됩니다. 전권(全權)이냐? 아닙니다. 그러면 무소부재한 소성이냐? 그것도 아닙니다. 그게 무엇이 돼야 되느냐? 하나님 자신도 살아 가지고 생활하는 것은 물론 영계가 있어서 시공의 관계를 초월한 자리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데는 무엇을 중심삼고 살아가느냐? 무한한 힘이 있다, 무소부재하다, 전권적인 권한이 있다, 그게 아닙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중심삼고 살아간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데는 시작도 그렇고, 과정도 그렇고, 영원히 그럴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도 참된 사랑의 대상을 갖추게 되면 기쁘기 때문입니다. (126-219)

 

하나님은 절대적이요 전지전능하기 때문에 사랑을 그저 주고 주고 또 나누어 주더라도 자꾸 보충할 수 있는 사랑의 창고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창고에서 사랑을 많이 도적질해 가지고서, 밤이고 낮이고 자꾸 사랑을 빼다가 나눠주고 나눠주고 할 때 하나님이 ‘야 이 녀석아! 도둑놈, 사랑 도둑놈!'하며 처벌하겠어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래 해라, 해도 좋다. 얼마든지 해봐라. 네가 영원히 해봐라. 네가 들어오고도 남는다. 내가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다. 내가 그렇기 때문에 주체다!' 하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주체이기 때문에 객체에게 주고도 남아야 주체다. 너희들 객체 되는 사람에게 주고도 남아야 주체로서의 하나님이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못 된다. 내가 그렇다!'하시는 것입니다. ‘내게서 사랑을 도적질해다가 하나님의 사랑 발전소와 같이 자꾸 나누어 준다면 얼마든지 보급해 주겠다.' 그래서 ‘이거 전부 다 없어지면 내가 또 가져오고 싶은데 하나님의 사랑 파이프에 나를 연결하면 어때요?'할 때 ‘그것도 하려면 하라.'한다는 것입니다. (116-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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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하나님은 제일 가깝게 계신 분

 

진리 중의 최고의 진리가 무엇이냐? 그것은 부모요, 부부요, 자녀입니다. 그 이상은 없습니다. 그러면 진리의 중심은 뭐냐? 사랑입니다. 이러한 원칙을 중심삼고 볼 때, 최고의 진리의 중심은 무엇이냐? 하나님은 진리의 본체요, 선의 본체요, 사랑의 본체요, 생명의 본체라고 하는데 그것이 무슨 말입니까? 다 같은 말입니다. 진리가 성립되려면 사랑과 생명이 없이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핵심인 생명의 본체, 사랑의 본체, 진리의 본체는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우리 인간의 아버지인 동시에 어머니입니다. 핵심은 부모입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은 간단한 분이 되십니다. (21-178)

 

하나님은 흰 수염이 났을 것입니다. 그게 어울립니다. 그 하나님이 수염을 쓱 만지는데 아들이 ‘나 긴 수염이 좋아요.'하게 되면 그 수염이 길어질 것이고, ‘짧은 수염이 좋아요.'하면 짧은 수염이 될 것입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니까 하나님의 얼굴은 남자를 대할 때는 우락부락하게 보이고, 남성격을 좋아하는 아담에게는 남성같이 보이고 해와 같은 여자에게는 여성이 좋아할 수 있는 모습을 보이고 그랬을 것입니다. (110-276)

 

하나님은 천지창조 이전부터 있었겠어요, 없었겠어요? 그렇다면 하나님 나이가 몇 살일까요? 그래요. 70밖에 모르는 사람은 70이라고 해도 괜찮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허허, 나 70이다.' 그럽니다. 다섯밖에 모르는 사람이 ‘하나님 몇 살이오?' 하면 하나님도 ‘허허, 다섯 살이다.' 그런다는 것입니다. 그 이상 모르니까요.

수가 아무리 많더라도 그 수로 헤아림을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수 이상의 자리에 있습니다. 그거 기분 좋지요? 우리 하나님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173-239)

 

하나님도 농을 참 좋아합니다. 유머를 좋아합니다. 유머의 대왕님이 누구냐 하게 될 때, 그게 누구겠어요? 하나님입니다. 전지전능하니까 유머도 잘 하십니다. 웃을 때도 떼굴떼굴 구르며 웃고, 또 떼굴떼굴 구르며 웃고, 틀어지게 웃고 나동그라지게 웃게 만들 수 있는 대왕님이 누구시라구요? 하나님입니다. 그런 대왕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171-138)

 

하나님은 외적으로 남성을 닮았으면 내적으로는 여성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강하고 전지전능하기도 하지만, 석가모니의 웃는 웃음에 꽃을 수놓을 수 있는 자비의 마음도 있다는 것입니다. 여자 중의 여자 같은 마음도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양면이 다 사는 것입니다. (206-43)

 

하나님이 우주의 대주재이고 전지전능하셔서 갖지 않은 것이 없는 능력이 많으신 분이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사랑의 인연을 가지고 효자의 자리에 선 아들이 물어보지 않고 가슴을 쓱 헤친다고 해서 ‘에이! 야야! 너 언제 봤다고 그러는 거야?' 그러겠어요? 언제 봤느냐고 말하더라도 모른 척하고 자꾸 헤쳐 가지고 옛날에 자기 아버지 젖 만지듯이 이렇게…. ‘나 옛날에 우리 아버지 젖 만지듯이 만지고 싶어서 그래요.'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기분 나빠 하겠어요?

아버지가 참 행복해 할 것입니다. 점점 크면 자기 무릎 앞을 떠나 담 넘어가고, 강 건너가고, 산 넘어 가려고 하는데 넘어갔던 자식이 담을 넘고, 문턱을 넘고, 옷을 넘어 옛날같이 자기 젖 만지려 할 때, 아버지가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곧 죽을 할아버지라도 ‘어서 만져라, 어서!' 기분이 좋아 가지고 그럴 것입니다. (169-45)

 

하나님은 창조주인데 보탤 게 어디 있고, 끌어당길 게 어디 있어요? 크려면 흡수해 가지고 끌어당기든가 누가 보태 주든가 해야 됩니다. 자기가 흡수하든가 제3의 존재가 갖다 보태 주든가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자체에 있어 붙일 것도 없고 끌어당길 것도 없는데 자체가 어떻게 클 수 있는 개념을 세우느냐 겁니다. 이거 중요한 문제입니다. 내가 그걸 얘기하면 여러분이 함부로 얘기해 가지고 곤란하겠기 때문에 얘기를 안 한 거지, 연구해 보세요. 숙제를 내 주니까 연구해 보라구요. 논문들 써 봐요, 내가 점수 매겨 줄게. (218-227)

 

본래 절대자 하나님은 어떻게 시작됐겠어요? 왕창 한꺼번에 후닥닥 뛰쳐나와 태어났겠어요? 그거 궁금하지 않아요? 그런 말 하면 기성교인들은 ‘우우-. 창조주는 성스러운 분인데 그 모독도 이만저만한 모독이 아니다.' 수작 그만두라구! 하나님이 생겨났겠나, 그냥 그대로 있었겠나? 궁금하지 않아? 그 문제를 대하려면 논리적 배경을 갖춰야 됩니다.

윤박사? 어떻게 생겨났겠어? 물리학 박사님이 그것 알아야 되잖아? 박사님이 그렇게 얼굴 가리면 창피하잖아? 통일교인도 할 수 없이 ‘자연히 계신다?'하겠지만,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발전해 나와야 됩니다. 그렇게 얘기해야 맞는 것입니다. (218-227)

 

조화무쌍한 힘을 가진 그것이 무엇이겠느냐? 하나님도 연구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격적인 신으로서 사람과 같다면, 전지전능한 그분도 그것을 대할 때 그 속에 가셔서 안식의 잠을 자고 싶어 하십니다. 하나님이 언제나 눈을 바로 뜨고 ‘이 멍청한 자식아, 밤낮 쉬지 말고 탕감복귀해.' 이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이치가 그렇잖아요? 숨쉬는 이치와 마찬가지입니다. 숨을 내쉬면 들이쉬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일했으면 쉬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일하는 것도 전부 다 쉬는 기쁨을 느끼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 모든 것이 상대적 수수관계의 인연으로 되어 있습니다. (164-67)

 

그러면 하나님이 계시다 할 때, 그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분이냐? 전지전능한 분, 무소부재한 분, 그것도 좋아요.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하고 능치 못함이 없으신 분….

그러나 아무리 능치 못함이 없는 힘을 갖고 있고, 아무리 모든 것에 무불능통한 이런 입장에 섰다 하더라도 자기만을 위하라고 하는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되겠어요? 천이면 천, 만이면 만 수많은 인류 아마 수천억이 될 텐데, 그 인류들이 모여 사는 그런 영계가 있다면 영계에서 하나님이 ‘아, 나는 전지전능하고, 절대적인 존재이니 너희들은 나를 절대적으로 위해야 된다.'이렇게 전부 다 하나님만을 위해야 되는 입장에 섰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우리 인간의 양심의 본질로 볼 때, 그걸 영원히 환영할 수 없습니다. 그건 반드시 상충됩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어느 때든 안 상충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138-70)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상대는 우리 인간밖에 없습니다. 피조물 가운데 하나님 자신이 또 다른 하나님을 만들 수 없습니다. 왜 그래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니 그 하나님과 똑같은 또 하나의 하나님을 만들어 놓을 것이다, 그것도 가능하다고 보지만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놓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똑같은 하나님이 밥을 먹을 때 같이 밥 먹고, 손질하게 되면 같이 손질하고, 또 일어서게 되면 같이 일어서고 따라다니면서 말입니다,

하나님이 앉게 되면 같이 앉고 이렇게 억천만 년 똑같이 행동하게 되면 살아가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하루도 안 가서 눈이 뒤집어질 것입니다. 또, 말을 어떻게 해요? 말을 하게 되면 며칠이나 말할 것 같아요? 사흘이나 가겠나? ‘저것, 저, 똑같잖아! 죽겠다.'고 할 것입니다. (141-9)

 

종교의 중심은 뭐냐? 신(神)입니다. 하나님입니다. 물론 신에 대한 이름은 많습니다. 그렇지만 이름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신은 둘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근원은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의 신입니다. 하나의 신을 두고 말하게 될 때 각 나라의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신을 표시하는 명사는 달리 나타나지만 그 본체(本體)는 하나인 것입니다. (210-197)

 

하늘과 땅 자체도 스스로 있고 싶어 있게 된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있게 한 동기와 근원을 통해, 어떠한 힘의 원천에 입각하여 생겨났다는 걸 생각하게 될 때, 여기에서도 더 한층 올라가 반드시 중심적인 주체를 갖추어 가지고 하늘땅을 움직이든가, 혹은 여기에 창조를 하든가 하는 힘의 작용체, 근본의 작용체가 계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그분을 우리는 하나님이라고 하는데, 민족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다고 다르게 표현하는 그 호칭이 문제가 아닙니다. 어차피 이 우주에는 중심이 있어야 됩니다. 그 중심은 전체 이 존재세계 앞에서, 존재가 작용하고 이동하더라도 그 이동하는 데에 따라 이동하지 않고, 이 움직이는 상대적인 세계의 중심에서 억천만 년 움직이지 아니하는 중심적인 본체가 있지 아니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154-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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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법도 안에서의 전지전능이다

 

  ① 원칙적 기반 위에서 전지전능하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게 된 동기가 뭐냐? 근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돈이 필요 없습니다. 돈 때문도 아닙니다. 지식 때문도 아니며 알고 싶어서 만든 것도 아닙니다. 무슨 권력 때문도 아닙니다.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한 그분은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지혜의 왕이고 능력의 왕이고 황금의 왕입니다. 다이아몬드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에게는 다이아몬드가 필요 없습니다. 언제나 있는데 그것이 필요합니까? 없어야 필요한 것입니다. 또 지식이라는 것 역시 이 우주의 모든 원리원칙을 중심삼고 운동하고 작동하는 하나의 구성체를 전부 컨트롤 할 수 있는 법리, 법도를 만드신 그 지식에 비하면 오늘날 과학자들이 아무리 연구해 봤자 자연계의 법칙 하나 찾아서 그것 가지고 박사 됐다고 야단하고 큰소리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술도 그렇습니다. 예술이라는 것이 딴 데 있는 게 아니고 다 자연에서 배워 온 것입니다. 전부 자연에서 배워 온 것이지, 자연에 없는 것은 없습니다. (182-101)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인데 힘이 뭐 필요해요? 우주를 움직일 수 있는 주체이신데, 안 그래요? 힘의 대왕이시니까 힘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역사에 제아무리 영웅 호걸이 잘났다 하더라도, 역사에 있어서 대국들을 치리하던 모든 군왕, 제왕들이 흘러갔는데, 그들은 다 하나님의 권위 아래에서 춤추다 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이 필요로 하는 돈도 지식도 필요없습니다. (176-133)

 

하나님 자신은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무소부재하십니다. 그에게는 모르는 것이 없고, 능치 않음이 없습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갖춘 주체로서 절대적인 자리에 계신 하나님에게 있어서 무엇이 필요하겠느냐? 하나님이 절대적인 주체라고 하더라도 주체 자체가 주체가 되는 동시에 상대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어야 됩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사람에게는 동쪽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동쪽이 있으면 서쪽이 필요하고 동서가 있으면 남북이 필요하고 남북이 있으면 전후 상하가 필요해 가지고 하나의 구형을 이루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는 구형을 표준으로 해서 움직입니다. (201-7)

 

저 별나라에는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다이아몬드 별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우주를 지었다면 다이아몬드 별 하나만 만들어 놨겠어요? (49-255)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는 게 뭐예요? 학자, 유명한 학자? 유명한 학자도 별거 없습니다. 자기가 무엇을 연구하고 뭐 어떻다 해도 하나님이 만든 모든 자연계의 어떤 공식이라든가 원칙을 발표했을 뿐이지 그것 자체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학자도 안 좋아합니다. 그 다음에 대통령? 레이건 미국 대통령을 하나님이 좋아하겠어요? 세계 대통령? 우주 대통령 되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전지전능하신 절대자이신데 뭐가 필요해요? 권력도 하나님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다음에는 뭐예요? 돈이요? 말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141-230)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성이 나서 한번 이 땅을 치시면 옥살박살 다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대통령이고 세계의 잘났다는 사람들도 한번 소리치면 국물도 없이 다 흘러가 버릴 것입니다. 그분에게 권력이 필요해요? 하나님 앞에는 권력이 필요 없습니다. 그거 다 졸개새끼들이 좋아하는 것입니다. 누가 좋아하느냐 하면 악마가 좋아합니다. (210-7)

 

하나님이 왜 천지를 창조했을까요? ‘힘을 자랑하느라고, 전지전능성을 자랑하기 위해서 한번 만들어 봤지!' 하면 그게 멋져요? 그럴 때 힘에 의해 생겨난 물건들이 ‘하나님 고맙소. 힘으로 쳐갈겨 만들어 줘서!' 이러면서 고맙다고 하겠어요? 하나님이 지혜가 많아서 너를 만들었지` 할 때 기분이 좋아요? 능력이 많아서 너를 이렇게 만들었지` 할 때, 기분이 좋아요? 능력이나 지혜로 만들었으면 내게 기쁨이 뭐고 무슨 상관이 있어? 그게 하나님의 능력이지 내 능력이야? 하나님의 지혜지 내 지혜야? 나를 보면 무력하기 짝이 없는 나인데….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175-143)

 

오늘날 기독교에서 뭐 ‘하나님 아버지, 전지전능하신 아버지' 하는데, 전지전능한 하나님도 원칙적 기반 위에서 전지전능이지, 무원칙적 기반 위에서 전지전능이 아닙니다. 마음대로 하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법을 세워 놓았으면, 영원하신 분이 제정한 법은 영원한 것입니다. 자기가 세워 놓은 것을 마음대로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에 순응하고 넘어가려는 그 하나님의 권위, 그게 놀라운 것입니다. 공의를 세우는 데 있어서는, 다 천리의 원칙에 부합될 수 있는 공법을 세우는 데 있어서는, 절대 하나님이 먼저 밟고 넘어간 후에 만민이 따라가게 되어 있고, 우주가 따라가게 되어 있지, 그것을 제2로 돌릴 수 없습니다. 그러한 인간 창조의 이상적 기준이 있습니다. (162-172)

 

하나님 혼자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기성교회 목사님들이 생각하기를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창조의 능력을 가진 하나님이 언제라도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이럴지도 모르지만 천만에요. 천지의 모든 존재물들은 법칙, 대원칙에 의해서 작용합니다. 제아무리 하나님이라도 이 원칙을 파괴하고 행동할 수는 없습니다. 이 나라의 대통령이라도 헌법을 위주하여 제정한 모든 법, 입법을 통해 제정한 법을 중요시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 있기 때문에 지금 야단 아니예요? (166-94)

 

이렇게 말하면 좀 이상하지만 하나님이 사랑을 하고 싶으면 만들면 되지 왜 사랑을 못 만들었느냐? 그건 마음대로 만들었다가는 하나님이 설 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안 만드니까, 그건 못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아이구, 하나님은 전지전능한데 못 만들다니….' 그러면 이원론이나 다신론으로 결론이 떨어질 텐데…. 하지만 의심하면 그렇습니다. (173-190)

 

요즘 사람들이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말하기를 하나님은 절대적이요,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고, 유일무이하시고, 그 다음에 영원불변하다고 하는데, 절대적이어서 뭘 하는 거예요? 유일해서 뭘 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유일한 것과 우리가 무슨 관계가 있어요? 큰 문제입니다. 전지전능하면 뭘 해요?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영원불변하면 뭘 해요? 하나님 자신에게는 좋지만 우리 인간들에게 하등의 관계가 없다면 그건 헛된 것입니다. 필요없는 것입니다. 맹목적인 신앙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전부 가려 주어야 됩니다. (223-249)

 

하나님은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전지전능하시고, 전권자이시고, 무소부재합니다. 그게 나와 무슨 관계가 있어요? 나와 무슨 관계가 있냐는 것입니다. ‘아, 전권이 있으니 나를 지배하기에 좋겠구만, 무소부재하니 어디서든지 나를 감찰하기에 좋겠구만, 모르는 것이 없으니 나를 다 세밀히 분석하고 꼼짝못하게 만들겠구만.' 하나님이 나를 전지전능으로 지배만 하신다면 좋을 거 있어요? (130-209)

 

하나님은 천지를 무엇으로 주관하느냐? 법으로 주관하는데, 그 법도 사랑으로 치리하는 법입니다. 그리고 치리의 방향을 후원하기 위해 우주의 법도 존속합니다. 하나님이 인간 창조를 한 이유는 사랑이 그리워서입니다. 혼자 가만히 있으면 될 텐데 무엇 때문에? 자극적이고 충동적인 사랑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12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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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사랑만이 절대 기준이다

 

하나님이 한 가지 꼼짝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지요? 전지전능하시지만 한가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 같아 보여요? 금을 못 만들겠어요, 다이아몬드를 못 만들겠어요? 아, 힘이 없나? 전지전능하신 그 분이 한 가지 마음대로 못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뭐예요? 사랑입니다, 사랑. 선생님 마음에도 사랑이 있겠어요? 있다고 봐요? 여러분의 마음에도 사랑이 있어요? 있기는 있습니다. 있기는 있는데 자기 혼자 ‘내 사랑, 나혼자 내 사랑, 내 사랑!' 이러고 있으면 미친놈이 됩니다. (142-263)

 

하나님 혼자 사랑을 이룰 수 있어요? 전지전능하시고 유일무이하신 하나님 혼자서 ‘아이고, 기분 좋구나!`' 그러겠어요? 그러면 하나님도 미쳤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레버런 문도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것을 갖고 있다고 해서 혼자서 ‘아이구 좋아라! 아이구, 내 사랑이야!' 그러면 저거 미친 녀석이라고 그러잖아요?

그렇지만 상대되는 종이 짜박지 하나라도, 이런 손수건을 중심삼고라도 ‘사랑하는 그대 손수건!' 이러면 누가 욕을 해요? 우주를 대신하여 등장할 수 있는 상대적 가치와 권위가 사랑의 세계에서만 가능합니다. (142-9)

 

아무리 절대자 하나님이라 해도 혼자서는 사랑을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반드시 상대적 관계에서만 찾아지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전지전능하신 분이라 하더라도 사랑만은 하나님 혼자 소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랑의 소성을 가지고 있지만 사랑의 자극과 사랑의 신호는 상대를 통해서만이 재현되는 것이지 자체만으로써는 현현할 수 없습니다. 이게 사랑입니다. 사랑의 힘입니다. (138-141)

 

과부 홀아비를 불쌍하다고 하는데 왜 불쌍하다고 해요? 사랑이 그 속에 있지만 발동할 무언가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한 하나님이라 해도 상대가 없을 때는 사랑이 작용을 하지 않습니다. 천주를 지으신 하나님이 누구를 중심삼고 상대하고 싶어 하느냐? 아담과 해와를 중심삼고 사랑의 작용을 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130-17)

 

하나님이 사랑을 좋아하는데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는 사랑이 무슨 사랑이냐? 참사랑입니다. 그런데 참사랑이란, 어떤 것이 참사랑이에요? 참사랑이란 사랑의 뿌리를 어디에 두고 얘기하느냐? 그 뿌리를 하나님에게 두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거 이상한 말이지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참사랑의 주인공인데도 불구하고 그 사랑의 뿌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람에게 뿌리를 심겠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177-232)

 

하나님이 천지를 누구 때문에 창조했느냐? 하나님 자신 때문에 했느냐, 상대적인 창조물 때문에 했느냐? 하나님은 물론 자기를 위해 지었다고 볼 수 있지만 상대를 중요시하는 데 모든 창조의 기준을 두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 상대의 주체가 누구냐 하면 인간입니다. 인간을 중심삼고, 모든 인간의 행복을 중심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자신이야 뭐 전지전능하신 분이 아닙니까? (109-263)

 

하나님은 절대적이요, 또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한 하나님인데, 그 하나님이 사랑까지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느냐? 아닙니다. 하나님도 사랑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뭐예요? 하나님이 전지전능 못하지 않느냐? ‘하나님, 당신은 전능하지 못하지 않소?'하면 ‘나는 전능하기는 하지만 사랑에는 전능하지 못하다.' 하십니다. 하나님이 왜 그래요? (98-31)

 

하나님 혼자서는 하나님 노릇 못 합니다. 그게 무슨 재미예요? 먹을 것이 걱정이에요? 잘 것이 걱정이에요? 입을 것이 걱정이에요? 뭐 든지 마음대로 공급받을 수 있는데 비행기를 타고 공중을 돈댔자 한 시간 돌고 나면 재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전지전능한 하나님이고 아무리 잘났다고 뻐기는 하나님이라도 재미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별 수 없습니다. 자기가 노력해서 귀하다고 하는 것을 창조해 두고 가 보는 재미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161-109)

 

하나님이 무엇이 그리워서 창조를 했느냐? 절대자인데 그가 무엇이 그리워서 창조를 했느냐 이겁니다. 그분은 황금도 필요하지 않고, 지식도 필요하지 않은 전지전능하신 분인데, 갖추지 않은 것이 없는 분인데, 무엇이 필요해서 사람을 지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창조의 근본 동기가 무엇이냐? 권력도 아니고 지식도 아니고 소유물도 아닙니다. 하나님에게 무엇이 없었겠느냐? 사랑의 기반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역시 혼자 있어 서는 사랑을 못 이루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지 창조의 동기, 알파적 기원도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149-142)

 

하나님에게 무슨 사랑이 필요하냐? 하나님도 사랑을 갖고 있지만 상대가 있어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 갖고 있어요? 그런데 혼자서 ‘아이고 좋다! 아이고 내 사랑이야!' 그러는게 좋아요? 사랑이라는 것은 상대가 나타나야 작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주의 원칙입니다. 아무리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도 사랑의 상대가 없게 될 때에는 고독한 하나님이요, 슬픈 하나님인 것입니다. (94-207)

 

하나님이 아무리 훌륭하시고, 아무리 절대자이시고 전지전능하신 분이라 하더라도 혼자서는 좋은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행복이라는 명사, 혹은 좋다라는 말은 혼자 있어 가지고 설정되는 말이 아닙니다. 반드시 상대적 관계를 갖춘 자리에 있어야 좋고 행복하다는 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도 혼자 가만히 있다고 한다면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노래를 잘 부르는 음악가가 혼자 노래를 불렀다고 합시다. 그게 행복해요?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주고 받는 것이 있어야 좋은 것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이 좋으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 혼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65-9)

 

하나님 자신을 존재하게 한 기원이 뭐냐? 무엇에서 생겼겠느냐? 하나님이 존재하기 위한 기원이 뭐냐? 전지전능이에요? 절대적 권한이에요? 절대적 권한이 있으면 뭘 해? 혼자 있는데. 혼자 있는 양반이 절대적 권한이 있어서 뭘 해? 아무도 없는데. 혼자 절대자 되어 있으면 지식이 있어서는 뭘 해? 하나님의 본질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게 사랑입니다. 위하라는 사랑이 아니고 위하려고 하는 사랑입니다. (218-227)

 

전지전능한 하나님도 참사랑 앞에는 꼼짝못합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참사랑의 자리에서는 꼼짝못합니다. 아내를 진짜 사랑한다 할 때는 아내 앞에 경배하고 싶겠어요, 안 하고 싶겠어요? 경배하고도 남습니다.

우주 가운데 어쩌다가 내가 이렇게 참으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아내가 어디서 왔노? 그거 없다고 생각할 때는 사지가 다 마비됩니다. 사실 없다고 생각할 때는 큰일납니다.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좋으니까 대통령인들 할 수 없이 궁둥이를 하늘로 하고 ‘임이여, 사랑하소서! 사랑하나이다!' 합니다. 그럴 때 뭐 조그마한 여자가 앉아서 볼 때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211-71)

 

하나님이 아무리 전지전능하다 하더라도 사랑을 혼자 마음대로 할 수는 없습니다. ‘전지전능하니까 사랑도 마음대로 할 수 있지.' 할 지 모르지만 그러면 문제가 큽니다. 사랑의 대상이 필요없다는 논리에 봉착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절대적인 중심존재로서 자기 스스로의 사랑, 하나님적 사랑에 대한 자극과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는 사랑의 상대가 필요한 것입니다. (208-231)

 

하나님 자신도 상대가 필요합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혼자는 못 이룹니다. 내가 사람도 없는데 혼자서 ‘아이고. 오늘 참 좋구만.' 이렇게 열렬히 말한다면 미쳤다고 할 것 아니예요?

그러나 상대가 있어서 열렬히 말해도 그것이 사리에 맞고 환경 여건에 부합되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도 혼자 ‘좋아, 좋아! 아이고, 내 사랑 좋아!' 하고 춤추면 그게 뭐예요? 이걸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혼자로는 안 됩니다. 상대를 세워 놓아야만 자극적인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141-78)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님과 상대가 되는 힘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며 절대적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영원불멸하고 자존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돈도 아니요, 지식도 아니요, 권력도 아닌 그 무엇을 바라고 계시겠느냐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절대 필요로 하는 것은 오직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인 동시에 하나님께도 절대 필요한 것으로 참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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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③ 하나님도 사랑 앞에는 절대복종이다

 

하나님도 사랑을 좋아하시니까 사랑에 미칠 수 있을까요? 천지를 지으신 전지전능하신 훌륭한 하나님이 사랑에 미칠 수 있어요? 호랑이 같은 할아버지가 집 안에서는 조그마한 할머니에게 꼼짝 못하는 적도 있습니다. 그건 무슨 코에 걸려서 그러느냐? 사랑의 코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사랑에는 위대한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사랑 앞에는 꼼짝을 못합니다. (137-81)

 

능력이 많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은 어떤 것을 좋아하시겠느냐? 하나님은 인간들보다 낫기 때문에 사랑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이 이론적으로 가장 타당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이 도대체 뭐냐? 영원 전부터 영원히 위하는 사랑을 갖고 계시고, 그러한 사랑을 하려고 하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90-82)

 

여러분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들이 되는 데는 무엇을 중심삼고 되고 싶으냐? 돈이에요? 하나님이 ‘내가 전지전능한 하나님인데, 큰 권력을 중심삼고 부자의 관계가 돼야지.' 그래요? 지식? 그건 다 곁다리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중심삼고, 그 사랑과 나는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랑만이 제일이다.' 그래야 됩니다. 이 사랑을 완전히 점령하는 날에는 천하에 아무리 권능이 많은 하나님이라도 ‘음, 음' 그런다는 것입니다. (69-174)

 

제 아무리 하나님이 전지전능하다 하더라도 남자와 여자는 사랑에 절대복종하라고 명령할 수 있어요? 나도 참사랑에는 절대복종하니 나처럼 너희들도 참사랑에 복종해라!' 이래야 아버지 되는 하나님으로서 당당한 하나님이 되지, 하나님은 지키지 않고 ‘야! 아들딸 너희들은 사랑에 절대 복종해라!' 하면 그게 말이 돼요?

참사랑의 자리에 있는 하나님이 독재자의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로 ‘내가 참사랑에 영원히 절대복종 하듯이 아들과 딸도 참사랑을 중심삼고 영원히 복종할지어다!' 할 때, 아들딸이 ‘아멘-!'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때는 ‘아버지는 제 맘대로 하고 우리만 복종하라고 해? 푸-!'한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벌어집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도 참사랑에는 절대복종한다는 논리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211-71)

 

아무리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도 참사랑 앞에는 절대복종하는 것입니다. 어때요? 그 말이 듣기 좋아요, 듣기 나빠요? 그 참사랑은 동쪽에서 들으면 좋고 서쪽에서 들으면 나쁠까요? 서쪽에서 들어도 좋고 남쪽에서 들어도 좋고 북쪽에서 들어도 좋고, 위에서 들어도 좋고 아래서 들어도 좋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사시장철 넘어가서, 청년시대와 노년시대를 넘어서 참사랑은 영원히 듣기에 나쁘지 않다는 것입니다. (211-71)

 

절대적인 힘을 주장하는 하나님도 사랑이 정착할 수 있는 자리, 사랑이 설 수 있는 자리를 찾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중심삼고 절대 좋아하는 것입니다. 절대 좋아하는데 얼마만큼 좋아하느냐? 절대적 전지전능 무소부재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좋아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버리더라도 사랑을 중심삼고 절대 복종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말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아버지라고 그러지요? 그러면 아버지 자신이 사랑을 중심삼고 살지 않으면서 아들딸에게 ‘얘들아, 너희들은 사랑에 절대 복종하고 살아라.' 하는 말을 할 수 있어요? 근원이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자신도 사랑에 절대 복종하며 살 때 ‘내가 이렇게 사니 너희들도 이렇게 살아야 된다.' 하는 교육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207-216)

 

절대적인 하나님도 ‘아이고 내가 절대적이고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하고 모든 걸 다 가졌지만 나도 절대적인 그 무엇에 순종하고 살면 좋겠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위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이기 때문에 나를 위하라고 하는 사랑을 하지 않습니다. 위하라는 사랑을 해서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201-110)

 

하나님이 전지전능하다고 했으니까 전지성을 중심삼고? 지식을 중심삼고? 아닙니다. 그러면 뭣 중심삼고? 힘 가지고? 힘 가지고도 안됩니다. 아무리 봄이 힘이 있다고 하더라도 꽃필 수 있는 환경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아무리 여름이 힘이 있다 하더라도 무성하게 할 수 있는 그런 시기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가을을 맞게 되면 그게 전부 시들해지는 것입니다. 가을이 아무리 결실의 시기라 하더라도 겨울을 극복 못하는 것입니다. 이걸 극복하기 위해서는 태양을 언제나 중심에 모시고 있어야 합니다.

그곳에서 춘하추동을 극복할 수 있지, 그 외에는 못합니다. 그 말이 뭐냐 하면 아들딸, 누나, 동생, 형제끼리 싸우고 있는 판국에 부모의 전통 되시는 하나님이 거기에 들어가 중심이 되어서 ‘이렇게 해라!' 할 때, 통일이 안 되겠어요? 통일 안된다고 하는 녀석은 미친 녀석이지. (221-175)

 

오늘날 현대신학이 망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 뭐냐 하면 ‘하나님은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니 그분은 사랑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 혼자 마음대로 사랑할 수 있어요, 우리 사모님 없이? 할 수 있어요? 할 수 있다는 녀석은 미친 녀석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혼자 사랑할 수 있어요? (209-64)

 

하나님이 전지전능한데 하나님과 같이 전지전능한 것이 또 있어서 그 둘이 사랑하게 되면, 그 세계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게 밸런스가 안 맞고 도리어 도망가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 둘 가운데 걸려서 가지도 못하고 오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옆으로 빠져 버립니다. 약한 것은 강한 것에게로 가고 강한 것은 약한 것에게로 들어가야 딱 가운데 끼어서 꼼짝못하는 것입니다. 약한 것은 강한 것을, 강한 것은 약한 것을 원합니다.

여자 같은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는 죽어 버려라 이겁니다. 여자 같은 남자를 사랑하겠다는 여자는 죽어 버려도 된다는 것입니다. 여자가 여자 손을 만지면 기분 좋아요? 여자끼리 손을 잡으면 기분 좋아요? 부드러운 여자 손이 부드러운 손을 잡으면 그거 얼마나 기분 나빠요? 두 부드러운 손의 느낌이 얼마나 기분 나빠요? 그건 죽기보다 더 싫습니다. 그러니까 죽어버리라는 것입니다. (167-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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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사랑으로 무소부재하신다

 

  ① 사랑만이 경계를 넘나든다

 

하나님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 속에도 있습니다. 하늘 땅 어디를 가든지 거기에 하나님의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계시지 않은 곳이 없다, 즉 무소부재(無所不在)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 속에 있기를 원할진대, 여러분이 바라보는 물건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이 있으니 그 물건을 내것으로, 천지의 모든 존재물을 내것으로 품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최고의 도(道)를 통한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의 마음에 소유된 사람입니다.

나는 새 한 마리나 향기를 풍기는 꽃 한 포기를 보고도 마음으로 영원을 노래할 수 있는 경지에 들어간 마음을 가진 사람은 만물 가운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에 있는 것입니다. (8-167)

 

그러면 하나님의 편재성(遍在性)을 어떻게 느끼느냐? 공기를 하나님의 입김과 같이 느껴라. 태풍이 불어오거든 그것을 하나님이 이 세계를 위해서 수난길을 극복해 나오시면서 흘리신 땀과 같이 느끼라는 것입니다. 태양를 바라보거든 그 태양이 이 우주 전체의 생명의 요인을 상징하였음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태양에게 배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는데 하나의 교본이요 교재로 전개시킨 것, 사랑하는 아들딸을 기쁘게 하기 위한 교재로 세워 놓은 것이 자연입니다. 나뭇잎을 보고 자기 아들딸같이 여기고 혼자 중얼거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성인에 가까운 것입니다. (59-102)

 

하나님께서 무소부재하시니 우리도 무소부재한 것을 닮고 싶고,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시니 우리도 전지전능하고 싶고, 하나님께서 유일무이하시니 우리도 유일무이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닮았습니다. 나 자신이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에 나를 하나님 닮게 만들고 싶은 것입니다. 나 자신이 온 천하를 다스리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두 다 비슷비슷하게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26-147)

 

사랑을 통해 체휼적인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슬퍼하실 때에 내가 슬픔을 느끼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때 자기도 모르게 기뻐지는 것입니다. 효자는 천만리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부모의 사랑은 언제나 그 효자의 곁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편재성에 있어 하나님은 어디에 있느냐? 지식적인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극과 극을 넘어서 편재를 타당하게, 가능하게 하는 것이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입니다. 사랑을 통하는 그 길에 부모의 사랑은 무소부재(無所不在)입니다. 어디나 있지 않은 데가 없습니다. 그것은 사랑만이 가능합니다. 사랑만이 그 아들을 완전히 지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전능한 권한은 거기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59-65)

 

사랑에는 위대한 속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 불변적인 참사랑과 일치된 입장에 서게 되면 하나님이 계신 곳에 내가 가세할 수 있고, 언제든지 동거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눈을 감지 않고도 하나님을 보게 되고, 하나님의 비통한 심정을 체휼한 자는 길을 가다가도 멈추고 통곡을 하는 그런 체휼적 세계가 있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상에서도 어머니의 사랑은 만일 자식이 외지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하게 되면 느낌으로 알게 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자다가도 ‘아! 아무개야' 하고 소리치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201-339)

 

그래 동맥(動脈)이 위대하냐, 정맥(靜脈)이 위대하냐? 어떤 게 위대해요? 같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위대하냐? 사람이 위대하냐? 그것 역시 같습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보면 하나님이 동맥적이라면 우리 인간은 정맥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대등할 수 있는 그런 특권을 지닌 인간의 가치가 있습니다.

‘천상천하(天上天下)에 유아독존(唯我獨尊)이요,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하고, 나를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그게 무엇을 중심삼고 그러냐? 사랑을 중심삼고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말이 이해된다는 것입니다. (109-118)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나님은 욕심장이 중에도 대왕 욕심장이입니다. 계시지 않은 곳이 없는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입니다. 계시지 않는 곳이 없으니 얼마나 욕심장이에요? 욕심꾸러기라고 하거나 뭐 욕심장이라고 해서는 안 되겠지만, 하여튼 욕심이 많으시다는 말입니다. (121-62)

 

하나님은 절대 복종할 수 있는 길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절대 주관하려고 하는 그런 절대, 독재적인 성격을 가진 하나님이 절대 복종할 수 없게 될 때에는 높은 것은 주관할 수 있으되 낮은 것은 주관할 수 없습니다. 무소부재라는 말 자체가 모순된 말이 됩니다. 하나님도 우리 닮았기 때문에…. 어머니 아버지가 자기 아들딸 닮았지요. 그렇잖아요?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합니다. 하나님도 절대 복종하면서 살고 싶어 합니다. 없다 할 때는 하나님이 그 얼마나 고독하겠어요? (192-23)

 

자기가 그린 작품을 가지고 밤이나 낮이나 취해 바라 보고 눈물을 흘리며 감탄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을 그린 화가가 기분 나빠하겠어요? 그런 사람이 있으면 데리고 와서 안방에 모시고 ‘왜 그랬소?' 하면서, 사연을 얘기하게 할 것이 아니예요? ‘아이고 좋아. 아이고 그리워, 아이고 같이 있고 싶어.' 한다고 해서 미쳤다고 하겠어요? 여러분이 하나님을 몰라도, 하나님이 만우주에 꽉 차 있는 편재성을 지식적인 주체로 계시기보다는 사랑으로 계시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사랑의 동감권(同感圈)을 각 분야에서 체휼할 수 있느냐? 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재인식하고 재발견해 보라는 것입니다. (5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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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우주에는 사랑이 없는 곳이 없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하나님인데, 왜 절대적이냐? 사랑에 절대 복종하기 때문입니다. 기분 좋아요. 나빠요? 또 하나님은 무소부재입니다, 무소부재.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223-208)

 

하나님의 사랑은 우주를 품고도 남습니다. 중심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큰 기반을 포용하는 사랑의 중심자가 하나님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움직인다고 할 경우에는 작은 것도 전부 따라서 움직여야 됩니다. 하나의 큰 원 안에 전부 들어가 있지요? 그래서 하나님이 전세계, 전우주를 커버한다고 해도 이론적인 말이 되는 것입니다. (205-27)

 

하나님이 없게 될 때는 우주는 다 빈 것입니다. 빈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있게 된다면 우주는 꽉 찬 것입니다. 왜?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혼자 있더라도 하나님이 있는 줄 알게 될 때는 우주는 꽉 찬 것입니다. 어디나 계신다는 말입니다. 어디나 계신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 가운데서는 무소부재의 감동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을 모르게 될 때는 모든 것이 빈 것입니다.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겁니다. (91-292)

 

사랑의 주체가 없으면 아무도 없는 것처럼 느낍니다. 그러나 사랑의 주체가 있으면 모든 것이 찹니다. 사랑이 꽉차야 모든 것이 차기 때문에 무한히 줄 수 있고, 참되게 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주고받는 것은 이상의 실현이요, 이상의 번식입니다. 사랑의 세계는 거리를 초월합니다. 사랑이 얼마나 빠르냐 하면 빛도 못 따라갑니다. 제일 빠른 것이 사랑입니다. 제일 밝은 것도 사랑입니다. 제일 완전한 것도 사랑입니다. 제일 완전히 차는 것도 사랑입니다.

사랑이란 뭐냐? 돌아갈 수 있는 윤활작용(潤滑作用)과 궤도작용를 해주는 것입니다. 사랑 없이는 윤활역할(軌道役割)이 안 됩니다. 자동차도 움직이게 하려면 기름을 쳐야 합니다. 운동하는데는 윤활작용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운동하려면 윤활작용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최고의 기쁨의 윤활작용을 하는 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뿌리가 무소부재한 하나님이기 때문에 없어지지 않습니다.

사랑은 신경과 같습니다. 우리가 머리카락 하나를 당기면 몸 전체가 끌려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만 당기면 우주가 끌려오고, 사랑만 움직이면 우주가 다 화해 돌아가게 됩니다.

이 우주에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채워 줄 수 있는 하나의 주체가 있을 때 그건 어떤 주체냐? 절대적인 하나의 중심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을 어떠한 마음의 자리에도 꽉꽉 채워 줄 절대자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무한한 절대자라야 됩니다. 오늘날 수십 억이 되는 인류의 마음을 다 채워 줘야 할 하나님의 그 사랑의 양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건 절대적이어야 됩니다.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라는 말이 그래서 필요합니다. 그 말은 하나님에게 필요한 단어다 이겁니다. (116-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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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기존 신관들의 문제점

 

  ① 기성신관은 이율배반적이다

 

종교의 가르침에 대한 반문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과연 있는가?', ‘하나님이 전지, 전능, 무소부재하고 지선(至善), 지미(至美)하고, 사랑이며, 심판의 주이며, 인류의 아버지 등으로 표현하지만 그렇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가만 있어도 좋을 하나님이 왜 우주를 창조하였는가?',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은 무엇일까?', ‘창조에는 방법이 있었을 것인데 그 방법은 무엇일까?', ‘절대선(絶對善)인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에 왜 약육강식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가?', ‘인간이 타락해서 죄의 세계가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완전한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이 왜 타락하게 되었는가?' 등이 그것입니다. (122-298)

 

하나님이 문제가 많습니다. 전지전능하다면서 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해요? 십자가의 도리가 아니면 구원할 수 없어요? 그거 어떻게 대답할 거예요? 전지전능하다면서 십자가상의 예수님을 구원할 수 없다면 그런 하나님은 잔인한 하나님입니다. 인간 앞에서 추방해야 할 하나님입니다. 믿긴 뭘 믿어요? (136-101)

 

하나님은 인간을 타락하게 해놓고 왜 슬퍼하는가 하는 근원을 파헤쳐서,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떻게 되어 있으며, 또 전지전능하시다는 하나님이 왜 이렇게 무능한 하나님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을 알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133-214)

 

지금까지 신학자들이나 영계를 통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사탄이 있는 줄은 알았지만, 전지전능한 하나님 앞에 반대하는 사탄을 왜 방어하지 못했느냐 하는 문제는 몰랐습니다. 이것이 영계를 통해 가지고도 문제입니다. 어느 때든지 하나님편으로 가려면 반드시 사탄이 방해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다방면에서, 일방이 아닌 팔방에서 반대하게 되는데, 그걸 왜 하나님이 간섭하지 못하고 제재하지 못하느냐? 이런 문제가 지금까지 수수께끼입니다. 영계를 통해도 그것만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133-86)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지금까지 수만 년 역사를 통해 인류를 이끌어 나왔는데 어찌하여 선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세계로 이끌어 가지 못하고, 종국에 와서는 이와 같이 낙망과 절망의 세계로 향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됐느냐?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신이 없다고 단정할 수 있는 내용도 되는 것입니다.

신이 없다면 우리 인간들이 바라는 이상이라든가 혹은 평화의 세계, 인간들이 추구해 나가는 유토피아적 내용이 미래에 가능한 것으로 인간들 앞에 맞아질 것이냐? 지금까지 오랜 역사노정을 통해서 생각하는 사람 혹는 무수한 철인들이 그와 같은 세계를 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미달해서 현재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될 때, 미래에 우리들에게 그런 희망의 세계를 가져다 준다고는 볼 수 없는 것입니다. (130-17)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왜 사탄을 그렇게 두는 걸까요? 하루 저녁에 모가지를 잘라서 처단해 버리면 될 것인데 왜 그냥 둘까요? 그거 왜 둬요? 그게 종교에 있어서 제일 난문제인데, 그게 간단한 내용이예요? (127-79)

 

지금 수많은 종교인들은 ‘하나님'하면 영광의 보좌에 앉아 계신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분이시다, 또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 분이시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무슨 고통이니 슬픔이니 그러한 개념과 상관없는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을 어떤 분이라고 하느냐 하면, 하나님 아버지다, 이렇게 부릅니다. 그리고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 모든 신자들은 죄악된 세상에서 회개를 해야 되고 신앙을 해야 된다고 합니다. 부자의 관계에 있는데 하나님과 인간이 이렇게 이율상반(二律相反)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23-150)

 

오늘날 기독교에서 ‘하나님은 거룩하고 전지전능하신 분으로서 공의의 심판주로 보좌에 앉아서 만민을 심판하는 심판장이다.'라고 하는데, 여러분, 재판장이 좋아요? 재판장을 10년 했다가는 병이 들어 죽습니다. 죽는다기보다 병이 들어 나가 자빠집니다. 병이 안 들면 그건 가짜들입니다. 남의 생명을 빼앗는 사형선고를 내리기도 했을텐데, 자기가 내린 판결이 절대적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논법이, 해설법이 여러 가지 방향이 있는데, 자기 판결에 의해 그 사람의 생사문제를 결정짓는 놀음을 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주의 공법에 비추어 보게 될 때 법이 절대적일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하는 사람은 10년 판사 하면 병이 나야 된다 이겁니다. (198-279)

 

자, 그러면 이 천지의 대주재 되는 하나님이 있다면 한번 물어 봐야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오늘날 기성교회에서는 보좌에 앉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심판주로 오셔서 나쁜 놈은 지옥 보내고 좋은 놈은 천국 보내고…. 그거 보고 좋아하는 하나님이라면 미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선악을 초월한 절대선의 자리에 계십니다. (194-9)

 

기성교회 목사들은 하나님은 보좌에 앉아 가지고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하다고 그러는데, 그거 무슨 재미예요? 보좌에, 왕좌에 몇만 년 그냥 앉아 있으면 궁둥이가 다 물러질 거 아니에요? 여러분, 앉아 있는 걸 좋아하거든 한 3일 동안만 앉아 있어 보라구요. 그래서 하나님은 뭘하고 있느냐? 기독교로 말하자면 하나님은 보좌에 앉아 영원히 영광 가운데…. 혼자 앉아 서 무슨 영광이예요? 영원 전부터 오늘날까지 한 자리에 앉아서 오 내 권력 좋구만. 내 이 전지전능하고 요사스러운…. 그거 뭐해요? 하나님도 사랑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논리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191-9)

 

하나님이 자기 마음대로 할 것 같으면 왜 지금까지 수만 년 역사, 인류역사를 말하게 되면 85만 년에서 150만 년까지 잡고 있는데, 그런 기나긴 장구한 세월 동안 왜 인간을 요꼴로 만들어 왔어요? 그렇다면 하나님이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는 말도 못하는 것입니다. 이거 다 허황한 논법입니다. 왜 못 하느냐 이겁니다. 왜 못 하느냐? 조건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162-172)

 

타락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될 것이냐? 오늘날 기성교회에서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고 거룩하신 분이고 우리 인간은 속되다고 하지만, 잘못 알았습니다. 저나라에 가 보라구요. 오늘날 세상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라고 자기들도 하면서…. 그 아버지라는 게 뭐예요? 거룩하고 상대할 수 없는 관계에서 아버지란 말이 벌어져요? 그건 벌써 처음부터 논리적인 모순입니다. 모순 투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문총재가 말하는 것은 사리에 닿습니다. (240-164)

 

내가 이런 얘기를 왜 하느냐? 하나님이 처음으로 인간을 아들딸로 지었는데, 그 아들딸이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노래하고 춤추는 그런 것을 봤겠어요, 못 봤겠어요? 인간이 타락해서 쫓겨났기 때문에 아직까지 그런 날을 갖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인 것을 기성교회 신자들은 모릅니다.

하나님이 영광 중에 있으면서 전지전능해서 무엇이든지 다 할 줄 아는데, 그런 하나님이라면 왜 수천 년 동안 이렇게 인간을 구원 못해 주느냐 이겁니다. 그걸 어떻게 답변할 거예요? 그것은 인간이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죄를 인간이 지었기 때문에 죄를 청산하는 것도 인간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226-292)

 

하나님이 절대 바라는 것이 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게 뭐예요?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바라는 게 뭐냐? 능력이에요? 오늘날 기성교회, 기성신학에서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공의(公義)의 심판주로 와서 선한 사람은 천국 보내고 악한 사람은 지옥 보낸다고 합니다. 그런 재판장이 좋아요? 세상에 재판장이 좋아요? 무슨 고약한 하나님이 돼 가지고 지옥으로 보내고 천국 보내게끔 만들었어요? 논리적으로 전부 부당한 처사라는 결론이 되는 것입니다. (211-71)

 

기성신학에서는 창조주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고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피조물은 속된 것이라는 논리를 들고 나옵니다. 이것은 우주 생성의 본성적 원리에 위배되는 논리입니다. 기독교의 전통적 주류 사상이 사랑이라 했는데 속된 죄인과 거룩한 하나님이 어떻게 하나될 수 있어요? 이론적 근거를 대라 이겁니다. 이론을 못 대면 허무한 것입니다. 가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게도 절대적인 하나님 자신이 절대 복종하고, 절대자인 하나님의 생명을 버리더라도 위하고 싶고 갖고 싶은 상대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204-57)

 

오늘날, 기성 신학자들이 말하기를 ‘신앙 전체를 우리는 비판해야 할 때다. 지금까지의 신관, 인생관에 대한 모든 것을 재검토할 때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지금까지의 신학사조는 피조물은 ‘거룩하신 창조주와 대등한 자리에 설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사랑은 어떻게 하느냐? 하나님 혼자서 사랑하겠느냐? 평화니 행복이니 하는 것은 뭐냐? 하나님 혼자 하겠느냐? 묻게 된다면 대답을 어떻게 할 거예요?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77-308)

 

기독교에서는 절대적 하나님만 믿으면 무엇이든지 된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재국가가 나왔고, 피를 흘린 것입니다. 사랑이란 논리를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제일이라고 하는 전제 아래서는 아무리 가 봤자 사랑의 하나님 꽁무니만 따라다녀야 될 것 아니예요? 사랑이란 것은 대등한 개념에서 시작되는 것인데, 그런 개념에서는 수평이 안 되고서 수직을 찾을 수 없습니다.

독재 역사가 나오고, 피 흘리는 역사가 기독교를 등에 업고 나옴도 하나님만을 절대시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 대신 칼을 든 것도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이다!'이러는 것입니다. 그러나 통일교회가 위대한 것은 그것을 넘어서서 하나님도 절대자지만, 절대자로서 절대 사랑 앞에 굴복할 수 있는 것을 논의한다는 사실을, 또 하나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염원이 있다는 사실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사랑에 절대 복종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겁니다. (219-127)

 

이 피조세계가 생겨나게 된 동기가 뭐냐? 하나님도 사랑이 필요해서 천지를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오늘날 기성신학의 신관(神觀)이 그래서 틀렸다는 겁니다. 절대적인 힘의 하나님, 힘만 가지면 다 된다는 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문화가 거쳐가는 데는 피를 흘려 왔습니다. 서구 문명이 기독교문화를 따라 발전해 왔지만 이제 기독교문화는 종말세계에 파탄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하는 것을 이런 논리에서 예측할 수 있는 것입니다. (209-23)

 

역사는 과학의 시대로 가고 있습니다. 모든 근원을 파악하고 종의 기원을 탐구해 가지고 근본을 추구하는 과학의 발전시대가 옴으로 말미암아 종교도 거기에 보조를 맞추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거기에 주체적인 관을 가지고 세계가 어떻고 창조의 내용이 어떻다는 것을 설명해 가지고 하나님을 입증할 수 있는 종교가 나와야 할 텐데 그런 종교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살아 있는 한 그런 종교의 내용을 준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211-132)

 

인간이 절대자에 의해서 창조되고 절대자의 사랑을 실천하도록 지음받았다면 인간의 창조에 동기와 목적이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그 동기와 목적이 밝혀지려면 절대자가 어떤 분인가 하는 문제, 즉 올바른 신관(神觀)이 우선 세워져야 합니다. 올바른 신관이 세워짐으로써 그분의 창조의 동기와 목적이 밝혀질 것이고, 따라서 평화를 위해 절대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이유도 명백해질 것입니다. (110-249)

 

절대적이며 영원하고, 유일하며 불변하신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러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견지에서 참된 사랑, 참된 이상, 참된 평화, 참된 행복의 기원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 자신으로 보는 신관, 하나님 자신으로 보는 인생관, 하나님 자신으로 보는 물질관, 이것을 확실하게 하는 데서부터 비로소 새로운 평화와 새로운 행복의 세계를 우리는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77-257)

 

종교분쟁의 근본원인도 역시 본체론의 애매성에 있습니다. 절대자는 오직 하나이며 둘이나 셋이 있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각 종교의 지도자들은 자신의 절대자만이 바른 신이며 그 외의 신은 참신이 아니라고 보고 있기 때문에 결국 종교마다 절대자가 있는 셈이 되어 절대자가 여럿이라는 배리(背理)가 성립됩니다.

따라서 모든 종교의 신은 상대적인 신에 불과하였다는 결론이 되어 각 종교를 통해 세워지기로 되었던 절대적 가치관, 즉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에 관한 이론은 상대적인 것에 머물고 있습니다. 즉 이때까지의 종교는 혼란을 수습할 수 있는 절대적 가치관을 세울 수 없다는 결론이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종교가 절대자에 대한 정확한 해명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필연적인 결과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122-298)

 

각 종교마다 그 교리가 성립되는 근거로서의 절대자가 있습니다. 유대교의 절대자는 여호와신이요, 기독교의 절대자는 갓(God), 즉 하나님이요, 회회교의 절대자는 알라신입니다. 유교나 불교는 절대자를 명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유교의 덕목의 근본인 ‘인(仁)'은 천명과 연결되기 때문에 ‘천(天)'이 유교의 절대자라고 볼 수 있으며, 불교에서는 제법(諸法)은 항상 변화하며  진리는 제법의 배후에 있는 ‘진여(眞如)'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하니 진여가 불교의 절대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122-298)

 

새로운 종교를 위한 본체론은 종래의 모든 절대자가 각각 별개의 신이 아니라 동일한 하나의 신임을 밝혀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그 신의 속성 일부를 파악한 것이 각 종교의 신관이었음과 그 신의 전모를 옳게 파악하여 모든 종교는 하나님으로부터 세워진 형제적 종교임을 밝힐 수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본체론은 하나님의 속성과 함께 창조의 동기와 창조의 목적과 법칙을 밝혀 그 목적과 법칙이 우주 만물의 운동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과 인간이 지켜야 할 규범도 결국 이 우주의 법칙, 즉 천도와 일치함을 해명해야 할 것입니다. (122-298)

 

통일교회 원리가 위대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창조성이 구체적이라는 것입니다. 창조가 어떻게 되었느냐 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어떻게 타락했느냐 하는 실질적인 논리가 있습니다. 그 다음엔 역사관이 있습니다. 역사과정에서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을 방치해 두지 않고 재창조하시기 위해 얼마나 수고하셨는가 하는 것이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목적의 세계에 도달한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일목요연하게 파헤쳤다는 것입니다. (208-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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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하나님과 창조역사

 

 

 1) 하나님의 창조 동기는 사랑

 

  ① 창조의 역사는 완전 투입

 

하나님의 천지창조는 생명의 접착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상을 동화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188-196)

 

과학자들은 우주가 힘으로 형성돼 있고, 이 힘에 의해 우주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전기는 힘이 먼저 있어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작용을 통해 전기가 생깁니다. 그리고 작용이 있기 전에 플러스와 마이너스, 즉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작용은 혼자서는 할 수 없으므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결국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있어야 작용을 하고, 그 작용을 통해 전기가 생깁니다. 마찬가지로 힘도 주체와 대상이 작용을 해야 생깁니다. 그러니 오늘날 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힘으로부터 우주가 발생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힘이 먼저가 아니라 작용이 먼저입니다.

사랑이 먼저냐, 생명이 먼저냐? 사랑이 먼저입니다. 지구가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나왔다고 생명이 제일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사랑이 제일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천지창조를 생명에서부터 했다고 하더라도 그 생명의 발원지(發源地), 동기는 사랑입니다. 생명이 생겨난 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왜 천지를 창조했느냐? 아무리 절대자라고 하더라도 혼자서는 기쁨을 느낄 수 없으며, 설령 기쁘다 하더라도 기쁨의 자극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창조를 했습니다. 절대자가 아무리 ‘나는 절대자다. 나는 사랑의 주인공이다. 생명의 주인공이다.'라고 한다 해도 절대자 혼자서는 사랑의 자극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요, 천지가 내 몸 속에 있다는 생명의 자극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38-152)

 

하나님이 자신만 생각했다면 천지를 창조 했겠어요? 창조는 힘의 투입을 말합니다. 예술가는 최고의 걸작품을 만드는 것이 소원입니다. 예술가는 걸작품을 만들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 투입합니다. 다 투입하는 데서만이 완전한 걸작품이 나옵니다. 더 이상 할 수 없다 했을 때 비로소 걸작품이 생겨납니다.

창조는 자체를 투입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힘을 투입해야 창조가 가능합니다. 힘을 투입하지 않고는 어떤 물건도 생겨나지 않습니다. 완전히 투입하는 데서 완전한 대상이 성립한다는 원칙을 두고 볼 때, 하나님은 주체로서 대상을 만들기 위해 완전히 투입했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상을 위해 있겠다고 운동을 시작한 것이 창조입니다.

창조한다는 것은 힘의 투입을 말합니다. 투입을 했는데, 얼마나 투입했느냐? 하나님이 말씀으로 지을 때 ‘이렇게 되어라. 저렇게 되어라.' 하고 장난식으로 창조한 것처럼 알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여기에는 참된 생명을 완전히 투입하고, 참된 사랑을 완전히 투입하고, 참된 이상을 완전히 투입했습니다. 우리도 정성 안 들이고 피와 살을 투입하지 않은 것은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하기 전과 창조하고 난 후가 다릅니다. 창조하기 전에는 자기를 생각했지만 창조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대상을 위했습니다. 내가 있는 것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를 위해서다, 아들딸을 위해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한다는 것은 자기의 본질을 투입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에너지를 투입했다는 것이고, 에너지를 투입했다는 것은 자기 본질의 감소를 말합니다. 대상세계 창조는 사랑으로 이루어졌는데, 하나님은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자기를 투입했습니다. 투입한 그것이 자기에게 열매 맺히게 한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열매 맺히게 했습니다. 투입함으로써 하나님이 소원(疎遠)함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만족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으로 지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침에 밥을 먹고도 힘든 노동을 하게 되면 배가 고픕니다. 그리고 빨리 피곤해집니다. 왜 그러냐? 힘을 투입하면 소모되기 때문입니다. 세상 만사에 손해 보아 가면서 좋아할 일이 없습니다. 반드시 플러스 되어야 좋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천지만물을 지은 것은 좋기 위해서 반드시 플러스 될 수 있는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플러스 될 수 있는 것을 언제 찾을 수 있느냐? 여기에 피조물의 완성이라는 표준이 있습니다. ‘이때까지 투입하면 그때부터 돌아온다.'는 것이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뭘 하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노력하여 그 한계점을 밀고 넘어가게 될 때 반드시 결과가 돌아옵니다. 이것이 우주의 법칙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을 지은 것은 하나님의 힘을 투입한 것입니다. 힘을 투입했습니다. 자기 자체를 소모했습니다. 그렇지만 투입할 수 있는 것을 완전히 투입해서 사람을 창조했으면 그 완성된 사람은 어디로 도망가는 것이 아닙니다. 완성되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에게로 돌아옵니다. 돌아오는 데 있어서 1백을 투입했는데 1백보다 적은 가치의 것으로 돌아오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의 가치를 더해서 돌아오는 것입니다.

우주가 어떻게 출발했느냐? 하나님을 두고 볼 때 전부가 위하는 데서부터, 투입하는 데서부터 출발한 것입니다. 자기를 소모한 데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를 소모해 가지고 상대를 만들어서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둘 다 소모하는데, 소모하고 얻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만 가지면 아무리 소모해도 좋다는 말입니다. 그러한 개념이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창조를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손해나는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투입하는 것은 손해인데, 하나님이 왜 그렇게 했겠어요? 사랑은 모든 것을 채우고도 남을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에, 소모시켜서 투입했지만 그 대신 사랑을 찾아오는 것입니다. 참사랑은 투입할수록 점점 작아지는 것이 아니고,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커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참사랑이 작아진다는 원리라면 하나님 자체가 투입해가지고 소모되는 것입니다. 반대가 된다는 것입니다. 참사랑은 투입하면 투입할수록 커가는 것입니다. (237-106)

 

사랑에는 창조능력이 있기 때문에 지치지 않습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지면, 아무리 투입해도 소모된 에너지 이상 언제나 보충할 수 있는 사랑의 힘이 있기 때문에 지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렵고 고통스럽더라도 싫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이 싫으면 어떻게 가겠어요? 사랑을 위하는 길에는 싫은 마음을 영원히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참사랑을 위하는 길에는 영원히 싫은 마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본질에는 원수의 개념이 없습니다. 악의 개념이 없다는 것입니다. 참사랑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237-106)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중심삼고 투입, 투입, 투입하라는 것입니다. 투입을 하면 돌고 돌게 됩니다. 공기를 예로 들면, 절대 저기압과 절대 고기압이 있다면 그 중간의 기압이 생깁니다. 누가 부르지 않아도 하늘이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백 퍼센트 이상 투입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항상 하늘이 채워주는 것입니다. 우주의 원칙이 그렇습니다. 완전히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데는 영원한 운동이 연결되기 때문에 그 기준에서 영생의 논리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영생, 영원한 생명, 그렇지 않으면 통일원칙을 어디에서 끄집어 낼 거예요? 위하게 되면 빙빙 돌지요? 빙빙 돌아서 어디로 가요? 점점 작아져서 올라갑니다. 빙글빙글 돌아 넓게 퍼지면 내려가지만, 이것은 점점 올라가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동적으로 아담과 해와의 어깨 위에 양쪽 발을 올려놓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5-27)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왜 지었느냐? 지었다는 말은 힘을 투입했다는 뜻입니다. 힘의 투입입니다. 힘의 투입이라는 것은 자체의 소모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도 힘을 잔뜩 뽑아냈는데, 그것이 돌아오지 않으면 소모될 수밖에 없습니다. (65-9)

 

하나님께서는 만물과 인간의 창조를 위해 온갖 힘을 투입하셨습니다. 전부를 투입하고 또 투입하셨습니다. 다른 것은 투입하면 전부 소모되지만 참사랑만은 투입하면 투입할수록 더 번성하고 생산됩니다. 참사랑은 100을 투입하면 120이 돌아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사랑을 실천하는 자가 망할 것 같지만 망하지 아니하고 영원히 번성하며 영생하는 것입니다. (219-114)

 

하나님이 왜 계시느냐? 무엇 때문에 계시려고 하느냐? 사랑 때문에 계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상대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사랑의 상대를 창조해야 되었던 것입니다. 본질적 이상으로 사랑을 중심삼고 창조를 시작했다는 것을 그동안 우리가 몰랐습니다. 사랑때문에 모든 피조세계가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208-231)

 

하나님의 소원은 참되게 줄 수 있는 세계적인 발판을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는 데 있어서도 어느 누가 참소할 수 없고, 받는 데 있어서도 어느 누가 조건을 제시할 수 없는 자유롭고 평화롭고 행복한 자리를 소원합니다. 그러한 자리를 세계적으로 넓혀서 온 만민을 거기서 살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거두려는 소기의 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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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사랑을 통한 창조이상 실현

 

사랑의 실현을 위해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었습니다. 인간과 만물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하나되어 화기애애한 사랑의 세계를 이루는 것을 보고 기뻐하기 위해서, 그리고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참된 부부의 인연을 맺고, 참된 사랑의 가정과 종족, 민족, 세계를 이루는 것을 보시고 기뻐하시기 위해서, 그리고 그러한 인간과 사랑으로 하나됨으로써 사랑의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 피조세계를 창조한 하나님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이상이었던 것입니다.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목적을 중심삼고 사랑할 수 있는 본마음의 바탕, 이것이 바로 심정입니다. 그 가치는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 가치를 논하려면 이 사랑을 붙들고 논해야 합니다. 가치라는 것은 상대적 여건이 이루어진 가운데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기쁨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심정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 목적은 어디에서 이루어지느냐 하면 인간에게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심정이 보이는 인간의 심정에서 현현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심정을 지닌 인간이 횡적으로 뻗어 나가 가정을 이루게 되면 그 가정이 세계적으로 뻗어 나가 세계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가정을 이루라고 하나님께서 아담과 해와에게 생육하고 번식하라는 축복을 하신 것입니다. 천주주의는 생육하고 번식해서 만물을 주관하는 그 바탕 위에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피조세계를 창조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은 피조세계를 통해 기쁨을 누리시고자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절대자라 하지만 기쁨을 홀로 느낄 수는 없습니다. 기쁨은 상대가 있어야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필요로 하시는 것은 지식도 아니요, 돈도 아니며, 권력도 아닙니다. 하나님 자신이 절대적이며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과학이 제아무리 발달해도 하나님이 만드신 것을 따라가거나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방대한 우주는 질서 속에 법도에 따라 운행되고 있습니다. 인간의 생각과 과학이 미칠 수 없는 방대한 우주를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또한 운행하시고 계신 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은 절대적인 과학자이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본연의 사랑에다 줄을 매고 그 사랑의 맛을 본 사람이 갈라질 것 같습니까? 꿀을 빨고 있는 벌의 꽁무니를 잡아당기면 그것이 빠지더라도 그 벌은 꿀에서 입을 떼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그 맛을 느낀다면 어떻겠습니까? 가다가도 되돌아와서 또다시 거기에 붙으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통일교회의 원리에 의하면, 사위기대 완성이라 결론짓습니다. 그렇다면 사위기대 완성(四位基臺完成)이란 뭐냐? 부모의 사랑은 자녀들에게 전달되고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사위기대의 중심인 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자녀와 하나되고,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 하나되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되는 것이 사위기대입니다.

아담은 하나님과 하나가 돼야 합니다. 이를 결부시키는 것은 사랑입니다. 존재세계의 평면적인 대표자는 인간이며, 입체적인 대표자는 하나님입니다. 이것을 영원히 결부시키는 중심점이 바로 사랑이라는 끈입니다. 육체를 가진 인간이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게 될 때, 그의 심정과 감정은 무한한 체휼경(體恤境)과 행복감에 취하게 됩니다. 결국 사랑에 의해서 하나님과 인간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에 의해 인간과 세계가 하나 되며, 하나님의 창조목적 이상세계의 실현은 여기서부터 출발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새 사랑, 즉 창조 법도에 의한 사랑이 결정된 자리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이상이 출발됩니다.

우리 인간들이 자고 나서 아침에 일어나면 그 다음에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아침에 아침식사를 하는 것이나 나가서 일하는 것, 전세계에 대해 염려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의 마음을 밤이나 낮이나 춘하추동 변함없이, 일생동안 변함없이 갖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남성, 그런 여성들이 완전히 수평선을 이루어 종적인 하나님과 더불어 완전히 90각도에 연결될 수 있는, 인정과 천정이 합할 수 있는 그런 자리의 사랑, 그런 사랑의 이상경,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213-156)

 

하나님이 창조하기를 사랑을 위해 투입하고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본질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상대도 그것을 받기 위해서는 같이 투입해야 되는 것입니다. 위에서 투입하고, 아래에서 투입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해서 천지가 합덕, 하나되는 것입니다. 천지를 품고 움직일 수 있는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위대한 힘이 오는 것입니다. (237-106)

 

사랑을 점령하려면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려야 됩니다. 왜 그러한 사랑을 가져야 하느냐? 사랑은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작아지는 것이 아니고 커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역학세계에서의 자연현상은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작용하면 작용할수록 작아지지요? 자연계는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작아지지만, 참사랑의 세계는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커갑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참사랑을 중심삼고 창조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37-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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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

 

  ①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지었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 때문에 지었습니다. 인간은 왜 지음받았느냐? 사랑 때문에 지음받았습니다. 인간이 만물과 다른 것은 하나님의 아들딸로 지음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직계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대상자로 지음받았다 이겁니다. 이게 인간의 특권입니다.

완전한 플러스인 하나님은 완전한 마이너스를 창조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면 우주의 주체 입장에 선 하나님의 대상이 누구냐? 이게 문제입니다. 왜 하나님이 사람을 지었느냐? 사람은 하나님의 무형의 내적인 상대적 실체존재(相對的實體存在)다 이겁니다. (129-121)

 

사람을 창조하여 길러 가지고 천주의 주인인 하나님 대신 사랑을 가진 자로서 자기보다 높은 자리에 있게끔 해 가지고 주인 만들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204-193)

 

만유(萬有)의 중심이 누구냐?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어떤 존재냐?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앞에 상대적 가치로 등장한 것이 인간이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인간은 만유의 사랑의 표상체로, 하나의 등대와 같이 빛을 비춰 줄 수 있는 하나의 중심으로 나타난 존재입니다. 그런 존재가 사람입니다. (115-180)

 

사람이 뭐라구요?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이성성상이니 만큼, 플러스 마이너스 이성성상의 주체로 되어 있느니 만큼 그 주체 앞에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플러스 마이너스와 같은 이성성상의 형태가 필요합니다. 그 형태라는 것은 주체의 성품에 반대되는 형태가 아닙니다. 모든 성품의 상대성을 지니고 사랑이라는 본질에 딱 들어 맞을 수 있는 상대적 형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상대존재인데 그것이 딴 것에는 맞지 않습니다. 사랑에만 맞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무슨 지식이나 딴 것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이 우주의 중심이다 하는 것은 사랑 이상을 이루기 위해 피조세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대신하여 주인 앞에 첫 번으로 중심 자리에서 사랑받을 수 있는 특권을 가지기 때문에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 하는 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132-245)

 

하나님이 인간을 무엇 때문에 창조했느냐? 아들딸의 생명을 보기 위해 창조한 것이 아닙니다. 그 아들딸과 더불어 사랑을 하기 위해 인간을 창조한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을 창조한 목적은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그 바탕에서 생명이 창조된 것이지 생명을 만들어 가지고 사랑을 유발시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본래 하나님의 마음에 사랑이 싹트기 시작해서 생명이 시작하고, 그 생명이 사랑으로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결과도 사랑으로 되어야 합니다. 시작이 사랑이었기 때문에 끝도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빼면 우리 인간은 불행한 것입니다. (57-22)

 

하나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은 생명도 필요없습니다. 생명의 주체이신데 그런 것이 왜 필요해요? 그러면 무엇이 필요하냐?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에게 사랑이 필요해요? 사랑이라는 것은 상대적 관계에서 성립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필요로 하는 하나님이 안 되어 가지고는 이 창조세계와 인간세계와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랑을 가지고 찾아오지 않고는 존재세계와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을 표준으로 정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121-99)

 

하나님이 사람을 제일 귀하게 여기는데 왜 귀하게 여기느냐? 하나님은 사랑의 대상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제일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사랑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사랑할 대상이 없으면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상대적 관계에서만이 사랑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제일 귀하게 여기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의 자리에, 사랑의 대상의 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귀하게 여기는 것이 바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143-309)

 

하나님께서 왜 사람을 지었느냐,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그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로 부터 찾아지는 것입니다. 상대가 없으면 찾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최고의 귀한 것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상대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도 상대가 없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상대를 지은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도 상대로부터 절대적인 사랑을 이룰 수 있게끔 상대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도 사랑을 위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위해서 하나님도 계시는 것입니다. 사랑이 놀라운 것이 이것입니다. (143-310)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있고, 하나님도 사람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사랑이라는 것은 위하는 자리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본래 인간이 태어나기를 어디에서부터 태어났느냐? 하나님의 사랑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사랑 때문에 태어난 것입니다. 사랑이 기원입니다. (143-310)

 

하나님 자신이 사랑하기 위해 사랑의 대상이 필요해서 사람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대상권이 없으면 사랑이 성립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사랑이 절대 필요하니만큼 피조만물을 짓고 피조만물을 대표한 만물의 영장으로 사람을 지은 것입니다. 사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절대적 사랑 대상권의 가치를 준 것입니다.

사랑을 공유하기 위해 그 대상적 존재로 지은 것이 인간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 자체가 하나님의 몸입니다. 하나님의 몸이 된 아담과 해와 둘이 부부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부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상세계에 가서는 아담과 해와의 모습으로 하나님이 인류의 조상이 되어 영계와 지상세계를 치리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138-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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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사랑과 생명의 핵심을 모두 투입

 

하나님께서는 온 만물을 지으시고 그 만물의 주인공으로 인간 시조를 에덴동산에 지어 놓으셨습니다. 인간을 지으실 때는 하나님의 어떠한 희롱거리로 지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취미로 지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을 지어 만물을 대표하는 중심으로 세우게 될 때까지의 하나님의 수고와 정성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실 때, 온갖 정성을 다 들이시고, 또한 심혈과 당신의 생명의 핵심을 다 기울여 지으셨으며, 사랑과 애정을 몽땅 퍼부어 지으셨습니다. 어떠한 힘 가지고도 떼려야 뗄 수 없고, 갈라지려야 갈라질 수 없는 인연 가운데서 지으신 것입니다.

이렇게 지으신 인간이기에 그 인간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에게는 비로소 평화가 깃들 수 있는 것이고, 모든 정과 행복은 그 인간을 통하여만이 깃들 수 있는 것입니다. (128-207)

 

하나님은 인간의 아버지요,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하나님이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 골수 중의 골수를 몽땅 부어 지은 인간이기에 이런 인간이 하나님을 끌면 안 끌려 오실 수 없는 것이요, 또한 하나님이 인간을 끄시면 안 끌려 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인연 가운데서 내용과 목적이 일치할 수 있는 인간으로 지으신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지어 놓은 사람을 보고 하나님이 찬양할 수 있는 어떠한 말씀이나 시가 있다면 그것은 세상의 어떤 시인이나 문인도 표현하지 못하는 최고의 작품이 될 것입니다. 그 대상은 하나님도 아니요, 만물도 아니요, 오직 만물을 대표한 인간입니다. (20-207)

 

하나님이 피조만물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존재가 우리 인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을 만들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하고 자기의 모든 것을 다 투입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자신의 전체를 투입해서 뭘 하자는 것이냐? 우주에 사랑의 핵을 설정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이 창조이상이었습니다. (166-147)

 

사랑을 말할 때 하나님에게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물에는 있지만 하나님에게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있어도 마음 속에 내적으로 있지 모양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뭘 해요? 그게 누구에게 있느냐 하면 인간인 아담에게 있고 해와에게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보다도 더 귀한 것을 인간이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206-118)

 

인간이 욕망의 최종착점, 욕망의 최대의 완성기준을 향할 수 있는 방향성이 있는데, 그것이 우리에게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야 됩니다. 성경에는 ‘우리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무슨 말인지 해석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건 위대한 말입니다. 제아무리 하나님이라 해도 하나님과 내가 사랑을 속삭일 수 있는 사랑의 대상권이 되면, 그 사랑의 대상권과 하나되면 우주를 상속받을 수 있는 권한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라는 원칙기반을 통해서 하나님이 지은 세계, 영계, 무형세계, 실체세계, 이 전부가 우주의 상속권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이 놀라운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13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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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아담 해와를 통한 사랑이상

 

  ① 아담을 무형이신 하나님의 체로 지었다

 

하나님은 왜 아담과 해와를 필요로 했느냐? 두 가지의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는 사랑의 이상을 성사하자는 것입니다. 둘째는 무형의 하나님이 형상을 쓰고 나타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형의 하나님이 유형의 형상을 쓰고 유형세계와 관계맺을 수 있는 그 기초, 그 핵심이 아담과 해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과 해와가 완성해서 영계에 가면,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몸과 같고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의 마음과 같은 자리에서 보좌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사람, 하나의 영적 세계에 완성한 사람을 실체세계의 몸뚱이와 마음과 같은 하나의 결과로 이루어 놓자 하는 것이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창조하신 목적입니다. (92-147)

 

하늘나라에 무형의 하나님이 혼자 있어서는 뭘 해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 가지고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부모가 되려면 체를 갖고 느낄 수 있어야 됩니다. 인간과 같은 체를 입어야 되겠기 때문에, 체를 입으려니 부득이 아담과 해와를 이중적 존재로 짓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133-91)

 

아담과 해와는 왜 이중구조(二重構造)로 만들지 않을 수 없었느냐? 무형의 하나님과 똑같이 되려니 마음과 몸이 일생을 거쳐 살면서 저나라에 갈 때까지 하나되었다는 기준을 세워야 됩니다. 그것이 안 되고는 저나라에 나타나면 그 형상이 하나님과 하나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실체적 왕권을 가진 부모가 무형의 부모인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서 영원한 천상세계에 체를 입은 왕권을 현현시키기 위해서 아담과 해와를 이중구조로 지었습니다.

하나님도 아담과 해와와 연결짓지 않고는 세상과 관계를 맺을 길이 없습니다. 아담과 해와와 관계를 맺어야만 아담과 해와의 아들딸과 관계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133-91)

 

하나님이 사람을 지은 이유는 같은 부모의 자리에 세우기 위한 것이요, 체를 입기 위한 것입니다. 같은 부모의 자리라는 것은 안팎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외적인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요, 하나님은 내적인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몸적인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이고, 마음적 하나님이 무형의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이 인류의 부모입니다. 본래의 부모입니다. 그 부모가 여러 명 있는 게 아닙니다. 한 분입니다. 한 분이니까 그 한 분이 들어와 계실 수 있는 아담과 해와, 남성 여성의 이성성상을 가진 분성전과 같이 만들어 놓고 하나님이 거기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임재해서 작용해야 아담과 해와 둘이 이상적 작용을 하지, 하나님이 작용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뜻이고 뭣이고 모른다는 것입니다. (133-91)

 

하나님은 아버지의 자리, 부모의 자리에 선 분입니다. 인간은 땅의 하나님으로 세우고,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하늘의 하나님으로, 종적인 하나님으로 세워 가지고 이것이 천지합덕, 이래 가지고 사랑으로 살아보자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혼자는 외롭습니다. (221-101)

 

창조주는 종적인 참사랑을 중심삼은 종적인 아버지이고,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인간 조상인 아담과 해와는 완전히 90각도로 하나될 수 있는 자리에 선 완성된 부모, 횡적인 몸의 부모라는 것입니다. 창조주는 참사랑을 중심삼은 마음의 부모요, 아담과 해와는 횡적인 몸뚱이의 부모인데, 이 둘이 합해 하늘 부모와 땅 부모가 하나되어, 천(天), 인(人)이 합해 가지고 아들딸이 나왔더라면 이 땅 위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은 종교가 필요없는 것입니다. 그냥 그대로 하나님의 나라로 가게 됩니다. 타락 때문에 복잡한 이런 문제가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우리의 몸뚱이와 마음이 갈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210-117)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지으신 목적은 둘이 사랑하여 하나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담은 아담을 위해, 해와는 해와를 위해 만들었던 것이 아닙니다. 아담은 해와를 위해, 해와는 아담을 위해 지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 자신의 사랑과 기쁨을 위해 아담과 해와를 지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지은 것은 지식, 권력, 돈 때문이 아닙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그런 것들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오직 사랑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해와를 지은 것은 지식을 주기 위한 것도 아니고 권력을 주기 위한 것도 아니며, 많은 재물을 주어 잘살게 하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그들을 창조한 목적은 사랑의 실체로 세우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가정을 통해 사랑의 기반을 만들고자해서였습니다. 사랑이 없는 피조세계는 지옥이며, 당신 또한 존재가치가 무의미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사랑 때문이었다는 것이 창조의 절대법(絶對法)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왜 창조했느냐? 남자는 동쪽이요 여자는 서쪽인데, 종적인 하나님을 중심삼고 동서 사방, 평면이 필요합니다. 여기에는 360도이기 때문에 무한한 면이 있는 것입니다. 그 면을 통해 뭘 하려고 하느냐? 하늘나라의 백성을 생산하는 공장, 출발지가 이 지구성(地球星)입니다.

그래서 하늘나라의 백성은 이 지구성에서 살다 간 사람입니다. 가 보라구요, 이 다음에 지구성 외에 딴 나라는 없습니다. 뭐 우주에 사람이 산다고 그러는데 살긴 뭘 살아요? 우주는 전부 다 사람 때문에 지은 것입니다. (266-161)

 

우리 인간이 하나님보다 나아요, 못해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는 종적인 아담과 해와밖에 못 만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들딸을 낳게 되면 스무 명도 더 낳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은 못합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 밖에 못 만들었습니다. 왜? 종적인 것은 절대적인 기준이 하나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남자 하나, 절대적인 여자 하나 밖에 못 만든다는 것입니다. (236-198)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아들딸로 태어났지만, 하나님의 속에 있던 쌍태가 실체로 나타난 것입니다. 무형의 남성 여성의 쌍태가 유형의 남성 여성의 실체로 나타난 것이 아담과 해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이렇게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무형의 심정권의 내용을 실체 심정권으로 완성시켜 무형과 유형이 하나되기 위한 것이 창조이상입니다. 창조이상은 사랑을 중심삼고 대상권을 이루자는 것입니다. (237-150)

 

아담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내재적 성품의 절반을 실체로 전개한 표시체다. 해와는 무엇이냐? 여성 성품을 실체로 전개해 놓은 표시체다, 드러낸 존재다. 드러냈다는 것은 실체를 가졌다, 표시체라는 것입니다. 드러내기 전에 드러나지 않은 동기가 있어서 그것을 드러냈다 이겁니다. 그 드러나지 않은 동기가 무엇이냐 하면,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무형의 실체되는 하나님이시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140-121)

 

1남과 1녀는 무형이신 하나님의 실체대상으로 나타난 아들딸입니다. 남자는 하나님의 플러스(+) 성품을, 여자는 하나님의 마이너스(-) 성품을 대신할 실체대상(實體對象)입니다. 창조이념은 양성(兩性)의 중화체(中和體)로 계신 하나님의 성상(性相)을 이성(二性)으로 분립했다가 다시 하나님의 본성상(本性相)을 닮은 모습으로 합성일체화(合性一體化)하는 것입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는 각각 하나님의 일성(一性)을 닮아 나왔습니다. 따라서 이들 1남 1녀의 결합은 하나님의 플러스(+) 성품과 마이너스(-) 성품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닮은 중화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의 두 사람, 즉 부부는 하나님의 전체를 표상하는 결합체입니다. (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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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부부는 제 2 창조주의 자리

 

부부가 하나되어 아들딸을 낳음으로 말미암아 영속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창조주의 자리에 올라가 아들딸을 낳아 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창조한 기쁨을 평면 세상에서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아내는 아들딸과 같아야 됩니다. 아들딸과 형제의 자리를 합한 것입니다. 그러니 갈라질 수 없습니다. 사랑이 함부로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들딸은 이런 모든 전통을 밟아 거쳐간 후에 낳아야, 하나님이 본래 창조이상으로 바라던 본연적 기준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이 천국 기반이라는 것입니다. (223-7)

 

이렇게 부부가 아들딸을 낳아 부모의 자리에 올라감으로써 하나님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 얼마나 좋아했는지를 체휼하게 되는 것입니다. 천지의 대주체이신 하나님의 모든 권한을 상속받을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체휼적 환경을 체휼적 내용으로 전수시켜 주는 것이 아들딸의 생산입니다. 아들딸을 생산해서 고이 키워 결혼시키기까지가 어머니 아버지의 책임입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길러 가지고 결혼시켜야 했는데 못 했습니다. 아담과 해와도 아들딸을 낳아 가지고 결혼을 못 시켰습니다. 이 한을 풀어야 됩니다. 이것이 교육의 원론이 되는 것입니다. 결론은 간단합니다. (223-128)

 

인간은 횡적인 부모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자식인 동시에 형제입니다. 형제인 동시에 부부요, 부부인 동시에 아들딸을 낳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아들딸을 낳아 가지고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고 기뻐하던 모든 전부를 상속받는 것입니다. (223-249)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창조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창조주의 입장에서 그 기쁨을 느끼게 하기 위한 것이 자녀라는 것입니다. 자녀는 아담과 해와로 말미암은 제2 창조물입니다. 무형의 하나님은 유형의 실체로서 아담과 해와를 지었습니다.

아담과 해와가 완성하면 하나님의 유형실체의 완성으로서 사랑의 중심 대표가 됩니다. 그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창조하여 기쁨을 느꼈던 것과 마찬가지로 실체적으로 하나님의 창조의 기쁨을 느낄 수 있게, 체험하게 하기 위해서 준 것이 자녀입니다. (238-7)

 

하나님이 이상적인 우주의 원만한 가정이상을 이루려고 하시기 때문에 자녀와 형제와 부부와 부모의 자리를 갖춰 자기의 사랑을 상속해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가졌기 때문에 나를 제2의 창조주의 자리에 세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들딸입니다. 아들딸이 그렇게 귀한 것입니다. (238-7)

 

여자들은 아기를 임신하게 되면 새로운 세상이 생겨납니다. 그 아기가 활동하기 시작하면 꿈이 많습니다. 여자는 그래야 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시던 그 꿈, 꿈이 많습니다. ‘앞으로 이 아기가 자라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하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면서 아담과 해와를 준비하던 그 마음자리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여자의 입체적 꿈이 그러는 것입니다. ‘나 혼자가 아니구나. 천하가 내 아들딸의 손아귀에 있고 내 품에서 자라는구나.' 그걸 생각하면서 사랑을 중심삼고 천하를 호흡하고 있는 것입니다. (228-248)

 

아기를 낳는 자리에 나가는 것은 결혼으로부터 상현세계를 점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자리에 올라감으로 말미암아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 이후에 인간을 얼마나 사랑했다는 내연을 체휼시키는 놀음입니다. (224-7)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과 같이 사랑해야 거기에 하나님이 임재하지, 아담 제멋대로 하고 해와 제멋대로 하면 안 된다 이겁니다. 완전히 하나 돼야 무형의 하나님이 여기에 왕래 한다 이겁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의 감투를, 사랑의 보자기를 씌우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이상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냄새 맡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디를 가도 사랑의 냄새를 킁킁 맡는다는 것입니다. (112-89)

 

그러면 하나님도 키스하는 걸 좋아하겠나? 무형의 하나님은 둘이 함께 붙어 있으니 자극을 모릅니다. 사랑할 때도 하나 됐다 떨어졌다 이러지요? 부처끼리 맨 처음에 죽자사자 사랑할 때는 우레 소리가 나고 번개가 번쩍번쩍하는 것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비 온 후에 구름이 개이는 것과 같이 사랑이 한번 불탔다가는 다시 영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224-7)

 

하나님은 이성성상의 중화체인 동시에 격(格)으로는 남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격 사랑을 대해 상대적 입장에 있는 것이 남자이기 때문에 이것은 수직관계입니다, 수직관계. 여자는 수직관계가 아닙니다. 여자는 뭐냐? 수직의 상대되는 횡적 관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격을 중심삼고 격에 따라 볼 때 남자는 종적 관계인 상하관계이고 여자는 좌우관계인 횡적 관계입니다. 그러면 종(縱)이 먼저예요, 횡(橫)이 먼저예요? 종이 먼저이기 때문에 먼저의 자리에 가까이 하려는 것은 모든 자연의 이치가 추구하고 찾아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딸보다 아들입니다. 이래야 다 정리되는 것입니다. (177-302)

 

여자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생리가 있지요? 누구 때문이지요? 후손이 얼마나 귀하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아담과 해와를 지은 목적은 하늘나라 백성을 생산하기 위한 것입니다. 영계에는 생산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종적인 사랑의 주인이기 때문에 종적인 것에는 축이 하나밖에 없습니다. 한 점밖에 없습니다. 한 점에서는 생산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횡적인 면적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과 하나되어 하늘나라의 백성을 많이 번식해서 이양하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입니다. (222-55)

 

하늘나라 백성의 생산지가 부부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인간을 창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게 하늘나라의 아들딸,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엮어질 수 있는 하늘 황족을 중심삼고 연결을 확대해 하늘나라의 백성을, 이 땅 위에 우리 인류 시조의 육신을 통해 가지고 하늘나라의 백성을 생산하기 위한 기지였다는 걸 누가 알아요? (218-12)

 

아담과 해와 두 사람이 사랑하는 것을 보신 하나님은 외로운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당신 속에 내재된 사랑의 소성이라는 것이 이다지도 강력한 것이었던가 하고 상대적인 기쁨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것을 하나님이 보겠나, 안 보겠나? 천하 시공을 초월하는 하나님이 이 세계 50억 인류가 사랑하는 밤이 되면 눈을 감겠나, 어쩌겠나? 보고 있으면 기분이 어떻겠나? 좋은 부인, 좋은 남편이 얼마나 많아요? 생각해 보라구요. 천만사가 다 벌어질 텐데 말이에요. 할 수 없이 여편네 놀음하고, 할 수 없이 끌려가고, 할 수 없이 비위 맞추고,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게 무슨 사랑이에요? 그게 인생살이에요? 세상이 전부 하나님이 바라던 창조이상대로 꽃향기가 풍기는 에덴동산같이 나비와 벌이 마음대로 날아다니며 천지에 화동하면서 살 수 있는 환경이 돼 가지고 하나님이 거기에 취해 잠이 들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나. 그거 생각해 봤어요? 한번 그렇게 살아 봐요. (222-142)

 

하나님은 부부의 자리에 못 갔고 부모의 자리에 못 갔습니다. 이것을 복귀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부모가 와야 됩니다. 참부모가 와서 종적인 부모와 횡적인 부모가 되어야만 하나님이 창조 당시에 이상적 자녀를 번식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모든 전부가 여기에서 열매 맺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종적 창조만 했지만, 영육 실체가 완성된 자리에 있는 아담은 횡적 창조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들딸 둘 밖에 창조를 못했지만, 하나님을 대신하여 실체 부모의 자리에 선 사람은 아담과 해와를 무수히 낳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열 명도 낳을 수 있고, 스무 명도 낳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못 합니다. 이렇게 횡적인 확대의 길을 중심삼고 많은 백성이 태어남으로써 하늘나라의 백성으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236-198)

 

참부모님은 수많은 종교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위업을 대표할 수 있는 열매입니다. 역사의 종착점이요, 종교의 목적점이요, 인류의 최고의 희망입니다. 모든 전부가 여기서 귀결되는 것입니다. 여기는 자유입니다. 개인 해방, 천상천하가 다 여기에서 해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사랑으로부터 통일천하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22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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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사랑이상은 가정 중심으로 완성된다

 

  ① 하나님의 창조이상은 4위기대 완성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무엇이냐? 아담과 해와를 지어 놓고 그냥 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를 만든 것은,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늙어 죽게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들이 장성하여 서로 이성에 대한 상대적인 심정을 통해 하나님을 중심한 참된 지상천국을 건설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사랑의 보금자리를 만들도록 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남성인 아담은 하늘을 대표하고 여성인 해와는 땅을 대표합니다. 천지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둘이지만 그들이 횡적으로 하나되면 하늘과 땅이 통일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하고 두 사람이 통일하고 나면 천주(天宙)는 자동적으로 통일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해와를 창조하신 그 당시보다도 그를 통해 펼쳐질 미래에 더 큰 뜻을 두셨습니다. 가장 존귀한 것이 오도록 하였습니다. 그것은 창조목적을 완성하는 일입니다. 사랑을 중심으로 한 사위기대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개체의 품성을 중심삼고 플러스적 성품의 대표로 아들인 아담을 지으시고 그 아들을 최고로 사랑하셨습니다. 그 아들을 사랑하는 데는 여성적인 사랑을 합해 가지고 사랑하셨습니다. 또한 딸인 해와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도 남성적인 사랑을 합해 가지고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분립된 둘이 하나됨으로써 제3의 출발의 기원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는 보다 새로운 희망을 촉발시켜 주는 사랑의 대상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사랑과 부모의 사랑을 대신한 실체로 태어났습니다. 따라서 그 아들딸들을 하나님도 좋아하고 아담도 좋아하고 해와도 좋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삼대상목적(三對象目的)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삼대상목적이 이렇게 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창조목적을 완성하여 창조이상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창조이상 실현은 남녀가 결혼해서 사랑으로 하나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된 후에는 아들딸을 가져야 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천지 이치는 상하 전후의 관계가 연결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제가 있으면 오늘이 있고 오늘이 있으면 내일이 있는 것입니다. 연결돼야 합니다.

그렇지만 부부끼리만 가지고는 오늘은 있어도 내일은 없습니다. 내일이 없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입니다. 부부가 위라면 아래(자녀)가 있어야 됩니다. 아래가 없으면 끝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지 이치는 상하가 겸해야 좌우가 됩니다.

부모들은 그 아들딸들을 결혼시켜 놓고야 내 책임 다했다고 합니다. 부부된 부모와 그리고 아들딸이 결혼해야 상하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상하관계가 이루어져야만 이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좌우로서 남편과 아내가 합했지만 상하관계의 부모와 자녀가 있어야 종횡이 연결돼 가지고 이 우주의 이상적 구형세계(球形世界)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또, 여기에 형제자매가 겸해야 드디어 구형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이상 실현을 완성하게 되면 횡적으로 종적으로 연결되는 십자적 원형을 그려야 됩니다. 그 두 이상 실현권을 남자와 여자가 느끼게 될 때 비로소 스스로 이상적인 자리에서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사위기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이상 완성은 사위기대 완성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사람은 나에게만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나로부터 삼단계를 거쳐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나와 상대와 자녀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나와 상대와 자녀의 관계, 이것이 사위기대입니다. 그리고 이 사위기대를 완성하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입니다.

사위기대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부부의 심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래야 자녀의 심정을 가질 수 있고 부모의 심정을 가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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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창조이상은 가정 완성으로 이뤄진다

 

인간 조상을 통한 하나님의 이상은 남자와 여자가 결합하여 이상적인 가정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이상적인 가정의 중심은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닙니다. 가정이란 부모와 자녀, 부부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묶음인데, 그 묶어진 중심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가정을 완성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가정은 만고불변의 기원이며 기틀입니다. 이것은 아버지도 고칠 수 없고, 형제도 고칠 수 없으며, 어느 나라 어떤 제도로도 고치지 못합니다. 또한 세계적으로도 고치지 못하며, 하늘 땅도, 하나님께서도 고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이라는 것에는 영원히 혁명이라는 명사가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부자지관계가 있어야 되고, 부부관계, 형제관계가 있어야 됩니다. 즉 이 세 관계가 한 점에 있어야 됩니다. 그 중심점은 하나입니다. 상하, 좌우, 전후의 중심이 달라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중심점이 틀리게 되면 상하, 좌우, 전후관계의 균형이 다 깨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상?하?좌?우?전?후 그리고 하나의 중심점까지 모두 7수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7수를 이룬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중심삼고 완전한 참사랑으로 하나되고 이 모든 것이 전부 완전히 구형을 이루어 조화와 통일을 이루는 가정이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 부부, 그리고 형제자매들이 모두 참사랑을 중심으로 합하기를 원하는 곳이 우리의 이상가정입니다. 여기에서 영원한 세계적 평준화가 시작됨으로써 지상천국이 출발되는 것이요, 또한 천상천국도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사랑의 본체이므로 참사랑과 연결되면 모두가 같은 몸이 됩니다. 부모는 하나님을 대신한 살아있는 하나님이고, 남편과 아내는 서로 다른 한쪽의 하나님이고, 아들딸은 또 하나의 작은 하나님입니다. 이렇게 3대가 참사랑을 중심하고 이루어진 가정조직이 천국의 기반입니다. 그런 기반을 이루지 않고는 천국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가정이란 우주의 중심입니다. 가정 완성은 우주 완성의 기초가 되기 때문에 가정에서 사랑하는 것과 같이 우주를 사랑하면 어디든지 무사통과입니다. 이럴 경우 하나님은 전체 우주의 부모로서 사랑의 복합적인 중심자리에 계십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창조 본연의 가정적 기대에는 남자의 사랑, 여자의 사랑, 아들의 사랑, 딸의 사랑, 부모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이런 소화된 자리에서 부모를 사랑하고, 남편을 사랑하고, 아들딸을 사랑하면 누구나 천국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한 가정은 사회의 윤리적 기반이며, 인간 세계에서 가장 본이 되고, 근원적이고, 일차적인 조직입니다. 이러한 가정에서 사랑이 최선의 자기기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어느 때냐 하면 태어날 때, 결혼할 때, 죽을 때입니다. 그러면 날 때는 어떻게 나야 하느냐? 잘 태어나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결혼할 때입니다. 결혼이란 살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즉, 사위기대를 이루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우주의 공법을 지구상에 세워 놓아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인간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주의 법도가 지향하는 내용을 갖추고 그 형태를 갖추기 위한 것이 가정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은 인간 시조인 아담과 해와가 선한 자녀를 번식하여 하나님을 중심한 하나의 세계를 이룩하는 것이었습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 하였습니다. 한 가정이 평화로우면 만사가 다 잘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완성한 가정은 평화의 가정이요, 이것은 천국의 기초입니다.

가정의 원동력은 참사랑입니다. 나보다도 하나님을, 그리고 대상을 생명과 같이 사랑하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것이 참사랑입니다. 이 우주에 하나님께서는 참사랑의 힘보다 더 큰 힘을 창조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참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219-114)

 

이 지구상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다면 아담을 중심한 단일문화권(單一文化圈)이 형성되었을 것입니다. 오늘날과 같이 수많은 민족이 각기 다른 문화와 문명을 형성해 온 것이 아니라 아담을 중심으로 한 단일문화, 단일사상, 단일문명을 가진 세계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었더라면 문화?역사?풍습?언어?전통 등이 모두 통일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권 안에서 이상적인 가정을 이루고, 종족을 이루고, 민족과 국가를 형성하고, 더 확대되어서 아담의 이상이 실현되는 하나의 이상적 세계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나무의 뿌리?줄기?잎이 하나의 생명으로 연결되어 있듯이, 사랑을 중심삼고 위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아래로는 만민을 형제와 같이 하나의 생명체, 사랑의 생명체로 화(化)하게 해 가지고 하나님을 중심한 영원한 이상세계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으로 보는 세계관입니다.

이러한 세계의 인간들에게는 구원이 필요치 않고 메시아도 필요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세계에서 사는 인간은 하나님의 선한 아들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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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하나님이 만물세계를 지으신 뜻

 

  ① 만물을 지으신 목적

 

본래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놀이거리로 지으신 것이 아닙니다. 취미로 지으신 것이 아닙니다. 목적도 방향도 없이, 어떤 이념적인 내용도 없이 그저 지으신 것이 아닙니다. 크나큰 목적과 대우주의 이념을 두고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지극히 작은 미물(微物)에서부터 우주에 이르기까지 모든 존재물에는 하나님의 심정을 통한 이념이 깃들어 있는 것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이념을 두고 지으신 목적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이념의 세계, 즉 사랑과 더불어 통하고, 사랑과 더불어 즐기고, 사랑과 더불어 살고, 사랑과 더불어 죽는 세계를 목적하신 것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잠에서 깨어 눈을 뜨면 눈앞에 펼쳐진 만상(萬象)을 보게 됩니다. 보여지는 그 만상을 통해 무엇인지 모를 간접적인 인상을 받고 그 반응되는 감각으로 생활에서의 감각을 높여가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지극히 작은 미물이라도 반드시 우리와 인연되어 있고 관계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무시해도 그 미물은 그날 그날 천륜의 이념에 따라 존재의 가치를 드러내며 인간과 더불어 인연맺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지극히 작은 존재에서부터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만물의 영장이라 하는 인간에 이르기까지 그 존재목적을 중심삼고 보면, 하나님의 대우주의 이념을 통할 수 있는 사랑의 이념권내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작은 것은 대우주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있어서 큰 분야를 맡고 있는 것에 흡수되어 움직이는 것입니다. 작은 것은 큰 것에 흡수되어 그것의 재료가 되고, 한 요소가 되어 대이념을 중심하고 하나의 목적을 향하게 됩니다.

역사는 이렇게 진전되어 나오는 것이고, 존재세계는 천륜이란 원칙의 궤도에 따라 하나의 목적을 위해 움직여 나온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9-164)

 

하나님이 왜 만물을 지었느냐? 자기가 사랑할 대상을, 대상자를 갖기 위해서입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권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가 먹고 살다가 자기의 본연의 세계로 돌아와서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의 본국에 들어와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142-76)

 

성경을 보면 천지 창조한 것을 간단히 말씀했습니다. 말씀으로써 천지만물을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별이 생겨라' 하면 별이 생겨났고, ‘지구성아, 생겨나라' 하면 지구성이 생겨났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무한한 질서와 법도를 따라 전진적인 원칙을 계승시켜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으로 발전시켜 나온 것임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이 모든 만물을 지어 놓고 만물의 정수로서 집약시켜 이루어 놓은 것이 아담과 해와, 인류의 조상입니다. (65-21)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은 생각하기를 하나님은 전지전능하기 때문에 말 한마디로 ‘이러한 천지가 되라' 해서 이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투입했습니다. 있는 정력을 다 투입했다는 것입니다. 있는 사랑의 힘을 다 투입해 가지고 미래에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딸, 자기의 사랑하는 가정을 위한 예물로, 선물로 지었다는 것입니다. 전부 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관념을 가지고 우리가 만물을 바라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112-289)

 

창조할 때 무엇으로 했느냐? 처음에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더불어 계획이 있었습니다.

인간을 창조해 가지고 이러이러한 인간세계를 만들겠다는 본래의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76-92)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지을 때는 환경을 먼저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환경 창조를 먼저 했다 이겁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거기는 반드시 주체 대상을 중심삼고 작용하는 세계입니다. 결과가 그렇게 된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이 합해서 작용하는 현상세계로 자연계는 전개되어 있습니다. (131-217)

 

천지 창조의 이치를 보게 될 때, 핵심을 먼저 만들어 놓고 상대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핵심을 만들어 놓기 전에 상대적인 여건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사람을 만들기 위해 흙을 먼저 만들어 놓고…. 외적인 것을 기반으로 하여 내적인 것을 세워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게 천지창조의 이치라는 것입니다. 현재의 것보다 더 큰 것, 무가치한 데서 더 가치있는 것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천지창조의 이치가 그렇다 이겁니다. 인간창조를 보게 될 때에도, 인간을 짓게 될 때에는 몸뚱이를 먼저 만들어 놓고 영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152-319)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지은 만물을 바라보시고 자랑하고 싶으셨습니다. 모든 피조물을 바라보게 될 때에 무한히 기쁘셨던 것입니다. 그 기쁜 마음을 가지고 ‘선한지라 선한지라.' 하고 거듭거듭 하신 이 말씀은 누구에게 하신 말씀이었느냐. 만물에게 하신 말씀이었다는 것입니다. 만물을 대해 그렇듯 간절한 마음을 품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5-236)

 

하나님이 피조세계를 지으실 때 거기에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지어 놓고는 보기에 선한지라 하셨습니다. 기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기쁨이 무엇입니까? 어떤 목적을 이루었을 때 느끼는 것입니다.

지으신 만물에 하나님의 목적의식이 내재되어 있기에 창조된 만물을 놓고 하나님은 기쁨을 느끼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복귀의 세계는 어떠한 세계냐? 한마디로 말한다면 삼라만상의 개체 개체를 보면서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심정적인 인연을 입체적으로 갖춘 사람들이 사는 세계입니다.

하늘이 보시는 인격의 가치는 거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에 성 프란체스코 같은 양반이 동물을 보고, 혹은 새를 보고 설교했다는 말도 거짓말이 아닙니다. 꿈같은 이야기지만 꿈이 아니고 사실입니다. (9-168)

 

사랑은 혼자 있을 때에도 있지만, 사랑의 작용은 상대가 있기 전에는 생겨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라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는 사랑이지만, 그 사랑은 혼자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혼자서는 사랑의 기쁨을 느낄 수 없고, 사랑의 충동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이 우주를 짓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고 기뻐할 수 있는 상대로 우주를 창조했습니다. 그리고 우주를 창조하고 나서 그 우주의 주인으로 아담과 해와를 창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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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신비의 우주, 그 규모와 구조

 

피조세계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딸이 사랑의 이상을 찾아 나아갈 수 있도록 교재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상대적 구조입니다. 광물도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서 작용하고 원자도 양자 전자가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서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작용하지 않고는 존속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운동을 하지 않고는 영속과 존속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는 인간을 중심삼고 그 중심점에 도달할 수 있도록 창조된 세계라는 것입니다. (137-59)

 

우주는 무엇이냐? 하나님의 몸과 마찬가지입니다. 보이는 몸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분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진짜로 사랑할 수 있다는 관념이 성립됩니다. 우주를 사랑한다는 것이 실감난다 이겁니다. 여러분 머리도 이렇게 쓰다듬어 주고 그러지요? 옷도 뭐가 묻으면 털지요? 그거 왜 그럽니까? 내 것이니까, 나와 같이 있기 때문에, 그런 관념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 마음 가운데 하나님을 모시고 마음이 하나되고, 몸이 하나되고, 만물이 하나되고, 이런 통일의 세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86-174)

 

이 우주가 얼마나 크냐 하면 몇억 광년입니다. 빛이 1초 동안에 30만 킬로미터를 가는데, 그 30만 킬로미터가 얼마냐 하면,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돌 수 있는 거리입니다. 그 거리를 1초 동안에 달리는 빛이 1년 걸려서 가는 거리를 천문학에서는 1광년이라 합니다. 그런 광년을 단위로 삼아 출발한 빛이 몇억 광년이 되어도 아직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그렇게 큰 우주입니다.

그리니치 천문대에서는 지금까지 100억 광년 떨어진 저 세계의 별까지 발견했는데, 이제는 150억 광년 떨어진 저 세계 별도 볼 수 있는 시대가 왔고, 그 이상 시대에 들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우주가 얼마나 크냐 하면 그것도 원리적 수입니다. 210억 광년, 그렇게 크다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빛이 여기서 출발해 가지고, 이게 출발해서 1초 동안에 3억 미터, 빛의 속도가 3억 미터 갑니다. 거리로 말하면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도는 거리입니다. 일곱 바퀴 반이나 되는 거리입니다. 딱 하면 벌써 일곱 바퀴 반을 돌아요. 그렇게 빠른 빛이 하루 걸려도 허리가 구부러지고, 생각이 다 둔해 가지고 ‘나 모르겠다.'할 텐데 백년이 아니고 백의 몇 만 배입니다. 백의 백만 배, 그게 1억인데 1억 광년. 출발해 가지고 1억 광년이니다. 아직 가고 있는데 사람이 백 살 산다면 백만 사람이 죽어갑니다. 1억 광년이니까 백 사람이 나서 계속해서 백년을 살다 죽어가기를 백만 사람이 죽을 그때에 가서 또 가는 것입니다.

그럼 210억 광년하면 얼마예요? 그 사람들이   이어서 살고 죽고 또 살고, 백 살까지 살고, 백 살까지 살고 이렇게 2억 천만 명이 살아서 그만큼 가는데 또 계속 갑니다. 그 먼 거리가 직선으로 가지 않습니다. 이게 둥글둥글둥글 돌고 있다 이겁니다. 이러한 우주라는 거입니다. (181-195)

 

도대체 우주의 완성이 뭐냐? 우주를 완성하려면 내가 완성을 해야 됩니다. 아무리 우주가 완성되었다 하더라도 내가 완성 못 하면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좋더라도, 외적 세계가 좋아 춤을 춘다 하더라도 자기가 지금 고통에 사무쳐 있다면 그 모든 외적 세계의 기뻐하는 환경도 나와 관계가 없는 것임을 우리는 아는 것입니다. (166-210)

 

우주의 완성은 외적인 세계도 좋아야 하지만 내적인 나 자신, 나도 좋아야 합니다. 좋은 데는 마음도 좋고 몸도 좋아야 됩니다. 내 세포로 보면 세포가 다 좋아야 됩니다. 눈의 세포와발바닥에 있는 세포는 다르지요? 다릅니다. 다르지만 그 세포들이 다 좋아하고 손의 세포도 좋아하고 모든 세포들이 좋아하고, 몸과 마음 어디 하나 남기지 않고 전체가 좋아할 수 있는 그것이 그냥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되어 연체적(連體的)인 내용을 중심삼고 공명적(共鳴的)인 사랑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세계라야 우주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166-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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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③ 자연은 사랑이상을 가르쳐주는 교재

 

기도하는 사람들은 자연을 제1의 성경이라고 했습니다. 제2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엮어 온 성경을 보면 내용을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그 내용을 보고 선생님이 얼마나 머리를 흔들었는지 알아요? 그것은 점장이들이 점하는 것처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것입니다.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방편입니다. 그래서 사실의 내용을 판단하고 전후사정을 가려내려면 힘이 들기에 성경보다는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의 세계가 제일이라는 것입니다. (20-271)

 

인연(因緣)이란 지극히 작은 데서부터 맺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체도 4백조 개나 되는 세포로 인연되어 있는 생명체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한 창조이념세계, 즉 대우주의 모든 존재물은 어느 것 하나도 하나님 심정 밖에서 생겨난 것이 없습니다. 이런 것을 느끼는 시인은 위대한 시인일 것입니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천주적(天宙的)인 심정을 느껴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시인이 있다면 그는 우주적인 시인일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우리도 모르게 벌어져 있는 천하만상(天下萬象)이 하나님의 사랑과 더불어 존재하는 것들이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신령한 경지에 들어가 보면 조그만 모래 한 알에도 우주의 이치가 들어 있고, 하나의 원자(原子)에도 무궁무진한 우주의 조화가 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잘 알 수는 없지만 어떤 복합적인 힘을 통해 나타난 결과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분자를 지나 원자, 원자를 지나 소립자…. 이런 것들이 무의식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의식과 목적을 갖추고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거쳐 나온 것이요, 반드시 하나님과 심정적인 관계를 맺고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철두철미하게 알아야 되겠습니다. (9-168)

 

도인은 어떤 사람이냐? 풀 한 포기를 붙들고도 ‘하나님!' 할 수 있는, 심정으로 자기의 가치와 동등하게 그 가치를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 최고의 도인입니다. 그렇게 그 가치를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이 최고의 예술가일 것입니다.

각양각색으로 존재하는 만상을 보고 하나님의 각양각색의 사랑과 심정의 묘미를 발견하고, 그것들과 친구가 되어 더불어 즐길 수 있는 감정을 가진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런 감정으로 세포 하나하나가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만우주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만물의 영장(靈長)입니다. 그런데 먹을 것밖에 모르는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 되겠습니까? (9-168)

 

어린애들을 가만히 보면 강아지 새끼니 무슨 뭐 벌레니 하는, 날짐승이나 들짐승처럼 움직이는 것들을 중심삼고 좋아합니다. 그거 왜 그러냐? 본래 사람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건 무엇을 말하느냐? 인간이 자연계나 이 지구의 움직임을 보고 흥미를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상대기준이 다를 수 있지만, 그걸 감상하는 데서 인간은 참 재미를 느끼고 흥미를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자기 자체의 사랑의 속성을 다 배우는 것입니다.

벌레들이 살고 곤충들이 살고, 혹은 동물들이 사는 것을 보면 전부 다 쌍쌍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자연은 뭐냐 하면, 인간 하나를 사랑의 대상으로서 상대이상을 교육시키기 위해서 전개시켜 놓은 교재 박물관입니다.

하나님은 우주를, 피조세계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아들딸이 사랑이상을 찾아나갈 수 있도록 교재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전부 다 상대구조(相對構造)로 되어 있습니다. 광물도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 작용합니다. 물질의 구성단위(構成單位)인 원자도 양자와 전자가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 작용합니다. 작용하지 않고서는 존속할 수 없습니다. 운동을 하지 않고는 영속하고 존속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작용을 해야 합니다.

인간은 커가면서 자연을 보고 습득합니다. ‘곤충세계가 이렇구나!' 하고 배웁니다. 달빛이 비추고 별이 빛나는 가을 밤에 가만히 들어보면 곤충들의 울음소리가 하나의 오케스트라 연주로 들립니다. 무엇 때문에 곤충들이 그렇게 우느냐? 그것은 상대를 찾아 이상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속삭이는 것입니다. 새나 다른 모든 동물들도 슬픈 소리, 기쁜 소리를 무엇으로 표시하느냐 하면 사랑이라는 공통분모를 따라서 소리를 냅니다. 급은 낮지만, 축에서 먼 거리에 있지만 그 축을 중심으로 평행선을 그리며 돌고 있습니다. 모든 존재는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새들의 노래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배가 고플 때 신호하는 노래가 있고, 다음에는 서로 사랑하는 상대를 위해서 하는 노래가 있고, 그 다음에는 위험할 때 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게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 뭐, 보통사람들은 모르지만 자기들 세계에서는 다 압니다. 배가 고파서 울면 벌써 안다는 것입니다. 매일의 생활이 무엇을 중심삼고 돼 있느냐? 배고픈 그거야 한 번 먹으면 끝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매일같이 위험한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대부분의 노래는 무엇을 중심삼고 하느냐 하면, 상대와 주고받는 관계에서 노래가 오고 간다는 것입니다. (137-211)

 

인간은 주체와 대상, 즉 상대적인 쌍으로 지은 바 되었고, 또 인간을 위하여 있는 온 만물세계도 사랑의 원리 아래 조화를 이루고, 또 인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생명과 이상을 실현하게 되어 있습니다. 만물세계는 인간에게 있어서, 특히 자라나는 아담과 해와에게 있어서는 사랑의 교과서요, 사랑의 진수가 무진장으로 진열된 박물관이라는 것입니다. (135-12)

 

모든 새나 동물은 쌍쌍으로 되어 있습니다. 서로가 사랑을 중심으로 화동합니다. 꽃과 나비는 극(極)과 극이지만 서로 화합합니다. 이것은 천지조화입니다. 우주의 극과 극이 사랑을 중심으로 화동이 벌어집니다. 철새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쪽에 있던 새가 북쪽으로 날아가고, 북쪽에 있던 새가 남쪽으로 날아가서, 지역을 넘나들면서 사랑을 이룹니다. 사랑을 중심으로 해서 영원히 돕니다. 인간은 이와 같은 사랑을 하나님이 지은 박물관의 교재를 통해서 배웁니다.

인간과 하나님이 좋아서 사랑하면 천하의 모든 만물들은 거기에 박자를 맞춰 화동(和動)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고 좋아하면 천사세계도 좋아하고, 이 모든 피조세계가 좋아 박수를 보내고 찬양을 보냅니다. 노래할 줄 아는 새는 노래를 부르며 찬양하고, 아름다운 꽃은 향기를 풍기며 찬양합니다.

최고 사랑의 주인공들이 즐거워할 수 있는 향취의 분위기를 확장시키기 위한 것이 이 피조세계입니다. 보기에 흉측스러운 두꺼비도 사랑을 할 때는 ‘욱욱욱' 합니다. 얼마나 멋집니까? 다리를 척척 치고 뒷다리를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사랑하는 그 모습이 얼마나 근사합니까? 그것은 최고의 예술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성숙해 감에 따라서 ‘아, 저렇게 사랑하는구나!' 하고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만물세계를 인간 사랑의 이상을 성숙시킬 수 있는 교재로 펼쳐 놓았습니다. 그걸 배워 가는 것입니다. 점점점 커감에 따라 ‘아하, 옛날에는 동생과 같이, 오빠와 같이 지냈는데 가만 보니까….' 이렇게 감정이 달라집니다. ‘아, 이렇구나!' 하며 배워 갑니다. 그래서 ‘너와 나는 죽더라도 안 만나면 안 되겠다. 딴 데 못 간다.' 하고 평형선으로 직행하면서 부딪치게 됩니다.

맨 처음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아담과 해와도 하나님의 보호권내에서 어렸을 적부터 자라 올라감에 따라서 점점 커가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지능이 발달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왜 피조세계를 지었는지를 알게 되고, 그 피조세계를 통해 교육해 나오는 것입니다. 피조세계가 움직이는 모든 것은 우리 인간 시조, 본래의 조상이 되어야 할 아담과 해와가 생활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르쳐 주는 교재였습니다. 완성된 아담과 해와가 아니기 때문에 이상생활을 해 나가는 데 있어 표본이요, 하나의 박물관이었다 하는 사실을 알아야만 됩니다. (137-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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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④ 자연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아침에 눈을 뜨고 자연을 바라보면 그 자연이 은은하게 내 본성과 인연되어 새로운 이상의 감정을 싹트게 합니다. 그러나 인간세상은 바라보면 볼수록 절망과 슬픔의 감정을 돋구어 준다는 사실을 잘 알 것입니다. 본래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인간들이 사는 세상이라면, 인간의 가치는 그렇게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슬픔을 느끼게 할 정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풀 한 포기나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와 같은 정도의 가치로 지어진 인간이 아닙니다. 피조만물의 그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인간이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모습으로 천상을 대신하여 나서야 할 인간이었습니다. (9-97)

 

하나님의 사랑이 깃들어 있는 자연을 바라보고 ‘세상의 왕, 혹은 어떤 유명한 사람이 갖고 있는 훌륭하다는 물건에 비할소냐, 골동품에 비할소냐, 어떤 유명한 부인이 입고 있는 호화로운 옷에 비할소냐'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자연세계 앞에 자신도 모르는 죄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의 생명체를 볼 때, ‘인간이 만든 어떤 물건에 비할소냐.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보다 훌륭하겠는가.'하며, 하나님이 심정을 기울여 지으신 만물을 붙들고 무엇보다도 귀하게 느끼는 자가 있다 할진대, 이는 틀림없이 하나님의 아들딸일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기도가 필요없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사는 사람입니다. 하늘은 인간을 그러한 자리까지 내모는 것입니다. (9-175)

 

인간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의 것은 무엇이든지 좋아하고 귀여워합니다. 그러면서도 제일 사랑해야 할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은 귀여워할 줄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돼요? 탄식하는 만물의 한을 해원해 주어야 할 책임을 진 여러분은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에서도 6천년 전 그것들을 지으실 때의 하나님의 심정과 창조의 손길을 체휼해야 됩니다. 그런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길을 가다가 풀 한 포기를 보고도 눈물지을 수 있어야 됩니다. 나무 한 그루를 붙들고 울 수도 있어야 됩니다. ‘주인을 잃어버렸으니 얼마나 외로웠느냐?'하면서 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 사람은 많이 울어 보았습니다. 바위를 붙들고도 울어 보고, 바람이 부는 것을 보고도 울어 보았습니다. 왜 그래야 되는지 이제 말씀을 들었으니 이해할 것입니다. (9-175)

 

하나님이 지으신 가치있는 만물이,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한 인연을 맺은 귀한 만물이, 오늘날 어떠한 왕궁에서 국보니 보물이니 하며 귀하게 여기는 물건만큼의 취급도 받지 못하는 서글픔을 나는 알아줘야지, 나만은 알아줘야지.'하면서 나왔습니다. ‘이 땅에 사는 세계 인류가 전부 몰라주어도 나는 알아줘야지.'하는 마음을 여러분이 가진다면, 이 민족은 앞으로 세계 인류를 지배할 수 있는 새로운 민족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관념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어느 누가 만물을 놓고, 대대로 내려오는 자기 가문의 보물보다, 세상에서 제일 귀한 보석이라 하는 다이아몬드보다 귀하게 여겨 붙들고 놓지 않으려 합니까?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요? 하나님은 당신께서 지으신 것을 심정적으로 알아주고 그것을 붙들고 눈물짓는 사람을 보고 ‘오냐' 하십니다. (9-175)

 

자연은 뭐냐? 하나님이 나를 위해, 위하는 사랑을 가진 아들딸이 태어날 때 위할 수 있는 만물이며, 선물받은 전시품입니다. 새소리 하나, 자라고 있는 풀 한 포기라도 사랑의 아들딸들의 생활의 미화를 위해 만들어진 장식품이라는 것입니다. 길거리에 구르는 바위도 아들딸이 나라를 다스리는 주인이 될 것을 알고, 그 나라의 장식품으로 지었다는 것입니다. 흐르는 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무미건조하고 단조로우면 안 되겠으니 조화무쌍한 화합의 동산, 사랑을 위하는 그러한 세계를 보고 그것을 상속받을 수 있는 꿈의 왕자, 희망의 왕자를 만들기 위해서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을 통해서 배우는 것입니다. 수놈과 암놈이 짹짹 거릴 때는, 이것을 주인되는 아주머니도 배우라는 것입니다. 서로 위하는 세계를 향해 자기 일생을 생명을 걸고 사는 본연의 피조세계의 아름다움을 찬양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 집 울타리에 새 새끼까지도 와서 살려고 한다는 겁니다. 새끼를 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175-187)

 

박물관에 있는 어떤 작품이 아무리 귀중하다고 해도 살아 있는 작품을 당할 수 있어요? 하나님의 작품인 이 지구성 만물 박물관을 누가 하나님 이상 사랑했느냐 이겁니다. 자기 나라의 박물관 이상 사랑했느냐 이겁니다.

길가에서 밟히는 민들레 한 포기가 박물관에 있는 신라시대의 금관에 비할 수 있어요?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건데. 그러한 하나님의 심정을 가지고 ‘너를 본연의 하나님이 위할 수 있는 왕의 자리에서, 사랑을 받던 그 자리에서 사랑을 못 하는 나 자신이 미안하다. 부끄럽다.' 할 수 있는 마음을 지니고 위하는 그런 왕이 있다고 할 때는 풀포기도 그 왕을 따라가서 영원불변 같이 있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야 할 인간입니다. (175-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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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⑤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라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할 줄 알아야 됩니다.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고 자연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만물은 하나님의 상징적 존재요 인간은 실체적 존재이기 때문에, 만물과 인간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70-182)

 

언제나 자연을 사랑해야 됩니다. 자연을 사랑해야 하고, 또 인간을 사랑해야 됩니다. 인간 가운데서도 오색인종 전부를 다 사랑해야 합니다. ‘어, 나는 백인들만 좋아.' 하나님이 그럴까요? 그러면 전부 흰옷만 입어야 됩니다. 백인들은 전부 다 흰옷만 입어야 됩니다. 색깔있는 옷은 다 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검정옷은 왜 입어요? 색깔이 있는 옷은 왜 입어요? 그건 모순입니다. (133-30)

 

모든 원소들도, 미물들도 사랑길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일체 될 수 있는 사랑과 직접 접할 수 있는 세포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위해서는 희생해야 되는 것입니다.

투입해야 됩니다. 생명과 재산을 다 투입한 전통이 있기 때문에 급이 낮은 것은 급이 높은 거기에 자기의 모든 것을 투입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윈의 진화론이 아니라 사랑을 중심삼고 흡수하는 논리입니다. 제2의 가치적인 내용을 창조하는 데 창조 요소로서 적용될 때는 현재의 미물보다도 얼마나 가치적인 내용이 올라가느냐 이겁니다. (204-57)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존재를 사랑의 대상으로 느껴야 됩니다. 모든 미물까지 사랑하며 사람은 물론이요, 모든 하늘에 있는 무형의 것, 유형의 것을 사랑할 수 있고 사랑 받을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아침에 새가 짹짹짹짹 할 때는 ‘야, 요놈의 참새야, 내가 늦잠 자려는데 왜 짹짹짹 해?'하지 말고, ‘아이고, 너 고맙구나. 아이고, 나를 깨워 주러 왔지 하하, 귀한 손님이 나를 맞으러 오는 걸 네가 알려 주는구나.' 이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사상이 다릅니다. 이게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112-171)

 

하나님께서 인간세계를 지음과 동시에 천사세계를 지었습니다. 그러면 천사세계는 어떠한 세계인가. 인간이 하나의 결실을 위해서 꽃과 같은 존재로서의 미를 다 갖추고 향기를 풍기며 나타나게 될 때 비로소 사랑의 보금자리가 갖추어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생명력은 거기에서부터 출발하게 되고, 모든 생명의 인연을 가진 존재들이 거기에서부터 화동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화동할 수 있게 되는 기원이 바로 인간입니다.

그런 인간을 중심삼고 하늘에 있는 천군천사들이 나비와 벌같이 인간과 서로 주고 받을 수 있는 화동의 주체권을 이루게 되면, 그야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인간이 기뻐하고 천사가 기뻐하며 온 피조만물이 사랑에 잠긴 화동의 꽃동산이 되었을 것이고 봄잔치가 시작될 것입니다. (3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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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복귀섭리역사와 신관의 변천

 

 1) 구약시대 하나님은 천사였다

 

  ① 구약시대는 종의 시대였다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무원리권 내에 떨어졌습니다. 어느 정도 떨어졌느냐? 하나님의 종인 천사보다도 더 못한 세계에 떨어졌습니다. 주인되어야 할 왕자 왕녀가 종보다도 못한 자리에 떨어졌으니 다시 올라가야 됩니다.

그래서 종의 종의 도리로부터 시작하여 종의 도리, 양자, 서자, 이래 가지고 직계 자녀까지, 그 다음에 어머니를 통해 아담(아버지)의 자리에 돌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복귀입니다. 구원섭리는 병나기 전의 건강했던 기준으로 다시 돌이키는 것과 같습니다. 병나지 않았던 자리에 돌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섭리(救援攝理)는 복귀섭리(復歸攝理)입니다. 복귀섭리는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조건 ‘믿으면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안 돼 있습니다. (222-142)

 

인간은 타락했으나 하나님을 저버릴 수 없기에 종의 종의 자리에서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면 ‘종의 종'이란 무엇을 말하느냐? 주인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타락한 인간은 ‘종의 종'의 자리에서부터 하나님께 충성해야 됩니다. 사탄은 천사장이었으며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그 종 앞에 끌려갔던 인간이기에 인간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종의 종'의 입장에서 하나님 앞에 충성을 다했다는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17-72)

 

구약시대는 제물을 희생시켜 하나님이 종으로 쓸 수 있는 사람을 찾는 시대입니다. 이것이 구약역사입니다. 사람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꺼꿀잡이가 됐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만물보다 더 낮아졌습니다. 사람이 만물보다 더 악하게 됐으니 하나님 앞에 더 가까운 만물을 둘로 갈라 가지고 네 소유물, 내 소유물로 가려 이런 것을 중심삼고 분별적인 제물을 내세워야 했던 것은 누구 때문이냐 하면 하나님 때문도 아니요, 사탄 때문도 아닙니다. 인간이 책임분담(責任分擔)을 못 했기 때문입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사탄의 핏줄을 이어받은 것은 인간이 책임분담을 못 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136-198)

 

섭리적으로 본다면 구약시대 전, 야곱 이전은 종의 종 시대요, 야곱으로부터 예수님까지는 종의 시대요, 예수님 이후는 양자시대요, 재림(再臨)의 시기는 아들의 시대입니다. 아들의 시대가 오기 때문에 아들은 부모가 있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시대를 거쳐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74-112)

 

구약시대는 종의 시대였습니다. 종의 종 자리에 있는 인간을 종의 자리로 복귀시켜 나온 시대였습니다. 그러기에 아브라함도 종이었지 아들은 못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종의 종을 세워 충성의 도리를 세우셨습니다. 그리하여 이 역사적인 세계 인류를 끌어다가 규합시켜 세계적인 악한 무대를 하늘 편으로 점령하면서 하나님의 섭리를 발전시켜 나왔던 것입니다.

야곱도 하나님의 아들로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 종의 입장에서 승리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종의 종으로부터 종의 위치로 복귀시키고, 종의 위치에서 양자의 자리로 복귀시키면서 섭리해 오신 것입니다. (15-321)

 

역사적인 복귀노정을 총괄적으로 살펴보면, 하나님은 지금까지 소생, 장성, 완성의 3단계를 통해 섭리해 나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종의 시대, 신약시대의 양자의 시대, 성약시대의 참자녀 시대를 넘어 참부모 시대로 들어가는 복귀노정인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전인류에 대한 구원섭리는 종의 입장으로의 구원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이 시대에는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남아 승리할 수 있는 중심을 세우지 않으면 종으로의 복귀기대(復歸基臺)를 세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노아나 아브라함 등 중심인물을 세우시어 4천 년이라는 역사를 이끌어 오시면서 수많은 희생을 치르셨습니다. (15-44)

 

구약시대에는 뭘 했느냐? 이 세상이 사탄세계가 되었기 때문에 만물을 희생시켜 하늘편 사람을 세워 종을 찾는 놀음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양자도 못 찾습니다. 종의 종을 찾는 것입니다.

사탄세계 사람들이 전부 사탄의 아들딸이 돼 있는데 그것을 빼앗아 올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사탄세계에서 낙망한 사람을 끌어모아 나오는 것입니다. 처량하지만 폐물을 수습해 나오는 겁니다. 폐물을 수습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냥 되지 않습니다. 희생해야 됩니다. 제물의 과정을 거쳐야 됩니다. (136-198)

 

하늘은 사탄세계의 종도 못 되는 인간을 데려다가 하나님 세계의 종의 종으로 만들자 이겁니다. 그게 구약역사입니다. 야곱과 에서를 싸우게 한 것도 그겁니다.

노아도 그겁니다. 멀리 다른 나라에 끌어다가 격리된 자리에서, 지쳐 떨어진 그 자리에 하나님은 사탄세계의 종의 종을 데려다가 하나님의 종으로 만든 것입니다. (154-289)

 

사탄은 인간을 원수처럼 취급합니다. 인간은 사탄의 종도 못 됩니다. 이러한 인간을 하나님의 종으로 만드는 역사를 한 때가 구약시대입니다. 여기서 다시 종을 양자로, 양자를 직계 자녀로, 자녀를 형제로, 형제를 신랑 신부로 축복하여 참부모의 자리에까지 나아가게 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참가정을 잃어버렸으니 이것을 찾는 것이 복귀입니다. 예수를 참부모의 자리에 등장시키는 것이 어린양 잔치입니다. (12-25)

 

하나님은 종을 세워 내가 네 아버지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종을 시키고 천사를 시켜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한 시대가 구약시대입니다. 다음에는 아들을 시켜서 역사하였습니다. 그 시대가 신약시대입니다. 그 다음에는 성신을 시켜서 역사해 나오셨습니다. (10-182)

 

지금까지 하나님의 소원은 인간이 만물과 인연을 맺고 하나님과 인연을 맺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을 종의 자리로부터 시작하여 양자의 자리를 거쳐 자녀의 자리, 그리고 부모의 자리까지 끌어 올리는 일을 해 오셨습니다. 그것은 한스러운 타락의 인연을 끊어버리고 만물과 인간과 하나님이 일체의 인연을 맺어 하나님의 기쁨이 인간의 기쁨이요, 인간의 기쁨이 만물의 기쁨이 되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들딸을 만물세계와 천사세계에까지 자랑하고 보여주고 위해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11-279)

 

생각해 보면 구약시대는 예수님이 올 때까지 4천 년입니다. 그때에 축복이라는 말이 있었어요? 하나님 이름으로 가정을 축복할 수 있었어요? 종의 시대였기 때문에 종인 천사장권 내에 있는 것입니다. 천사장은 결혼할 수 없습니다. 독신생활 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가정을 못 갖고, 하나님의 아들딸들이 결혼을 못 했는데 종이 결혼을 할 수 있어요?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9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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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구약시대에는 천사가 하나님 대신 사역했다

 

하나님은 더럽혀진 땅을 다시 회복하시려고 천사들을 통해 인간과 관계를 맺는 구원섭리를 해 나오고 계십니다. 타락함으로써 하나님을 배반한 입장에 있는 인간들, 만물에게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여지없이 떨어진 인간들을 하나님께서 다시 대하시기 위해 구원섭리를 해 나오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탄이 지배하고 사탄이 참소하는 인간을 하나님이 주관하시기 위해 다리를 놓아 역사해 나오신 것이 구약시대를 거치고 신약시대를 거쳐서 지금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1-277)

 

구약시대에는 원래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셔야 하고 하나님의 영광으로써 인간을 대해야 하는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타락으로 말미암아 섭리가 완성되지 못했으므로 슬픔을 품고 제2차로 천사들을 통해 인간들을 대할 수 있는 길을 개척해 나온 것이 구약시대입니다. 하나님은 천사들을 시켜 역사하실 수 있는 기준을 세우셨습니다. 천사 역시 신적 존재이므로 예수가 오기까지의 방편으로 인간에게 하나님처럼 나타나 중보의 사명을 한 것입니다. (1-277)

 

구약시대를 보면, 천사들을 심부름꾼으로 세워 하나님의 자유의 동산, 해방의 천국을 건설해 나왔습니다. 종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해방되는 은사권에 들어가려면 생명을 잃으면서도 즐거워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자유의 심정을 가진 사람만이 종의 자리를 넘어서서 아들의 자리를 찾아 들어 갈수 있습니다. (4-314)

 

여러분, 성경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영계에 있는 천사장을 시키고, 아들을 시키고, 성신을 시켜서 역사해 나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심정을 접속시키는 역사가 아니었습니다. 구약시대에 천사를 시켜서 역사하셨고, 신약시대에는 아들을 세워서 역사하셨습니다. 구약시대는 천적으로 볼 때에 백성을 수습하기 위한 시대요, 신약시대는 자녀를 수습하기 위한 시대였습니다. (10-150)

 

여러분, 보십시오. 이스라엘 민족을 찾아 세우기 위해서 천상세계의 천사들이 와서 일했습니다. 종이 와서 일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아들이 와서 일했습니다. 이제는 아버지가 옵니다. 여러분, 오시는 주님은 아버지로 오십니다. 참부모로 오셔서 참자녀를 거느리고 사랑할 것이거늘, 그때에는 어떻게 될 것이뇨? 여러분은 한 사람을 붙들고 밤을 지새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한 사람을 타락한 세계의 인류보다 더 사랑하시고, 모세 한 사람을 온 인류보다 더 사랑하시고, 예수 한 사람을 온 인류보다 더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딸 한 사람이 얼마나 귀한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10-317)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여호와 신도 천사였습니다. 본래 하나님은 무형의 하나님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인데, 창세기에 보면 세 사람이 하나님으로 나타나 두 사람은 소돔 고모라의 심판을 위해 가고 남은 한 사람이 하나님이 되어 아브라함과 대화하는 장면이 나옵니다(창 18:1-18). 그러나 그들도 하나님이 보낸 천사들이요, 천사를 세워 방편으로 하나님같이 섭리하신 것입니다. 그걸 몰랐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21년 간 도를 닦아 가지고 한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세일 땅 형님이 있는 고향산천을 찾아가는데, 21년 동안 그 한날을 기다렸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기쁨으로 ‘잘 가라. 잘 가라.'고 해야 할 텐데 천사를 보내 얍복강가에서 ‘야, 이놈의 자식아!'하고 씨름을 하게 했습니다. 여기서 천사한테 지는 날에는 21년 동안의 고생이 허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천사를 악착같이 붙잡고 내 손이 빠지기 전에는 놓을 수 없다고 했던 것입니다. 팔이 꺾어지더라도 못 놓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거 얼마나 지독합니까? (51-304)

 

이삭의 손길을 통해 축복해 주신 하나님, 모든 것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가라고 권고하시던 하나님이 어찌하여 야곱이 가는 길을 안내해 주고 가는 길을 평탄하게 해주지 않으셨는가! 또 얍복강가에서 밤을 새워 안타까운 심정으로 하늘앞에 호소하는 야곱에게 권고의 말씀은 해주지 못할망정 오히려 천사를 보내어 야곱을 치게 하는 이러한 비정한 환경이 벌어지게 하셨던가! (3-332)

 

구약시대에 왔다 갔던 우리의 신앙의 조상들은 어떠한 사람들이냐? 하나님 대신, 하나님은 무형의 신이므로 나타나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을 대신해 그 시대에 알맞게끔 그 역사를 재현시켜 인연을 맺게 하기 위해 보내 준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양자의 자리까지 올라가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의 역사적 인연을 연결해서, 개인적인 세계 대표, 가정적인 세계 대표, 혹은 종족적인 세계 대표, 민족적인 세계 대표, 국가적인 세계 대표, 이와 같은 많은 수를 거쳐 올라와 종착점을 대표하는 하나의 대표자로서 전부 결속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77-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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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③ 왜 천사가 인간 구원에 가담하는가?

 

천사는 어떤 존재인가? 종의 입장에서 하나님 앞에 충성의 도리를 다하고 아담과 해와의 울타리가 되어 주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만세토록 하늘세계에 영광된 분위기를 만들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아담과 해와와 함께 행복하게 살아야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천사장은 아담과 해와를 위해 창조된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천사를 창조한 목적은 아담과 해와를 위해서 였다는 것입니다. (15-232)

 

천사장이 타락하여 아담과 해와가 인류세계를 이렇게 망쳤기 때문에 천사세계가 그 일을 대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사세계가 사탄과 대결하고 있습니다. 악한 사탄과 선한 천사가 대결하는 것입니다. 그 싸움에서 선한 천사편이 승리하고 난 후에야 일보 전진이 됩니다.  하나님 마음대로 못한다는 것입니다. 원리가 그렇습니다. (109-9)

 

하나님이 타락하지 않은 아담과 해와 앞에 종으로 세 천사장을 지어 놓고, 아담과 해와를 천사장에게 맡겨 보육하고 보호하면서 기르도록 했습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주체자와 상대적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땅이 주체이고 천사세계가 상대가 되는 주체와 대상 관계입니다. 이중적인 환경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참사랑 앞에 평형적 상대권을 확대시키기 위한 것이 천상천하를 창조한 하나님의 이상이었다는 것입니다. (208-231)

 

아담은 누가 교육해야 되느냐? 하나님이 교육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사장들이 교육해야 됩니다. 보호 육성해야 됩니다. 시집 장가 갈 때 고이 상처 안 입게끔 관리 지도하고 교육해야 할 책임이 천사장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 원칙을 통일교회도 따르지 않으면 탕감복귀 완성이 안 되기 때문에 나는 36가정을 세워 내 아들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121-189)

 

하나님은 생명의 모체입니다. 부모는 그 아이의 생명을 키워 줍니다. 생명의 모체요, 사랑의 모체요, 보호의 모체입니다. 생명을 보호해 주고 사랑해 주고 키워 준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은 어디에서 나오느냐. 보호권이 성립 안 되면 생명이 위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이 위협받으면 사랑도 성립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죽게 되었는데 사랑이 성립되겠어요? 안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호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호권을 만들었는데 보호해야 할 것이 누구냐 하면 천사장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생명의 기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고 천사장의 보호를 받으면서 사랑의 교육을 받고 있는 도중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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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여호와 하나님의 정체

 

  ① 여호와 하나님의 속성

 

모세가 사랑의 하나님을 소개하지 못하고 권세의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을 소개한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어 율법으로 하늘 백성을 보육하기 위함이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몰아가기 위한 복귀의 뜻을 성취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35-260)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은 광야에서 십계와 율례를 받고 법궤를 맨 거듭난 사람만이 가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출애급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재창조하기 위해 주신 것인데 그들이 말씀대로 행치 않을 때 무섭게 초달(楚撻)하고 형벌을 가하는 두려운 신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사탄이 왕노릇하고 있던 구약시대는 메시아가 나타나기까지 마귀가 권세잡은 시대이기 때문에 모세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이 공포의 신, 복수의 신, 질투하는 신으로 나타나 죄의 종이 된 인간을 율법으로 초달하고 법도를 어기면 용서없이 형벌을 가하던 시대가 구약시대입니다.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의 속성을 보면 질투가 강한 신으로 ‘나'이외 다른 신을 섬기면 무서운 질투를 하시는 하나님이었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나안 7족을 아낌없이 진멸하라 지시한 잔인한 하나님이었고 율법과 법도를 어긴 이스라엘 백성을 목전에서 쓸어버린 무자비한 하나님입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사랑의 하나님에게 이렇게 질투와 복수와 공포심과 가나안 7족을 무자비하게 진멸시키는 성품이 있을 수 있어요? 구약시대는 천사가 중보가 되어 하나님 노릇을 대신한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 손은 손, 발은 발, 데인 것은 데인 것, 상한 것은 상한 것, 때린 것은 때린 것으로 갚으라고 하는 복수에 찬 율법주의는 창조주 하나님의 성품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입니다.

모세 앞에도 여러 번 하나님이 나타납니다. 호렙산 가시덤불 속에 나타나 모세를 소명했고, 시내산 영봉에서도 나타나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었습니다. 이날까지 모세 앞에 나타난 여호와가 천사인 줄 모르고 있지만, 신약 사도행전 7장에 두루 보면 천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40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산 광야 가시덤불 불꽃 가운데 보이거늘…. 너희가 천사가 전한 율법을 알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이렇게 구약에 나타난 여호와는 천사이지 하나님이 아닙니다. 구약시대는 종의 시대입니다. 하나님은 아들이 아닌 종에게 아버지로서 나타날 수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물을 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대답을 했다가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이름을 가르쳐 줍니다. 그러나 민족 앞에 나선 모세는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며 여호와 하나님이 조상의 하나님임을 강조합니다. 여호와는 천사입니다. 구약은 종의 시대였으므로 하나님의 바른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시대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싸움을 하라고 그랬어요, 하지 말라고 그랬어요? 사울왕이 전쟁에서 승리한 다음 여자들과 아이들만 남겨놓고 남자들은 다 죽이라고 했는데, 안 죽였기 때문에 벌받은 거 알아요? 그거 왜 그랬다고 생각해요? 사탄 남자를 놔두면 사탄세계가 다시 침범하기 때문에 그런 놀음 하게 한 겁니다.

사탄 남자가 있으면 자기 여편네를 데리고 가 그 놀음 그대로 하니까 그 제도가 남지만, 맥을 잘라 버리면 아기와 여편네는 하늘편에 속하니까 그 제도가 없어지기 때문에 그렇게 하게 한 것입니다. 안 그럼으로 말미암아 이방신을 섬기고 이방의 모든 음란한 풍이 들어와서 하늘나라가 침범받았기 때문에 사울이 벌받은 것입니다. (124-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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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종교에는 신부 종교와 천사장 종교가 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짓기 전에 천사를 지었기 때문에, 오늘날 종교라는 것은 뭐냐 하면 천사세계권을 지상에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그것이 종교세계입니다. 그 종교세계권내에서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 아담을 만들어내는 놀음을 해야 됩니다. 그러면 종교 중에서 세계적 중심은 뭐냐? 그것은 유대교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 유대교는 무엇을 하는 종교냐? 신랑을 소개하는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메시아 사상이요, 구주사상(救主思想)입니다. (50-31)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창조하게 될 때까지는 그 전통적 사상을 누가 이어받았느냐 하면 천사장 입장에 있는 분들이 이어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해와가 생활할 수 있는 새로운 풍조와 전통을 누가 가르쳐 줘야 되느냐 하면, 하나님이 가르쳐 주기 전에 종인 천사장이  주인의 아들딸은 이렇게 이렇게 나가야 된다'고 가르쳐 줘야 되는 것입니다. 주인의 아들딸들이 잘못 나가는 것을 제지하고 잘 나가게끔 선두에 서서 가르쳐 줘야 할 것이 나이 많은 종의 책임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50-181)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은 종교를 세웠습니다. 그 종교가 무엇이냐? 해와의 종교와 천사장의 종교를 세계에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해와와 천사장 때문에 타락했기 때문에 인류는 해와와 천사장의 종교를 가지고 복귀하는 것입니다. 그 길을 통해서 복귀되는 것입니다. 종교는 천사장권의 종교입니다. 백 개, 천 개가 있더라도 다 천사장권에 속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종교가 있지만 그것을 크게 나누면 4대 종교입니다. 그 중심이 기독교인데, 기독교의 주된 사상은 신부(新婦)의 사상입니다. (239-106)

 

하나님만이 참신이시고 다른 존재는 신적 존재인 천사들입니다. 유일신과 다신에 대한 확실한 구분을 하려면 다종교는 신적인 존재, 천사들이 세운 것입니다. 이들 종교 중에 선한 천사들이 인간의 심령과 정신을 고양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 있는데, 이것들이 고등종교이며 하나님은 이 선한 종교들을 통해 인류의 심전(心田)을 개간해 왔던 것을 알아야 됩니다.

천사장 종교는 근본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말세에도 어떻게 되는지 모릅니다. 단지 외적인 수행 개념만을 중심으로 지도해 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세가 되면 보자기를 둘러싸고 주인집에 시중들러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명백한 전통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237-180)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따르던 사람들과 신약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따르던 사람들을 생각해 봅시다. 구약시대에는 원시적인 종교 형태를 갖고 나왔고, 신약시대에는 시대적인 종교를 갖고 나왔습니다. 즉, 말하자면 신약시대는 근대의 20세기 문명까지 연결되어 온 그러한 종교시대입니다.

통일교회는 무슨 종교냐? 통일교회는 원시적인 종교, 시대적인 종교보다 새로운 차원의 미래적인 종교가 되어야 되겠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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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예수님이 부자관계 신관 천명

 

  ① 신약시대는 양자의 시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은 야곱이 승리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로 승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서 종으로 승리한 것입니다. 이래서 종의 종으로부터 종의 위치로 복귀하고, 종의 위치로부터 신약시대에는 양자로 복귀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3절을 보면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양자 되기를 고대한다고 했습니다. 신약시대에 아무리 잘 모시고 잘 믿던 신앙자들도, 목사, 장로, 학박사를 물론하고 전부 다 하나님 앞에서는 양자입니다. 솔직한 얘기입니다. 양자가 되자 그겁니다. 양자라는 것은 혈통이 다르다릅니다. (154-253)

 

예수가 무엇으로 한 단계 올라가느냐? 이 땅 위에 인간이 타락함하여 인류의 조상이 없어졌기 때문에 조상의 자리로 올라가게 되면 이스라엘 민족은 양자의 자리에서 접붙임을 받아 하나님 앞에 상속권을 대할 수 있는 아들의 명분을 갖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서 8장을 보면,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라고 되어 있고,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양자밖에 못 되는 것입니다. 지금 기독교인들은 양자입니다. 양자는 핏줄이 다릅니다. (154-289)

 

양자는 직계의 아들과 다른 것입니다. 양자는 만약 직계 아들이 오게 되면, 밤이나 낮이나 어느때나 서슴지 않고 자기의 모든 전체의 소유물을 직계아들에게 갖다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소유물이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양자의 입장에 서 가지고도, 양자로 택정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직계의 아들이 태어나게 되었을 때 ‘요놈의 자식이 왜 태어났노?' 이러면 안됩니다. 이것은 사탄의 근성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지을 때 천사장이 그 아담을 보고 좋아해야 하는 것입니다. 좋아해야 할 텐데 ‘왜 태어났노?'이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양자는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양자는 아들을 보호해야 되는 것입니다. 직계 아들이 복중에 있을 때에도 ‘아이구 안 태어났으면 좋겠는데…'해서는 안 됩니다. (49-118)

 

양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종보다 나아야 됩니다. 하나님편의 종보다 나아야 되고, 사탄보다 나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사탄은 본래 천사장이었는데 그 천사장은 종이었기 때문에 그 종보다도 낫지 않은 사람은 양자가 될 수 없습니다. 이건 원리적입니다.

그러면 그 양자는 어떤 양자가 되어야 되느냐? 내가 하나님의 상속을 받더라도 그것은 내것이 아니라 당신의 본래의 아들딸 앞에 돌려줘야 할 상속이라는 사상을 가진 양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양자를 만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양자라는 것은 앞으로 올 아들딸을 위해 자기가 죽더라도 생명을 다하고,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시키더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직계의 아들딸이 태어나기를 원하고 그를 위해 준비하는 마음을 언제나 지녀야 된다는 것입니다. 양자의 이름을 세우지 않고는 아들과 상관할 수 없습니다. 천사장보다도 한 단계 높은 중간적인 존재로 출생한 것이 양자다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염두에 두어야 되겠습니다. (89-202)

 

양자라는 것은 혈통이 다른 것입니다. 원래 신약의 출발에 있어 양자로 세워진 것이 누구냐 하면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천사장 대표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아담 앞에서 반대한 천사장이 아니라 아담을 끝까지 위할 수 있는 천사장편 땅 위의 대표자로 세운 것이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받들지 못하고, 예수님과 하나되지 못함으로써 비운의 역사가 벌어졌던 것입니다. (48-54)

 

구약시대와 신약시대가 연결되는 역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약을 믿고 나오는 사람들은 종으로서 양자의 혜택을 받기를 바라는데, 그것이 메시아가 오기를 바라는 이유입니다. 즉 메시아로 말미암아 종의 서글픈 신세를 넘어 양자권의 자리에 나아가는 것이 그들의 소망입니다. 양자의 자리는 직계 아들딸이 없게 될 때, 부모로부터 상속을 받을 수 있는 인연이 성립되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종의 입장을 초월해서 하나님의 뜻을 맞이할 수 있는 혜택을 받기를 바라면서 나오도록 한 것이 종의 구약시대를 지도해 나오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이 종의 신세를 면하고 하나님의 상속을 받을 수 있는 권내에 들어갈 수 있는 특권적인 한 때를 바라고 나온 것이며 그것이 이스라엘의 선민사상입니다. (42-275)

 

만물에서부터 양자적 승리권을 거치고 아들의 승리권을 거쳐 부모의 자리까지 복귀해 올라가야 됩니다.

그래서 신약시대에는 아무리 잘 믿어도 하나님의 아들은 절대 못 됩니다. (48-54)

 

지금까지의 역사를 보면, 구약시대에는 만물을 제물시했습니다. 만물을 희생시켰습니다. 만물을 희생시킨 그 목적을 인간의 해방을 위해서, 인간의 부활을 돕기 위해서였습니다. 만물을 희생시켜 사람들을 찾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만물을 희생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다시 찾기 위해서입니다. 구약시대에는 만물을 제물삼았고, 신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피를 흘리면서 이 세계의 부활권을 향하여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독교를 중심삼은 역사였습니다.

기독교 역사는 예수님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개인, 가정, 혹은 민족, 국가들이 지금까지 희생되면서 제물적 과정을 거쳐 나온 것입니다. (166-275)

 

구약시대에는 모세를 시켜 능력의 하나님을 증거했습니다. 능력의 하나님으로 믿지 않으면 벌을 내렸습니다. 그 다음에 예수 시대에는 자비의 하나님을 소개했습니다. 병자를 고치고…. 예수가 병자를 안 고쳤으면 몰려서 죽지 않았습니다. 병나서 죽는 것은 다 세상의 조상들이 잘못해 그 죄값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걸 왜 살려 놓는 거예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병 고치는 일 했으면 수십만의 병자를 고쳤을 것입니다. 병을 안 고쳐도 우리 말씀 듣고 좋아하게 되면 문둥병도 나을 수 있습니다. 별의별 병이 다 낫는다는 것입니다. (194-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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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양자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

 

구약시대를 지나 신약의 새아침을 맞으면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선언했고, 타락인간들을 양자의 자리로 올려 하나님과 부자의 관계를 지어 주셨습니다. 양자는 핏줄이 다릅니다. 그러나 오신 주님으로 말미암아 접붙임을 받으므로써 아들의 명분을 갖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부자관계의 수립은 예수님이 아니면 그 누구도 이룩할 수 없는 천비(天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때 당시 구약의 관념에 젖은 제사장이나 바리새인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참람한 말로 알아들었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아버지 신관(神觀)은 혁명적인 신관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한 단계 높여 하나님의 사랑을 소개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모세가 사랑의 하나님은 소개하지 못하고 권세의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만을 소개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랑을 소개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소개했고 사랑의 예수님을 소개했지만 당시의 인간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35-260)

 

구약시대는 종의 시대였으므로 하나님의 바른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시대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요, 사랑의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이므로 모든 죄악을 용서하시는 사랑의 아버지입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복수하던 구약시대의 율법은 사라지고 예수님에 의해 원수를 사랑하고 형제의 허물을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시는 사랑의 참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어찌 자식의 허물을 용서해 주지 않겠는가 말입니다.

하나님은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며 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하나님으로 나타난 존재가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복음에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내 안에 거하시니 나를 보았은즉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하나님을 보여 달라 하느냐?" 하고 하나님과 일체를 주장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 - 39)"고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4-296)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받고 하늘이 열린 때부터 승천하기까지는 3년이란 짧은 세월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이 부자지관계의 신관을 천명해 놓고 구체적인 내용은 다 말 못하고 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유대교의 메시아로 와서 세계적 메시아 노정을 개척하다가 죽었다 이겁니다. 그러면 유대교는 어떻게 되느냐? 지금까지 유대교만을 위하는 하나님으로 모시는 그 하나님 가지고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가르쳐 줘야 할 것이 뭐냐? 구약성경에서 가르쳐준 하나님을 그냥 그대로 가르쳐 줘서는 안 됩니다.

신약시대의 하나님으로 가르쳐 줘야 합니다. ‘국가적 차원의 시대를 넘어서 이제는 세계적 차원의 시대로 들어가기 때문에 세계를 흡수하기 위해서는 세계를 위해 공들이는 터전을 닦아야 되겠다.' 이렇게 가르쳐 줘야 할 것이 이스라엘의 국가적 메시아로 온 예수님의 사명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생애를 바쳐 세계적 메시아의 권위를 찾는 것이 예수님의 생애에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105-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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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성약 완성시대는 신인 일체의 시대

 

  ① 참자녀는 혈통 전환, 중생을 거쳐야 한다

 

복귀도상에서 종의 종 시대에서부터 종의 시대를 거쳐 양자의 시대, 직계의 시대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면 완전히 종의 종 시대를 거치고, 종의 시대, 양자의 시대를 거쳐 직계시대와 인연을 맺을 수 있느냐? 직계의 시대와 인연을 맺는 데는 그냥 맺을 수 없습니다. 반드시 원리에 의해 믿음의 기대를 거치고 실체기대를 거쳐 메시아를 맞이해야 합니다. 메시아는 하나님의 참아들입니다. 양자와 참아들은 혈통적인 관계가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혈통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55-189)

 

에덴동산에서 결혼을 잘못한 것이 타락이니, 이제 참부모가 바르게 결혼시켜 줌으로써 다시 뒤집어 놓는 것입니다. 거짓 부모가 저질러 놓은 일을 참부모가 청산함으로써 지옥을 철폐하고 수백, 수천억의 영계의 조상들마저 축복 결혼시켜주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참사랑을 중심한 지상의 후손들의 가정기반을 통해 영계의 조상과 지상의 후손이 종적으로 하나로 합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가정기반을 기점으로 동양과 서양이 서로 연결됩니다.

우리 인간은 혈통적으로 사탄의 핏줄을 받았으니 그 자체로서는 하늘 앞에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메시아는 절대 혈통복귀를 해서 사탄이 더럽힌 핏줄을 개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걸 전환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메시아는 반드시 와야 됩니다. 메시아가 오지 않고는 혈통복귀가 안되는 것입니다. 혈통복귀를 해야 됩니다.

참부모는 무엇을 해야 되느냐? 사탄세계의 뿌리되는 그릇된 혈통을 바로잡아야 되고, 그릇된 생명을 돌이켜 놓아야 되고, 그릇된 사랑의 길을 바로 열어야 됩니다. 성경에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고 했는데, 그런 역설적인 논리가 왜 나와야 되느냐? 사탄세계는 죽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창조 당시 이상으로 바랬던 참된 사랑, 위대한 사랑을 중심삼고 인간과 사랑관계을 맺어 하나될 수 있는 신인애일체(神人愛一體)의 이상을 이루었더라면, 오늘날 우리들은 천국이니 지옥이니 염려할 것 없이 그냥 그대로 천국으로 다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인류 역사를 보면 구약시대, 신약시대, 성약시대, 이렇게 3시대가 있습니다. 여기서 구약시대는 어떤 시대예요? 제물을 희생삼아 자녀를 구제하는 시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올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신약시대는 예수님이 제물이 되어 부모를 맞이하는 시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림시대를 맞이하여 신랑 신부를 세워 부모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해왔습니다. 성약시대에 선생님이 중심이 되어 참부모라는 이름을 가지고 지금까지 40여 년 간 고생해 온 것은 하나님을 지상에 맞이하기 해서입니다. 그래 가지고 신인일체(神人一體)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여러분은 원래 부자관계입니다. 신약시대에는 인간이 하나님의 양자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부자의 관계이기 때문에 아들이 하는 것은 아버지가 하는 것이며, 아버지가 하는 것은 아들이 하는 것입니다. 같이 하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것이 아들의 것이요, 아들의 것이 아버지의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무서운 것은 이러한 부자의 인연을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31-295)

 

구약시대에 물질을 희생시킨 것은 참된 아들이 올 수 있는 길을 닦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는 아들로 와서 희생했는데, 그것은 부모님이 올 수 있는 길을 닦은 것입니다. 부모님이 평면상에 와서 수난길을 가는 것은 하나님을 모셔들이기 위해서입니다. 어느 자리에 오느냐? 본연의 수직의 자리입니다. 천지의 대도의 기원이 여기서 끊어졌기 때문에 이 근본 뿌리를 시정하지 않는 한 평화의 기원이 없는 것입니다. 이건 절대적입니다. (200-7)

 

여러분이 문총재를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문총재의 사명은 무엇이냐? 구약시대는 만물을 희생시켜 아들딸을 찾는 시대입니다. 신약시대는 아들딸을 희생시켜 부모가 올 길을 닦는 것입니다. 부모가 와 가지고 이 땅에서 뭘 하느냐? 하나님이 올 수 있는 길을 닦는 것입니다. 종적 아버지의 수평세계를 만민세계를 넘어서 닦아야 할 것이 참부모의 사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수평의 아버지 심정권이 벌어지게 될 때는 종적인 아버지 심정권은 자연히 여기에 와서 정착합니다. 그래 가지고 종적, 횡적인 사랑을 품을 수 있는 자리에 가게 되면 비로소 세계를 넘어서 하나님이 핵의 자리에 가서 본연의 이상권한을 재차 편성한 것으로써 ‘다 이루었다' 할 수 있는 시대로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168-156)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한 방법은 시대마다 달랐습니다. 즉, 구약시대에는 제물을 드림으로써, 신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성약시대에는 참부모를 모심으로써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20-340)

 

여러분의 아들딸은 앞으로 같은 나라 사람끼리 결혼을 못 시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3대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렇지만 3대 이후에 하나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구약시대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의 결혼은 구약시대입니다. 그 다음이 신약시대와 성약시대입니다. 여러분의 아들딸들인 2세가 결혼하여 낳은 3대에서 전통이 설 것이다 이겁니다. (146-264)

 

성약시대에는 참부모가 희생함으로써 종적인 하나님을 지상에 모셔오는 것입니다. 그게 마지막입니다. 하나님은 인류 앞에 참사랑을 중심삼은 종적인 아버지이고, 참부모는 참사랑을 중심삼고 그 종적인 아버지 앞에 횡적으로 90각도를 맞춘 횡적인 부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횡의 사랑을 중심삼고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생명이 격동되는 것입니다. 신인합덕(神人合德)이 격동되어 참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새로운 혈족이 퍼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됨으로써 인류 역사 가운데 비로소 본연적 원리 기준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출발한 생명의 씨가 지상에 현현하는 것입니다. (208-303)

 

이제는 소유권을 복귀해야 됩니다. 구약시대에는 만물을 희생하고, 신약시대에는 아들을 희생하고, 성약시대에는 부모를 희생해 하나님을 모셨으니, 이제는 뭘 해야 되느냐? 여러분이 어머니 아버지의 대신 자리에 서야 됩니다. 아들딸은 신약시대이고 만물은 구약시대입니다. 이 구약시대, 신약시대, 성약시대가 몽땅 하나님의 참사랑을 중심삼고 벗어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주인이 됐던 것을 전부 다 탕감해 가지고 본연의 주인에게 돌아와서 이것을 바쳐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208-303)

 

성약시대는 이루는 시대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루고, 가정적으로 이루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으로 이루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혈통을 중심삼고 연결되는 것입니다. 단일 혈통, 단일 사랑, 단일 생명의 전통입니다. 이렇게 되면 사탄이 떠나야 됩니다. 접붙이는 놀음을 함으로써 사탄의 혈통적 인연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226-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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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창세 이래 처음으로 하나님 현현

 

  ① 비로소 하나님이 모습을 드러내신다

 

통일교회 시대는 부모님 시대입니다. 하나님이 땅에 임할 수 있고, 하나님이 오실 수 있는 길을 닦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모심으로써 구원을 얻는다는 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역사는 그렇게 발전하는 것입니다. (177-85)

 

최후에 남아질 것은 뭐냐? 하나님 플러스 인간, 신인(神人), 신인의 삶의 길, 신인 생활관입니다. 인생관도 마찬가지로 신인 인생관, 신인 세계관 그것이 막연하게 하나님을 대해 사람이 알 수 있는 정도의 자리가 아니라 사람이 영원히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자리입니다. 왜? 하나님과 사람은 본래 떨어질 수 없는 자리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떨어질 수 없었던 자리 그 이상의 자리에 도달해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서 신인(神人)이 하나된 생활적인 무대, 세계적인 무대를 요구하고 나서야 하는 것입니다. (65-127)

 

하나님은 우주의 중심존재이므로 그 앞에 가까이 가면 천년만년 주관받더라도 더 주관받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모심의 도리가 그렇게 돼 있기 때문에 오늘 우리 인간도 그러한 자리에서 주관받을 수 있으며 그 이상의 행복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습니다. (77-308)

 

이제부터 여러분은 모심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신앙생활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지만 앞으로는 모심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본래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을 모심으로써 우리가 갈 길을 가는 것입니다. 모시는 데는 여러분의 생활과 마음으로 더불어 모셔야 됩니다.

하나님은 절대 아버지이고, 절대 참부모이고, 유일?불변?영원한 참아버지입니다. 그런 아버지는 절대 아들 유일?불변?영원한 부부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런 딸들은 절대 부부, 유일 부부, 불변 부부, 영원한 부부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안착하기 위한 가정은 절대 가정, 유일 가정, 불변 가정, 영원한 가정입니다. 그런 가정이 하나님과 같이 살 수 있는 지상천국의 영원한 기지입니다.

시의(侍義)라고 하는 것은 생활화 천국시대를 말합니다. 그래서 시의를 들고 나온 것입니다. 복귀역사는 뭐냐 하면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재현하는 것입니다. (161-218)

 

하나님을 마음 가운데 모시고, 우리 인간이 몸 자리에서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기원을 만들지 않고는 이 악마의 세계를 청산할 길이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모심의 시대, 시의의 구원시대라고 보는 것입니다. 모심으로써 구원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 공중에 동떨어진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 생활권 내의 주체자로서 하나님을 모셔야 됩니다. (144-231)

 

하나님은 망상적이고 관념적인 하나님이 아닙니다. 추상적인 하나님이 아닙니다. 생활적인 주체성을 지니고 늘 우리가 살고 있는 생활의 주인으로서 함께 있는 것입니다. 모심만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공동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공동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하나님입니다. (168-72)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만든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우리 인간의 형상을 보면 체(體)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형의 하나님은 체가 없습니다. 체를 입지 않고는, 체를 갖지 않고는 영계나 지상 세계를 치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계시더라도 하나님이 인간의 부모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체를 입어야 할 텐데, 그 체를 입는 대표가 누구냐 하면 아담과 해와다 이겁니다. 하나님은 타락하지 않은 아담과 해와의 체를 입고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해와는 인류의 시조인 동시에 천지를 주재하는 하나님이 되십니다. 실체를 가진 하나님, 즉 영원한 무형세계의 하나님의 형상을 대신 입고 나타난 자리에서, 부모의 자리에서 세계를 통치할 책임이 아담과 해와에게 있었다 이겁니다. (133-86)

 

무형의 하나님은 실체가 없으니 그 형체를 대신한 것이 참부모라는 것입니다. 참부모는 개인적인 부모요, 가정적인 부모요, 종족적인 부모요, 민족적인 부모요, 국가적인 부모입니다. 앞으로 영계에 가서도 참부모의 형상으로 하나님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위대한 것이 그겁니다. 레버런 문이 위대한 것이 뭐냐 하면, 레버런 문의 형상을 하나님이 쓰겠다는 것입니다. (98-196)

 

억천만 인간들의 부모가 한꺼번에 살아나더라도 오늘 여러분이 말하는 참부모의 영광을 갖춘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천만대의 선조들이 다 부활해 가지고 부활된 영광을 찬양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타락권을 벗어나지 못한 영광이요 찬양입니다.

그러나 오늘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참부모라는 말은, 여러분의 자리는 비참하더라도 천천만 선조들과 더불어, 혹은 이 땅에 승리를 가져와서 만민 해방권을 갖춘 영광의 자리에서 찬양하는 이상의 가치를 지닌 자랑스러운 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부모님을 만난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이 연결되고, 통일교회를 만난 이 자리는 불원한 장래에 하나님의 나라와 부모님이 원하는 조국을 찾을 수 있는 길이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138-70)

 

성약의 시의시대는 하나님을 직접 생활가운데 모시고 사는 시대입니다. 그때가 하나님의 장막이 인간에게 거하는 때이며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렘이 땅 위에 내려오기 때문에 그때 비로소 참하나님의 모습이 인간들 앞에 나타날 것입니다. 창세이후 처음입니다. 지금까지 아담 타락 이후 미완성급 역사 위에서는 하나님이 나타나실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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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참아버님이 본 하나님

 

 1) 역사적인 원과 한과 고통의 하나님

 

  ① 인간 타락으로 부모의 자리를 잃어

 

우리의 진정한 아버지는 하나님인데, 사탄이 아버지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요한복음 8장 44절에서 예수님은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려 한다."라고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사탄의 피를 받은 분통한 사실을 알았으면 분한 마음이 솟구쳐 내 몸을 칼로 찔러 더러운 거짓 피를 빼 버리고 싶은 의협심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까? ‘이놈의 고깃덩이!'하며 몸을 치면서 분통해 하는 사람이 하늘의 충신입니다. (11-237)

 

최후의 심정의 세계를 연결시킬 수 있는 종교라면 하나님이 제일 불쌍하다는 것을 세밀히 가르쳐 주는 종교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좋고 훌륭한 것만은 아닙니다. 불쌍하고 억울한 하나님, 분통하고 한이 넘치는 하나님입니다. 이것을 세밀히 가르쳐 주는 종교가 나와야 됩니다. 그래야 효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151-73)

 

하나님이 얼마나 분통하냐 하면, 왕좌를 원수한테 빼앗겼습니다. 하나님이 영광의 하나님이 못 되어 설움의 역사를 갖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 나라의 왕으로, 우주의 왕으로 있는데도 불구하고, 왕이 살아 있는데도 죽었다고 천대를 받고 계십니다. 자기의 이상을 겁탈당하고, 자기 사랑하는 아들딸이 다 겁탈당하고 완전히 원수의 농락터로서의 지구성이 돼 버렸습니다. (105-175)

 

지금까지 하나님이 주관할 수 있는 통일된 민족이나 주권국가가 없었기 때문에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위신을 가려 행차할 수 없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원한을 풀어 드려야 할 것이 통일가의 아들딸의 도리요, 통일가의 효자의 도리요, 통일가의 충신의 도리요, 열녀의 도리인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놓아 줄 것이다! 아는 사람은 해방이다! 이것을 똑똑히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56-235)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해 얼마나 눈물을 흘려 봤느냐? 하나님이 하신 수고 앞에 대신 수고하기 위해 사지가 찢기는 길이라도 찾아가려고 발버둥쳐 봤느냐? 못해봤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녀'라는 그 자리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공적인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서 ‘아버지여, 당신의 아들인 나를, 혹은 우리 조상을 잃어버렸을 때 당신의 마음에 얼마나 슬픔이 사무쳤습니까? 그 후손을 통해 지금까지 역사과정에서 당하시던 수욕과 고통과 극난한 일이 얼마나 많았습니까?'라고 위로해 드리면서 무한히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합니다.

전지전능하신 권한으로 온 세계와 사탄까지도 심판해 버릴 수 있는 하나님인데도,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금까지도 그렇게 수고하는 입장에서 손을 대려야 댈 수 없고, 하나님 자신이 가져야 할 환경을 갖지 못한 채 고독단신으로 사탄 앞에 참소받고 사탄세계에 발판을 몽땅 빼앗기고 신음하시는 하나님의 입장을 생각하게 될 때, 기가 막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입장을 동정하면서 얼마나 눈물을 흘려 봤느냐? 문제는 여기에 귀결되는 것입니다. (51-88)

 

세상의 부모도 자기 아들딸이 죄를 지어 교수형에 처해지게 된다면 자식이 죽기를 원하는 부모가 없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자식을 살려줄 수 있으면 백 번 천 번 살려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어머니 마음이 더 그렇지요? 타락한 세계의 여인의 마음도 그런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대관절 무엇 때문에 끝날에 가서 심판을 해버려야 되느냐? 하나님이 왜 용서를 못해 주느냐 이겁니다. 하나님은 얼마만큼 사랑하느냐? 예수가 일흔 번씩 일곱 번을 용서한다면 하나님은 일흔 번 씩 칠천 번 이상 용서해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그렇다는 것입니다. (48-200)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복귀섭리인데, 복귀섭리의 출발이 아담과 해와부터였습니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해서입니다. 선생님이 나타나기 전까지 아담 복귀를 못한 것입니다.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 전지전능하고 이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하나의 남자를 찾기 위해 지금까지 수천만 년을 피조세계에 얼굴을 나타낼 수 없었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사랑과 한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237-7)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하면 창조이상 완성인데, 창조이상은 우리 인간세계에 삼대상권 이상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중심삼고 이상이 실현될 때 하나님이 ‘아이고! 나 행복하다.'이러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엇 갖고 행복하다 하겠어요?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보좌 위에 계시는 만군의 여호와는 전지전능하시니 ‘여보게'할 때 ‘예이'하면 만사가 통할 줄 알지만 언제나 혼자이신 하나님이 얼마나 비참해요? (170-61)

 

사랑하는 아들을 그렇게 죽일 수밖에 없었던 하나님의 딱한 사정을 누가 알았겠느냐? 그것은 성경에 없습니다만, 아들을 죽일 수 있을 만큼 딱한 사정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 기독교의 예수를 믿겠다고 그렇게 아둥바둥 모이는 것도 비참한 일입니다.

모든 선민의 편이 돼야 할 하나님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는 곳마다 피를 흘리고 모가지가 떨걱떨걱 떨어지지 않나, 기름에 튀겨 죽이지를 않나…. 이러한 운명에 부딪치는 것을 보고 ‘아이구, 하나님은 막을 수 있지 않소?' 하겠지만 전지전능하면서도 그 권한의 행사를 참아야 하는 하나님은 얼마나 한이 맺히겠어요? 그거 생각해 봤어요? 그런데 어떻게 해서 하나님이 최고로 높으냐 이겁니다. 언젠가 한번 깨끗이 청산해 버리면 좋겠습니다. (64-202)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은 생명을 투입하고서라도 보호하고 싶은 것입니다. 본래 창조이상이 그렇습니다. 하나님 자신도 아들딸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 생명까지 투입해야 되는 슬픈 하나님이 된 것입니다. (206-7)

 

타락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창조주로서 영원한 주인이 될 것인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주인이 되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사대부의 집 담 안에 숨어 있던 딸이라 하더라도 그 동네의 깡패 자식이 겁탈해서 사랑관계를 맺었다면 그 딸이 누구의 것이 돼요? 깡패 것이 되지요? 딱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하늘나라의 왕이 될 수 있는 아담이었고, 하늘나라의 왕후가 될 수 있는 해와였습니다. 이것을 복귀하는 데는 창조의 원리원칙을 중심삼고 해야 합니다. 원래 아담과 해와를 중심삼고 영원한 사랑의 법도를 세웠기 때문에 그 법도를 따라야 합니다. 그 법도를 부정하게 되면 천리를 파괴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물론 하나님 자체까지 부정당할 수 있는 입장에 들어가게 됨으로 말미암아 할 수 없이 재창조 과정을 통해서 수습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한많은 역사노정을 누가 알았습니까? (207-216)

 

오늘날 기성교회는 ‘하나님이 영광 가운데 있는 심판주로서 지옥 보내고 천국 보낸다.' 하지요? 세상에 제일 불쌍한 분이 하나님입니다. 제일 비통하게 몸부림치면서도 광명한 천지가 흑암의 지옥으로 떨어질 수 있는 그것을 극복하고 거기에서 몸을 가누어 눈을 뜨고 의식을 갖추어서, 죽었지만 이놈의 자식들을 다시 살려 놓겠다 하는 마음을 가지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창조주의 능력, 절대자의 힘이 있었으니 그것이 가능하다 생각하지, 그렇지 않으면 다 끝장나는 것입니다. (232-59)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나님은 본연적 참부모의 자리에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참부모가 되어야 할 하나님이 부모의 자리를 빼앗겨 버렸기 때문에 창조이상의 본연적 기준에서는 없었던 일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이 창조적 세계에 있을 수 없는 것이 생겨난 것을 창조주되신 하나님은 간섭할 수도 없고 그걸 책임지고 소화할 수 있는 입장에도 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240-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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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복귀의 한, 자녀 찾아 6천 년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원죄를 뭐라고 그러나요? 사랑을 잘못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혈통이 연결되어야 될 것인데, 악마의 사랑과 악마의 생명과 악마의 혈통이 연결되어 버렸습니다. 아담과 해와가 악마의 생명체가 돼 가지고 악마의 핏줄을 남겼기 때문에 지금까지 한스러운 역사가 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같이 전지전능하시고 천지를 근본부터 창조하여 모든 자주적인 권한을 소유하신 분이 어찌하여 악마 앞에, 역사를 통해 인간을 요모양 요꼴로 만들었어요? 그러니까 신이 없다는 결론은 당연한 것입니다. (211-7)

 

지난날은 사연이 많습니다. 분하고 억울한 사연이 많다는 것입니다. 내 성격에 참을 수 없었던 기가 막힌 사연이 많았지만, 혀를 깨물고 가인의 세계를 점령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가인의 개인이 아니요, 가인의 가정이 아닙니다. 가인의 세계를 소화해야만 됐습니다. 써! 얼마나 쓰냐 이겁니다. 빙산만한 쓴 것을 녹여야 됩니다. 입에 넣고 하나님을 망하게 하고 인류를 망친 억천만세 원한의 대원수인 악마, 이 악마를 말없이 굴복시켜야 됩니다. (163-126)

타락한 인류의 시조는 악마가 아버지가 됐습니다. 사탄의 사랑, 사탄의 생명을 받았기 때문에 구원역사가 힘듭니다. 기독교에서 전지전능하다는 하나님이 왜 무력한 하나님같이 되어 인류가 망살이 뻗쳤는데도 손 못 대고 있어요? 죽은 하나님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인간 자신이 그걸 해결할 수 있는 해방권을 갖추지 않고는 하나님은 인간을 해방해 줄 수 없습니다. 해방해 줄 수 있으면 애초에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해와를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하나님이면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해와를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쫓아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224-7)

 

하나님이 찾는 참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참다운 사랑을 찾아오십니다. 구원섭리역사, 복귀섭리역사 전선에서 찾아 나오는 참된 아들로서, 지금까지 때묻고 상처 입고 비통한 하나님의 가슴을 활짝 펴 주고도 남을 수 있는 여유만만한 순결한 사랑이 폭포수와 같이 흘러나와, 하나님이 그를 안고 만사를 잊어버리고 도리어 타락이 있었기에 더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자리는 없겠는가? 남자라면 누구든지 그래야 됩니다. (127-9)

 

악마는 하나님에 대해서 하는 말이 ‘당신의 창조이상을 중심삼고 사랑의 절대권 이상인 참된 단일 종족권을 만들기 위한 사랑의 혈통권이 이와 같이 다 망해서 파괴상태를 맞았는데도 불구하고 지금도 창조이상적 논리가 적용된다고 하시겠습니까?'하고 비웃고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얼마나 기가 찰 노릇입니까? 본래 주인의 아들이 되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원수의 아들이 되어 벗어나려야 벗어날 수 없는 도탄중에 빠져 있는 인류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비통해 하시는가를 확실히 아는 기성교회 사람들이 있느냐는 말입니다. (201-339)

 

인류의 부모로 오셨는데 부모로 모시지 못하고 자기 위해 피흘려 죽으러 왔다는 부모가 있을 수 있어요? 사랑잔치를 베풀어 ‘아이고 내 아들아, 내 딸아! 가정이야 나라야!'하며 천하가 다 화합할 때 하나의 평화와 영광의 한날을 찬양하여야 할 입장에 있는 부모가 잃어버린 자식과 상봉해야 할 텐데, 만나서는 자식의 손에 의해 칼침을 맞아 죽어 갔다니…. 생각해 봐요, 예수님이 얼마나 비통한가. 무지한 이 인류를 대해 가르쳐 줄 수 없는 사연 가운데 묻혀 있는 하나님의 심정이 얼마나 기가 막혔겠는가? (145-127)

 

분통한 역사적 한이 선생님께 있습니다. 나의 한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노릇을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숱한 사연을 남긴 역사과정에 하나님의 뼛골이 녹아나는 비통한 눈물과 흘린 핏자국이 이 땅에서 함성을 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해원성사해야 할 사명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이 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137-126)

 

타락한 세계를 책임지고 복귀해 나오시는 하나님은 높고 귀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곳에만 계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고, 형용할 수도 없는 비참하고 비통하고 참혹한 배후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21-73)

 

여러분은 자기보다 더 분한 입장에 있는 사람이 위로하게 될 때는 위안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누구보다도 더 비통함을 겪고 계시기 때문에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을 위로할 수 있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시작도 하나님 자신이요, 끝도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에 그 마음 가운데 맺혀 있는 원한을 어떻게 풀 것이냐 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하나님의 내정적인 사정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정을 품고 지금까지 복귀섭리를 해 나오신 것입니다. (29-292)

 

하나님이 보고 싶어서 울어 봤어요? 눈물, 콧물을 흘리며 목젓이 처지도록 울어 봤어요? 그렇게 눈물 나오는 억울하고 비통한 자리에 들어가 봤어요? 이게 다 심정세계를 넘어가는데 한 고개가 되는 것입니다. (49-255)

 

인간과 영원히 같이 있어야 할 하나님이 인간과 갈라설 때 그 비통함과 억울함과 분함과 서러움이 얼마나 크셨겠느냐? 인간은 온 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사랑의 기지를 바라 성숙해 가지고 평형선상(平衡線上)에서 종횡이 결합할 수 있는 하나의 축을 이룩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랬으면 그것이 기준이 되어 천지의 모든 존재, 모든 만물의 측정 기준이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

그 사랑에 인연된 모든 것은 어디서나 다 맞게 되어 있습니다. (149-213)

 

악마는 4대를 유린했습니다. 왕후로부터 그 위로 대비마마, 그 다음에 또 왕의 할머니, 그 다음에는 딸, 이렇게 4대가 전부 살아 있는데, 그들을 왕의 눈앞에서 시퍼런 대낮에 발가벗기고 다 유린해 버렸습니다. 그 다음엔 그들을 다 때려죽였습니다. 딸까지 유린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원수를 처단 못하는 하나님의 비통한 사연을 알아야 됩니다. (200-7)

 

하나님이 원통한 게 뭐냐? 그릇된 핏줄을 받은 것입니다. 거짓 혈통을 여러분이 물려받았습니다. 기원은 사탄입니다. 사탄이란 존재는 모든 피조물을 망쳐 놓는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우주, 그와 같은 소유권, 그와 같은 핏줄이 여러분에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보고, 생각하고, 냄새맡고, 말하고, 만지고 하는 모든 오관의 뿌리는 사탄편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조상들이 아주 나쁜 부모의 열매입니다. 그런 것을 하나님이 구하겠다니 하나님이 참 불쌍하지요? 아담과 해와를 집어치우고 아담과 해와를 다시 왜 못 만들어요? 만들 수 있지만 본래 영원한 참사랑을 중심삼고 영원한 인연으로 지었기 때문에 못하는 것입니다. (216-7)

 

하나님의 비참함을, 하나님이 얼마나 원통한 자리에 있는지를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내가 만들지 않았으면 저렇게 안되었을 것을, 사랑 찾아서 영광의 천국을 바라 나가던 것이 이럴 수가!'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악마의 피살을 받았습니다.

악마의 사랑이 뿌려졌고, 악마의 생명, 악마의 핏줄이 거기에 있으니 이걸 빼버리지 않고는 하나님이 소유할 수 없는데, 그걸 빼버리면 죽어버립니다. 그걸 놓고 서서히 새로운 혈관과 생명과 사랑을 주입하여 제2의 창조물, 구원물로 하나님과 같은 대신자를 찾아 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원수를 사랑해 주어야 됩니다. 그 원수를 참고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212-14)

 

하나님이 언제 해가 떠오른다고 쉬고, 기후가 좋고 계절이 좋다고 해서 쉴 때가 있었습니까?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수를 사랑해야 됩니다. 세상 천지의 배후에 있던 사탄을 사랑하고 가야 됩니다.

하나님 아들의 거룩함을 내가 찬양하고 그 놀라운 가치를 지닌 것을 알진대, 그 가치 앞에 비참하고도 쓰라리고도 원통하지만 가야 할 한 길이 있나니 그것이 대원수를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12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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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들딸 잃은 충격, 슬픔의하나님

 

  ① 영원한 독자를 잃은 하나님

 

순수한 본질적인 사랑을 지닌 하나님 앞에 이상적 대상으로 그리던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여 떨어져 나갔을 때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슬펐겠어요? 어떤 인간보다도 지극히 슬펐을 것입니다. 지극히 지극히 비통했을 것입니다. 그 내용이 깊고 가치있는 내용일수록 비참 중의 비참이다 이겁니다. 그런 하나님이 잃어버린 자식들을 다시 찾기 위해 복귀의 길을 더듬어 나서는 것입니다. (127-9)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을 그렇게 믿고 있는데도 자식이 배반할 때, 그 믿음에 비례해서 부모가 받는 충격과 고충, 그리고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또한 생명을 걸고 서로 사랑했던 사람이 배반하고 배척하여 불신할 때도 역시 말할 수 없이 비참합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몸부림치며 겪는 고통은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모릅니다. 말만 가지고는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은 세상일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되어 비참해졌느냐? 하나님은 막연한 하나님이 아닌 구체적인 하나님입니다. 우리 인간과는 최고의 관계를 가진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 있다면, 인간과 더불어 기쁨으로 출발해서 끝이 없는 영원을 향해 계속 나아갈 수 있는 그런 출발의 기점을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출발의 기점을 인간으로 인해 잃어버렸습니다. 그것이 아담과 해와의 타락입니다.

세상에서도 부모가 환갑이 넘어 낳은 만득자(晩得子)인 7대 독자(七代獨子)가 죽는다고 생각하면 절망 중의 절망일 것입니다. 젊으면 또 낳을 수 있지만 만득자로 태어난 7대 독자가 죽는다면 7대권을 계승하려던 조상들의 마음이 얼마나 애가 타겠습니까? 조상들은 자기의 후손, 자기의 핏줄을 통해 세계에 없는 만복을 받고 싶어합니다. 그러니 자식이 죽는다면 부모는 따라 죽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은 7대 독자가 아니라 영원한 독자(獨子)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담을 가정을 이루게 하여 창조의 대업을 이룬 자리에 세우려 하였는데, 그 아담이 죽었으니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이렇게 일이 틀어졌을 때 어떠했겠습니까?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의 타락으로 6천년 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십니다.

원래 창조원칙을 보면, 사랑 일체 이상권 내에 나가게 되면 영원한 소유주가, 사랑을 중심삼은 주체자가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런 중심이 되어야 했는데 사탄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천지(天地)가 지천(地天)이 되고 전부 거꾸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참된 이상으로 바라던 사랑이상, 참된 사랑을 중심삼고 일체된, 한 몸이 된 것은 가를 수 없어야 할 것인데, 그 핏줄도 하나님의 직계 자녀가 되어야 할 것인데 그것이 틀어짐으로 말미암아 반대가 됐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비참상을 매일매일 시간시간 바라보는 그 하나님의 심정이 어떻겠느냐? 내 아들이 그렇게 병신이 됐다 할 때, 왕자 왕녀의 영광을 찬양해야 할 존재가 똥구덩이가 돼 가지고 지옥으로 거꾸로 꽂혀 버렸다 할 때, 전지전능하다는 하나님의 위신이 뭐가 돼요? 절대적인 하나님의 위신이 뭐가 돼요? 그 얼굴을 들 수 있겠어요? (218-227)

 

아들이 희생되면 아버지가 아들을 죽으라고 내버려 두던가요? 이런 관점에서 사랑의 하나님은 사랑의 대상인 우리를 죽을 자리에 내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면 이상적 세계를 만들어서 부활시켜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두고 볼 때 그것은 가능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럴 수 있는 자리에 계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를 그러한 이상적인 부활권으로 옮겨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죽을 수 있는 곳, 비참한 곳에 우리 인간을 살도록 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을 고차원의 세계로 데려가기 위한 하나의 관문으로 그런 곳을 두었다면 야, 그거 멋진 일이다 이겁니다. (67-212)

 

창조주의 위신까지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위신까지도,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하나님의 실존성까지도 잊어버리고, 그런 심정으로 아담과 해와를 사랑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타락한 아담과 해와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했겠느냐, 이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7-285)

 

오늘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의 아들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울어도 본체만체 합니다. 아무리 슬퍼해도 본체만체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사탄의 혈육을 받고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슬퍼하는 것을 보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망하는 것을 보면 좋아하며 웃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인간을 놓고 지도하고 개척의 방향을 가르쳐 주려니 얼마나 수고로우실 것이냐? 하나님에게 위하는 마음,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이 없었더라면 지금까지 섭리역사를 붙들고 나오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4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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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하나님의 역사적 비참상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계신다면 얼마나 분개하겠는가? 이 만민은 자신의 혈통적 후손이어야 하는데, 악마가 비참한 경지에 밀어 넣고서 ‘당신의 후손은 이렇게 처참한 입장에 처해 있다.'고 하며 하나님을 대해 조소(嘲笑)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또 ‘전지전능한 하나님인데 이 환경을 어떻게 수습하겠습니까?'라고 할 때 하나님은 침묵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들으면서도 듣지 못한 척하고, 냄새를 맡으면서도 맡지 않는 척하고, 느끼면서도 느끼지 않은 척해야 하는 하나님의 역사적 비참상을 여러분 생각한 적이 있어요? (183-9)

 

오늘날 기성교회에서 믿듯이, 전지전능하고 영광의 보좌에 앉은 하나님이라면, 자기 아들딸이 죽어가는데 그 보좌 위에서 ‘야, 이리 올라오너라. 내가 자리를 뜰 수 없다!' 그러겠어요, 보좌고 뭐고 집어던지고 내려가겠어요? 어떤 거예요? 그냥 있겠어요, 내려가겠어요? 왕관을 벗고 뛰어 내려가겠어요? 어떻게 하겠나 생각해 보라구요. (123-150)

 

하나님이 소리를 질러 울부짖으면서 ‘내 아들아! 내 딸아!' 하고 부르시기를 몇만 년, 몇십만 년, 몇백만 년을 해 나오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런 하나님 앞에 ‘아버지이-!' 하고 목이 쉬도록 불러 봤어요? 혀가 말리고, 숨이 막히고, 눈이 감겨 뜰 수 없을 만큼 간절히 아버지를 불러 봤어요? 생명의 주체되는 그 가치를 품기 위해서 얼마나 뒤넘이쳤느냐 이겁니다. 그 뒤넘이친 비례의 기준으로 여러분의 인격의 기준이 측량되는 것입니다. (184-192)

 

우리는 전지전능하신 그분을 대할 수 있는 아무런 내용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타락한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의 눈은 속된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오관 감정은 전부 속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도 없지만, 공의의 법을 가지고는 상대할 수 있는 내용이 절대 없지만, 사랑의 법을 가지고는 대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연한이 깊어갈수록 사랑의 철학을 가지고 살고, 사랑의 철학을 가지고 모든 것을 분별하면서 사는 신앙인이 돼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10년이 지나고 20년, 30년의 생을 거치면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자동적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149-9)

 

하나님이 수천 년 동안 복귀섭리를 하시면서 수난길을 거쳐온 것은 하나님이 마음이 좋아서 참고 나온 것일까요? 하나님이 지금까지 인류 역사 수만 년 동안 구원섭리를 해 나오면서도 아직까지 지치지 않고 계속하는 그 원인이 어디 있느냐?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그렇다? 아닙니다. 사랑의 길을 찾아 나오기 때문에, 사랑의 아들딸을 찾아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년을 하루와 같이 수난길을 넘고 넘을 수 있는 위대한 힘은 사랑이었느니라! 그거 맞아요? 맞습니다. (109-263)

 

하나님이 불쌍해요, 불쌍하지 않아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불쌍하시냐고 하겠지만 아무리 전지전능하다 하더라도 사랑하는 아들딸을 잃어버린 충격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하나님 자신에게 있다면, 하나님은 지금까지 6천 년의 역사노정을 거치시면서 고생하실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35-77)

 

인간이 죄를 지었다고 해서 ‘야, 이놈아, 왜 죄를 지었느냐?'라고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죄지은 사정을 잘 아시는 하나님입니다. 당신의 사정은 생각지 않고, 인간의 사정을 알아주려는 하나님입니다. 슬픈 자에게는 슬픈 사정을 갖고 찾아 오셨고, 고통받는 자에게는 고통의 사정을 갖고 찾아 오셨고, 억울하고 분통한 자에게는 억울하고 분통한 사정을 갖고 찾아 오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어느 정도 사정을 통해 보았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생활환경 가운데도 그렇게 찾아 오셨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심정을 갖고 찾아 오셨습니다. 너는 나를 배반해도 나는 네 아버지라는 마음이 있기에 6천 년이란 세월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9-219)

 

통일교회는 뭐냐? 하나님의 심정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해방하자 하고 있습니다. 기성교회는 그런 말 한다고 우리보고 이단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잘난 대통령이라도 자식이 죽었다면 그 죽은 자식 앞에 대통령의 권위를 가지고 ‘아들이 죽었으나 대통령은 눈물 흘릴 수 없다.' 그래요? 구석에 들어가서 코를 박고 통곡하고 나와서 쓱 쓸고 그러면 통하지만, 그러지 않으면 죽은 아들 영이 ‘애비 이거… 애비가 아니었구만.'할 것입니다. 죽은 영이 살아 있다면 그 애비를 도와주겠어요, 반대하겠어요? 세계 대통령이 됐든 누가 됐든 자기가 사랑하는 자식이 죽었을 때는 눈물을 흘리고 다 그래야 됩니다. (196-9)

 

인간의 창조본연의 특권적인 가치를 상실해 버리고 타락의 구덩이가 되어 허덕이는 무가치한 인생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내정적 심정이 얼마나 비참하겠어요? 저놈의 자식들이 본래는 내 사랑과 내 생명과 내 혈통을 통해서 직계 자식이 되어 하늘나라의 영광을 차지할 것인데, 패자의 탈을 쓰고 신음과 고통과 탄식과 절망 속에서 허덕이다 생명을 끊는 자리에 있으니 그것을 바라보는 하나님이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그런 하나님은 슬픈 하나님인 것을 몰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총재는 하나님을 알고 나서 몇날 몇 주일을 통곡했습니다. 통일교회의 출발에는 그런 깊은 사연이 있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211-132)

 

하나님의 마음 속에 고통이 있는 줄 아무도 모릅니다. 역사상에 나타나시고 지금 여기에 선생님을 통해 나타나셔서 그 깊은 사명을 밝혀 냈으니까 알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모른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예수님도 그것을 몰랐고 알았다고 하더라도 마음에 있는 것을 말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종교 지도자 중 그 누구도 그와 같이 숨겨진 우주의 비밀을 알지 못했습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 앞에 선생님이 나타나서 우주의 비밀이 밝혀진 것입니다. (215-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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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구속되신 하나님, 영어의 하나님

 

  ① 하나님이 설 자리를 잃었다

 

나의 한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나님노릇을 못 하고 있습니다. 이런 숱한 사연을 남긴 역사과정에 하나님의 뼛골이 녹아나는 비통한 눈물과 흘린 핏자국이 이 땅에서 함성을 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한을 해원성사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이 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137-126)

 

하나님을 해방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지금 사랑을 중심삼고 구속되어 있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해방을 못받았다는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우주를 창조한 하나님께서 인간 때문에 사랑을 중심삼고 이루시려던 이상세계를 사탄에게 빼앗겼으니, 하나님도 심정적인 해방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적 해방기반이 이 우주에 생겨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구속당했습니다. 사랑하는 자식이 죽었는데 부모가 편안할 수 없는 것입니다. (138-240)

 

하나님을 내 손으로 해방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해방된 하나님이 아닙니다. 구속된 하나님입니다. 아들딸을 잃어버린 부모, 더더욱 효자가 죽고 난 후에 부모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그 효자 이상의 모든 면을 갖추어 십 배 이상 공을 들여 효를 하더라도 그 본래의 마음을 해방할 수 없는 것입니다. 레버런 문이 그런 하나님을 해방하려는 것입니다. (135-266)

 

분통한 하나님, 하나님이 왜 분통할까요? 인간 세계에는 청춘시절에 수고를 하면 반드시 미래에는 희망이 보장되는데, 하나님은 역사 이래 지금까지 고생하고 있는데 언제 희망이 있어요? 언제 하나님의 희망이 이루어지겠어요? 하나님이 젊은 하나님이 됐겠나요? 지금은 늙은 하나님이 됐겠나요? 하나님이 몇 살 됐을 것 같아요? 하기야 하나님은 우주 바깥에 있기 때문에 연령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지구성같이 태양계를 일년에 한 바퀴씩 도나요? 그 바깥에 있으니 셀 것이 없습니다. 계산할 게 있어요? (105-175)

 

하나님이 얼마나 분통하냐 하면 왕좌를 빼앗겼습니다. 왕좌를 원수한테 빼앗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 못 되어 설움의 역사를 갖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나라의 왕으로, 우주의 왕으로 있는데도 불구하고, 왕이 살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왕이 죽었다고 천대를 받고 계십니다. 자기의 이상을 겁탈당하고, 자기 사랑하는 아들딸이 다 겁탈당하고 완전히 원수의 농락터로서의 지구성이 돼 버렸습니다. (105-175)

 

만민이 탄식권을 벗어나지 아니하는 한 부모의 입장에 선 하나님은 탄식권내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자식이 근심하고 있는데 부모가 편안한 자리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해방시켜드려야 됩니다.

무엇으로 하나님을 해방시켜드려야 되느냐? 하나님이 만민을 사랑하지 못하는 구속권내에 있기 때문에 만민을 대해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는 해방권을 하나님 앞에 찾아드려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타락한 사람으로 저끄러졌기 때문에 타락선을 넘어선 승리한 아들딸이 되어 해방시켜 드려야 됩니다. (65-9)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무엇이 어떻게 됐습니까? 하나님이 자유로운 하나님이 못 됐습니다. 구속의 하나님이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인류 시조가 구속되어 버렸습니다. 그 다음엔 천사세계까지 구속되어 버렸다 이겁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역사적인 수많은 종교인들이 구속권 내에서 허덕이고 있습니다. 인류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79-9)

 

불효자식을 가진 어버이는 그 불효자식으로 말미암아 구속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어버이를 해방하기 위해서는 불효된 이상의 효성을 다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대중 앞에 공인을 받아야 됩니다. 그래야 옛날의 죄를 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리입니다.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뭐 ‘선생님만 위해서….'하는 것은 다 필요 없습니다. 이웃과 이 나라, 이 민족은 불쌍한 무리들입니다.

5천 년 동안 "초가삼간 집을 짓고 양친부모 모셔다가 천년만년…." 양친부모 모신다는 말은 고맙지만 천년만년 초가삼간에 살아요? 불쌍한 민족이란 것입니다. 이 불쌍한 민족을 올바로 지도해야 됩니다. 돈 없고 갖추지 못한 이 민족이 하나님의 복마저 못 가지면 어디에 가서 살 거예요? (85-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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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하나님이 하나님 노릇 못하고 있다

 

통일교회는 언제까지 남아지느냐? 지구성을 해방하고, 영계를 해방하고, 나중에는 하나님을 사랑의 심정으로 해방할 때까지 통일교회는 가야 됩니다. 결국은 인류를 해방하고, 영계를 해방하고, 하나님을 해방해야 됩니다. 이런 말을 처음 듣지요? 하나님이 우리를 해방해 줄 줄 알았더니 하나님을 우리가 해방해야 됩니다. 심정적으로는 하나님이 구속되어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85-224)

 

사랑하는 부모 앞에 불효자식이 있으면, 그 불효자식이 부모님이 바라는 소망의 기준까지 해방될 수 있는 자리에 올라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는, 그 부모의 심정의 해방권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에게 있어서 최고의 사랑의 상대로 지은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사랑의 상대인 동시에 종적인 면에서는 부자지관계요, 횡적인 면에서는 부부적인 내연이 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중심삼고 천지의 모든 사랑 이상을 실천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으로 그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까지도 구속의 하나님이 돼버린 것입니다. (210-306)

 

천국을 이루어서 살지 않는 사람은 천국에 못 가는 것입니다. 내가 감옥에 들어가 쇠고랑을 차는 자리에 서더라도 나를 구속할 수 없는 사랑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허리를 구부리고 잠을 못 자는 자리에 있을 때 밤에 일어나면 손에서 빛이 나더라 이겁니다. 왜 빛이 나요? 하나님이 품어 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걸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두운 방에서도 빛이 나더라 이겁니다. 내가 신음소리와 울음소리를 듣고는 감방 저 밑에서 숙연히 있으면 그 다음날 아침에는 전부가 미싯가루 보따리를 나에게 갖다 주더라 이겁니다. 거리를 넘어서 ‘아무 감방 아무개 몇 호한테 네가 이걸 갖다 주지 않으면 이 감방 전체가 편안치 않고 너의 집안이 편안치 않으니 갖다 주라'하는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니 이런 하나님을 박대하는 배은망덕한 통일교회 무리가 돼서는 안 되겠습니다. (137-128)

 

‘인류 때문에 하나님이 구속을 받고 있구나. 나 때문에 하나님이 구속을 받고 있구나. 나라는 한 개체 때문에 하나님이 사탄의 참소를 받고 있구나. 나 때문에 예수도 죽었구나. 나 때문에 성신이 피어린 투쟁의 역사를 붙안고 뒤넘이쳐 나오는구나. 하나님이시여, 저에게 힘을 주시옵소서. 아버지를 안식시켜 해방의 자리에 옮겨 드리겠습니다. 예수도 성신도 해방의 자리에 옮겨 드리겠습니다.'할 수 있는 신앙에 주린 자, 소망에 주린 자, 사랑에 불타는 자를 하나님이 6천 년 동안 찾아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7-150)

 

하나님과 사탄이 싸우면 누가 말릴 수 있어요? 그냥 싸움이 끝나요? 하나님 앞에 효자가 없었고, 하나님 앞에 충신의 도리, 성인의 도리, 성자의 도리를 다하면서 하늘 나라를 지킬 수 있는 주류 사랑의 체제가 없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이 설 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영어(囹圄)의 몸으로 연금상태에 머무른 하나님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완전히 폐허가 되고 비어 있습니다. 그런 아픔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입니다.

그래 하나님이 찾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만나 봤어요? 타락했기 때문에 못 만나 봤습니다. 하나님이 찾고 있는 어머니 아버지 만나 봤어요? 하나님이 찾고 있는 아내 남편 만나 봤어요? 하나님이 찾고 있는 아들딸 만나 봤어요? 이 한스러움을 어떻게 풀 것이냐? 이 심정을 구속하는 철망을 누가 끊을 것이냐?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 외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본질적 사랑 외에는 없습니다. (209-64)

 

하나님은 모든 면에서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분인데, 비법적인 사랑이라는 조건 때문에 손댈 수 없는, 그 한스럽고 슬픈 하나님의 마음, 기가 막히게 지루함을 누가 알아요? (197-275)

 

기성교회에서는 ‘오! 거룩 거룩하신 하나님, 오! 영광의 하나님, 나에게 복을 주십시오.'하는데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비참한 하나님입니다. 구속 가운데 있는 하나님입니다. 아들을 잘 낳아가지고 해방받아야 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운명은 처량한 운명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하나님을 해방시켜 드려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천도가 바로잡히지 않게 되니, 이 땅 위에 이상세계가 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로잡기 위한 역사가 통일교회의 역사요, 통일교회의 사명입니다. (22-117)

 

통일교회 말씀. 통일교회 내용, 귀로 듣는 내용 가운데에는 뭐가 있느냐? 심정적인 구속을 받고 있는 하나님을 해방시킬 수 있는 내용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탄식하셨다고 했습니다.

탄식의 역사는 출발부터 세계적으로 온 것이요, 세계적이 되었기 때문에 바울은 말하기를 ‘만물이 탄식하고 우리 조상들도 탄식하고 전인류까지 탄식한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뭇아들딸이 나타나기를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탄식권을 벗어날 것을, 가려갈 것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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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사탄을 처단하지 못하는 이유

 

  ① 사탄이 참소하는 이유

 

오늘날 신학적인 입장에서도 본래부터 사탄 마귀가 있었느냐 없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만일에 본래부터 사탄이 있었다면 문제가 크다는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6천 년 동안 반항하면서 그것을 막아나온 능수능란한 사탄이 원래부터 있었다면, 이 사탄을 퇴치하고 제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느냐? 문제가 됩니다. (54-56)

 

사탄이 어디에서 생겨났느냐? 생각할 때 어떤 사람들은 본래부터 있었다고 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반대하고 본연의 인류 시조를 타락시킨 사탄이 본래부터 있어서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면, 사탄이 있는 한 우리 인간의 완전한 구원은 바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이원론이 되고 두 목적을 가진 세계는 영원히 계속된다는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53-327)

 

원래 하나의 뜻으로 세웠던 창조이상 세계를 타락으로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 분이기 때문에 모든 외적인 세상이 변하더라도 스스로는 절대적으로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악마한테 아담과 해와를 빼앗기고 모든 만물은 넘겨주었지만,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이기 때문에 본래 천사장인 사탄 마귀까지도 자연굴복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지만 없는 것과 같은 입장에서 절대적인 하나님의 권위를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악한 사탄을 칠 수가 없습니다. 선한 하나님이 악한 사탄을 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210-306)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사탄을 대번에 치워 버리지 못하느냐? 그걸 치워 버리려면 아담과 해와 창조한 것까지 다 치워 버려야 된다는, 사랑 이상권을 폭파시켜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주인에게는 한 번 하겠다고 한 것은 절대적으로 완성시켜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사스러운 악마가 아무리 공격하고 아무리 핍박한다 하더라도 세우신 도리를 회복해 놓기 위해서 역사를 품고 나오시는 주인된 분이 하나님이란 것을 누구도 몰랐습니다. (208-231)

 

그런데 전지전능하시고 절대적인 하나님께서 왜 지금까지 인류가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하고 사탄의 발 아래 희생시키면서도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행사조차 못하는 하나님이 되었느냐? 이건 심각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치리할 수 있는 나라가 없기 때문이요, 하나님이 다스릴 수 있는 백성이 없기 때문이요, 하나님이 다스릴 수 있는 종족이 없기 때문이요, 하나님이 다스릴 수 있는 가정이 없기 때문이요,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공인할 수 있는 개인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개인이 성립되고, 그 가정이 성립되고, 그 종족이 성립되고, 그 민족이 성립되고, 그 국가 주권이 성립되면 일시에 악한 나라, 악한 국민, 악한 종족, 악한 가정, 악한 개인을 치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선한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권위가 있는 것입니다. (56-235)

 

여러분, 사탄을 이길 수 있어요? 지혜의 왕이신 하나님도 사탄의 참소에 걸리면 꼼짝 못했지요? 일국의 대통령도 그렇습니다. 어떤 조건에 걸려서 국민이 와와 데모하면 어때요? 모가지 자를 수 있어요? 조건만 걸리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도 꼼짝 못합니다. 장관도 조건만 걸리면 하루 저녁에 모가지가 짤까닥…. 그러니 조건방어(條件防禦)를 해야 됩니다. 조건방어를 어떻게 하느냐 하는 문제가 신앙생활에 있어서 지극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여기에 생사문제가 달려 있습니다. (76-38)

 

우리 인간들은 사탄의 사랑을 중심삼고 사탄의 생명, 사탄의 혈통으로 인연되어 있습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이런 자리에는 하나님이 계실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간섭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역사 이래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왜 무능력한 하나님이 됐느냐? 원수되는 입장에 사탄이 서고, 원수가 무엇을 빼앗아 갔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빼앗아 갔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권, 하나님의 생명권, 하나님의 혈통권을 유린했다는 것입니다. 이 개념을 언제나 가져야 됩니다. (206-231)

 

본래 사탄은 천사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천사장이 ‘나는 타락하여 사탄이 됐지만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절대자이므로 당신이 세운 법도를 중심삼고 해결해야 될 것이 아니요? 나는 법을 어겨서 사탄이 됐을망정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절대자이시니만큼 당신이 설정한 법을 중심삼고 실천해야 될 것이 아니오?'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39-80)

 

왜 원수를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의 길을 넘어갈 수 없는지를 설명하겠습니다. 이것은 원리책에는 없지만 아주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알아두어야 합니다. 타락한 천사장이 하나님을 참소하더라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비록 천사장은 타락했더라도 하나님이 세우신 법도를 준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사장이 타락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피조물을 그가 세우신 법칙, 또는 규칙에 따라 주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타락 이전의 천사장에게 하시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든지간에 타락 이후에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천사장은 하나님께 ‘하나님, 당신은 저를 완성기까지, 완성기 이후까지라도 사랑하시기로 되어 있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52-60)

 

아담이 되려면 세 천사장을 거느려야 됩니다. 천사장은 절대 복종해야 됩니다. 절대 복종하고 절대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절대 순종하지 않고 절대 복종하지 못한 사탄은 절대 순종하고 절대 복종해야 할 천리원칙이 남아있는 한, 원리원칙이 남아 있는 한 그 원리원칙을 사탄 마음대로 못합니다. 그 원리원칙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사탄 자신이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전지전능하더라도 원리원칙에 어긋나면 제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헌법을 통해서 대통령이 행사를 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헌법에 없으면 대통령도 마음대로 못하게 돼 있습니다. (172-45)

 

통일교회의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심각한 사람입니다. 심각했습니다.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왜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신데 악마를 하루 저녁에 청산해버리지 않고 그냥둬요? 욥기 같은 것을 보더라도 그렇게 무력한 하나님이 어디 있어요? 그걸 다 깨쳐야 됩니다. 그러려니 얼마나 심각해요? 죽기 아니면 살기로 일신을 교수대에 내놓고 투쟁을 해 가려 가지고 찾아온 것입니다. 자기 본연의 생명을 찾아와야 됩니다. (187-104)

 

욥기 같은 데 보면, 하나님은 왜 악마가 원하는 걸 다 이루어 주느냐? 위하는 사랑을 가진 본체이기 때문에 악마까지도, 악마에 대해서 악마의 행동으로 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참이라는 것입니다. (144-144)

 

하나님은 하나님의 신비적인 창조력을 활용해 가지고 사탄을 굴복시키지 않습니다. 자연굴복입니다. (207-315)

 

지금 악마가 세상을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지 못하게끔 다 망쳐 놓았습니다. 프리섹스니 뭐니…. 미국을 보면 근친간(近親間)의 성관계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애비가 딸이 세 자매면 세 자매를 다 데리고 삽니다. 그런 게 수두룩합니다. 프리섹스니까 삼촌이 엄마하고도 하나되고, 아들이 자기 어머니하고도 하나되고, 이러고 있습니다. 동물과 똑같습니다. 그러니 사탄이 하나님한테 ‘이런 판국에서 하나님의 창조이상인 사랑이상을 세울 수 있소. 하나님? 하하하!'이러고 있다는 것입니다. (22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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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하나님은 법도를 지키신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라구요? 우주의 마음 같은 분입니다. 이 우주는 몸 같은 것인데, 그 몸 가운데는 누가 들어가 있느냐 하면 악마가 들어가 있습니다. 공중 권세를 잡은 사탄이 이 우주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이걸 소화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힘을 가지고 쳐 버릴 수 없습니다. 우주의 창조의 본질이 사랑이었고, 우주의 역사적 전통이 사랑을 통한 것이었기 때문에 틀린 자가 있더라도, 하나님은 그 원칙의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타락한 이 우주를 회복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본질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창조하셨던 참사랑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투입하던 본연적 기준을 영원히 계속하지 않고는 절대자인 하나님의 권위를 다시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하나님이 기가 막힙니까. (210-197)

 

타락은 사탄 중심한 사랑의 인연을 부모의 자리에서 맺은 것입니다. 선악과 얘기는 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 사랑, 사탄 생명, 사탄 혈통을 이어받은 혈족이 이때까지 남아져 내려온 것입니다. 사탄은 사랑의 원수입니다.

하나님이 창조이상으로 만년 꿈꾸어 온 사실들을 파탄시킨 것입니다. 사대부 가문의 외동딸을 종새끼가 잡아다가 유린해 버렸으니 그 집 주인이 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쫓겨날 수밖에 없지요. 천지 대도의 궤도를 떠난 것은 사랑을 잘못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218-227)

 

악마의 새끼를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딸 이상 사랑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본연의 창조이상을 실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악마는 ‘나는 타락했기 때문에 이렇게 됐고 내 혈족은 하나님을 배반하지만 하나님만은 천리의 도리를 지키고 가야만 할 하나님 아니오?' 이렇게 제창(提唱)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딱 걸려 있습니다. (208-231)

 

사탄이 하나님에 대해 참소하기를 ‘당신은 영원불멸의 주체되신 하나님이요, 천지창조의 대주재이신 것을 내가 알아요. 진리의 본체요, 사랑의 본체요, 원칙의 본체이기 때문에 당신은 그 법칙, 그 원칙대로 변할 수 없소. 그렇기 때문에 나는 타락했을망정 당신은 당신이 세워 온 원칙은 실행해야 될 것이 아니오. 그러려면 당신은 원칙적인 존재로서 타락한 천사를 사랑하지 않고는 본연의 세계에 아들딸을 데려갈 길이 없소. 당신이 나를 사랑하고 당신의 아들까지도 나를 사랑하지 않고는 천국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타락 전 천사장에 대해 당신이 세운 계획이기 때문에, 나는 타락했더라도 당신은 그 원칙을 지켜야 됩니다. 그러니 나를 사랑해야지요. 그러지 않으면 참하나님이 될 수 없고 참아들딸이 될 수 없소.'하고 딱 물고 늘어지는 것입니다. (129-190)

 

악마는 말하기를 ‘하나님! 나는 변하는 악마의 괴수이고 변할 줄 아는 조상이 되어 있지만 당신은 천지의 대주재요, 진리의 본체요, 불변의 주인공이 아니오? 생명의 불변의 원칙을 가질 수 있는 사랑을 지닌 분이 아니오? 나는 타락해서 망나니가 되어버렸지만 당신에게는 당신이 세운 본래의 이상 기준이라는 것을 실천해야 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니 나는 당신의 이 뜻을 이루어 나가는 이상의 문까지…. 그 세계까지 들어가더라도, 거기에서 살지는 못하더라도 들어갔다가 마음대로 나올 수 있습니다. 살지 못하기 때문에 나와야 됩니다.'하는 것입니다. 이게 사탄의 주장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네 말이 옳다'하는 것입니다. (191-211)

 

사탄 마귀는 우리 인간들이 죄를 하나라도 지으면 하나님 앞에 참소합니다. ‘이 녀석은 죄를 지었으니 지옥에 가야 됩니다.' 당장에 참소합니다. 하나님 앞에 인간의 죄를 참소하는 이 사탄은 죄를 지은 것이 틀림없는데, 이 사탄 마귀의 죄를 하나님 앞에 고소한 사람은 아직까지 안 나왔습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이시여! 당신의 권한을 중심삼고 볼 때, 사탄 마귀는 우리 인류 앞에 용서받을 수 없는 이러이러한 악한 죄를 지었고, 하나님 앞에 용서받을 수 없는 이러이러한 악한 죄를 지었으니, 처벌해 주시옵소서' 할 수 있는 사람만 나온다면 죄지은 사탄을 제거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했는데도 사탄을 제거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 편의 하나님이 아니라 사탄 편의 하나님인 것입니다. (54-131)

 

사탄은 천사장이므로 아담과 해와가 완성되어서 천국 들어갈 때는 천사장도 아담과 해와를 따라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천사장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아담과 해와의 사랑을 받고 난 다음에 천사장과 더불어 천국 갈 수 있는 것이 원리요, 창조원칙입니다.

사탄은 중간에서 실수했지만 사탄이 ‘나는 종으로서 배반자가 되었지만 주인되는 당신은 천리의 대도를 정하고 그 위에 본질적 전통을 세워서 당신이 세운 원칙 위에서 완성한 아담과 천사장을 사랑하고 나서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원칙인데 당신은 그 원칙을 버릴 수 없지 않습니까?'하면, 딱 걸려 들어가는 것입니다. ‘네 말이 옳다.' 이겁니다. ‘나는 이렇게 되었어도 하나님은 나와 같을 수 없지 않습니까?' 사탄이 이러면서 걸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211-132)

 

악마는 천사장이기 때문에, ‘본래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아들딸들은 나를 사랑해야 되지 않소? 하나님도, 아담 자신도 나를 사랑하고 나서 천국 들어가는 것이 본래의 창조원리가 아니오?' 악마는 또 그러니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내 참소조건(讒訴條件)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당신은 나를 사랑하고 당신의 아들되는 아담도 나를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하오.'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종교인에게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이 시작된 것입니다. (219-12)

 

하나님과 부자지관계가 되면 아들이 통곡하는 자리에서는 아버지되는 하나님도 통곡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사탄은 혼비백산해서 도망가게 됩니다. 그 자리에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228-176)

 

인간으로서 자기 본연의 권위를 찾을 수 있는 사람, 즉 사탄 마귀보다 위에 있는 사람이 나오지 않고는 이 세상을 하늘편으로 돌이킬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사탄을 끌고가서 ‘하나님, 사탄 마귀가 이런 죄를 지었는데 왜 심판해 버리지 않으십니까?'하고 고소할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53-327)

 

지금까지 우리는 사탄한테 주관을 당해서 끌려왔기 때문에, 반대로 우리가 사탄을 포박해가지고 하나님 앞에 사탄을 끌고 가 참소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세상에서는 사탄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을지라도 사탄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는 모르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전지전능한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여, 이 죄를 지은 사탄을 당신의 전지전능하신 권한을 가지고 처단해 주소서'라고 하며 참소한 사람은 하나도 안 나왔습니다. (51-88)

 

그러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데 왜 천사장을 때려잡지 못해요? 왜 사탄 악마를 때려 치우지 못하느냐 이겁니다. 사탄을 때려잡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도 사탄을 사랑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절대자이신 하나님이 세웠던 천사장이 악마가 되었을망정 하나님은 그를 본래 타락하지 않은 입장에서 생각해 줄 수 있는 기준을 언제든지 갖고 나가야 됩니다. 그러니까 천사장을 사랑해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 지음받은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뿐만 아니라 아담과 해와도 사탄을 사랑해야 됩니다. (175-9)

 

하나님이 6천 년 동안 사랑하는 아들딸의 목을 자르는 것을 수천만 번 자행해 온 사탄을 추궁하지 못하는 것은 천사장 입장에서 그를 완전히 사랑해 주지 못한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누가 잘못하면 ‘하나님! 저 아무개가 이렇게 하려고 합니다.'라고 하면서 참소하는 사탄의 역사가 배후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은 오늘날 통일교회가 나왔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이지 아무도 몰랐던 내용입니다. (35-77)

 

만일 사탄 마귀를 끌고 가서 하나님앞에 고소한다면 하나님이 ‘야 이놈아! 그것은 그런 것이 아니야!'라고 하시겠소, 좋아하시겠소? 하나님은 두말할 것 없이 ‘오냐, 내 아들아! 하나밖에 없는 내 아들아!'하며 만세에 내세워서 축복해 주시고 싶으실 것입니다. 그러고 싶으신 하나님의 내정이 얼마나 간절하고 그것을 얼마나 바라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하나님이시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시요, 공의의 심판주이시기 때문에 만일에 사탄 마귀를 고소하고 참소하는 사람이 나오면 하나님은 사탄을 심판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54-56)

 

아담과 해와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마음대로 못 합니다. 자기 아들딸들이 살인을 했다고 해서 어머니가 대신 책임질 수 있고, 형제가 대신 책임지겠다고 할 수 있나? 없습니다. 그게 하늘의 법입니다. 누구와 더불어 죄를 지었느냐? 사탄과 더불어 죄를 지었습니다.

아담이 죄를 짓기는 지었는데, 사탄이 어떻고 아담과 해와가 어떻다는 걸, 하나님이 아직까지 심판하지 않았다 이겁니다. 쫓아내기는 했지만 하나님이 아직까지 구원섭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사탄의 참소를 받으면서도 심판하지 못했다 이겁니다. 이런 문제는 신학적으로 볼 때 큰 문제들입니다. 왜 처리하지 못하느냐?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왜 악마를 처리하지 못하느냐 이겁니다. (223-297)

 

하나님은 싸움에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권, 그 이상권 내에는 전쟁, 투쟁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투쟁의 개념이 있으면 이원론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이것은 하나의 이상세계, 절대적인 평화의 세계와는 관계없는 자리에 떨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세계권 내에는 투쟁이라는 개념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224-194)

 

사탄이 어떻게 떨어져 나가느냐? 그걸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사탄은 큰 것, 내려간 것을 전부 갈라놓았지만 하나님은 작은 것, 내려간 것을 다 합해 가지고 크게 만드는 것입니다. 반대의 길입니다. 우주의 원칙, 우주의 생성의 원칙으로 볼 때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면 참된 사랑을 찾겠다는 우주 근본에 입각해서 볼 때 이 근본에 순응하는데 있어 사탄은 근본을 반대했기 때문에 떨어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전지전능하고 유일무이하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모든 본성은 백퍼센트 위해 주는 것입니다. (179-33)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도 역사를 통해 사랑의 원수를 갚는 데 있어 힘과 능권으로 원수를 갚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법도를 통해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원수가 자기 스스로 하나님 앞에 완전히 굴복하여 종의 자리에서 세계 인류에게 심판을 받더라도 감사할 수 있는 자리, 원수를 그런 자리에까지 끌고 나가려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그 죄를 탕감할 수 없습니다. (42-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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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하나님을 해방시켜 드리자

 

  ① 하나님은 영어에 구속된 입장

 

악신과 선신의 싸움을 누가 끝내 줄 수 있느냐? 그것은 하나님도 아니요 사탄도 아닙니다. 그럼 누가 할 수 있겠는가? 참사랑에서 출발하여 참사랑을 가지고 가는, 세계 만민이 따라 갈 수 있는 사랑의 주인공이 나오지 않고는 하나님의 싸움과 사탄의 싸움을 끝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싸움에서 해방되지 않는 한 인간역사세계에 있어 평화라는 말은 망상적인 말입니다.

이상이란 말은 추상적이고 감상적인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참사랑의 대표자를 보내는데, 그 주류사상을 메시아사상, 구세주사상이라 합니다. 구세주는 인간만이 아니라 하나님까지 해방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악을 처단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겁니다. 하나님 해방과 악을 결산짓기 위한 총책임자가 구세주입니다. (136-198)

 

구세주의 사명은 하나님을 해방하는 것이요 사탄을 처단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인간을 물어 제끼면서 참소하던 원한의 이 원흉을 누가 청산하느냐? 하나님이 못합니다. 메시아만이, 구세주만이 할 수 있습니다. (136-198)

 

우리들이 바라는 통일교회는 무엇이냐? 부모의 종교를 찾아가자는 것입니다. 달콤한 생활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도의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참부모를 중심삼고 참된 사랑의 도리를 찾아가자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해방하자 이겁니다. 사랑의 원칙조건이 결부되지 않고는 해방이 벌어질 수 없습니다. (136-198)

 

아버님이 사랑하고 그 아버님이 찾겠다는 나라를 생각해 봤어요? 감옥의 길을 마다 않고 가는 길엔 뭔가 길이 있습니다. 그 생사의 기로를 개척해 나온 것이 민족이 갈 수 있는 길이요, 암흑의 구렁텅이를 넘어 희망이 있는 길이라는 사실을 누구도 모릅니다. 아무도 모른다 이겁니다. 세계만민이 해방될 수 있는 굴을 뚫기 위해서 그러한 사연을 품고 수고한 사연을 누구도 모를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충성을 다하고 내가 이 길을 가는 데는 중심을 모신 가운데 조심하면서, 사랑을 귀히 간직하면서 모셔야 할 분으로 알고 가는 것입니다. 만세에 이 길은 시간이 변하고 세월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단 하나밖에 없는 길이라 생각하고 살아가는 이 사람입니다. (163-184)

 

하나님을 해방해야 됩니다. 내가 하나님을 구해야 됩니다. 내가 구원받겠다고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해방해야 됩니다. 이것이 구원섭리의 총결산입니다. (136-198)

 

통일교회는 하나님 해방을 위한 해방군입니다. 세계 해방이 아닙니다. 세계 해방은 쉽습니다. 인간들이 단결하면 세계 해방은 되지만 하나님의 해방은 심정권을 단결시켜야 됩니다. 사랑권을 단결시킬 수 있는 원리와 사상체계를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 가지고 영계를 풀어 지상에 심정권의 다리를 놓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떠한 혁명보다 무서운 혁명이요, 어려운 혁명입니다.

인류의 해방은 쉽지만 하나님의 해방은 그래서 어렵다는 것입니다. 세계에 없는 어려운 그 일을 레버런 문이 기수가 되어 오늘날 섭리사의 총결산이라는 표제를 걸고 나섰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136-198)

 

오늘날 종교 지도자들은 엎드려서 기도하고 복받겠다고 하지만 난 복받겠다고 기도해 본 적이 없습니다. "나 하나 제물이 되어 하나님을 해방하자" 이겁니다.

구약시대는 만물을 세워 하나님의 사람들을 찾기 위한 시대요, 신약시대는 아들딸을 희생시켜 부모를 찾기 위한 시대요, 성약시대는 지금까지 부모님의 가정을 희생시켜 하나님을 해방하기 위한 시대입니다.

본연의 부모를 이 땅 위에 모셔 그분과 천년만년 살고…. 한국 민요 가운데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하는 게 있지요? 계수나무 박혔으니 뭐 어쩌고 저쩌고…. 양친 부모 모셔다가 천년만년 살고 지고. 그것이 다 한민족의 계시적인 얘깁니다. 하늘 부모를 모셔다가 천년만년 살고 지고, 나는 그 노래를 생각할 적마다 언제나 사무친 마음 잊을 수가 없습니다. (137-126)

 

하나님이 미국에 200년 동안 세계적인 축복을 몽땅 갖다 맡겼는데, 이것을 다 자기들을 위한 복으로 알고, 자기 기독교의 복으로 알고, 미국만의 복으로 알고 있습니다. 미국과 기독교를 희생시켜서 세계 만민을 해방하고 만민의 복지를 건설해 주어야 할 책임을 망각해 버리고 미국 제일주의, 미국 단일주의, 개국주의로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세계주의적 미국을 위해 자기 자체 일개국을 희생시키고 일개 기독교를 희생시켜서라도 세계적 기반 판도를 닦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도 불구하고, 거기에 위배되고 반대된 자리에 나가니 미국 자체도 곤두박질하는 것입니다. 가정이 깨져 나가고, 교회가 깨져 나가고, 나라가 깨져 나가고 전부 엉망진창입니다. 다 병이 났습니다. (143-171)

 

하나님과 참부모를 해방하고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지옥을 파고 들어가야 됩니다. 지옥 밑창만 뚫고 나가면 천국입니다. 가까운 길이 그것입니다. 지옥 밑창을 뚫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희생하고 봉사하라고 하지요? ‘내가 구원받기 위해서 통일교회 믿는다. 이렇게 간다.'라고 하면 그건 빵점입니다. 그건 절대 세계무대에 못나갑니다. ‘하나님을 해방하고, 참부모를 해방하고, 세계를 구하기 위해 나는 이렇게 간다.'고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내용이 달라요, 내용이. (148-142)

 

죽으나 사나 이 길을 바로잡지 않고는 못 갑니다. 이것을 알기 때문에 선생님이 일생 동안 이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핍박을 받고, 감옥을 찾아 다니면서도 이 짐을 지고 가는 것입니다. 감옥에 가는 게 좋아서 가는 거예요?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의 해방을 위해 가는 것입니다. 인류의 해방을 위해, 사탄세계를 해방하기 위해 가는 것입니다. 탕감복귀의 길을 가지 않고는 해방권이 안 나오니, 무사안일 속에서는 사탄을 분립시킬 수 없으니 탕감복귀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148-142)

 

책임분담 해방권은 심정의 해방권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해방을 받아야 되고, 부모님이 해방을 받아야 됩니다. 악한 부모가 생겼고 악한 부모를 대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있는 하나님이 얼마나 고통스러우냐 이겁니다. 그러니까 참부모를 해방하고 하나님을 해방해야 됩니다. 그러한 효자가 돼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아직까지 고생을 하고 있고…. 하늘 부모를 고통받게 해 놓고 내가 잘살겠다고? 자기 아들딸 잘먹이고 잘살겠다고? 그럴 수 있느냐,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느냐 이겁니다. (148-190)

 

하나님을 해방해 드려야 할 우리의 생활노정에 있어서 섭리의 뜻을 대하는 하나님을 부를 때는, 통곡에 사무치는 심정을 가지지 않고는 부를 수 없는 하나님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도 광야에서 외치기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한 것입니다.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섭리의 뜻을 대하는 입장에서 얼마나 무례했고 얼마나 체면없고 뻔뻔스러웠느냐 이겁니다. 자기만이라도, 세계에 있어서 해방 못하더라도 하나님을 고통으로부터 해방해 줘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161-109)

 

세계를 통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고 해방을 어떻게 하느냐? 사탄권을 통일시킬 수 있는 하나님 같은 능력이 있는 사람이 나타나면 영계와 육계로 갈라진 것이 하나됩니다. 해방되는 것입니다. 사탄을 주관할 수 있는 사람만 있게 되면 영계(靈界)도 해방이 벌어지고 육계(肉界)도 해방이 벌어집니다.

하나님에게 해방이 필요해요? 하나님은 이미 해방돼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해방이 필요한 것은 사람을 해방하려니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은 해방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해방 안 되어서 사람을 해방하려니 하나님이 해방조건에 걸려 있을 뿐이지, 하나님 자신이 해방 못받는 분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161-235)

 

기독교사상은 재림사상입니다. 예수가 재림해서 뭘 할 것이냐? 오늘날 기독교인들 중에는 정신나간 사람들이 많습니다. 뭐 구름 타고 공중으로 올라가 천년 잔치해? 알고 보면 그런 허무맹랑한 것을 믿고 있습니다. 예수가 와서 뭘 할 겁니까? 예수가 와서 자랑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에요? 하나님 앞에 불의를 세워 달라고 항거하는 사탄, 그 녀석을 잘라 버리지 못하면 하나님은 그 영원한 항거를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재림주가 와서 할 일이 뭐예요? 기독교인들, 요것 몇 억밖에 안 되는 이 사람들을 잘살게 하기 위한 재림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해방해야 됩니다. 공의의 도리 앞에 서서 하나님을 해방할 수 있는 책임을 하는 주역으로 오시는 분이 재림주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162-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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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하나님 해방은 인간이 해야 한다

 

세계를 구하는 데는 먼저 하나님을 해방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해방되어야 세계를 해방하지, 안 그래요? 하나님을 해방해 놓고 세계를 해방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를 땅끝까지 전파해 가지고 심정적 유대를 틀고 말뚝을 박아서 세상을 다 사랑으로 녹여내자 이겁니다. 그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162-192)

 

하나님을 해방할 수 있는 그 자리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부모님이 가는 최후의 종착점을 향해 동조하는 무리가 구름같이 모이게 해야 됩니다. 그럼으로써 개인에서부터 가정이 이어나갈 것이고, 가정에서부터 종족이 이어나가게 될 것입니다.

종족과 민족, 국가가 희생된 제물적 가치를 상대적인 세계, 제2차 부모님을 모신 세계에 재현시킴으로써 역사적으로 희생된 모든 성인들을 부활권의 실체로 대신 탕감복귀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이 땅을 떠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기 때문에 죽어도 이 일을 해야 하고, 이 구덩이를 메워야 합니다. 이것은 숙명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안 갈 수 없습니다. 어서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166-36)

하나님을 해방해야 됩니다. 이 땅 어떠한 모퉁이에도 하나님이 찾아와서 ‘내 창조이상이 밤에나 낮에나 역사를 통해 다 이루어졌구나. 감사하고 놀랍다.'고 찬양할 수 있음과 동시에 어디 가서도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이 세계무대가 되고, 우주가 되고, 영계나 육계도 마찬가지가 되어야 되는데 그렇게 못 되어 있다 이겁니다. 아직까지는 하늘의 보좌 아래까지 사탄의 어둠권세가 점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해방하려면 영계를 해방해야 됩니다. (166-36)

 

‘나'라는 사람은 해방을 참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보다 더 좋아합니다. 또 통일을 좋아합니다. 얼마나 좋아하느냐? 죽고 못살 만큼 좋아합니다. 통일의 문, 해방의 문은 문 아무개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알고 보니 만유의 대주재 되시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는 것, 뭐 많겠지마는 대충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는 게 뭐요?'하니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해방이다.' 답변이 간단합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해방이지!' 이래요. 그래서 ‘그러면 왜 해방을 못합니까?'했더니 ‘혼자는 할 수 없다.' 이러시는 것입니다. 그게 병입니다. 하나님 혼자 할 수 없다 이겁니다. (166-94)

 

나라를 사랑했어요? 아들딸을 사랑했어요? 아들딸의 길을 열어 놓고 민족을 사랑했어요? 세계가 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고 세계를 사랑했어요? 하늘로 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고…. 그럴 수 있는 데서만이 완전한 해방의 동이 터 오는 것입니다. 동이 터 올 때 그 햇살은 골짝골짝 스며들어 죽음 가운데 사로잡혀 있던 모든 구속된 인간들을 완전히 해방하는 것입니다. 자유와 평화를 노래하고 해방과 더불어 통일의 세계가 우리 앞에 왔다고 해야 천년사를 다 무시하고 해방의 왕자가 되고, 통일의 기수가 되어야 하나님 앞에 칭찬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 잠겨 영원무궁한 행복을 누릴지어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자신 있어요? (166-94)

 

인류의 해방도 필요하지만 인류 해방보다 먼저 하나님을 해방해야 됩니다. 그래야 인류의 해방이 뒤따른다는 사실은 누구도 생각지 않고 있습니다. 기성교회 목사들은 하나님을 영광 가운데 있는 심판의 하나님으로 알고 있습니다.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망권에서 해방해야 됩니다. (166-136)

 

구약시대-신약시대-성약시대, 그 다음엔 완성시대입니다. 완성은 사랑을 중심삼은 완성입니다. 완성은 부모의 해방, 자녀의 해방, 만물의 해방, 하나님의 해방입니다. 그것이 한꺼번에 이루어져야 됩니다. 타락한 부모로 말미암아 한꺼번에 지옥에 갔던 것을 하늘땅을 걸고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166-275)

 

민족적 배경과 민족을 대표한 사람, 혹은 단체가 나온다면, 어떤 사람이며 어떤 단체일 것이냐? 민족의 역사적 전통을 지니고 시대상을 대표해서 세계로 넘어갈 수 있는, 시대적인 사명을 미래적인 사명에 연결시킬 수 있는 그런 단체와 그런 사람이어야 됩니다. 그것이 레버런 문과 통일교회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회의 진리에는 침략성이 없습니다. 반면에 구해 주자는 것입니다. 차원 높은 곳으로 끌어 올리자는 것입니다. 해방해야 되는 것입니다. 온 만민을 해방해야 되는 것입니다. 해방을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영계와 육계가 합해서 하나님을 해방하자는 것입니다. (168-51)

 

내가 칭찬받고 환영받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않습니다. 통일교의 사상은 통일교를 희생시켜 민족을 구하고, 민족을 구해 가지고 세계 인류를 구하고, 세계 인류를 구해 가지고 하늘땅을 해방하고, 나중에는 하나님을 해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회수한 모든 전체를 다시 투입해서 완전히 타락이 없는 차원 높은 별동세계, 천국 대이동 판국을 원할 것입니다. (227-215)

 

선생님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인류역사가 150만 년이라 하지만, 숱한 역사과정에서 자기의 위신과 권위와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잃어버린 자식을 찾기 위해 몸부림친 불쌍한 부모의 처지를 누구한테 하소연할 거예요? 자식이 나와서 그걸 풀어주기 전에는 그 가슴에 맺힌 한을 풀 수 없고 박힌 못을 뺄 수 없습니다. 못을 빼고 사랑의 눈물로써, 피와 살로써, 그것을 살이 되게끔 풀어드려야 할 하나님의 원한의 심정을 누가 해방해 드릴 거예요? 나의 해방이 앞서기 전에 하나님이 해방되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종교인들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해방의 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87-213)

 

행복의 씨가 어디 있는지 알아야 됩니다. 타락해서 잃어버렸으니 그것을 찾아야 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참된 하나님을 찾자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하나님은 복귀의 하나님입니다. 본래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원한에 사무친 하나님, 불쌍한 하나님입니다. 기쁨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낙망의 하나님입니다. 그러기에 원상태로 가기 위해서는 복귀의 하나님을 해방시켜 줘야 됩니다. 돈으로가 아닙니다. 권력으로도 아닙니다. 어떤 사람으로도 아닌 참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174-200)

 

출발을 고생으로 했으니 고생으로 종착점을 향해 가려고 합니다. ‘레버런 문의 이름은 비참했다.'고 결론을 지으려고 결심한 사람입니다. 내게는 돈이 필요없고 명예도 필요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해방하고 인류를 해방하고 사탄까지도 해방하여 영원한 평화와 사랑의 기지를 만드는 것이 새로운 조국을 찾아가는 희망봉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고, 가는 길에 어떠한 험산준령이 가로막혔다 하더라도 아침을 잊어버리고, 점심을 잊어버리고, 저녁을 잊고, 낮과 밤을 잊으면서라도 그 길을 가려고 몸부림쳐야 되겠습니다. 그런 생애가 길면 길수록 원한을 넘어선 하나님의 이상적 사랑이 여러분과 더불어, 여러분 가정과 더불어, 여러분 일족과 더불어, 여러분 나라와 더불어 같이하는 것이 천리원칙인 것을 알고 그렇게 살아주기를 부탁하는 바입니다. (174-9)

 

위대하다는 것은 얼굴이 위대한 것이 아니요, 몸뚱이가 위대한 것도 아니요, 사상이 위대한 것입니다. 하나님까지도 움직이지 않을 수 없고 하나님까지도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정신, 그게 위대한 것입니다. 사랑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하나님을 나는 사랑을 가지고 해방하기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목적을 성사하지 못한 한을 가진 하나님이 오늘 레버런 문을 만나 해방됐다는 말은 이론에 의한 것입니다. 망상이 아닙니다. 체계적인 이론, 과학적인 데이타에 의한 실증적 결과에 의해 이걸 주장하는 것입니다. (165-157)

 

하나님을 해방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 됐지요? 하나님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전권 전능의 행사 시대가 오기 때문에 여기에는 태평왕국이 아니 될 수 없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그때에 비로소 ‘아-멘'이지요.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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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하나님의 해원성사와 효자의 길

 

  ① 참아버님이 걸어오신 복귀의 길

 

하나님 뜻을 이루어 드리겠다고 결의한 것을 내가 잘 압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다는 걸 알고, 무릎을 꿇고 감사하며, 용서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피가 터지더라도 해방의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될 원한에 사무친 하나님임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는 고문에 쓰러져 가는 자리에서도 하나님 앞에 기도를 안 했습니다. 나를 구해 달라고, 내가 몰려 다녔지만 하나님 앞에 내 갈 길을 지켜 달라고, 날 구해 달라고 기도 안 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사나이로서의 내 여력을 갖고 있고 내 기백을 갖고 있고 싸울 수 있는 자체력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내 힘이 부족해서 의식을 잃고 쓰러지면 나를 구해 주겠지, 그전에는 내 힘으로…. 내가 가기 전에 하나님은 미리 앞에 준비해 놓고 기다린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138-240)

통일교회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만약에 내가 ‘저놈의 자식 저거!'하며 분을 참지 못해 입을 다물고 ‘두고 봐라. 몇 개월만 두고 봐라.' 그러면 옥살박살되고 터져 나가더라 이겁니다. 그걸 보면 이상하지요? 그래서 혀를 깨물면서 내가 많이 참습니다. 내 입으로 저주를 못 합니다. 참부모의 이름을 가진 내가 내 입으로 저주를 할 수 없어서 입을 물고 있어도 그 원한을 다 하늘이 풀어 주더라 이겁니다. 그걸 보면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 같아요? (162-172)

 

주인된 국권을 가지고 아시아의 5천 년 문화를 자랑할 수 있는 백의 단일민족의 권위를 갖추어 주권국가의 대통령이 되고, 국회의원이 된 사람이 하나도 없지 않느냐 이겁니다. 해방 후에 나는 그런 국회의원을 만들고 그런 대통령을 만들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건 내 소원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그걸 원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될 때 아시아는 우리 손에 놀아나는 것입니다. 세계는 내가 지시하는 대로 하나님이 지향하는 곳을 향해야 한다는 것이 틀림없음을 믿기 바랍니다.

원한의 씨를 품고 있는 내가 안식이 어디 있어요? 갈 길이 바쁩니다. 천년사를 전부 풀며 가야 할 갈 길이 바쁘다는 것입니다. 나는 40평생 눈물의 길을 벗어나지 못한 걸음을 걸어온 사나이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북녘땅이 하나님의 새로운 사랑의 동산을 맞이하여 거기에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젊은이들이 싹터야 될 텐데…. 하나님을 배반한 싹으로 물들어 있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얼굴을 돌리셨는데, 그 얼굴을 돌이킬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모시고 들어가 그것을 다시 정상적으로 회복하겠다는 사상을 가졌기 때문에 그러한 것을 공산세계도 고마워해야 하고, 민주세계는 더더구나 고마워해야 할 것입니다. 그곳을 향해서 전진할지어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어떤 전도부인이 통일교회에 죽자 사자 나오다가 내가 자기 역성대로 안 하니까 떨어져 나가서 ‘잘됐군. 하나님의 아들이 저 꼴이야?'하더라구요. ‘그래, 내가 감옥에서 사라질 사나이가 아니야. 나는 해방의 세계를 향해 도약할 것이다.'했어요. 잊혀지지 않아요, 그놈의 얼굴이. 요전에 다 비참하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안됐구나 했어요. 나는 그러고 사는 사람입니다.  

5대 주권자들이 나를 어떻게 대했다는 것을 다 압니다. 그렇지만 표시를 하지 않습니다. 복수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모르니까. 내가 한번 만나서 가르쳐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말을 다 하고 나서 청산지어야 되는 것입니다. (204-57)

 

선생님 자신은 이 땅에 올 때에 어떤 입장에 섰느냐? 하나님의 원한의 심정이 남겨진 아들로서 완성한 사랑을 하지 못한 것, 형제로서 완성한 사랑을 하지 못한 것, 부부로서 완성한 사랑을 하지 못한 것, 부모로서 완성한 사랑을 하지 못한 것을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그 한의 고개를 탕감하여 풀어 주는 자리에 섰습니다. (234-128)

 

타위적(他爲的)인 것이 아니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타위적인 창조이상을 중심삼고 투입, 투입, 투입해 가지고 참사랑을 번식하게 돼 있는 것입니다. 이럼으로 말미암아 천하를 커버하고 본향 땅으로 돌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돌아가는 데는 원수로서 발길로 차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사랑으로써 자연굴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자연굴복하지 않고는 하나님이 자리를 못잡습니다. 내가 술수를 쓰려면 누구한테 지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걸 알았기 때문에 참아온 것입니다. 불같은 성격에 지금까지 40년 참자니 오죽했겠나? 하나님이 나보다 더할 텐데 오죽했겠나 이말입니다.

한번은 내가 뒤를 돌아보니, 하나님이 나를 품으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당신은 나의 사랑의 중심입니다. 나는 당신에게 복종하겠습니다. 당신을 절대로 따르겠습니다.'하면서 돌아보니 또 그렇게 나를 품으시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얼마나 위대한 자리냐?

하나님이 나에게 그런 하나님의 자리를 주시듯이 이제 나도 그와 같은 하나님의 자리를 여러분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215-321)

 

역사를 회고해 볼 때, 40년 전 선생님은 나라에 몰리고 기성교회에 몰리고 전부 몰려 광야에 쫓겨난 고아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이런 자리에서 역사적인 기준을 다시 찾아 세계적인 판도를 만들어야 할 뜻을 앞에 놓고, 이 뜻을 이루어야 하는 선생님의 입장이 얼마나 기가 찼겠어요? 2차대전 이후 하늘편으로 확정해 놓은 승리적 기독교 문화권과 자유세계를 통치하는 미국의 기반을 다 잃어버린 자리에 있었습니다. 주인된 입장에서 이걸 잃어버린 비통함과 다시 40년 탕감복귀해야 할 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 이래 몇십만 년, 몇백만 년 걸려 가지고도 못한 인간의 역사를 종결지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아는 입장에서 볼 때, 얼마나 기가 막혔겠어요? (135-174)

 

나는 비가 오고 눈이 오는 것을 모르고, 밤을 아침같이, 새벽같이 느끼면서 밥 먹는 것을 잊어버리고 이 놀음 해온 사람입니다. 편안하게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안 죄, 누구보다도 비통한 하나님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내 일신이 갈갈이 찢기는 한이 있더라도, 가루가 되어 날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이 모든 날아가는 세포는 하나님의 한 점의 세포라고 울부짖을 수 있다면 사나이로 태어나서 보람있는 죽음이라고 하면서 죽음길을 찾아 뒤넘이치고 있습니다. 뒤넘이치다 보니 망할 줄 알았는데, 없어질 줄 알았는데 이렇게 되었습니다. (137-126)

 

하늘땅의 사무친 원한이 얼마나 컸던가를 알기 때문에 피를 토하는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하나님을 위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죽게 되었으니, 하나님, 나를 살려주소.'라는 기도를 할 수 없는 참부모의 입장에 서야 할 비통한 사연을 그 누가 알았어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나님만이 알아 주셨습니다.

아무리 통일교회를 따르는 사람이 많지만 레버런 문의 사상에 하나가 다 안 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통일가라는 것이, 오늘날 해방권에 선 통일가라는 것이 싸구려가 아닙니다. 축복받았다는 패들이 움직이는 그 거동거리가 오늘날 악마의 사촌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내가 압니다. (145-309)

 

내 싸움이 아직까지 부족하고 내가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자격이 부족하다 하고, 내가 서러워할 때 아버지께서 눈물 흘릴 것을 염려하면서, 내가 매맞는 자리에서 참기 어려운 비통한 자리에 설 때 하나님이 처참한 자리에 설까봐 염려하여 ‘내 비통함은 아무것도 아니요, 내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요, 내 슬픔은 아무것도 아닙니다.'하고 이를 악물고 내 눈물이 떨어질 때 하늘의 눈물이 떨어질까봐 염려하고 울부짖고 원수를 갚기 위한 도상에서 선봉장으로서 승리의 깃발을 들고 나서는 용자가 있다 할진대 그 용자 앞에 하나님이 백배 사례한다는 것입니다. ‘네 이름을 충신이라 할까, 네 이름을 효자라 할까, 네 이름을 열녀라 할까? 지상의 역사상에 어떠한 귀한 자가 있다 하더라도 너 이상 귀한 자가 없을 것이다.'라고 하나님 자신이 머리를 숙여 사례한다는 것입니다. (153-207)

 

나 문총재는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외로운 길을 걸어온 사람입니다. 외롭지만 하나님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입니다. 역사시대에 외로운 자리에서 비통한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그곳을 저주하면서 자기에게 복을 빌어 달라고 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걱정 마십시오.'했습니다. 그게 다른 것입니다. 내가 개인적인 시련 때문에 후퇴할 사나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계의 시련을 넘고 하나님을 해방하고 죽겠다는 사나이가 개인적인 과정에서 항서를 쓸 수 없습니다. 비겁할 수 없습니다. 여편네가 반대해도 잘라 버렸습니다. 자식이 반대해도 잘라 버리고, 부모가 반대해도 잘라 버리고, 나라가 반대하는, 4천만, 6천만이 반대하는 길을 간 사람입니다. (175-231)

 

시간이 너무나 짧습니다. 일생에 이것을 고치고 또 채워 놓기 위해서는 시간이 없습니다. 선생님의 생애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세속적으로 보면 선생님의 생애는 불쌍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선생님이 어떤 분이십니까?'하고 한번 물어 봐요. 선생님은 통곡할 수밖에 없는 아픔을 느끼면서, 심장을 도려내는 것 같은 아픔을 가지고 몸부림치는 것과 같은 비통함을 체휼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지상에서 비참한 남자입니다. 그러한 고생을 누구도 모릅니다. 자기 자신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다 잘난 체하고 으스대고만 있지, 선생님의 고생을 모릅니다. 어머님도 모릅니다. (213-212)

 

하나님이 6천 년 간 수고해서 남긴 공적을 다 잃고, 흥남수용소를 찾아간 선생님의 비통한 사연을 여러분은 모릅니다. 고향을 떠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처자가 문제가 아닙니다. 하늘땅의 미래의 소망으로서 해방의 민족이 되어 나를 환영하려 했던 그 무리가 구름속 지옥으로 꺼져 가는, 암흑세계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통곡하면서 다시 만나자고 소리를 지르던 것이 엊그제 같습니다. ‘너희들은 꺼져 갔지만 나는 다시 내 갈 길을 가서 광명한 아침 해를 안고 너희들을 다시 찾아가서 해방해 주겠다!'고 선언한 것이 엊그제 같습니다. 쇠고랑을 차고 소리를 지르던 그 소리를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어려울 적마다 기도하던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220-157)

 

‘하나님, 당신은 이런 분이셨죠? 내가 아는 하나님은 이런 분입니다.'할 때 하나님이 손을 잡고 통곡을 하며 ‘어떻게 네가 그걸 알았느냐? 내 아들아!'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게 되면 하나님은 통곡을 하게 됩니다. 목을 놓고 통곡하는 그 음성이 얼마나 크겠어요? 그 인연은 천년 역사에 연장시킬 수 없다는 것을 하나님은 알기 때문에 눈물을 닦고, 곡소리를 그치고 ‘내 아들아!'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아들이 필요하고 딸이 필요한 하나님의 입장을 알아야겠습니다. (176-221)

 

‘나는 하나님의 참용사가 될 것이다. 그 어떤 하나님을 위한 전장이 비참할지라도 나는 그 전선에 참여할 것이다.'하는 것이 선생님의 정신입니다. 아무리 세계의 핍박이 몰려와도. 고독단신의 핍박의 자리, 고통의 자리에서도 나는 하나님에게 불평 한번 안 했어요. 이것이 레버런 문의 자랑입니다. (193-52)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믿어라. 왼쪽으로도 믿을 수 없고, 바른쪽으로도 믿을 수 없고, 동서남북 전후좌우 전부 다 믿을 수 없더라도 절대적으로 믿다 보니 중앙선에 가는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믿게 되면 하나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자리,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찾아가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모든 것이 풀리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에는 독재성이 많습니다. 의논할 수 없습니다. 틀어져 있으니 강제로라도 각도를 맞춰야 됩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우리 인류가 얼마나 고통스러우냐 이겁니다. (188-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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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하나님의 해방을 위한 한평생

 

내가 분하다면 얼마나 분에 사무치겠나요? 역사 이래 나 이상 분에 사무친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통곡하라면 나 이상 통곡할 사람이 없습니다. 이 땅 위에 천년 역사를 품고 잃어버린 슬픔을 안고 통곡하는, 문총재가 가슴으로부터 흘러 나오는 하나님의 심정을 느끼면서 통곡하는 거기에 못 미칩니다. 그런 뿌리를 전부 우겨싸고 앉아 거기서 자기가 잘먹고 잘살겠어요? 그런 간나 자식들이 죽어 자빠진 사체는 개도 안 뜯어먹습니다. (180-9)

 

언제나 기분 좋은 남자의 모습을 하고 어려운 탕감의 고개를 태연하게 넘고, 하나님을 계속 모시며 하나님을 위로하며 고개를 넘지 않으면 평화의 지상천국은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 대표자, 공적인 사람은 외로운 사람입니다. 누군가 한 사람이 일어서서 ‘문선생님은 이러한 일을 하시고…'라고 한마디 할 때 선생님은 통곡하는 심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 눈물이 모두 메마른 70의 할아버지가 되어 있는데도, 아무도 그 슬픔의 눈물이 흐르는 것을 멈추게 할 수 없는 외로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부모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183-9)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감옥생활을  많이 했습니다. 5년 이상 감옥생활을 했지만 비가 내리는 처마 끝에 물방울이 뚝뚝 떨어져 바위를 뚫는다는 것을 생각할 때, ‘내 사랑의 눈물방울이 하나님의 가슴속에 엉클어진 한의 바위를 뚫을 수 있으면, 그럴 수 있으면…'하면서 그런 물방울을 보고 통곡한 사정을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흘러가는 물길을 바라보면서 ‘이 물줄기가 하나님을 모셔 가지고, 그분이 찾아와 목욕할 수 있는 맑은 줄기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인간으로서 그럴 수 있는 보금자리, 안식처를 하나님께 마련해 드릴 수 있는 자식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런 심정의 깊은 세계를 여러분이 체험 못하면 하나님과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185-9)

 

분을 얼마나 참아 왔어요? 기가 막혀 이 오관이 다 한꺼번에 막혀 통곡한 사실이 얼마나 많아요? 여러분을 만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인류의 주권자들을 굴복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몸뚱이와 총칼이 아닙니다. 사랑의 핏줄을 통해서 그들을 감화시켜 자연굴복시키지 않으면 천지에 하나님이 바라는 평화의 동산이 오지 않습니다. 평화의 왕국 건설이 불가능합니다. (197-275)

 

이 한 세상을 살 때 얼마나 어려움이 많아요? 이거 오늘 가다가 어떻게 될지 알아요? 그 공포의 환경에서 벗어날 수 없는 불쌍한 인생입니다. 이 공포의 환경과 혼란 가운데 있는 나를 가르쳐 줄 스승이 누구냐? 스승이 없습니다. 여기 서 있는 사람은 그런 문제 때문에 통곡을 하며 몸부림쳤습니다. 하나님이 있다면 왜 스승 노릇을 못 하느냐 이겁니다. 알고 보니 하나님이 사랑을 원칙으로 한 스승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걸 모르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사랑을 중심삼은 스승이라는 것입니다. (203-197)

 

요전에 한번은 피곤해서 저녁 때 들어와서 잠깐 잠들었다가 일어나 세수하고 면도하니까 그걸 보고 ‘아침에 일어나야 세수하고 면도하는데, 왜그래요.' 그러면서 웃는 것이었습니다.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마음은 하나입니다. 정성도 하나입니다. 하나님한테 선생님이 어떤 분이냐고 기도 한번 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통곡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혓바닥이 나와서 들어가지 않을 만큼 통곡을 하십니다. 그런 사연을 갖고 사는 선생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21-125)

 

타락한 인간 편에서는 구세주이지만, 하나님의 편에서 본다면 태초에 잃어버린 참사랑의 창조이상을 이룰 참아들이요 참부모가 됩니다. 구세주는 타락으로 초래된 하나님의 한을 풀어 드리기 위해 생애를 바쳐 희생의 길을 개척해 오신 분입니다. 영광으로만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항상 하나님의 심정과 더불어 통곡하고, 사탄을 굴복시키기 위해 노심초사하시는 분입니다. (232-219)

 

누구의 하나님 만들 거예요? 미국 하나님 만들 거예요, 대한민국 하나님 만들 거예요, 내 하나님 만들 거예요? 어떤 거예요? 욕심들은 많구만. 내 하나님을 만들려면 민족 이상 하나님을 위해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문총재를 좋아한다면 문총재 이상 하면 하나님이 틀림없이 문총재 이상 여러분을 좋아하실 것입니다. 그건 틀림없는 공식이 아닙니까? 거기엔 이의가 없습니다. 나는 나보다 하나님을 더 위로하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더 봉사하고 공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을 원합니다. 만약 나보다 못한 사람을 원한다면 그건 독재자입니다. (184-192)

 

마라톤 선수가 스타트 라인에서 80퍼센트 와 가지고 백 미터, 천 미터 앞섰으면 뭘 해요? 거기서 넘어지면 그만입니다. 마라톤 챔피언이 뛰게 되면 관중들이 ‘야, 천천히 뛰어!' 그러겠어요? ‘빨리 뛰어. 빨리!' 쓰러질 때까지 그럽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기록을 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레버런 문이 최고의 기록을 지녀야 하나님이 최고의 상을 줄 때 떳떳할 것입니다. 그때까지 미는 것입니다. (230-171)

 

출발이 잘못됐습니다. 기가 막힌 것입니다. ‘출생이 잘못되다니! 아이고, 내가 자라나서 보니까 양자도 거지떼 중에서, 고아원에서 거지새끼를 갖다가 길렀다' 이겁니다. 이건 거지새끼보다 더 합니다. 어릴 때는 자기 어머니 아버지인 줄 알았는데, 자라고 보니 내가 거지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거지 출신이라는 걸 알게 될 때 그 집에서 어떻게 돼요? 뒤집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통곡을 하고 뒤집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길러 준 어머니 아버지를 자기 친어머니 친아버지로 알고 있었는데, 고아원에서 자란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면 얼마나 기가 찹니까? 우리 인간세계에서도 이렇게 기가 찬 일인데, 하나님은 그것보다 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왕권, 하늘나라의 왕궁의 황태자가 똥개새끼와 붙어 가지고 이렇게 되다니! 지옥의 왕이 되다니! (216-45)

 

문총재와 통일교회의 부부 이념은 하나님의 핏줄을 이어받고 태어난 아들딸로서 천년만년 영원한 그 부모를 모시고, 영원히 내 아들 내 딸이라고 찬양할 수 있는 아들의 자격, 딸의 자격을 갖추는 것입니다. 그 자리를 통과해야 하나님 마음 속에 남아 있는 타락의 상처를 풀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붙들고 ‘아버지, 얼마나 수고했습니까?' 해야 그 한마디에 하나님이 통곡을 하는 것입니다. 복장이 터지는 통곡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고맙구나, 내가 수천 년 역사를 이런 놀음했다.'하는 것입니다. 인류 창조역사가 몇천만 년 됩니다. 6천 년이 아닙니다. 그건 성경에서 문화사를 중심삼고 말하는 것이고, 구원섭리를 착수하기 위한 뜻을 중심삼고 말하는 것은 사실 몇천만 년 됐습니다. (232-59)

 

자기 욕심 중심삼고 통일교회 이용하겠다는 사람, 별의별 짓 다 한 사람을 역사에서 내가 다 보면서도, 다 알면서도 속아 줬습니다. 그거 왜 속아 주느냐? 하나님이 지금까지 그렇게 속아 나왔기 때문입니다. 배신하고 돌아서는 모습을 볼 때 기가 차 ‘저놈의 자식 벼락을 쳐 가지고 모가지를…. 일본도가 있으면 한번에 모가지를 쳐 버리고 싶다.'하는 분통하고 억울한 마음이 폭발되지만, 그들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하늘의 마음이 있는 것을 생각할 때 그러지 못한 것입니다.

불쌍한 하나님을 붙들고 용서하겠다는 마음을 갖고 나오다 보니, 그럴 때마다 마디가 생겨요. 알겠어요? 통일교회의 한 마디가 생깁니다. 참대에 마디가 있는 것처럼 마디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적 매듭, 종족적 매듭, 민족적 매듭을 지어 나가는 것입니다. (197-275)

 

역사적 스승이 살던 고통, 하나님의 역사적 고통을 흘려보내서는 안됩니다. 내 마음 깊은 사랑을 고이 담고 저나라에서 만나거든 목을 안고, ‘당신이 슬펐던 사정을 다 알고 나도 그 도수를 맞춰 살려고 했지만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것을 용서하십시오.' 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통곡하는 마음이 앞서게 될 때는, 하나님을 붙들고 통곡하더라도 하나님이 같이 울며 붙들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날이 없으면 해방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아내의 사랑이 아무리 크다해도 그 자리에 못미칠 것이고, 부모의 사랑이 아무리 크다해도 그 자리에 못 미치는 것입니다. 그걸 알기 때문에 해방하기 위해서 곁눈을 팔 수 없고 곁길을 더듬을 수 없는 놀음을 한 것입니다. (184-192)

 

다시 만날 때까지 불철주야, 밥이 먹고 싶거든 선생님을 생각하고, 밥을 안 먹고라도 뜻을 위해 선생님이 하는 일을 해야 되고, 잠이 오거든 잠자지 않는 선생님을 생각하고 뜻을 위해 싸워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욕을 먹으면서도 변명하지 않고, 참고 나가는 스승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상의 마음의 뼈를 가지고 내일의 승리욕을 가지고 자연 굴복하는 원수의 무리를 보기 위해 스스로의 실적을 갖고 나가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한 노력을 해야만 여러분이 살 길이 있는 것이고, 이 민족이 살 수 있는 것입니다. (82-9)

 

어떤 때에는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연락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에 통일교회 교주된 이 사람이 어떻게 눈물도 없이 밤을 새울 수 있었겠습니까? 불쌍도 하지. 나라는 사람을 몰랐더라면 그렇게는 안 되었을 텐데…. 국경을 넘고 또 넘어 한번도 만나보지도 못한 스승을 따르다가 동녘의 한국을 향하여 ‘나는 갑니다.'하고 축수를 드리며 최후에 길을 가는 그들을 붙들어 주지 못하고 살려 주지 못한 심정을 여러분은 아시겠습니까? 악마 앞에 수난을 당하고 고통을 받고 포로되어 있는 그를 불쌍히 여기는 하늘의 마음을 알면서도 밤이나 낮이나 전진을 해야 한다고 내몰았던 것입니다. (201-137)

 

내가 통일교회 교주 되겠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내가 교주라는 관념을 갖지 않습니다. 평민입니다. 오늘도 양복을 안 입고 넥타이도 안 맸습니다. 하나라도 부족한 단장을 해야 마음이 편합니다. 왜? 통일교회 식구들은 전세계에 퍼져서 이 시간에도 비오는 거리의 처마끝에서 젖은 옷을 입고 스승을 그리면서 선생님 만수무강하라고 경배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을 빌고 있는 자리를 유린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눈만 뜨면 잠자지 못하고 이렇게 사는 죄인 같은 교주의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이 문총재를 무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197-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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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권 참부모

        

 

제 1 장  참부모란

 

 1) 참부모라는 말의 의미

 

우리 통일교인들이 평소 쓰는 말 중에는 '참부모'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은 간단한 말이지만, 그 내용은 참 놀랍습니다. 역사 이래 그 어떤 책에도 없습니다. 참부모라는 말이 가장 쉬운 말이지만, 그 말은 우리만이 갖고 있는 말이고, 우리만이 쓰는 말입니다. 인류 조상이 타락했다고 하면, 기독교가 2천 년 역사를 거쳐 나오면서 타락한 부모는 거짓부모, 나쁜 부모이고 타락하지 않은 부모는 선한 부모요 참부모다 하는 것을 대번에 알았을 것인데, 그것을 지금까지 발표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발표할 수 있는 이 때를 기다려 왔다는 것입니다.

과거 역사시대에 참부모라는 것을 생각한 사람이 있었을런지 모르지만, 그 배후가 어떻다는 것까지는 풀 도리가 없었습니다. 통일교회의 방대한 원리강론의 전체 내용을 갖추지 않고는 그것을 확실하게 풀 수 없었기 때문에, 누구도 간단히 참부모란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원리 말씀, 혹은 우리가 알고 있는 통일교회의 역사관, 또 인류의 근원에 대한 사실을 밝혔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참부모라는 말을 확실히 앎으로 말미암아 무엇을 알 수 있느냐? 우리 인류 시조의 타락이 불륜한 관계로 말미암아 되어졌고, 하나님과 관계 없는, 창조이상으로 세우려던 참된 부모와 관계없는 혈통적 인연을 남겼다는 것입니다. 즉, 그릇된 핏줄을 이어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부모라는 말은 인류 시조로부터 모든 인간들이 그릇된 혈통 가운데 살던 것을 청산해 버리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새로운 본연의 뿌리를 중심삼은 사랑과 생명과 혈통이 이어진다는 뜻을 중심삼고 하는 말입니다. 이건 참 놀라운 말입니다. (20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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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참의 기원

 

  ①'참'이란

 

이 천지간(天地間)에 참된 분이 있다면 그분은 누구일 것이냐? 절대자입니다. 이 절대자를 오늘날 우리 한국말로 하면 '한 분밖에 없는 주인 양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주인 양반을 더 줄여서 말하면 하나님이 됩니다. 한 분밖에 없는 주인 양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나님은 땅 위의 좋은 사람도 좋아하고, 나쁜 사람도 좋아합니다. 죄를 지어서 사형장에 나가 죽게 되는 사형수도 '하나님, 저를 불쌍히 보시옵소서!' 하고 죽습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하나님 앞에서는 나쁜 짓을 해서 죽어 가는 입장에 있는 사람도 좋은 마음으로 회생해서 희망의 재출발을 다짐하면서 그 하나님 앞에 최고로 기여하고, 또 의지하고, 그분과 더불어 있고 싶어하고, 내심으로는 부모와 형제를 떠나서 누구보다도 간절히 가까이에서 사정을 통하고 싶어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참되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참된 분은 좋아하는 사람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죽으라고 하는 원수까지도 좋아해야 합니다. 그 앞에는 모든 것을 맡길 수 있고, 모든 것을 의논도 하고 싶고, 모든 것을 바랄 수도 있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야 참된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자라 나오는 과정에서 미운 사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미운 사람이 있는 사람은 참된 사람입니까, 거짓된 사람입니까? 거짓된 사람입니다. 틀림없이 거짓된 사람입니다. 이 세계에는 거짓된 사람이 많습니다.

참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양면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통일교회의 패들 중에서도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주 좋아하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은 적극적으로 미워한다면 좋은 패입니까, 나쁜 패입니까? 나쁜 패입니다.

그래서 나를 미워하는 사람도 좋아하자는 것입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내가 좋아하면 그 사람도 좋아하는 것입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내가 세 번 이상 좋게 대해 주면 그가 고개를 숙이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만 잘 해주면 고개를 숙인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안 그런가 한번 해보십시오. 사람에게는 양심이 있어서 자기가 잘못했는지 잘했는지 안다는 것입니다. (39-302)

 

여러분, 우리나라에는 좋은 사람이 많지요? 세상에는 훌륭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위인(偉人)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위인은 누구입니까? '대한민국의 위인' 하면 대개 이순신 장군을 말합니다. 이순신 장군도 위인입니다. 여러분은 그 이순신 장군을 다 좋아합니다.

그러면 이순신 장군이 참된 사람일까요, 아닐까요? 그건 모른다는 것입니다. 모르는데,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이러니까 '이상하다. 저 분이 왜 저래? 우리나라의 충신을 싫어하다니! 그러면 저 사람은 공산당인가, 민족 반역자인가?' 할 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이순신 장군을 싫어합니다. 왜 싫어하는지 얘기하겠습니다.

'이순신 장군' 하면, 한국 사람은 모두 충신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은 원수로 압니다. 일본 사람은 이순신 장군을 원수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본의 역사책에도 밝혀져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일본 사람 앞에는 원수요, 한국 사람 앞에는 충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참'이라는 것은 영국에 가도 참이요, 독일에 가도 참이요, 미국에 가도 참이요, 한국에 와도 참이요, 아프리카에 가도 참이요, 일본에 가도 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참은 원수가 없는 것입니다. 참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한 편에서는 좋아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싫어하는 것은 완전한 참이 못 되는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완전한 '참사람'이라면 일본 사람도 한국 사람과 같이 위인, 참사람으로 숭배해야 합니다. 그러나 참된 사람의 기준으로 보면, 이순신 장군은 완전한 참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조금은 참사람이 될 수 있지만 말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참사람이지만, 일본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의(異議)가 없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참된 사람을 원하기 때문에 이순신 장군처럼 덜 참된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참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앞에서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나쁜 사람도 좋아하고 좋은 사람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좋은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사람을 나쁜 사람은 제일 미워해야 합니까? 나쁜 사람도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여기에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섞여 있지만, 모두가 소망하는 것은 최고의 것입니다. 최고를 다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다 좋아한다는 것은 좋은 사람도 좋아하는 것이요, 나쁜 사람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쁜 사람이라고 해서 나빠하면 참이 아닙니다. 나쁜 사람도 최고로 좋아하고 좋은 사람도 최고로 좋아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사람의 정의입니다. 참된 사람이란, 나쁜 사람도 제일 좋아하고 좋은 사람도 제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양반이 있으면, 그 양반이 참된 분입니다. (39-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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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참의 기원

 

참이라는 것은 개인에게 한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전체를 넘고 넘어서 적용되고, 전체를 넘고 넘어서 가치적인 인연을 맺고자 하는 것이 참입니다. 참은 누구나 좋아하고, 누구나 찾는 것이기 때문에, 어디에나 있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63-89)

 

우리는 개인의 목적을 위해서 모인 것이 아니라 전체의 목적을 위해서 모였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개인보다 가정을 위하고 가정보다 민족, 민족보다 국가, 국가보다 세계를 먼저 위해야 합니다. 또한, 자기 개인이 참되기 전에 가정이 참되어야 되고, 나아가서는 국가와 세계가 참되어야 합니다.

인간은 자기 개체로서는 모든 복의 동기가 될 수 없는 복귀노정에 서 있습니다. 그러면 그 동기는 무엇이냐? 참입니다. 인간이 참된 모습을 이루려면 모든 생사화복(生死禍福)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 관계를 맺지 않으면 인간 개체 내에서는 참된 모습을 이룰 수 없습니다.

참은 반드시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인간을 전체적으로 수습하고 주관할 수 있는 결정적인 기반을 갖게 될 때 참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기반을 갖지 못하면 '참'이라는 명사는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참의 기원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계심으로 말미암아 참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떠나게 될 때 참도 떠나게 됩니다. 거기에는 참이 아닌 악의 기원이 생기는 것입니다.

참이 있어야 참된 결과를 가져 올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계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이니, 선이니 하는 명사는 인간을 위주로 해서 세워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주로 해서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더라도, 참은 인간이 마음대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즉, 타락한 인간이 마음대로 관리하는 그런 자리에 종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참이 우리를 주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참 앞에 굴복해야 됩니다. 참을 세우고 거기에 순응해야 됩니다. 여러분의 현실적인 생활이나 양심을 살펴보더라도 참은 완전히 하늘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참된 하나님, 하늘에 계신 거룩하신 하나님!'이란 말을 막연히 습관에 의해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참은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그것이 없었기 때문에 참의 기원은 인간들이 걸어 온 역사 배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초월한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즉, 그 기원은 환경을 초월한 자리에서부터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종교는 사람을 중심삼고 믿고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교주를 중심삼고 신앙의 표준을 세워 놓고 나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초월한 입장에서 하나님을 개재시켜 참을 추구해 나오는 사람들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역사과정을 거쳐 온 수많은 인간들의 생활노정에서나 현실 사회에서도 참의 기원을 갖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인간 자체들로 연결된 자리에서는 참의 기원을 마련할 수 없습니다. 참은 절대적인 기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절대자, 혹은 신(神)이라는 명사가 여기에 등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지금까지 땅 위에 참사람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을 지향하면서 사는 사람 자체로서는 참의 동기가 될 수 없습니다. 그 동기는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반드시 종교나 인류 역사상에 있어서 최후의 중요한 분기점(分岐點)에 가서는 신이 등장합니다. 절대자가 반드시 필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철학이 추구하는 목표, 즉 진리를 통하여 최후의 목표를 두고 추구해 나가거나, 존재의 기원을 파고 들어가더라도 반드시 여기에는 신이나 초월자, 절대자라는 명사가 개재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절대자와 관계를 맺지 않고는 어떠한 학문이나 존재 가치도 그 기원 문제가 해결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이 심각한 자리에 가서는 반드시 참을 통해서 해결지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의 기원은 인간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절대자, 하나님이 개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참을 주장하는 종교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참을 주장하는 인륜 도덕도 신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공자도 '순천자(順天者)는 흥(興)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亡)한다.'고 했습니다. 천(天)을 중심하고 한 말입니다. 반드시 하늘을 개재시켜야 합니다. 흥망성쇠(興亡盛衰)가 인간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의해서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두고 볼 때, 하늘이 동기가 될 수 있는 기원이 마련되지 않고는 참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이 땅에 살고 있는 인류 가운데 참된 사람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러면 참이 머무를 수 있는 장소는 어디냐? 물론, 하늘을 기원으로 해서 참의 자리를 땅 위에 세우려고 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그래서 어디에 머무를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우리의 생활 주변에 머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천국은 너희 안에 있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참된 나라인 천국은 마음속에 있는 것입니다. 아무런 사심이 없는 깊디깊은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바탕을 분석해 보면 지?정?의(知情意)로 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어디에 머무를 것이냐? 지?정?의(知情意) 중에서 무엇이 근본이냐? 그것은 의(意)도 아니요, 지(知)도 아닌 정(情)입니다.

여러분은 자기에게 제일 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어디에 두고 싶습니까? 자기만이 아는 곳에 두고 싶을 것입니다. 거기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고 관여할 수 없는, 즉 자기만이 관리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곳이 어디겠습니까? 마음 깊은 곳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 묻어 두는 것입니다. '이곳이라면 안심하겠다!' 할 수 있는 곳에 두는 것입니다. 즉, 사람들이 흔히 귀중품을 넣어 두는 장롱 같은 곳에 두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참이 머무를 수 있는 곳은 자신의 마음 깊은 자리입니다. (24-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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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참의 원기(原器)

 

참된 마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없어 가지고는 여러분이 기준을 세울 수 없습니다. '이렇다, 저렇다' 하고 평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기준에서 공증(公證)받을 수 있는 내용의 뿌리를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고 평가되는 그 존재는 흘러가 버리는 것입니다. 미터(meter) 같은 것도 원기(原器)가 있습니다. 그것을 중심삼고 맞고 틀린 것을 판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슨 문제가 벌어진다면 여기에 맞춰 보아서 딱 맞으면 만세에 불평하던 사람도 일시에 다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186-66)

 

사랑에는 혁명도 없고 변화도 없습니다. 변하는 것은 귀한 것이 없습니다. 다이아몬드는 굳기에 있어서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보물 취급을 받는 것이요, 황금은 누런 색깔이 변하지 않는 특이한 권위를 가졌기 때문에 귀한 것입니다. 또 진주는 조화된 우아한 색깔이 변치 않기 때문에 귀한 것입니다. 귀하다는 보물들을 왜 변치 않는 특성을 중심삼고 책정했느냐? 그것이 우주 만물의 존재 가치를 비교할 수 있는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우주의 모든 것을 측정할 수 있는 가치의 기준에서 제일 가는 기준이 무엇이 되겠느냐? 그게 문제입니다. 금이겠습니까, 다이아몬드겠습니까? 그것은 변치 않는 사랑, 깨질 수 없는 사랑입니다. 깨질 것 같은데, 깰 수 없습니다. 마음대로 할 것 같은데,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내가 포함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책정당하지 내가 책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우주에서 그러한 원인 중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도량형(度量衡)이나 원기가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어떤 측정기의 원기가 아니고, 변하지 않는 어떤 물건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그 표준을 변경시킬 수 없고, 인간도 변경시킬 수 없습니다. 영원불변하면서 보화의 가치를 지니고, 땅 끝이나 지옥이나 천상세계나 어디나 밤낮을 극복하고, 지역을 극복하고, 거리를 극복하여 절대적인 측정의 기준, 비교의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지구에도 위도(緯度), 경도(徑度)의 영점기준(零點基準)이 있습니다.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가 그것의 영점이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변하게 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기준이 있어야 됩니다. 그게 없으면 질서의 세계가 형성되지 않습니다.

이 우주에서 측정될 수 있는 모든 존재가 그 등차와 위치를 결정하고 싶은 본래의 기준, 하나님도 거기에 따를 수 있고 전체가 거기에 안 따를 수 없는 하나의 기준이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돈, 황금덩어리, 다이아몬드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하나님이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혼자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사랑도 물론 하나님이 만들 수 있다고 보지만, 그 사랑을 소유한다는 것은 혼자로서는 불가능합니다. 둘이서, 둘이서 소유해야 됩니다. 사랑은 하나님도 혼자서는 못 찾는 것입니다. 그 기준, 측정 원기가 뭐냐? 우주 만상의 존재세계뿐만 아니라, 영원한 세계에서 모든 것을 측정할 수 있는 기준, 절대적으로 하나밖에 없는 그 원기가 무엇이겠느냐? 근본 문제입니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춘하추동, 계절의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137-235)

 

여러분은 거리를 재는 척도(尺度)가 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만약에 1센티미터가 단위라면, 그 모델이라는 것은 절대적입니다. 그것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거기에 비교해서 같으면 그것은 다 옳은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자기가 제일이라고 하더라도 원형과 비교해 봐서 안 맞으면 불합격자입니다.

또, 1센티미터는 10밀리미터입니다. 거기서 1밀리미터라는 것도 절대적입니다. 그것이 열이면 1센티미터가 되고, 백이면 10센티미터가 됩니다. 이렇게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것이 연결되고, 어디에서든지 그것은 공통적이고 통일적인 내용을 지니게 됩니다. 그러면 사람들의 세계에는 그런 것이 없느냐? 사람들의 세계가 통일되려면 원칙적인 기준에서 몸과 마음이 싸우지 않고 하나된 폼(형태, 모양), '이래야 된다.'는 폼이 있을 것입니다. (128-78)

 

여러분! 미터가 있으면 그 미터가 1미터, 100미터, 아무리 크더라도 문제가 아닙니다. 그 미터의 기본 단위가 뭐냐 하면 1밀리미터입니다. 1밀리미터는 너무 작으니까 대개 1센티미터로 합니다. 아무리 크더라도 그 단위는 1밀리미터에서부터 전부 맞아야 됩니다. 이것이 전부 다 맞아 떨어져서 모든 것이 1밀리미터라고 하게 될 때, 그것을 우리는 세계의 것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1밀리미터, 한국의 1밀리미터, 혹은 영국의 1밀리미터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변함이 없습니다. 그게 진리입니다.

여러분, 진리가 뭡니까? 참입니다. 참이 뭐냐? 그 이상의 기준으로 세울 수 없다고 하는 자리에 선 것을 참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물리학 박사도 와 있지만, 물리학을 공부하려면 자연세계의 모든 움직임을 알아야 됩니다. 그 움직이는 것이 막연하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 지구가 얼마나 큽니까? 이 방대한 지구가 1년에 한 번씩 태양 주위를 순회하는데, 그게 1분도 차이가 없습니다. 1초도 차이가 없이 딱 맞다는 것입니다. 그게 차이가 있으면 큰일난다는 겁니다. 차이가 있으면 자꾸 작아지든가, 자꾸 커지든가 하는 문제가 벌어진다는 겁니다. 그러면 육지와 바다가 전부 다 갈라진다 이겁니다.

지구의 연령을 45억 년으로 잡는데, 45억 년 동안 이상 없이 공식 기준 위에 연결된 운동과 작동을 해온 것입니다. 거기에는 원리라는 것, 공식이라는 것, 공리(公理)라는 것을 중심삼고 측정하는 단위를 필요로 하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참이라는 것이 뭐냐? 참이란 것은 하나에도 맞지만, 천만을 맞추더라도 맞아떨어지는 겁니다.

금 중에서 순금은 24금입니다. 24금은 참금입니다. 25금, 26금은 없지요? 중앙에 세워서 균형을 이룰 수 있는 그런 자리, 시각적으로 최소 단위로 돌아갈 때 수직적인 평행선상에 맞아야 참입니다. 이게 수직이면 이것이 평행이 되는데, 이렇게 틀어지면 안 됩니다. 이런 건 참이 아닙니다.

그래도 24금까지는 이것이 직선이 된다는 겁니다. 그런 기준권 내에 서 있기 때문에 24금이 참이다 하는 겁니다. 거기는 수직을 갖다 맞춰도, 종적인 기준 앞에 갖다 맞춰도 전부 다 맞는 겁니다. 우주적인 종 앞에 평행선으로 서고 우주적인 횡 앞에도 평행선을 이룹니다.

우주의 대운동을 보면, 그것은 막연하게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다 법도를 중심삼고 움직입니다. 주체와 대상 관계의 운동을 하는 데는 반드시 수직입니다.

그 수직이 변경되는 것은 날아가 버립니다. 흘러가 버리는 것입니다. 깨져 버리는 겁니다. 수직이 딱 자리를 잡아야 공간세계에 자기의 자리를 잡고 존속의 기반을 갖게 마련이라는 겁니다. 이런 말은 좀 어려울 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사람의 잼대가 뭐냐? 사람도 잼대가 있어야 됩니다. 수학 문제를 푸는 데는 세계적으로 공통된 수리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푸는 것입니다. 어떠한 기준에 합격된 공통적인 기반이 세계적인 무대에 서게 될 때, 그런 것들을 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진리 가운데는 무엇이 있느냐? 진리 가운데는 반드시 동서남북의 사방이 있습니다. 진리가 있을 때는 반드시 환경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환경이 먼저냐, 진리 자체가 먼저냐? 이것이 문제가 됩니다. 환경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어떻습니까? 참된 인간은 어떤 인간이냐 이겁니다. 종횡의 표준이 되어야 합니다. '종으로 봐도 맞다. 찌그러지지 않았다. 횡으로 봐도 맞다.' 할 수 있는 기준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종횡이 일치되어야 공식적인 법도상에 있어서 전후?좌우?상하의 차이가 없이 같습니다. 이것을 어디에 갖다 맞추더라도 맞아떨어진다 이겁니다. 동에도 맞고, 서에도 맞고, 북에도 맞고, 남에도 맞고, 지상세계에도 맞고, 영계에도 맞다고 하게 될 때, '참이다!' 이렇게 됩니다. 그런데 아무리 크더라도, 밀리미터로 측정해서 남은 것이 반 밀리미터도 안 된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전부 다 부정하게 됩니다. 불완전한 것입니다. 이것은 쓰레기통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 무엇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측정하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8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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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참과 참사람

 

여러분! 참이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그것이 동그란 것이냐, 모진 것이냐, 넙적한 것이냐? 그것의 정의가 무엇이냐? 그리고 참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데, 무엇을 중심삼고 그 정의를 내릴 것이냐? 그게 문제입니다. 우리가 '참사람' 할 때, 그 참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참사람도 눈, 코, 입, 몸뚱이가 다 있습니다.

그러면 참이라는 것은 어떠한 일정한 장소의 제한을 받는 것을 말합니까, 일정한 장소를 초월하는 것을 말합니까? 초월하는 것입니다. 어째서 그 제한선을 넘어가야 되느냐? 그건 무엇을 말하느냐? 모든 것을 대표해서 잴 수 있는 내용을 갖추어야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수학에서는 공식을 말하고, 물리에서는 공리를 말하고 정의를 말하는데 그것은 어떤 것이냐? 공식이라는 것, 그것이 조그마한 것입니까? 공식의 단위라고 하는 것은 간단한 것이지만, 그 공식적이라는 것은 모든 물건을 비교할 수 있는 주체성을 가져야 됩니다. 그래야 공식이나 단위의 기준이 설정됩니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그것이 틀리면 이 방대한 우주에 들어맞지 않는다 이겁니다.

우리가 척도 같은 것을 보더라도 십이진법이라든가, 십진법 같은 것 등이 있습니다. 그것은 작지만, 형태는 다 맞아 들어갑니다. 그렇지 않고는 이게 물려 돌아가지 않습니다. 전체가 물려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맞지만, 전체가 맞지 않게 될 때에는 이것이 성립되지 않는 것입니다. 전체 존재의 성립이 상실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은 인간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참된 사람이 뭐냐?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스케일과 척도와 같은 것이 있어서 힘을 연결시켜 세계로 확대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부 다 균형이 맞게끔 확대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인생살이, 인간이 살아가는 길에도 그러한 공식적인 길이 있어야 된다고 하는 말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133-9)

 

지금 인간세계에는 수십억 인류가 사는데, 이 지구촌에 사는 사람의 선조들은 얼마나 많은 숫자가 지상에서 살다 갔을까요? 그거 생각해 봤습니까? 적어도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몇백 배, 몇천 배의 사람들이 살고 갔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 가운데 인류가 바라는 참된 사람은 몇 사람이나 되겠느냐? 참되다는 것은 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언제든지 참입니다.

'순금' 하면 24금입니다. 그건 공간이나 시간에 따라서 변하지 않습니다. 어떤 입장에 처하더라도 변하지 않는다 이겁니다. 그것은 왕의 손에 가나, 어떤 불량배의 손에 가나, 어떠한 변화무쌍한 환경에 가더라도 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의 황금색을 참된 빛깔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황금색을 좋아하지요? 빛은 무엇을 닮았느냐? 황금색을 닮은 것입니다. 밝은 빛은 황금색에 가까운 빛입니다. 태양빛도 황금색입니다. 저녁 노을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천년만년, 억만년 변할 수 없는 색깔을 가진 그런 참된 남자가 있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참된 여자가 있느냐? 어떻게 생각합니까?

종교세계에서는 인간을 타락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물론, 배경이 다른 종교들도 있지만, 전부 다 구원받기 위해서 가치 있는 새로운 인간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 말은 무슨 뜻이냐? 참된 본연의 인간, 참된 본연의 인간상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언제나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천년 전이나, 억만 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이후에도 인류가 존속하는 어떤 환경이나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그것을 추구하기 마련입니다.

여러분도 그 참된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참된 남자, 참된 여자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시대에 생명을 지니고 태어난 남녀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거기에 목을 걸고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마을에서 살게 되면, 그 마을에서 제일가는 참된 사람이 되겠다고 하는 겁니다. (17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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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참부모가 뭐냐

 

  ① 두 석판과 참부모

 

이스라엘 민족을 광야에서 인도할 때,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있었습니다. 낮에 인도한 것이 구름기둥이고, 밤에 인도한 것이 불기둥이었습니다. 그건 무엇을 의미하느냐? 남자 여자를 대표해서 끝날에 부모가 와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모심을 받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 것입니다. 이 불 기둥과 구름 기둥의 인도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다 멸망하는 겁니다.

또,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 나가서 40년 동안 유리고객하며 방향을 잡지 못하니 하나님은 그 민족이 멸망할 것을 염려해서 모세를 시내산에 불러 올려서 40일 금식을 하게 하고 두 석판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아담과 해와, 참부모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법궤 안에 어찌하여 두 석판을 넣었느냐? 두 석판은 하나님의 뜻을 종결지을 수 있는 중심으로서 아담과 해와를 상징한 것입니다. 그래서 법궤 안에 집어 넣은 것입니다. (134-174)

 

우리의 소원이 뭐냐? 하나님은 종적인 부모요, 아담과 해와는 횡적인 부모인데 그 종횡의 부모가 하나되어 기뻐할 수 있는 자리에서 사랑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못 된 것이 한입니다. 그런 사랑을 한번 받아 보고 싶어하는 열망을 다 갖고 있다 이겁니다. 종교도 전부 다 그런 것입니다.

종적인 하나님과 횡적인 면에서 하나되어서 사랑할 수 있는 부모가 이 땅 위에 있었느냐? 없었습니다. 인류의 첫조상이 타락했기 때문에 거짓부모가 되었습니다. 아담과 해와가 거짓부모가 되었기 때문에 그런 부모가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참부모가 나와야 됩니다. 참부모가 역사상에 나와야 됩니다.

그러한 역사적인 사명을 대행하는 하나의 명사를 씌워서 부르는 그 존재가 누구냐? 이것이 구주라는 존재요, 메시아라는 존재입니다. 구해 주는 데는 무얼 구해 주느냐? 몸뚱이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사랑의 소원을 이루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구하는 것을 이루어 주려면, 메시아는 어떤 존재로 와야 되느냐? 틀림없이 참부모로 와야 됩니다. 메시아는 참부모로 와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기독교에서는 메시아, 구주로 믿습니다. 참부모로 오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혼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참된 아비를 대신할 수 있는 하나의 남자로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종교는 하나의 남자를 찾아 나왔습니다. 남자 중에서도 생활을 잘하는 남자를 찾아 나온 것이 유교의 가르침이라고 볼 수 있고, 영계를 위주한 남자를 찾아 나온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기독교는 뭐냐?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사랑하는 가정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인 내용을 갖고 온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있어서 '나는 독생자'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독생자가 나왔는데, 독생자 혼자 살다가는 큰일나는 것입니다. 독생녀(獨生女)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독생녀를 찾아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독생자와 독생녀가 서로서로 좋아하는 자리에서 결혼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종적인 부모로서 기뻐하고, 그 독생자와 독생녀가 횡적인 부모로서 기뻐할 수 있는 신랑 신부가 되어서 지상에서 아들딸을 낳아야 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일족이 퍼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에게 이스라엘 나라를 저버리더라도, 유대교를 저버리더라도 제일 필요로 했던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무엇이었느냐? 바로 여자입니다. 남자 앞에 여자가 없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그 뜻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죽어 가면서도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라고 한 것입니다. 이래서 기독교에서는 2천 년 동안 신랑 되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며 기독교 신자들이 신부 되겠다고 허덕이고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 표준이 뭐냐? 그것이 메시아인데, 참된 부모의 자리를 갖다 맞추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린양 잔치입니다, 어린양 잔치. (58-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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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참부모의 정의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참부모가 뭐냐? 이게 문제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님이 종적인 사랑이 되고,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몸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몸과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뼈와 같고, 아담과 해와는 몸과 같은 것이다 이겁니다. 하나님도 마음이 있고 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적인 자리에서 내적인 부모가 되고, 아담과 해와는 외적인 자리에서 외적인 부모가 되는 겁니다. 내적인 부모와 외적인 부모가 사랑으로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사랑으로 결탁되어 참부모, 완성한 인간이 성사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결탁되지 않으면 완성한 인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본연의 우리 조상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연의 인간입니다. 그런 사람한테서 우리가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런 신성을 지닌 사람에 의해서 우리가 태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신성(神性)을 띤 하나님의 성품도 갖고, 인성(人性)을 띤 부모의 성품도 갖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과 해와의 완성은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의 사랑에 묶어져야 완성이 나오지, 이게 묶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적인 사랑과 횡적인 육적 사랑이 한 점에서 묶어진 것이 바로 우리 조상의 혈통의 뿌리입니다. 거기가 우리 조상의 혈통입니다. 거기에서 전인류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 때문에 남자의 사랑, 여자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이 다 갈라졌습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남자의 사랑, 여자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이 묶어지지 않았습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자동적으로 묶어집니다. 남자 여자는 자동적으로 사랑으로 묶어집니다. 왜 남자 여자가 하나되려고 하느냐? 사랑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랑으로 하나된 후에 뭘 하려고 그러겠느냐?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는 겁니다. 그것이 목적입니다. (184-71)

 

섭리의 시대를 보면, 복귀섭리는 끝날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끝날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종교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그 종교의 목적이 이루어질 수 있는 최후의 때가 부모님이 나타나는 때라는 것입니다.

그 부모는 참부모인데, 참부모라는 분은 어떤 분이냐? 이게 문제입니다. 참부모라는 분은 우리 원리에서 가르쳐 주고 있는 바와 마찬가지로 원리결과주관권과 직접주관권, 즉 간접주관권과 직접주관권을 다 거쳐서 책임분담을 완성한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일체의 이상을 이룬 부모입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하나님과 인간이 사랑을 중심삼고 일체의 이상을 이룬 부모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상이 비로소 지상에 참부모의 가정을 중심삼고 착륙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 참부모의 이상이 깨져 나갔습니다. 아담과 해와가 책임분담이라는 사명을 앞에 놓고 원리결과주관권, 즉 간접주관권에서부터 직접주관권에 다리를 놓아서 이것을 다 완결지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이 간접주관권 내를 침해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면 안 됩니다. 이걸 모르면 저나라에 가서 등록을 할 수 없습니다. (143-76)

 

참된 부모가 도대체 뭐냐? 이 우주가 생겨난 이래 비로소 참된 사랑, 이상적인 사랑이 스파크될 수 있는 출발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된 부모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된 부모 앞에는 무슨 아들딸이 있어야 하느냐? 참된 자녀가 있어야 됩니다. 참된 자녀는 어떤 자녀냐? 참된 부모의 첫번째 사랑을 받기에 충분한 안팎의 미를 갖춘 아들딸이다 이겁니다. (125-166)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참부모'라는 말이 뭐냐? 하나님이 참부모를 지명하신 것입니다. 그게 무슨 뜻이냐? 그게 뭐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비로소 인간세계에 착륙했다 이겁니다. 참부모가 기점이다 이겁니다. (130-111)

 

참부모가 뭐냐? 하나님의 사랑을 핵으로 한 그 사랑을 중심삼고 아담과 해와가 완전히 절대적으로 하나되어서 출발할 수 있었던 최초의 우리 인간 조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걸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참부모를 모르면 참자녀라는 것을 알 수 없습니다. (135-161)

 

역사의 핵심이 되고, 시대의 핵심이 되고, 미래의 핵심이 될 사상은 무엇이냐? 다시 말하면, 역사를 두고 볼 때는 역사적인 열매요, 시대를 두고 볼 때는 시대의 중심이요, 미래를 두고 볼 때는 미래의 기원이 될 수 있는 세계의 사상의 중심은 무엇일 것이냐? 그것은 참된 남자와 참된 여자입니다.

그러면 그 참된 남자와 참된 여자의 생활관은 무엇일 것이냐? 세계를 위하여 보람 있게 사는 것입니다. 둘이 사랑하는 것은 세계를 위해서 사랑하는 것이고, 아들딸을 낳는 것도 세계를 더 사랑할 수 있는 동기를 만들기 위해서 낳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이 우리가 지금 주장하고 있는 사상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여러분이 세밀히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내가 알고 있는 입장에서 볼 때는, 횡적인 모든 입체적인 세계를 보나, 종적인 세계 역사 전반을 보나 기필코 역사는 그 기준에서 해명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건 자동적인 결론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25-147)

 

타락의 기원이 되는 곳이 어디냐? 아담과 해와, 즉 한 부모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여 거짓부모가 됨으로 말미암아 모든 문제가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심정문제, 혈통문제, 인격문제, 언어문제, 생활문제, 국가문제, 세계문제가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한꺼번에 축적시킬 수 있고, 이 모든 것을 총합할 수 있는 참된 기준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이것은 어떠한 종족권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요, 사회권 내라든가 국가권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세계권 내에서도 절대 불가능한 것입니다. 모든 문제의 기원이 거짓된 부모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참된 부모의 인연을 중심삼고서만 복귀될 수 있는 것입니다.

참부모를 중심삼고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심정과 일치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참부모를 중심삼고 본연의 혈통이 시작되고, 참부모를 중심삼고 본연의 인격이 시작되고, 참부모를 중심삼고 언어가 본래의 위치로 돌아가고, 참부모를 중심삼고 생활이 본연의 형태로 돌아가고, 참부모를 중심삼고 본연의 국가가 형성되고, 참부모를 중심삼고 본연의 세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전체를 총집약한 핵심적인 모체가 무엇이냐? 참부모입니다. 참부모 한 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의 모든 사상을 내가 전부 인계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의 심정, 그의 인격, 그의 생활관, 그의 국가관, 그의 세계관을 전부 인계받지 않고는 중심 된 자리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28-248)

 

참부모를 빼놓고는 교육도 없어야 되는 것이요, 생활 터전도 없어야 되는 것입니다. 참부모와 완전히 하나돼야 하는 것입니다. '참부모의 생활이 내 생활이요, 참부모의 이념이 내 이념이요, 참부모의 일이 내 일이요, 참부모의 사랑권이 내 사랑권이다.' 이렇게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습니까? (4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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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③ 참부모는 인격의 실체

 

역사상의 성현들 가운데 '나는 인류 역사에서 인간들을 대표해서 몸과 마음이 싸우지 않고 완전히 통일을 이루었으니 내 본을 받아라!'고 한 사람이 있었습니까?

몸이 중요하냐, 마음이 중요하냐? 마음도 중요하고 몸도 중요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내 몸 마음의 통일권입니다. 그것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것이 안 된 사람은 아무리 세계가 통일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세계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입니다. (142-325)

 

지금 여러분은 몸이 다르고 마음이 다릅니다. 그러면 이것이 언제 하나될 것이냐? 지금까지 인류역사 노정에서 몸과 마음이 싸우는 이것을 통일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안 나왔다는 것입니다.

바울 같은 사람도 탄식했습니다. '마음의 법과 몸의 법, 이 두 법이 있어 서로 싸우니, 오호라, 나는 괴로운 사람이다. 이 사망의 법에서 누가 나를 해방할 것이냐? 거기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했는데, 바로 봤다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해방되는 것입니다. (164-41)

 

마음과 몸이 하나되지 못한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 아버지는 어떤 분이냐 하면, 이 우주의 근본 되는 종적인 사랑의 추입니다. 그 추가 땅에 내려지게 될 때에 하나님 혼자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하나님이라고 해도 사랑을 내리려면 수평선에서 이 기준을 끌어내릴 수 있는 힘이 필요합니다.

전기가 강하면, 마이너스 전기가 지상에 가까이 오게 되면 가까운 데서 벼락을 치는 것입니다. 내려와야 됩니다. 높은 데 있더라도 내려와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높은 사랑이 내려오려면 땅 위에 마이너스 사랑이 먼저 생겨나야 됩니다. 마이너스 사랑이 먼저 생기면 플러스 사랑은 자동적으로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게 쌍으로 되어 있습니다.

작용하는 세계에는 반드시 대응과 반작용이 있습니다. 서로서로 대응하고 서로서로 작용하는 반면, 반작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일반 사람들은 이 반작용이 대응하는 힘의 작용을 반대한다고 보지만, 그게 아닙니다. 반작용이라는 것은 대응된 존재들을 보호하기 위한 작용입니다. 이래야 이론적으로 선악의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입니다. 선을 중심삼고 악이라는 것에 대해서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를 찾지 않고는 선악 대결의 역사를 치리할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디를 통해서 왕림하느냐? 종적인 사랑이 설정되어야 합니다. 그 종적인 사랑이 종적인 가치를 지니기 위해서는 횡적인 기반이 닦아져 들어와야 됩니다.

남자 여자도 그렇잖아요? 철없을 때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크게 되면 여자도 세계를 가지려고 하고, 남자도 세계를 가지려고 합니다. 그렇게 세계를 가지려고 할 때는 어떻게 되느냐? 이렇게 나가서는 안 됩니다. 어디에 가서 만나야 되느냐? 다 커서, 성숙해서 만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세계가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됩니다.

세계를 점령하겠다고 하지만, 점령하는 데는 내 힘을 가지고는 안 됩니다. 사랑이 아니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힘이 있기 때문에 남자에게나 여자에게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이상과 꿈이 있는 겁니다. 여러분은 세계 전부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지요? 또 하늘이 있으면,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으면 그 보이지 않는 무한한 세계까지도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종적인 욕망, 횡적인 욕망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횡적인 욕망은 횡적인 세계인 지구성 전체를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고, 종적인 욕망은 이 우주를 내 것으로 만들려는 것입니다. 몸뚱이는 제한되어 있습니다. 지구성의 한계선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종적인 세계는 얼마든지 커집니다.

그런 것을 볼 때, 마음의 자리를 대표할 수 있는 아버지가 하나님이고, 몸의 자리를 대표할 수 있는 아버지가 타락하지 않은 참사랑을 중심삼은 인류의 시조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역사시대에 몰랐던 이러한 사실을 캐 가지고 참부모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횡적인 참부모의 자리가 본래 창조했던 이상관으로 본 하나님의 아들딸의 자리입니다. 즉 아담과 해와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뭐냐? 몸과 같은 것이 아담과 해와라면, 종적인 마음과 같은 아버지의 자리에 있는 것이 하나님입니다.

마음과 같은 하나님과 몸과 같은 이 분이 하나되는 데는 무엇으로 하나되어야 되느냐? 힘도 아니요, 지식도 아니요, 권력도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우리의 마음적인 인격, 몸적인 인격이 본래 하나될 수 있는 원칙적인 모델을 닮아 난 것이 내 개인이기 때문에, 원칙적인 근본을 찾아가 볼 때에, 몸 같은 아버지가 있어야 되고, 마음 같은 아버지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거기서 마음적인 아버지의 자리가 하나님의 자리이고, 몸적인 아버지의 자리가 인류의 시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류 시조와 마음적인 아버지인 하나님이 어디에서 하나될 것이냐? 어디에서 하나되겠어요? 참사랑을 중심삼고 사랑의 구형 가운데, 핵의 자리에서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종적인 것을 중심삼고 남자 여자는 찾아가는 것입니다. (177-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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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우리가 알아야 할 '참부모'의 어의(語義)

 

  ① 참부모란 말은 귀하다

 

여러분은 참부모란 말이 얼마나 중요한 말이요, 얼마나 귀한 말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의 나라와 대통령, 선생님, 부모, 형제는 못 믿더라도 참부모만은 믿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참부모라는 관념 가운데는 지옥이라든가, 악한 사탄세계를 구할 구원의 관념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사탄세계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입장에 있는데, 부모가 여러분의 죽음 앞에 방패막이가 될 수 있는 힘이 되어 줌으로써, 하늘땅이 공인하고, 역사가 공인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자랑스럽겠습니까? 하나님이 보장하고 역사가 보장하는 참부모라는 것입니다. 참부모라는 말이 어떻게 나왔는지 그걸 알아야 됩니다.

레버런 문이 참부모가 되겠다고 이 일을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레버런 문이 아니면 안 되겠으니까 할 수 없이 나서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11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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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참부모란 말은 자랑스럽고 엄청나다

 

지금까지 우리 계대(繼代)의 입장은 어떤 것이었느냐? 우리 천만대(千萬代)의 선조들이 다 부활해서 그 부활된 영광을 찬양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타락권(墮落圈)에서 벗어나지 못한 영광이요, 찬양이었습니다.

그러나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참부모라는 말은 어떤 것이냐? 여러분의 자리는 비참하더라도 천천만 선조들, 혹은 만민의 해방권을 갖춘 영광의 자리에서 찬양하는 이상의 가치를 지닌 자랑스러운 말이라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부모님을 만난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이 연결되고, 통일교회를 만난 이 자리에는 불원한 장래에 하나님의 나라와 부모님이 원하는 조국을 찾을 수 있는 길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인류는 문화 배경이 다르고, 국경이 다른 나라에서 자기들의 조국이라고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과거의 조상들이 살아왔고, 지금도 살고 있고, 후손들도 살겠지만 그것은 전부가 타락권임에 틀림없다는 겁니다.

그 타락권을 박차고 나가서 오늘의 승리를 선조들과 더불어, 자기의 일족과 더불어 미래의 후손들 앞에 자랑스럽게 찬양할 수 있는 사랑의 조국을 찾아야 됩니다. 그 사랑의 조국 가운데서 사랑의 부모를 가질 수 있고, 뿐만 아니라 조국의 중심인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 하나님을 모실 수 있다고 할 때는 그 이상 영광스러운 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138-106)

 

메시아는 하나님의 사랑을 완성한 아담격이기 때문에 본연의 아버지의 자격으로 오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아버지를 중심삼고 어머니가 센터가 되어서 하나님의 본연의 사랑을 중심삼은 그 터전을 중심삼고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기준까지의 소유권이 참사랑을 중심삼고 메시아의 것으로 된 이후에 국가의 것이요, 국민의 것이요, 가정의 것이요, 개인의 것이라는 소유권 판도가 벌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메시아 본연의 사랑이 비로소 개인에서부터 국가까지 형성되어서 로마와 세계까지 그 파문이 전파되었더라면, 오늘날의 재림 사상은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미국이 하나님의 사랑권에 속한 나라입니까? 아닙니다. 이 지구상에 그런 과정을 통과한 나라가 없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중심삼은 수많은 교회들이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 원칙에 일치된 소유권에 속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없습니다. 하늘나라가 지상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참부모라는 말이 얼마나 위대하고 얼마나 엄청난 말이냐는 것입니다. 이것만이 타락권 사탄세계를 뚫고 올라갈 수 있는 하나의 기지가 됩니다.

그러니 참부모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 말만을 천 번 듣고, 만 번 듣고도 감사해 하고 남을 수 있는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129-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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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③ 참부모란 말은 놀라운

 

우리는 인류 시조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고향을 잃어버렸습니다. 또, 나라를 잃어버렸고, 세계를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잃어버렸고, 하나님의 사랑까지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런 방대하고 엄청난 모든 것을 다시 찾을 수 있는 하나의 기원이 무엇이냐 하면, 참부모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소원해 오신 섭리의 목적이 무엇이냐? 참부모 기준입니다. 인류가 타락 이후 지금까지 탕감역사를 해 나온 것은 무엇을 하기 위해서냐? 참부모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지금까지 한날의 소원을 바라고 재림의 날을 기다리는 것도 이것을 위한 것이요, 수많은 종교가 전부 이 한 날을 바라고 있는 것도 이것 때문입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할 때, 참부모가 태어난 것은 무섭고도 놀라운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고향에 가려고 하는 것은 거기에 부모가 있고, 형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중심삼고 연결된 사랑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그런 고향을 품고 있는 나라, 그런 고향의 사랑이 연결될 수 있는 그 나라를 사람들은 자기의 조국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조국이라고 하는 것은 그렇습니다.

그런 면에서 본연의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 우리에게는 고향도 없고, 조국도 없는 것입니다. 과거에도 없었고, 현재에도 없습니다. 있다고 해도 그것은 악과 관련이 있는 것이지, 우리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참과는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67-227)

 

통일교회의 참부모라는 말은 놀라운 말입니다. 거짓부모는 사탄의 사랑을 중심삼고 떨어졌지만, 참부모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올라가니, 사랑의 세계로 전진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그 사랑을 찾아가려고 하느냐? 사랑은 위대한 것입니다. 영원히 평등한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이름만 들으면, 아무리 높은 자리에라도 한꺼번에 동참할 수 있는 자격을 갖는 것입니다. (144-241)

 

통일교회에서는 참부모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거 놀라운 말입니다. 참부모가 뭐냐? 거짓부모가 생겨났으니 참부모가 나와야 됩니다. 참부모는 무엇을 해야 되느냐? 사탄세계의 뿌리가 되는 그릇된 혈통을 바로잡아야 되고, 그릇된 생명을 돌이켜 놓아야 되고, 그릇된 사랑의 길을 바로 열어야 됩니다. (169-39)

 

선생님이 잘생기지는 못했지만 변하지 않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이상적인 목적의 기준, 그 정착점이 뭐냐 하면 참부모입니다, 참부모. 그러면 하나님의 뜻의 완성이 뭐냐? 창조이상의 완성이 뭐냐? 아담과 해와가 사랑이상을 이루어서 직접주관권 내에서 부모의 자리에 서는 것이 이상적인 기준입니다. 그게 뜻의 완성의 자리입니다.

선생님이 이 땅 위에 참부모라는 이름을 가지고 온 것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알아야 됩니다. 참부모라는 말! 세상의 말 중에 제일 복된 말이 무엇일 것이냐? 타락한 인간에게는 그 나라를 잃었다가 찾는 것보다도, 세계를 잃었다가 찾는 것보다도 참부모라는 말이 제일 복된 말입니다. 그것은 천지의 그 무엇보다도 귀한 말입니다. (127-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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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④ 참부모란 말은 무서운

 

통일교회에서의 무서운 하나의 가르침이 무엇이냐? 그것은 '참부모'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도 무서워하는 말이요, 사탄도 무서워하는 말입니다. 우리 인간은 타락권 내에 있기 때문에 참부모를 중심삼고 볼 때, 그 참부모를 따르고 있는 사람들은 그분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이러한 분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나왔기 때문에 심판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이니까, 하나님이 그분의 말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또, 사탄이 왜 참부모라는 말을 두려워하느냐? 이 말을 믿고 따라가는 날에는 자기의 모든 것이 파괴되어 버리고 파탄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지극히 무서운 말이 되는 것입니다. 사탄은 언제나 참부모의 가는 길을 막으며 쓰러지기를 바라고, 나빠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이 길을 따라가는데 얼마만큼 믿고 따라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첨단의 자리에 섰다면 한 발짝 한 발짝, 행동 하나를 천년 이상의 정성을 다해서 감격하면서 가려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65-277)

 

저는 참부모의 이름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평온한 자리를 찾기 위해서 삶의 길을 취한 것이 아니라, 이 뜻의 사명을 완결짓기 위하여 지금까지 싸워 나왔사옵니다. 지난날을 회상하면 사연도 많고 억울함도 많았습니다만, 당신의 사연, 당신의 억울함에 비할 수 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당신 앞에 보일 수 없는 부끄러운 모습임을 아옵니다. 그런 것을 느끼는 저의 마음을 아시사, 이 날을 기하여 천상세계와 지상세계의 문을 여시옵소서! (134-116)

 

참부모가 무엇이냐? 참부모란 말이 그리 간단한 말은 아닙니다. 제일 무서운 말입니다. 그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모릅니다.

이 참부모라는 말 한마디 때문에 역사가 좌우됩니다. 이 말을 찾아 세우기 위해서 지금까지 수많은 선열들이 희생의 길을 갔습니다. 연속적인 피의 투쟁을 거치고 몸부림치며 절규하면서 소망을 품고 찾아 세운 이름이 참부모라는 거룩한 이름입니다.

참부모 앞에는 참자녀가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은 참자녀가 되었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참이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33-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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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메시아와 참부모

 

 1) 역사와 참부모

 

  ① 타락과 참부모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 참부모를 모셨지만, 이 땅에는 참부모의 아들딸만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부모의 아들딸도 살고 있습니다. 원래는 참부모의 혈육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딸이 될 것이었는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타락한 아들딸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류 시조가 잘못한 그것을 해원성사해 주기 위해서 다시 오시는 부모가 재림주요, 구세주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와서는 미리 낳아 놓은 장자를 복귀시켜야 됩니다. 그 장자가 서자와 같이 되었습니다. 핏줄이 달라졌습니다. 본연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의 혈통을 이어받아야 하는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다른 핏줄을 이어받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버릴 수 없습니다.

이건 서자와 같습니다. 돌감람나무입니다. 이 돌감람나무 밭을 악마가 지배하니, 하나님이 돌감람나무를 자기의 소유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강제로 겁탈하는 것이 아닙니다. 총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굴복할 수 있는 환경을 중심삼고 천대받고 매맞으며 하나 둘 씩 빼앗아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세계적인 판도를 이루기까지 얼마만한 희생의 대가를 치렀는지 모릅니다. 순교의 제단에서 끊임없이 희생되던 비참한 제물의 비명이 지구상에 안 울려 퍼진 곳이 없는 그러한 역사를 거쳐 왔다는 것입니다.

그 피의 제단이 연속되어서 오늘날 목전에까지 도달한 역사적인 한이 엉클어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이어받아 해원해야 할 엄숙한 역사적인 과제를 안고 있는 우리는 하나님을 해방하고 기독교를 재차 해방해야 됩니다. (210-360)

 

타락이 뭐냐? 악마의 거짓된 사랑과 거짓된 생명과 거짓된 혈통이 뿌려진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사랑이 있습니다. 생명이 있습니다. 선조로부터 이어받은 핏줄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은 역사 이래 조상들로부터 이어받은 사랑의 결실이요, 생명의 결실이요, 혈통의 결실이다 이겁니다. 그게 뭐냐 하면, 사탄의 사랑과 사탄의 생명과 사탄의 피를 받아서 하나님의 원수가 될 수 있는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뿌리치고 벗어 던져 버리지 않으면 지상의 평화는 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레버런 문이 참부모의 이상을 들고 나온 것입니다. 참부모는 뭘 하느냐? 이 거짓된 사랑을 깨끗이 청산하고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가 분립될 수 있도록 평화와 반대되는 악마의 요소를 깨끗이 청산하기 위해서 투쟁하는 것입니다. (217-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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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역사의 소원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참부모님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이 타락한 세계의 역사를 볼 때 이 세계에는 타락한 부모가 태어났다, 타락한 부모가 태어나서 타락한 세계를 이루었다고 하는 것을 알 것입니다.

이 세계는 어떠한 세계냐? 타락한 부모와 인연된 세계이지 참부모나 하나님이 이상했던 본연의 세계와는 상관이 없는 세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랜 인류 역사를 거쳐오면서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살다 갔지만, 그들 가운데 행복을 노래하면서 '아! 나는 인간으로 태어나 행복했고, 인간으로서 모든 면에서 성공한 한 사람이었다.'라고 우주 앞에 자랑하고 살고 간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역사는 고해와 마찬가지입니다. 비애의 역사, 전쟁의 역사, 질병의 역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느냐 하면, 타락의 결과로 이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소원은 무엇이냐? 인간이 어떻게 완성한 사람이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완성한 사람. 신(神)이 있다면 그 신 앞에, 완전한 절대자가 있으면 그 절대자 앞에 완전할 수 있는 사람을 어디서 찾고, 어디서 이루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철학을 통해서, 종교를 통해서 인간들이 그걸 찾고 찾았지만, 그 해결점을 다 보지 못하고 이제는 모두 포기상태에 다다랐습니다. 그것이 현세의 인간의 처지라는 것입니다. (137-81)

 

지금까지 인간들의 역사적인 소원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참부모를 모시는 것이었습니다. 참부모를 맞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를 세우신 것은 메시아를 맞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메시아가 누구냐 하면, 참부모입니다. 또한, 기독교와 기독교문화권을 만든 것은 재림주를 맞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재림주는 누구냐 하면, 제3차 아담으로 오시는 참부모입니다. 참부모가 오실 때가 되면 세계의 모든 국가들이 형제의 인연을 가지기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후 전승국가들이 패전국가들을 전부 다 해방시키는 놀음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런 비정상적인 역사적 현상이 벌어져 나온 것입니다. 역사가 바라면서 찾아 나온 것이 뭐냐 하면, 참부모를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종교가 나오는 것도 참부모를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세계가 나오는 것도 참부모를 찾기 위해서, 나라가 나오는 것도 참부모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참부모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5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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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③ 역사와 참부모

 

지금까지 종교는 무엇을 해 왔느냐? 참된 아들 하나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참된 아들 하나를 찾으시기 위해서 지금까지 수고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도주들 가운데는 여자가 없습니다. 종교의 도주들은 전부 다 남자입니다. 이것은 참된 아들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연결시켜 나왔다는 것을 뜻합니다. 일 단계, 이 단계, 삼 단계, 백 단계, 이렇게 올라가 최후의 바톤을 이어받아서 승패를 결정할 수 있는 하나의 주인공, 그 아들을 찾아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입니다. (41-28)

 

하나님이 종교를 만들어서 뭘 할 것이냐? 뭘 하자는 거냐? 하나님이 종교를 왜 만들었느냐? 세계의 누더기 짜박지, 큰 누더기 판도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목적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참된 사랑을 할 수 있는 한 사람을 찾기 위한 것입니다. 사랑의 환경적인 요건 가운데서 하나님이 지켜 가지고 상대적인 한 사람을 찾으면 그만입니다. (173-34)

 

하나님의 복귀역사는 참부모를 세우기 위한 역사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인 아벨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하늘은 내적으로 참부모를 복귀하기 위해서 섭리해 나왔습니다. 어느 누구든지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한 근본섭리에 대적(對敵)하거나 훼방하면, 그는 천도(天道) 앞에 버림받게 되고, 결국 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9-10)

 

역사를 통하는 것은 뭐냐? 하나님의 해방은 참부모와 하나되어서 모든 사탄의 참소조건을 청산해야 가능합니다. 그걸 청산하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하나님의 심정적인 소유권(所有圈)에 봉착하느냐?

여러분의 부모와 여러분과 만물이 평행선상에서 하나님의 소유로 결정될 수 있는 자리를 지니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탕감복귀해야 됩니다. (137-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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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④ 복귀섭리 역사는 참부모를 찾기 위한 역사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여 이 땅 위에 나타나셔야 할 참부모는 어떤 분이냐?

사탄세계와 싸워서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입장을 수습하고, 인간세계를 주관하고 있는 사탄을 궤멸시켜야 하며, 영계와도 대결하여 수많은 영인들까지 주관할 수 있는 절대적인 자리를 구축해야 할 분입니다. 참부모에게는 그런 사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만물로부터 인간, 하늘까지 연결된 하나의 세계를 복귀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참부모를 보낼 수 있는 길을 닦아 나오신 것입니다.

참부모가 나타나시기 위해서는 참된 아들딸이 있어야 하고, 참된 아들딸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참된 종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복귀역사 노정을 보면, 종의 시대를 거치고 자녀의 시대를 거쳐서 부모의 날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해 오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종의 시대로부터 양자의 시대, 자녀의 시대를 거쳐서 부모의 시대까지 복귀해 나오는 동안 영계에 있는 영인들도 협조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외적으로 한 국가의 기준을 넘어서 세계적인 발판이 갖추어지기 전에는 참부모가 이 땅에 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노아와 아브라함을 거치는 2천 년 섭리역사의 기간이 있은 후 야곱으로 하여금 비로소 이스라엘 민족을 형성할 수 있는 기반을 닦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민족을 통하여 국가를 형성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기까지 수많은 역사노정을 거쳐 오면서 수고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입장에서 하나님 대신 사탄과 대결하여 이겨야 하고, 양자의 입장에서 하나님 대신 사탄과 싸워 이겨야 하고, 직계 아들딸의 입장에서도 하나님 대신 사탄세계와 싸워 이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참부모를 맞이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섭리역사는 구약시대로부터 신약시대를 거쳐서 지금까지 오랜 역사를 거쳐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종의 입장을 복귀하고 양자의 입장을 복귀한 터전 위에서 직계 아들딸의 입장을 복귀하여, 즉 승리의 기반을 닦아 놓은 후 참부모의 인연을 세우시려는 것이 하나님이 이 땅 위에 메시아를 보내신 목적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으로 하나님이 4천 년 동안 준비하신 종의 기반이 무너졌고, 양자의 기반도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2천 년 전에 오신 예수님은 종의 입장에서 싸워 승리하시고, 양자의 입장에서 싸워 승리하셔서 직계 아들의 입장으로 나아가셔야 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입장이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양자의 입장과 직계 아들의 입장을 거친 후, 이스라엘 민족을 기반으로 하여, 참부모의 인연을 세워 놓는 것이,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신 목적이었습니다. 또, 그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하셔야 할 사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전체적인 기준에서 승리의 기반을 닦지 못하고, 영계를 중심하고 참부모의 인연을 개척해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개인적인 자리, 가정적인 자리, 민족과 국가적인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하늘의 뜻을 대하는 개인과 가정과 민족과 국가를 세워서 지금까지 돌고 돌아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 세계적인 시대를 맞이하여 하늘은 기필코 약속하신 바와 마찬가지로, 신랑 되시는 주님을 보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신부를 택하셔서 참된 승리의 기반을 닦으실 것입니다. 참부모의 자리는 본연의 창조목적의 자리이기 때문에 그런 자리를 닦기 위해서 하나님은 지금까지 6천 년 동안 싸워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6천 년 복귀섭리 역사는 이 참부모를 찾기 위한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참부모는 6천 년의 섭리사 전체를 대신하는 분입니다. 그래서 그 참부모를 찾지 못한 것이 인류 전체의 슬픔이었고, 고통이었고, 비애였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류역사는 무슨 역사냐 하면, 참부모를 복귀하는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부모를 복귀하지 않고는 참된 자녀가 있을 수 없는 것이요, 참된 자녀의 인연을 세우기 전에 참된 가정과 참된 종족과 참된 민족, 국가, 세계, 천주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이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 6천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수고해 나오셨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오셨던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처음으로 참부모의 영광으로 오셨던 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참부모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즉 참부모는 역사적인 결실체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역사적인 결실체로 서시기 위해서는 일면적인 승리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들의 사명만 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명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서 육적으로는 아들의 입장을 복귀하는 노정을 거쳐 나가야 했고, 영적으로는 부모의 입장을 복귀하는 노정을 거쳐 나가야 했습니다. 이렇게 양면적인 입장에서 책임을 다 하여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기점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럴 때 비로소 그 기점은 개인적인 이스라엘의 기반이 되고, 가정적인 이스라엘의 기반이 되는 것입니다. 민족적인 이스라엘의 기반이 되고, 국가적인 이스라엘의 기반이 되고…. 이렇게 되었더라면 영적 육적으로 참부모의 기준을 세울 수 있었을 것인데,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불신함으로 말미암아 그 기준을 세울 수 없었습니다.

본래, 참부모는 창조원리로 보면 영적 육적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으로 인해서 참부모가 되지 못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영계에 가셔서도 참부모를 모실 수 있는 터전을 닦아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 이 땅에 다시 오시는 주님은 영적인 부모의 입장을 복귀해야 되고, 육적인 부모의 입장을 복귀해야 합니다. 이것을 아시는 예수님은 그래서 지금까지 2천 년 동안 영계에 가셔서 무엇을 하셨느냐 하면, 다시 오시는 주님이 영계로부터 핍박을 받지 않고 유린당하지 않을 수 있는 기반을 닦으셨습니다. 예수님을 중심한 영적인 사회, 국가, 세계적인 기반을 닦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지상에서가 아니라 영계에서 섭리해 오셨기 때문에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전부 영적인 부모와 인연을 맺어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다시 오시는 주님은 예수님이 세례 요한으로부터 모든 축복을 상속받으신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으로부터 예수님이 영계에서 닦아 놓으신 영적인 개인, 가정, 국가, 세계적인 기반을 상속받아야 합니다. 그런 입장을 거치지 않고는 참부모의 인연을 이 땅에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상에서 영적인 상속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 원칙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주님에게 영적인 기반을 상속하시게 될 때, 지상의 기독교인들이 그 다시 오시는 주님과 하나되면, 지상에서 상속의 기준이 닦아질 수 있을 것인데,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이 그런 기준을 세워 놓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승리의 터전이 오시는 참부모 앞에 고스란히 옮겨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다시 오시는 참부모님은 재차 영적인 상속의 기준을 복귀하고, 육적인 상속의 기준을 복귀하는 투쟁의 역사를 거쳐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께서 6천 년 동안 섭리하신 것은 오시는 참부모의 터전을 마련하고 당대에 승리의 기반을 닦게 하기 위해서였는데, 이 땅 위에 있는 성도들이 영적인 부모의 명령에 일치 단결하여 따르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그 명령에 보조를 맞추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예수님이 닦아 놓으신 영적인 기반이 다시 오시는 주님께 상속되는 기준이 서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오시는 주님, 참부모가 되실 분은 다시 영적인 세계에서 개인적인 시험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인 시험을 당해야 합니다. 그 시험을 이기지 않고는, 내적 승리의 기준을 세우지 않고는 지상에 실체적인 승리의 기준을 세울 수 없기에 내적인 싸움을 해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13-281)

 

하나님이 복귀섭리를 왜 하시느냐? 본연의 부모, 즉 참부모의 인연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참부모는 어떤 분이냐? 참부모는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실체 성전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이 실감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 가치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을 알기를 자기 집의 장롱 속에 들어 있는 패물보다도 못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께 '복을 주시옵소서!'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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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메시아는 참부모

 

  ① 메시아는 참부모이다

 

오시는 메시아는 어떤 분이냐? 개인은 물론이려니와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 전부를 걸어 놓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실체로 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분이 이러한 자리에 서야만 비로소 인류의 역사상에 남아 있는 믿음이 결실될 수 있는 것이요, 소망이 결실될 수 있는 것이요, 사랑이 결실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결실될 수 없습니다. 그분이 하는 말은 개인적인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도 그런 신념을 가지고 외치게 될 때, 그 말은 개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로되 세계사적인 내용과 인연을 갖춘 말이 된다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란 어떠한 사람이냐? 세계적인 때, 소망의 때를 먼저 구별할 줄 아는 지각(知覺)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것을 미리 알고 분석하고 비판하고 실천하여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책임을 짊어질 수 있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메시아가 이 땅 위에 오실 때 그분은 개인으로 오시되 개인이 아닙니다. 그분의 가치는 온 세계 인류가 믿고 있는 신앙의 결실체요, 온 세계 인류가 바라고 있는 소망의 결실체요, 온 세계가 바라고 있는 사랑의 결실체입니다.

그 결실체에는 모든 역사노정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즉 과거, 현재, 미래가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전부 연결되어 있고, 하늘과 땅이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13-143)

 

메시아는 참부모입니다. 우리들은 참자녀입니다. 같은 운명권에 서서 거기에 끼지 않으면 안 됩니다. (5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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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메시아의 현현 과정

 

지금까지 많은 종교가 나와 있는데, 그 사명이 뭐냐? 한 사람을 찾자는 것입니다. 수많은 종교가 구원을 얻고 뭐 어쩐다고 하지만 세계적으로 추려서 최고의 자리에 올라갈 수 있는 사람, 그 자리를 넘어선 그 한 사람을 찾자는 것입니다. 그 한 사람을 세우자는 것입니다.

이렇듯 모든 종교의 중심은 한 사람인데, 그런 존재가 누구냐 하면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종교가 한 사람을 찾아 나오는데 그 한 사람, 중심존재가 누구냐 하면 메시아, 구주라는 것입니다. 메시아가 오는 데는 그 자리에 대번에 오는 것이 아닙니다. 7년노정을 거쳐야 됩니다. 메시아는 남자입니다. 그 메시아가 와서 사탄세계에서 혈통적인 관계를 초월하여 사탄을 이겨야 합니다.

이긴 그 남자를 중심삼고 가정적으로 이겨야 되고, 종족적으로 이겨야 되고, 민족적으로 이겨야 되고, 국가적으로 이긴 터전을 만들어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남자 하나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즉, 사탄세계보다도 나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탄세계에 속한 가정보다 우위에 서지 않고는 메시아는 그들을 거느릴 수 있는 입장이 못 되는 겁니다.

사탄세계의 최고의 기준이 뭐냐 하면 국가입니다. 사탄은 언제나 국가를 중심삼고 반대해 나왔습니다. 사탄은 나라를 가졌기 때문에 그 나라를 중심삼고 개인적으로도 하늘을 때렸고, 가정적으로도 하늘을 때렸고, 종족적으로도 하늘을 때렸고, 민족적으로도 하늘을 때렸던 것입니다. 언제나 이 나라를 중심삼고 하늘이 닦아 나온 길을 방해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결국 반대받고 핍박받는 것은 못하기 때문이지, 나으면 도리어 핍박할 수 있고 지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 세계는 사탄세계가 되었기 때문에, 이 세계에는 사탄편 개인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요, 가정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요, 종족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요, 국가도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늘편은 없다 이겁니다. 개인은 있지만 그 기준에 올라온 가정이나 종족이나 민족이나 국가가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메시아 개인으로서 가정을 이기고, 메시아 개인으로서 종족을 이기고, 메시아 개인으로서 국가를 이길 수 있는 터전이 없어 가지고는 일반 사람이 올라갈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땅 위에 메시아가 오게 된다면, 메시아를 따라 같이 올라갈 수 있는 권(圈)을 개인으로부터 가정을 거쳐서 준비해 놓았는데, 그것이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그리고 그 사상이 선민사상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나라는 아직까지 여기에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선(線)에 걸린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민의 소망이 뭐냐 하면, 이 선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이 선을 넘어서야지 넘어서지 않으면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선을 넘어서려고 해도 자기들끼리는 넘어설 길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메시아, 즉 구주를 보낸다는 약속을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국가적으로 넘기기 위해서 수천 년 동안 준비하신 것이 메시아입니다. 메시아를 보낸다는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 앞에 메시아가 오게 되면, 그 메시아를 중심삼고 죽더라도 같이 죽겠다는 입장이 되어서 사탄이 떼려야 뗄 수 없게끔 온전히 하나되면, 거기서부터 개인적으로 접붙이고, 가정적으로 접붙이고, 종족적으로 접붙이고, 민족적으로 접붙이고, 국가적으로 접붙여서 그들을 일시에 다 여기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계에는 선민사상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이 택한 민족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택할 수 있는 국가를 형성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민이 있다는 말 자체는 하나님이 있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으로 볼 때, 메시아를 보내겠다고 하는 예언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있음을 증거하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메시아를 필요로 하게 된 것은 무슨 목적이 있어서냐? 그게 문제입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거짓부모를 가졌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된 부모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부모의 자리를 우리에게 갖다 주는 분이 메시아입니다. 이것이 첫째입니다.

둘째는 뭐냐 하면, 우리를 다시 낳아 주는 것입니다. 결국은 우리의 몸에 사탄의 피가 있으니까, 그 피를 빼내어 사탄의 아들딸이 아니라는 입장으로 우리를 접붙여서 다시 낳아 준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뭐냐 하면, 메시아는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사탄 마귀를 종새끼로 만들어서 종으로 부릴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 인간들 앞에 메시아가 와서 우리로 하여금 사탄을 굴복시켜서 종으로 만들 수 있는, 사탄을 굴복시켜서 그를 처단할 수 있는 자격자로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첫째는 부모를 잃어버렸고, 둘째는 사탄의 피를 받았고, 셋째는 사탄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것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거꾸로 올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원리를 보면, 믿음의 기대가 있고 실체기대가 있습니다. 믿음의 기대를 이루고 실체기대를 이루어야 메시아를 바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까지 이루자는 것입니다. (54-186)

 

메시아는 그 자체가 믿음의 목적체요, 소망의 목적체입니다. 믿음과 소망이 이루어진 목적체입니다. 그러면 메시아를 위주로 하여 목적을 달성한 그때에는 무엇만이 남을 것이냐? 목적이 다 달성되었으니 사랑만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고로 최후에 남는 것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그 사랑은 믿음의 완성실체를 통한 사랑이요, 소망의 완성실체를 통한 사랑입니다. 그 사랑 하나를 위주한 대표자로 오시는 분이 메시아입니다. (13-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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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③ 메시아의 사명

 

메시아의 뜻은 뭐냐? 종적인 기반의 완결을 봐 가지고 횡적인 기반의 출현을 성립시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메시아는 뭐냐? 천륜의 모든 것, 하나님과 인류가 가야 할 공의의 목적을 종적인 기준에 일치시켜 가지고, 개인적인 종적완성 표준, 가정적인 종적완성 표준, 국가적인 종적완성 표준, 세계적인 종적완성 표준을 완성시키기 위하여 그 내적인 계획을 전부 다 장악해서 오시는 분이 재림주다 이겁니다. (71-80)

 

우주를 가만히 보니까 잘났다고 하는 존재가 둘이 있습니다. 하나님하고 사탄입니다. 선악의 주인이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을 중심삼고 선악의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사탄이 얼마나 잘났습니까. 지금까지의 인간 역사를 인류학적으로 본다면 150만 년이라고 하는데, 역사 이래 악의 투쟁을 하는 총수로서 하나님까지 골탕먹여 나오고, 하나님을 꼼짝못하게 만든 사탄이 얼마나 잘났느냐 이겁니다.

이 싸움을 누가 끝내야 되느냐? 하나님도 그 싸움을 못 끝내고, 사탄도 못 끝냅니다. 이런 말은 처음 들을 겁니다. 악신과 선신의 싸움을 누가 끝내 줄 수 있느냐? 그것은 하나님도 아니요, 사탄도 아닙니다. 그러면 누가 끝낼 수 있느냐? 인간은 인간인데, 참된 인간이 이 싸움을 끝낼 수 있습니다.

세계 만민이 따라갈 수 있는 사랑의 주인공이 되지 않고는 하나님의 싸움과 사탄의 싸움을 끝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싸움에서 해방되지 않는 한, 역사세계에서 평화라는 말은 망상적인 말이 되는 것입니다. 이상이란 말은 추상적이고 감상적인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누가 이 싸움을 해결할 수 있겠느냐 이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대표자를 보냈는데, 그 주류사상을 메시아사상이라 하는 것입니다. 구세주는 인간만이 아니라, 하나님까지 해방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또, 악을 처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해방하고 악을 결산짓기 위한 총책임자가 구세주입니다

구세주의 '세(世)'라는 것은 이 세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었지, 기독교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을 달달 잘 외우는 기독교인들! 하나님이 기독교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구원받는다고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구세주의 사명은 뭐냐? 하나님을 해방하는 것이요, 사탄을 처단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인간을 물어 제끼면서 참소하던 원한의 원흉을 누가 청산하느냐? 하나님이 청산하지 못합니다. 메시아, 구세주만이 할 수 있습니다. (136-220)

 

메시아가 와서 무엇을 할 것이냐? 역사상에 처음으로 한 나라의 주권과 국토와 백성을 찾아 그것을 기반으로 해서 횡적인 세계를 빼앗기 위한 싸움을 코치하는 사령관으로 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메시아의 사명입니다.

사탄을 굴복시키려면 국가만 굴복시켜서는 안 됩니다. 사탄은 세계적인 주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세계주권까지도 추방해야 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이 지구성에 해방권이 벌어지게 됩니다.

지구성 어디를 가든지 사탄이 반대하는 그늘이 있어서는 하나님이 자유와 평화의 동산으로 지은 에덴동산의 이상이 실현되지 않습니다. 지구성에 사탄이 반대할 수 있는 그림자가 없어져야만 지상천국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지상에서 그 일이 완료되어야 천상세계의 해방운동을 시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식구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57-130)

 

메시아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 개인적으로 사탄을 굴복시키고, 사탄의 혈통을 제거하여 개인적으로 승리의 길을 닦아야 되고, 가정, 국가, 세계적으로 승리의 길을 닦아야 됩니다. 이것이 메시아의 갈 길입니다. 다시 말하면,

첫째는, 개인이 갈 길을 닦아야 되고

둘째는, 가정이 갈 길을 닦아야 되고

셋째는, 국가가 갈 길을 닦아야 되고

넷째는, 세계가 갈 길을 닦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이긴 다음에 세계적인 사탄이 동원되어서 국가와 민주세계가 합하여 공격을 해오더라도 그것과 싸워서 이겨야 됩니다. 가정적으로도, 전세계적으로도 그래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야곱이 천사와 싸워 이긴 것과 마찬가지요, 아벨이 가인을 이긴 것과 마찬가지로 이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대일(一對一)의 싸움입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사탄세계 전체를 쳐야 되는데, 그러려면 그럴 수 있는 맨 첨단의 대표적인 나라가 있어야 합니다. 그곳이 한국입니다. (54-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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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예수님과 참부모

 

예수님은 어떤 분이냐?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참부모가 되지 못하고, 거짓부모가 되어서 거짓자손을 낳았으니, 이를 다시 복귀하기 위한 참부모로 오셨던 분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참부모가 못 된 동시에 참부부도 못 되었고, 참부부가 못 되었으니 참자녀도 못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완전히 믿고 예수님과 하나가 되면 참자녀의 복귀, 참부부의 복귀, 참부모의 복귀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제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8-109)

 

요한계시록에 보면, 끝날에는 주님이 신부를 맞으러 이 땅에 오신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여러분, '어린양 잔치'가 뭔지 압니까? 그것은 역사 이래 처음으로 하나의 신랑과 하나의 신부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부부를 이루는 잔칫날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류의 시조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종지조상(宗之祖上)은 선한 부모가 아니라 악한 부모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구상하신 자리, 우리 인류의 조상이 타락하지 않고 이루어야 했던 본연의 부모의 자리, 참되고 선한 부모의 자리는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고 이루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계 22:13)고 나와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이루려고 하시던 목적을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못 이루었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에 가서 마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떠한 분으로 왔느냐? 아담이 타락했기 때문에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에 일치될 수 있는 완성한 아담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5장 45절에 보면 '첫 사람 아담은 산 영(靈)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둘째 번 아담으로 지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부여할 수 있는 참된 아들의 자리, 부부의 자리, 부모의 자리를 결정짓지 않고는 하나님이 계획하신 가정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이 지상에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세계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지만 그 가운데서 기독교만이 4대 요건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하나님과 한 몸이 되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서로 신랑 신부를 맞아 새로운 가정을 이룬다는 이념을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런 이념을 갖고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중심삼은 기독교는 세계적인 종교가 아니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54-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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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재림과 참부모

 

  ① 준비해야 할 메시아 맞이

 

여러분이 살 곳은 천국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곳에 살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또 천국이 대번에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하늘나라가 나오기 전에 무엇이 나와야 되느냐? 메시아가 나와야 됩니다. 그렇지만 메시아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유대나라, 이스라엘 나라에 예수님이 왔지만 천국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늘나라가 나오기 전에 하늘나라의 민족이 나와야 됩니다. 그러면 하늘나라의 민족이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한꺼번에 민족이 나오지 않습니다. 특별한 씨족이 나와야 됩니다. 그 씨족이 나와서 민족을 움직여야 됩니다.

그 씨족이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러려면 친족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친족이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친족의 중심이 되는 가정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또, 그 가정이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아들이 있고 부모가 있어야 된다 이겁니다. 그러면 그 자녀가 나오려면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그 부모가 있어야 됩니다. 그 부모가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늘나라의 모든 것을 대표할 수 있는 하나의 남자가 있어야 된다 이겁니다.

그게 누구냐? 메시아입니다. 그 남자는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남자가 부모가 되려면 상대를 찾아서 그 상대와 하나되어야 되는 겁니다. 그것이 기독교의 가르침입니다. 그게 종말입니다. 이렇게 거꾸로 떨어졌던 것을 세계적인 기독교의 터전 위에 2천 년 동안 예수를 중심삼고 반대로 영적인 복귀를 해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기독교입니다. 여기서 메시아를 맞으면 모든 게 끝나는 것입니다.

여기에 재림주가 온다 이겁니다. 이것을 거꾸로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전세계가 하나되고, 국가들끼리 하나되고, 전부 하나돼야 합니다. 그렇게 된다 이겁니다. 국가 가운데 기독교의 종파들이 하나되고, 종파 가운데 모든 제사장들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돼야 됩니다. 종파들이 하나되기 위해서는 제사장들이 하나되어야 됩니다. 제사장들이 하나되어서 예수님과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모셔 들여서 하나되게 되면, 일시에 세계가 복귀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2천 년 동안 준비해 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다 안 되었기 때문에 다시 준비를 해야 됩니다. (66-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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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재림주의 할

 

오시는 주님이 해야 할 일이 뭐냐? 사탄한테 승리해야 되고, 그 다음에는 모든 영인들한테 승리해야 됩니다. 오늘날 도인들 가운데 자기가 천하에 무엇이 된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 타락권을 수습할 수 있는 내용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그저 때만 바라고 정성만 들여 가지고는 안 된다 이겁니다.

사탄권에 승리하고, 그 다음에는 영계권에 승리해야 됩니다. 그것은 보이는 세계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다 이겁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와 투쟁을 해서 사탄한테 승리하지 못하면 영계에 진전할 수 있는 길이 생겨나지 않는다 이겁니다. 반드시 방해를 받기 때문에 영계에 들어가더라도 어떻게 되느냐? 들어갈 수도 없거니와, 들어가더라도 싸워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탄권에서 승리권을 갖추고 그 다음에는 영계에 들어가서 승리권을 갖추어서 잡도(雜道)로부터 전부 다 거쳐서 최고의 종교, 기독교가 최고의 주류 종교라면 기독교까지 굴복시키는 일을 해야 됩니다. 그건 뭐냐 하면, 그들의 모든 것을 상속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싸움 과정을 거쳐서 하늘땅에 승리했다는 공인을 받을 수 있게 될 때, 하나님으로부터 '너는 사탄과 영계의 승리자다!' 하는 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상 실천 노정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역사가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시는 주님은 어떤 분이냐? 사탄 마귀를 굴복시켜야 되고, 수많은 영인, 수많은 도주, 수많은 지도자들을 전부 다 일대일로 굴복시켜야 됩니다. 하나님의 인격과 참된 사랑을 중심삼고 종교와 이 우주가 어떻다는 것을 전부 다 납득시킴으로 말미암아 굴복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땅 위의 더 높은 사랑의 주인공 앞에 흡수되려고 하는 것이 이 만유의 존재들이다 이겁니다. 새나 개들까지도 자기를 더 사랑해 주는 동네, 자기를 위해 줄 수 있는 동네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사랑을 중심삼고 굴복시켜서 그들의 모든 권한을 상속받아야 됩니다. 통일권의 상속을 받아야 됩니다. 그게 메시아라는 분이 이 땅 위에서 해야 할 책임입니다.

대번에 기독교만 하나되어 가지고는 안 된다 이겁니다. 그래 가지고는 기독교만 지상에서 하나로 만들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영계의 배경인 불교 문화권, 회회교 문화권 등 전체적인 문화권은 불가능합니다. 지상에 이 경계선이 남아 있는 한, 이것을 전부 다 타파하지 못하는 한, 그 뿌리가 되는 영계에 가서 하나될 수 있는 기원을 형성하지 못하는 한 지상에서 그러한 모든 색다른 문화권의 통일을 가져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100-18)

 

본연의 사랑을 가지고 나라를 하나로 만들고, 세계를 하나로 만들고, 하늘땅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책임을 가진 사람이 메시아인데, 메시아가 그런 노릇을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 당신도 못 하는데, 그분이 할 수 있느냐 이겁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앞으로 메시아가 가지고 나와야 할 종교, 하나님이 세워야 할 종교가 어떤 종교일 것이냐? 사랑을 중심삼고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를 통일하겠다는 강력한 힘을 가진 종교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사탄도 '그것이 메시아가 와서 해야 할 목적이 아니겠소? 그것이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내는 목적이 아니겠소?' 하는 것입니다. (130-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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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참부모의 필요성

 

 1) 보편적 부모도 필요

 

본래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를 지어 놓고 그 속에 부모로서 자식에 대한 열매를 가짐과 동시에 자식도 부모에 대한 열매를 가지게 함으로써 둘 다 완성시킬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은 둘 다 거두어 가질 수 있다는 말도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부모가 필요하고, 왜 자식이 필요하냐? 하나님은 영적이고 아들은 땅적입니다. 부자지관계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아들을 통해서 열매를 맺음으로 말미암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아들의 마음 가운데 들어가 보이는 하나님의 가치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아들의 마음 가운데도 열려서 아들의 열매도 맺히고, 또 아버지의 열매까지도 아들 가운데 옮겨 줄 수 있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열매도 맺히고, 부모의 열매도 맺히는 것입니다.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모를 왜 필요로 하고, 자식을 왜 필요로 하느냐? 하나님이라도 사랑을 가졌으면 상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식이라도 사랑을 가졌으면 상대가 필요한데, 이 상대적인 관계가 뭐냐 하면, 하늘과 땅의 관계입니다. 수직 조건입니다.

이 절반을 자르면 절반은 영적인 세계요, 절반은 육적인 세계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아들딸로 태어나서 역사해 보면 상대적인 극입니다. 극에서 태어나서 이게 커 가는 것입니다. 더 커 가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도 찾아내야 되겠다고 해서 비로소 신랑 신부가 되어서 사랑으로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상현(上弦)하고 육적인 하현(下弦)이 통일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부모를 필요로 하는 것은 하늘나라를 점령하기 위함이요, 부모가 자식의 사랑을 원하는 것은 땅을 차지하기 위함입니다. 부모의 마음은 하늘의 마음입니다. 이 하늘의 마음을 언제 아느냐? 자식 때는 모릅니다. 부모가 되어야 안다는 것입니다.

두 세계를 점령해서 하나로 만들기 위한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사랑이다 이겁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 부자지관계는 영광스런 부자지관계다 이겁니다. 같습니다. 어느 누구를 뒤로 돌릴 수 없고, 어느 누구를 앞으로 돌릴 수 없습니다. 하나입니다, 하나. 그럴 때 영광스러운 부자지관계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모가 없는 사람들을 불쌍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왜? 영계와 육계를 점령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 자식이 없으면 불쌍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은 자식과 부모가 합해서 천주를 사랑으로 묶도록 되어 있는데, 그 일등 모델에 불합격 될 수 있는 입장에 있으니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지옥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식이 없고 부모가 없는 사람은 슬픈 사람입니다. (22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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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세상 부모와 참부모

 

세상에서 여러분을 낳아 준 어머니 아버지는 어떤 입장에 있느냐? 타락하지 않은 세상에서 '어, 저건 내 아들딸이야' 하고 주장할 수 있는 아들딸이 있었습니까? 하나의 새로운 어머니 아버지를 찾기 위해서 옛날의 어머니 아버지를 버려야 된다는 그러한 개념이 에덴동산에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왜 이런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느냐? 그 운명은 하나님이 만든 것이 아니라 사탄이 만들었습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악마가 만들어 놓은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거기서 사탄은 전부 갈라놓습니다. 어머니 아버지를 갈라놓고, 아들딸을 갈라놓고, 가정을 갈라놓고, 국가를 갈라놓고, 세계 전부를 산산조각으로 갈라놓는 것입니다. 그렇게 갈라놓는 날이 끝날입니다. 끝이라는 것은 말세입니다.

세상의 끝날이 되면 새로운 일이 출발합니다. 우리 원리대로 말해서, 끝날이자 새로운 이상이 출발하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느냐? 갈라진 것을 전부 통합해 나오는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부모가 뭐냐? 육신 부모와 참부모가 무엇이 다르냐? 사랑을 중심삼고 말할 때, 육신 부모와 참부모가 무엇이 다르냐? 사랑에 대한 개념이 다릅니다. 사랑의 개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육적인 부모는 육신을 중심삼은 사랑을 가르쳐 주는 것이요, 영적인 부모는 영적인 세계를 중심삼은 사랑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내용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육적인 부모만 있으면 될 텐데 영적인 부모가 왜 필요합니까?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타락한 부모가 무엇을 가르쳐 주었느냐 하면, 자기를 중심삼고 자꾸 내려가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래서 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사탄세계에 영원히 있게 하기 위한 하나의 결정적인 금이 그어졌습니다. 이것을 끊을 길이 없습니다. (129-99)

 

참부모가 생겨나면 하나님을 중심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참부모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원칙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탄세계에서 태어났지만, 참부모를 따라가자! 우리 어머니 아버지보다도, 우리 집보다도, 우리 아들딸보다도 참부모의 나라와 그 가정이 더 좋아. 보다 좋은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야!' 하면서 따라가려고 해야 됩니다.

참부모가 사랑하게 된다면 아무리 사탄이 끌어 가려고 해도 안 됩니다. 하나님과 참부모님의 사랑권은 본래 세계의 이상권이기 때문에 이 아들딸을 사탄이 못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통일교인들 가운데는 오색 인종이 다 있습니다. 여러분의 부모는 통상의 부모입니다. 그 다음에 통일교회의 참부모가 있습니다. 특별한 부모입니다. 참부모는 여러분의 부모와는 다릅니다.

여러분의 통상의 부모는 레버런 문한테 가는 여러분을 납치해 가려고 하고, 여러분은 특별한 부모한테 가려고 아주 야단입니다. 그러나 특별한 부모는 눈을 감고 이렇게 가만히 있습니다. 오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오겠으면 오고 말겠으면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통상의 부모는 극성을 부리면서 '레버런 문은 사탄이다, 이단이다!' 하고 야단하지만, 참부모는 가만히 있습니다. 여러분의 부모는 '우리는 특별한 부모다.' 그럽니까? (128-138)

 

선생님은 뭐냐 하면, 3시대의 부모입니다. 구약시대, 신약시대, 성약시대의 부모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참부모입니다. 여러분이 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하는데, 여러분은 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부모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분, 선생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을 낳아 준 부모하고 참부모가 무엇이 다릅니까? 같은 게 아닙니다. 여러분의 부모는 한 시대의 부모의 자리에 있지만 선생님은 3시대, 영계나 현세나 앞으로 올 시대, 이 3시대권 내의 부모의 자리에 있습니다. 그것이 순과 뿌리입니다. 여기에 연결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부모는 가지 부모입니다. 가지를 따라 순이 자랍니다. 그러니까 그 부모는 그 시대의 가지 부모지만 선생님은 3시대의 부모라는 겁니다. 뿌리 시대의 부모도 되고, 줄기와 가지, 잎의 시대의 부모도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언제나 참부모라는 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한다고 해서 전부 다 선생님을 따라한다고 '부모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건 원리에 걸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 어머니 아버지가 부모라고 하니, 자식이 '우리 부모는 누구야? 뭐가 달라?' 이렇게 생각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혼란이 벌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안 됩니다. 여러분의 부모는 1대에 대한 부모이고, 선생님은 3시대의 부모의 내용을 갖추고 있다는 겁니다. 종대 부모입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에 대해서 할아버지도 부모, 아버지도 부모, 손자도 부모, 3시대, 3단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님은 마음대로 못 하는 겁니다. 뿌리를 떠나서는 마음대로 못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구, 가지 모양으로 돌아다니면 좋겠다.' 하지만, 그렇게 못하는 것입니다.

뿌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까? 순이 마음대로 갈 수 있습니까? 가지가 그립다는 겁니다. 억천만 년 그 자리를 지키기가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한 자리에 말라 죽도록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자유가 없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가지는 마음대로 다닐 수 있습니다. 그런 걸 알아야 됩니다. (14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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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참부모가 와야 할 이유

 

여러분의 소원이 뭡니까? 하늘나라의 사람이 되든가, 하늘나라의 자녀가 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소원일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백성, 하늘나라의 자녀만 되면, 하늘나라는 자연히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나라는 어떤 세계입니까? 민주주의 세계입니까? 민주주의는 앞으로 주님이 와서 정권교체를 쉽게 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며, 과도기적인 주의입니다. 앞으로 지상에 주님이 나타나면, 전세계의 백성이 주님을 따라가야 됩니다. 백성은 전부 다 주님 앞에 나아가야 됩니다. 그러면 전세계의 국가조직을 하나의 국가로 편성하는 데 있어서 편리하다 이겁니다.

그런데 민주주의 가지고는 세계가 하나될 수 없습니다. 그건 이미 실험이 끝났습니다. 미국 자체가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느냐? 미국 자체가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어떻게 미국을 살리고, 미국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게 하느냐 이겁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이것은 반드시 통일교회의 사상, 레버런 문 주의를 중심삼고 대처해야 됩니다. 그러기 전에는 미국이 살길이 없고, 미국 국민을 통해서 하늘나라로 가는 다리를 놓을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원칙으로 영계가 되어 있는데, 육계에 이와 같은 것이 나타나려면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첫째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둘째는 참부모가 나타나고, 셋째는 참자녀가 나타나고, 넷째는 참국민을 통한 참국가가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를 얼마나 고대했겠느냐 이겁니다. 여러분이 지상에 나타나서 본연의 뜻을 이루기를 영계에 간 영인들이 수천 년 동안 얼마나 고대해 왔겠느냐 이겁니다.

이 세계를 주관하는 것은 사탄입니다. 이 세계는 첫째는 사탄을 중심삼은 세계요, 둘째는 거짓부모, 즉 타락한 부모, 악한 부모를 중심삼은 세계요, 셋째는 악한 자녀를 중심삼은 세계요, 넷째는 악한 국가를 중심삼은 세계라는 것입니다. 영계의 세계나 앞으로의 이상세계는 이것을 전부 부정해야 합니다.

통일교회에서 참부모라고 하니,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들이 '우리는 무엇이냐?' 하고 반대하는 것입니다. 참아들딸이 되겠다는 자식을 납치하는 사건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한 세상의 모든 나라가 반대하고 내쫓았지만, 이제는 반대하지 못합니다. 이제는 싸워 봐야 레버런 문을 이길 수 없다 이겁니다.

그러니 사탄권 내에서 탈출해야 됩니다. 그런데 사탄이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총동원하여 탈출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최후의 결전입니다. (16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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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참부모 출현의 전제 조건

 

참부모가 나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천사장을 복귀하지 않고는 참부모가 나올 수 없습니다. 예수를 복귀하지 않고서는 참부모가 나올 수 없습니다. 또, 신부를 복귀하지 않고서는 참부모가 나올 수 없습니다. 종교세계에서는 이것을 해결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복귀섭리를 해 나오는 데 있어서 모든 난관을 해결지은 자리에서 새로이 등장한 명사가 뭐냐 하면 참부모입니다. 참부모는 껄렁껄렁한 사람이 아닙니다.

참부모는 천사장 복귀가 안 되면 안 나옵니다. 아담 복귀가 안 되면 안 나옵니다. 또 신부, 즉 해와 복귀가 안 되면 안 나옵니다. 이건 틀림없습니다. (46-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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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참혈통은 참부모를 통해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누구냐 하면, 참부모입니다. 거짓부모로부터 출발한 것을 참부모로부터 출발시켜야 됩니다. 거짓부모는 거짓 사랑에서 거짓 생명, 거짓 혈통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을 뒤집어야 됩니다. 그래서 참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참생명과 참혈통을 어떻게 이어받느냐 이겁니다. 다시 말하면, 생명의 씨를 잘못 받았기 때문에, 이것을 어떻게 다시 본연의 씨를 받게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생각하게 될 때, 참부모가 없으면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이 땅 위에 메시아가 오셔서 그 메시아의 씨, 참부모의 새로운 생명의 씨를 재차 주입해서 접붙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본연의 참감람나무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간단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진짜 우리의 부모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가깝습니까? 하나님은 종적인 부모요, 참부모는 횡적인 부모로서 이상 사랑을 이루는 것입니다. (218-224)

 

민주주의는 형제주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있어야 된다. 부모가 있어야 싸움을 그만둘 수 있다. 이러한 비참상 가운데 필요한 것이 부모주의다. 하나님주의, 하나님을 중심삼은 주의다!' 하고 선포를 한 것입니다. 그 부모는 어떤 부모냐? 그 부모는 사탄세계에는 없습니다. 사탄세계에 있는 부모와는 정반대입니다. 그게 소위 참부모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 참부모가 필요하냐? 사탄의 사랑?생명?혈통 기반을 청산하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어떻게 해서 남자 여자가 그런 자리에 떨어졌느냐? 그것은 생식기 때문입니다. 본래 생식기는 사랑의 왕궁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 사랑의 왕궁이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사랑의 왕궁이요, 생명의 왕궁이요, 혈통의 왕궁인 것, 그렇게 귀한 것이 인간의 생식기입니다. 이것은 성스러운 것입니다.

그게 타락으로 말미암아 더러운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그게 더러운 것이 아니라 성스러운 것입니다. 가장 귀한 것입니다. 생명, 사랑, 그리고 혈통이 여기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성스러운 것을 사탄이 더럽혔습니다. (218-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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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참부모가 절대 필요한 이유

 

통일교인들은 선생님을 보고 뭐라고 하느냐? 참부모라고 합니다. 이 참부모라는 말이 무서운 말입니다. 또, 참부모라는 말이 있다는 것은 위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모태로 한 가정을 모델로 하지 않고는 종족이나 민족, 국가는 편성되지 않습니다. 가정을 확대시켜 종족, 민족, 국가를 편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마의 세계를 무찌르기 위해서는 참된 가정의 모델을 중심삼고 처리해 나가야 됩니다.

우리 타락한 인간은 악한 부모를 가졌습니다.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도 타락권 내의 부모입니다. 그 말은 뭐냐? 타락한 전통권 내의 조상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참부모라는 말이 나왔다는 사실은 놀라운 것입니다.

도대체 참부모는 왜 필요하냐? 본연의 뜻을 이루는 데 있어서 심정 일치권을 중심삼고 모든 것이 하나되고, 모든 것이 확실하고, 모든 것이 완전한 환경권을 가지고 출발할 수 있었던 보금자리가 타락하지 않은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과 일체 이상을 이룬 사랑권입니다. 그 사랑권이 안 나왔습니다. 그 사랑권을 이루려니 참부모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 사랑권이 세계에 나오는 날에는 통일교회가 필요 없습니다. 세계도 필요 없습니다. 그 세계를 버리고, 그 나라를 버리고, 나중에는 이 가정을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다 버리더라도 이것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138-277)

 

우리에게 필요한 분이 누구냐 하면 참부모입니다. 참부모는 누구냐? 친구보다도, 스승보다도 더 귀한 분입니다. 친구를 버리더라도 참부모를 따라가야 되고, 스승을 버리더라도 참부모를 따라가야 됩니다. 통일교회에 간다고 해서 친구가 '아이구, 너 나하고 이별이다.' 해도 이 길을 가야 되고, 스승이 '너하고 사제간 이별이다.' 해도 이 길을 가야 됩니다. 또, 어머니 아버지가 '이별이다.' 해도 이 길을 가야 됩니다. 모두가 한꺼번에 좋다고 할 수 있는 길을 갔다면, 거기에 역사적인 새로운 천지개벽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33-338)

 

인류는 참부모가 필요합니다. 왜 그러냐? 사랑의 축에 연결될 수 있는 원칙적인 이 일이 역사 이래 처음 벌어진 것입니다. 역사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습니다. 축은 하나입니다. 둘이 아닙니다. 그 축이 무엇이냐 하면 참사랑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하는 것은 참사랑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고, 둘째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해 나왔습니다. (137-108)

 

왜 참부모가 필요하냐? 참부모가 개인 책임분담을 완수함으로 말미암아 개인에게 붙어 있는 세계적인 사탄을 추방할 수 있습니다. 가정 탕감조건, 책임분담을 완수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을 자동적으로 탕감복귀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세계적인 탕감복귀, 책임분담을 완성하지 않으면 탕감복귀가 안 됩니다. 책임분담 완수하여 사탄을 떨어지게 하지 않고는 복귀가 안 됩니다. (137-106)

 

부모가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땅 위에 정착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부모님이 이 땅 위에서 고생하는 이유입니다. (217-354)

 

여러분에게 참부모가 왜 필요하냐? 새로운 핏줄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구약시대는 믿음의 기대 시대이고, 신약시대는 실체기대의 시대이고, 성약시대는 새로운 이상시대입니다. 그러니 사랑의 시대로서 하늘나라의 선한 핏줄을 받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핏줄이 달랐습니다. 종합적인 피를 물려받았습니다.

선생님은 본연의 전통적인 핏줄을 상속받아서, 이런 모든 진리를 알고 사탄과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참부모는 참감람나무의 새 순입니다. 여러분은 다 잘라 버리고, 참부모의 순을 접붙여야 됩니다. 부모의 순과 하나님의 순을 접붙여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몸뚱이는 없지만 사상은 하나님, 참부모님과 똑같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다 같은 열매, 선한 아들딸을 낳을 수 있다 이겁니다. 사탄세계를 중심삼고는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그 전에 아들딸을 낳으면 좋은 게 아닙니다. (125-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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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참부모의 결정은 선견적 예지 예정권

 

끝날에 가서는 어떻게 되느냐? 타락으로 인해 악마의 사랑, 악마의 생명, 악마의 핏줄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여기에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핏줄을 이어받기 위해서는 참부모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참부모는 흘러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참부모'라는 이름을 선포할 때까지 하나님이 얼마나 수고하고, 종교가 얼마나 피를 흘렸는지 압니까?

<격암유록>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은 <정감록> 이후에 나온 것인데, 거기에 벌써 선생님의 이름이 예언되어 나오더라 이겁니다.

선생님이 태어나기도 전에 선생님을 본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기도 전인데 어떻게 선생님을 봤겠습니까? 영계는 선생님이 나기 전부터 있었으니까, 이런 사람이 나와야 된다는 것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래야 땅 위에서 수난을 당하고 고통을 받던 사람들이 영계에서는 선생님의 치리권 내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작전을 하는 것입니다. 그분을 모시고 살았기 때문에 그분이 후에 나왔더라도 모신 그분을 따라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하나님은 나를 낳기 몇십 년, 몇백 년 전에 다 보여 준 것입니다.

그러니까 역사적인 인물입니다. 이제는 역사적인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한국 사람, 세계 사람에게 밤중이나 새벽에 한마디 하더라도 백주(白晝)에 듣는 것같이 그렇다고 하지,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2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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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선거로 선출될 수 없는 참부모

 

선생님은 여태까지 가정을 찾기가 힘들었고, 교회를 찾기가 힘들었고, 그 다음에는 기독교의 방향을 잡기가 힘들었고, 자유세계가 망해 가는 것을 바로잡기 힘들었고, 공산세계가 망해 가는 것을 바로잡기가 힘들었습니다.

이제 문총재로 말미암아 장자권이 복귀되었습니다. 장자권이 복귀되었다 이겁니다. 본래 아담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아담 자신이 장자권을 가졌을 것입니다. 또, 아담 자신이 참된 참부모가 됩니다. 그 다음에는 아담 자신이 왕 중의 왕이 되는 겁니다.

인간이 타락으로 말미암아 뭘 잃어버렸느냐? 장자권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늘땅의 대기업을 상속받을 그 장자의 권한을 잃어버렸습니다. 악마 때문에 잃어버렸습니다. 이걸 모르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혈통을 중심삼고 천지의 창조주 되는 부모를 모실 수 있는, 영원한 혈족이 되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아담이 참부모가 되어야 할 권한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의 문화였을 것입니다. 아담의 문화입니다. 아담 일족입니다. 이럼으로 말미암아 하나의 왕권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민주세계는 지팡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형제주의입니다. 형제가 많으니 이것을 상속받게 대표를 세우려니 형제들이 전부 다 모여서 보다 희생하고, 보다 봉사하고, 보다 전통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되는데, 그것이 민주주의 식입니다.

민주주의는 세계주의이지만, 그 위가 부모주의입니다. 앞으로 부모주의 시대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부모를 선거로 선출합니까? 재림주를 선거로 뽑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선거로 채택할 수 있습니까? 없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불신풍조를 조성할 수 있는 터전이 되어 있습니다. 왜? 전부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는 별의별 놀음을 다 합니다. 금력을 동원하고 인력을 동원해서 모략 중상 등 별의별 놀음을 다 합니다. (21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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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참부모의 사명

 

 1) 참부모의 입장

 

이 세상을 보면 제국주의 시대와 제왕시대 그리고 왕국시대가 있었고, 그 다음에는 민주주의 자녀 시대와 공산주의 종의 시대가 있습니다. 그것들이 다 사랑의 법을 중심삼고 치리하는 시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가짜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결론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연의 마음을 중심삼고 본연의 세계가 생겼다면, 본연의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본연의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 '사람' 하면 여자와 남자가 다 들어갑니다.

이 세계가 틀림없이 사탄세계이기 때문에, 오늘날의 역사는 이 세상에서 본연의 사랑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수십억의 세계 인류가 참세계를 지도하고 하늘땅을 지도하는 지도자를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연의 지도자는 어떻게 오느냐? 타락한 세계의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넘어서 온다는 것입니다. 그 본연의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참사람입니다. 그 참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참사람의 정의가 어떤 것이냐 이겁니다. 완전한 사랑을 하는 사람입니다. 간단합니다. 그러면 그 완전한 사랑이 뭐냐? 완전한 사랑을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이냐? 참부모입니다. 간단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나님은 참사람의 대표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존재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분이다 이겁니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크고 작은 것 할 것 없이 모든 것을 다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조그마한 것, 큰 것을 다 집어넣을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큰 것 작은 것, 모든 것이 다 들어간다 이겁니다. 그렇게 정리해야 됩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 크고 작은 것이 다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큰 것에서부터 작은 것까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 하나님이다 이겁니다. (124-117)

 

우리의 목적지는 세계입니다. 우리는 세계를 위해서 가야 됩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가야 됩니다. 세계를 위해서 가야 하고, 세계를 위해서 주어야 됩니다. 내가 가는 곳에는 어디든지 주어야 됩니다.

참부모는 주어야 됩니다. 이게 원칙입니다. 거기에 새로운 것이 있고, 거기에 새로운 세계가 있고, 거기에 새로운 인연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147-143)

 

여러분은 레버런 문을 참부모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대신한 입장에서 여러분에게 모든 좋은 것을 주려고 하고, 여러분도 제일 좋은 것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런 길을 지도하는 것입니다. (127-329)

 

여러분에게는 백그라운드가 있습니다. 이건 완전한 백그라운드입니다. 참부모의 백그라운드입니다. 참부모는 사탄이 참소를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신분증을 받은 것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사인하고 사탄이 사인해야 됩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천사장이 사인해야 되고, 그 다음에는 아담이 사인해야 됩니다. (117-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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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참부모의 길

 

지금 세계에서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누가 손대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해야 됩니다. 공산당과 싸우고, 윤리 파탄도 방어해야 되고, 종교가 무너지니 그것도 방어해야 됩니다.

선생님이 세계의 학자와 신학자들을 모아서 이런 문제들을 심각하게 토의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꿈도 안 꾸는 것을 하고 있다 이겁니다. 여러분이 활동한다고 하는데 여러분이 어렵겠습니까, 선생님이 어렵겠습니까?

부모는 자식보다 더 고생해야 된다는 원칙이 있으니, 선생님은 그것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돈이 있으면 선생님이 그 돈으로 먹고 사는 게 아닙니다. 미래의 후손들을 위해서, 미래의 후손들에게 좋은 길을 열어 주는 것입니다. 미래의 후손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돈을 버는 것입니다.

참부모는 무엇이냐 하면, 아버지와 같은 자리에서 가정을 통하고, 종족을 통하고, 민족을 통하고, 국가를 통하고, 세계를 통하고, 우주를 통해서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연결해야 된다 이겁니다. 그것을 커버하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듯이 인류를 사랑해야 되고, 아들딸을 사랑하듯이 인류를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들딸이 부모를 사랑하듯이 인류를 사랑해야 된다 이겁니다. 언제나 그것이 즉각적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118-242)

 

하나님의 소원이 뭐냐 하면, 하나님과 같이 살고 싶어하는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하고 영원무궁토록 같이 살고 싶은 사람, 그래서 하나님이 이마를 한번 맞대면 천년만년 가도 떼고 싶지 않은 사람, 그런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딸한테 손끝을 한번 댔으면 천년만년 가도 떼고 싶지 않은 그런 사랑을 가지고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그런 원칙에 의한 부자의 관계를 가르쳐 주려고 합니다. 그런 원칙에 의한 부부의 관계를 가르쳐 주려고 합니다. 또, 그런 원칙에 의한 가정을 논하고, 그런 원칙에 의한 형제를 논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형제라도 한번 만났다가 헤어지는 형제가 아니라, 천년만년 같이 있어도 싫지 않은 그런 형제 말입니다.

그것이 오색인종을 통해서 실천되어야만, 하나님의 사랑권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게 쉽겠습니까? 내가 먹을 밥이 있으면 그들에게 나누어 주어서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려 가지고 설거지까지 하고, 잠자는 것까지 다 보아주는 그런 일을 하는 부모가 있어야 됩니다. 오늘날 참부모는 그러한 길을 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부모가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매일 사람을 만나게 되면 점심 때도 잊어버리고 얘기하려고 하고 저녁 때가 지났는데도 얘기를 한다 이겁니다.

선생님의 철학은 그렇습니다. 밥이 문제가 아닙니다. 천년만년 너와 내가 살더라도 싫지 않을 수 있는 그런 너를 발견하려고 하고 찾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열두 시가 되고, 새벽 두 시가 되고, 새벽 닭이 울고, 동이 터 오더라도 밤을 새워 가면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아들과 딸을 그리워하는 사람입니다. 또, 형제를 찾고 있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127-284)

 

만일에 참된 인간이 있다면, 그 참된 인간은 오늘날 역사를 대표해 '인류여, 그대들이 가야 할 참된 표준이 바로 이것이다.' 하고 가르쳐 줄 수 있는 길을 모색할 것입니다. 참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인류를 대신하여 모진 희생을 당하더라도 그 길을 찾아 나설 것이고, 가르쳐 줄 것이고, 개척해 줄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 만일에 그 길을 알고 있는데도 자기만 그 길을 가겠다고 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참된 사람이 아닙니다. (163-89)

 

역사 노정에 참부모라는 말을 받을 수 있으려면 어떻게 돼야 할까 생각해 보십시오. 참부모까지 가려면 몇 급까지 거쳐야 될 것 같습니까? 거기에는 먼저 참된 종의 종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참된 거지도 있어야 될 것이고, 참된 노동자도 있어야 될 것입니다. 다 있어야 됩니다. 참된 박해자도 있어야 되고, 십자가를 지는 사람도 있어야 됩니다. 그런 걸 싫다고 하면 참부모가 절대 나올 수 없습니다. 죄인 중에도 참된 죄인이 있어야 합니다. 다 있어야 됩니다.

그 길을 가야 되고, 다리를 놓아야 됩니다. 세상에서 제일 비참한 자리에서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을 넘어갈 수 있는 사랑의 대표자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랑의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다리입니다. 한 급 한 급, 참 종의 종에서부터 참 양자로 올라가고, 참 아들로 올라가고, 참 가인으로 올라가고, 참 아벨로 올라가야 됩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종의 종의 길, 양자의 길, 이런 길을 누가 가느냐? 그 길은 선생님이 가야 합니다. 선생님은 그 길을 가며 싸워서 살아 남아 승리했기 때문에 다리를 놓아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거리에서 불쌍한 사람을 보면, 선생님이 그런 입장이라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런 입장에서 공산당한테 밟히고, 고문받고 채이고 할 때에 분했겠습니까, 안 분했겠습니까? 그렇다고 '하나님이여, 저 원수들에게 벼락을 내려서 전부 다 죽여 버리소!' 하지 않았습니다. 몸에서 피가 나오는 입장에서도 그들을 위해서 복을 빌어 주었던 겁니다. (116-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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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참부모가 되기 이전의 과정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거짓부모가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사탄을 중심삼은 이 세계 위에, 하늘나라 참부모의 자리를 닦기 위한 수난길을 가야 했던 것입니다. 그건 부모가 복귀해야 됩니다. 저끄러진 것을 부모가 전부 다 책임지고 탕감해야 됩니다. (131-63)

 

참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가인세계를 사랑해야 됩니다. 이 가인세계는 맏아들의 세계입니다. 가인세계는 타락한 맏아들의 세계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 세계가 반대할지언정 하늘의 사랑을 다해줬다는 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사탄세계가 복귀 안 되는 것입니다.

장자를 먼저 사랑해야 됩니다. 원칙적으로 사탄이 장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벨을 사랑하려면 장자인 사탄을 먼저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됩니다. 그런 사랑을 사탄에게 보이지 않고는 차자를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게 원리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머니 해와가 갈 길은 가인과 아벨을 하나 만들어서 아담한테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머니가 아무리 우주적인 사랑을 원한다고 하더라도, 그런 사랑을 해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124-74)

 

선생님은 사랑의 관계에서는 세계적인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양심에 있어서는 천주사적인 기록을 가질 수 있는 무리가 생겨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관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사탄에게는 얼마나 위협이고, 하나님에게는 얼마나 희망적이냐 이겁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미래가 희망적일 수밖에 없는 이런 놀라운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깊이깊이 감사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과 레버런 문, 하나님과 참부모가 이 길을 닦기 위해서 어떻게 했느냐? 가시철망을 뚫고 헤쳐 나오며 닦아 왔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핏자국과 눈물 자국은 말할 것도 없고, 비참한 고문의 채찍 자국까지 남아 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개척한 것입니다.

그러한 하늘 부모와 땅 부모를 상심케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것이 우주의 보물창고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지옥을 없애고 천국을 만들 수 있습니다. (216-326)

 

참부모는 두 분이 있어야 됩니다. 두 분이 없으면 참부모의 기준 위에 설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의 기준을 세웠다고 하더라도 지상에 실체의 참부모가 세워지지 않으면 실체세계에서 승리의 기준이 세워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영계에서 승리의 조건을 이루었다고 하더라도 지상에 참부모가 세워지지 않으면 그 영적인 세계의 발판에 해당되는 발판을 이 지상에 닦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오시는 참부모는 이것을 위하여 생명을 바쳐서 땅과 하늘을 대신하여 싸워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싸움의 기간이 40년 기간입니다.

그러면 이 40년 기간에 오시는 참부모는 어떤 싸움을 거쳐야 하느냐? 우선 영계에서 영적인 시련을 거쳐야 합니다. 그 다음에 지상에서 실체적인 시련을 거쳐야 합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쓰러지지 않고 중심을 갖고 나서야 비로소 영육 합하여 참부모의 인연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즉, 6천 년 섭리역사의 소망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1960년에 부모의 날을 설정했는데, 그 날은 어떤 날이냐? 영육 합하여 참된 승리의 기점을 잡은 날이요, 참부모의 이념이 출발한 날입니다. 그래서 그날은 하루에 지나지 않고 그날의 인연은 부분적인 인연에 지나지 않지만, 이 인연은 천주사적인 인연을 거쳐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날을 기점으로 하여 영계와 육계에서 동시에 계획을 실천하실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영계와 호응할 수 있는 기반, 비로소 하나님이 싸우실 수 있는 터전이 닦아졌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승리의 기반이 닦아졌기 때문에 여기에 일치되는 가정적인 기반, 종족적인 기반, 민족적인 기반, 국가적인 기반, 세계적인 기반만 닦아 놓으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반대로 전체적인 사명을 완성하지 못하시고 낙원에 가셔서 영적으로 이스라엘을 수습하여 영적인 부모의 입장에 계십니다. 참부모가 세계적인 승리의 판도를 지상에 닦을 수 있는 노정이 어떤 노정이냐 하면, 4년 노정이라는 것입니다. 이 4년 노정에 영계와 육계가 일치하여 승리의 기점을 세우는 날에는 온 세계의 인류가 낙원 이상의 영계로 행군할 수 있는 시대적인 혜택권 내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역사과정을 거쳐 나가는 데 있어서 오시는 참부모는 개인적인 십자가를 져야 하는 단계에서 세계 인류의 십자가를 대신 져야 되고, 가정적인 십자가를 져야 하는 단계에서 세계 인류의 십자가를 대신 져야 되고, 종족적 민족적 국가적인 십자가를 져야 하는 단계에서도 세계 인류의 십자가를 대신 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보면, 야곱은 에서와의 개인적인 투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개인적인 복귀의 조건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라반의 집에 가서 하늘이 협조하는 가운데 가정적인 싸움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가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야곱의 후손은 민족을 형성하기 위해서 사탄세계인 애급으로 들어갔는데, 그들은 거기에서 하늘의 협조로 구출되어 나와서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고, 가나안 7족을 멸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복귀노정 40년을 거쳐 나가면서 비로소 사탄세계에 대하여 공격할 수 있었습니다.

40년 광야노정 이전에는 3일 노정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3일 노정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가나안 복귀를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에 들어가서는 또다시 40수를 찾아 세워야 했습니다.

복귀섭리가 이런 노정을 거쳐왔기 때문에 선생님도 40년 노정을 거친 후 3년 노정을 걸어야 하고, 4년 노정을 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3년 노정과 4년 노정을 합하면 7년 노정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복귀역사를 종결짓고 하늘의 주권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원래는 33세부터 7년 노정을 걸어서 하나님이 바라는 부모의 기준을 세우고, 거기서부터 만물복귀의 기준을 세워서 40세에 모든 것을 종결짓고 하늘의 뜻을 이루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명이었으나, 예수님이 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이 뜻은 그대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오시는 참부모가 내적 외적인 싸움을 책임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40년 준비 기간, 혹은 투쟁 기간을 거쳐 가는 것입니다. 외적으로 40년 준비 기간이었지만, 이것이 내적으로는 투쟁 기간이었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영적으로 승리의 기반을 닦아서 비로소 지상에 영육을 합한 실체적인 기반을 닦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입니다.

참부모가 중심이 되어서 3년 노정을 거치고 만물복귀의 기간, 즉 사방성을 갖추기 위한 4년 노정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7년 노정으로서 탕감복귀를 종결해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참부모를 찾기까지의 3년 노정, 4년 노정, 40년 노정은 짧은 노정이지만 역사적인 모든 슬픔을 전체적으로 탕감복귀하는 기간이요, 역사적인 분함을 총체적으로 탕감복귀하는 기간이요, 역사적인 십자가를 전체적으로 탕감복귀하는 기간입니다. 역사적인 모든 슬픔과 고통과 분함에도 굴복당하지 않는다는 절대적인 기준을 세우지 않고는 참부모의 날, 참부모의 승리의 날은 맞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늘을 대신하여, 참부모의 인연을 대신하여 뜻을 책임지고 받들어 나오는 우리 통일교회는 그래서 이런 시련을 자초해서 당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사탄세계와 분별된 자신을 세우고, 참부모가 승리의 한 본보기를 취해 사탄세계를 심판할 수 있는 참자녀의 기준을 세워 놓아야 됩니다. 그렇게 종족, 민족, 국가의 기준을 세워 놓지 않고는 참부모에 대한 본연의 뜻을 지상에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이 기간에 나와 더불어 싸우고 있는 여러분은 참부모의 개인적인 대신자요, 가정적인 대신자요, 민족적인 대신자요, 국가적인 대신자들입니다. 이런 부모의 대신자로서 지금까지 한국은 물론이요, 세계 무대에서 책임지고 싸워야 하는 것이 여러분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지금까지의 영계와 육계의 슬픔이 무엇이었느냐? 본래는 참부모가 이 땅에 나타나면, 그날부터 하늘땅이 평화를 노래해야 되고, 온 천주가 행복권 내에 들어가야 되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지상천국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13-285)

 

선생님이 참부모를 선포할 때까지 고생을 얼마나 하고, 욕을 얼마나 많이 먹고, 감옥살이를 얼마나 했습니까? 여섯 번이나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이래 가지고 참부모를 선포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참부모입니다. 그러니까 세계에서 최고로 불쌍한 왕 중의 왕이 선생님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뭐 어떻고 어떻고 하지만, 제일 불쌍한 사람이 선생님입니다. (211-161)

 

선생님은 세계를 위해서 얼마나 많이 투입했는지 모릅니다. 피눈물을 얼마나 쏟았고, 땀을 얼마나 흘리고, 얼마나 한숨을 쉬었겠어요? 내가 밥을 위해서, 출세를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지상세계, 천상세계, 하나님을 해방하기 위해서 그랬습니다. 이런 사람은 역사시대에 문총재 외에는 없습니다. 참부모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 배후의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이 관념만이 아닙니다. 실전무대에서 실제권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그 이상 기반을 닦아 나왔기 때문에 세계 만국이 숙연하게 머리를 숙일 수 있는 단계에까지 왔다는 것입니다. (210-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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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참부모의 권한과 사명

 

참부모가 이 땅 위의 인간들 앞에 뭘 하려고 찾아오느냐? 인간이 제일 좋아하는 것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온다는 것입니다. 그게 뭐냐 하면 여러분을 참부모, 작은 참부모로 만드는 일입니다. (125-117)

 

참부모님이 해야 할 것은 뭐냐? 지상세계와 천상세계 사이에 막힌 길을 다 열어서 고속도로를 만들어 놓아야 됩니다. 지상세계에서부터 영계의 지옥, 천상의 자리까지 고속도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34-129)

 

참부모는 영계와 육계를 중심한 왕권을 가지고 오셨기 때문에 그것을 영계에까지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영계에 통일기반을 닦아서 영계의 왕권기반, 소생적 장성기반을 연결시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참부모가 지상에서 완성기준을 이룬 자리에 영계가 동참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준비를 해 놓아야 됩니다. (140-54)

 

여러분은 선생님을 참부모라고 합니다. 왜 여러분의 부모입니까? 여러분을 낳아 주지도 않았는데 부모입니까? 한 가지 다른 건 뭐냐? 하나님의 사랑, 본래의 사랑을 연결시켜 줄 수 있는 부모라는 것입니다. 아담이 뭐냐? 여러분의 조상이 될 수 있는 부모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을 연결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부모들은 여러분을 하나님의 사랑에 연결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참부모가 다른 것이 뭐냐? 하나님의 사랑을 연결시킬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왔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부모의 말을 안 듣고 선생님의 말을 듣는 이게 사회의 정의입니까, 악입니까? 정의입니다. 천주의 원칙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118-148)

 

참부모는 뭘 하는 사람이냐? 거짓자녀들을 끌어다가 참자녀로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탄은 그걸 못 하게 하기 위해서 들이치고 별의별 짓을 다 하는 것입니다. 사탄편은 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부모는 아들딸을 소화해서 단계적으로 가정 기준, 종족 기준, 세계 기준까지 소화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은 하지만 문제가 심각합니다. (149-280)

 

선생님은 이 시대에 모든 것을 보여줍니다. 종의 종과 종이 어떻게 가야 되는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어떻게 가서 하나되어야 하는가를 보여 주기 위한 일을 지금까지 해온 것입니다. 선생님을 따라서 전부 다 이루어 놓아야 나중에 하나님의 사랑까지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못 갑니다. (135-142)

 

참부모는 어떻게 되느냐? 인간 조상의 타락으로 인해서 막힌 담을 헐 수 있는 책임적인 조건을 세울 수 있어야 참부모가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에는 기독교, 천주교?불교?유교?모슬렘이 다 들어 있습니다. 불교도 여기에 들어 있습니다. 여기에 들어오면 종교가 하나될 수 있다 이겁니다. 그 다음에는 오색 인종이 하나될 수 있다 이겁니다. (118-270)

 

원리결과주관권(간접주관권)과 직접주관권 사이에 담이 생긴 것을 탕감해야 됩니다.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하늘땅의 담을 전부 다 탕감해야 됩니다. 원리결과주관권이 사탄에게 점령당했습니다. 그러니 사탄이 중간 자리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위에 있고, 인간이 밑에 있고, 사탄은 그 중간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탄의 담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담을 뚫고 하나님의 자리까지 나아가느냐? 이것이 종교의 목적입니다. 거기서 사탄은 언제나 간접주관권을 이용한다는 것입니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그래 왔습니다. 그러니 이것을 다시 한 번 연결하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래서 역사를 통하여 종교를 발전시켜 나왔습니다. 그게 유대교였습니다. 종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지금까지 흘러 나왔습니다. 그래 가지고 기독교까지 내려온 것이 현재 우리의 상황입니다.

참부모는 이 간접주관권과 직접주관권을 연결시킬 책임이 있습니다. 사탄에게 걸려 있는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의 담을 어떻게 부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탄은 사탄대로 하나님의 계속적인 이 역사를 어떻게 막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둘이 대결해 나오고 있습니다. 끈질기게 사탄이 하나님에 대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사탄과 하나님의 중간에서 언제나 사탄을 제거하는 일을 해 나온 것입니다. 어떻게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는 자리에서 이 일을 진척시켜 나가느냐? 그래서 탕감노정이 나온 겁니다. 그게 인간의 책임분담입니다. 지금까지 인간이 책임분담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그 책임을 메워 갈 것이냐 이겁니다.

사탄은 그것이 메시아의 책임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탄의 세력을 총출동시켜서 참부모를 공격한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사탄의 담을 부수는 일을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영계까지 거쳐 나온 것입니다. 메시아는 이 길을 모두 거쳐야 됩니다.

이것이 우리 통일교회의 역사입니다. 사탄에 대해서 언제나 사랑을 가지고 원리를 딱 내세우고 나온 것입니다. 사탄의 혈통을 받아서 타락한 부모로 시작한 것을 어떻게 인류의 참부모의 자리로 복귀시키느냐 하는 것을 고심한 것이 하나님의 입장이다 이겁니다.

그래서 1960년 부모님의 성혼식이 역사상에 처음 벌어진 것입니다. 타락한 부모에서 복귀가 벌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셨던 것은 아담과 해와가 타락한 것을 복귀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하지 못했으니 그것을 전부 다 대신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13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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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참부모의 사랑

 

여러분이 진짜 '나'를 찾았다고 할 때는 하나님이 내 마음에 있고 나는 해방권에 있는 것입니다. 본연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본연적인 참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본연적인 혈통의 역사를 이어서 태어난 것이 본연의 나입니다. 그 나를 찾으면 다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참부모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참부모의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내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나를 찾았을 때 내 속에는 이미 두 사랑의 본연상이 심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뿌리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나를 하나님에게서 빼 버릴 수가 없고 참부모에게서 빼 버릴 수 없습니다. 그 지체(肢體)인데, 그 지체 된 자체를 부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포를 예로 들어 봅시다. 세포는 잎의 세포나 뿌리의 세포나 같습니다. 요즈음은 세포 번식을 해서 식물도 번식시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잎에도 뿌리의 요소가 있고 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위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참부모의 사랑을 다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참부모의 사랑은 우주의 모든 주관성의 핵입니다. 주체성의 영원한 표준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전부 주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 자신이 모든 것의 대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표할 수 있고, 어머니 아버지를 대표할 수 있고, 형제가 있으면 형님을 대표할 수 있고 동생을 대표할 수 있고, 누나를 대표할 수 있고, 누이동생을 대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대표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일족이 환영하게 되어 있지 싸우지 않습니다. 반발이 안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흡수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말은 간단하지만 이것이 원리의 핵입니다.

나를 완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도를 닦는 것도 자기를 완성하기 위해서입니다. 자기 완성의 자리에 가려면 결국 하나님을 찾고, 참부모를 찾아 가지고 접붙여야 됩니다. 다 커 버려서 다시 날 수 없으니 할 수 없이 접붙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니 메시아가 오는 것입니다.

메시아는 본연의 사랑, 참부모의 사랑을 완성한 남자로 오는 분입니다. 본연의 이상적인 대신자로 오는 것입니다. '나'라는 말을 할 적마다 이것을 생각해 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해방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탄에게서 해방, 생활권에서 해방, 혈통권에서 해방받으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해방받아서 무엇을 할 것이냐? 악마 대신 하나님을 모시고 문화권을 형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참부모의 생활권을 형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완성한 아담의 자리에 서니, 태어난 목적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나에게는 참부모의 사랑이 깃들고 하나님의 사랑이 깃드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나를 완성시킬 수 있는 조화의 근본입니다. 그걸 다시 말하면, 나에게는 사랑이 있고, 생명이 있고, 혈통이 있다는 것입니다. 삼위일체입니다. (202-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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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천국과 참부모

 

 1) '천(天)'자와 '부모(父母)'자의 또다른 의미

 

하늘 천(天)을 풀어 보면 두 사람입니다. 인(仁)도 두 사람입니다. 두 사람인데, 두 사람은 어떠한 두 사람이냐? 완전한 사랑을 중심삼고 천지가 종적으로 하나되고 횡적으로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인간입니다. 천지 조화를 일으킬 수 있는 근본은 사랑입니다. 이 사랑에서 시작된다 이겁니다. (186-62)

 

천지(天地)간에 있어서 하늘(天)이 먼저냐, 땅(地)이 먼저냐? 지천(地天)이냐, 천지(天地)냐? 부모(父母)도 부모(父母)냐, 모부(母父)냐? 부부(夫婦)도 '지아비 부(夫)' 자하고 '며느리 부(婦)' 자가 거꾸로 된 부부(婦夫)냐, 올바로 된 부부(夫婦)냐? 올바로 된 부부여야 됩니다. 지천(地天)을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전부 다 천지(天地)를 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이 먼저 되어야 하느냐? 하늘이 먼저 되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땅이 되어야 됩니다. 그리고 부모가 있는데, 부모(父母)는 왜 어머니가 먼저 안 되고 아버지가 먼저입니까? 그렇다고 여자를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는 '아버지 부(父)' 자가 먼저 있어야 됩니다. '어머니 모(母)' 자를 가만히 보면 재미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이냐 하면 '계집 녀(女)' 자를 둘 갖다 거꾸로 뭉쳐 놓은 것입니다. 그거 참 재미있습니다. 그게 '어머니 모(母)' 자입니다. 여자를 두 사람 갖다 붙여 놓았습니다. 거꾸로 갖다 맞춘 것이라는 겁니다. 그게 어머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의 마음을 가진 어머니가 되어야 되고, 땅의 마음을 가진 어머니가 되어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하늘의 마음을 가진 여자가 되고, 땅의 여자를 대표한 마음을 가진 여자가 되어서, 그 두 마음을 맞추어 놓아야만 어머니가 된다는 것입니다.

또, '아버지 부(父)' 자를 봅시다. 이것이 무엇이냐? 떼어 놓으면 '사람 인(人)' 자가 두 개입니다. 그것이 합쳐져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한데 갖다 묶어 놓은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남자는 남자인데, 사람은 사람인데 혼자가 아니라 둘을 갖다가 묶어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아버지가 된다 이겁니다. 그건 뭐냐 하면, 하늘 사람과 땅 사람이 묶어져서 한 가지로 행동할 줄 알아야 아버지가 된다는 말입니다. 요걸 생각하면 재미있습니다.

또, '하늘 천(天)' 자는 무엇이냐? 하늘이란 것은 혼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둘(二)이 있어야 하늘(天)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 천(天)'은, 두 사람을 갖다 맞추면 되는 것입니다. 또, '지아비 부(夫)' 자는 무엇이냐? 이게 꼴불견입니다. 감투를 쓰고 하늘보다도 높이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건 무엇이냐? 두 사람이 서로가 좋아하면 하늘 꼭대기까지도 뚫고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부라는 말이 설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이만큼 미남이요, 이만큼 훌륭한 남자이기 때문에 나에게는 아버지 어머니가 필요 없다.'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나는 남자이기 때문에 남자인 아버지가 필요 없다. 아버지가 죽으면 내가 대신 아버지가 되기 때문에 내가 주인이 되니까, 아버지는 죽고 어머니만 남으소!' 하는 그런 남자가 있습니까? 없다는 것입니다.

또, '우리 집안에서 여자 가장이 되려고 하니, 어머니는 죽고 아버지만 혼자 사소!' 하는 그런 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둘이 있어야 됩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59-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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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땅에서 참부모를 모셔야 되는 이유

 

영계가 뭐냐 하면, 우리 조상들이 아담을 중심삼고 컨트롤하는 나라입니다. 또, 지상천국은 그 후손들을 중심삼고 세계가 컨트롤되는 나라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죽으면 틀림없이 조상권 내를 찾아가는데, 그 조상들이 몇천만 명이 되겠습니까? 그 조상들을 다 거쳐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못했으면 그들에게 심판받을 것입니다. 심판을 패스하는 원칙이 뭐냐? 이게 문제입니다.

선조들의 가정에 가서 패스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원칙을 따라야 합니다. 저나라에서도 수많은 조상, 수많은 가정, 수많은 민족들이 연결되고 세계가 다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평가할 때, 내가 걸리지 않고 패스될 것은 무엇이냐 이겁니다.

그것은 간단한 말로 하면, 참부모의 이상 전통입니다. 참된 가정은 참된 부모의 가정입니다. 그리고 참된 부모는 가정의 대통령입니다. 그러면 나라의 대통령은 뭐냐? 그 나라의 참된 부모의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미국이면 미국이 참된 부모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국민은 그 대통령을 어머니 아버지와 같이 모시고 더 하나되어야 합니다. 자기의 가정을 넘고, 자기의 아내를 넘고, 자기의 부모를 넘어서 나라하고 하나되어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가정보다 더 큰 것이 이상입니다. 자기 가정의 참부모보다도 나라의 참부모를 더 위하는 입장에 서는 것이 이상적이다 이겁니다.

우리가 왜 그렇게 살아야 되느냐? 그렇게 살지 않으면 영계에 가서 갈 길이 막혀 버립니다. 거기에서 환영하지 않는다 이겁니다. 아무리 닥터라는 이름이 붙었어도 안 통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 이겁니다.

가정의 참부모권을 능가하는 국가의 부모를 더 위해야 되는 것이 본래 이상세계의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국가 부모권은 세계 부모권의 지배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국가 부모가 세계 부모를 더 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뭘 하는 곳이냐? 세계적인 참부모권을 위해서 움직여 나가는 곳입니다. 인간 세상의 최고의 길을 준비하기 위해서 가정의 참부모, 국가의 참부모까지도 희생하는 길을 가자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 통일교회의 운동입니다. 세계의 참부모권을 위한 가정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모든 것을 극복하고 가는 것이 통일교회운동이다 이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가정부모, 국가부모를 모두 희생시켜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세계의 중심이 될 때는 개인과 가정을 얼마나 희생시키고, 나라와 국민을 넘어서 얼마나 노력했느냐 하는 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새로운 세계의 전통적인 요인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118-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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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천국은 참부모를 통해야 가능

 

여러분 스스로는 천국을 못 이룹니다. 그건 부모님이 임해야 됩니다. 성신(聖神)과 하나되어서 예수님의 사랑과 더불어 화합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하늘편의 감람나무에 접붙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영적이니까 접은 못 붙입니다. 재림시대에 참부모가 와서 접붙여 주는 것입니다.

천국 건설은 그게 기본입니다. 공식이 같습니다. 하나님과 아들의 관계는 절대적입니다. 그걸 누가 가를 수 없습니다. 부자의 관계를 누가 가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부부가 사랑으로 하나되면 그 사랑을 누가 가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못 가릅니다. 영원한 것입니다.

부부가 둘이 하나되어서 아담과 해와와 마찬가지로 참부모를 모실 수 있는 부부가 되었느냐 이겁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부모님의 사랑이 우리의 가정에 임할 수 있느냐, 그 사랑권 내에서 아들딸이 태어나게 하기 위한 사랑을 하고 있느냐 이겁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가족 천국이 개문되지 않는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137-186)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참부모를 거쳐야 됩니다. 참부모를 거치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부모가 나왔습니다. 참부모가 나왔으면 그 참부모를 중심삼은 참된 가정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사탄세계에서도 이 참가정까지 올라가기 위해서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싸워서 이것을 전부 다 부정해야 됩니다. (44-140)

 

여러분은 나라가 있습니까? 나라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있지만, 우리가 가는 나라는 다른 나라입니다. 하나님나라라는 것입니다. 그 나라에 가려면 어때야 되느냐? 여러분이 그 나라의 공인된 시민권을 새로이 받지 않고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공인받은 시민권을 가진 사람에게는 사탄이 동서남북을 통해서도,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서도 참소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시민권을 갖지 않고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148-288)

 

전세계의 인간들은 참부모의 사랑을 통해서 가야 됩니다. 그 문을 통하지 않고는 천상세계의 본연적인 고향땅에 돌아갈 길이 없습니다. 지옥밖에 갈 길이 없습니다. 이것을 거슬러 올라가야 됩니다. 반대하는 나라와 싸워서 이겨 나가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통일교회는 세계적인 메시아권의 승리를 이어받고, 국가적인 메시아권을 넘어서 종족적인 메시아권으로 찾아 내려온 것입니다. 사탄세계의 종족권을 중심삼고 사탄의 가정에 들어가서 세계와 교체해야 됩니다.

선생님이 제시한 통반 격파는 가정의 기준에서 참부모의 아들딸을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가정에서 참부모의 사랑을 대신할 수 있는 부부를 만들고,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이루어야 할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아내와 남편, 자녀의 기준을 중심삼고 일족, 일국, 일세계를 잃어버렸던 것을 재현시켜야 됩니다. 그리하여 세계 만민을 내 아들딸로서 품고 사랑할 수 있는 세계가 되었다고 선포해야만 지상에 해방권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210-43)

 

성경을 보면 어린애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못 들어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어린애들에게는 엄마 아빠밖에 없습니다. 밥 먹어도 엄마 아빠, 잠을 자도 엄마 아빠, 그저 엄마 아빠입니다. 그렇게 자라서 철이 들어 가지고 아무리 시집가고 장가가더라도 그 아빠 엄마라는 건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말을 떼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우리 아빠입니다. 아버지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의 종적인 아버지요, 참부모는 횡적인 아버지입니다. 그래서 그 어머니 아버지의 말을 배우고, 그 어머니 아버지의 풍습을 배우고, 그 어머니 아버지가 하는 대로 따라서 해야 고향에도 가고, 어디 가든지 그 나라에 들어맞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역사적인 탕감을 부모님이 해서 뭘 하자는 겁니까? 만민을 해방하자는 것입니다. 왜, 어째서? 인류를 해방해야 하나님이 해방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2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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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천국과 참사랑

 

참부모를 중심삼은 데서부터 이상적인 역사의 출발, 새로운 문화의 출발, 새로운 사랑의 출발이 벌어지는 것이요, 새로운 인생의 출발, 새로운 가정의 출발, 새로운 국가의 출발, 새로운 세계의 출발이 벌어지는 것이요, 하늘나라와 하나님의 사랑의 출발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 참부모라는 말은 그저 지금까지 알고 있던 그런 내용의 말이 아닙니다. 이런 후세와 관계를 맺기 위해서 나라도 망했고, 개인도 망했고, 가정도 망했습니다. 이 자리는 수억천만의 희생된 제물의 피가 호소하고 있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아벨이 가인한테 죽음을 당하고 피를 흘림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참소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 역사를 전부 다 해원성사할 수 있는 자리는 이 자리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사명을 이어받아서 그런 놀라운 탕감의 길을 똑바로 놓기 위해서 모인 무리가 바로 통일교인들입니다. 그것을 진짜 알게 된다면 내 생명이 어떻고, 내가 어떻고 하는 불평은 꿈에도, 천 번 죽더라도 할 수 없습니다. (67-227)

 

하나님의 창조이상이 뭐냐 하면, 참부모의 이름을 통해서 하늘나라의 왕국과 지상왕국을 이루는 것입니다. 참부모의 이름을 안 가지고는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예수님이 하나님의 사랑하는 장자이고 아들인데도 불구하고 왜 천국에 못 가고 낙원에 가 있소?' 하고 물어 보면, 대답을 못 합니다.

천상천국과 지상천국은 참부모의 완성과 사랑의 기반을 통해서만이 이루어집니다. 영계에 가서 왕국을 통일하는 것은 참부모의 사명이지, 다른 사람의 사명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참부모가 못 되었으니 낙원에 가 있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계에는 아직까지 참부모의 사랑을 받아 본 물건도 없거니와 받아 본 사람도 없고, 나타난 흔적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계에 그런 기반이 생겨나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종적이고 횡적인 원리 기준, 공식이 딱 되어 있습니다. 마음대로 하면 안 되는 겁니다. (131-184)

 

천국은 남자 여자의 사랑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수직선을 센터로 해서 수평선이 통일되어 있는 곳이 본연의 천국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데, 남자 여자가 싹 그 가운데서 핵이 되어서, 몸과 마음이 같이 딱 둥글어지는 것입니다.

거기서 마음은 무엇이냐 하면, 수직적인 나입니다. 몸은 뭐냐 하면, 수평적인 나입니다. 명확한 것입니다. 수직적인 마음은 하나님이고, 수평적인 몸은 뭐냐 하면, 참부모입니다. 그것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마음은 수직적입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수직적입니다. 몸은 보이지만 수평적입니다. 90각도, 이것은 남자가 좋아하는 것입니다.

가정은 대우주의 축소체입니다. 우리 사람 가운데 영계가 있습니다. 영(靈)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게 마음입니다, 마음. 보이는 몸은 세계의 대표입니다. 둘이 센터를 중심삼고 완전히 사방을 돌아다녀도 한 자리를 떠나지 않으면 이상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간단합니다. 보이지 않는 마음과 보이는 몸이 참사랑의 핵을 중심으로 하나가 될 때 이것이 이상적인 남자와 여자, 개인의 완성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언제 무엇으로 하나된다는 것입니까? 참사랑으로 하나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참사랑이냐? 수직적인 참사랑과 수평적인 참사랑입니다. 두 종류의 사랑입니다. 이건 90각도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사랑과 생명과 핏줄을 이어받아서 구성된 열매가 나입니다. 이것이 참사랑, 종횡의 참사랑을 핵으로 해서 하나되어야 됩니다. (217-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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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참부모와 영생

 

여러분이 상대를 만나서 사랑할 수 있는 자녀를 받기 위해서는 부모를 따라가야 됩니다. 자녀를 얻었으면 '아, 내가 하늘나라를 거느리고, 하늘나라 전체를 거느릴 수 있는 길을 위해서 따라간다.'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거 얼마나 멋집니까! 지상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을 가지고 통일종족을 받고, 통일세계를 받고, 통일의 하늘을 받기 위해서 가는 것입니다. 왜 참부모를 따라가야 되느냐? 이 우주 전체를 상속받기 위해서 따라가는 것입니다. 얼마나 멋지냐 이겁니다. 하나님과 참부모는 모든 것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게 참부모주의입니다. 참부모주의가 이렇게 훌륭한 것이다 이겁니다.

뜻을 위해서 충성하려는 통일교회 패들은 한국에 가도 통일교회가 우리 것이고, 남미에 가도 그렇고, 아프리카 어디든지 우리 것입니다. 참부모가 놀라운 것이 뭐냐 하면, 그분을 만나서 영원히 하나되겠다고 결심하고 영원히 하나되게 되면 이 우주 전체를 하나님이 상속해 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저 별나라에 가 있으면 어떻게 찾겠습니까? 사랑의 마음으로 '지지직' 하고 방향을 맞춥니다. 방향을 맞춰 '선생님, 아버지!' 이러면 대번에 들어맞는 것입니다. 오지 말라고 해도 참부모의 자리에 휙 온다는 겁니다. 그게 참부모의 사랑주의입니다. 그러면 째까닥 방향이 들어맞는 것입니다. 즉각적으로 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죽을 때까지 부모를 그리워하면서 생활해야 됩니다. 부모를 위해서 눈물지을 수 있는 생활을 하다가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죽으면 천국에 갑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그것을 못 했기 때문에 그걸 때우기 위해서 오늘날 참부모가 나온 것입니다. 참부모가 그 운동을 재현시켜서 조건을 세웠다는 것으로 천국을 가는 것입니다. (14-40)

 

우리 통일교회에서 주인이 누구냐 하면 선생님입니다. 거기에는 이의가 없습니다. 왜? 누구보다도 투입했다는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위했습니다. 또, 스승입니다. 누구도 내 대신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해봐도 나만 못합니다. 한 달을 못 가서 펑크가 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산에 가서 땅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있으면 땅구덩이를 파서라도 모셔 가려고 할 것입니다. 왜? 문선생 같은 스승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참부모라는 말을 중심삼고 볼 때, 세상 하늘땅의 복을 전부 갖다 주고 영생을 보증할 수 있는 증서를 줍니다. 사탄과 하나님 앞에 입증서를 줍니다. 그걸 압니다. 그것을 모르고 있으면 자기 조상들이 와서 경배합니다. 그것을 받고 난 그날에 자기의 3대조가 와서 경배합니다. 놀라운 사실입니다. (20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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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참부모와 나라

 

우리가 여태까지 왜 희생을 했느냐? 그건 종족의 부모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그거 얼마나 멋집니까! 이렇게 희생해서 나라가 통일되고 세계가 통일되면 뭘 하느냐? 통일된 그곳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한 그곳에 내가 아버지 어머니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부모의 자리에 서면 얼마나 거룩하겠습니까! 부모는 사랑을 가지고 항상 희생봉사합니다. 그걸 생각하면, 참된 부모가 되기 위해서 산다는 것은 기분 좋습니다. 그건 미국도 그렇습니다. 레버런 문이 지금까지 미국을 대해서 그렇게 나왔습니다. 사랑을 가지고 미국 사람들을 하나 만들게 될 때는 부모의 뜻을 가지고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여기에서는 갈라질 수 없는 하나의 세계와 하나의 나라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부모가 이 자리에 들어와도 오 케이, 이 자리에 들어와도 오 케이입니다. 그것은 전부 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연결된 부모의 자리로서 종적인 심정권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이 센터를 통하지 않고는 연결이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 그 다음에는 수직은 수직인데 이러한 수직이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부부이고, 그 다음에는 가정의 부모고, 그 다음에는 종족의 부모고 민족의 부모입니다. 더 커집니다. 이 말은 뭐냐 하면, 맨처음에 이 참부모의 전통을 이어받은 이 센터를 중심삼고 볼 때 부모는 부모인데 하나는 가정의 부모요, 종족의 부모요, 민족의 부모요, 국가의 부모요, 세계의 부모입니다. 나중에는 이 부모권을 중심삼고 나라가 센터가 되어서 부모권의 나라를 중심삼은 세계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118-267)

 

여러분은 종족적 메시아가 되었으니 장자권과 부모권을 이어받은 것입니다. 장자권을 이어받고, 그 다음에 부모권을 이어받고, 그다음에는 왕권을 연결할 수 있는 나라를 찾기 위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한국을 찾으면 세계의 나라는 다 찾아지는 것입니다. 이게 마지막입니다. 원리적으로 이론적인 결론이 여기에 귀착되는 것입니다. 이제 더 없습니다.

앞으로 그 자리에 축대로서 세울 것이 있다면 참부모, 참스승, 참주인입니다. 이 세 분입니다. 참사랑을 중심삼은 어머니 아버지는 참된 스승입니다. 이 세상이 모르는 것을 다 가르쳐 줬습니다. 하늘의 비밀, 땅의 비밀을 샅샅이 다 가르쳐 줬습니다. 그러니 스승 중의 스승입니다. 하나님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주인 중의 주인입니다. 선생님도 주인 중의 주인입니다. 왕권을 복귀하게 되면 주인 중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3대 주체사상이 뭐냐 하면 참부모의 사상, 참스승의 사상, 참주인의 사상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참부모의 패입니다.

나라도 그렇습니다. 나라에도 대통령을 중심삼고 계열이 있습니다. 국가 조직을 보면 교육부처인 교육부가 있습니다. 이것은 참스승의 패입니다. 그다음에 국가의 행정부처는 신경의 주인과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전부 다 올라가기 때문에 행정부처는 주인의 자리에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 꼭대기에 있는 대통령이 나라의 주인입니다. 이것이 3대 주체사상 가운데 다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부모는 언제나 종적인 자리에 서 있고, 그 다음에 교육기관과 행정부처는 상대적입니다. 이게 가인 아벨과 같습니다. 이 가인 아벨이 완전히 하나되게 될 때는 그 왕권은 영원불멸의 왕권이 되는 것입니다.

김일성의 3대 주체사상은 자주성(自主性), 창조성(創造性), 의식성(意識性)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인간론(人間論)을 중심한 것이지 사상이 못 되는 것입니다. 신을 모릅니다. 거기에는 본체론(本體論)이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알고 여러분은 힘있게 전진을 해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의 눈으로 나라를 볼 수 있는 때가 왔습니다. 여러분이 나라를 구하기 위한 독립 용사로서 일선에 설 수 있는 이 놀라운 사실은 역사를 대표하고 우주사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하늘이 이걸 볼 때 얼마나 자랑스럽고 얼마나 보람을 느끼겠느냐 이겁니다.

이 땅 위에 참부모가 나왔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거짓부모로서 이렇게 나오던 것을 절반을 잘라서 이 터전을 중심삼고 여기서부터 이 반대의 부모의 문을 통해서 전부 다 몰아넣자 이겁니다. 그래 가지고 지옥으로 가던 길을 천상으로 올라갈 수 있게끔 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문을 통하지 않고는 천국에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기독교에는 부모의 문이 없습니다. 통일교회에만 있습니다. 그러니까 천국에 직행할 수 있는 겁니다. 그 대신 자기의 지난날을 완전히 청산해야 됩니다. 과거의 친구 이름까지도 외워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시집간 여자들이 과거 첫사랑의 남자가 생각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영(零)의 자리에 들어가야 됩니니다. 과거에 자기가 어떻게 살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온갖 정성을 다 모두어야 됩니다. 거기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로지 참부모님하고 하나님의 생각밖에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 딴 것이 끼어서는 이 직선을 타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길을 못 가는 것입니다. 그런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지상에서 축복을 받았다고 그냥 다 되는 게 아닙니다. 축복도 교회의 축복, 나라의 축복, 세계의 축복을 거쳐야 됩니다.

이렇게 3단계를 거쳐야 됩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영(零)의 자리에 들어가기 위해서입니다. 자기의 아들딸이 있다고 해서 그 아들딸이 자기의 소유가 아닙니다. 영의 자리에 서야 됩니다. 그 아들딸은 하나님의 소유이고 참부모의 소유입니다. (208-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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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장 참부모와 우리

 

 1) 통일교회의 가르침의 핵심

 

  ① 부모 철학

 

여러분이 효자가 되려면 부모가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과연 부모가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가르침을 받아서 알고 있는지, 참으로 알고 있는지 생각해 본 일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통일교회에 나와서 효자 효녀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오줌 싸고 똥 싸고 하는 어린애였습니다. 어머니의 젖을 깨물고 빨고 하는 어린애였습니다. 그러면서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 나왔습니다. 이 세상에 최고의 철학이 있다면 부모 철학일 것입니다. 부모 철학이 최고라는 말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어린애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전부 다 배워야만 합니다. 그것이 부모가 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머니의 배를 통해 태어났지만 양자 양녀들입니다. 그러니 그 부모 앞에 충성을 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여러분이 부모가 되면 사위기대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만으로는 절대로 하늘의 자녀를 두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늘의 자녀를 두기 위해서는 분명히 하늘의 부모가 먼저 나와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부모가 나오기 위해서는 맏아들이 먼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맏아들이었던 가인이 천도를 배반하였으니 하나님 앞에 배반했던 가인의 노정을 거꾸로 밟아서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기 전까지 여러분은 전부 다 애기입니다. 그러니 세상에서 아무리 잘나고 무엇이 어떻다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애기와 같은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어머니의 뱃속과 아버지의 뼛속을 통하여 다시 나와야 됩니다. (16-191)

 

종교의 차이는 있을망정 어차피 좋은 길을 따르게 마련입니다. 굴러가게 마련입니다. 교파를 주장하던 종교는 물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간접주관의 심정권에서 연결되지 못했던 것을, 완성기 소생급에서 시작하여 완성기 장성급, 완성기 완성급까지 7년노정에 해당하는 기간을 남긴 여기에서 부모님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세계적인 탕감을 했기 때문에, 이제는 본래의 선상에서 간접주관권 내로 떨어져 타락한 것을 다시 끌어올려서 직접주관권의 평형선상에 접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온 것입니다. 이것은 참부모를 중심삼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필요한 사상은 참부모의 사상 이외에는 없습니다. 그 외에는 없습니다. 그 누구의 요사스런 사상이 있을 수 없습니다. 김일성의 사상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 누구의 사상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참부모의 사상 하나뿐입니다. (13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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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참된 가정-우주의 중심을 결정

 

참된 부모가 나오면 참된 가정이 성립되는 것이요, 참된 사람의 목적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과거나 현재나 미래에 영원히 찬양받을 수 있는 그 이름이 무엇이냐 하면 참된 부모, 참부모입니다. 참부모가 이 땅 위에 현현했다는 사실, 참부모가 이 땅 위에 계시다는 사실은 무엇보다도 기쁜 복음 중의 복음입니다.

오늘날 사악한 인간들 앞에, 악이 주관함으로 말미암아 방향을 갖추지 못하고 사망권을 이루고 있는 이 세계에 참된 부모의 인연이 성립된 것은, 하나님의 6천 년 역사적인 수고의 공적의 열매입니다. 또한 많은 인간들이 갈 곳을 모르고 방향을 가리지 못하는 이 시대 앞에 갈 곳을 찾아 주고,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하나의 중심적인 모델로서 나타난 것이 참부모라는 것입니다.

참부모라는 이름이 나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창조이상세계, 에덴동산에서 출발되어야 했던 영원한 미래의 천국이 여기에서부터 출발되는 것입니다. 그 사실은 역사적이요, 시대적이요, 미래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거, 현재, 미래의 전체 역사를 통틀어서 보게 될 때, 이 땅 위에 현현한 참부모는 우주의 중심을 결정하는 중심 포인트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역사는 여기에서부터 열매맺히고, 여기에서부터 수습되고, 여기에서부터 출발되는 것입니다. 역사가 여기에서 열매맺히기 때문에 과거가 여기에서 부활되는 것이요, 세계가 여기에서 하나의 세계로 수습되는 것이요, 하나의 세계가 기원이 되어 새로운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역사시대에서 인류의 소망이 어디에 있었느냐? 그 소망은 미래에 있었던 것입니다. 인류는 소망을 미래의 것으로만 생각해 왔다는 것입니다. 인류는 어디를 향하여 가느냐? 미래에 이루어질 하나의 세계를 향해서 갑니다. 미래를 두고 하나의 세계를 모색했다는 것입니다.

거짓된 인류 가운데에서 참된 부모를 맞이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인류는 기뻐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의 소원이 무엇이냐? 그것은 참된 부모를 맞는 것입니다.

참된 부모는 인간들의 최고의 희망이기 때문에, 참부모가 현현하면 역사적 전통은 미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참부모가 현현한 현실권 내에서 성사되는 것입니다. 참부모가 나타나면 참부모가 나타난 거기가 역사의 완성의 출발점이지 완성을 바라는 출발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소원이 출발하는 자리가 아니라 소원성사가 출발되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44-132)

 

참부모의 가정은 어떤 가정이냐? 참부모의 가정은 역사적인 열매요, 시대의 중심이요, 미래의 기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류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앞으로 소망의 천국이 될 때, 거기에 전통의 본국은 참부모님이 살아가신 그 생활 전체가 되는 것입니다. 국가의 사상적인 모체가 뭐냐 할 때, 이것이 국가의 사상적인 모체라는 것입니다. 또, 세계를 창건할 수 있는 기원이 뭐냐 할 때 이것이 세계를 창건할 수 있는 기원입니다.

언제든지 참부모와 더불어 참부모의 자녀 된 인연을 중심삼고 3대권을 이루어야 됩니다. 하나님, 부모, 그리고 여러분, 이렇게 3대입니다. 횡적으로 보면, 선생님, 선생님의 자녀들, 그 다음에 여러분, 이렇게 3대입니다. 이 3대권을 갖추어서 완성하지 않으면 하늘땅이 통일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44-169)

 

하늘의 기지는 가정입니다. 가정에 착지해야 됩니다. 가정에 착지해서 방향을 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모든 가정들은 부모님과 하나님의 이름을 중심삼은 사진을 걸고 거기에 사위기대가 경배해야 됩니다. 3대가 경배해야 됩니다. 사위기대는 3대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자식들, 이렇게 3대가 경배를 해야 됩니다.

참부모의 이름과 더불어 사위기대권을 이루어 경배하는 곳은 타락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직접 주관하기 때문에 해방권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천상세계에 간 모든 영인들이 지상에 와서, 천사장이 아담 가정을 보호하듯이 보호하는 것입니다. 그런 시대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가인권이 영계가 되어 있고, 아벨권이 지상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벨이 가인을 구하기 위해서 희생할 때였기 때문에 이용당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장자권을 복귀했으니 영계가 천사세계이고, 오늘날 통일교회를 중심삼은 가정이 아담권이기 때문에 아담권을 후원하게 되어 있지, 이용해 먹게 안 되어 있습니다.

이럼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개재해서 활동할 수 있는 땅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럴 여지가 없습니다. 사탄은 추방되는 것입니다. 강하고 담대하게 선두 기준을 일보도 양보하지 않고 전진적 자세와 평형적 기준을 갖추어 가지고 전진해 가면 악마의 세력권은 벼랑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가정 가정마다 불을 붙이자 이겁니다. (21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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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③ 하나님의 사랑과 참부모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은 종적인 부모의 사랑이고, 참부모의 사랑은 횡적인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것을 이어받은 인간 앞에 여러분의 마음은 종적인 하나님과 부모의 사랑을 받은 전통적인 열매이고, 몸은 횡적인 참부모의 사랑을 받은 전통적인 열매입니다.

이 열매가 서로서로가 횡적 가정 기반이 되어 종적 중심을 중심삼고 구형을 이루려니까 부부를 이루어 아들딸을 낳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딸을 안 낳으면 죄라는 것입니다. 아들딸이 없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뼈가 없는 살이 있습니까? 그것은 자리가 안 잡힙니다. (184-309)

 

해와는 여성 성품, 아담은 남성 성품을 중심삼고 분립해서 무엇으로 또 하나되느냐? 갈라졌다가 합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자신이 내적으로 품고 있던 사랑이 얼마나 강하다는 걸 아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릅니다. 내게 사랑이 있지만 사랑을 모릅니다. 상대를 만남으로써 아는 것입니다. 내성적인 사랑을 사람을 통해서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종적인 아버지이고, 아담과 해와는 횡적인 참사랑을 중심삼은 부모입니다. (185-187)

 

하나님은 사랑의 뼈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의 사랑은 '뼈사랑'이고, 인간의 사랑은 '살사랑'입니다. 뼈와 살이 하나돼서 형태를 갖추는 것입니다. 그런 이치가 돼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뼈가 있는 것과 같이 하나님 사랑은 뼈사랑입니다. 참부모의 사랑은 살사랑입니다. (18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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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④ 부모와 식구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교인들을 식구라고 말합니다. 오늘날까지의 역사도상에서 이 식구라는 명사를 깨우쳐 준 자가 없었습니다. 식구라는 말은 가정을 떠나서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식구가 생겨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정이 있어야 하고, 그 가정이 있기 위해서는 형제가 있어야 하고, 형제가 있기 위해서는 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에서도 교인이나 신자라는 명사는 썼지만 식구라는 명사는 쓰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이 세계가 외적인 면에서 세계 대가족주의를 부르짖고 있지만, 대가족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대가족의 아버지가 될 수 있고 어머니가 될 수 있는 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그 부모로 오시는 분이 바로 메시아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식구 가운데 참식구가 있고, 그와 반대되는 식구가 있습니다. 또한 중간 입장에 있는 식구도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세우신 천적인 가정을 중심으로 식구라는 명사를 가진 참식구는 어떤 사람인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식구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부모를 가져야 됩니다. 형제가 되기 위해서도 부모가 있어야 됩니다. 형제는 여럿이지만 부모는 하나인 것이 원칙입니다. 즉, 식구는 여럿이어도 주인은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부모나 주인은 누구를 중심삼은 부모요, 주인이냐? 나를 중심삼은 주인이 아니요, 나를 중심삼은 부모가 아닙니다. 형제를 중심삼은 부모요, 식구를 중심삼은 주인인 것입니다. 악한 세계에서 악과 접할 수 있는 주인이요, 악과 접할 수 있는 부모일 것인가? 악과는 상관없는 주인이요, 부모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참된 선으로 계시는 부모요, 주인이라 할진대, 그 부모는 가정이나 한국 백성이면 한국 백성을 위주로 한 부모요, 주인일 것인가? 아닙니다. 온 세계 인류 전체의 부모요, 하나의 대가족을 위주로 한 중심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주인이요, 부모요, 중심의 자리에는 누가 서야 하느냐?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이 서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누가 서야 되느냐? 악한 세상을 세계적으로 수습할 하나님의 대신자, 즉 구세주가 서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일체 된 구세주를 부모로 지상에 모실 수 있어야만 비로소 참다운 가정을 이룰 수 있으며, 구세주를 참되게 모시는 자만이 참다운 자녀와 참다운 형제가 될 수 있습니다. (15-295)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길만을 걸어야 되고, 형제 아닌 형제가 되어야 되고, 부모 아닌 부모가 되어야 됩니다. 통일교회에서는 부모 아닌 부모를 모시고, 형제 아닌 형제들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혈육지정(血肉之情)을 넘어가는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민족을 초월하고, 세계를 초월하여 신문화 창조가 벌어질 것입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생명력 중심삼고?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 중심삼고? 하나님의 지혜 중심삼고? 지식 중심삼고?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아야만 가능합니다. (83-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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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참부모 재세시 동참하는 가치

 

이 세상에 참부모는 둘이 있을 수 없습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을 '아버지'라고 하고, 통일교회에서도 선생님을 '아버님'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아버님하고 북한에서 김일성을 아버지라고 하는 것은 질적으로 다릅니다. 둘이 맞섰습니다. 이 둘이 서로 자기가 부모라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그 부모는 내 것이라고 하고, 사탄도 그 부모를 내 것이라고 하면서 서로 싸우는 것입니다.

이것을 공적으로 누가 공판지어야 되느냐? 인간이 지어 주는 것입니다. 인간이 '우리의 부모는 이런 분이라야 됩니다.' 하고 부모를 선정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부모는 이래서 악한 부모요, 선한 부모는 이래서 선한 부모입니다. 선한 부모를 찾아 나오는 것은 사탄이 아니고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선한 부모의 아버지입니다.' 이렇게 들고 나서서 결정지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은 어디에 귀결되느냐? 참부모를 만나는 데입니다.

부모는 둘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한번 죽은 부모가 천년 후에도 다시 나타납니까? 인류의 부모가 한 번 나타나는 것이 역사의 소원이요, 국가의 소원이요, 사상의 소원이요, 섭리의 소원이기 때문에 그 부모가 나타나는 때는 전무후무한 때요, 역사상에 한 번밖에 없는 제일 꼭대기입니다. 좁다면 얼마나 좁을까요? 영원한 세계를 두고 보면 인간의 일생이라는 것은 숨 한 번 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재수가 있어 그런 건지 복이 있어 그런 건지는 모르지만, 어떻게 해서 이 시대에 살면서 이 한때를 만나 통일교회에 들어왔습니다. 여기에 어떻게 들어왔습니까? 여러분을 이 자리에 들어오게 하기까지에는 수많은 선조들이 정성을 들이고 또 들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망하고 선이 밟히는 자리에서 죽어 갔지만, 그 천 사람 만 사람의 인연을 거쳐서 돌고 돌아 그 인연이 하늘에 이어져서 해가 떠오르는 높은 산과 같은 입장에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햇빛을 바라보고 모여든 사람들이 여러분인 것입니다.

인류 역사에서 사랑이라는 인연이 나온다면, 그건 처음 나오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때가 있다면 이 때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나라와 세계의 주권을 보다 가치 있는 내용으로 긍정시킬 수 있는 때도 이 때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때는 역사의 기원이요, 희망의 초점이요, 만복의 출발점이요, 영원한 생명의 발원지입니다. 그러한 때라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계는 미래의 소망을 찾아 나왔지만, 미래에는 이 때가 영원한 소망의 기준이 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 때를 중심삼고 여러분이 이렇게 나가는 것을 바라보고 이 때의 심정을 체득해서 나가 세계를 살려야 됩니다. 이 때가 그러한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정상의 실체로 온 참부모는 참부모의 심정의 자리에 속할 수 있는 규범을 따라 살아야 됩니다. 그건 여러분이 모를 것입니다.

그 부모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선한 부모이기 때문에 악한 부모와 달라야 됩니다. 악한 자식을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역사상의 어떤 부모보다도 후덕(厚德)을 가지고 대해야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비참한 운명에 처한 자식을 대하는 부모의 입장에 있더라도, 거기에 걸리지 않고 도리어 울면서 쫓아가 천만세의 한을 풀기 위해 애원하고 비록 서로가 잘못했지만 이별하기 싫어 통곡하는 모습이 되어야 될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이 돼야 될 참부모가 아니겠느냐 이겁니다. 다릅니다. 부모로서 지녀야 할 심정적 자세가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부모를 맞을 수 있는 자녀로서 갖추어야 할 심정적인 자세와 규범은 어떠냐? 그게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국의 효자를 대표한 모습이어야 됩니다. 세계 마라톤대회에 출전한 각국의 챔피언과 마찬가지로 자기 종족에서 선출된 챔피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기 위한 챔피언이냐? 효도하기 위한 챔피언이요, 충성하기 위한 챔피언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챔피언의 무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녀는 이래야 되고, 부모는 이래야 된다고 하는 의미에서 통일교회 선생이란 사람은 뿌리가 다릅니다. 그때를 놓치게 되면 억천만세의 한을 남길 것입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느냐? 지식을 가지고 살 수 있느냐? 자신의 그 무엇을 가지고 맞출 수 있느냐? 절대 안 됩니다. 자기가 걸려 있는 세계, 자기가 걸려 있는 민족, 자기가 걸려 있는 종족, 자기가 걸려 있는 가정에 있는 짐을 한꺼번에 진다고 해서 그 자리를 인계받을 수 있느냐? 그것도 안 됩니다.

공산세계를 망하게 하고 민주세계를 망하게 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은 망하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계 인류를 전부 다 희생시키더라도 이것을 침해시켜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하나님이 보실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이러한 초점상에 있는 여러분인데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습니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효자 되는 법이 없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하고 싶은 일을 다 하고 충신이 되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51-355)

 

현재의 입장은 어떤 입장이냐? 참부모를 중심삼고 동시대에 처한 때입니다. 이것은 일생에 한 번밖에 없습니다. 역사의 수많은 흐름 가운데, 고기 토막으로 말하면 맨 가운데 토막과 같은 기간입니다. (46-168)

 

하나님의 뜻으로 보면, 한국의 제일 큰 교단의 교회당(敎會堂)이 하나님을 대표해서 축수를 드리길 바라는데도 불구하고, 눈 위에 꿇어 엎드려서 예배 대신 통곡하면서 불쌍한 이 교회, 이 전당을 구해 달라고 기도하는 신세가 돼 있습니다. 이 통일교회를 세우는 데 있어서 비통한 역사의 섭리적 내용이 있었다는 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각 나라가 환영합니다. 미국에서도 지금 조야에서 문제가 돼 있습니다. 일본도 그렇고 유럽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축복가정이 비로소 인류의 가정으로서 가정의 붕괴를 방어할 수 있는 길이요, 청소년 윤락을 방어할 수 있는 길이라고 소망적인 하나의 등대와 같이 생각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러기까지 선생님의 피살이 얼마나 깎이고 한의 눈물과 곡절을 얼마나 많이 거쳤는가를 알아야 됩니다.

어느 누구도 축복가정 커플들을 떼놓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 한 쌍이 축복받기 위해서는 하늘은 많은 혈족의 손길을 거쳐 한때에 선생님을 만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참부모가 사는 당대에 같이 살고 있다는 것, 같은 공기를 마시며 같은 시대에 지구상에서 같이 생활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그에 앞서 축복의 기반을 이어받았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백만장자가 문제가 아닙니다. 선생님이 여러분 같았으면 오늘의 통일교회가 생겨났겠습니까? 가는 곳곳마다 감옥으로 직행하는 것입니다. 감옥 정문을 통해서 뒷문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살 수 있는 가정, 선생님이 머물 수 있는 교회, 선생님이 머물 수 있는 일족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이제는 세계 판도를 다 닦았습니다. 거기에 대비될 수 있는 외적 조건을 다 닦았다는 것입니다. 세계 학자세계의 모임인 세계평화교수협의회 1백 곳 이상, 언론계 조직, 그 다음에 이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정상 회담을 다 만들어 놓았습니다. 또, 마음을 대표한 종교권 연합, 몸을 대표한 정치권 연합으로 세계평화종교연합과 세계평화연합을 만든 것입니다.

내 개인에서 몸 마음의 투쟁역사로 갈라진 것을 이제 끝날에 와서 수습하지 않고는 인류의 살길을 수습할 도리가 없는 것이요, 평화의 세계로 갈 길이 없기 때문에 혼자 이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반대 받으면서도 혼자 하는 것입니다. (21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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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참부모의 수고와 우리

 

  ① 참부모는 우리에게 절대 필요

 

참부모가 필요한 것은 탕감조건을 세우기 위해서, 그리고 사랑으로 하나된 기준에서 전수받기 위해서입니다. (137-116)

 

미국이 선생님의 원수와 같지만 감옥에 들어가서 미국을 살리기 위해서 여섯 개의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워싱턴 타임스로부터. 세상 같았으면 복수를 다 할 텐데 나는 그러지 않습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탕감복귀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참부모가 있어야 됩니다. 또, 참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기 위해서는 참부모가 있어야 되고, 혈통적으로 중생하는 데도 참부모가 있어야 됩니다. 이렇게 세 가지입니다. (137-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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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우리는 참부모에 접붙인 가지

 

본래 인간은 횡적인 부모로서, 하나님을 종적인 부모로 삼고 종횡의 부모의 사랑을 중심삼아 기쁨의 출발을 봐야 했습니다. 그것이 사탄으로 말미암아 침범을 받았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빼서 붙여 가지고 참부모의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돌감람나무가 되었기 때문에 참감람나무의 가지를 받아 접붙여야 됩니다.

종교는 접붙이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사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랑 신부의 혼인 잔치가 이 땅 위에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58-219)

 

인류의 소망이 무엇이냐 하면 참부모를 만나는 것입니다. 역사적 결실이 뭐냐 하면 참부모를 만나는 것이요, 시대의 중심이 뭐냐 하면 참부모를 만나는 것이요, 미래의 출발의 기지가 뭐냐 하면 참부모를 만나는 것입니다. 거기에 접붙인 여러분은 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역사시대의 소원은 전부 다 미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여러분의 일생을 중심한 참부모와의 인연은 영원토록 한때밖에 없는 것입니다. 한 번밖에 없는 귀중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선조들도 못 가졌고 여러분의 후손들도 못 가지는 겁니다. (46-168)

 

타락으로 인해 사탄이 인류를 전부 다 데리고 갔습니다. 지옥으로 전부 데리고 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가는 여기에서 하나님이 하나 둘 갈라내는 것입니다. 이 세계가 사탄세계의 돌감람나무였는데, 거기서 하늘편의 감람나무를 만들었습니다. 민주세계 기독교를 중심삼고 하늘편 돌감람나무를 만들어서 세계를 리드하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이 사탄편 세계가 약화되고 기독교문화권이 서게 되면, 재림주가 와서 한꺼번에 잘라서 완전히 접붙여서 하나로 만들어 돌려 세우는 것입니다.

오늘날 좌익이 망했고, 우익이 다 망하게 됐습니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하나님과 참부모가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참된 부모와 하나된 가정들은 세계 어디에 있든지 지금까지 참부모가 해 나오던 길을 상속받았기 때문에 거기에서 강하고 담대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이 우주가 선생님을 보호하듯이, 그 가정들을 보호함으로 말미암아 한 나라를 소화시키는 것은 문제가 없다 이겁니다.

여러분, 어디 신도(信徒)냐고 물으면 통일교회 신도라고 자랑스럽게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참부모께 속한 자다 이겁니다. 우리는 참부모의 자녀다 이겁니다. 싸우지 말라는 겁니다. 싸우는 것은 사탄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선포하고 다니라는 겁니다. '우리는 넘버 원 무니! 넘버 원 하나님의 자녀다!'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이 참소할 수 없습니다. 그런 생각을 확고히 가지고 다니라는 것입니다. (201-129)

 

우리 뜻의 귀착지(歸着地)는 가정입니다. 가정이 없으면 하나님의 정착지가 없습니다. 모든 가정은 참부모를 중심삼고 번성하기 때문에 가정이 없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나무로 말하면, 줄기를 중심삼고 가지가 뻗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가지를 꺾어서 삽목(揷木) 하면 그 나무는 번식해 가는 것입니다.

그런 가지의 사명을 완수해야 하는 것이 종족적 메시아입니다. 줄기에서 쭉 동서남북으로 뻗어서 크게 됨으로써 중심 뿌리도 크게 됩니다. 그 중심 뿌리가 크게 되는 데는 가지가 크게 됨으로써 비례적으로 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횡적으로 크게 되면 종적으로도 크게 되는 것입니다. 횡적인 기준을 희생해서 쭉 이렇게 뿌리가 크게 되면 가지도 쭉 올라갑니다. 뜻을 중심삼고 열심히 하면 이렇게 따라옴과 동시에 횡적으로 확대된 힘이 압축되기 때문에, 위하는 삶으로써 천주를 연결시킬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래서 부부를 중심삼고 간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중심삼고 종적인 기준에서 횡적으로 봉사의 생활을 하면, 거기서 천주통일권이 자동적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가 되면 반드시 돕니다. 돌아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횡적인 기준이 있기 때문에 안 넘어진다는 것입니다. 축을 중심삼고 도는 겁니다. 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원심력과 구심력이 하나됨으로써 운동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자신이 무(無)의 경지가 되면 자동적으로 돕니다. 돌기 시작하면 축도 올라가고, 내려오게 되면 저절로 반동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합니다. 호흡하는 것처럼 운동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완성형과 같은 인간이 천상세계에서 가정을 이루면 천국가정의 기반이 되고, 그런 기반을 닦게 되면 떨어지지 않습니다. 부모가 가는 데서 함께 영원히 모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부모를 중심삼고 심정적 공명권을 이루고, 그 생활의 체휼 기준이 영원한 심정세계의 기반이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인은 참부모와 함께, 하나님과 함께 살아갑니다. 참부모의 사랑과 함께 태어나는 것입니다. 사랑은 영원한 인연을 맺기 때문에, 사랑의 인연은 끊을 수 없습니다. 죽을 때까지 사랑을 못 잊는 것입니다.

부모는 죽어 갈 때도 사랑의 심정을 가지고 아들딸을 사랑하면서 죽어 가는 것입니다. 남편이나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을 잊어버리고 죽어 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랑은 죽음을 넘어서 영원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에 의한 생명권을 이어받은 자신, 남자와 여자라고 하는 것은 사랑의 근본인 부모를 잊어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부모는 뿌리이고 자기 자신은 줄기라고 한다면 아들딸은 순입니다. 그것이 함께 크게 되면 종족권, 민족권, 국가권으로 확대되는 것입니다. (218-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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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③ 우리를 위한 참부모님의 수고

 

참부모가 참자녀를 낳기가 쉬웠겠습니까, 힘들었겠습니까? 잃어버렸던 것을 찾기가 얼마나 힘들었겠느냐 이겁니다. 개인이 반대하고, 가정이 반대하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하늘땅?영계가 전부 반대하는데 이걸 끌고 왔습니다. 장사속으로 그랬겠습니까? 무엇 때문에 그런 겁니까? 사랑을 중심삼고, 사랑을 찾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그러한 자격을 가지고는 그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백 번 찾아와도 문전에서 차 버리고, 천 번 찾아와도 차 버릴 것인데, 여러분을 찾아와서 이러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어려운 핍박을 도맡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못한 것을 전부 다 선생님한테 갖다가 뒤집어씌웁니다. 선생님은 미국에서 욕먹을 일, 반대받을 일은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잘못해서 선생님이 욕먹는 것입니다. 세상 같으면 여러분을 버리고 갈 텐데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 법정에도 선생님이 안 나가도 됩니다. 내버려둬도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때문에 나갔습니다. 선생님이 없으면 여러분이 얼마나 찢기겠습니까? 그래서 선생님이 맞으며 여러분을 지켜 주고 보호해 주는 것입니다. (116-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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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④ 우리에 대한 참부모님의 기대

 

통일교회에는 서양 사람들, 동양 사람들, 얼룩덜룩한 사람들, 참 많이 모였습니다. 뭘 하러 다 모였습니까? 뭘 하러 찾아왔습니까? 선생님을 만나도 줄 것은 욕밖에 없습니다. 꿀밤밖에 줄 게 없는데, 그래도 좋다고 온다는 것입니다. 그게 뭐냐? 사랑을 찾아서 모여드는 것입니다. 참사랑을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 맛을 안다는 것입니다. 일벌이 꿀맛을 안 다음에 꽃향기를 맡고 천리길도 멀다 않고 날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러는 겁니다.

참부모 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내가 참부모의 권한을 인계해 줄 테니 인계받겠다는 대표자가 있으면 나오라는 겁니다. 참부모 되겠다는 것은 생각도 안 했는데, 알고 보니 통일교회를 책임지고 안 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가다 보니 참부모가 된 것입니다.

맨 처음부터 내가 참부모가 되겠다는 걸 알았다면 만민이 다 알았다는 이론이 되는 겁니다. 모르고 인생의 근본문제를 파헤치고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곡절이 이렇게 된 것을 다 풀다 보니, 참부모의 모든 해원성사도 벌어지고, 하나님이 해방을 필요로 하는 것을 알았고, 그 하나님이 나로 말미암아 해방을 받았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선생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겁니다.

여러분이 참부모를 만나서 뭘 했습니까? 해 놓은 게 뭐냐 이겁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악마 세계에서 매를 맞으면서도 가정을 거치고 종족과 민족을 거치면서 개인 편성, 가정 편성, 종족 편성을 해 나왔습니다. 우리 축복가정은 종족을 편성한 것입니다. 세계적입니다.

그것을 이제는 사탄세계가 잡아다가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왜? 가만히 보니까 사는 것이 멋지다는 것입니다. 동양사람하고 서양사람하고 싸움이나 하고, 만난다 해도 얼마 살지 못하고 후다닥 이혼하고 그러는 판국인데, 우리 축복가정은 10년도 그만이고 20년도 그만이고 잘산다는 것입니다. (21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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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⑤ 우리가 갖추어야 할 수준

 

여러분 가정에서 3대 주체사상의 실체를 갖춘 참형제 참부부 참부모가 나와야 됩니다. 실체 존재입니다. 참형제가 되어야 참부부가 나오지요? 참부부가 나와야 참부모가 나옵니다. 참부모의 자리에 서면, 참부부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참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부모의 의식, 주체사상을 중심삼고 그대로 대상적인 입장에서 하나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하나되는 것입니다. 사랑만이 이 모든 것을 화합할 수 있습니다.

모든 원소들도, 미물들도 사랑길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일체 될 수 있는 사랑과 직접 접할 수 있는 세포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위해서는 희생해야 되는 것입니다. 투입해야 됩니다. 생명과 재산을 다 투입한 전통이 있기 때문에 급이 낮은 것은 급이 높은 거기에 자기의 모든 것을 투입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윈의 진화론이 아니라, 사랑을 중심삼고 흡수하는 논리입니다. 제2의 가치적인 내용을 창조하는 데에 창조 요소로서 적용될 때는 미물인 현재의 입장에서 얼마나 가치가 높아지겠느냐 이겁니다. (204-129)

 

앞으로 최후에 남을 종교는 어떤 종교냐? 그것은 부모 종교입니다. 그래서 부모 종교가 나와야 된다고 선포한 것입니다. '역사가 오래 되었다고 해서 부모 종교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종의 종교다! 서자의 종교다!' 하고 선포한 것입니다.

공식 연설 내용이 그것입니다. '부모 종교의 사명을 받은 책임자는 이 단상에, 이 대회의 주제 연설을 하는 레버런 문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이렇게 발표해도 세계가 조용합니다. 그러니 기독교에서는 선생님이 재림주라고 소문이 났다 해서 야단하는 것입니다. 서구사회에서는 사람으로 주님이 온다면 선생님 외에는 없다고 하는 것이 결론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문총재가 재림주래, 나하고 똑같은데. 한국말 하고 말이야. 말은 왜 그렇게 빠른고?' 이러고 있지요? 바쁜 세월을 치리하려니 말까지 빨라졌습니다. 말이 빨라야 도망가는 것도 후려잡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을 빨리 할 수 있게 연구해서 빨리 하는 겁니다. 일본말을 해도 그렇고, 영어를 해도 그렇고 어느 누구도 나를 못 따라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그런 선생님을 잘 만났습니까, 못 만났습니까? 잘 만났으면 잘 만난 사람들이 잘 해야 됩니다. (214-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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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은총과 자각

 

  ① 참부모란 말은 처음 나타난 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부모가 와야 됩니다. 타락한 부모가 아니라 참부모가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참부모라는 말은 여러분이 생각지도 않은 입장에서 찾아지고 만날 수 있는 그러한 말, 그러한 내용이 아닙니다. 이것은 역사상에 처음 나타난 말입니다. 이 사실은 혁명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에 없는 기적적인 대사건입니다.

여러분이 참부모라는 말을 배우게 된 것은, 참이라는 말을 하게 된 것은, 지금까지 왔다갔던 수많은 부모들의 사랑을 능가할 수 있는, 단 한번밖에 있을 수 없는 사랑을 가지고 나타났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 기준을 지녔기 때문에 참부모라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때의 사랑의 관계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면 그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이 비로소 처음 받는 최고의 기준이요, 예수님이 이 땅에 왔다 갔지만 그 예수님도 상상하지 못할 그런 최고로 이상적인 자리입니다.

이런 자리까지 올 때는 역사과정에서 그 대가를 치렀습니다. 참부모의 기준이 나오면 자기는 근본적으로 패배할 것을 아는 사탄은 이것을 이루지 못하게 하고, 이 때가 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거짓 부모의 자리에서, 온갖 수단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키고, 수많은 피의 대가를 치르게 했던 것입니다. 이 날이 오기까지 끔찍한 희생이 치러졌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상을 가지고 그런 길을 가려고 하는 모든 신앙자들을 대해서 개인적으로 희생시켰고, 가정적으로 희생시켰고, 혹은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희생시켜 나온 사탄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거기에 희생된 우리의 선조들, 선을 추구하며 참 길, 부모의 길을 찾아 나온 선한 우리의 형제들이 얼마나 끔찍한 피의 대가를 치렀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67-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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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참부모란 말은 복음 중의 복음

 

여러분들이 유토피아 세계를 찾아가려면 어디로 가야 되느냐? 본연의 가정의 사랑권을 거치지 않고는 갈 길이 없습니다. 선생님이 원리주관권 내와 직접주관권 내를 하나님의 사랑과 참부모의 사랑으로 연결한 기준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영계와 육계가 그 사랑의 다리를 통해 왕래할 수 있는 길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 원리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원래 만드신 대로 직접주관권과 간접주관권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하나로 만드느냐? 그것은 참사랑만으로써만 가능합니다. 이것이 하나되는 때는 인간 아담과 해와가 성숙할 때뿐입니다. 그럴 때는 자동적으로 수평적 참사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오, 당신은 나의 동반자요!' 하고 끌어안게 될 때, 참사랑이 그 쌍의 중심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플러스 사랑이 완성해서 나타나면, 마이너스도 곧장 나타나게 돼 있습니다. 플러스 사랑이 마이너스 사랑에 내려와서 운행하게 되면 참사랑의 표준을 그려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끝나는 것입니다.

참사랑이 나타나면 모든 것이 다 자동적으로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참사랑만이 모든 것에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가 유토피아권으로 전환되는 것입니다.

어디서부터 참사랑이 출발하느냐? 참부모에서부터입니다. 이건 복음 중의 복음입니다. 세상에 무슨 좋은 말이 있다 해도, 남편이라는 말이 좋은 말이고, 아내라는 말이 좋은 말이라 해도, 타락한 세계는 참부모가 나타나지 않고는 참된 남편과 아내가 안 나타나기 때문에 참부모 이상 좋은 복음이 없다 이겁니다. (131-187)

 

역사 과정에서 슬픔이 있으면 최고의 슬픔, 어려움이 있으면 최고의 어려움, 피의 대가를 치렀다면 최고의 대가를 치른 그 결과로 찾아진 것이 이 참된 가정입니다.

이 참된 가정이 찾아짐으로 말미암아 역사적인 슬픔이 해원성사될 수 있겠기 때문에, 역사적인 죽음의 대가가 해원성사될 수 있겠기 때문에 역사는 이런 비참한 탕감의 조건을 치러 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참된 가정이 이 땅에 현현했다는 사실은 우리 인류에게 있어서는 그 이상의 기쁨이 없는 기쁨이요, 그 이상의 가치가 없는 가치인 것입니다.

그런 참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참된 부모가 있어야 됩니다. 참된 부모가 있어야 됨과 동시에 참된 부부가 이루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참된 부부가 이루어져서 참된 자녀가 탄생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참된 부모는 사탄 앞에 어떤 참소의 조건도 남겨서는 안 됩니다. 참된 부부는 사탄 앞에 어떤 참소조건에 걸려서 신음하는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참된 가정에 속해 있는 자녀 또한 사탄세계에 참소조건을 남길 수 있는 자리에 서 가지고는 참된 가정의 아들딸이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참부모라는 말을 하고 있으며, 참부모라는 명사를 알고 있습니다. 이 참부모라는 말은 역사시대의 그 누구도 불러 보지 못했고,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부를 수 있고, 알 수 있고, 모실 수 있는 영광된 자리에 섰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역사시대의 그 누구보다도 행복한 자리에 서 있는 것이요, 역사시대의 그 누구보다도 고귀한 자리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참부모라는 이름과 더불어 역사는 지금까지 수고해 나왔고, 참부모의 승리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서 역사적인 수많은 희생의 대가를 치렀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참부모라는 명사야말로 오늘날 우리 인류에게는 복된 말씀 중의 복된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참부모로 말미암아 역사가 치리되고, 참부모로 말미암아 새로운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기원이 생겨나고, 참부모로 말미암아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내적인 인연이 결정되고, 참부모로 말미암아 외적인 세계를 점령하고 있는 사탄을 정복하여 비로소 하나님을 해원성사해 드릴 수 있는 중심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부모와 더불어 살고, 참부모의 명령을 받들어 행동할 수 있는 이 놀라운 은사에 여러분이 먼저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자기 일생을 다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참부모의 가는 길에 동조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우리 인류 앞에 이 이상 행복한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참부모의 명령을 따라 적진을 향하여 행진하는 병사가 있다면, 그는 인류가 바라는 최고의 희망의 정상 가운데서 하늘과 땅이 직시하고 역사가 주목하는 거룩한 용사입니다.

여러분이 참부모의 심정을 대신하여, 혹은 국가와 민족을 대신하여 싸울 수 있는 입장이 됐다면 그 심정으로 말미암아 국가면 국가, 민족이면 민족이 비로소 행복의 동산의 문을 열 수 있고, 행진해 들어가서 승리의 영광의 자리에 참석할 수 있는 소망의 국민과 국가가 현현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참부모의 심정의 깃발을 들고 나서는 여러분이야말로 역사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사망의 세계를 다시 한 번 심판할 수 있는 기수인 것을 여러분은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43-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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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③ 참부모로 미래가 보장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참부모라는 말은 위대한 명사입니다. 물론 원리의 내용도 깊이가 있습니다. 여기에서부터 미래에 대한 확신과 가치를 보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현실무대에서 가치를 보장할 수 있는 하나의 원점이 있다면, 그것은 그 말에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되어야 합니다. 누구를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하느냐? 자기를 중심삼고 하나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 가정을 중심삼고 참부모를 끌어다가 하나되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참부모 앞에 끌려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끌려가는 데는 자기만 끌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부모면 부모, 남편이면 남편, 아내면 아내까지 끌고 가야 됩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의 자식들도 끌고 가야 되고, 가정에 있는 물질까지도 끌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35-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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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④ 참부모의 가치

 

하나님의 섭리의 목적이 뭐냐 하면, 하나의 초점입니다. 하나님의 이상이 실현되는 자리도 바로 그 자리입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부모, 잃었던 참부모님을 만날 수 있는 곳도 바로 그 곳입니다. 그래서 그 기대가 모든 것의 중심입니다. 그 자리, 그것이 '참부모'라고 하는 것입니다. 역사상에 많은 자리가 있었지만, 이 자리가 가장 가치 있는 자리입니다.

그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모든 성인들이 이 기대, 이것을 위해서 싸웠습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시고, 영계에 있는 모든 영인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 위의 모든 인류도 이것을 중요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것의 진정한 가치를 알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수천 개의 땅덩어리를 주고도 바꿀 수 없습니다. 땅덩어리만한 다이아몬드를 주고도 바꿀 수가 없습니다. 미국 전체를 하나님께 제물로 바친다고 해도, 여러분은 그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눈으로 직접 그 자리를 볼 수 있으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볼 수 없다면 여러분은 얼마나 불행한 사람이 되겠습니까?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봐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눈, 모든 영인들과 모든 사람들의 눈이 여기에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역사를 보게 되면, 역사라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역사는 이것과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이 자리는 타락하기 이전의 인간 첫 조상을 위한 자리이기 때문에, 이것 이후에는 어떠한 역사도, 타락한 어떠한 역사도 있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부터 새로운 내용이 출발됩니다. 즉, 모든 것의 중심, 모든 것의 내용, 그리고 모든 것의 결과가 여기서부터 출발할 것입니다. 여기에 참여할 수 있는 자들이 지상의 첫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가정을 이루어서, 사탄의 주권을 물리치고, 이 땅 위에 새로운 천국을 건설하기 위해 출발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여기서부터 역사의 열매가 맺혀지게 될 것입니다. 이 자리가 전세계의 중심점입니다.

이 자리가 미래를 위한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과거 역사의 완성이 이루어질 것이고, 현재 역사의 완성이 보전될 것이며, 미래 세계의 완성이 시작될 것입니다. 이 점, 이 자리를 붙잡을 수 있으면, 여러분은 한 인간으로서 모든 것을 정복한 정복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가치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것이 얼마나 멋있을 것이며, 여러분이 그것을 얼마나 사랑할 것이며, 얼마나 찬양하고, 얼마나 존중하고, 또한 얼마나 좋아하게 되겠습니까? 이 자리는 최고로 높은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역사에서 최고의 높은 자리에 놓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모든 위대한 사람들, 그들이 아무리 위대하다고 하더라도 이것에는 비교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보게 되면 틀림없이 기뻐서 감격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잠자는 동안에 꿈속에서 춤을 춰 본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이 자리, 이 위치를 생각하게 되면, 그때마다 여러분이 그런 감정을 갖게 되어서 잠을 자면서도 춤을 출 수가 있게 됩니다. 여러분은 다른 어떤 자리보다도, 여러분의 생명이나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이 자리에 마음이 더 끌려야 합니다. 다시 보고 싶어하고, 같이 살고 싶어하고, 이것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그러한 감정을 가져야 합니다. (52-95)

 

부모가 되려면 하늘땅이 화답해야 됩니다. 천상세계에 가서 하나님을 이기고 와야 됩니다. 아담이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예스'라고 해서, 사실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만들었으니, 사실 아닌 것을 사실로 긍정시키지 않고는 본연의 기준에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천지간에 참부모가 되기 위한 과정에서 모든 문제를 실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내용이 천지를 밝히는 것이요, 모든 역사적인 곡절을 해방시키는 것이요, 하나님의 심중에 박혀 있는 못을 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사랑의 해방은 이러한 아들딸을 품고 사랑하면서 기뻐하고 춤추고 웃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가 환희에 차서 천세만세 외치는 그 함성이 피조만물에서부터 온 천지에 꽉차야 되는 것입니다.

부정하는 거기에 긍정적 내용을 제시하지 않고는 지상에 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심각합니까. 천상세계에서 공자 석가모니 예수가 모여서 이런 시험을 치는 것입니다. 그걸 다 깔아뭉개 버리고 하나님 앞에 와서 담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에는 말못 할 심정이 있습니다. 이 뜻을 아담이 완성기에 스스로 깨쳐서 악마를 굴복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해방의 주권자가 되어야 합니다. 만국의 통치자요, 구원의 주인이요, 만형제의 장남권을 갖출 수 있는 사람이 아담이라는 겁니다. 사탄세계가 반대함으로 해서 40일 동안 영계가 혼란 가운데 빠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심판관(審判官)이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정의의 판정을 받아야 됩니다. 거기에서 문총재의 승리를 판결받고 지상에 오는 것입니다. (21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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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⑤ 감사해야 할 우리

 

하나님에 대한 감사를 어떻게 드릴 수 있겠느냐. 참부모에 대한 감사를 어떻게 드릴 수 있겠느냐. 우리 교회에 대한 감사를 어떻게 드릴 수 있겠느냐. 여러분을 재창조해 준 것에 대한 감사를 어떻게 드릴 수 있겠느냐.

내가 거쳐 나온 뒤에는 참가정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한 단계 더 나가면 참종족이 나타나고, 한 단계 더 나가면 참국가가 나타납니다. 한 단계 더 나가면 참세계가 나타나고, 한 단계 더 나가면 참우주가 나타나고, 한 단계 더 나가면 참천주가 나타나고, 한 단계 더 나가면 하나님이 나타납니다. 이것이 우리의 최종 목표입니다.

인간은 타락한 이후에 사탄의 혈통을 이어받았습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수천만 대에 걸쳐 하나님의 혈통이 아닌 사탄의 혈통을 이어받은 것입니다. 그래, 어떻게 이 사탄의 혈통을 청산할 것이냐? 아담과 해와가 타락한 이후에 이어받은 더러운 혈통을 어떻게 청산할 것이냐 이겁니다.

그러한 내용을 청산짓기 위해서 참사랑?참생명?참혈통을 중심삼고 나타나신 분이 참부모입니다. 사탄의 혈통을 비료 삼아서 생명을 키워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부활의 시대에는 몸이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과 혈통을 중심삼고 참사랑을 거름삼아 커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한 편은 사라지고 한 편은 번창해 나오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사탄과는 영원히 이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 속에 고통이 있는 줄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역사상에 나타나시고 지금 여기에 선생님을 통해 나타나셔서 그 깊은 사명을 밝혀냈으니까 알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모릅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실이냐 이겁니다. 예수님도 그것을 몰랐습니다. 알았다 하더라도 마음에 있는 것을 말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종교 지도자 중 그 누구도 그와 같이 숨겨진 우주의 비밀을 알지 못했습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 앞에 선생님이 나타나서 우주의 비밀이 밝혀진 것입니다.

지금부터는 개인적 기반이 아니라 국가적 기반으로 방향을 돌려야 됩니다. 한 국가의 지도자도 과거를 회개하고 돌아서면 하나님이 용서하시는 것입니다. 그건 하나님의 새로운 전통에 속하는 것이고, 새로운 혈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탄을 분립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통일교회의 축복식 이전에 있는 혈통전환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태초에 타락하면서, 참사랑?참생명?참혈통이 타락세계의 더러운 것과 연결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의 참사랑?참생명?참혈통을 중심삼고 횡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180도 전환된 것입니다. 사탄편과 연결된 미국이나 이 세계에는 희망을 걸 수 없습니다. 전세계 인류가 처음부터 가장 악독한 사탄편 부모를 따라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처음으로 그 방향이 180도 전환됐다 이겁니다. 그곳은 시작점인데 영점입니다. 그곳에는 아무런 의미도, 존재도, 관념도, 전통도, 문화도 없는 것입니다. 이게 재창조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모든 환경적인 것을 창조하시고 나서 흙과 물과 공기로 하나 만들어서 인간을 지었습니다. 그때 인간은 아무런 관념이 없었습니다. 영점입니다. 그러니 사탄의 전통에서 180도 돌아서는 것입니다.

180도 돌아서서 거듭나는 것입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다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그 첫 번째는 나라가 아니라 부모입니다. 그 다음은 형제입니다. 세 번째는 부부, 남편과 아내입니다. 네 번째는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3세대를 원하시는데, 이 3세대를 갖지 못했습니다. 1대는 하나님, 2대는 아담과 해와, 3대는 아직까지 갖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중심삼고 인류가 번성하지 못하고 오직 사탄에 속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사탄은 사랑의 원수입니다.

어떻게 이 혈통을 청산지을 수 있느냐? '나'는 일본인도 아니고, 그 어떤 나라 사람도 아닌 하나님의 백성으로 태어났습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핏줄, 이 세 가지의 근원이 표준입니다.

그러니까 감사하는 데는 무엇을 감사해야 되느냐? 잘살게 되는 걸 감사하는 게 아닙니다. 십자가 진 것을 감사해야 됩니다. 전쟁에서 패한 패잔병이 피흘리며 쓰러져 썩어 냄새 나고 있다면 그걸 누가 장사지냅니까? 누가 패잔병을 교육해서 다시 정규군으로 만듭니까? 또, 먹을 것이 없으면 그 사람들을 어떻게 합니까? 그냥 죽여 버리는 겁니까? 아닙니다. 이기면 다 좋을 줄 알았는데 더 큰 십자가를 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 해결하고 나서, 그것을 다시 건설하고 난 다음에야 나의 때가 오는 것입니다. 내가 새 가정을 세우고, 새 국가를 세우고, 새 세계를 세우고 나서야 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것이 어렵다 하더라도 영원한 세계, 본고향에 기차 레일이 있다면 이 레일하고 이 땅에 사는 레일하고 같아야 됩니다. 영계에 들어가는 레일과 마찬가지로 같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현재 자기가 살고 있는 레일이 영계의 레일과 같다고 생각합니까? 그냥 그대로 하나님 앞에 달려갈 수 있습니까? 그 레일을 같도록 하기 위해서 참부모가 필요한 것입니다. (215-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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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⑥ 참부모와의 인연은 숙명적인 업(業)

 

우리 인간은 백 퍼센트 어리석은 자리에 서 있지만, 백 퍼센트 이상 지혜로운 하나님이 친구가 되고 무한한 영계의 선조들이 나의 동반자가 되고 후원부대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 것을 생각할 때 고맙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일선에서 모험의 자리, 골리앗 앞에 다윗이 나설 때의 그 기분을 참 잘 압니다. 당당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호하사 백전백승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치면 네가 갈라지지 내가 갈라지지 않는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다 보니 진짜 그렇게 됐다 이겁니다.

하나님이 선생님을 이렇게 기른 것과 마찬가지로 선생님도 여러분을 그렇게 길러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지자(智者)가 되어야 된다는 숙명적인 과업을 상속해야 된다 이겁니다. 인연적인 과업이 아닙니다. 숙명적인 과업입니다.

참부모와 참부모의 자식이라는 것은 영원불변의 숙명적인 업(業)입니다. 이걸 누구도 가를 수 없습니다. 천년만년 그 길을 가야 합니다. 갈 길은 두 길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비법이 없습니다. 그 길을 가야 됩니다. (203-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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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⑦ 책임해야 할 우리

 

영계에 가서 열두 진주문을 거쳐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지상에서 얼마만큼 하늘의 백성을 사탄으로부터 찾아 가지고 돌아 들어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눈물과 피땀을 흘려야 됩니다. 재창조의 참사랑의 심정을 중심삼고 사탄의 부모 이상, 사탄의 남편, 아내, 아들딸 이상의 심정을 투입해서 눈물과 더불어, 피땀과 더불어 교차되는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하늘나라의 자기 백성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이 수의 비례에 따라서 저나라의 영광의 자리에,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는 모든 조건이 가려진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은 일생을 거쳐서 나라뿐만이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 살았습니다. 왜? 영계에 가 있는 사람들까지도 전부 참부모의 혜택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댄버리 감옥에 가서 2월 초하룻날 지옥과 하늘 문을 여는 식을 했습니다. 그걸 개문하는 모든 것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니 감옥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천신만고 한의 고개를 넘고 넘어가야 됩니다. 대양이 넓다 하면 그것을 헤엄쳐서 건너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산이 높다 하면 맨발로라도 백설이 쌓여 있는 히말라야 산정을 넘는 것과 마찬가지로 넘어야 됩니다. 그것과 같이 역사의 비참 그 자체를 넘어 모든 승리의 패권적 기반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악마 자체가 따라오려야 따라올 수 없어서 떨어지지 않을래야 떨어지지 않을 수 없는 수난길을 거쳐왔다는 것입니다.

내 집에 내 아들딸이 엄숙한 자리에 있습니다. 그들은 제2의 하나님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옛날을 대표한 하나님을 대신하고, 어머니 아버지는 이 시대를 대표하고, 아들딸은 미래를 대표합니다. 이 3시대의 대표를 과거, 현재, 미래의 하나님의 현현자로 모실 줄 알아야 됩니다. 아들딸을 속여 먹고, 아내를 속여 먹고, 남편을 속여 먹고, 부모를 속여 먹는 사람은 지옥 가는 것입니다. 위하는 사랑, 생명까지도 투입하고 잊어버릴 수 있는 참사랑의 핵을 중심삼고 가정과 국가와 하늘땅이 연결되게 되어 있지, 그 외에는 없습니다.

그런 핵을 통한 심정적 내용을 가지고 하늘나라의 백성을 얼마나 복귀하느냐 하는 것이 내 나라 통일의 해결 비결입니다. 다른 데 가서도 내 나라를 통일한다는 마찬가지의 입장에서 그 나라를 있는 정성을 다하여 어느 나라에 지지 않게끔 먼저 하늘 앞에 봉헌해야 됩니다.

구약시대는 물건, 신약시대는 아들딸, 성약시대는 자기 부부, 그 다음에는 하나님입니다. 타락으로 하나님을 지상에 모셔 놓지 못하고 사탄을 모셔 놓고 하나님과 이별했으니 이제는 하나님을 모셔 놓고 전부 연결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물건은 여러분 것이 아닙니다. 물건은 구약시대에 해당하는 것이요, 아들딸은 신약시대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물건을 희생시켜 아들딸의 갈 길을 닦았습니다. 그리고 재림주, 참부모가 이 땅에 와서 고생하는 것은 하나님을 이 땅에 모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을 땅에서 모셨으니, 이게 지옥입니다. 하나님을 모셔야 됩니다. 이것은 참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재창조는 투입하고 투입하고 잊어버리던 참사랑의 기원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물질과 자녀와 자기 실체 전부를 참사랑으로 결탁시켜서 이 모든 것이 참사랑과 연결된 하나님 것이라는 말이 설정된 이후에 다시 분배받아서 자녀 소유시대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소유, 자녀의 소유로 분배되는 것입니다. (21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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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우리의 할

 

  ① 우리의 책임

 

복귀의 길을 가는 여러분은 개개인이지만 여러분 개인만이 가는 길이 아닙니다. 언제나 복귀의 길을 가는 여러분은 참부모를 대신해서 가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종족적, 민족적, 혹은 국가적인 참부모의 승리의 터전을 마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르게 참부모를 대신해서 가기 위해서는, 참부모는 세계적인 영적 승리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 나간다면 여러분은 국가적인 승리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 나가야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영적으로는 참부모의 승리의 기준이 세워졌기에 지상에 참부모의 승리의 기준을 세워야 하는데, 여러분이 민족적인 기준을 넘어가야 할 참부모의 책임을 대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면에서 설명하면, 여러분이 민족적인 기준을 넘어서 세계적인 기준을 향하여 간다면 오시는 참부모는 영적으로 천주적인 승리의 기준을 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참부모의 인연을 갖고 오시는 주님은 우리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를 영적으로 개척하고, 실체적으로 승리하시고 모든 것을 책임지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 복귀의 어려움입니다.

그러면 하늘과 땅과 인간을 돌아보게 될 때, 하늘이 어느 한때 승리의 참부모를 모셨느냐? 아직까지 모시지 못했습니다. 땅이 모셨느냐? 아직까지 모시지 못했습니다. 인간이 모셨느냐? 아직까지 모시지 못했습니다. 그 도상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부모만 모시면 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참부모를 모신 다음에는 참된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복귀해야 됩니다. 이것을 위해 준비한 것이 이스라엘 민족이었습니다.

참부모 앞에 참자녀로 서기 위해서는 자녀의 개인적인 복귀노정이 있는 것이요, 자녀의 가정적인 복귀노정이 있는 것이요, 자녀의 종족적인 복귀노정이 있는 것이요, 자녀의 민족적인 복귀노정이 있는 것이요, 자녀의 국가적인 복귀노정이 있는 것입니다. 부모의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적인 복귀노정과 자녀의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적인 복귀노정을 완결하여, 부모와 자녀가 일체 되어 승리했다는 기준을 세워 놓고서야 비로소 민족복귀를 종결짓고 세계적인 무대를 향해 새로이 출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의 사명은 무엇이며, 여기에 입교한 여러분은 어떤 입장에 있느냐? 선생님을 중심한 이 통일교회에 불려온 여러분은 서러운 6천 년 종적 역사를 횡적으로, 실체적으로 전개해야 하는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슨 결심을 해야 할 것이냐? 우리가 가야 할 목표는 어디냐? 세계적인 기반 위에 참부모의 나라를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참부모의 나라를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계에 아직까지 슬픔과 고통과 눈물이 남아 있는데, 이것들을 우리가 하루 빨리 청산해야 됩니다. 이것이 우리 통일교회가 맡고 있는 책임이요,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제 가야 할 길을 나섰으니,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을 향해 나가던 때와 마찬가지로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으로도 그래야 하고, 몸으로도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품어야 할 소망이 무엇이냐? 하늘을 대신하여 이 땅에 오시는 참부모님을 진정으로 모시는 것을 소망해야 하겠습니다. 모시는 데는 승리의 터전이 이루어진 후에, 만민이 우러러보고 만민이 공경하게 된 자리에서 모시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슬픈 역사를 거치시는 참부모를 모시기를 바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슬픈 역사를 거쳐온 참부모를 모시지 못하는 것을 선조들은 한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부모를 진정으로 모시는 것을 모든 인류가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광의 자리에서 모시려고 하기보다 비참한 자리에서 모시는 참효자 참효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참효자 참효녀가 되기 위해서는 어려운 자리, 낙망할 수 있는 자리, 비참하여 비명을 지를 수 있는 자리에 서더라도 '하늘이여, 나를 인도하시는 하늘이여, 참부모님은 예수님보다도 더 고난의 십자가의 길을 가시니, 부모를 모시는 나로서는 어떤 가중된 십자가를 지게 되더라도 당연합니다. 나는 그것을 찬양하오니 하늘은 나로 말미암아 염려하지 마십시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에게 미쳐지는 근심과 고통과 슬픔을 하늘 앞에 짊어지우지 말고 스스로 탕감하고 나갈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개인적인 기준에서 개인적인 부모의 승리의 인연에 접붙일 수 있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 축복가정들이 삼천리 방방곡곡에 널려 있습니다. 왜 축복가정들을 삼천리 방방곡곡에 널려 놓았느냐? 하늘은 삼천만 민족과 삼천리 반도를 중심삼고 섭리하시고, 참부모는 이 삼천만 민족 삼천리 반도에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시는 참부모님을 삼천리 반도가, 모든 마을 마을이, 골짝 골짝이, 산과 들은 물론이요 전부가 모시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참부모를 모시는 것이 역사적인 소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의 입장에서 개인적인 탕감기준을 세우고 가정적인 탕감기준을 세워 참부모의 대신자로서, 그 마을이 후회 없이 모시고 싶어할 수 있는 참부모의 실체 대신자가 돼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신 참부모는 물론 중심의 자리에 계셔서 영적으로 전부와 관계를 맺으시지만 실체는 하나이시기에 전체를 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부모의 실체를 대신하여 만민을 대하는 입장에 세워진 것이 축복가정들이라는 것입니다.

참부모에게는 이 민족을 넘어 세계적인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민족적인 십자가는 지방에 널려 있는, 참자녀의 입장에 있는 축복가정들이 지고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축복가정 전체가 하나의 종족적인 발판, 민족적인 발판이 되어야만 하늘의 역사는 이 민족을 중심삼고 승리의 고개를 넘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13-288)

 

부모님을 사랑해서 본연의 사랑의 기준을 중심삼고 사탄을 분별하여 책임분담, 세계완성기준을 넘어가야 합니다. (137-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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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우리의 사명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참부모를 모실 수 있는 터전을 닦고 그분 앞에 세계의 형제를 규합하는 일입니다. 또, 이런 책임을 짊어진 선조들로서 후손들이 짊어질 십자가와 핍박의 길을 없애 주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본연의 사명입니다.

하나님이 인류 세계에 통일된 부모의 자리, 아벨적 세계와 가인적 세계가 서로서로 하나된 기반 위에 서야 비로소 만유의 주인공으로서, 부모로서 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지금까지 부모 없이 살고 있는 자식들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 가지고 싸우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부모의 입장에서 나타나서 비로소 이들을 교육해서 '너와 지금 싸우고 있는 저 사람이 너의 형이요, 너의 동생이다.' 하는 것을 가르쳐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외에는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악한 부모로 말미암아 참다운 이상적 부모가 떠나 버리고, 이상적 자녀의 인연을 잃어버린 기반에서 사탄의 제물이 되었기 때문에, 이상적 부모가 나와야 되고, 이상적 자녀의 교육을 하늘이 다시 해 줄 수 있는 때가 되어야 되고, 그러한 사명을 이어받을 하나의 종교가 나와야 됩니다. 그러한 종교가 통일교회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무엇을 자랑하느냐? 참부모의 역사를 자랑하자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참다운 자녀가 결속되어야 됩니다. 참부모라 하면 자기 일족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이고 우주적이어야 됩니다. 참자녀란 뭐냐 하면 '나는 미국 국민밖에 몰라' 하는 자가 아닙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민족 감정을 초월해야 됩니다. 누구 이름으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타락은 누구 이름으로? 사탄의 이름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타락선 이상을 점프해 올라가야 됩니다. 그리하여 아담 머리 위에 있던 하나님과 같이 우리 머리 위에 하나님이 있어서 그분이 직접 지휘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하지 않은 참부모와 하나님을 중심삼고 참다운 혈육을 세계적으로 규합해서 새로운 세계로 편성해 나가는 것이 통일교회의 길입니다. 그러면 한 가정이 종족이 될 것이고, 종족이 민족이 될 것이고, 민족이 국가를 이루어서 세계를 제패할 것입니다.

타락한 세계가 이렇게 떨어지게 된 것을 우리는 새로이 출발해서 올라가야 됩니다. 이렇게 된 세계와 이렇게 된 세계적 기준에서 접선되는 이 접선지(接線地)를 거꾸로 뒤집어 놓는 한때가 있어야 됩니다. 그 중간선에 접속되는 때가 어느 때냐 이겁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86-230)

 

우리 통일교회는 참부모가 있지만 그 참부모는 어떤 입장의 참부모냐? 통일교회 안에서 참부모지, 나라를 넘지 않고 세계를 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국가, 세계 사탄이 남아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총질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교회에 참부모를 모신 것을 국가와 세계와 영계까지 확대시키는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통일교회 운동입니다. 지금 때가 가까워 오고 있는 것입니다. 국가 부모로 맞아들일 수 있는 환경이 지금 가까워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124-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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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생명시해야 할

 

  ① 자기주장 불가

 

여러분이 가진 것은 금싸라기는 금싸라기인데 모래 속에 들어 있는 금싸라기, 무슨 광석이나 흙 속에 들어가 있는 금싸라기이므로 이것들을 전부 다 용광로에 집어넣고 녹여 버려야 됩니다. 구워내야 합니다. 그게 표준 과정입니다. 그러면 그때에 몸이 녹아 물이 되어 없어지는데 '아이구 좋다' 하겠습니까, '아이구 나 죽는다. 나 죽는다' 하며 야단이 벌어지겠습니까? 그거 다 죽는다고 해도 금싸라기는 안 죽습니다.

여러분이 순수하려면 98퍼센트까지는 부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 것은 2퍼센트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얼마나 비참합니까? 무니의 생활이 비참한가, 행복한가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무니의 센터인 레버런 문은 행복합니까, 비참합니까? 처음에는 불행해도 나중에는 행복하다는 그런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핍박하면 용광로에 들어간다. 내가 아직 덜되었기 때문에 이렇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핍박이 오려면 오라는 겁니다. 핍박할 수 있으면 하라는 겁니다. 순금이 될 때까지 용광로에 들어가 있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빨리 순금이 되는 방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98퍼센트를 버리고 100퍼센트 순수한 금이 되기 위한 길을 가는 사람은 참음이 얼마나 커야 되겠습니까? 고통이 얼마나 심하겠습니까? 그래도 가야 되겠다는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100퍼센트 순금이라고 감정했는데, 하나님이 핀셋으로 집어 가지고 감정할 때 100퍼센트가 될 것이냐 하는 게 문제입니다. 그게 걱정입니다. 하나님이 순금이라는 100퍼센트하고 내가 순금이라는 100퍼센트를 비교할 때에 내가 100퍼센트라고 주장하는 것이 더 크면 좋겠는데 어떻습니까? 나는 내가 주장하는 것이 더 컸으면 하고 바랍니다. 그러려면 자기를 주장하는 불순분자가 하나도 없어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자기를 주장하지 않느냐? 하나님도 자기를 주장합니다. 하나님도 자기를 주장할 수 있는 소성이 있습니다.

내가 더 순수하게 되기 위해서는 나를 주장하는 것이 하나도 없어야 됩니다. 그러면 내가 100퍼센트 순금이 되어 하나님이 감정하는 순금 이상의 자리에 갑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기를 주장하는 마음이, 자기가 센터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영원히 아무것도 없다고 할 때는 100퍼센트 이상 순수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순금은 뭐냐? 불순한 요소가 하나도 개입하지 않은 그냥 그대로의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완전히 자기 없이 백 년, 천 년 사랑에 취해서 사는 사람들이 있는 나라는 사랑에 있어서 순금 중의 표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사랑의 소유자는 위대한 여왕이나 왕과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에게 그러한 아내, 그러한 남편이 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순금이 됐는데 하나님이 필요합니까? 하나님이 그 속에 벌써 있다는 것입니다. 필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28-206)

 

여러분은 진짜 순금입니까, 가짜입니까? 선생님이 여러분을 보게 될 때 진짜가 아닙니다. 여러분 네댓 사람을 합쳐서 두들겨 패 가지고 다시 빚으면 진짜가 될까,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내가 진짜 시장, 진짜 상점에 여러분들을 그냥 그대로 갖다 놓고 진짜라고 하면서 팔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못 내놓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연단과 시련, 제련 과정이 아직까지 많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순금이냐?' 할 때, 순금이라고 보지 않는다 이겁니다. 아직까지 연마를 당하여야 할 과정이 남아 있으니, 싫든 좋든 제련소에 전부 처넣어야 됩니다. 처넣어서 나쁜 것은 태워 버리고 순수한 것, 하나의 결정체로 연합된 것, 겉이나 속이나 틀림없는 하나로 나타날 수 있는 그 형태를 마련하기 전에는 통일교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138-200)

 

우리에게는 나를 조정하기 위한 조정장치, 조정하는 기간, 조정하는 때, 조정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표준시계와 같게 맞춰 놔야 됩니다. 저울도 표준저울이 있습니다. 그건 세계에 하나 있습니다. 미터면 미터의 원기라는 것은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그러면 본래는 인간의 조정 기준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그러면 인간의 그 절대 기준하고, 현재 제멋대로 된 내 기준이 영점 조정으로 자연스럽게 맞는 나입니까, 억지로도 맞지 않는 나입니까? 억지로 맞추어도 안 맞습니다.

이런 내가 본래의 원기, 미터면 미터 원기와 같이 인정해 달라고 한다 이겁니다. 그러면 그거 인정해 주는 사람이 미친 녀석입니다. 그런 녀석은 때려잡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야, 이 녀석아! 너 생긴 꼴이 그런데 인정해? 부정하고 때려잡아야 할 텐데, 동정하고 협조해?'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축복가정들은 가정이라는 명사는 존중하고 가정의 내용은 무시하는 패들이 많습니다. (127-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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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하나돼야

 

여러분이 참부모의 심정적인 내용을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또, 혈통 문제, 인격 문제, 말씀의 문제, 생활의 문제, 그리고 국가관, 세계관, 천주관이 참부모와 얼마나 하나되어 있습니까? 이것은 여러분이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참아들딸이 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결정짓는 모체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체만 가지고는 불안하기 때문에 어떻게 여러분을 참부모와 연결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근원이 없으면 안 됩니다. 즉, 그 핵심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28-249)

 

 참부모가 뭐냐 하면, 여러분의 아버지 어머니 대신입니다. 본래의 부모가 참부모입니다. 여러분의 부모와 여러분은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럼 할아버지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는 참부모도 마음대로 못 합니다. 부모는 자기 아들딸을 할아버지가 원하는 길로 데리고 가야 됩니다. 그것이 부모가 가는 길입니다.

참부모가 복귀의 길을 갔으면, 여러분도 복귀의 길을 안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최소한도의 책임분담 5퍼센트를 완수해야 됩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의 아내를 사랑하는 이상, 부모를 사랑하는 이상 하나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여러분의 아들딸을 사랑하는 이상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겁니다. 그것을 기반으로 해서 세계에 확대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이상세계입니다. 본연의 세계입니다. (128-31)

 

선생님은 벌써 1차 아담 뿌리, 2차 아담 뿌리를 다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제1아담과 제2아담, 제3아담을 접붙이기만 하면 모두 끝나는 것입니다. 뿌리가 하나입니다, 뿌리가. 그래서 사랑, 생명, 그 다음엔 혈통입니다. 종횡의 하나님의 사랑이 생명의 교류를 함으로 말미암아 혈통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누구보다도 선생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누구보다도 참부모와 하나돼야 됩니다. 참된 사랑을 중심삼은 혈통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상속권이 있고 동위권이 있고 동참권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이 근접할 수 없는 것입니다. (189-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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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③ 참부모를 사랑해야

 

참부모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느냐? 그것을 한번 생각해 봤습니까? 하나님이 죽었다는 것에 대해 누구라도 항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참부모를 하나님이 사랑하는 이상으로 사랑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런 사람을 만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다면, 그래서 여러분이 이런 사람을 만나서 참부모를 사랑하게 된다면, 하나님도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 사람이 제일 똑똑한 사람이라면, 여러분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영계에 있는 영인들에게 절대로 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참부모를 사랑한다면, 절대로 질 수 없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영인들에게 '나는 참부모를 이토록 사랑하는데, 여러분 영인들은 무엇을 했소?' 하면서 그들을 참소할 수 있다면, 여러분이 제일가는 부자가 될 것입니다.

만일 참부모를 서로 더 사랑하겠다고 식구들간에 싸움이 벌어지게 되면, 하나님이 그 싸움을 보시고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렇게 싸우다가 만일에 하나가 죽게 되면, 하나님이 어떻게 심판하겠습니까? 하나님이 그를 교수대로 끌고 가실 것 같습니까? 의심할 것도 없이 하나님은 그 두 사람을 불러서 그들을 참부모를 사랑하는 모델로 세우시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들이 사랑했던 것처럼 참부모를 사랑하라고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준입니다.

즉, 하나님과 영인, 모든 사람들은 참부모를 주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생활 가운데서 이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하는 말이 사실이라면, 그 문제가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그 기준에서 얼마나 동떨어져 있습니까?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이것을 위해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참부모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은 눈물 없이는 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표정이 밝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비록 우리가 최선을 다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하늘에 대해서 죄송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행동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여러분이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5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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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④ 참부모를 모셔야

 

여러분이 광야노정을 걷고, 요단강을 건넜더라도 가나안 7족과 싸우는 도상에서 쓰러지면, 그것은 승리의 죽음이 못 되는 것입니다. 가나안 7족을 굴복시켜 놓고, 거기에 새로운 나라 이스라엘을 세워 놓아야 하나님 앞에 세움 받을 수 있는 본연의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낙원에 머무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13-298)

 

우리가 알고 있는 참부모는 뭐냐? 인간 조상입니다, 인간 조상. 그러니 참부모를 자기 부모와 같이 모셔야 됩니다. (118-147)

 

부모님을 3년 이상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3년 이상 모시는 데는 가정이 모시고, 그 다음에는 국가가 모시고, 세계가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사실은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세계복귀권까지 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3수를 중심삼고 볼 때 3년 이상을 모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3년 동안은 부모님을 중심삼고 밥도 같이 먹고, 같이 의논하면서 같이 살아야 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여러분의 집이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모시고 사는 가정으로서 평화스럽고 행복스럽고, 말을 하더라도 좋은 말만 하고, 서로가 기뻐하면서 사는 3년 기간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44-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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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⑤ 순종해야

 

본래 하나님의 이름을 갖고 나온 부모 앞에 자식은 절대 복종해야 됩니다. 거기에는 이의가 없습니다. 이건 강제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그럴 수 있게끔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을 사랑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은 부모가 되어 사랑하는 자녀를 자연, 절대 굴복시킬 수 있는 환경을 끌고 나가야 천국기반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101-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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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⑥ 전통을 이어받아야

 

지금까지 인류는 인간이 어떻게 될지를 몰랐습니다. 내가 어떻게 될지를 몰랐습니다. 역사를 몰랐다 이겁니다. 지금 현재가 어디에서 무엇이 되는지를 몰랐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목적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참된 부모, 조상을 못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참부모를 모심으로 말미암아 '아, 나는 역사를 알았다, 하나님과 나와 어떻다는 역사를 알았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또, 현재를 알고 미래를 알았다 이겁니다. 알았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전통을 이어받을 수 있다 이겁니다. 역사를 이기고, 미래를 이길 수 있는 전통을 지금 내가 가질 수 있다 이겁니다.

누구로부터? 왜? 참부모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참부모가 가르쳐 주는 것을, 그분이 하는 것을 내가 따라가고, 그분이 바라는 것을 내가 바라서 이것을 이어받는 것입니다. 그걸 인계받는다는 것입니다. (71-21)

 

지금까지 이 우주에는 부모가 없었습니다. 부모라는 게 자식을 이용해 먹고 망치는 악한 부모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무엇이 깨졌느냐? 완전한 형제가 깨져 나갔습니다. 그 다음엔 완전한 신랑 신부가 깨져 나갔습니다. 그 다음에는 완전한 부모가 깨져 나갔습니다. 그래서 선한 자식을 갖지 못했습니다. 결국은 가정을 잃어버렸다 그 말입니다. 그 가정은 우주사적인 대표입니다. 세계를 대표했고, 하늘나라를 대표했고, 나라를 대표했고, 가정 전체를 대표한 가정이었습니다.

그 중심점을 하나님은 찾으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도 그것을 찾아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인류,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도 이 중심에 연결되어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인간이 바라는 공동목적이 이것 하나요, 과거, 현재, 미래가 결속될 수 있는 길은 여기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누가 해야 하느냐? 아담과 해와가 해야 될 것을, 참부모가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이 가져야 할 것은 사탄이 갖지 못한 것으로서 악한 세계에는 없는 형제 중의 형제, 사탄세계에는 없는 형제를 가져야 됩니다. 여러분은 그래야 됩니다. 그것은 20대(代), 결혼하기 전까지입니다. 그러한 전통을 여러분이 남겨야 됩니다.

여러분 아들딸 앞에 이렇게 살아야 된다는 전통을 남겨야 됩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각국에 가서 힘들게 싸움을 하며 사는 것은 앞으로 여러분이 후손 앞에 전통을 남기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어려운 가운데서 일했단다.' 하고 아이들에게 교육할 수 있고, 유언을 남길 수 있는 전통적 자료를 수습하는 훌륭한, 한 번밖에 없는 기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통이 문제입니다. 이것은 변경할 수 없습니다. 영원한 전통입니다, 영원한 전통.

우리는 세계를 초월한 사람들이니 백인과 흑인이 한 형제가 되어야 됩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타락하지 않은 인류, 아담과 해와의 형제지권(兄弟之圈)으로 찾아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 그러한 전통을 세우는 기본 사상은 무엇이냐? 위하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여러분의 아들딸은 이러한 환경에서 고생하지 않고 자라서 하늘나라로 직행할 수 있는, 사탄세계를 능가하는 하나의 실적권을 가진, 하늘과 직통하는 후손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그러한 형제들이 결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결혼이란 초국가적입니다. 흑인과 하라면 하고, 백인과 하라면 하고, 황인과 하라면 할 수 있는 이러한 권내(圈內)에 들어왔습니다.

이러한 전통이 이제부터 성립되어야 합니다. 지금은 안 되어 있습니다. 이제부터 하나 만들어야 됩니다. 이렇게 되었기 때문에 그 자료를 가지고 여러분의 후손과 세계를 지도해야 합니다. 그 대신 둘이 하나돼야 합니다. 아들딸을 낳아서는 안 됩니다. 선한 아들딸을 낳으려니 부처(夫妻)가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되지 않고서는 선한 아들딸이 안 나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71-19)

 

여러분은 선생님을 평면적으로 보고, 선생님이 어떻게 생기고, 어떤 모양이라는 것을 대강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이 자리에 올 때까지 그 배후에서 어떤 길을 거쳐왔는지는 모릅니다.

이 길을 출발할 적부터 확실한 신념이 없이 그저 따라와서는 뜻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확실한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절대적이고 틀림없는 길로 알고, 틀림없는 승리를 다짐하고 출발해서 이런 승리의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이런 신념을 꺾고 이런 길을 막기 위해서 수많은 개인에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가 반대하고, 세계까지 반대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길이 벌어져 있었습니다.

그러한 전통을 여러분이 이어받아야 되는데 그걸 몰라 가지고 이어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 놀라운 것을 이어받을 때는 새로운 결심을 하고 이어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계 끝까지 하늘 끝까지 달려가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하는 신념을 가지고 강하고 담대한 자리에서, 하나님이 보시게 될 때 놀랍도록 감사하는 자리에서 이어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여러분의 자세를 보고 그것을 상속해 주고 싶은 것이 하늘의 마음이요, 스승의 마음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들, 세상이 어떻게 되는지를 모르는 것들을 데려다가 가르쳐 주는 이 자체가 처량하다는 것입니다. (67-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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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⑦ 참부모를 자랑해야

 

여러분이 자랑하여야 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자랑하고 참부모의 사랑을 자랑해야 합니다. 이것은 자기 것, 나라 것, 세계 무엇보다도 찬양해야 됩니다. 이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과 부모의 사랑이 하나다 이겁니다. 이것은 뭐냐? 직접주관권이라는 사랑의 이념을 중심삼고 가정이라는 터전 위에 하나될 수 있는 출발을 지상에 실현하고 있는 것이 통일교회이요, 부모님이 가는 발등상, 판도입니다. 직접주관권입니다. (13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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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⑧ 참부모에게 진 빚을 갚아야

 

참부모란 관념이 명백해야 됩니다. 여러분은, 참부모한테 빚졌습니까, 안 졌습니까? 그 빚을 갚을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빚진 것을 계산하면 갚을 도리가 없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그저 조그만 사랑의 표시만 하나 있으면 다 갚을 수 있습니다. 그걸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116-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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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장 참부모 중심한 생활

 

 1) 참부모의 날과 참부모

 

여러분은 다들 선생님에게 관심이 있지요? 선생님이 어디 가서 무슨 말을 하게 되면, 전부 전화줄을 달고 다니면서 들어야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이 참부모의 날을 맞아, 이제 부모님의 수고가 얼마나 컸더냐, 부모님의 마음이 얼마나 고통을 받았겠느냐 하는 걸 알아야 됩니다. 이제 부모님에 대해서 알아야 할 때가 왔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전통을 모르는 것입니다. 전통을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131-64)

 

본래 참부모의 날의 이념은 하나님의 창조이념 가운데 중심이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후, 그 만물을 주관할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들에게 만물을 주관하라고 축복하신 목적도 바로 참부모를 세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원래는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일체가 되어 참부모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면 부모의 날이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온 우주가 부모의 이름과 더불어 송영을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참부모의 날은 온 우주가 부모의 이름과 더불어 송영을 드리는 기쁨의 날인 것입니다.

이 날을 맞이하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 시조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참부모의 날을 하늘도 잃어버렸고 땅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본래 계획하셨던 바를 이루시기 위하여, 참부모의 날을 찾으시기 위하여 지금까지 경륜해 나오신 것입니다. 참부모의 날을 맞이하려면 먼저 참부모를 맞이해야 합니다. 그 참부모는 역사를 심판하고, 현재를 주관하고, 미래를 개척하셔야 할 중심존재이십니다. 그래서 인간이 역사적으로 선망해 온 것도 참부모를 맞이하는 것이었습니다. (13-280)

 

우리가 민족을 찾으려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이 민족으로 하여금 승리의 참부모를 모시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사탄세계로부터 참소받지 아니하고, 하늘을 대신하고, 땅을 대신하고, 인류를 대신하여 국가기준 위에서 만천주 앞에 효자 효녀로서 자유천지를 이루어 참부모를 참되게 모시기 위해서입니다.

지금까지는 우리가 슬픈 자리에서 모셨고, 고통의 자리에서 모셨지만, 이제부터는 기쁨의 자리에서, 자유로운 자리에서 모셔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과 함께하실 수 있어야만, 우리가 기뻐하면 하나님이 '오냐, 네 기쁨이 내 기쁨이다!'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온 인류가 '당신들의 감사는 우리의 감사입니다!'라고 하는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오늘은 참부모의 날입니다. 이 참부모의 날을 여러분이 진정으로 여러분 자신의 참부모의 날로 세워야 되고, 여러분 가정의 참부모의 날로 세워야 되고, 사회의 참부모의 날로 세워야 되고, 국가의 참부모의 날로 세워야만 세계의 참부모의 날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세계의 참부모의 날로 세워 가지고 천주의 참부모의 날로 세워야 원래 하나님이 참부모를 세우시려던 창조이상이 완결되는 것이요,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참부모의 날을 세우지 못했던 한을 풀 수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 이 온 천상 천하에 참부모의 날을 세워야만 복귀의 한이 완전히 해원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부모의 날을 세우고 참자녀의 날을 세웠지만, 개인적인 참부모의 날로부터 가정적인 참부모의 날, 민족 국가 세계 천주적인 참부모의 날로 세워져 있지 못합니다. 참자녀의 날도 그렇습니다. 참만물의 날 역시 그러한데 참부모의 날과 참자녀의 날과 참만물의 날이 세계성을 지니고, 승리했다는 기준 앞에 주관받을 수 있는 권내에 들어가야 비로소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본래의 창조목적이 완결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돼야 비로소 참부모의 날이 인간의 참부모의 날이 되는 동시에 하늘의 참부모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또, 참자녀의 날과 참만물의 날도 인간의 참자녀의 날과 참만물의 날이 되는 동시에 하늘의 참자녀의 날과 참만물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이 될 때, 비로소 하늘로부터 다 이루었다 할 수 있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참부모의 날, 참자녀의 날, 참만물의 날을 세우고, 가정적인 참부모의 날, 참자녀의 날, 참만물의 날을 세우고, 민족 국가적인 참부모의 날, 참자녀의 날, 참만물의 날을 세워야 합니다.

한 국가의 기준에서 참부모의 날, 참자녀의 날, 참만물의 날을 설정해야만 이 날들이 그 국가의 중심 날이 되고 세계적인 날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13-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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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참부모란 말을 완전히 알아야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귀하게 쓰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 듣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게 참부모라는 말입니다. 우리 참부모님!' 합니다. 예수님 앞에 참부모가 있었습니까? 예수님이 못 가진 것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참부모가 있었습니까? 자식을 보호해 주지 않는 것이 부모의 책임입니까? 부모라면 자식을 보호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사탄으로부터 울타리가 되어 '너는 내 품 안에서 행복할지어다.'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랬습니까? 30평생을 불쌍한 의붓자식으로 자랐습니다.

그러니 성경에 참부모님이라는 말이 안 나오는 것입니다. 참부모, 참형제라는 말이 안 나옵니다. 이 말은 우리 통일교회 용어입니다. 그건 선생님이 지어낸 말이 아닙니다. 본래 천리원칙에 있던 것을 찾아낸 말입니다.

우리는 참부모라는 말을 하고 참자녀라는 말을 합니다. 참자녀는 어떻게 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들을 대해서 자기의 생명을 바칠 수 있고,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고, 나는 지옥에 가더라도 감사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다운 자녀의 인연을 통해 아버지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76-73)

 

우리는 참부모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참부모를 모시고 나가자고, 하나님을 모시고 나가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참된 형제가 되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그것은 예수를 중심삼고 한 말입니다. 예수의 부모가 예수를 모시지 못했던 것을 탕감복귀해서 모실 수 있는 부모, 그 이상의 부모의 자리에 설 수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67-326)

 

내가 하나님에 대해서 부모라고 하는 것하고 여러분이 선생님에 대해서 부모라고 하는 것하고 어느 것이 더 쉽겠습니까? 선생님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를 것입니다. 얼마나 담이 많고, 얼마나 복잡했는지 모를 겁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허덕이다 전부 다 구렁텅이에 빠졌습니다. 여러분은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선생님을 이론적으로 볼 때 '아, 그분 참부모구나!' 하는 말을 쉽게 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참부모란 걸 선생님이 알 때의 기쁨하고, 여러분이 알 때의 기쁨하고 어느 게 더 크겠습니까? 선생님이 고생을 죽도록 해서 아버지란 말을 할 수 있지만, 여러분은 고생도 안 했는데 다 가르쳐 준 겁니다. 그러니 '거 참부모 알았소, 그저 그래!' 하는 겁니다. 누가 더 기뻐하겠습니까? 선생님이 하나님을 부자관계에서 만났을 때에 기뻐하는 것하고, 여러분이 선생님을 만나서 기뻐하는 것하고 어떤 것이 더 커야 되겠습니까?

선생님은 고생해서야 만났지만 여러분은 고생을 안 하고 만났으니 더 기뻐해야 됩니다. 선생님은 억천만 달러를 주고 샀다 이겁니다. 여러분은 한 푼도 안 줬으니 기쁘지요? 여러분이 뭘 지불했습니까? 와서 원리 말씀을 들어 보면 다 알고, '참부모' 하면 '그렇게 됐구만.' 하고 다 아는 것입니다. (116-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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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참부모의 언어를 배우라

 

무엇보다도 언어가 제일 문제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와 있으면 한국말 모르는 사람들은 그거 참 기가 막힙니다. 불쌍해 보입니다. 그러니까 언어가 하나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선생님도 미국에 처음와서 책을 통해 공부했지만, 예스 노밖에 몰랐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언어통일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 말씀을 통역을 통해 듣고 싶습니까, 선생님에게 직접 듣고 싶습니까? 한국어로 듣고 싶을 것입니다. 어째서? 한국어가 원어(原語)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원리공부 하는 데에 있어서 원어를 모르면 그 말 뜻을 모릅니다.

그리고 앞으로 여러분이 영계에 가서 '나는 선생님 말씀을 그냥 듣고 하고 살았다!' 하는 것이 자랑이겠습니까, '통역을 통해서 나는 말하고 들었다!' 하는 것이 자랑이겠습니까? 어떤 겁니까? 더구나 사랑의 이상세계를 표현하는 말이라는 겁니다. 사랑이란 말을 통역을 놓고 속삭이면 그게 통합니까?

우리가 전에 외우던 맹세문을 보면 다섯째 번에 '하나의 문화를 자랑한다'고 되어 있는데, 하나의 문화가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게 문제입니다. 심정세계에서는 하나 안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진짜 하나의 심정세계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이걸 몰라서는 안 됩니다.

'내가 너희들을 이렇게 사랑한다' 해서 이렇게 가서 터치할 때는 사랑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하는 그런 생각보다 벌써 다리가 나가는 것입니다. 다리가 먼저지 사랑한다는 생각이 먼저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것이 얼마나 미련합니까. 음식으로 말하면 먹다 남은 찌꺼기를 먹고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이상가정의 전통과 정신이 없어 가지고는 이상세계가 현현할 수 없습니다. (118-238)

 

영계에 가서도 전부 다 참부모, 참할아버지가 쓰는 말을 씁니다. '아이고, 나 그거 모른다!' 한다고 통합니까? 동양 사람들이 영어를 배우기가 얼마나 힘드냐 하는 것을 그때 아는 겁니다. 선생님도 나이가 예순이 넘어서 영어를 배웠는데 쉽겠습니까? 여러분은 핑계 댈 수 없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젊은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거 안 하면 안 됩니다. 길거리를 다니며 중얼중얼하면서라도 배워야 됩니다. 한국말을 화장실에 갔다왔다하면서 반복해서 배우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별 수 없습니다.

선생님이 한국말을 배우라는 것은, 선생님이 참부모가 되었으니 할 수없다 이겁니다. 한국 사람이든 어느 나라 사람이든, 어떻다 해도 할 수없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 통일이 되면 '참부모의 영광이야! 세계 언어를 순식간에 통일해 버렸다!' 이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표창을 한다면 무슨 표창을 해야 되겠습니까? 한국말을 세계 어떤 나라의 말보다도 제일 존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한국사람이 머리가 좋은 것은 이 언어 때문입니다. 한국말로는 발음을 못 하는 게 없습니다. 일본말은 발밑에도 못 갑니다. 맥도날드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고 '마구도나루도' 하는 것입니다. 그거 알아듣겠습니까?

그러니 새로운 문화를 통해야 됩니다. 선생님이 한국 사람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원칙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원리원칙에 통하지 않는데 한국말을 배우라면 아예 쫓겨나는 것입니다. 원리원칙을 얘기하니 여러분이 가만히 있으면서 '이론에 맞으니 할 수 있나?'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학자들에게는 원어가 한국말이 될 것입니다. 한국말이 원어가 되는 것입니다. (130-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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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민요(民謠) 속의 계시

 

여러분이 하나님을 모시고 '천년만년 살고지고' 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 노래에도 있는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저기 저기 저 달 속에 계수나무 박혔으니, 옥도끼로 찍어내어 금도끼로 다듬어서, 초가삼간 집을 지어 양친 부모 모셔다가…' 이건 좋은 말입니다.

그런데 양친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그 부모가 자기 욕심을 위한 부모면 다 흘러갑니다. 천지의 대도를 밝혀서 전통을 심어 놓을 수 있는 양친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오늘날 우리 민요에 있는 그런 노랫가락과 같은 길을 세계 앞에 만들어 놓고 죽어 보자 하는 것이 레버런 문의 생애입니다. (127-282)

 

종교 지도자들이 엎드려서 기도하고 복받겠다고 하지만 선생님은 복받겠다고 기도해 본 적이 없습니다. 구약시대는 만물을 세워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찾기 위한 시대요, 신약시대는 아들딸을 희생시켜서 부모를 찾기 위한 시대요, 성약시대는 부모님의 가정을 희생시켜서 하나님을 해방하기 위한 시대입니다. 본연의 부모를 이 땅 위에 모셔서 그분과 천년만년 살겠다는 것입니다.

한국 노래 가운데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계수나무 박혔으니 뭐 어떻고 어떻고, 양친 부모 모셔다가 천년만년 살고 지고. 그것이 다 한민족의 계시적인 얘기입니다. 하늘 부모를 모셔다가 천년만년 살고 지고. 나는 그 노래를 생각할 적마다 언제나 사무친 마음을 잊을 수 없습니다. (137-185)

 

여러분은 한국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절대로 서러워하지 말라는 겁니다. 과거에는 한국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서러워했을 것입니다. '어쩌다가 이 못 사는 한국 백성, 5천 년 역사를 지나 왔다고 자랑하지만, 저 초가삼간에 태어났나' 하고 말입니다.

또, 노래를 봐도 그렇습니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저기 저기 저 달 속에 뭐 어떻고 어떻고, 초가삼간 집을 짓고 뭐 어떻고 어떻고, 양친 부모 모셔다가 어떻고 어떻고…. 초가삼간 집을 짓고 천년만년 살겠다구요? 선생님은 그런 노래를 듣게 될 때,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겨우 초가삼간이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무슨 민족의 소원이 있어요?

그렇지만 '초가삼간 집을 짓고 양친 부모 모셔다가 천년만년 살고지고' 할 때, 그 양친이라는 것은 뭐냐 하면, 인간의 이상적인 부모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로 말하면 재림사상과 통하는 것입니다. 만민, 만국을 통해서 보면, 구세주사상과 통할 수 있는 이런 내용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85-81)

 

우리나라에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저기 저기 저 달 속에 계수나무 박혔으니, 옥도끼로 찍어 내고 금도끼로 다듬어서, 초가삼간 집을 짓고 천년만년 뭘 모시고? 양친 부모 모시고. 그건 민족의 숙원을 찬양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부모의 사상이 있는 것입니다. 천년만년 살고 지고 할 수 있는 사랑이 참부모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양친 부모를 모시고서 살자 이겁니다. (126-192)

 

참부모가 하나님의 챔피언 권위를 가진 남성을 대표하고 여성을 대표한 그런 표상적인 인물이라면 참부모의 아들딸의 권위도 그 그림자만큼은 되어야 됩니다. 사탄세계에서 주워 먹던 습관성을 그냥 가지고, 욕심 보따리를 그대로 가지고 통일교회에 들어오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기성교회와 다릅니다. 사랑의 제단을 모으고, 사랑의 화살을 겨누어 가면서 생사지권을 전부 판가름하는 곳이 이곳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하나님이 직접 공중에서 심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앉아서 우리의 하루하루의 생활을 심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심으로 말미암아 문총재와 더불어 하나님과 동고동락하는 생활을 거쳤기 때문에 파란만장한 곡절과 환난시대에 망하지 않고 죽지 않았다 이겁니다. 하나님이 죽을 수 있습니까? 살아 남은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세계적 패권을 다 처리하고 나라에 돌아와서 나라가 둘로 갈라져 있으니 이것을 통일국으로 만들어야 되겠다 이겁니다. 통일국을 만듦과 동시에 여러분의 나라를 세워야 되고, 백성을 세워야 되고, 종족을 세워야 되고, 가정을 세워야 됩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부모님이 모든 탕감의 사명을 했기 때문에 이제는 간단합니다. 진짜 하나님을 알고, 진짜 참부모님을 알고, 진짜 참아내와 참남편을 알고, 진짜 참아들딸을 알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

그 아들딸을 알려니, 아내와 남편을 알려니 나가 싸워 이겨야 됩니다. 그들을 사랑해야 됩니다. 사랑해서 사탄편 형제, 열두 제자, 120문도를 해방함으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딸을 천년만년 살고 지고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저기 저기 저 달 속에 계수나무 박혔으니, 옥도끼로 찍어 내어 금도끼로 다듬어서 초가삼간 집을 짓고, 양친 부모 모셔다가 천년만년 살고 지고.' 그게 다 한국 백성이 선민권을 이어받을 수 있는, 선민이 부를 수 있는 노래입니다. 그것은 영원을 걸고 찬양하는 기도입니다.

양친 부모 모셔다가 천년만년 살겠다는 것입니다. 어디에서? 초가삼간에서. 초가삼간이 어디인 줄 알아요? 밑창에서부터 올라가야 됩니다. 초가삼간에서 부모를 못 모셔 가지고는 왕 부모를 못 찾습니다. 초가삼간 가정에서부터 모셔 가지고 종족을 편성하고, 종족에서 민족을 편성하고, 민족을 편성하고서야 왕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나라를 찾아야 됩니다.

이미 세계와 나라에서는 선생님이 승리의 팻말을 갖고 수직의 자리에 있습니다. 선생님이 옆으로 갈 수 없습니다, 수직의 자리에 서 있기 때문에. 선생님을 중삼삼고는 개인적 수직, 가정적 수직, 종족적 수직, 민족적 수직, 국가적 수직, 세계적 수직, 천주적 수직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일체적으로 딱 되어 있습니다. (212-53)

 

인간 사랑과 하나님 사랑의 합덕 기지가 어디냐? 하나님은 사랑 때문에 인간을 창조했는데, 하나님이 왜 사랑 때문에 인간을 창조했느냐? 하나님 혼자서는 고독합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천년만년 살고 싶어서 인간을 창조했다 이겁니다.

초가삼간이더라도 양친부모 모셔 놓고 천년만년 살고 지고, 이런 겁니다. 이상적인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초가삼간보다 더 작은 데 들어가서도 천하를 품고 숨을 쉬고 사는 것이 놀라운 것입니다. 그 집이 작은 집입니까? 하나님이 들어가 계시면 하늘나라의 왕궁이요, 우주의 왕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204-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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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참부모 이름으로 기도

 

하나님은 우리 타락한 인간에게 스승 중의 제일 큰 스승이라는 것입니다. 선생님 중의 대왕 선생님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모르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부모로 말하자면 부모 중에서도 첫째 부모입니다. 즉, 참된 부모입니다. 왕으로서는 만왕의 왕입니다.

하나님은 선생님 중에서 첫째 가는 선생님이요, 부모 중에서 첫째 부모입니다. 첫째 부모라면 그 부모가 가짜 부모이겠습니까, 참부모이겠습니까? 참부모라는 것입니다. 그런 참부모가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참부모가 못 되었습니다.

통일교회에서는 기도를 마칠 때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맨 처음 참부모는 하나님입니다. 기도를 하면서 빌 때에 누구를 통해서 빕니까? 무엇을 할 때도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물에 빠져 있을 때 누가 구해 주기를 원합니까? 구주가 와서 구해 준다고 할 때, 이웃 동네의 할아버지가 구주가 되어 구해 주기를 원합니까, 자기 동생이 구주가 되어 구해 주기를 원합니까? 자기를 구해 주는 구주가 형님이면 좋겠어요, 동생이면 좋겠어요?

누가 와서 구해 주기를 바랍니까? 자기 부모가 와서 구해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구주 중에서도 일등 구주인 부모가 와서 구해 주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의 고통을 자기 뼛골에 사무치는 고통으로 아는 분이기 때문에 자식은 아버지 어머니되는 구주를 찾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하는데, 그 참부모가 뭐냐? 그 말을 선생님과 어머니만을 두고 생각지 마십시오. 보다 높은 차원에서 세계를 품고 민족 감정이나 국가 감정을 넘어서 만민을 진실하게 하나같이 사랑할 수 있는 어머니 아버지라는 경지의 참부모 기준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도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33-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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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참부모 이름의 위력

 

성경에서 보면 인간은 타락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해방해야 됩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모든 내 소유의 아들딸, 자기 부부, 나라와 세계까지 한꺼번에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그걸 참부모가 와서 물건과 자녀와 가정과 나라와 세계를 수습해서 하나님에게 돌려야 됩니다. 소유주가 하나님이었던 것이 사랑의 도리에서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거짓 사랑이 돼 버렸습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소유될 수 있다는 원칙으로 지었지만, 패망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파탄되었던 것을 참부모의 사랑으로 수습해서 물질과 자녀와 부부와 나라와 세계를 다시 하나님 앞에 봉헌해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하나님의 우주는 참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소유로 돌이켜졌느니라!' 이렇게 승리를 찬양하면서 그 바쳐진 물건을 참부모 앞에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유가 돼 가지고 참부모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참부모 소유를 중심삼고 참아들딸의 소유가 되고, 이것을 동서사방에 다시 분배받는 세계가 되기 전에는 지상에 천국은 현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는 통반 격파는 뭐냐? 남북을 통일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참부모의 이름으로 만국의 승리의 판도를 중심삼고 대한민국을 온 인류의 조국으로 하나님 앞에 바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위해서 전부 투입해 왔습니다. 그러니 거지패라는 겁니다. 왜 거지패입니까? 이미 몇십 년 전에 다 바쳤습니다.

이제 남북을 하나로 만들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참부모의 이름으로 역사적인 모든 소유권을 사탄으로부터 빼앗아 와야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본연적 부모의 자리로 소유권을 반환해서 거기서부터 역사적인 모든 나라 가운데서 최초의 조상국으로서 등장하게 하기 위한 일을 하자는 것이 문총재의 종착적 사랑의 목적입니다. (21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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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참부모 이름으로 영영세세 영광을 누린다

 

바쳤다 하게 되면 하나님의 이름과 더불어, 다시 하나님의 이름으로부터 참부모에게 와야 됩니다. 참부모만 가지고 안 됩니다. 창조주 되는 하나님의 이름으로부터 참부모에게 돌아와야 됩니다. 아담과 해와의 소유가 돼야 합니다. 다시 돌려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부모 가정을 중심하고 상속이 벌어져야 된다 이겁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 첫째로 재분배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영원한 하늘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거기는 사탄의 분립이 없습니다.

둘째는 창조이상 생활이 가능한 것입니다. 사탄의 참소가 없습니다. 거기에 투쟁이라든가 결렬이 있을 수 없다 이겁니다. 참사랑을 중심하고 완전히 통일된 체제에서 창조이상 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니까 완전한 지상천국이 벌어지고, 여기서 살다가 그냥 천상천국으로 가는 것입니다. 종교가 필요 없습니다.

셋째는 뭐냐 하면, 참사랑을 위한 천상천국 지상천국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결론은 전부 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참부모의 이름으로, 우리의 이름으로 영영세세 영광을 누릴지어다! 하나님의 이름, 참부모의 이름, 우리의 이름으로 영영세세 영광을 누릴지어다! 영원 영원무궁토록 영광을 누릴지어다! 거기에는 종교도 없습니다. 끝입니다. (21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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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참부모의 심정 전수와 상속

 

  ① 심정의 전수

 

여러분이 참부모의 심정과 하나님의 사랑과 그 심정을 어떻게 체휼하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그 경지에 어떻게 들어가느냐 이겁니다. 그러려면 타락하지 않은 아담과 해와가 되어야 됩니다. 사탄이 참소할 수 없어야 됩니다. 그럼 사탄세계에서 어떻게 해방받느냐? 사탄하고 싸워서 이겨야 된다 이겁니다. 그러려면 얼마나 수고하고 얼마나 고생스러워야 되겠느냐 이겁니다.

야곱도 열 번 속았고, 모세도 열 번 속았고, 예수 그리스도도 그렇게 속았습니다. 선생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을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심정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심정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사탄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사탄 앞에 승리 못 하는 한, 부모님의 심정을 알 수 없고 하나님의 심정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일선에 가야 됩니다. 전부가 일선에 가야 됩니다.

이렇게 하지 않고 편한 생각을 하는 한, 하나님의 사랑과 부모의 사랑, 부모의 심정권, 하나님의 심정권을 찾아갈 수 없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일선에 내보내야 합니다. 전부 다 핍박받고, 멸시받고, 맞고, 별의별 일을 당해야 거기에서 심정이 전수되는 것입니다. 전수식이 거기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선생님같이 언제나 선두에 서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일선에서 당하는 핍박이 얼마나 심하더냐! 그렇지만 그건 당연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걸 소화하면 하나님이 보호할 것입니다. 같은 자리에 섬으로 말미암아 같은 심정을 체휼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심정을 어떻게 체휼하느냐 하는 게 문제입니다. 참부모가 진짜 참부모이고, 하나님이 내 아버지라는 것을 어떻게 내가 알 수 있느냐 이겁니다. 어떻게 이 뼈살이 아느냐? 내가 생각하지 않아도 이 세포, 고깃덩이가 아느냐 이겁니다. 사탄의 참소를 받을 수 있는 자리를 극복해야 됩니다. 그게 제일 큰 문제입니다. 어떻게 부모님의 사랑을 체휼하느냐가 문제인데 그것은 간단합니다. 세계적 무대에서 사탄에게 승리한 본연의 아담과 해와와 같은 자리에 설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얼마나 피땀을 많이 흘리고 얼마나 사탄 앞에 참소를 받겠습니까? 탕감노정을 거쳐서 승리하고 나서야 그것이 벌어질 수 있으니 얼마나 수고스럽겠습니까? 그 자리가 싫다고 아무리 기도하고 아무리 무엇을 해도 못 갑니다. 직접 체휼해야 됩니다. 그 자리에 가면 곧장 체험한다 이겁니다. 직접 지도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심정을 알기 위해서는 일체라는 것을 어떻게 느끼느냐 하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사탄에게 승리하기 전에는 절대 될 수 없습니다. 안 오는 것입니다.

하나의 송전소를 만들어 놓았다 이겁니다. 개인적, 가정적, 종족적, 민족적, 국가적, 세계적, 천주적?하나님까지 이러한 탑을 만들어 놓았다 이겁니다. 그러면 이제 심정의 전선을 걸어야 한다 이겁니다. 이것은 누가 걸어야 되느냐? 선생님이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해 주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해야 됩니다. (125-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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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아들딸은 부모 것을 상속 받는다

 

하나님께서 인간세계 앞에 줄 수 있는 선물이 있다면, 그 최고의 선물이 무엇이겠느냐? 여러분이 인류의 조상이 되고, 참어머니 참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 이상 없습니다. 장관이나 대통령도 다 못 따라갑니다. 그것이 하나님으로서 인간에게 주실 수 있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참부모가 되면 참자녀가 나오고, 참가정이 나오고, 참종족이 나오고, 참나라, 참세계가 여기서 자동적으로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일 중요한 이름이 뭐냐? 참부모라는 이름이, 참부모라는 용어가 제일 중요합니다. (125-117)

 

타락이 뭐냐? 자기들 멋대로 한 것이 타락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참부모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을 깨뜨려야 됩니다. 그래서 남자들은 아버님의 분신이 되어야 하고, 여자들은 어머님의 분신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눈 속으로 들어가나, 어디로 들어가나 여러분이 반겨 줘야지, '아이고, 못 들어와요' 그럴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담을 남기고 싶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여러분을 통해서 오는 것입니다. 그걸 다 연구해야 됩니다.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그 전통을 이어받으면 참부모면 참부모가 여러분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참부모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사자로 와서 상속시켜 주는 것입니다. (118-272)

 

지금까지 참된 부모가 나오지 않았으므로 참된 자녀가 나올 수 없었습니다. 아직까지 땅 위에 참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참된 부모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참부모를 인정하고 그 참부모를 발견해서 모시자는 것입니다. 참부모의 아들딸이 되자는 것입니다.

그 아들딸이 되면 무엇을 하느냐? 참부모가 갖고 있는 것을 상속받는 것입니다. 참부모가 갖고 있는 상속권은 하늘땅 하나님까지입니다. 하나님까지도 상속받자는 것입니다. 하늘땅이 주인이 없다면, 그 하늘땅은 아무 가치도 없습니다. 그 하늘땅의 가치를 백퍼센트 인정할 수 있고, 그 가치를 영원히 주장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또, 그것을 공인해 줄 수 있는 분을 만나야 합니다. 그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부모의 상속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참부모의 상속권이 무엇이냐? 하늘땅 뿐만 아니라 하나님까지 상속되는 것입니다. (24-323)

 

우리가 가는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하늘 앞에 감사함으로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개인적으로 감사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기 종족을 대표해서 김씨면 김씨, 박씨면 박씨를 대표해서, 더 나아가서는 삼천만 민족을 대표하고 세계 인류를 대표해서 축복을 받았다는, 그 가치를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 참부모가 지상에서 해야 할 책임을 상속받았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축복가정들은 왜 그것을 상속받아야 되느냐? 축복가정들이 민족복귀의 과정을 거쳐 나가고 있다면 참부모는 세계적인 복귀의 과정을 거쳐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즉, 한 단계 앞서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민족복귀의 승리의 기준이 세워지지 않으면 참부모는 세계적인 노정을 갈 수 없으므로, 참부모님이 세계적인 노정을 가시게 하기 위해 민족복귀의 책임을 상속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죽기까지, 이 민족의 한이 제거될 때까지 민족복귀의 책임을 지고 가야 됩니다. (13-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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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유의할 내용

 

우리는 심정권에 들어가지 않고는 복귀가 안 됩니다. 그러므로 복귀의 책임자는 부모의 이름을 가지고 가야 됩니다. 예수님도 참부모를 통하지 않고는 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참부모를 중심축으로 해서, 참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딱 수평선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는 불평이 있을 수 없습니다. 불평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불평하면 찌그러지는 것입니다. (136-70)

 

여러분은 참부모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고 있습니다. 참부모를 여러분의 마을에 있는 유명한 돈 많은 부모쯤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잘못입니다.

세계를 하나로 하는 데는 참부모를 맞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세계를 하나로 하는 길을 인간으로서는 발견할 수 없습니다.

참부모라고 하는 분은 역사의 희망의 결실체입니다. 소망의 결실체입니다. 모든 것을 탕감한 승리의 결실체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참부모는 그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습니다. (55-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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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장 3대 주체사상과 참부모 선포

 

 1) 3대 주체사상과 부모주의

 

  ① 3대 주체사상은 우리의 소원

 

인간의 소원이 뭐냐? 타락한 인간의 소원이 뭐냐? 아들딸을 낳되 그 아들딸이 사탄세계로부터 핍박받지 않고 하늘나라로 직행하도록 키울 수 있는 참된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못 되었습니다. 참아들딸을 낳아서 하늘나라로 직행시킬 수 있는 참부모의 대신자가 되는 것이 소원입니다. 여러분도 전부 좋은 아들딸을 낳고 싶을 것입니다. 세계에서 제일가는 자녀를 낳고 싶을 것입니다. 그걸 못 했다는 겁니다. 그걸 어떻게 할 것이냐가 문제입니다.

그 다음은 뭐냐? 천사장이 하나님의 아들딸인 아담과 해와를 기르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라도 우리 자녀들을 하나님의 아들딸로 길러서 하나님에게 필요한 사람으로 교육하느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다 선생이 되고 싶을 것입니다. 본이 되고 싶을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열심히 일해서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대통령의 대신자가 되고 싶고, 그 나라의 회사라든가 모든 행정부처의 주인이 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출세하자는 것입니다. 그게 뭐냐? 참된 주인이 되자 이겁니다.

이것이 우리의 3대 소원입니다. 하나는 참된 부모, 그 다음에는 참된 스승, 참된 주인입니다. 출세해서 지역의 지도자가 되고 싶고, 대통령이 되고 싶지요? 그렇게 되기 전에 집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의 전통을 상속해서 선조를 대신하고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주인의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모든 가정과 나라가 존경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들어갑니다. 참된 부모, 참된 스승, 참된 주인입니다.

여러분이 모두 참된 부모가 되어야 되고, 참된 스승이 되어야 되고, 참된 주인이 되어야 됩니다. 이것이 3대 주체사상입니다. 이 3대 주체사상의 뿌리가 뭐냐? 참사랑입니다. 이 참사랑은 뭐냐 하면 백 퍼센트 자기의 이상을 투입하고, 또 투입하고, 또 투입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상을 가진 부모요, 스승이요,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뿌리가 하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부모' 할 때는 반드시 그 오른쪽에 스승이 오고 왼쪽에는 주인이 와야 됩니다. 언제나 따라다니는 겁니다. 누구든지 아들딸을 낳는다고 참부모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들딸을 낳아 가지고 길러야 됩니다. 아들딸이 엄마 아빠를 타고 다녀야 됩니다. 가르쳐 주어야 됩니다. (2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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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3대 주체사상은 참부모사상

 

3대 주체사상의 중심사상은 참부모사상입니다. 여기에 왜 참부모가 중심이 되느냐? 수직을 통한 종적 기준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참사랑의 수직은 하나이기 때문에 참부모와 종적인 하나님의 결착점을 가진 가정을 중심삼은 대리 기반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사랑을 본뜬 스승, 부모의 사랑을 본뜬 주권자는 하늘나라의 환경적 여건을 지향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사탄이 침범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악마의 사랑권의 내용을 가지고 침범 못 하기 때문에 해방권이 벌어짐으로 말미암아 지상에 천국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213-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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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③ 3대 주체사상의 골자

 

거짓 부모가 사랑의 천리를 배반하였기 때문에 망조가 들어 버렸습니다. 이것을 참부모로 말미암아 돌아섬으로 해서 본연의 고향에 돌아갈 수 있게 됐습니다. 이제 선생님을 따라 이동해서 전진적인 노정에 돌아가기 위한 총결산시대에 왔습니다. 모든 것이 끝장입니다. 기독교도 끝이요, 불교, 유교, 전부 다 끝입니다. 정치도 끝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수습하여 종교권을 중심삼고는 세계평화종교연합을 결성하고, 정치권을 중심삼고는 세계평화연합을 결성했습니다. 마음이 갈라진 것을 하나 만들어 세계적으로 열매 맺힌 것을 거둔 것입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거두었느냐? 참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거두었습니다.

참부모와 참스승과 참주인이 3대 주체사상의 골자입니다. 이 3대 주체사상을 지니고 세계의 잘났다는 사람들까지도 선생님 앞에 무릎을 꿇고 '지도해 주십시오!' 하게 돼 있습니다. 자기가 주인이라고 하던 세계 정치가들, 이 가짜 주인들이 선생님과 전부 인연돼 있습니다. 그 3대 주체사상은 선생님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사는 데는 어디에서 사느냐? 스승의 자리에만 서는 것이 아닙니다. 주인의 자리에만 서는 것이 아닙니다. 대학교의 총장도 저녁이 되면 부모로서 집으로 돌아가고, 대통령도 청와대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만조백관(滿朝百官)을 거느리더라도 잘 때는 집에 들어가 자야 됩니다. 아버지, 부모가 되는 겁니다.

그런 걸 볼 때 부모가 중심입니다. 부모적 학교요, 부모적 주인의 자리입니다. 다 나갔다가도 부모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돌아가지 않고 살 수 있는 곳이란 부모를 모신 곳입니다. 그것이 모두 참사랑을 중심삼고 그렇게 돼 있는 것입니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도 거기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 참된 가르침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스승 중의 스승입니다.

주권자 중에 사랑을 중심삼고 다스리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몸 마음이 선생님과 방향을 맞추어서 천년만년 살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진짜 통일교회를 사랑하고, 또 통일교회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고 인간의 근본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선생님을 떠날 수 없는 것입니다. 왜? 부모의 심정권, 스승의 심정권, 주인의 심정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을 통하면 부모의 자리에도 갈 수 있고, 주인의 자리에도 갈 수 있고, 스승의 자리에도 갈 수 있습니다. (21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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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④ 부모주의

 

예수님은 남자입니까, 여자입니까? 남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혈통을 이어받은 남성이 그를 대할 수 있는 하나의 여성을 만나서 비로소 애기를 낳았다면, 그야말로 하나님을 중심삼은 새로운 직계 자녀가 이 땅 위에 태어났을 것입니다.

그랬으면 오늘날 기독교라든가 로마 교황청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직계 아들딸이 나옴으로 말미암아 이 땅 위에 비로소 하나의 왕권이 시작돼서 하나의 세계가 되었을 것이다 이겁니다.

그 왕권이라는 것이 전세계를 대한 왕권이 아닙니다. 한 가정에서부터의 왕권입니다. 가정에서부터 시작하여 가정의 왕, 종족의 왕, 국가의 왕, 세계의 왕, 천주의 왕,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랬다면 오늘날 기독교 목사들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장로교니 감리교니 하는 교파가 필요 없습니다. 로마 교황청이 필요없습니다. 민주주의가 필요 없습니다. 민주주의는 형제주의입니다, 형제주의. 그러니 싸우는 것입니다. 형제끼리 서로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니 형제주의가 부모주의로 돌아가고, 부모주의는 하나님주의로 돌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모주의는 뭐냐? 지상에 있어서 아담과 해와가 완성해야 하는 참부모주의입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주의는 뭐냐? 참부모가 횡적인 부모이니 종적인 부모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적인 부모주의가 하나님주의입니다. 그러니까 두익사상이라고 하는 말은 참부모주의요, 종적인 하나님주의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횡적 참부모주의와 종적 하나님주의, 종횡이 하나돼서 하늘 생명 땅 생명, 하늘 사랑 땅 사랑, 하늘 혈통 땅 혈통이 연결되어 인간이 태어나기 때문에 인간은 이중 존재가 돼 있다는 것입니다. 내적 사람과 외적 사람으로 돼 있습니다. 내적 사람은 종적인 나요, 몸적 사람은 횡적인 나다 이겁니다.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224-277)

 

민주주의는 어떠한 주의냐? 이것은 형제주의입니다. 형제가 많으니까 그 많은 형제 가운데 누가 부모의 사랑을 더 많이 받느냐 하는 것이 언제나 가정에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있으면 저 아들은 엄마를 닮았다, 저 아들은 아빠를 닮았다 해서 자기 닮은 아들딸을 중심삼고 어머니 패 아버지 패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이런 형태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차대전 후에 전승국이 패전국을 독립시키는 현상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세계가 형제주의권 내로 들어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편 주의가 나타나기 위한 제일 가까운 거리에 가면 한 분 하나님 앞에 두 형제가 싸우는 겁니다.

역사의 종말시대에 통일적 기반인 미국의 기독교문화권을 중심삼고 미국이 주체가 되어서 그 가외의 세상을 전부 심판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패전국을 독립시켰다는 사실은 하나님 뜻 가운데서 버려졌던 아들딸, 탕자를 수습할 수 있는 하늘의 섭리시대에 들어왔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라는 것은 형제주의입니다. 이 형제주의가 끝난 다음에는 부모주의가 오고 부모주의가 와야만 통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섭리사가 그렇습니다. (2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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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참부모 선포

 

  ① 참부모 선포 배경

 

참부모를 왜 선포할 수 있느냐? 민주세계와 공산세계는 가인 아벨 형제입니다. 민주세계와 공산세계가 두 아들과 마찬가지인데 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두 아들이 싸우던 것을 화해시켜서 환영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비로소 부모의 특권을 가지고 한국 땅에 와서 참부모 선포를 거국적으로 한 것입니다.

이 소식은 전세계에 소문이 납니다. 레버런 문이 움직이는 것은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에서는 일일보고 하게 돼 있습니다. 소련도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러니 나에 대해 얼마나 잘 알겠습니까? 이렇게 해서 참부모가 선포됐다는 것은 세계적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갖추어진 전부가 한국에서 접붙으려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문제는 뭐냐? 내 나라 통일을 빨리 해야 됩니다. 통일된 기반 위에 접붙으려고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딱 그렇게 돼 있습니다. (204-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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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참부모 선포의 기준

 

엄격히 말하면, 선생님의 고향이 여러분의 고향이 아닙니다. 가지와 순과 잎은 다 같지만, 가지가 있는 위치가 자기 고향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런 종족복귀 결정을 못 하면 여러분의 고향이 없는 것입니다.

고향이 없는 사람은 태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부모복귀를 하는 것입니다, 부모복귀. 3대를 중심삼고 종족적 메시아권을 완성해야 됩니다.

책임분담 완성권, 직접주관권과 간접주관권이 일체화할 수 있는 기반을 누군가가 마련해서 하나님이 사랑을 중심삼고 너와 나와 이 피조세계가 사랑의 것이라는 선포식을 해야 할 것인데, 그걸 못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소유권이 결정 안 돼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어 선포식을 해야 할 것이, 원리형 가짜 입장의 사탄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서 선포식을 함으로 말미암아 사탄 소유가 되어 버렸습니다. (213-123)

 

민주주의도 싸움을 합니다. 형제끼리 싸움하는 것과 같습니다. 형제끼리 싸움하는 것은 이웃 동네 사람들이 싸우는 것보다 더 무섭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하나가 동쪽이면 하나는 서쪽인데 동서의 자리가 안 맞으면 그 옆이 동쪽도 남쪽과 북쪽이, 서쪽도 남쪽과 북쪽이 가깝다는 것입니다. 형제끼리 싸움하면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웃 사람끼리는 싸움해도 갈라지지 않습니다. 보따리 싸서 도망가지 않는다 이겁니다. 싸움 중에서 제일 요사스런 싸움이 형제끼리의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형제주의 시대에 둘이 싸움하는 나라는 망하게 마련입니다. 대한민국도 싸움을 합니다. 형님이 누군지 모르고, 동생이 누군지 모릅니다. 왜 모르느냐 이겁니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모르는 후레아들딸이라는 것입니다. 후레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에 어버이가 나타나야만, 부모가 나타나야만 싸움을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구세주가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 시대는 싸움이 끝나지 않지만, 부모주의 시대에 와서는 싸움이 끝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참부모를 발표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님도 참부모고 아담과 해와도 참부모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종적인 참부모고 아담과 해와는 횡적인 참부모입니다. 종횡이 일치된 참부모인데, 그것을 보게 되면 동서남북이 다 같습니다. 위를 아래 갖다 놓고 아래를 위에 갖다 놓고 서쪽을 동쪽, 동쪽을 서쪽, 어디 갖다 놓더라도 다 맞는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미국을 위하는 입장이 돼 가지고는 세계를 돌이키지 못합니다. 전환시키지 못합니다. 공산주의도 공산주의를 위주해서는 안 됩니다. 세계를 위한 공산주의가 되어야 합니다. 민주세계도 찬양하는 공산주의가 되고, 공산주의 자체도 찬양하는 공산주의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다 좋소!' 할 수 있는 주의가 되어야 합니다. 그게 무슨 주의냐? 형제끼리 싸우던 패들이 싸움을 그만두기 위해서는 어머니 아버지가 나타나야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요사스러운 싸움판이 벌어진 잘못된 이 세상에 선생님이 참부모를 선포했습니다. 참부모를 세계적으로 선포하기 위해서는 개인적 참부모, 가정적 참부모, 종족적 참부모, 민족적 참부모, 국가적 참부모, 세계적 참부모, 천주적 참부모?하나님과 인간을 중심삼고 하나님도 참부모, 참부모 자신도 참부모라고 할 수 있는 자리까지 가야 됩니다. 그런 말을 발표했다는 사실은 역사적인 것입니다.

참부모를 선포할 때 세계 인류의 3분의 1은 거느리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3분의 2는 조건을 걸어 놓고 하는 것입니다. 일본도 나에게 걸렸지, 미국도 나에게 걸렸지, 중국도 나에게 걸렸습니다. 다 선생님한테 걸렸습니다.

부모의 시대가 오면 싸움은 끝납니다. 80이 되고 100살 난 형제끼리도, 90살 난 형제끼리 싸우다가도 어머니 아버지가 오면 뛰어 나가야 됩니까, 싸움을 계속해야 됩니까? 천년만년 기다리던 부모가 온다는데 어떻게 뛰어나가야 되겠습니까?

문총재는 사랑을 통해서 점령했습니다. 자기를 위하는 사랑이 아니라 남을 위하는 사랑을 가지고. (202-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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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③ 참부모 선포 장소

 

여러분은 문총재가 왜 고생했는가를 알아야 됩니다. 내 나라를 위해서라면 선생님이 왜 고생합니까? 선생님은 똑똑한 사람입니다. 한국 풍속을 잘 아는 사람입니다. 세계를 위하고 하늘나라를 위하려니까 그러는 것입니다.

한국이 40년 동안 별의별 짓을 다했습니다. 나한테 죄가 많아요. 형제의 짐을 내가 지고, 부모와 사돈의 팔촌으로 인연된 모든 한국 백성의 짐을 내가 짊어지고, 다 갖춘 것을 이번에 와서 축복을 해 준 것입니다. 그래서 참부모 선포를 한 것입니다.

참부모 선포를 어디서 했느냐? 모스크바에서부터 한 것이 아닙니다. 한국에서부터 했습니다. 고맙게 생각해야 됩니다. (204-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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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④ 참부모 선포 후 나타나는 현상

 

   ´u 팔정식 발표로 급변해지는 오늘의 세계

여러분은 팔정식(八定式)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입니다. 그 내용이 뭔지 압니까?

1989년 8월 31일, 알래스카 코디악에서 팔정식을 선포했습니다. 그때는 여러분 자신도 그 내용을 믿지 못했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제부터 세계가 급변해 들어간다는 말을 했을 때에도 '뭐, 또 그럴까' 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 다음 9월에는 부모주의를 선포했습니다, 부모주의. 이것을 맨 나중에 세계적인 정상에서 선포했다는 것입니다. 참부모주의가 이 땅 위에 나타났으면, 사탄도 없고 오늘날과 같은 죄악세계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설정됨으로 말미암아 사탄세계는 후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겁니다. 그 이후 1989년 11월 9일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그 다음 1990년 4월에 선생님이 모스크바 대회를 함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공산주의의 수뇌부로부터 천재적인 똑똑한 2세들이 선생님을 중심삼고 완전히 180도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소련의 최고 수뇌부와 똑똑한 2세들이 선생님을 중심삼고 180도 돌아서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단계에 들어왔습니다.

소련에서 영어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 3천 명을 뽑아다가 교육을 다 완료했습니다. 고르바초프가 공산주의를 포기한다는 선언까지 했습니다. 거기서 끝난 것입니다.

이런 와중에서 단 하나의 소망이 무엇이겠느냐? 앞으로 그 체제를 이끌고 갈 수 있는 이념이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누구나 다 하나님주의밖에 없다고 결론을 지을 수 있는 단계에 와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인간들이 끌고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 주의를 따르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에 귀착하는 것입니다. (218-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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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 악마의 세력은 사망권으로 진입

지금까지 장자가 악마가 돼 있었습니다. 영계에 가 있는 모든 영인들이 지상의 아들적 자리에 있는 것을 이용했습니다. 그래서 영통하는 사람들이 전부 지상 사람들을 이용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장자권?부모권?왕권을 복귀했기 때문에 뒤집어졌습니다. 이제부터는 통일교회를 반대하다간 급살 맞습니다. 두고 보라는 겁니다.

장자권이 복귀됐기 때문에, 땅에서 아담이 완성됐기 때문에 영계의 천사장을 명령할 수 있는 시대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입니다. 문총재를 중심삼고 장자권 복귀, 부모권 복귀를 했으므로 전세계에 참부모를 발표한 것입니다. 악한 부모가 출현함으로 말미암아 세상은 악마의 세계가 됐으니, 하나님을 중심삼고 참부모를 선포함으로 말미암아 악마의 세력권은 공산권이고 뭣이고 다 물러간다 이겁니다.

악한 면으로 보자면 대한민국이 지금 제일입니다. 남자도 인신매매하고 여자도 인신매매합니다. 아이들은 물론입니다. 세계적 정상의 자리, 제일 악한 자리로 왔습니다. 이걸 누구로 말미암아 청산짓느냐? 현정권이 아닙니다. 선생님 손으로 청산되는 것입니다. 참부모의 손을 통해 전부 청산되는 것입니다. 힘을 가지고 하는 게 아닙니다. 교육을 통해 깨끗이 정비하는 것입니다. (21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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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 통일의 운세권 도래

무엇을 중심삼고 정착하느냐? 아담과 해와, 참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정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적 사랑과 참부모의 횡적 사랑을 중심삼고 여기서 정착해야 합니다. 여기서부터 비로소 본연의 참부모를 중심삼은 참자녀의 혈연적 인연이 생겨나서 개인, 가정, 종족이 횡적으로 확대해 나가면서 종족편성 민족편성이 돼 나가게 돼 있는 것입니다.

그런 모든 것을 찾기 위해 선생님이 지금까지 싸워 가지고 다 이겼습니다. 사탄세계의 핍박을 받으면서 이렇게 쭉 나왔습니다. 선생님이 개인으로 가게 되면 사탄세계의 개인이 전부 반대했습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가면 사탄세계의 가정 전부가 반대했습니다.

통일교회 종족편성을 할 때도 전부, 민족편성 할 때도 전부 반대한 것입니다. 조건적 기준에서 전부 반대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승리하게 되니, 미국이 굴복하고, 소련이 망해 떨어지게 됐으니 공격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 싸움터에서 승리해서 돌아 들어오는 것입니다. 꼭대기를 못 넘어가는 것입니다. 돌아 들어오는데, 어디로 돌아오느냐? 사탄세계의 패권을 쥐고 환고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한 땅을 통해 북한으로 들어가야 됩니다.

좌우가 다 무너지니까 누가 득세하느냐? 하늘편이 득세하는 것입니다. 참부모를 선포함으로 말미암아 공산세계가 완전히 무너진 입장에 서고 사탄은 이제부터 급추락하는 것입니다. 올라간 각도로 내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급추락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이 길은 사탄이 갈 길이 아닙니다. 참부모가 갈 길입니다. 사탄세계에서 이겨 가지고 넘어가서 평지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탄이 점령할 것이 아니고 참부모가 만민을 데리고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전부가 내려가고 있습니다.

지금의 세상이 물질 만능시대라고는 하나, 정신에 있어서는 영(零)의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중심삼고 물질을 끌고 내려가야 것이 통일교회의 사명입니다. 지금 학교도 기술교육은 하지만 인격교육을 안 합니다. 신이고 인간이고 없다 그 말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지탱해서 이 길을 내려가야 되는 것입니다. 내려가는 길을 출발해서 하나의 순환 법도로서 이걸 갖다 대야 하는 것입니다. 환고향해서 남북통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은 좌우, 민주와 공산세계로 갈라진 것을 대표한 제물입니다. 또, 우리의 몸과 마음이 갈라져 있고 가정이 갈라져 있습니다. 전부 두 패입니다. 싸우는 패입니다. 이게 종적인 입장에서 상하로 맞추지 못하고 전후로 갈라져 싸우는 패가 돼 있습니다. 상원 하원은 수직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수직을 세워 놓아야 됩니다.

통일교회는 민주와 공산을 통일할 수 있는 곳이요, 모든 종교를 통일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종교와 세상도 통일할 수 있는 곳입니다. 하늘땅을 통일해야 하는 천리의 대도 앞에 책임을 지고 왔는데 전부 두들겨 팼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개인, 가정, 종족, 민족?이렇게 점점 올라가면 이것은 내려가야 합니다. 포화상태가 되어서 힘이 없어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큰 나라도 2세, 3세에 대한 자신을 갖는 나라가 없고, 2세, 3세에 소망을 둘 수 있는 나라가 없습니다. 지금 전부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때가 왔습니다.

선생님이 소련에까지 갔다 오고 이럼으로 말미암아 공산세계가 끝장이 났습니다. 우리를 지금까지 세상에서는 우습게 알았습니다. 저절로 흘러가고 꺼져 갈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안 됩니다. 자기들이 득세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될 것 같지만 그렇게 안 됩니다. 대한민국도 엉망진창이 되고 있습니다. 이건 누가 해도 안 됩니다. 전부 포화상태에서 까라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기를 뚫고 올라오는 것입니다. 그걸 뚫고 올라올 수 있는 본연의 기준이 뭐냐? 참부모의 사상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가정적 참부모고 종족적 참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한 가정이지만 참부모의 조상입니다. 국가가 형성되면 국가의 조상이 누구냐? 참부모입니다. 가정의 조상이 누구냐? 참부모입니다. 세계의 조상이 누구냐? 참부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부모가 이 땅 위에 현현함으로써 하늘나라의 가정이 편성되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전체가 참부모의 소속으로 편성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승리해 나간다는 것이 뭐냐? 참부모권 하에 다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이것을 백방으로 포위해서 크지 못하게 두들겨 패는 것입니다.

그러나 43년 동안 이 싸움을 다 끝내고, 미국에서 우리가 승리한 것입니다. 가인 아벨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미국이 국가적인 입장에서 선생님 앞에 가인이 됩니다. 이 가인을 싸워서 이긴 것입니다. 소련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인과 아벨, 민주와 공산, 좌익과 우익이 다 포화상태가 돼 있는데 거기에 두익이 서는 것입니다.

두익사상이 뭐냐 하면 완성한 아담주의입니다. 아담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완성한 아담이 못 되었기 때문에 아담을 키워 내기 위해 사탄편 아들, 하늘편 아들을 키워 나간 것입니다. 그래서 좌우가 서로 주인 되겠다고 싸운 것입니다. 그런 역사입니다.

두익사상이라는 것은 뭐냐? 완성한 아담주의입니다. 아담주의, 두익사상은 무엇을 중심한 사상이냐? 원리로 보면 간접주관권 직접주관권이 통일이 안 되어 있습니다. 아담이 책임분담함으로 말미암아 간접주관권 직접주관권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어디서 하나되느냐? 10단계를 넘어서면서입니다.

그러면 10이 뭐냐? 수평선입니다. 10이 비로소 수평선이 되는 것입니다. 9만 해도 수평선이 안 됩니다. 10수에 올라가서 수평선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하늘과 땅, 마음과 몸이 수평선상에서 완전히 정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원한 정착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참부모를 발표해야 됩니다. 참부모를 발표함으로 말미암아 통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하기 위해 세 단체가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승공연합, 국민연합이 그것입니다. 국민연합은 남북통일을 위해 세운 것입니다. 승공연합을 세운 것은 공산세계를 방어하기 위해서입니다. 공산세계를 방어해야 남북을 통일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세운 것은 정신적인 것을 위해서입니다. 자리잡지 못한 양심을 자리잡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탄은 자리잡지 못하게 통일교회를 패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선생님이 탕감조건을 다 넘어서서 환고향해 가지고 참부모를 선포한 것입니다. 참부모를 선포하는 데는 통일그룹을 통해서 선포하고, 그 다음엔 관계되어 있는 사람, 친척을 중심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는 이미 선포됐지요? 여기에 관계돼 있는 통일그룹에 선포한 것입니다. 이 가인 아벨이 하나돼야 됩니다. 이걸 타고 나라에 선포하는 것입니다. 나라에 선포하면 가인 입장에서 반대하던 것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이제 그 선포가 끝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계를 통하는 사람들은 참부모를 선포하는 날이 세상이 끝나는 날이라고 다 계시를 받습니다. 그게 뭐냐? 세상이 악한 부모로부터 시작했으니 악한 부모의 모든 인연이 전부 굴복하고 참부모의 출발이 벌어지면 새 세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씨름판에서 챔피언하고 도전자하고 싸울 때에는 넘어지기 전까지는 챔피언이 챔피언입니다. '꽝!' 하고 넘어진 다음에는 땅구덩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딱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202-272)

 

참부모를 선포했습니다. 참부모를 선포했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망하지 않습니다. 만일 에덴동산의 아담과 해와가 참부모가 되었더라면 거기엔 악마도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선조들은 먼저 가 있는 천사장 자리에 있기 때문에 통일교회 여러분 뒤에 와 있습니다. 선생님이 선포식을 했기 때문에 다 영계에서 협조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이 자신을 갖고 선생님의 말만 믿고 행동하면 별의별 일이 벌어집니다. 요전에 시 군 구 참부모 환영대회 할 때도 교역장 여러분들이 마음 먹는 그릇대로 찬다고 그랬습니다. 그때 지부장들에게 3천명 대회 하자니까 다들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믿어라! 선생님 말을 믿고 실천해라!' 그대로 하니까 됐습니다. (203-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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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래에는 싸움이 없다

한국인은 지금까지 외국을 침략한 일이 한 번도 없습니다. 한국인은 인정이, 인류애가 깊은 민족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어느 누구보다도 희생했기 때문에 한국 민족은 하나님의 심정권에 가깝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것, 인류 타락세계에서 가장 높고 귀중한 것은 참부모이고, 장자권입니다. 그 다음에 부모권이고, 그 다음에 왕권입니다. 이건 고유의 권한입니다.

한국의 역사는 하늘의 왕권을 상속하는 장남의 권위를 남기기 위하여 하나님이 방문해 온 역사입니다. 일본도 그렇습니다. 끝날에 천황을 잇는 것은 장자권입니다. 장자는 참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본연의 인류의 장자는 아담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자권은 반드시 참부모를 맞이해야 하고, 장자권을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참부모의 입장에 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러시아에서 돌아와 참부모 선포를 했습니다, 참부모 선포. 장자권을 복귀한 다음 세계적으로 참부모가 서야 됩니다. 참부모가 나라를 넘어서 세계적으로, 환경적으로 넓혀 나가는 데 있어서 종족 왕권, 국가 왕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부모의 국가적 기준이 있으면 참왕권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남북이 통일될 때 참왕권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전래의 왕권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왕권이 생겨난 경우의 나라라는 것은 주권?영토?국민, 3대 국가 구성의 요소가 모두 갖추어지는 것입니다.

주권, 국토, 국민, 그것이 없으면 왕권이 서지 않습니다. 지금 선생님은 세계적인 국민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왕권은 있지만 국민과 국토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남북통일을 한 국민은 통일교회에 맞춰 천지 국민으로서 왕권을 확립해 나가야 합니다.

장래는 싸움이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싸움은 자기를 중심으로 한 쓸모 없는 싸움이었습니다. 그것은 서로 빼앗기 위한 싸움이었지만, 통일세계는 하나님의 왕권이 세워져서 위하여 사는 세계이기 때문에 전쟁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형제끼리 서로 빼앗을 필요가 없습니다. 너무 주려고 하니까 도망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마을에 살게 되면 그냥 통과입니다. 하숙 같은 것은 마을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침, 점심, 그리고 저녁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정성껏 준비해 줍니다. 그리고 거기서 자고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앞으로 삼권분립(三權分立)이라는 것도 없어집니다. 법률도 뭣도 다 없어집니다. 사랑의 자치권이 완전히 이루어지면, 법률이 자동적으로 완성됩니다. 위하는 사랑, 그것을 이룩한 곳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상하가 하나가 되고, 전후 좌우가 하나되는 것입니다. (224-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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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⑤ 참부모 선포는 놀라운 사실

 

선생님은 좌익 우익을 수습했습니다. 이 길을 걸어 나오기까지 선생님이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두익사상을 중심한 하나님주의가 학교로부터 모든 지도층의 인정을 받아서 그것을 공인할 수 있는 판도를 엮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련 정부, 미국 정부가 이제 레버런 문을 중심삼고 살게 되면 미국도 살고, 공산당도 산다고 할 수 있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모스크바에 들어갈 때에,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은 한눈으로 보았지만, 레버런 문이 공산당을 소화했으면 했지 공산당에게 소화당하지 않는다 이겁니다. 미국의 정책 방향에서 6개월 이내에 갈 길을 가르쳐 준 사람이 나입니다. 군사력을 삭감하자는 소련 정책을 미국이 염려하여 주저하고 있는 판국을 전부 다 교육시킴으로 말미암아 그 모든 고개를 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제 돌아서니까, 돌아서면 어디로 가야 되느냐? 세계로 다시 환고향하여 나라를 넘어 다시 고향으로 가야 됩니다. 아담과 해와 가정에서부터 타락의 조상이 시작됐으니 이 탈을 벗겨야 됩니다. 3대 시대에 3대 조상의 허물을 벗겨야 됩니다.

아담이 타락했습니다. 악마가 인류의 참조상을 죽여 버렸습니다. 1대 아담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원수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 다음엔 제2차 참부모로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메시아입니다. 구세주로서 온 이 메시아를 인류 백성들이, 자기 아들딸들이, 사람이 잡아죽였습니다. 참부모를 잡아죽였으니 나라의 그 죄가 얼마나 큽니까?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이 2천 년 동안 유리고객(流離孤客)했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역사적 배후를 더듬어 보면, 수많은 사람이 칼에 찔리고 말굽에 차이고 원한과 저주의 이슬로 사라져 갔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근근이 2천 년 역사가 지나 비로소 미국의 후원 아래 독립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악마가 우리의 부모를 죽여 버렸고, 악마의 아들딸들이 제2차 참부모를 죽여 버렸고, 제3차로 오는 참부모를 온 세계의 악마가 모든 사상과 모든 체제를 동원해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죽지 않고 천신만고 끝에 살아 남아서 이제는 부모의 도리를, 참부모를 지상에 선포할 수 있었다는 놀라운 사실! 이 얼마나 하늘이 소원했던 사실입니까? (219-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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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⑥ 참부모 선포 후 우리의 처신 방향

 

선생님이 고르바초프에게 레닌의 동상과 마르크의 동상도 철거하라고 했습니다. 공산당 역사에 그런 말을 한 사람은 레버런 문밖에 없습니다. 소련 공산당 간부들은 모두 '우리 앞에서 하나님주의를 말해? 어떻게 저렇게 오만하게 말할 수 있느냐?'고 하면서 와글와글 했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선생님을 미워하더라도 지금 공산세계는 그와 같이 된 것입니다. 그들이 세계에서 제일 무서워하던 존재가 그들의 유일한 희망의 존재가 되었습니다. 다른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내 말을 듣고 따라와. 그렇지 않으면 길이 없어!' 하고 선생님이 분명하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내가 지금까지 소련에 대해서 그렇게 선포하고 싶었는데, 훌륭한 내 아들이로구나!' 하시면서 레버런 문을 내려다보시고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하셨겠습니까! '내가 너를 온 인류 위에 세우고 싶다.' 하셨기 때문에 그 이후에 선생님이 상당히 유명해졌습니다.

미국 지도자가 '우! 어떻게 그럴 수 있어?' 하고, 유럽 지도자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하고, 공산세계가 '크렘린궁에서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어?' 했습니다. 하나님이 내려다보시고 '그거 재미있구나!' 했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확실하게 선포한 것입니다.

참부모에게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의 귀가 참부모를 찾고 싶어하고, 여러분의 코도 마찬가지고, 입도 마찬가지고, 눈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 왜? 참부모는 모든 것을 끌어당기는 강한 힘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그걸 알았습니다. 모든 자연도 참부모를 원합니다.'참부모님, 제발 여기에 계속 계셔 주세요.' 합니다. 자연이 소리를 지릅니다.

모두가 참부모를 좋아합니다. 참부모라는 소리가 좋다는 것입니다. '나 참부모님 만났다.' '어디서?' '따라와 봐' 하면 모두가 따라오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게 참부모입니다. 참어머니?참남편?참아내?참자녀?참손자?참애국자가 거기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거기서부터 시작합니다. 그게 가장 희망찬 복음입니다. 우리한테는 성경이 필요 없습니다. 성경의 목적이 참부모 하나를 찾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참부모의 이름이 제일 귀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참부모의 무엇이 되고 싶으냐? 이게 문제입니다. 참부모를 나무로 생각하게 되면 여러분은 가지입니다. 이 가지는 어디에 꽂아도 잘 삽니다. 이 가지는 어디에 가든지 사랑만 있으면 밤에 꽂든, 낮에 꽂든, 겨울에 꽂든, 봄에 꽂든, 장마 때 꽂든 그것에 상관 없이 잘 산다는 것입니다. 왜?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하나님과 인류 그리고 사탄권에 속해 있는 모든 것을 해방하고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그것이 참부모의 목적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부모의 심정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전진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사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원리관입니다.

또, 만물들도 그렇습니다. 구원받는 여러분을 보고 '만세!' 합니다. 여러분이 그런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됩니다. 어디에 가든지 만물이 환영하고 인류가 환영합니다. 참사랑을 중심삼은 본연의 세계에는 만물들의 참사랑의 소리로 가득차 있습니다. 참사랑의 세계에서는 모두가 하나님처럼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상속하는 데는 모든 것을 상속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디든지 동참할 수 있는 동참권이 있습니다. 이 참사랑은 이 세 가지 권한을 갖습니다.

이 말은 내가 자동적으로 참사랑을 잡게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상속합니다. 하나님이 내 것이 됩니다. 하나님이 있는 데는 어디든지 다 동참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가 얼마나 행복해요! 어느 누구도 이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놀라운 것이 있습니다. 어떻게 내 마음에 걱정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늘이 있을 수 없습니다. 대낮같이 환합니다. 이것이 통일교인들의 자랑거리입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통일교인이 가는 데는 사탄의 반대가 없습니다. 이제부터 외치는 대로 흡수되고, 외치는 대로 부활하고, 외치는 대로 생겨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왜 반대가 있었느냐? 올라오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반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좌익 우익이 다 없으니까 두익이 생겨났습니다. 두익이 더 높습니다. 더 높으니까 다 좋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종하고 주인주의입니다. 자유가 없습니다. 민주주의는 뭐냐 하면 형제주의입니다. 형제주의이기 때문에 자유입니다. 자기들끼리는 자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싸움이 계속해서 벌어집니다. 서로 자기들이 잘났다고 싸우는 것입니다.

두익사상은 뭐냐 하면 부모주의입니다. 미국을 보면 상원의원과 하원의원이 싸우고, 공화당과 민주당이 싸웁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모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부모가 있어서 '이 자식아, 왜 싸워? 너희는 종이 아니야! 내 아들이야' 하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 흑인하고 백인하고 결혼하는 것을 부모가 제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이 부모를 위해서 효도하는 것보다 형제끼리 서로 부모를 사랑하는 이상 사랑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부모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참사랑을 중심삼게 되면 절대적으로 영원히 하나입니다. 거기서부터 선생님과 연결됩니다. 그렇게 연결되는 인연은 어느 누구도 끊을 수 없습니다.

우리도 참부모의 노정을 걸을 것이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나'도 앞으로 뿌리를 내리고, 줄기가 되고, 가지를 뻗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이겁니다. 모든 것이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우리도 앞으로 참부모가 된다는 말입니다. 앞으로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얼마나 자랑스러운 사람들이냐 이겁니다. 문을 열고 나가서 '여기를 봐라. 여기에 등장하고 있는 이 사람이 얼마나 놀라운 주인이냐!' 하고 외쳐 보라는 겁니다. 기분이 좋다는 겁니다. 모든 동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영계에서도 '당신은 메시아이신 예수와 같이 참사랑을 중심삼은 구세주다. 당신이 가는 곳마다 거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을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참부모 선포를 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권한이 없어지고 종교를 중심삼고 투쟁하던 모든 탕감법도 없어집니다. 선한 영들이 천사세계와 맞먹기 때문에 타락 없는 세상이 되어 마음대로 지상 협조할 수 있는 때가 됩니다. 그 천사들이 여러분의 조상들입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통일교회를 반대하다가는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집니다. 병이 나서 죽기도 하고,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집니다.

여러분이 담대해져야 됩니다. 이 말은 주체적 소유권을 가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처한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은 하나님도 원하지 않는다. 내 앞에서 없어져!' 하면 없어집니다. 금방 내려갑니다. 영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이런 것은 안 원해!' 하면 즉시 없어집니다. 모든 주위에 그런 힘이 있습니다. 사랑의 중심이 나타나면 모든 것이 그쪽으로 향해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동쪽에서 아침 해가 떠오르면 산천초목의 모든 중심이 그 태양을 향합니다. 그것이 생명의 본질, 사랑의 본질입니다.

참부모는 우주적인 참사랑의 중심 기반입니다. 그래서 그런 참부모가 나타나면 아침에 모든 산천 초목이 떠오르는 태양을 향하듯이 모든 피조세계가 참부모를 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은 잎이나 가지와 마찬가지입니다. 영계에서는 모든 것이 하나님을 향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달리 통일교회에서도 선생님이 어디를 가면 식구들의 모든 신경이 자동적으로 선생님을 따라갑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목적이 참사랑이고 세계의 센터가 참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참사랑의 부모입니다. 거기서 모든 해방이 벌어집니다. 그런 자리에 서면 사방의 문들이 자동문같이 열리는 것입니다. 영계는 그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영계에서 참사랑의 주인이 가는 데는 문이 없습니다. 어디든지 자동으로 열립니다. 어디든지 환영입니다. 높은 사람들이 그 뒤에서 '어서 오십시오. 오랫동안 너무나 지루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환영합니다' 하는 그런 상황이 벌어지니 얼마나 멋지냐 이겁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분명하게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참부모의 모든 것을 상속받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자동적으로 주인이 됩니다. 스승이 되고 참부모가 되는 겁니다. 다른 어느 누구도 여러분을 지도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다른 스승, 주인과 부모가 필요 없습니다. 여러분이 가까운 장래에 그런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202-351)

 

지금까지는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마음이 지상의 사람의 마음과 수직으로 연결되기가 힘들었습니다. 이것이 참부모가 나옴으로 말미암아 연결되는 것입니다. 거기서 반대하지 않는 친척 환경은 가인권이 아닙니다. 하늘편에 선 아벨권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종교권 타파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태까지는 선민을 중심으로 종교권을 통해 영계와 육계가 주류적인 관계를 맺어 연결시켜 왔는데, 이제는 구약시대-신약시대-성약시대가 완성한 것과 마찬가지로 되어서 종교권 권한이 없어졌기 때문에 가인 아벨 환경이 없어졌다 그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을 중심삼은 반대하지 않는 가정들은 하늘 편 아벨적 자리에 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휘젓는 대로, 미는 대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때가 그런 때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 때를 알아야 합니다. 참부모를 선포함으로 말미암아 사탄 혈통적 부모는 다 끝장을 보는 것입니다. 참부모가 사탄세계와 싸워서 다 갖추어 올라와서 민주세계 공산세계가 쓰러질 단계에 왔기 때문에 승리적 조건을 가지고 들어와서 선포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세계는 끝난다는 것입니다.

사탄세계가 끝난다는 것은 무엇이냐? 사탄에게서 해방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사탄세계의 문화권과 그 환경 내에서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사탄세계와 사탄생활권과 사탄의 혈통에서 해방받는 것입니다.

사탄에게서 해방되어 어디로 가느냐?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은 하나님을 모릅니다. 사탄이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인본주의도 하나님을 모릅니다. 지금 미국의 인본주의는 하나님을 추방한 인본주의가 됐습니다. 인본주의의 기준이 무엇이냐? 몸입니다. 몸은 몸인데 자기 중심한 몸이라는 것입니다. 이건 향락을 취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찾아가면 멸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탄에서 해방되어야 되고 사탄의 생활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생활은 문화권을 말하는 것입니다. 생활권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혈통에서 해방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사탄에게서 해방되면 어디로 돌아가느냐? 하나님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에게 돌아가야 하는데 공산당도 하나님을 모르고 세속적 인본주의도 하나님에게 돌아갈 줄 모릅니다.

또, 생활은 어디서 하느냐? 자기 멋대로 동물같이 살게 안 되어 있습니다. 생활은 본래부터 참부모를 중심삼고 출발해야 하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참부모를 중심삼은 세계적 이념권 내의 판도를 중심삼고 생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부모를 믿지 않으면 천국 못 가는 것입니다. 지금은 접붙이지 못한 가지가 많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202-276)

 

여러분은 지방에 나가서 참부모의 기반을 닦아야 하겠습니다. 참부모는 하늘의 기반을 닦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참부모보다 먼저 참부모의 갈 길을 닦으시고, 참부모는 여러분이 갈 길을 닦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참부모를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시는 참부모보다 한 단계 앞서 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섭리를 보게 될 때 복귀기대섭리시대, 복귀섭리시대, 복귀섭리완성시대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부모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이 기반을 닦았습니다. 또, 참부모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이 기반을 닦았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후손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서 기반을 닦아야 합니다. 그래서 국가적인 기준을 넘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적인 기준도 넘어서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천주사적인 기준을 넘어가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식구들이 국가적인 기준을 넘어서면, 참부모는 세계적인 기준을 넘어서고, 하나님은 천주사적인 기준을 넘어서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을 위주해서 온 인류가 천주적인 기준을 넘어가야 합니다.

이렇게 보면 여러분은 하나님보다 두 단계 떨어져 있습니다. 두 단계 떨어져 있는 여러분은 그래서 낙망하고 지치는 입장에 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가는 길 앞에 나를 위해 참부모가 가시고, 그 참부모 앞에 하나님이 나를 위해 가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수고와 참부모의 수고는 어떠한 것으로도, 죽음으로도 갚을 수 없는 수고입니다. 그런 빚을 지고 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참부모가 상속받고 참부모의 뜻을 여러분이 상속받아서 그 전통적인 사상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 전통적인 사상은 무엇이냐? 인간이 원수 사탄의 혈통을 받아 태어났기 때문에 이 원수 사탄의 혈통을 제거한 후, 하나님을 중심하고 참부모를 중심한 혈통적인 복귀를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하나님과 심정적으로 일치되어야 합니다.

심정적인 일치를 기반으로 해서 하늘의 혈통을 받아 하나님을 뿌리로 하는 나무의 하나의 가지가 되고 잎이 되고, 하나님의 대신 실체가 되어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을 지상에 세워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복귀의 역사가 추진되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13-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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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⑦ 참부모 선포 후 우리의 할

 

   ´u 선포 앞에 감사하자

참부모를 선포함으로 말미암아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위하던 영계의 모든 선한 영과 사탄을 중심삼고 있던 악한 영이 딱 갈라지는 것입니다. 참부모를 중심삼으면 완성한 아담과 해와의 입장이 되는데 완성한 아담은 천사장이 언제나 보호하고 키워주고 협조하게 돼 있습니다.

완성한 아담권에 서면 협조뿐만 아니라 사랑이상에 의해서 실체적인 주인으로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명령할 수 있는 단계입니다. 그런 자리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끝입니다. 사탄세계의 거짓 부모의 사랑으로 시작한 모든 것이 끝이 나고, 새로운 참부모의 사랑을 중심삼은 새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거름삼아 새 세계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발표함으로 말미암아 앞으로는 우리 통일교회를 무조건 반대하다가는 시름시름 하면서 전부 쓰러져 가는 것입니다. 진액이 끊어진 나무같이 시들어 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대번에 벌레 밥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새 생명의 생활권을 중심삼고 나가는 것입니다. 새 생명의 기원은 새 사랑입니다. 새 사랑이 뭐냐? 참부모의 사랑입니다. 창조이상적 새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선생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무엇을 감사해야 하느냐? 사탄에게서 해방됐으니 감사해야 합니다. 부모님으로 말미암아 사탄세계에서 해방됐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무엇에서 해방됐느냐? 사탄의 생활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 다음엔 사탄의 혈통에서 해방됐습니다. 생활에는 문화배경이 있고 습관성이 동반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사탄에게서 해방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사탄의 생활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생활이라는 것은 문화 배경에 따라 다릅니다. 영국은 영국 사람 문화를 중심삼고 살고, 미국은 미국 문화를 중심삼고 사는 것입니다. 전부 다릅니다. 생활환경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 생활에서 해방돼야 합니다.

그 다음엔 뭐냐? 핏줄입니다. 3대 해방이 벌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문화가 자동적으로 벌어지는 것입니다. 해방받으면 뭣 하느냐? 사탄에게서 해방받았으니 어디로 가느냐 하면, 하나님에게로 가는 것입니다. 사탄에게서 해방받으면, 거짓 부모와 인연되어 구속됐던 것이 해방됨으로 말미암아 자유스러운 부모의 심정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돌아가는 데는 사탄세계의 생활권 습관성을 가지고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깨끗이 청산해야 합니다.

'참부모' 하게 되면 종적 참부모인 하나님하고 횡적인 참부모인 참부모가 있는데, 이 둘이 하나된 사랑을 중심삼고 지음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영의 자리, 사랑이 없는 곳에서 비로소 주체성을 지니니까 사랑을 찾고자 하면 영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존재의 기원을 무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하는 역설적 논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세계에서 해방된 것을 감사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생활입니다. 문화권이 배경이 되어 역사와 전통을 세우는 것입니다. 문화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뭐예요? 혈통입니다. 혈통은 사랑을 중심삼고 뒤넘이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해방받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들이 '나는 하나님의 혈통이다.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와 있다' 해야 하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싸워서는 안 됩니다.

이제부터는 마음에게 물어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마음에까지 다 들어와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순이고 잎입니다. 참부모를 모시고 뿌리를 갖추었기 때문에 그런 작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공기 1기압을 중심삼고 모든 것이 밀어 주고 있습니다. 그게 균형이 되어 있기 때문에 자극을 모릅니다. 못 나가게 전부 보호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균형이 되어 있기 때문에 자극을 모르지, 조금만 뜻 앞에 비양심적으로 행동하면 우주의 힘이 '이 녀석아!' 하고 들이친다는 것입니다. 그 힘이 얼마나 강한지 이렇게 가려 해도 몸이 휙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하나님은 내 마음에 있고 부모님은 내 살에 들어와 있다고 기도하게 되면, 하나님은 그 십자에 들어와 앉아서 내 몸과 마음의 도수를 하나 만드는 것입니다. 3대 사탄권에서 해방을 받아야 합니다. 첫째는 종적인 대표 사탄에게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육적인 부모로부터 이어받은 문화권, 생활전통입니다.

한국이면 한국민족 문화가 있고, 미국 문화, 별의별 오만가지 문화가 하나의 중심을 향해서 전부 뻗어 있는 것입니다. 멀수록 전부 잡동사니라는 것입니다. (202-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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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 실적 쌓기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미국 제일의 방송국인 엔비시(NBC), 시비에스(CBS), 에스비시(SBC)가 모두 문총재를 때려잡자고 별의별 악독한 짓을 다 하고, 신문이 두들겨 저들이 선전하기 전에 레버런 문이 벌써 다 알고 있으니 들어먹지를 않습니다. 신문에 내고 북을 치고 그랬지만, 춤 추는 사람이 없으니 북 치는 녀석도 기운이 빠져서 다 집어치우게 되는 겁니다.

그 다음엔 우리가 공격을 하는 것입니다. 언론사를 갖고 있으니 신문사로부터 들이대는 겁니다. 편집국의 책임자를 불러다가 내가 껍데기를 벗겨 놓았습니다. 그런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실적이 문제입니다. 천하를 통일하는 것은 실력이 아니라 실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실력은 없더라도 실적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실적은 천하의 힘을 버는 것입니다. 문총재에게는 어느 나라 대통령이 문제가 아닙니다. 일대의 실적, 비즈니스로서 나를 비교할 바가 없으니 무릎을 꿇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후대에 남기고 갈 수 있는 실적이 있어야 됩니다. 영계에 가려면 선물을 갖고 가야 됩니다. 시집가려면 시할아버지로부터 시작해서 그 일족에게 버선 한 켤레라도 갖다 줘야 며느리를 자랑하고 다 그러는 것입니다.

영계에 가면 조상들이 앞에 불러다 놓고 '너 우리 조상들 공을 통해서 통일교회에 들어갔는데 뭘 하고 왔어? 종족적 메시아 노릇 했어?' 하면서 조상들이 닦아세우는 것입니다. 자기가 행함으로 말미암아 자기 조상 72대가 해방되는데, 안 닦아세울 것 같습니까? 정신을 똑바로 차리라는 겁니다.

사탄세계에 빼앗겨 잃어버린 하늘 백성들을 전부 하늘세계에 접붙여서 돌이켜 놔야 됩니다. 자기들이 노력해서 하늘 백성을 얼마나 찾아오느냐? 그 다음에 자기 아들딸을 연결시켜서 자기 혈족과 더불어, 복귀된 백성과 더불어 영원한 창조이상적 전통을, 사랑의 전통을 어떻게 만들어 놓느냐 하는 것입니다.

저나라에 가서는 이것이 실마리가 되어서 자기의 영원한 생명의 권위, 생명의 위계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일족을 처리하여 120가정 이상 데리고 가야 됩니다. 그러니 부끄러움을 면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부끄러움뿐만이 아니라 발가벗고 쫓겨나는 것입니다.

 이제는 세계에 선생님이 이미 다 선포했습니다. 세계의 선민권 시대는 지나가고 문총재를 환영할 시기에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전세계가 이스라엘권에 들어가는 만민권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실적을 기준으로 삼아서 편성하는 겁니다. (21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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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 참부모 환영대회 개최

대한민국 사람들이 요즘에 참부모 환영대회를 함으로 말미암아 왁싹왁싹 쑥덕쑥덕 공론이 전국에 파급됐습니다. '야! 참부모가 뭐야, 참부모?' 하는 겁니다.

돌아가야 됩니다. 참부모를 찾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거짓 부모를 기원으로 했으니, 거짓 부모의 종착점을 넘어서서 참부모를 연결시키지 못하면 하나님이 가라고 하는 방향성을 찾을 수 없는 것이 원리요, 이론적인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라고 할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타락했으니 거짓 부모가 되었습니다. 쫓겨났으니 거짓 부모입니다. 쫓겨나지 않은 자리에서 하나님과 같이, '양친 부모 모셔 놓고 천년만년 살고지고' 할 수 있는 그 부모의 자리를 찾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한민족이 그렇습니다. '양친 부모 모셔다가 천년만년 살고 지고' 이런 노래를 갖고 있습니다. 예시적인 민족이라서 그렇습니다.

그 다음에는 '푸른 하늘 은하수…' 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걸 보면 계시적인 민족입니다. 앞으로 인공위성이 나타나서 세계가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전부 다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거 얼마나 풍류적인 민족이냐 이겁니다. 그러한 문화적 배경, 그러한 고차원적인 사상의 풍자적인 배경을 가졌다는 사실은 위대한 것입니다. (206-80)

 

문총재는 대한민국 국민과 민족 앞에 참부모 환영대회를 통해 참부모를 선포했습니다. 이거 선포해야 됩니다. 그래야 악한 사탄이 물러가게끔 하늘이 진을 치는 것입니다. 이제 어떻게 되나 보십시오. 금후의 갈 길을 두고 보라는 겁니다.

참부모 환영대회를 전국에서 했는데, 그거 무엇인지 모르는 겁니다. 문총재가 미쳐서 한 게 아닙니다. 참부모 환영대회를 통해 참부모를 선포함으로써 악의 집단을 대체할 수 있는 하늘편의 기반을 확립하는 것입니다. (204-144)

 

전국적으로 부모님 환영대회를 통해 참부모를 선포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무엇을 해야 하느냐? 선생님이 세계적 판도 위에 국가와 세계가 연결된 그 기반 위에서 부모님 환영대회를 했으니, 이제는 여러분 축복받은 가정들이 종족적 부모 환영대회를 해야 됩니다. 그러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

종족적 메시아를 완성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국가를 중심삼고 세계적 메시아를 완성한 후에 종족권을 수습해야 합니다. 종족은 세계로 퍼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국가 형성은 자연히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왔습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뭐냐? 민주세계도 다 실험 필했습니다. 공산세계도 실험 필했고, 기독교나 세상에 있는 모든 종교도 실험 필했습니다. 왜 실험 필했다고 하느냐? 통일교회를 반대하지 않은 데가 없습니다. 전부 쳤다는 것입니다. (202-270)

 

전국에 부모님 환영대회 끝내고부터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듭니다. 영계를 통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이 끝나고, 새 세계로 간다는 것을 계시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계가 재림합니다. 구약시대-신약시대-성약시대인데, 옛날에는 주류 종교를 통해 종교를 믿어서 선한 이름을 남기고 선한 영계에 가 있는 영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지상의 섭리를 도와 왔습니다. 거기를 통하지 않고는 지상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길이 지금까지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참부모님이 이 땅에 나와서 개인, 가정, 민족, 국가, 세계적 전통을 세우고 전부 다 싸워 승리해 넘어왔기 때문에 이제는 종교권 해탈입니다. 참부모시대에는 종교가 없어집니다. 세계적인 승리의 판도를 가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담과 해와 자체가 타락하지 않고 참부모가 됐으면 종교가 필요 없습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그 자체를 중심삼고 영원히 하늘과 일체로 합덕하게 되고, 그 일체적 이상을 중심삼고 선조들이 언제든지 지상에 사는 자기 후손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막혔기 때문에 이 길을 트기 위해서는 선민권이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민족적 선민권, 기독교의 세계적 선민권, 통일교회의 천주적 선민권을 중심삼고 모든 것을 탕감복귀했기 때문에 종교권 해탈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계가 전부 다 지상세계와 평면적으로 접할 수 있는 때가 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선민권을 통해서 종교를 거쳐 영계와 연결되어 과거 시대가 지나가는 것입니다. 참부모 승리로 말미암아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종교주류권 내에서 구약완성시대?신약완성시대?성약완성시대로 접해 들어가서 영계에 간 모든 선조들이 언제나 지상의 자기 후손들을 찾아와서 협조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영계가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통일교회를 안 믿으면, 선조들이 와서 가위 누르고, 약 주고, 병 주고, 그럽니다. 지금까지는 지상세계를 사탄이 분할 점령하고 있었는데, 선한 천사장권 내의 선한 영들과 종교권에 있던 선한 영들 전체가 들어와서 지상에서 악한 세계를 완전히 몰아내기 때문에 김일성이든 누구든 지금까지 악마의 그늘이 되었던 것이 전부 걷어치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나라, 두 나라, 세 나라, 네 나라만 통일교회와 연결되면 전세계는 완전한 해방시대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1988년에서 2천 년까지가 이 일을 이루어야 할 사명시대입니다, 선생님 80세까지. 그래서 종족적 메시아가 설정된 것입니다. 세계적 메시아, 그 다음에 국가적 메시아권을 향하기 위해 종족적 메시아를 선포했기 때문에 이제 세계적 메시아권 앞에 종족적 메시아를 연결시키는 국가적 메시아권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늘나라의 한 주와 마찬가지요, 도와 마찬가지의 설정이 벌어짐으로 말미암아 통일왕국시대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20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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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⑧ 북쪽 부모와 남쪽 참부모

 

우리가 원리에서 배웠듯이, 구약시대는 물질을 희생시켜서 아들딸이 오는 길을 닦고, 신약시대에는 아들딸이 제물이 되어서 부모님이, 재림주가 오는 길을 닦은 것입니다. 성약시대에 부모님이 고생하신 것은 뭐냐? 하나님을 이 땅 위에 모셔 들이기 위해 수난길을 걸은 것입니다.

선생님의 일대 소원은 뭐냐 하면, 하나님을 이 땅 위에 모셔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고향에서 하나님을 못 모셨습니다. 세계적인 승리의 깃발을 들고 고향에 가야 됩니다. 북한에서는 악의 재림주입니다. 악마의 부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일성을 어버이 수령이라고 합니다.

어버이라는 말이 뭡니까? 남한에 참부모가 나올 것을 알고, 북한이 참부모의 고향이라는 것을 알고서 목을 지키고 목을 자르려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총재를 잡아죽이려고 고르바초프하고 김일성하고 약속해서 행동한 것입니다. 1987년 2월에 25명의 적군파를 미국에 파송했는데, 그들이 우리 별장 주소를 적어 가지고 다니던 것을 전부 영계에서 잡아낸 것입니다. 중앙정보국(CIA)이 잡아 조사하는 중에 나는 모스크바로 입성한 것입니다. 모험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해원성사하는 데 역사를 단축하고 하루라도 짧게 해야 할 책임을 갖고 있기 때문에 문총재가 가는 길은 모험이라는 것입니다. 일신의 모든 자본을 태평양에 투자하고 산골짜기에 투자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투신하면서 이 길을 닦아 온 것입니다. 그러한 데에 역사적인 오점을 남기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거룩한 것입니다. 거룩한 거예요! 그래서 우리나라에 하나님이 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남북은 몸 마음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되게 되면 거기에 하나님이 임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둘이 하나되는 그곳에 하나님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을 통일해야 됩니다. 우선 남한에서 부모를 모셔야 됩니다. 부모님 모시기를 북한에서 김일성 모시는 것 이상으로 해야 됩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배지를 달고 다닙니다. 그 이상 통일교회에서는 세상에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라는 것입니다.

북한에서는 전부 다 주체사상으로 무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의 철석 같은 절대적인 사랑을 중심삼은 3대 주체사상으로 무장하여 북한이 상관할 수 없을 정도로 격차를 벌려야 합니다. 그러한 길을 가야 할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212-57)

 

김일성은 가짜 아버지입니다. 김일성을 어버이라고 하지요? 그게 왜 역사시대에 나타나느냐? 공산주의 국가 중에서 제일 악랄한, 악마 중의 대악마와 같은 사람이 나오는 것입니다.

문총재도 참부모라고 합니다. 참부모는 거짓 부모를 자연굴복시킬 수 있어야 됩니다. 힘으로 때려잡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구원섭리와 하나님의 승패의 결정은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힘으로 하면 그 즉석에서 다 끝났을 것입니다. 공산당식으로 했다면 다 끝났다는 겁니다.

지상세계에 투쟁 역사를 연결지은 군대를 가지고 힘을 과시하던, 사탄의 전통을 계승하던 타락한 세계의 종말은 비참합니다. 그런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자연굴복시키려고 하시는 겁니다. 너 하고픈 대로 다 해 봐라 이겁니다. 다 하게 하고 나서 하늘은 맞고 빼앗아 나옵니다.

네가 정의편을 쳤으니 손해배상을 하라는 것입니다. 세계 끝에 가 서는 갈 곳이 없습니다. 세계 끝에 가서 굴복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끝장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어받을 수 있는 사람을 지상에 준비해야 됩니다. 그래서 끝날에는 메시아를 보내겠다는 것입니다. (21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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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⑨ 종주들과 참부모

 

본래 구약시대-신약시대-성약시대를 통해서 뭘 하자는 것이냐? 하나님을 내 속에 모시자는 것입니다. 뿌리가 누구냐? 하나님입니다. 인간의 뿌리가 하나님입니다. 원래 참부모가 뿌리가 아닙니다. 참부모도 하나님으로부터, 뿌리로부터 나왔습니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아들딸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타락 후 만물이 아담과 해와보다 나은 자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했으니 그렇게 됐습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만물보다 더 속된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만물이 인간 앞에 있기 때문에 만물이 내 대신 죽어 주는 것입니다. 내 대신 피를 흘려서 자리를 바꿔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시대는 모든 제물을 희생시켜서 아들딸이 가는 길을 닦은 것입니다. 그 다음에, 신약시대는 예수님이 와서 아들딸로서 희생해서 부모님의 길을 닦은 것입니다. 많은 순교의 피를 흘려 가지고 재림시대에 부모님이 오는 길을 닦은 것입니다. 예수님하고 부모님하고 어떤 관계에 있느냐? 예수님은 아들의 자리고, 부모님은 부모의 자리입니다.

선생님이 언젠가 석가모니가 내 제자고, 예수가 내 제자고, 공자가 내 제자고, 마호메트가 내 제자라고 했을 때, 이란의 호메이니는 나에게 사형선고라는 언도를 내렸습니다. '문총재 잡아죽여야 된다!' 이랬습니다. 똑똑한 선생님이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영계를 통하는 사람이 기도해 보면 다 압니다.

두고 보십시오. 통일교회가 맨 나중에 종교를 통일할 수 있는 중심이 되어 온 나라의 대통령, 수상들, 잘났다는 위정자들을 기준 잡아 줄 것입니다. 그게 선생님입니다. 그건 강제가 아닙니다. 자연굴복시키는 것입니다. (211-315)

 

종교권의 교조주의자들이 얼마나 엄격한지 모릅니다. 시리아는 회회교문화권입니다. 그래서 기독교하고는 원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회교 지도자가 기독교권 집회에 참석했다 하게 되면 사형입니다.

그런데 문총재는 시리아의 맨 꼭대기 패들을 잡아다가 미국 이스트가든에 모아 놓고 성경 원리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기독교의 분파가 아니라 주파(主派)입니다. 예수가 죽어서 구원받았으니 예수 어머니 아버지가 와야 됩니다. 아들을 낳지 못했으니 부모 되는 자리의 권을 가지고 와야 됩니다. 참부모라는 말이 그렇게 위대한 말입니다.

선생님이 '예수는 내 제자다.'라는 말을 했다고, 기성교회에서 죽겠다고 난리입니다. 영계에 가 보면 다 압니다. 그런 말을 하면 욕 바가지가 굴러 들어올 걸 훤히 알면서 선생님이 왜 그런 얘기를 하겠습니까?

호메이니는 레버런 문에 대해 사형선고를 해 놓고 죽었습니다. '우리 마호메트 거룩한 성주님을 이렇게 푸대접하다니!' 하면서 사형선고를 했는데, 그 사람이 나보다 먼저 죽더라 이겁니다.

기성교회는 어떻습니까? 그 뒷방에 똥 싸 뭉개서 더럽혀 놓은 것을 통일교회 식구들을 통해 깨끗하게 치워 가지고 교단을 초월해서 예배 본 후에 내가 영계에 가려고 합니다. 예배를 필하고 난 후에 가려고 한다 이겁니다.

자기들은 모르지만 이미 우리 원리를 활용하는 목사가 상당히 많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불 포대기 위에 원리강론을 내놓고 보고 있다가 집사 장로가 들어오면 슬쩍 감추고, 나간 다음에는 다시 꺼내서 그저 밤을 새워 가면서 쑹얼쑹얼 외워서 써먹습니다.

낙엽이 하루아침에 떨어지는 게 아닙니다. 낙엽이 떨어질 때 한꺼번에 전부 다 떨어집니까? 한꺼번에 안 떨어집니다. 한 잎 두 잎 떨어지지 와르르 떨어지지 않습니다. 한 잎 두 잎 떨어지지만, 얼마 안 가서 푸른 옷 입었던 큰 나무도 한 잎도 안 남게 되는 것입니다. 알게 모르게 그렇게 처리하는 겁니다. (2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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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참부모 선포와 왕권

 

  ① 본래는 아담 가정이 왕궁 출발지

 

본연의 아담을 중심삼고 완성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아담은 장자입니다, 장자. 첫사랑을 받은 아들입니다. 장자권입니다. 아담은 첫사랑을 이어받을 수 있기 때문에 첫사랑을 중심삼고 부모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종적인 사랑으로 이어받아서 횡적 사랑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부부가 되는 것입니다. 부모권 복귀라는 말이 거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역사시대는 부모가 등장할 수 있는 터전이 없었습니다. 싸움입니다. 가인 아벨 싸움의 역사입니다. 인류역사는 전쟁 역사로 엮어져 나왔습니다. 이것을 종결짓기 위해서는 형제가 하나되어야 합니다. 알고 보니 원수가 형제입니다. 형님이었고 동생이었다 이겁니다.

그걸 누가 가르쳐 주느냐? 부모가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조상이 갈라진 것을 자기가 모르고 있는데 누가 가르쳐 줍니까? 부모가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부모가 가르쳐 줌으로 말미암아 화합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를 중심삼은 자녀입니다. 자녀들이 합해야 부모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기는 것입니다. 부모권 복귀입니다. 잃어버린 자녀를 찾아 가지고 부모가 자식을 대해 행사를 할 수 있는 권한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왕권을 잃어버렸습니다. 이 부모 출발의 이상은 뭐냐? 왕궁 출발입니다. 아담은 뭐냐 하면, 장자권을 부모권 왕권을 차지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정착해야 됩니다. 그 정착한 것이 왕궁의 기원지요, 부모의 기원지입니다.

그 다음엔 장자권의 기원지입니다. 천하는 이 전통에 따라서 전부 다 순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설정되면 천사장도 머리 숙여야 됩니다.

민주주의 세계와 공산주의 세계는 가인 아벨 관계입니다. 가인 아벨이 싸웠지요? 종교권하고 정치권은 종적인 면의 가인 아벨입니다. 이 종적인 면을 횡적인 것이 쳐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장자권을 복귀할 수 있는 기반을 잃어버렸습니다. 장자권 복귀할 수 있는 기반이란 것은 부모권을 자동적으로 내포하는 것입니다. 장자 위에 부모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부모권이 설정되면 왕권이 자라는 것입니다.

아담 가정은 왕궁의 출발지입니다. 황족으로부터 많아지면 백성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자권을 중심삼고, 종족을 중심삼고 그 종족이 왕권을 이어받는다고 하면, 그 다음 방계적 종족들은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게 원칙입니다. 그러니까 황족들입니다. 내가 하늘나라의 황족이라는 의식을 가져야 아담 가정 본연의 기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뭐냐 하면, 종족적 메시아입니다. 종족적 메시아라는 것은 부모이고 또 그것은 왕입니다. 장자권을 대표하고, 그 종족 왕권, 종족 부모, 종족 장자까지 상속하는 것입니다.

소생아담, 장성아담은 완성아담으로 말미암아 다 살아났습니다. 그건 뭐냐? 장자권, 종족적 메시아권은 예수가 부활한 가정 형태입니다. 그리고 그 전에 소생아담은 예수가 부활을 못 시킵니다. 예수 자신이 부활을 못 시킨다는 것입니다.

완성한 재림주가 와서 예수의 사명을 세계적인 권에서 완성할 수 있는 승리적 권을, 사탄 앞에 승리적 패권을 쥐어왔기 때문에 재림주만이 예수 권한을 병행(竝行)할 수 있고, 아담 권한을 병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기반에서 승리한 아담 완성한 대표, 예수 완성한 대표가 재림주입니다. 소생 장성을 전부 다 연합해서 완성시키는 것이 3차 아담이 되는 것입니다. 3차 아담 완성 기반이라 하면 예수도, 아담도 다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3차 아담 완성 기반을 중심삼고 승리적 패권 위에서 세계적 메시아권을 확립해야 하는 것입니다. (21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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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왕권 설정

 

참부모의 날에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첫째는 형제권 복귀가 끝나고, 둘째는 부모권 복귀가 끝났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셋째로 왕권 복귀가 남았습니다.

이제 부모권을 복귀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재림주를 보낸 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낸 거와 마찬가지로 종족적 메시아를 보내서 전부 다 수습하는 것입니다. 종적인 기준을 닦았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합니다. 종적으로 아담시대, 예수시대, 재림주시대의 세 기준을 닦았습니다. 이것을 선생님이 싸워 이겨서 닦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재림주 시대에 여기서 뻗쳐야 됩니다.

 이래 가지고 뭘 해야 하느냐 하면 자기 가정을 만들어야 됩니다. 원형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선생님으로 말미암아 셋이 이렇게 되셨습니다. 이것이 아담 부모, 예수 부모, 재림주 부모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자리에서 재림주를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담을 다시 보내는 거와 마찬가지로 보내 주는 것입니다.

3차 아담이 온 것은 2차 아담, 1차 아담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3차 아담이 와서 2차 아담을 찾았으니, 1차 아담인 자기 부모를 구하는 것입니다. 자기 어머니 아버지가 아담 자리에 올라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종교권 전통이 없어집니다. 종교가 필요 없게 됩니다. 전세계가 선민권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무엇이 벌어지느냐? 횡적으로 보면, 자기를 낳은 부모가 종족적 메시아가 되고, 자기가 낳은 혈통이 국가적 메시아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횡적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이 전체가 한 부모를 통해 연결된 자리에 선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한 부모입니다. 3차 아담도 한 부모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태어난 땅, 자기 고향이 하늘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고향의 아버지 어머니가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참조상이 되는 겁니다.

첫째가 뭐라구요? 하나님편에 서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가정이 하늘편에 서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어차피 부모님을 중심삼고 세계적 판도가 전부 연결되는 것입니다.

원래의 고향은 어디입니까? 원래의 고향은 선생님이 태어난 곳이지만, 모든 종족의 고향이 정주(定州)가 될 수 없습니다. 그건 여러분이 태어난 곳이 되어야 합니다. 고향이 틀리고 사탄이 점령했었는데, 여러분 고향에서 하늘을 중심삼은 부모가 태어나니 그곳이 에덴동산이다 이겁니다.

그리하여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동산을 중심삼고 태어난 여러분의 선의 후손은 이 세계를 향해 뻗어 나간다 이겁니다. 이 수직선을 중심삼고, 선생님 일족을 중심삼고 여러분이 전부 다 연결되어서 묶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종적인 것을 사랑하고, 이것을 자기의 일족보다 더 사랑해야 됩니다. 그러면 사탄이 점령 못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성립됨으로 말미암아 왕권 복귀가 가능한 것입니다.

본래 아담이 완성하면 천국의 아버지가 완성되고, 해와가 완성하면 천국의 어머니가 완성되고, 그래서 가정의 주인이 되면 가정적 천국의 왕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해와는 개인적 왕이고, 가정적 왕이고, 종족적 왕이고, 민족적 왕이고, 국가적 왕이고, 세계적 왕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이러한 국가기준을 넘어설 수 있는 때에 왔기 때문에 사탄세계의 왕권을 밟고 하늘세계의 왕권을 설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날이 1990년 3월 27일이다 이겁니다. 이럼으로 말미암아 세계는 레버런 문이 바람을 일으키는 대로 돌아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20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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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③ 왕권 복귀

 

부모권이 왜 필요합니까? 왕권복귀를 위해서 필요합니다. 왕권을 복귀하려면 동서남북 사방에 거칠 것이 없어야 됩니다. 여러분 집안에 왕이 오게 될 때 24시간 365일 언제든지 모실 수 있어야 됩니다. 세 발 되는 장대를 휘젓더라도 360도 어디든 걸릴 것이 없어야 됩니다. 언제나 환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는 일족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축복받은 사랑의 종족입니다. 무슨 사랑? 참사랑.

무엇이 참사랑이냐? 영원히 투입하고도 잊어버리고 또 투입하는 사랑입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사랑의 상대가 나보다 잘나기를 바라고, 아들이 나보다 잘나기를 바라는 그 원칙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도 자기 이상 투입해야 되겠으니, 투입하고 잊어버리지 않고는 자기 이상 투입할 길이 없기 때문에 주고 잊어버리는 참사랑의 길을 가야 됩니다. 거기서부터 통일이, 천지의 통일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자기 생명을 투입하고 '나 하나님 때문에, 통일교회 때문에 죽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내 자신을 희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만큼 했는데도 교회에서 몰라주고, 내가 통일교회 수십 년 믿었는데 선생님이 몰라준다.' 그런 말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일생 동안 고생했어도 하나님이 몰라주었습니다. 그러나 몰라주었다는 생각을 안 합니다. 하나님같이 맞고 투입하고 또 투입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끝까지 투입하다 보니 그것이 없어지지 않고 자꾸 쌓여서 나는 자연히 산꼭대기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거 이상하지요? 자꾸 투입하다 보니 나는 산꼭대기가 되고 세계의 정상의 자리에 서 가지고, 장자권으로부터 부모권, 왕권은 자동적으로 복귀된다 이겁니다. 그것이 재창조 논리에 일치될 수 있는 개념입니다. (206-269)

 

이제 참부모님을 선포할 수 있는 기반을 다 닦았습니다. '문총재는 참부모가 아니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기성교회 목사들 내 앞에 와 보라는 겁니다. 우리나라 대통령, 정당 당수 중에 '아니다!' 할 수 있는 사람 나타나 봐라 이겁니다. 미국 대통령이든지 이 땅 위의 나라를 다스리며 큰소리하는 사람 나타나서 문총재가 참부모가 아니라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논리를 세워 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도 내 말을 들어 보면 백발백중 꼼짝못하게 돼 있습니다. (204-84)

 

선생님이 어리석은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보다 똑똑한 사람입니다. 세계의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 날개 치는 패들을 전부 날개 아래 품고 거느리고 살아온 사람입니다. 우리 세계평화교수협의회만 하더라도 120개국에 있습니다. 거기에는 노벨상 수상자들도 많습니다.

그런 배경이 있기 때문에 <월드 앤 아이(The World and I)>를 4년도 못 되어서 세계의 이름 있는 잡지로, 세계의 챔피언 잡지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런 울타리를 가진 사람입니다. (204-84)

 

선생님은 참부모라는 간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면 문총재는 뭘 하는 사람이냐? 하나님을 누구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누구보다 더 잘 아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영생길을 똑똑히 가르쳐 주는 사람입니다.

참부모가 해야 될 게 뭐냐? 사망권 내에 있는 여러분을 해방시켜서 영원한 생명길로 이양시키기 위한 책임을 지고 있는 세계적, 역사적 인류의 대표자가 문총재요, 그분이 참부모입니다. 참부모는 참사랑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과 내용이 통일적으로 일치되는 귀결점, 귀일점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사랑을 중심삼고 거짓 사랑을 치워 버리는 것입니다. 거짓 사랑은 한 번이라도 투입할 줄 모릅니다. 받아 가려고만 합니다. 그렇지만 참사랑은 투입하면 전부 다 해소할 수 있고 구속이 가능합니다. 참사랑에서만 이것이 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총재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참부모는 참사랑을 가르쳐 줘야 됩니다, 참사랑. 그게 선생님의 책임입니다. (203-361)

 

이제는 세계에서 문총재를 집어낼 사람이 없습니다. 힘으로도 선생님을 당할 수 없습니다. 내가 악선전하면 어떻게 되는지 압니까? 이 대한민국이 곤란해지는 겁니다.

좌경 학생들을 누가 수습해 주었는지 압니까? 언젠가 대한민국 건국 이후 제일 혼란기라는 때에 고르바초프 간판으로 싹 전국을 휩쓰니까 '아이고, 정부 못 믿겠구만! 문총재 믿어야 되겠다!' 이렇게 된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방향을 딱 수습해 놓은 것입니다.

거기에서 뭘 했느냐? 참부모 선포를 했습니다. 참부모로 왔으면 참부모라고 선포해야지, 안 하고 어떻게 천상세계에 가서 하나님 앞에 얼굴을 들겠습니까? 진짜 참부모의 사명을 갖고 왔다면, 민족 앞에, 세계 앞에 참부모라고 선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어떻게 얼굴을 들고 갑니까?

예수가 자기를 메시아라고 선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문제입니다. 선포했다면 기독교가 피를 안 흘렸습니다. 피 흘리는 것의 십 배를 탕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선포를 못 했기 때문에 그 세계적인 기준이 드러날 때까지 사탄이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걸 압니다.

북한에서는 사탄편 참부모 자리를 점령해서 김일성이라는 거짓 부모가 나왔습니다. 약탈입니다. 전부가 약탈입니다. 기독교를 망하게 한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참부모를 선포함으로 말미암아 김일성은 내려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돌려잡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오기 때문에 내가 평양에 입성해서 평양대회를 하려고 계획하는 것입니다. 그건 내가 하는 게 아닙니다. 아담이 천사장하고 싸웁니까? 아담은 천사장하고 싸우지 않습니다. 천사장이 타락했으니 천사장을 시켜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세계의 천사장인 소련을 시키고, 지금까지의 아시아의 천사장인 중국을 시키고, 해와인 일본을 통해서, 해와 중심삼고 천사장과 하나 만들어서 김일성을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을 하나 만들어 내가 타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거기서 세계평화연합을 선포해 버리면 얼마나 멋집니까! 고르바초프를 오게 하고, 강택민을 오게 하고, 일본 총리를 불러 놓고, 부시 대통령을 불러 놓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도 한국에 나밖에 없을 것입니다. 대통령이 이거 할 수 있습니까? 그거 무엇 가지고 할 수 있느냐? 그런 기반을 다 닦았다는 것입니다. (204-178)

 

선생님은 흘러가는 사나이가 아닙니다. 역사시대에 어느 위정자의 배후의 모든 길을 모르고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기성교회의 지도자들은 모르지만 나는 확실히 알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시대에 지극히 어리석은 대표자로 낙인 찍혔던 통일교회와 문총재가 망국지종이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망합니까? 문총재하고 하나님은 어떤 관계입니까? 참부모가 뭡니까?

문총재가 참부모라고 선포했습니다. 참부모 아닌데 참부모라고 선포하면, 영계에 가서 지옥에 있는 영들이 칼침을 놓고, 선한 영들이 칼침을 놓을 텐데, 그렇게 무서운 일을 모르고 참부모라고 선포하겠습니까?

참부모가 뭐냐? 어떤 단체 책임자가 원불교하고 우리하고 교리 토론을 하는데 원불교는 구세주 논리를 말하지만 통일교회는 참부모 논리를 말한다, 구세주는 믿다가 버려도 되지만 부모는 숙명적인데 어떻게 버리느냐고 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런 것입니다. 버려 보라는 것입니다. 만우주 하늘땅 모든 것이 '이놈! 지옥 갈 패당아' 하는 것입니다.

당당한 자리가 참부모의 자리입니다. 이것을 악마가 알기 때문에 전세계를 동원해 나를 사방에서 공격했습니다. 거기에 공산당이 가담했고, 모든 교파라는 교파, 종파라는 종파가 나를 반대했습니다. 거기에 마피아로부터 테러단까지 전부 다 합해서 추방하려 했습니다. 별의별 놀음을 다해서 사격을 했습니다. (203-146)

 

문총재를 두고 참부모라고 하는데, 나는 그 참부모라는 말을 싫어합니다. 그게 얼마나 무서운 말이냐 이겁니다. 참부모가 되었으면 참아들딸을 낳아야 되고 참아들딸을 길러야 됩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참부모가 되었으면 참된 가정을 거느려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족속이 붙으면 참족속을 거느려야 되고, 이것이 민족으로 확장될 때에는 민족을 거느려야 되고, 국가로 확장될 때는 국가를 거느려야 되고, 세계로 확장될 때는 세계를 거느려야 되고, 하늘땅 앞에 영계와 육계에 꽉찬 인류로 확장되었다 할 때에는 그것을 거느릴 능력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엄청난 것입니다. 그런 것을 다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왜 참부모라는 말을 발표했느냐? 나도 발표하기 싫습니다. 그렇지만 발표를 안 하면 통일교회 교리가 틀려집니다. 이 발표를 안 하면 통일교회 교리가 거짓말이 됩니다. 진리가 거짓이 되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진리가 진리답기 위해서는 내 몸이 찢기고 밟히고 무슨 추태를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수난과 핍박을 당하더라도 단연코 행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나이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문총재가 다른 종파의 종단장, 교주들과 다른 점입니다. (203-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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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부모님 사진 모시기

 

  ① 부모님 사진을 모시는 이유

 

이제는 여러분이 자기 고향에 가서 일족을 복귀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고향에서 부흥회를 했을 것입니다. 부흥회를 한 것과 마찬가지로 전부 다 면 단위 중심삼고 활동해야 합니다. 이제 종족적 메시아가 되려면 선생님 사진을 액자에 넣어서 모시도록 해야 됩니다.

그거 그냥 주면 안 됩니다. 사진첩을 몇 백 개를 만들어서 좋은 사진이라고 하면서 나눠 주고는 승낙받는 것입니다. 사진을 나눠 주고 승낙받은 사람 집에는 방에 들어가서 제일 좋은 곳에다 자리잡아 주는 겁니다.

그래 놓으면 그 집 주인에게는 여러분이 영적으로 형님이 됩니다. 종적으로 보면 아버지 자리이고, 횡적으로 보면 형님 자리입니다. 그러니까 종적인 아버지 자리에서, 횡적인 형님의 자리에서 그 집 주인에게 '이건 여기에 걸어야 되겠소!' 지시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사진을 나눠 주는 사람이 종족적 메시아가 되는 것입니다. 120가정 이상에서 사진을 빨리 걸어 모시도록 해야 됩니다.

사진을 120개 이상 걸도록 해야 됩니다. 사진 건 집은 통반 격파도 되는 것입니다. 조건이 그겁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영계의 조상들이 매일 새벽에 와서 경배하는 것입니다. 한 시 두 시 세 시 이후에 불 켜 놓으라는 겁니다. 조상들이 와서 경배를 다 끝내면, 다시 두 시간 동안 있다가 다섯 시에는 여러분이 경배하라는 겁니다.

영계 영인들은 참부모를 못 모셨습니다. 영계에 간 사람은 형이고, 여기는 동생입니다. 장자권을 동생이 가졌기 때문에, 거꿀잡이 됐기 때문에 영계에서 내려와서 경배하는 것입니다. 경배하는 것은 뭐냐 하면, 자기 후손들 잘되게 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 조상들이 하나님 자리에서 복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후손들에게 복을 주는 일에 협조해 주는 것입니다. 투입하는 데 있어서 말입니다.

영계에서 협조하는데, 사랑하는 자기 친척이 협조하는 게 좋겠습니까, 이웃 동네 어느 영감이 와서 협조하는 게 좋겠습니까? 영감이 와서 협조하게 되면, 협조하는 분량의 몇 퍼센트를 나눠 줘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누가 들어와서 손댈까 봐 밤을 새워 가면서 달려야 할 때입니다.

그런 걸 설명하면 서로 사겠다고 할 것입니다. 문총재가 파란만장한 역사적 혼란의 와중에서 죽지 않고 살아 남은 것은 하나님이 보호하사! 세상에서 다 망하고 흔적도 없을 텐데 남은 것은 하나님이 보호해서 남아졌다! 문총재를 하나님이 역사 이래 제일 사랑하기 때문에 제일 어려운 환난 가운데서 제일 위대한 업적을 세웠다! 그건 이론에 맞는 것입니다.

사진을 모신다면, 부모를 대신 모시게 되면, 가정이 보호를 받는다는 걸 의심하지 않습니다. 설명하면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그런 설명도 안 했는데 사진을 사 간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왜 사진을 사려고 그러시오?' 하니까, '맘이 자꾸 그래요. 사진 사 가면 모든 악운이 도망갈 것 같고 좋을 것 같아요.'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큰 사진을 사 갔다는 겁니다. 그런 때가 왔습니다.

청년들이 지금 선생님 사진을 갖고 다닙니다. 요전에 소련에서 온 카메라맨이 호주머니 안에 하나의 비밀스런 보물을 갖고 다닌다고 그러더랍니다. 뭐냐고 하니까 종이로 만든 주머니에서 부스럭부스럭하고 선생님 사진을 꺼내더라는 겁니다. 왜 이걸 갖고 있느냐니까, 그걸 가지고 다니면 마음이 편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입니다.

십자가를 달고 다니는 것은 기독교인이라는 뜻입니다. 부모님 사진을 갖고 있으면 참부모 아들딸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상징?형상?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소생-장성-완성의 소생권 내에 들어가기 때문에 보호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사진을 종족적 메시아가 만들어 줘야 됩니다.

통반 격파는 부모님 사진을 갖다 모시게 하는 것입니다. 부모님 사진만 갖다 올려놓으면 수련은 안 받을 수 없습니다. 수련받고 감화받으면 '엄청난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인데, 사진값은 그 가치에 비례해서 내소!' 해서 통반 격파 비용으로 써도 괜찮습니다. 미국에 가서 교육받고 온 사람들은 일괄적으로 나눠 주라는 것입니다. (21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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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부모님 사진의 위력

 

지금까지는 장자권 복귀를 중심삼고 아벨이 가인을 위해서 희생해야 하는 때였기 때문에 영계가 지상세계를 이용해 먹었습니다. 그러나 제31회 자녀의 날을 중심삼고 영계와 육계를 전부 다 교체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장자권이 복귀되었기 때문에 아담권이 중심이 되고 장자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사장은 아담의 말을 들어야 되고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인류가 문총재를 반대하고 죽일 사람이라고 했지만, 이제는 문총재를 존경하는 기준에 있기 때문에 악마가 와서 협조하라고 해도 협조 못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편으로 끌고 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문총재를 소개해 주고 안내해 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을 찾아 세워야 됩니다. 그것이 어디서 돌아서야 되느냐 하면 가정입니다, 가정. 가정에서 타락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세계적인 탕감을 개인으로부터 시작해서 선생님의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을 중심삼고 세계적 판도의 가인 아벨에 승리해서 장자권을 가지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승리한 이 모든 가치를 어디에 세우느냐? 아담은 전체 가치의 중심입니다. 아담을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가정을 잃어버렸고 하나님의 사회, 하나님의 국가, 하나님의 세계, 하나님의 천주, 하나님의 사랑까지 잃어버렸습니다. 이걸 전부 다 탕감해서 이제는 가정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모든 가정이 만민 평등한 가정 기준에 서는 것입니다.

 이 가정을 중심삼고 돌아갈 때 누구를 중심삼고 돌아가느냐? 전부 다 선생님을 중심삼고 따라 나가는 것입니다. 여기에 악마는 따라갈 수 없습니다. 악마는 혈통적으로 더럽혔지만, 이쪽은 타락세계의 혈통을 맑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는 축복받은 가정들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가정 하늘나라의 장자권이 되어 있으니, 가정 하늘나라의 차자권은 무수한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마음대로 관리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섭리적으로.

이제 그 가정을 찾아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축복가정들이 기지가 되라 이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먹고 사는 모든 비용, 저금통장에 있는 것을 전부 털어 써야 됩니다. 이래 가지고 나라를 위해서 모든 것을 바쳐야 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우주와 교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의 밑감입니다. 그 날을 잡기 위해서는 비싼 밑감 하나가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밑감이 되라 이겁니다. 그래서 각 가정에 들어가서 정착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에서 양을 잡아 그 피를 바름으로 말미암아 재앙을 다 피할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 집에 선생님의 사진만 있으면 사탄이 침범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조상들이 새벽에 와서 인사하고, 그 집을 영인들이 끌고 다니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전부 다 컨트롤하는 것입니다. 이럴 수 있는 때가 왔습니다. (213-121)

앞으로 세 가지의 운동을 해야 됩니다. 먼저 입회원서 쓰고, 그 다음에는 참부모님 사진 모시고, 교회 깃발을 달아야 됩니다. 그 세 가지를 다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세 가지를 하게 되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습니다. 깃발은 통일교회를 대표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 선생님 존영은 참부모입니다. 그 다음에 입회원서는 입적하는 것입니다. 입적할 수 있는 나라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출발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참부모를 중심삼고 참부모를 모신다는 건 참부모와 우리 집이 하나됐다는 것입니다. 그럼 깃발은 뭐냐? 세계적 통일교인을 가리키는 환경적 대표입니다. 상대적 대표입니다. 깃발은 내 개인을 대표하기도 하지만 부부도 대표한 것입니다. 우리 가정도 대표했지만, 우리 종족도 대표하고, 우리나라도 대표한다 이겁니다. 통일교회 전체, 초인류를 대표한 것입니다.

그 깃발을 반드시 달아야 합니다. 깃발을 달게 되면,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나올 때 장자권이 전부 다 학살당하던 것을 양피를 바름으로 말미암아 죽음을 면하고 회생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딱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민족이 뱀에 물려 죽어 갈 때 구리뱀을 본 사람들은 살았지요? 마찬가지로 사탄세계가 망해 들어가는 때에 예수를 믿음으로써 살아났습니다. 지금 이 땅 위에서 사탄이 가진 모든 권한을 빼앗아 오기 위해서는 깃발 달고, 참부모 사진 모시고, 입적만 하면 그만입니다. 소속이 벌써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히 선생님이 강조하는 것이, 부모님 사진 모시는 것하고 깃발 다는 운동입니다. 그것이 벌써 3년째입니다. 이런 때가 올 것을 알기 때문에 이런 일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입회원서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입회원서 받을 때에는 '부탁드립니다.' 하고 인사해야 됩니다. 사탄이 아담한테 굴복하지 않으면 구원 못 받습니다. 그 다음에는 부모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참부모를 모시지 못했지만, 참부모를 모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어머니 아버지 사진보다도, 조상들 사진보다도 참부모 사진을 제일 좋은 곳에 모셔야 됩니다.

자기 할아버지 어머니 사진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자기 부모 사진을 먼저 놓고 그 옆에 참부모를 모시면 안 되는 것입니다. 참부모는 조상입니다. 조상을 설정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평면 가족 기반에서부터 전통적 기반을 중심삼고 돌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는 사탄과 관계없습니다. 원리가 그렇잖습니다.

이 종족적 메시아는 누구는 가고 누구는 안 가고 할 수 없습니다. 안 하면 자기 일족이 걸려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서 후손들이 이걸 안 하면 저나라에 가서 조상들이 타락한 아담과 해와를 저주하는 것의 몇백 배 더한 저주를 할 것입니다. 그건 선생님이 책임 안 집니다. 참소하는 걸 하지 말라고 못 하는 것입니다. 하지 않으면 참소받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5퍼센트의 책임분담을 해야 됩니다. 그 책임분담을 못 하면 완성이 없습니다. (220-90)

 

사탄세계에서도 부모의 사진을 겁니다. 끝날이 왔으니 하늘 부모를 모시고 교육의 자료로 쓰자는 것입니다. 문총재가 유명합니다. 기성교회 목사라 하더라도 나라를 위한 애국자라는 것은 다 인정합니다. 또, 선생님이 이룬 공적에는 천하가 다 머리를 숙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 사진을 건 이상 저분 앞에서는 부처끼리 싸움도 함부로 못 해! 문총재의 가르침이 뭔가?'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들딸 앞에서도 교육을 하는 겁니다. '야 야, 저 문선생 앞에선 안 돼!' 그러는 겁니다. 자기 부모 사진 이상 모심으로 말미암아 조상들이 와서 조상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조상들이 와서 그 집을 모실 수 있는 제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천상세계의 복받을 수 있는 길이 있기 때문에, 새벽 세 시가 되면 자기들은 자지만 일가 주변의 사탄 악마를 모두 쫓아내는 것입니다.

또, 깃발을 달아야 합니다. 사진 붙이고, 깃발을 달면 다 끝나는 겁니다. 방안에 선생님 사진을 붙이고, 통일교회 깃발을 달면 하늘나라의 권속이 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 권속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깃발 다는 것에 대해 저주하다가 벼락 맞은 사람도 많았습니다. 참 신기합니다. 선생님을 손가락질하다 손에 병이 나서 손을 쳐들고 며칠 밤을 기도하고 회개하고야 낫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느냐? 천운이 찾아오는데 개인 운세로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숙명적인 길입니다, 이게. 운명적인 길은 동서남북을 엇바꿔서 대할 수 있지만, 숙명의 길은 상하는 상하고 좌우는 좌우입니다. 바꿀 수 없습니다. 사진을 걸게 하라는 것은 대한민국에 때가 왔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타락한 세계는 거짓 부모와 인연됐습니다. 참부모를 중심삼고 모시면 횡적으로 접붙이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나라를 거치고 세계를 거쳐 이쪽 편으로 돌아와서 접붙여야 됩니다. 내가 사랑의 마음을, 만민 구도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접붙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니 얼마나 복입니까! 말 안 들으면 욕을 해서라도 붙이게 해야 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권속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모세의 지팡이를 바라본 사람은 다 살았습니다. 통일교회 깃발을 바라보고 갈 적마다 경배하고 올 적마다 경배하고, 사진 보고 갈 적마다 경배하고 올 적마다 경배하면 산다는 것입니다. (2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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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권 참사랑

 

제 1 장 참사랑이란

 

 1) 사랑은 평화와 행복의 원천

 

사랑은 가지면 가질수록 기쁘고 한 번 가지면 좋아서 놓고 싶지 않습니다. 인간의 노력으로는 생명의 근원을 지배할 수 없습니다. 내 생명의 동기나 과정, 생명의 종말까지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참사랑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사랑에서 태어났으니 사랑의 길을 가다가 죽을 때도 사랑을 위해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빛깔은 어떤 색일까요? 밤에는 까맣고, 낮에는 하얗고, 저녁 때쯤이면 노랗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랑의 빛깔이 어떨 것 같아요? 사랑의 중심 빛깔에는 평화와 통일, 인류의 평등사상을 이룰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지성소에 함부로 들어가다가는 불에 타서 죽고 맙니다. (통일세계 1984. 2-19)

 

사랑하는 상대가 나타나면 얼굴에 꽃이 핍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드느냐? 사랑만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총이 아닙니다. 위협이 아닙니다. 그 사랑은 무슨 사랑이냐? 우주의 주인되는 사랑, 우주의 중심되는 사랑, 우주의 원천되는 참사랑입니다.

사랑은 공익성을 띤 무형의 질서요, 평화요, 행복의 요체입니다. 세계 인류를 위한 공동의 재산이요, 하나님의 의지와 힘의 상징입니다.

사랑은 최고의 가치입니다. 참사랑만 끌고 가면 하나님도 따라오고, 세계도 따라오고, 다 따라옵니다. 사랑의 자리에 서면 모든 것이 다 따라옵니다. (219-22)

 

참사랑이란 영원히 같이 있더라도 좋기만 한 사랑입니다. 영원히 같이 있더라도 같이 살더라도, 같이 보더라도, 같이 말하더라도, 같이 느끼더라도, 같이 듣더라도 좋기만 한 사랑입니다. (통일세계 1980. 2-10)

 

사랑은 만민이 좋아하는 사랑이요, 만민이 환영하는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 가운데서 태어나고싶고 살고싶고 죽고싶어 합니다. 그런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193-138)

 

사랑은 작다면 지극히 작은 것이요, 크다면 지극히 큰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눈만 한 번 깜박여도, 그것이 천지가 뒤집어지는 것처럼 느껴지고 또 사랑하는 사람이 방긋 한 번 웃는 표정만 지어도 천지가 들락날락하는 것을 느낍니다. 예민하다면 그렇게 예민하고, 작다면 그렇게 작고, 크다면 그렇게 크고, 보인다면 보이고, 안 보인다면 안 보이는 것입니다. 그 경계선을 깨뜨릴 수 있는 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에 점령되어 있음으로 말 한 마디 하더라도 사랑을 중심삼고 하려 합니다. (51-163)

 

사랑의 힘은 원자탄의 위력보다 크고 위대합니다. 사랑은 인간을 죽음으로부터 새 생명으로 부활시키는 힘을 부여하지만, 원자탄은 인간에게 오직 죽음만을 안겨 줄 뿐입니다. 원자탄은 창조가 아니라 심판이며, 파멸입니다. 세계를 하나로 일치시키는 것은 무력을 수반한 힘이 아니라 참사랑인 것입니다. (175-197)

 

나라마다 국경이 있고 문화배경이 있고 풍습이 있지만 이것을 넘어설 수 있는 무기가 있다면 그것은 참사랑밖에 없습니다. (205-250)

 

인류 역사에 있어서 참사랑을 완성하면 정치?경제?문화 문제는 물론이고 모든 분쟁과 갈등 문제도 깨끗이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 인류가 안고 있는 모든 난문제들은 참사랑의 완성으로만이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한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6.9-16)

 

참사랑을 찾아야 합니다. 참사랑은 어디 가야 만날 수가 있느냐? 참사랑은 밤낮없이 불변하고 영원한 것입니다. 나 혼자만을 위한 것이 참사랑이 될 수는 없습니다. 참사랑이 나 개인의 소유일 수만은 없습니다. 참사랑은 만인의 것이며, 우주 공유의 것입니다. 참사랑은 가정?사회, 국가, 세계?우주까지 연결되는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6. 9-16)

 

참사랑이 완성됐다면 감응의 하나님께서는 그 참사랑에 홀딱 빠져도 후회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참사랑 가운데서라면 어떤 일이 생겨나도 마냥 좋아하실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참사랑의 세계에서 인류가 산다고 한다면 일생동안 후회없는 행복된 삶이 될 것입니다. 또한 세상에 전쟁의 역사도 없을 것이며, 불만이나 불행이 없는 세계가 되었을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6. 9-15)

 

일생 동안 사랑을 위해 사는 사람에게는 만물도 축복을 보낼 것입니다. 꽃도 그 집 뜨락에서 피기 원할 것이며, 한 마리 새도 그 집 정원수에 집을 짓고 노래하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것은 만물의 가치를 알고 만물을 진정으로 사랑해 주기 때문입니다. (통일세계 1982. 8-16)

 

하나님도 사랑을 소망하고 사랑이 크기 때문에 하나님도 사랑 가운데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됩니다. 그래야 이론에 맞는 겁니다. 하나님도 소망으로 바라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은 하나님보다 큰 것입니다. 모든 생명력의 중심인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이상적인 요건의 중심 위치를 차지하고, 하나님과 일치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는 한 남아 있습니다. 사랑 가운데는 돈도 있고, 지식도 있고, 권력도 있습니다. 사랑의 권력이 만년 권력입니다. 진짜 사랑을 아는 사람은 천상세계에 가서 배울 것이 없습니다. (202-85)

 

참사랑이 뭐냐? 참사랑은 종횡을 통해 90도 각도를 가지고 어디든지 각도가 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동양 집에도 맞고, 서양 집에도 맞고, 오색인종, 문화 배경, 모든 종교 배경이 전부 다 다르다 하더라도 같이 갈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참사랑입니다. (180-86)

 

우주는 축소되었다가 확장되는 작용을 합니다. 숨을 쉬는 겁니다. 축소시키고 확장시키는 그런 작용을 무엇이 조정하느냐. 정치 권력이 아닙니다. 지식이 아닙니다. 돈이 아닙니다. 사랑이 하는 것입니다. (121-104)

 

사랑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면 날아가는 새를 보고도 '아 저 새는 왜 지지배배 하지? 아, 사랑하는 님을 그리워하는구나' 하게 됩니다. 거기에서 시가 읊어지고 문학작품이 나옵니다. 우리들 인생살이의 역사도 자연속에 어울려 사랑의 교향곡이 재현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입김도, 사랑의 손길도, 사랑의 노랫소리도, 사랑의 말소리도 모두 좋은 것입니다. (112-258)

 

참사랑 앞에는 어떠한 악한 힘도 녹아납니다. 그것은 보기만 해도 좋고 스치기만 해도 좋습니다.

사람을 구성하는 본질적인 내용이 되는 요소는 생명보다 앞서 작동하고 근원이 되어야 할 사랑임에 틀림없습니다. (통일세계 1980. 2-10)

 

사랑을 위해 사는 일생은 생산적인 결실의 삶이요, 사랑을 모르고 사는 일생은 소모적인 멸망의 삶인 것입니다. 하나님도 인간도 우주도 사랑을 위한 삶을 살기를 원하는 것이 본연의 삶인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2. 7-18)

 

참된 사랑은 절대적이요, 불변이요, 영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세계)

 

사랑에는 발전도 없고 그 어떤 혁명도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은 원형 그대로가 완전한 것이고 불변한 것이며, 영원한 것이고 절대적인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6. 2-18)

 

사랑은 자연스러운 가운데, 최고의 자유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진실한 사랑입니다. (131-302)

 

인간이 사랑의 눈을 뜨게 되면 자신의 몸과 마음은 우주 속에서 입체적인 관계를 맺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가을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미소를 짓게 되며, 봄동산에 피어나는 꽃 속에 아름다움을 가누어 보고 싶어 한송이 꽃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6. 2-28)

 

세상에서 제일 빠른 작용은 사랑의 작용입니다. 이 땅 끝과 저 땅 끝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 사랑하게 되면 그 땅 끝을 넘어서서 잡아당기는 것입니다. 사랑은 그러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112-204)

 

은혜받은 사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아름답게 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경지에 들어가면 모든 것을 통할 수 있고 초월할 수 있습니다. 근원적인 사랑의 감정을 중심으로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 인체에 있는 여러 기관들도 사랑이란 한 목적을 중심으로 생겨났습니다. 눈은 사랑을 찾기 위해서, 코는 사랑의 냄새를 맡기 위해서, 귀는 사랑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 생겨났습니다. 우리가 듣는 소리 중에서 들어도 들어도 싫지 않고 좋은 소리는 사랑한다는 소리입니다. 모든 존재가 다 좋아할 수 있는 주제는 사랑 이외에는 없습니다. 그 사랑이란 대우주가 환영할 수 있는 참사랑입니다. (108-46)

 

사랑의 속성은 좋은 것만 사랑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지극히 낮은 것도 높은 것 이상으로 사랑할 줄 아는 것이 참사랑이라고 정의를 내리는 것은 타당한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님도 꼼짝 못하게 하는 권위를 가졌습니다. 하나님도 사랑에는 약하시다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도 인간의 사랑냄새를 맡는다면 얼굴 가득히 웃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사랑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143-85)

 

하나님도 사랑을 소망하고 사랑이 크기 때문에 하나님도 사랑 가운데로 들어가야 됩니다. 그래야 이론에 맞는 겁니다. 하나님도 소망으로 바라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은 하나님보다 큰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것이 무엇이냐? 참사랑입니다. 참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합니다.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참사랑의 길이며, 참사랑의 길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통해 보고 듣고 먹고 만져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114-12)

 

사랑을 통해 살게 될 때 인간세계는 행복이 시작됩니다. 인간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완성이라든가 이상 실현은 사랑의 기준을 떠나서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 만물은 사랑을 바탕으로 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창조된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근원되는 사랑을 중심삼고 시작되었습니다. (162-51)

 

세상의 모든 것은 한 번 주면 없어지지만 사랑은 주면 줄수록 더 많이 돌아옵니다. 그래서 사랑을 좋아합니다. 사랑은 언제나 줄 수 있고 채울 수 있어서 언제나 기쁘고 즐거울 수 있지만, 돈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주고나면 없어지고, 권력이 아무리 좋아도 쓰면 닳아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랑은 주면 줄수록 무한정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129-265)

 

참사랑이 뭐냐? 할머니 할아버지라도 영원히 죽어도 놓고 못사는 것입니다. 그걸 잡기만 하면 영원히 좋아서 놓고 못사는 것이 참사랑입니다. 늙은이는 물론이고 남자 여자도, 물론이고 청소년도 물론입니다. (148-317)

 

할아버지들이 사랑의 맛을 보고는 '아이구, 옛날에 먹던 것 싫어! 오늘날 문명의 향취와는 달라! 싫어! 사랑 냄새 집어치우고 다른 냄새면 좋겠다!' 이러겠습니까? 모든 세포가 '하, 맛있다!' 할 수 있는 맛은 빵도 아니고 밥도 아닙니다. 그래서 사랑은 모든 것의 핵을, 초점을 이루고 있습니다. 정수(精髓)와 같은 것이 사랑입니다. 그러한 사랑으로 상대하면 어디든 무사통과입니다. (148-318)

 

참사랑이란 영원히 계속되는 사랑입니다. 봄에도 그 사랑, 여름에도 그 사랑, 가을에도 그 사랑, 겨울에도 그 사랑, 소년시대에도 그 사랑, 장년시대에도 그 사랑, 노년시대에도 그 사랑, 영원한 세계인 영계에 가서도 그 사랑입니다. 변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194-303)

 

사랑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사랑을 통해서만이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에게나 인간에게나 사랑은 절대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조화를 이루면 원형운동을 이루게 됩니다. 사랑으로 일체가 되고 사랑의 열매를 맺게 되면, 하나님은 내려오고 인간은 올라가게 되어 중간에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원형의 구심점이 되어 구형운동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구심점은 사랑의 조화가 이루어지는 곳이고, 생명이 태동하는 자리이며, 평등주의와 공동주의의 시발점인 것입니다. 그곳에는 사랑의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주의 모든 작용과 포용하는 힘은 사랑인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2. 7-26)

 

사랑은 혼자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습니다.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 평화라는 것도 한 나라를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 국가와의 사이에서 성립되는 상대적 관계를 말합니다. 상대방과 동등한 상대적 관계를 맺으면서 사랑할 수 있어야 참된 행복을 느끼는 것입니다. 자유도 그렇습니다. 혼자서는 진정한 자유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사랑 속에서 사랑과 더불어 얻어지는 자유가 진정한 자유입니다. 참된 사랑 속에서는 설사 채찍을 가지고 독재를 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구속이 아니고 더 진한 기쁨과 희열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상대방을 위해 주는 것이고 자기가 희생해서 남을 살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통일세계 1986. 6-29, 미래의 주인공-198)

 

사랑이란 내 몸 마음이 자동적으로 하나되는 그 중심 자리의 기둥입니다. 개인, 가정, 종족이 같은 점, 국가, 세계, 천주?하나님이 같은 중심, 한 기둥에 자리합니다. 그 중심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참사랑의 자리는 영원한 정착점입니다. (230-135)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으면 아버지 앞에 갈 수 없다'고 한 예수님 말씀 가운데 하나가 빠졌습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사랑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사랑이니…'해야 되는데 사랑이 빠졌습니다. 이것을 성경에 집어넣어야 합니다. 이런 말을 하면 기독교인들은 '오, 불경스러운지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물어 보면 '그렇고 말고' 합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은 사랑을 좋아합니다. 사랑 중에서도 참사랑을 좋아합니다. (17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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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사랑은 무한히 주고 또 주는 것

 

사랑은 자기를 백퍼센트 투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할 때 사랑 때문에 모두 백퍼센트 투입한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사랑은 위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189-223)

 

하나님은 독재자가 아닙니다. 하나님도 인간을 위해 투입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 앞에 있는 것은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년만년 하나님을 따라가려고 합니다. 위하는 천리의 존재세계 앞에 자기 스스로 존재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위해서 존재해야 합니다. 위하는 데서만 동서양을 통할 수 있고 고금을 통할 수 있습니다.

남을 위해 주고 또 주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시에 자체를 소모시키던 입장과 일치됩니다. 나를 투입한다는 것은 제2의 나를 만들기 위한 것으로 하나님이 창조할 때 자신을 투입하신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재창조역사는 탕감복귀노정이고, 탕감은 재창조역사를 통해 하기 때문에, 자신을 투입하는 데서만이 재창조가 벌어집니다. 투입하고 투입하고 또 투입하는 데서 참사랑 논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위하는 데는 망하지 않습니다. 작은 데서 큰 것으로 해 가지고 큰 것이 그 다음에는 어디로 가느냐 하면 안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225-15)

 

사랑은 주고 나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주고도 더 주고 싶은데 못 주어 부끄러움을 느끼는 그런 사랑입니다. 주고 나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일수록 진정한 사랑의 주인입니다. 사랑은 주면 줄수록 더 큰 것으로 보태집니다. 또한 작용하면 할수록 들어가는 힘보다 나오는 힘이 더 큽니다. 때문에 망하는 것이 아니라 흥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이 흥하는 법은 없습니다. (164-322)

 

사랑에는 소모가 없습니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커집니다. 역학의 원칙은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소모되는 것이지만, 참사랑은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소모가 안 되고 커갑니다. (114-67)

 

사랑의 본질은 위하려고 할 때는 커지지만 자기를 위하라고 할 때는 점점점 더 작아집니다. (164-321)

 

참된 사랑은 무엇이냐? 주고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주고 또 주고, 또 주는 것입니다. (240-300)

 

사랑의 세계는 주고 주고 주더라도 무한히 계속되는 것입니다. (121-173)

 

사랑이란 말은 참 위대합니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말 한마디로 탕감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억만금의 빚이 있다고 해도 사랑의 말 한마디면 탕감하고도 남습니다. (227-254)

 

무한대의 이 우주를 중심삼고 주름잡고 살 수 있는 권한은 참사랑의 집밖에 없습니다. 사랑은 위하는 데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대주재자이시고 위대하지만 사랑앞에는 머리를 숙이는 겁니다. (48-149)

사랑은 하나님도 홀로 이룰 수 없습니다. 사랑은 반드시 상대적 기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랑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자기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로부터 자라 올라가는 것입니다. (57-120)

 

참사랑이란 뿌리를 어디에 두고 하는 말이냐? 하나님이 아무리 전지전능한 분이라도 그 뿌리를 하나님에게 두고 있지 않습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은 참사랑의 주인공인데도 그 사랑의 뿌리를 하나님에게 두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람으로부터 뿌리를 심겠다고 하십니다. (177-269)

 

사랑은 주면 줄수록 생기는 것이요 끝이 안 나는 것입니다. 더 가중적으로 줄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것은 모두 끝이 납니다. 돈도 끝이 나는 것이요, 지식도 끝이 나는 것이요, 권력도 끝이 나는 것입니다.

세상 만사의 모든 인간 사정, 인정을 통한 것은 다 끝이 나지만, 영원한 참사랑은 아무리 주더라도 끝이 나지 않습니다. 더 무한에 가까울 수 있는 내용이 영속적으로 계속되는 놀라운 것입니다. (121-242)

 

사랑이라는 것은 자기를 중심으로 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랑은 나에게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통해서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대 없이는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145-215)

 

사랑은 혼자 이룰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잘났더라도 혼자서는 이룰 수 없습니다. 이것은 주체가 있으면 대상과의 관계에서 설정되기 때문에 아무리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도 자기 중심으로 사랑을 이룬다면 자극과 충동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 여건이 필요한 것입니다. (219-15)

 

우주의 근본은 인간이고, 인간의 근본은 생명입니다. 생명의 근본은 사랑이고, 사랑의 근본은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혼자 있어서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반드시 상대적 관계를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이 사랑의 근원지라면 그 사랑에 상대되는 자격을 갖고 있는 존재는 인간밖에 없습니다. (통일세계 1970. 10-14)

 

사랑이란 말은 혼자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희망이란 말도 혼자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생명도 혼자 독단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연결된 입장에서 나옵니다. (69-61)

 

자, 하나 물어 봅시다. 인간에게 있어서 영원히 남겨야 할 것이 있다면 생명과 사랑을 남겨야 됩니다. 그러면 생명이 먼저예요, 사랑이 먼저예요? 어떤 거예요? 하나님에게는 존재하기 전부터 사랑이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해 가지고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생명이 먼저이고 사랑이 두 번째이고, 인간에게는 사랑이 첫 번째이고 생명이 두 번째입니다. (165-75)

 

하나님이 사람을 어떤 존재로 지었느냐, 하나님의 절대 유일의 가치가 될 수 있는 사랑의 대상자로 지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가치, 사랑의 상대권을 갖추어 남자를 지었고 여자를 지었습니다. 사람은 사랑에서 나서 사랑에서 커서, 사랑에서 살다가 사랑에서 죽습니다. 그런데 그냥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체되시는 하나님이 영원, 불변, 유일하니까 그 앞에 대상적 사랑의 자리에 서게 될 때는 영생하는 겁니다. (89-68)

 

아담과 해와를 지은 목적은 기쁘기 위해서입니다. 보고서 기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말하고서 기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만져보고서 기쁘기 위한 것이 아닌 사랑을 중심으로 기쁘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기쁨을 성사하기 위해 인간을 창조한 것입니다. (114-12)

 

하나님은 절대적 존재이시지만 사랑의 상대가 될 수 있는 존재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상대자는 바로 인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상대자로서 인간이 완성된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타날 때, 하나님은 행복한 하나님, 기쁨의 이상을 찾은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137-85)

 

하나님의 꿈은 단 한가지 사랑의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랑 이상의 실현은 하나님 혼자서 이룰 수 없습니다. 사랑이나 행복, 기쁨 등은 한 개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권이 없이는 절대로 성립될 수 없는 것입니다. (161-136)

 

사랑은 어디서부터 나오느냐, 상대로부터 나타납니다. 상대가 못생기고 미우면 사랑도 후퇴하려 하고, 상대가 곱고 좋으면 사랑의 작용도 그만큼 빨라집니다. 상대의 말?아름다움?냄새?맛 등 상대의 요소에 따라 사랑의 작용이 결정되게 됩니다. (1982. 10. 29)

 

사랑은 어디서 나오는가? 나에게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상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상대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내가 머리를 숙이고 상대를 위해야 되는 것입니다. '위하여 살라' 고 하는 천리가 여기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지극히 고귀한 것이 나에게로 찾아오는데, 그것을 받으려면 높이고 위해야 한다는 '위하는 철학'을 이루어야 합니다. (1986. 3. 14)

 

내가 살아 움직이는 것, 내가 활동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어떠한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목적이 무엇이냐? 사랑의 세계를 구현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랑의 구현 때문에, 사랑을 이루어야 한다는 목적에 의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의 목적이 참사랑의 구현에 있으니 인간의 존재가치도 이 참사랑에 의해 결정되어지게 됩니다. 이 얼마나 멋있는 일입니까. 사람은 자기의 사랑하는 상대가 자기보다 몇천 배 아니 무한대의 가치적인 존재로 나타나기를 소원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도 당신이 사랑하는 상대인 인간이 무한한 가치적 존재가 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완성하면 신성(神性)을 이루고 하늘아버지의 온전함같이 온전하여 하나님적 가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223-128)

 

참사랑이란 무엇인가? 상대를 만나서 백년 천년 같이 있고 싶고, 영원히 사랑하고 싶어하는 사랑입니다. 그곳에는 지옥이 있을 수 없고, 사탄이 넘볼 수도 없습니다. (사보 42-8)

 

하나님이 절대적인 사랑의 파트너를 구한다고 하면 누구를 갖다 세울 것이냐? 바로 인간입니다. 따라서 창조주의 영원한 사랑과 하나된 사랑의 파트너는 영생한다는 논리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사랑의 관계를 중심삼고 영생논리를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문제는 종교에서 지극히 귀중한 얘기입니다.

남자에게 영생이 있고 여자에게 영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 영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영생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211-272)

 

사랑의 주체가 없으면 아무도 없는 것처럼 느낍니다. 그러나 사랑의 주체가 있으면 모든 것이 찹니다. 사랑이 꽉 차야 모든 것이 차기 때문에 무한히 줄 수 있고 참되게 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주고받는 것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요, 그 이상을 번식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랑의 세계는 거리를 초월합니다. 사랑이 얼마나 빠르냐하면 빛도 못 따라갑니다. 제일 빠른 것이 사랑입니다. 제일 밝은 것도 사랑입니다. 제일 완전한 것도 사랑입니다. 제일 완전히 차는 것도 사랑입니다. (187-51)

 

생명을 찾아 사랑을 희생시키겠다는 사람과, 사랑을 찾아 생명을 희생시키겠다는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이 보다 중심이냐? 어떤 것이 보다 참에 가까우냐? 사랑을 찾아 생명을 희생하는 것이 보다 중심이요 참에 가깝습니다. 생명을 찾아 사랑을 희생시키는 것은 자기 중심이지만, 사랑을 찾아 생명을 바치는 것은 자기 중심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32-153)

 

내가 오대양 육대주를 헤매면서 절절히 외쳐댄 것은 바로 사랑의 길이었습니다. 사랑이 없는 사막과 같은 인류 앞에 사랑의 빛을 비추어 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가야 할 길이 사랑의 피안이라고 한다면, 인류 앞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의 등대'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바로 그 사랑의 등대만이 인간을 본향 땅에 인도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1982. 10. 29)

 

하나님과 하나될 때는 천태만상으로 돌게 됩니다. 그러므로 형제간에도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을 본받아서 형은 동생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게 사랑으로 일원화된 가정은 가정애가 꽃핍니다. 이것이 또 사회애가 되고, 더 나아가 민족애가 됩니다. 이와 같이 나아가면 세계애가 됩니다. (34-215)

 

하나님은 사랑에 취해서 억천만세를 살 수 있도록 인간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늙는 게 원수가 아닙니다. 사람은 사랑에서 시작해서 사랑을 갖고 생활하다가 사랑의 열매로 거두어집니다. 죽는 것이 사랑의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의 사랑을 받았고, 자녀의 사랑을 받았고, 부부의 사랑을 가지고 부모로서 자녀를 사랑하며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 내적인 사랑의 세계에 뿌린 모든 것을 일생을 거쳐 열매를 맺어서 이것을 거두어 가지고 저나라에 가는 것입니다. (81-9)

 

하나님은 참사랑의 바탕 위에서 생명을 지니고 있고, 참사랑의 바탕 위에서 전지전능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 있어서 역사를 초월한 입장에 선 이상적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이지, 생명의 힘만 가지고 주체적 입장에 선다면 모든 만물이 하나 안 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미물인 동물 새끼도, 식물들도 전부 다 사랑의 주인이 자기를 가꿔 주길 바라고 사랑의 손길이 오는 걸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보다 내가 강해, 너는 내 맘대로 해야 돼, 이 자식아!"이러면 안 됩니다. 사랑이 내포된 거기에 생명이 움직이는 겁니다. 생명의 근원은 사랑에서부터입니다. 하나님이 존속하기 시작한 기원이 생명이 아니고 사랑입니다. (17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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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사랑이 개재될 때 조화가 이뤄진다

 

사랑은 생각으로도 좋고, 모양으로도 좋고, 맛으로도 좋습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통일세계 1980. 2-10)

 

사랑이란 동서가 합하는 것이요, 남북이 합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천지가 합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구형을 이루게 됩니다. (225-45)

 

참사랑이란 수직과 수평이 연결된 중심 사랑이다. (195-244)

 

입이 참사랑에 빠져 있다면 미소짓는 그 입술이 얼마나 황홀하겠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인간의 오감이 참사랑에 취해 움직이는 모습, 하나님을 향해 움직이는 오감의 조화가 얼마나 아름답겠는가를 상상해 보십시오. 아름다움을 통한 기쁨은 하나님 혼자서는 체험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름다움은 상대가 있어야 체험하게 되는 것으로,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것 이상으로 아름다운 내용을 소유한 인간의 심정세계를 여행하시고 싶은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6. 9-16)

 

하나님도 숨을 쉽니다. 참사랑의 호흡을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우주의 박자를 맞추기 때문에 참사랑을 중심삼고 우주가 영원히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여기까지 가야 하나님의 호흡권내에 들어가서 영생하는 것입니다. (201-191)

우주는 둥급니다. 태양도 둥급니다. 모든 둥근 것은 무엇을 중심삼는가. 자기 혼자서는 둥글어질 수 없습니다. 누군가를 중심삼고 관계되어 있어야 둥글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적 권을 집약시킬 하나의 물체, 하나의 존재물로 등장하는 세계는 원형권을 기반으로 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그 원형을 만들 수 있는 모체가 뭐냐. 조화의 모체는 사랑의 작용이라는 것입니다. (164-78)

 

사랑은 신경과 같습니다. 우리가 머리카락 하나를 당기면 몸 전체가 끌려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만 당기면 우주가 끌려오고, 사랑만 움직이면 우주가 다 화해 돌아가게 됩니다. (115-237)

 

사람은 취해 살아야 합니다. 취해서 사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예술가들은 예술에 취해 삽니다.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구상하는 책을 쓴다든가, 어떤 명작에 취해 삽니다. 그런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사지백체는 입체적인 하나님의 이상적인 사랑에 취해 살아야 하고 그분만 따라 다녀야 합니다. (59-292)

 

남자가 찾고 여자가 찾고 있는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사랑은 사람도 영원히 좋아하고 하나님도 영원히 좋아하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온 우주가 영원히 제일 좋아하는 것입니다. (142-109)

 

사랑이란 보이지는 않으나 가장 귀한 보물입니다. 그것은 불변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황금은 불변의 빛깔, 다이아몬드는 불변의 굳기, 진주는 불변의 조화의 빛깔이 있기 때문에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보물은 생명이 없지만 참사랑은 생명이 있는 보물이기 때문에 더욱 귀한 것입니다. (201-143)

 

사랑이란 다 좋은 것입니다. 사랑이란 결국 좋아지는 것입니다. (206-205, 60-81)

 

사랑은 개인의 마음에도 통하고, 가정의 복판도 통하고, 그 민족 복판으로도 흘러가고, 어디나 주류로 가는 것입니다. 흘러가더라도 전부가 환영하는 겁니다. 그걸 막을 길이 없다는 겁니다. 전부 다 더 높이, 더 높은 것을 바라지요. 사랑의 힘을 따라서 인연되어 질 수 있게끔 지었습니다. 그러니 사랑의 줄을 따라서 우주와 호흡하고 살던 사람은 하나님의 궁전에 가서도 인사는 무슨 인사, 마음대로 문을 열고, 하나님을 모시는 지성소에 가서 '하나님'하면, 하나님이 '오냐, 너 왔구나'하는 것입니다. (164-47)

 

인간 세계에서 단 하나의 문제는 뭐냐? 사랑의 빛이 밝아야 합니다. 사랑의 빛이 밝기 위해서는 내적으로 외적으로 타야 됩니다. 무엇에 타야 되느냐? 사랑하기 위한 발동력으로 타야 됩니다. 그런 것을 다 알고 볼 때 세상만사는 지나가는 하나의 여행집입니다. (194-56)

 

하나님은 어디 계시느냐? 무소부재라는 말은 하나님이 아무데나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있습니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사랑을 중심삼고는 무소부재입니다. 나도 사랑을 중심삼고는 무소부재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소유하면 그런 특권이 있는 겁니다. (143-24)

 

평등이라는 말은 사랑을 빼놓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위해 줄 때 진정한 평등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랑을 가지고는 남자와 여자가 대등할 수 있고, 사랑을 가지고는 아들이 대통령이라 해도 그 아들과 어머니는 대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가진 모든 것은 평등해질 수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140-142)

 

만물의 중심은 인간입니다. 인간의 중심은 뭐냐? 참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수직선 한 선입니다. 천지의 중심을 세우기 위한 것이 남자의 사랑선이요 여자의 사랑선인데, 여자는 남자에게로 가고 남자는 여자에게로 가서 그 선이 돌게 되는 것입니다. 남자 여자가 참사랑을 갖고 나타나게 될 때에 완전한 마이너스 사랑입니다. 완전한 참된 마이너스 사랑이 생기게 될 때에는 종적인 하나님의 플러스 사랑은 자동으로 임하게 됩니다. 우주의 원칙이 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140-128)

 

내가 우주와 주고 받는 관계에 놓이려면 사랑을 가져야만 가능합니다. 사랑이 아니고는 영원히 주고 받지 못합니다. 사랑이 온유하고 겸손한 것이라고 한 것도 저항 없이 그것을 더 많이, 완전히 운동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온유하고 겸손하고 희생하면 어디든지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디든지 저항 없이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희생이 아닙니다. 저항 없이 작용하기 위한 하나의 비법이 위해서 살고 희생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희생 봉사해야 되느냐. 제2의 생의 호흡기관을 완성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번식하는 모든 존재는 반드시 쌍쌍이 연합해서 번식하는데 번식을 하는 데 있어서의 조화를 일으키는 그 내용이 사랑입니다. 자연계의 모든 존재물의 번식은 다 그렇습니다. 물도 보면 암물이 있고 숫물이 있는데, 암물하고 숫물이 섞어진 데에는 고기가 잘 삽니다. 한수(寒水)와 온수(溫水)가 화합하는 곳에는 고기가 많이 살게 마련입니다. 그것이 이상적입니다. 화합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177-274)

 

북쪽에 사는 새가 남쪽에 가서 새끼를 치고, 남쪽에 살던 새가 북쪽에 가서 새끼치면서 교류하는 것도 다 리듬에 따라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났으니 거기 가서 새끼를 치는 것입니다. 차가운 물의 물고기는 따뜻한 물에 가서 새끼를 치고, 따뜻한 물의 물고기는 차가운 물을 접해야 새끼를 치게 되어 있습니다. 음양 일치의 화합이 이루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동하는 것입니다. (132-74)

 

사랑은 상대적 관계가 없으면 성립되지 않습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이라 할지라도 혼자서는 사랑을 만날 길이 없습니다. 상대자를 세우지 않고는 만날 수 없기에 절대적 창조주 앞에 절대적 상대의 자격자를 갖추어 놓기 위한 것이 창조요, 창조의 걸작품이 바로 우리 인간입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찾기 위해, 사랑이 필요해서입니다. (133-86)

 

하나님의 사랑에 취하게 되면 모래알 하나를 놓고 천년을 들여다봐도 싫증나지 않습니다. 우리 자신이 사랑의 우주 가운데 태어났다고 생각하면 무한히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81-9)

 

참사랑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자동적으로 기쁜 가운데서 되는 것입니다. 사랑할 때도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서로 주고 받는 작용이 되어야 이상적인 사랑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만일 사랑이 누구든지 그릴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형태가 어떻다는 것을 알 수 있게끔 돼 있다면 그런 사랑은 하루도 못 가서 싫증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없고, 없는 것 같은데 있습니다. 나쁘다고 생각하면 좋고, 좋다고 생각하면 나쁜, 천태만상의 기괴한 신기루 같은 내용을 작동시키는 것이 사랑입니다. (175-198)

 

우주 통일 이상을 완성시키는 내용이 참사랑입니다. 아무리 명작이라 하더라도 그 가운데 참사랑의 맛이 없게 되면 뱉어 버리게 됩니다. 부부간의 참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집니다.

(통일세계 1981. 5-26)

 

인간이 사랑을 제일 좋아하는 것도 사랑이 전체를 통일시켜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사랑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사랑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듯이, 하면 할수록 기쁨이 불어나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어느 누구도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멋진 사랑입니까? 꽃 속에 들어 있는 벌들은 꿀을 먹느라고 궁둥이를 위로 쳐들고 머리를 처박고 있습니다. 그걸 핀셋으로 잡아당겨서 빼도 안 나옵니다. 세게 잡아당겨서 꽁무니가 쑥 빠져도 안 나옵니다. 그 꿀맛이 얼마나 좋아 그러겠습니까? 꿀맛이 그렇다면 사랑의 맛은 어떻겠습니까? 사랑의 맛과 꿀맛 중에서 어떤 게 더 좋겠습니까? (1985. 12. 18)

 

사랑이 아니고서는 하나 만들 수 없습니다. 둘을 하나 만드는데는 말 가지고 안 됩니다. 둘이 하나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물질 가지고 하나되었다면 물질이 떠나면 도망가는 겁니다. 제삼자의 소개로 말미암아 무슨 사연을 통해서 하나됐다면 그 사람이 없어지면 떠나 버린다는 겁니다. 둘이 하나되기 위해서는, 영원히 하나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만이 모든 오색 가지의 자극을 통일시킬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 사랑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세상사람이 싫다 하는 영감님 냄새가 할머니의 코에는 구수하다는 겁니다. 할아버지의 얼굴과 손에 가죽만 남아도 할머니는 그 얼굴과 손이 좋다는 겁니다. 바로 사랑이 그렇게 만듭니다. 사랑의 바람이 불었을 때는 천하가 다 아름답게 보입니다. 사랑의 보따리를 집어 넣으면 시인이 아닌 사람이 없고, 풍류객이 아닌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145-319)

 

사랑의 맛이라는 것은 오미자 맛입니다. 오미자는 시고 또 시큼털털 껄렁껄렁합니다. 난 오미자가 뭔지 모르지만, 그런 맛이라, 다섯 가지 맛이 합쳤으니 그 뭐 시큼털털하고, 껄렁껄렁하고, 울툴불툴한 맛이지요. 그렇지만 한 번 넘겨 보면, 넘길 때는 기분 나쁘지만 넘기고 나서는 자꾸 넘기고 싶다는 겁니다. (173-89)

 

봄절기를 품고 남을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넘쳐 흐르는 사랑, 차고 냉랭한 겨울절기에 있어서는 눈과 얼음을 녹일 수 있는 사랑, 높이로 보나 넓이로 보나 우리가 측량할 수 없는 무한한 사랑, 그런 사랑이 나와 관계를 맺어 나에게서 영원히 떠나지 않고 안정된 중심의 자리를 결정해야 한다. 그런 사랑이 무한히 감촉되고 감각될 때 그 사랑이야말로 우주와 겨루고도 남음이 있다. 세상의 그 어떤 가치도 그 사랑을 떠나서는 찾을 수 없다. 시작과 끝이 동일한 절대적인 사랑을 내 심지의 복판에 정한 사람은 비록 개인이로되 우주와 겨룰 수 있다. (33-76)

 

우리는 하나의 풀을 바라보더라도 하나님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꽃을 바라보더라도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한 입장, 하나님의 심정과 통할 수 있는 입장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곤충이나 새, 혹은 어떤 동물을 바라보게 될 때에도 하나님의 심정과 인연 맺어지는 그런 내적인 감정을 체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같이 사는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입니다. 하늘을 주관할 수 있고 땅을 주관할 수 있는 온 천주의 주인공입니다. 인간이 이런 입장에 놓일 수 있는 본질적인 내용은 사랑입니다.

심정으로 우리 마음은 무한히 클 수 있으나 지식으로는 무한히 클 수 없습니다. 사랑의 심정은 우주를 포괄하고도 남기 때문에, 이렇게 위대한 본연지를 개발하면 하나님도 그 속에 와서 낮잠자고 싶어합니다. 지식으로는 하나님을 포괄할 수 없기 때문에 거기에서 사랑의 심정이 위대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59-44)

 

사랑은 국경을 초월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오색 인종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흑인종?백인종?황인종이라 하여 차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은 위대한 것입니다. 사랑의 흐름에 있어서 환경을 개의치 않고 흘러가면 환경이 동화되고 발전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사상적인 내용을 갖춰야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사랑의 길을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16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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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사랑의 특권은 동위권, 동참권, 상속권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내가 어떻게 상대될 수 있는 자리에 나아갈 수 있겠느냐? 노력으로 돼요? 힘을 써서 돼요? 무엇 가지고도 안 됩니다. 그러나 사랑의 인연을 맺고 나가면 대번에 동등한 자리에 나갈 수 있습니다. 사랑의 핵을 장악하게 될 때는 하나님을 컨트롤할 수 있습니다. 훌륭한 남편의 아내가 비록 못났다 할지라도 그 아내가 사랑의 인연을 가지고 틀게 되면 훌륭한 박사도 할 수 없이 걸려들어 컨트롤 당하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그런 힘이 있는 것입니다. (141-108)

 

하나님과 대등한 자리, 동위권의 자리에 서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해야 합니다. (141-108)

 

사랑에는 동참권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높으면 자식은 낮은 자리에 있더라도 즉각 아버지의 자리로 뛰어올라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동참권이 사랑에 내재되어 있다는 놀라운 사실 때문에 내가 비록 떨어져 나와 있더라도 사랑은 영원한 것입니다. (149-25)

 

참사랑을 체화(體化)한 사람은 하나님 본래의 이상적인 세계에서 하나님이 원하는 모든 것을 즉각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능력과 권한을 가집니다. 그러한 자격은 지상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참사랑은 동포를 사랑한다든가, 세계 사람을 사랑한다든가, 만물을 사랑함으로써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한 사람만이 하나님이 지으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상속받을 수 있는 특권을 가질 수 있습니다. (141-108)

 

하나님과 사랑의 인연을 맺게 되면 반드시 주관성과 독립권, 그 다음에는 상속권을 가질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146-106)

 

사랑권 내의 최대의 인격을 구성한 사람은, 그 세계에서는 하나님과 같은 능력 행사를 가능하게 한다는 겁니다. (142-278)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은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사랑은 하나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남녀가 서로 그리워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남자는 여자, 여자는 남자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소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서로 좋아하는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2. 8-46)

 

생명과 사랑 중에 어느 것이 더 귀한 것인가? 인간의 생명은 인간의 지성소(至聖所)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남자의 생명이, 여자의 생명이 있더라도 그 생명에는 지성소가 연결 안 되어 있지만 사랑에는 지성소가 연결되기 때문에 사랑이 생명보다 귀한 것입니다. (132-112)

 

누가 주인이 되느냐? 보다 위하는 사람입니다. 보다 위하는 사람이 지배하고, 보다 위하는 사람이 주관하고, 보다 위하는 사람에게 상속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천리입니다. 사랑에는 동참권이 있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어디든지 동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아들딸 방에 허락받고 들어가요? 자기 안방에 허락받고 들어가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런 사랑의 작용을 가졌다면 하나님이 어디 가든지 내가 동참할 수 있는 것입니다. (170-199)

참사랑과 권세는 무엇이 다른가. 참사랑은 사랑하고 잊어 버립니다. 기억하지 않습니다. 선과 악의 기준은 무엇이냐. 악은 주고 이익을 전부 받으려 하는 것이고, 선은 자기 것을 주고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집안에 있어서도 보다 위하는 사람이 선한 편입니다. 위하는 사람은 결국 그 집안의 주인이 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열 친구가 있다고 할 때 그 중 제일 좋은 친구는 누구냐? 열 친구를 위해 주는 친구입니다. 그러면 열 사람이 위하는 그 친구를 중앙에 갖다 모시게 되는 것입니다. 우주는 이렇게 상속돼 나갑니다. (141-253)

 

인간에게 있어서 영원히 남겨야 할 것이 무엇이냐. 첫째가 사랑이고, 그 다음이 생명입니다. 사랑과 생명을 남겨야 됩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존재하기 전부터 사랑이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해 가지고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생명이 먼저이고 사랑이 두 번째이나, 인간에게 있어서는 사랑이 첫 번째이고 생명이 두 번째입니다. (105-75)

 

모든 원소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이 우주 전체를 두고 "너는 어디의 무엇을 가진 사람의 소유가 되고 싶어"? 하고 물으면 한결같이 모두 다 사랑을 가진 사람의 소유가 되고 싶다고 답합니다. 모든 만물은 사랑의 주인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권세를 인간에게 주려고 합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인간이 사랑으로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은 일체이상(一體理想)입니다. 사랑을 중심삼은 일체이상이 창조이상입니다. (138-246)

 

인간은 실체를 쓴 하나님의 몸입니다. 하나님의 실체를 쓴 몸이기에 인간은 외적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특권을 인간에게 부여하려고 합니다. (1981. 5. 14)

 

왜 선한 일을 하라고 하느냐. 선한 일을 하려면 희생을 해야 되고, 희생은 자기를 투입하는 것입니다. 투입하면 왜 좋은가. 천운의 근본, 원인과 결과, 모든 힘의 주체, 주류에 접속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한한 힘을 보급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은 무한한 힘을 보급받기 때문에 모든 일에 있어서 만사형통입니다. (164-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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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사랑으로 완성된다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신인애일체(神人愛一體)의 사랑이상 세계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최고 최선의 사랑의 대상으로 지음받았습니다. 그런고로 인간은 창조물 중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의 실체를 입은 대상입니다. 인간은 무형의 하나님 앞에 보이는 몸으로 태어났습니다. 완성하면 하나님의 성전이 됩니다. 하나님이 자유롭게, 또 평안하게 언제나 들어와서 거하실 수 있는 유형의 실체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참사랑의 이상은 인간을 통해 부모와 자식의 종적 관계로 실현 완성됩니다. (143-93)

 

인간은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 사랑을 위해서 산다고 한다면 얼마나 멋있는 대답이겠느냐 말입니다. 인간은 사랑의 열매로 태어나고, 사랑하면서 살다가 영원한 사랑인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는 것이 창조본연의 삶인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2. 7-19)

 

태어난 것은 사랑의 열매를 지상에서 맺기 위한 것입니다. 사람이 지상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의 열매를 결실하는 것이 사람이 지상에 온 목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짧은 것입니다. 한 계절입니다. 짧다는 겁니다.인간은 사랑에서 출발하고 사랑에 의하여 완숙해지기 때문에 사랑의 기준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6. 9-14)

 

인생이 사랑에서 태어났으니 사랑의 길을 가야 하고 사랑을 위해서 죽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소우주가 아니라 대우주가 환영할 수 있는 사랑을 찾아서 하나님이 공인하고 천사세계가 공인하고 만물이, 더 나아가 우리 부모가 공인할 수 있는 대우주애 가운데 나고, 그 가운데서 사랑하고 죽어가는 것이 인생이 태어난 목적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185-7)

 

인간은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 사랑을 위해서 산다고 한다면 얼마나 멋있는 대답이겠느냐 말입니다. 인간은 사랑의 열매로 태어나고, 사랑하면서 살다가 영원한 사랑의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는 것이 창조본연의 삶인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2. 9-19)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의 핵과 일치하는 자리에 섰을 때 몸과 마음이 일체를 이루게 되며, 하나님의 사랑권 내에 몸과 마음을 일체화 시켜 들어가게 되면 성숙한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타락하지 않는 본연의 인간으로서 개인 완성이 출발하게 됩니다. (통일세계 1986. 2-14)

 

하나님은 참사랑의 왕이시고 주인이십니다. 만일 참사랑의 왕이 되시며 신랑되신 분이 하나님이라면 상대자되는 왕후가 필요하다는 말이 절대적 원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그분 앞에 참사랑의 상대될 수 있는 분이 누구겠느냐 하고 묻게 된다면, 그것은 참된 인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일체가 될 아담과 해와였다는 것입니다. (149-9)

 

남자나 여자가 가는 길은 사랑 때문에 있으며, 사랑을 위해서 있습니다. 나의 길은 사랑의 길입니다. 사랑을 얻기 위해서,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사랑의 환경권을 이루기 위해서 가는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2. 8-16)

 

사람이 목적을 아무리 잘 세웠다고 하더라도 그 목적을 주관할 주체적인 사랑의 권위를 세우지 못하게 될 때에는 또다시 새로운 목적을 추구해야 됩니다. 한계점이 사랑보다 위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29-130)

 

아담은 하나님과 하나가 돼야 합니다. 이를 결부시키는 것은 사랑입니다. 존재세계의 평면적인 대표자는 인간이며, 입체적인 대표자는 하나님입니다. 이것을 영원히 결부시키는 중심점이 바로 사랑이라는 끈입니다. (135-153)

 

가난한 촌부로서 시골에서 김을 매고 농사를 짓는 자리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 촌부에게 마음과 몸에 부풀어오르는 사랑의 정열이 타오르게 된다면, 마음의 오관(五官)과 육(肉)의 오관이 완전히 합해져서 더없는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에게 임할 수 있는 안착점을 여러분이 가지고 있다면, 시계추의 진동처럼 하나님의 가슴이 한 번 출렁 하면 여러분 가슴이 한 번 출렁, 그래서 여러분과 하나님이 함께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한 번 돌기 시작하면 자꾸 돌아갑니다. 갈수록 가중된 힘은, 원심력이 작용해서 가정을 사랑해라, 사회를 사랑해라, 국가를 사랑해라, 세계를 사랑해라 하고 요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1982. 10. 29)

 

모든 것을 포용하고 용서하는 사랑은 누구로부터 시작된다고 보십니까? 사랑은 인간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주체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으로부터 사랑을 맞이하기를 바라십니다. 그 사랑을 다시 인간에게 되돌려 줌으로써 사랑을 완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6. 9-16)

 

사랑은 절대적입니다. 그 절대 사랑 앞에는 절대 지식, 절대 능력, 절대 권한을 가진 하나님도 절대 복종합니다. (123-136, 206-7)

 

참사랑이라는 것은 하나에서부터 시작해서 360도를 다 돌아서 딱 닿아야 합니다. 그래야 참사랑입니다. 닿기 전에는 참사랑이 못 됩니다. (178-309)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지 못하면 인간이 아무리 소망을 이루었다 해도 그것은 이룬 게 아닙니다. 아무리 행복하다 하더라도 그 행복은 영원한 행복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랑을 하면 영생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영원히 잘 주고 잘 받을 수 있게 하는 동기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142-278)

 

이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것은 참사랑입니다. 참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합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면 그 외의 길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참사랑의 길이며, 참사랑의 길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통해 보고 듣고 먹고 만져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인간도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의 입맞춤을 받았다면 내부가 폭발할 것 같은 희열을 느낄 것입니다. 하나님의 바램은 여기에 있는 것이지, 다이아몬드나 보석을 소유했다고 해서 기쁘다고 하시지는 않습니다. (통일세계 1986. 9-21)

 

내가 살아 움직이는 것, 즉 내가 활동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목적이 사랑의 세계를 구현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랑의 구현 때문에 사랑을 이루어야 한다는 목적에 의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의 목적이 참사랑의 구현에 있으니 인간의 존재가치도 이 참사랑에 의해 결정지어지게 됩니다. 이 얼마나 멋있는 일입니까? (미래의 주인공 231)

 

하나님 사랑의 본질과 화합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자기를 위주하고 나가는 사람은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상대를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투입하고, 자기가 모든 정성을 투입하고, 자기의 모든 것을 투입하면서 주고자 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사랑권 내에 존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역사상의 위인도 그랬고 성인도 그랬습니다. (46-36)

 

하나님의 사랑은 위하는 사랑, 위하려고만 하는 사랑입니다. 이러한 사랑, 참사랑이 있으면 돌게 마련입니다. 우주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느냐. 도는 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돌게 되어 있는 것이 본질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영원히 가느냐. 영원히 주겠다고 하는 것, 영원한 사랑을 중심삼고 영원히 주려고 하는 사랑이 영원히 도는 것입니다. 주는 힘과 받는 힘이 하나되어 자꾸 주려고 하니 확대될 수밖에 없습니다.

참사랑의 기원되신 하나님을 부모로 하여 인간은 아들딸의 자리에 세워졌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위한 사랑의 최고 주인입니다. 부자지관계(父子之關係)가 종적인 수직관계인데 비해 부부관계(夫婦關係)는 횡적인 수평관계입니다. 그러므로 부자지관계와 부부관계가 서로 직각(90도)을 이루고, 여기에 전후관계인 형제관계가 합함으로써 사랑의 관계는 구형(球形)을 이룹니다. 그래서 사랑으로 이루어진 모든 존재는 구형입니다. 우주 전체가 구형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34-215)

 

인류 역사에 있어서 참사랑을 완성하면 정치?경제?문화 문제는 물론이고 모든 분쟁과 갈등 문제도 깨끗이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 인류가 안고 있는 모든 난문제들은 참사랑의 완성으로만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한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6. 9-17)

 

인간이 하나님을 보기 원하듯이, 하나님도 참된 인간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 그런데 인간 중에 남자나 여자 어느 편을 먼저 보고 싶다고 하면 서로가 불평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랑을 내세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만 내세우면 남자와 여자가 같이 볼 수 있고, 같이 만질 수 있고, 같이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귀한 것은 서로 다투면서 가지려 하겠지만, 사랑이란 둘이 서로 하나되어 위하며 가지려 하기 때문에 다툼이 없습니다.

사랑은 누구나 좋아할 뿐만 아니라, 사랑만이 욕망을 고르게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이 원칙을 놓고 하나님의 구원섭리(救援攝理)도 가능한 것입니다. 참사랑을 찾아야 합니다. 참사랑은 어디 가야 만날 수 있느냐? 참사랑은 밤낮 없이 불변하고 영원한 것입니다. 나 혼자만을 위한 것이 참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참사랑이 나 개인의 소유일 수 만은 없습니다. 참사랑은 만인의 것이며, 우주 공유의 것입니다. 참사랑은 가정?사회, 국가, 세계?우주까지 연결되는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6. 9-17)

 

참사랑이란 뿌리를 어디에 두고 하는 말이냐? 하나님이 아무리 전지전능한 분이라도 그 뿌리를 하나님에게 두고 있지 않습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은 참사랑의 주인공인데도 사랑의 뿌리를 하나님에게 두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람으로부터 뿌리를 심겠다고 생각합니다. (177-269)

 

사랑은 어디에서부터 시작했느냐?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의 이상상대가 필요해서 이 세상을 지었기 때문에 천지 창조도 사랑에서 기원된 것입니다. (213-79)

 

마음의 힘의 원천은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주고 받아서 생기는 폭발적인 힘을 하나님께 연결만 시키면 그것은 몇백 배, 몇천 배도 통일할 수 있는 것이요, 세계 만민이 고대하던 소망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요, 영원히 함께 살 수 있는 동시에 천국도 내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비결이 바로 사랑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게 될 때, 그의 심정과 감정은 무한한 체휼경(體恤境)과 행복감에 취하게 됩니다. 결국 사랑에 의해서 하나님과 인간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에 의해 인간과 세계가 하나되며, 하나님의 창조목적 이상세계의 실현도 여기서부터 출발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세계 60)

 

인간이 신령한 경지에 들어가면 조그만 모래알 하나에도 우주의 이치가 들어 있고, 하나의 원자에도 무궁무진한 우주의 조화가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어떤 복합적인 힘을 통하여 나타난 결과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분자를 지나 원자, 원자를 지나 소립자에 이르기까지 무의식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의식과 목적을 갖고 존재합니다. 때문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반드시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거쳐 나왔고, 반드시 하나님과 심정적인 관계하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기쁨은 어떤 목적을 이루었을 때 느낍니다. 지은 만물에 하나님의 목적의식이 내재되어 있기에 창조된 만물을 놓고 하나님은 기쁨을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권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얼마만큼 강한 사랑이어야 하느냐. 오늘날 인간세계의 그릇된 사랑은 천사장급 이하의 사랑입니다. 타락한 세상의 사랑은 사탄이 침입한 사랑입니다. 이러한 사랑권에서 태어나 살면서 사랑 때문에 죽느냐 사느냐 야단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랑은 질서도 없고 방향도 없는 소용돌이입니다. 소용돌이에는 더러운 것만이 모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과 관계맺으면 그 사랑의 방향을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자연히 따라가게 됩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새 사랑, 즉 창조 법도에 의한 사랑이 결정된 자리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이상이 출발합니다. (19-315)

 

사랑을 왜 좋아합니까? 좋아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아버지를 완전히 하나로 얽어매는 그것은 사랑의 밧줄입니다. 쇠로 만든 줄은 시간이 지나면 녹이 슬어 끊어지지만 사랑의 밧줄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 자식 사이는 밥으로도 돈으로도 얽어맬 수 없습니다. 오직 사랑만으로 얽어맬 수 있습니다. (18-329)

 

인간의 완성은 지식이나 권력, 혹은 돈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속화된 사랑이 아닌 본래의 사랑이며, 그 사랑에 의해 모든 것이 완성됩니다. (6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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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사랑의 실제

 

 1) 하나님의 사랑

 

  ①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줄을 누가 끊을 것이냐'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도 하나님의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생명의 원천이요, 행복의 원천이요, 평화의 원천입니다. 영적 체험을 해보면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99-193)

 

하나님의 사랑은 태양보다 강합니다. 아침에 햇빛이 나면 모든 식물의 순은 태양을 향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은 생명의 기원이요, 우리 본심의 기원이요, 이상적 요소의 주체적 기원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99-193)

 

하나님은 사랑의 실체, 사랑의 중심존재이기 때문에 알파와 오메가가 없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시작과 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심정의 세계에서 한 시간 사는 것은 천년사에 자랑할 수 있고, 하루 사는 것은 만년 역사에 자랑할 수 있게끔 고귀한 것을 체험할 수 있게 하는데 그것이 참된 사랑입니다. 사랑은 세포가 팽창하는 기운까지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 세계가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세계입니다. 그 세계는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지만 마치 화창한 봄날에 구름을 타고 날아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황홀한 세계요, 모든 세포가 춤추는 듯한 기분이 나는 세계입니다. (99-193)

 

하나님의 사랑을 무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마치 따스한 봄날에 하늘에는 흰구름이 두둥실 떠있고, 땅에는 아지랑이가 아른거리고, 벌레가 나돌고, 개미들도 세상 구경하겠다고 발랑발랑 기어나왔다 들어갔다 하고, 졸졸졸 흐르는 개울가에는 버들강아지가 움트고, 개구리가 봄날의 새노래를 부르고, 떼를 지어 날아드는 벌나비를 반기는 그런 환경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환경에 취해서 잠이 드는것 같은데 잠은 들지 않고 기분 좋아서 영원히 좋다 할 수 있는 그런 맛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이상상대를 중심삼고 느끼는 기분은 나비가 날고 벌이 날아드는 꽃동산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 이 둔한 남자들은 그것을 잘 모를 겁니다. (37-29)

 

하나님이 계신 곳에는 사랑이 충만합니다. 주면 줄수록 더 주고 싶고, 받으면 받을수록 거기에 천만 배 더하여 주고 싶은 곳입니다. 그러니까 그곳이 천국이예요, 지옥이예요? 거기에서는 더 주고 더 받을 수 있으니 폭발적인 자극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온 세포가 터져 나가는 듯한 자극을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런 것입니다. (39-335)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지극히 선한 분이요, 모든 만물의 근본이 되는 분이요, 사랑의 주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한 후 우주의 귀한 모든 것을 인간에게 주고 싶어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참으로 믿을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제일 귀한 것을 고스란히 넘겨주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은 무슨 맛을 제일 좋아하겠습니까? 하나님이 냄새를 맡는다면 무슨 냄새를 제일 좋아하겠습니까? 듣는다면 뭘 듣기를 좋아하고, 느낀다면 뭘 느끼기를 좋아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오관을 집중시킬 수 있고 기쁨을 충만시킬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밖에 달리 없습니다. 하나님이 절대적인 사랑의 파트너를 구한다고 하면 누구를 갖다가 세울 것이냐 그것은 틀림없이 인간이다 하는 결론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지중 유인최귀(萬物之衆 唯人最貴)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218-211)

 

하나님의 사랑은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을 대표합니다. 물론 거기에는 형제의 사랑도 들어가고, 이것을 확대하면 국가나 세계의 사랑도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부모의 사랑이요, 부부의 사랑이요, 자녀의 사랑이라는 말을 합니다. 그것이 최고 멋진 말입니다.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사랑은 과연 어떤 사랑일까요? 절대적 사랑을 원하십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절대적 사랑, 유일한 사랑, 불변의 사랑, 영원한 사랑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우리 인간도 절대?유일?불변?영원한 사랑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다 하나님을 닮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 때문에 창조했습니다. 사랑 때문에 창조했기 때문에 남자 여자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보는 것이 더 좋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존재세계 앞에 나타날 때 사랑의 본질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인간에게 사랑을 주었다고 해서 '나는 완전히 다 주었는데 너희는 왜 안 주느냐 이럴 수 있느냐?' 절대적인 사랑을 가진 하나님은 아직까지도 주고 싶은 사랑을 다 못 주어 안타까워합니다. 자아를 주장할 수 없는 하나님입니다. 완전한 사랑을 주고자 했던 것이 하나님의 인간 창조의 목적이라면 하나님은 지금까지 완전한 사랑을 주지 못했으니 인간세계에 대해 사랑을 주고 싶어하는 하나님입니다. 그런 하나님이기에 생각할수록 좋은 것입니다. '나는 다 줬으니 이제는 너희가 가져와라'하는 하나님이라면 필요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주게 될 때, 얼마만큼 주고 싶어 하겠느냐? 하나님의 사랑은 이만큼이면 됐다 하는 한계를 두고 주는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무한정으로 주고자 하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몽땅 주고도 '너로 말미암아 네 안에 살고 싶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게 하는 본질이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하나님도 사랑 가운데 들어가서는 종살이를 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들이 자신의 밥상 위에 올라와 똥을 싸도 그것을 바라보고 기쁨을 느낍니다. 사랑은 법을 초월합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분으로서 아까울 것이 없고, 갖추지 못한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갖추고 있지만 그 전부의 가치보다도 귀하게 내세우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겠느냐? 하나님께서는 단지 사랑 외에는 필요치 않다 이겁니다. 사랑 이외에는 필요 없다 이겁니다. (108-223)

 

하나님이 '나는 사랑이다'라고 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밤에도 좋아하고, 낮에도 좋아하고, 일하면서도 좋아하고, 쉬면서도 좋아하고, 춤추면서도 좋아하고, 울면서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에게는 사랑이 있다. 몽땅 있다'고 한 것입니다. '몽땅'이라는 말은 그 속에 전부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제일 좋아하는 분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입니다. 그런 사랑을 몽땅 가지고 있는 하나님이기에 그 사랑을 맛보면 죽더라도 놓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진리의 본체요, 선의 본체요, 사랑의 본체요, 생명의 본체라고 하는데 그것이 무슨 말입니까? 다 같은 말입니다. 진리가 성립되려면 사랑과 생명이 없이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핵심인 생명의 본체, 사랑의 본체, 진리의 본체는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우리 인간의 아버지인 동시에 어머니입니다. 핵심은 부모입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은 간단한 분이 되십니다. (21-178)

 

자녀로 지음받은 인간이 형제를 이루고, 부부가 되고, 그리고 부모의 자리에 나아가는 인간이 자라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은 그 모든 단계의 사랑의 주인으로서 자리잡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 하여금 사랑의 주인되게 한 인간이야말로 하나님보다 귀한 존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자기보다 몇 천만 배 더 가치 있고 귀하게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뼈입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사랑은 '뼈사랑'이고, 인간의 사랑은 '살사랑'입니다. 알겠어요? 뼈와 살이 하나돼 가지고 형태를 갖추는 것입니다. 그런 이치가 돼 있습니다. (181-206)

 

사랑이란 뭐냐? 돌아갈 수 있는 윤활작용과 궤도작용을 해주는 것입니다. 사랑 없이는 윤활작용이 안 됩니다. 자동차도 움직이게 하려면 기름을 쳐야 합니다. 운동하는 데 윤활작용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운동하려면 윤활작용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최고의 기쁨의 윤활작용을 할 수 있는 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뿌리가 영원한 하나님이기 때문에 없어지지 않습니다. 작용하면 발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 곳에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불변이기 때문에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에게 나타난다면 변하지 않는 마음의 터전 위에 나타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생 동안 먹는 것도 그 사랑을 위해서 먹고, 자는 것도 그 사랑을 위해서 자고, 활동하는 것도 그 사랑을 위해서 활동해야 합니다. 사랑을 위해서 변하지 않는 완전한 기준을 갖고 있는 한 하나님의 사랑은 나타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우주의 공약 전부가 헛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밤이나 낮이나 자식이 침해를 받을까봐 걱정하고, 자식에게 무슨 문제가 생길까봐 보호해 주고, 또 어떤 반대의 요건이 나타날까봐 방어해 주는 부모입니다. 그런 부모의 본질을 찾아 나아가는 길이 선의 길, 사랑의 길입니다. 인간은 아들딸로서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받아야 됩니다. (39-149)

하나님은 지금까지 당신과 가까운 편에 있는 사람들과 종족, 나라에까지 사랑을 주었습니다. 작다고 받지 않을까봐 보태고 또 보태어 축복해 주었습니다. 그것도 부족하여 사랑하는 아들의 생명까지도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죽이고 나서도 또다시 사랑을 보태어 주려고 하십니다. 때문에 그 사랑이 돌아오는 날에는 천지가 몽땅 이상적인 천국으로 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으면 더 많이 갚아 주는 것이 사랑의 원칙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백의 사랑을 드린다면 하나님은 천의 사랑, 만의 사랑으로 돌려 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만 가지게 되면 하나님의 가슴 속에 들어가 있어도 되고, 하나님의 코를 잡아도 되고, 세계 어디를 가든지 경계선이 없습니다. 어디든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의 입맞춤을 받았다면 내부가 폭발할 것 같은 희열을 느낄 것입니다. 하나님의 바램은 여기에 있는 것이지, 다이아몬드나 보석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기쁘다고 하시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은 어디서 연결되느냐? 생명이 교류하는 곳, 사랑이 교류하는 곳, 이상이 교류하는 곳입니다. 그 점이 어떤 점이냐? 부자지관계의 자리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은 사랑의 주체요, 생명의 주체요, 이상의 주체이므로 자녀에 대해서는 위신과 체면을 초월합니다.

아무리 죄인 된 못난 자식이라도 하나님을 붙들게 되면 하나님이 '야 이놈아, 안 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붙안고 비벼 주고 사랑해 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체험한다면 뼈살이 녹아날 것입니다. (118-285)

 

하나님은 천년만년 주고도 또 주고 싶은 그런 마음을 끊임없이 갖고 계신 분입니다. 그런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것이지. 주고 나서 '야, 요거 몇 냥 몇 전이다' 하는 장사꾼 하나님이라면 그런 하나님은 필요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접하면 어떻게 되느냐? 머리카락도 춤추고 세포도 춤춘다는 것입니다. 백 퍼센트 그 사랑에 취하면 나가자빠지는 것이 아니라 천년만년 살고지고가 됩니다. 누가 깨우려고 하면 깨우지 말라고 합니다. 요지경 판이 벌어집니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말이 있듯, 그만큼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고차적인 사랑에 취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에는 사랑이 충만합니다. 주면 줄수록 더 주고 싶고, 받으면 받을수록 거기에 천만 배 더하여 주고 싶은 곳입니다. 그러니까 그곳이 천국이에요, 지옥이에요? 거기서는 더 주고 더 받을 수 있으니 폭발적인 자극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온 세포가 터져 나가는 듯한 자극을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런 것입니다.

사랑으로는 어디든지 채울 수 있고, 사랑으로는 어디든지 미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껴안으면 어떻습니까, 손을 잡고 '아, 사랑한다' 이럽니까? 아마 눈알이 다 튀어 나오고 콧물, 입물이 나오도록 껴안아 주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렇게 껴안고는 가만히 서있지 않고 빙빙빙 돕니다. 그렇게 사랑으로 하나되어야 우주가 돌아갑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아버지요,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하나님의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 골수 중의 골수를 몽땅 투입하여 창조한 인간이기에 인간이 하나님을 끌면 끌려오지 않을 수 없고, 또 하나님이 인간을 끌면 끌려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이 왜 하나님을 좋아하면서 따라가느냐? 하나님은 천년만년 모든 것을 주고 또 주면서도 부끄러워하며 '지금은 이것밖에 안 되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라, 몇백 배, 몇천 배 더 좋은 것을 줄 터이니' 하면서, 오늘 주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주면서도 미래에 더 좋은 것을 주겠다고 약속을 하는 마음을 갖고 계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36-273)

 

인간은 왜 영생하느냐? 왜 누구나 영생을 찾느냐는 것입니다. 절대적 주체자이신 하나님 앞에 사랑의 대상권의 가치를 지닐 수 있고, 사랑의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영원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영원한 사랑의 대상권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서게 될 때는 위에나 아래나 마찬가지로, 하나님이자 내가 됩니다. 사랑으로 일체만 되면, 하나님을 내 포켓 안에 넣으면 들어가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태양보다 강합니다. 아침에 햇빛이 나면 모든 식물의 순은 태양을 향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생명의 기원이요, 우리 본심의 기원이요, 이상적 요소의 주체적 기원입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사랑권을 통하게 되면, 어떤 기분이 드느냐, 봄날 향기나는 동산에서 아름다운 꽃들을 바라보며 향기란 향기를 다 맡아 취한 기분과 같습니다. 그럴 때에는 우리의 모든 세포가 춤을 춥니다. (99-193)

 

하나님의 사랑이 종적인 사랑이라면 남녀간의 사랑은 횡적인 사랑입니다. 남자 여자가 만나려면 횡적인 사랑을 종적인 사랑 위에 접붙여야 됩니다. 90각도로 맞춰야 됩니다. 이걸 맞추지 않는 사랑, 종적인 기준과 연결되지 않은 사랑은 떠돌이 사랑으로 파괴되고 맙니다. 때문에 종횡이 일치된 사랑권 내에 들어가 지면 사랑을 중심삼고 만우주를 지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우주와 관계를 맺게 되면, 지식도 권력도 돈도 생명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생명도 그 안에서는 영생하는 것입니다. (188-219)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의 몸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둘 사이의 사랑을 좋아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에 대해 바라는 종착점은 무엇이냐. 아들딸을 만나 사랑하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바라는 종착점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아들딸로서 사랑받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아담은 자기 중의 자기요, 미래의 이상적인 사랑 중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아담은 하나님의 몸입니다. 또한 해와는 하나님의 부인이요, 몸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몸에 상대되는 영적 상대요, 해와는 육적 상대입니다. 그러니 아담과 해와가 부부가 되어 사랑하는 것은 누구하고 사랑하는 것이냐, 하나님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은 지극히 신성한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지식이 필요없습니다. 지식을 창조한 분입니다. 하나님에게는 권력이 필요없습니다. 전지 전능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돈이 필요없습니다. 다이아몬드나 황금도 마음대로 만드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필요한 것이 단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사랑입니다. 하나님 혼자서 사랑을 받으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자신이 사랑을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않겠느냐 하겠지만 천만에요! 하나님에게 있어서 제일 필요한 것은 참사랑을 나눌 수 있는 대상자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149-151)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주게 될 때 무한정으로 주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몽땅 주고도 '너로 말미암아 네 안에 살고 싶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는 본질은 사랑에 있습니다. 하나님도 사랑 가운데 들어가서는 종살이를 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법을 초월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맛이냐. 모든 것을 종합한 최고의 맛입니다. 좋아서 쥐면 끝없이 쥘 수 있고, 펴면 끝없이 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사랑으로는 얼마든지 채울 수 있고, 어디든지 미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모체입니다. 여기에서 부모의 사랑이 우러나왔고, 부부의 사랑이 우러 나왔고, 자녀의 사랑이 우러나왔고, 형제의 사랑이 우러나왔고, 친척의 사랑, 민족의 사랑이 우러나왔습니다.

사랑 중에서도 보이지 않는 사랑이 최고의 사랑입니다. 사랑이 보인다면 재미가 없을 것입니다. 사랑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최고로 높을 수 있으며, 최고로 넓을 수 있으며, 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로키산맥과 같다, 사랑은 나이아가라 폭포와 같다'는 말이 맞습니다. 보이지 않는 사랑이 이처럼 귀하듯 보이지 않는 곳에 계시는 하나님도 귀하신 분입니다. 그 귀하신 하나님을 찾기 위해서는 무아의 경지에, 즉 내가 없는 경지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 맞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볼 수 있는 것보다 더 깊은, 보이지 않는 조용한 세계에 계십니다.

남녀지간에 사랑하게 되면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집니다. 그렇지요? 그러나 하나님을 찾아갈 수 있는 길을 알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진짜 맛보면, 하나님의 그 사랑은 세상에 어떤 것과도 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을 맛본 사람이 있다면 어떠한 고난도 그를 점령하지 못하고, 어떠한 슬픔도 그를 점령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절대적인 해방권이 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을 찾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이기 때문에 그런 하나님을 다른 데 모실 데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같이 가고 싶어하고, 같이 있고 싶어하고, 같이 살고 싶어합니다. 어떻게 같이 살고 싶어하느냐? 하나님을 파고 들어가서 하나되어 같이 살고 싶어합니다. 그것이 사랑의 본질입니다.

마음이 좁아요, 넓어요? 마음의 생김새를 여러분 자신은 잘 모르지만 마음은 무한히 큰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마음이 얼마나 좋으냐? 세계 인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몇백억 원씩 주고도 또 주고싶은 것이 마음입니다. 마음은 이렇게 멋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무한한 사랑, 무한한 희망의 꽃으로 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건 왜 그러냐? 무한히 하나님의 성품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얼마나 크냐? 이건 측정할 수 없으리만큼 크다는 겁니다. 또 작다면 그거 형편없이 작습니다. 바늘 끝도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작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이겁니다. 마음은 크게 넓히면 무한히 넓힐 수 있고, 좁히면 무한히 좁힐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본질을, 본성을 지니고 있다는 겁니다. 왜 마음이 그렇게 되었느냐? 그게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하나님의 집으로 돼 있다는 겁니다.

사랑은 제일 가까운 거리를 통합니다. 간단한 말이지만 귀한 말입니다. 왜 수직이 돼야 되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왜 수평이 되고 평형이 되어야 되느냐? 사랑을 중심삼고 수직이 되려면 사랑은 직단거리를 통해야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 찾아갈 때 이웃동네 찾아가듯이 슬슬 가나요, 쏜살같이 직행하나요? 밤이든 낮이든 할 것 없이, 춘하추동, 아무리 역사가 길다 해도 사랑은 제일 직단거리를 통하려고 합니다. (188-219)

 

사랑만은 만유에 있어서 직단거리를 통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에 있는 물건이 아래로 내려오게 될 때 직단거리로 내려오는데 그 자리가 수직입니다. (188-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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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사랑의 목적은 신인애(神人愛)일체 이상

 

천지의 중심과 우주의 근본은 무엇입니까? 신비스러운 경지에 들어가 하나님께 기도해 보니 아버지와 아들딸의 관계, 즉 부자의 관계라고 하셨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육친의 아버지 어머니, 아들딸과의 관계인 줄 알겠지만, 하나님과의 근본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19-160)

 

아버지와 아들이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장소가 어디냐? 사랑이 교차되는 중심, 생명이 교차되는 중심, 이상이 교차되는 그 중심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사랑과 생명과 이상이 한 자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가면 하나님도 사랑이요 나도 사랑이요, 하나님도 생명이요 나도 생명이요, 하나님도 이상이요 나도 이상이 된다 이겁니다.

그것을 결정지을 수 있는 최초의 인연과 최초의 통일의 장소가 부자관계가 이루어지는 자리가 아니면 그런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69-78)

 

하나님께서 절대적인 분이시라면 그 절대적인 분이 왜 인간을 지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돈 때문에 지은 것도 아니요, 지식 때문에 지은 것도 아니요, 권력 때문에 지은 것도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단 하나의 길 때문에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은 아버지이고 인간은 아들딸이라는 것이 하나의 축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 축이 만일 연결됐더라면, 인간과 하나님이 사랑으로 일체된 관계를 무엇이 작용해도 절대 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본래는 아담과 해와가 서로 최고로 기쁜 가운데서, 최고의 생명력이 발휘되고, 최고의 힘이 합하고, 전체의 이상력까지 합한 가운데서 사랑의 꽃이 피어야 됩니다. 그래서 꽃과 같이 피어 가지고 그 향기가 온 천하를 덮고도 남을 수 있고, 하나님이 그 꽃을 바라보고 꽃의 향기를 맡으면서 스스로 거기에 취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을 하나님은 꿈꿨던 것입니다. (104-45)

 

하나님이 창조 당시 이상으로 바랐던 참된 사랑, 위대한 사랑을 중심삼고 인간과의 사랑관계를 맺어 하나 될 수 있는 신인애일체(神人愛一體)의 가정을 이루었다면, 오늘날 우리들은 천국이니 지옥이니 염려할 것 없이 그냥 그대로 천국으로 다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을 좋아하는데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는 사랑이 무슨 사랑이냐? 참사랑입니다. 그러면 참사랑은 사랑의 뿌리를 어디에 두고 얘기하느냐? 그 뿌리를 하나님에게 두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거 이상한 말이지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참사랑의 주인공인데도 불구하고 그 사랑의 뿌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대상될 수 있는 사람에게 뿌리를 심겠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177-232)

 

그래 동맥이 위대하냐, 정맥이 위대하냐? 어떤 게 위대해요? 같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위대하냐? 사람이 위대하냐? 같습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동맥적이라면 우리 인간은 정맥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대등할 수 있는 그런 특권을 지닌 인간의 가치가 있는 겁니다. '천상천하에 유아독존이요,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하고, 나를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그게 무엇을 중심삼고? 사랑을 중심삼고. 그게 이해된다는 것입니다. (109-118)

 

사랑이 먼저냐, 생명이 먼저냐? 사랑이 먼저입니다. 우주가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나왔다고 생명이 제일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사랑이 제일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천지창조를 생명에서부터 했다고 하더라도 그 생명의 발원지, 동기는 사랑입니다. 생명이 생겨난 것은 사랑때문입니다.

참사랑을 중심삼고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을 대신한 자리에 서게 되면 우주의 모든 것에 연결됩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의 모든 것이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참사랑이 위대한 이유는 참사랑으로 내자신이 하나님의 대상이 될 수 있고, 하나님도 내 자신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이 내 안에 있고 예수님이 내 안에 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 안에, 손자가 할아버지 안에, 할아버지가 손자 안에 있다는 말이 여기서 생긴 말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손자를 중심삼고 정을 맺어야 됩니다. 이렇게 되어야 사랑의 수직선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또 손자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하나되어야 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 같이 모셔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의 축을 찾을 수 없습니다. 이것을 세운 다음에 횡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인간 완성은 하나님과 종적인 관계를 맺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절대적인 분이시면 그 분이 왜 인간을 지었느냐? 돈 때문에, 지식 때문에, 권력 때문에 지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단 하나의 길 때문에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하나님은 아버지이고, 인간은 아들딸이라는 것이 하나의 축을 이루는 것입니다. 만일 이 축이 연결됐더라면, 인간과 하나님이 사랑으로 일체된 관계를 무엇이 작용해도 절대 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연의 사랑에다가 줄을 매고 그 사랑의 맛을 본 사람이 갈라질 것 같습니까? 벌은 봄에 꿀맛을 보게 됩니다. 꿀을 빨고 있는 벌의 꽁무니를 잡아당기면 꽁무니가 빠지더라도 꿀에서 입을 떼지 않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그 최고의 자리는 어떤 자리냐. 그 자리는 바로 아들의 자리요, 딸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천정(天情)이 있고, 우리 인간에게는 인정(人情)이 있습니다. 이 인정과 천정이 서로 합할 수 있는 귀결점은 어떤 자리냐. 그 자리는 절대자인 하나님도 원하고 인간도 원하는 단 하나의 자리, 즉 한 부모를 중심으로 한 아들딸의 입장에서 서로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자리입니다.

사랑의 둥지 가운데 품겨 사랑의 둥지 가운데서 태어나는 아들딸이 얼마나 가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매일같이 찾아와서 구경하고 싶고, 만져주고 싶고, 속삭이고 싶은 우주의 주인공이 있다면 얼마나 가치 있고 행복하겠습니까? 그러한 우주의 주인공으로서 살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사랑입니다.

아담과 하나님이 하나되어, 서로 사랑이 넘치게 될 때 아담은 하나님이 될 수 있습니다. 아담이 사랑으로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될 때에 하나님은 아담에게 거(居)합니다. 성경에도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적인 걸작품으로서 하나님을 닮아서 났다 이겁니다. 하나님이 영원하시니 우리도 영원한 성품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되겠기 때문에 우리 마음은 늙지 않는다는 겁니다. 사람은 영생해야 되고, 영생해야 그 걸작품의 존재적 가치를 지닐 수 있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만물의 영장(靈長)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사랑은 반드시 인간에 의해 횡적으로 뻗어나갑니다. 전기의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주고받으면 반응하는 극이 생깁니다. 그런 것이 다른 데에서 또 벌어집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은 횡적으로 뻗어나갑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것이 무엇입니까?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것은 참사랑입니다. 참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합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면 그 외의 길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참사랑의 길이며, 참사랑의 길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통해, 보고 듣고 먹고 만져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인간도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의 입맞춤을 받았다면 내부가 폭발할 것 같은 희열을 느낄 것입니다. 하나님의 바램은 여기에 있는 것이지, 다이아몬드나 보석을 소유하고 기쁘다고 하시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6.9-21)

 

인류는 세계 무대에서 제일이 되는 것을 바라기 이전에, 본연적인 아담과 해와의 가정에서 제일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 앞에 직계 왕자와 왕녀의 자리를 갖추게 되면, 그들은 남자로서 최고요, 여자로서 최고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차지해야 할 장자권 왕자, 장자권 왕녀의 자리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인류 역사에 한으로 남아졌습니다. 그래서 인류는 하나님의 참사랑을 다시 찾고자 첫째 아들과 첫째 딸의 자리를 찾아나오는 인생길을 걸어온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은 아담과 해와의 몸은 하나님이 거(居)할 수 있는 집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을 마음의 중심으로 삼고 참사랑으로 영원히 통일된 사랑의 체(體), 생명의 체, 혈통의 체가 되었더라면 오늘날 우리의 마음과 몸이 싸우지 않을 것입니다. 타락이란 악마의 사랑을 중심삼고 악마의 생명체와 핏줄을 이어받은 것입니다. 때문에 이 핏줄을 개조해야 됩니다. 돌감람나무를 참감람나무로 개조해야만 구원섭리의 완성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22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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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참부모의 사랑

 

  ① 원죄 없는 참조상, 인류의 구세주

 

참부모가 뭐냐?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님은 종적인 사랑이 되고,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몸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몸과 같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뼈와 같고, 아담과 해와는 몸과 같은거다 이겁니다. 하나님도 마음이 있고, 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적인 자리에서 내적인 부모가 되고 아담과 해와는 외적인 자리에서 외적인 부모가 되는 겁니다. 내적 외적 부모가 하나된 그 자리에서 사랑으로 엮어져 내적 부모를 모시게 되고 외적 부모를 갖게 됩니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사랑의 결탁에 의해 참부모, 즉, 완성한 인간이 성사될 것이었다 이겁니다. 사랑과 결탁 안 되게 되면 완성인간이 없다는 겁니다.

오늘날 역사는 무엇을 찾아 나왔느냐? 시대는 무엇을 찾아 나왔느냐? 미래는 무엇을 찾아야 되느냐? 참부모입니다.

그러므로 전체가 여기에 귀결되지 않고는 행복의 기준은 역사과정이나 우주 가운데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26-199)

 

참부모란 어떠한 존재냐? 참부모는 전체의 소망의 상징입니다. 타락한 인류 앞에 절대적인 소망의 상징인 것입니다. 그는 역사적인 결실체요, 시대적인 중심이요, 인류가 살고 있는 오늘날 이 세계로 연결될 수 있는 미래선상에 있어서의 출발점입니다. (144-132)

 

참부모라는 그 이름 세 자(字)를 생각할 때, 참부모로 말미암아 역사가 치리되고, 참부모로 말미암아 새로운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기원이 생겨나고, 참부모로 말미암아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내적인 인연이 결정되고, 참부모로 말미암아 외적인 세계를 점령하고 있는 사탄을 정복하여 비로소 하나님을 해원성사해 드릴 수 있는 중심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부모와 더불어 살고, 참부모의 명령을 받들어 행동할 수 있는 이 놀라운 은사에 여러분이 먼저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43-144)

 

인간의 소원은 참부모를 만나는 것입니다. 죽음길을 가더라도 만나야 할 사람이 참부모라는 것입니다. 역사를 다 잃어버리고, 시대를 다 잃어버리고, 자기의 후손을 다 잃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참부모를 만난다면 역사를 찾는 것이요, 시대를 찾는 것이요, 미래를 찾는 것입니다. 이런 분이 바로 참부모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3-143)

여러분은 하나님과 참부모를 위해서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누구도 복귀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눈물의 길을 걸어오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세계 163)

 

여러분은 선생님이 이 땅 위에 참부모라는 이름을 가지고 온 것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참부모라는 말, 세상의 말 중에 제일 복된 말이 무엇일 것이냐? 타락한 인간에게 있어서는 그 나라를 잃었다가 찾는 것보다도, 세계를 잃었다가 찾는 것보다도 참부모라는 말이 제일 복된 말입니다. 그것은 천지의 그 무엇보다도 귀하다는 걸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127-221)

 

참부모라는 말 한마디 때문에 역사가 좌우됩니다. 이 말을 찾아 세우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수많은 선열들이 희생의 길을 갔습니다. 연속적인 피의 투쟁을 거치고 몸부림치며 절규하면서 소망을 품고 찾아 세운 이름이 참부모라는 거룩한 이름입니다. 참부모 앞에는 참자녀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 여러분들이 참자녀가 되었습니까? 참이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33-109)

 

하나님의 복귀역사는 참부모를 세우기 위한 역사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인 아벨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하늘은 내적으로 참부모를 복귀하기 위해서 섭리해 나왔습니다. 어느 누구든지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한 근본섭리에 대적(對敵)하거나 훼방하면, 그는 천도(天道)앞에 버림받게 되고 결국 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9-10)

 

메시아는 참부모입니다. 우리들은 참자녀입니다. 같은 운명권에 서서 거기에 끼지 않으면 안 됩니다. (55-99)

 

메시아가 이 땅 위에 오실 때 그분은 개인으로 오시되 개인이 아닙니다. 그분의 가치는 온 세계 인류가 믿고 있는 신앙의 결실체요, 온 세계 인류가 바라고 있는 소망의 결실체요, 온 세계가 바라고 있는 사랑의 결실체입니다. 그 결실체에는 모든 역사노정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즉 과거-현재-미래가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전부 연결되어 있고 하늘과 땅이 모두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13-143)

 

메시아가 이 땅에 와서 대행해야 할 자리가 참부모의 자리입니다. 그러면 참부모는 뭐냐? 종적인 참아버지 대신으로 횡적인 참사랑을 중심삼은 횡적인 부모입니다. 기독교에서는 메시아가 하나님이요 하나님이 메시아라고 하는데, 그건 틀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종적인 참아버지입니다. 이것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딴 길로 못 갑니다. 메시아는 횡적인 참부모라는 것입니다. (13-141)

 

참부모가 이 땅에 출현하기까지에는 그 배후에 여러분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눈물겨운 사정이 많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자리에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그 내용은 하나님만이 아실 것입니다. (210-364)

 

우리가 알고 있는 참부모는 뭐냐? 인간 조상입니다, 인간 조상. 그러니 참부모를 자기 부모와 같이 모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118-147)

참부모가 이 땅 위의 인간들 앞에 뭘 하려고 찾아오는 거예요? 인간이 제일 좋아하는 것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온다는 것입니다. 그게 뭐냐 하면 여러분들을 참부모, 작은 참부모로 만드는 놀음입니다. (125-117)

 

어디서부터 참사랑이 출발하느냐? 참부모에서부터. 이건 복음 중의 복음입니다. 세상에 무슨 좋은 말이 있다 해도, 남편이라는 말이 좋은 말이고, 아내라는 말이 좋은 말이라 해도, 타락한 세계는 참부모가 나타나지 않고는 참된 남편과 아내가 안 나타나기 때문에 참부모 이상 좋은 복음이 없다 이겁니다. 이걸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137-187)

 

인류는 참부모가 필요한 겁니다. 왜 그러냐? 사랑의 축에 연결될 수 있는 원칙적인 일이 역사 이래 처음 벌어진 겁니다. 역사 이래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습니다.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축은 하나입니다. 둘이 아닙니다. 그 축이 무엇이냐 하면 참사랑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하는 것은 참사랑이 아닙니다. (137-128)

 

하나님의 섭리의 목적이 뭐냐 하면, 하나의 초점입니다. 하나님의 이상이 실현되는 자리도 바로 그 자리입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부모, 잃었던 참부모님을 만날 수 있는 곳도 바로 그 곳입니다. 그래서 그 기대(基臺)가 모든 것의 중심입니다. 그 자리, 그것이 '참부모'라고 하는 것입니다. 역사상 많은 자리가 있었지만, 이 자리가 가장 가치 있는 자리입니다. 그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모든 성인들도 이 기대, 이 문제를 위해 싸웠습니다. (52-95)

 

인류가 소망하는 것은 무엇이냐? 참부모를 모시는 것입니다. 6천 년 전에 아담과 해와가 성혼해서 온 인류가 하나님의 후손이 되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간들은 사탄의 후손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6천 년 전에 잃어버린 하늘 편인 참부모를 다시 이 땅 위에 찾아 세워 참부모의 사랑의 인연을 통하여 중생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천국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9-203)

 

하나님은 참부모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도 참부모가 없이는 섭리를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계에 가 있는 수억의 영인들도 참부모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참부모가 태어나지 않는 이상은 천사장계(天使長界)의 영인(靈人)들은 지상에서 뜻이 성사될 수 있도록 역사한 보람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서도 참부모가 필요한 것입니다. (138-277)

 

모든 역사는 참부모를 맞기 위한 것입니다. 종교도 참부모를 찾아 나왔고, 세계도 참부모를 찾아 나왔고, 국가도 참부모를 찾아 나왔습니다. 참부모를 찾는 길을 모색해 나온 것입니다. (173-34)

 

인간은 역사시대에 부모를 잃어버리고 고아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될 길이 없었습니다. 본연의 부모의 사랑에서부터 모든 것이 해결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필요로 하는 분이 참부모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세계-770)

 

지금까지의 역사적인 소원이 무엇이냐? 참부모를 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를 세우신 것도 메시아를 맞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메시아는 어떤 분이냐 하면 참부모입니다. 또, 기독교와 기독교문화세계를 만든 것은 재림주를 맞기 위한 것인데, 재림주는 제3 아담으로 오시는 참부모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세계 134)

 

모든 것은 어디에 귀결되느냐? 참부모를 만나는 데에 귀결되는 것입니다. 인류의 참부모가 나타나는 것이 역사의 소원이요, 국가의 소원이요, 사상의 소원이요, 섭리의 소원입니다. 그래서 참부모가 나타나는 때는 역사상에 한 번밖에 없는 정점을 이루는 때요, 전무 후무한 때인 것입니다. (51-354)

 

참부모가 뭐예요? 육신의 부모가 참부모와 무엇이 달라요? 참부모가 뭐예요? 뭐하는 것이 참부모예요? 사랑을 중심삼고 말할 때, 그 육신의 부모와 참부모와 무엇이 달라요? 사랑에 대한 개념이 다른 겁니다. 사랑의 개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육적 부모는 육신을 중심삼은 사랑을 가르쳐 주는 것이요, 영적 부모는 영적인 세계를 중심삼은 사랑을 가르쳐 주는 겁니다. 내용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129-99)

 

민주주의는 세계주의이지만, 그 위가 부모주의입니다. 앞으로 부모주의 시대가 찾아오는 걸 알아야 됩니다. 부모를 선거로 선출해요? 재림주를 선거로 뽑을 수 있어요? 하나님을 선거로 채택할 수 있어요? 없습니다. 민주주의는 불신 풍조를 조성할 수 있는 터전이 되어 있습니다. 왜? 전부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는 별의별 놀음을 다 합니다. 금력을 동원하고 인력을 동원해서 모략 중상 등 별의별 놀음을 다 한다는 겁니다. (21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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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참사랑으로 인류를 낳아 주신다

 

여러분은 참된 부모와 상관이 없는 자리에서 하늘 앞에서 쫓겨난 거짓된 부모의 핏줄을 받고 태어났으니, 이 핏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핏줄을 밟고 밟고, 뽑아 버리고 뽑아 버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혈통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서는 하늘나라에 갈 수 없는 것입니다. (218-178)

 

혈통적 전환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담의 골수까지, 골육의 중심부까지 들어가서 장래의 아이가 될 그 씨에 하나님의 사랑과 결속된 승리적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고는 장래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이론적으로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성서에 그렇게 해온 기록이 있을까. 그렇다고 한다면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35-163)

 

타락한 인간이 요구하는 구주는 어떠한 구주냐? 타락한 부모의 자리에서가 아니라 타락하지 않은 아담과 해와와 같은 입장에서 하나님의 뜻과 일체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참된 부모의 자리에서 인류를 낳아 줄 구주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이 원죄와 상관이 없는 자리에 올라갈 수 없는 것입니다. (22-239)

 

혈통을 전환하는 것은 메시아가 할지 모르나, 전환하도록 행동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기준이 이룩되지 않는 한 우리는 구원의 길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것은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고, 죽느냐 사느냐하는 경지를 통과해야 합니다. 40일 단식기도라든가 피를 토하는 죽음의 경지에 가야 혈통 전환이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세계 62)

 

참부모가 필요한 것은 무엇 때문이냐? 심정권을 중심삼고 그 뿌리를 내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뿌리가 다릅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줄기와 가지가 전부 다릅니다. 여기에서 새로이 뿌리가 참부모로부터 시작되어 무엇이 나왔느냐? 여기서 줄기와 가지가 나와 가지고 접붙이는 것입니다. 잘라내고 접붙이는 겁니다. 접붙여 가지고 그것이 우주의 큰 주류가 되는 것입니다. 사탄세계의 모든 것을 잘라 버려야 됩니다. 뿌리까지 잘라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125-208)

 

오늘날 만민이 소원하는 것은 무엇이냐? 세계 국가를 맞기 전에 참부모를 맞이하려는 것입니다. 또한 미래의 후손들은 누구로부터 출발하고 싶어 하느냐? 여러분의 아들딸은 여러분의 핏줄을 통해서 태어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참부모의 핏줄을 통해 태어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부모는 새로운 미래의 출발점이 된다는 것입니다. (35-237)

 

참부모는 무엇을 해야 되느냐? 사탄세계의 뿌리되는 그릇된 혈통을 바로잡아야 되고, 그릇된 생명을 돌이켜 놓아야 되고, 그릇된 사랑의 길을 바로 열어야 됩니다. 성경에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고 했는데, 그런 역설적인 논리가 왜 나와야 되느냐? 사탄세계는 죽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169-39)

 

우리가 완전한 새로운 생명으로서 재창조되어 근본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은 참부모의 몸을 통해서만 이루어지게 됩니다. 참부모에 의해서만 영육이 함께 구원되는 완전한 구원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탄생된 우리의 자녀들은 원죄가 없으므로 구원의 과정을 통하지 않고 천국으로 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과 세계 135)

 

참부모와 참부모의 자식이라는 것은 영원불변의 숙명적인 업(業)입니다. 이걸 누구도 가를 수 없는 것입니다. 천년만년 그 길을 가야 합니다. 갈 길은 두 길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비법이 없습니다. 그길을 가야 됩니다. (203-192)

 

참부모는 세계 사람들을 불러 부모의 입장에서 결혼시켜 줍니다. 여기에는 인종 차이를 넘어서는 것뿐만 아니라 선인(善人)과 악인(惡人)도 같이 결혼시켜 주는 것입니다.

참부모는 악한 사랑?악한 생명?악한 혈통은 다 부정하지만, 아벨을 죽인 가인은 제거해 버리지 않고 같은 자리에서 축복해 줍니다. 바다의 조수 물을 볼 때 나가는 물과 들어오는 물이 만나 수평을 이룬 때와 같이, 구원섭리(탕감복귀)가 종결되는 선악의 전환기에서 선인과 악인을 함께 다 축복해 줌으로써 사탄을 완전히 추방하게 되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결혼을 잘못한 것이 타락이니, 이제 참부모가 바르게 결혼시켜 줌으로써 다시 뒤집어놓은 것입니다. 거짓 부모가 저질러 놓은 일을 참부모가 청산함으로 지옥을 철폐하고 수백, 수천억의 영계의 조상들마저 축복 결혼시켜 주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참사랑을 중심한 지상의 후손들의 가정기반을 통해 영계의 조상과 지상의 후손이 종적으로 하나로 합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가정기반을 기점으로 동양과 서양이 서로 연결됩니다. (22-239)

양자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참된 아들에게 접붙임을 받아야 합니다. 돌감람나무를 잘라 버리고 참감람나무 순을 접붙이는 일을 해야 합니다. 돌감람나무들이 참감람나무가 되는 운동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중생하기 위해서는 참부모의 혈통을 이어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류가 바라는 것은 참부모이고, 예수와 성신이 바라는 것은 어린양 잔치입니다. (142-226)

 

먼저는 부모를 진심으로 그리워해야 됩니다. 내 생명의 동기도 부모요, 내 소망의 일체도 부모요, 내 모든 이상과 행복의 근원도 부모라고 하는 기준을 중심삼고 부모를 모시지 않고는 구원을 못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렇게 모셔 보았습니까?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참부모와 영원히 하나될 수 있는 아들딸이다'라는 신념을 자신의 존재의식을 초월할 수 있을 정도로 굳게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38-75)

 

육적인 부모만 있으면 될 텐데 영적인 부모가 왜 필요하냐?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타락한 부모가 무엇을 가르쳐 주었느냐? 절반 이상 더 큰 것을 다 따버리고 자기를 중심삼고 자꾸 내려가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래서 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사탄세계에 영원히 있게 하기 위한 하나의 결정적인 금이 그어졌습니다. 이것을 끊을 길이 없습니다.

그러면 참부모는 뭐냐? 그런 기반에서 점점 더 큰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나라, 영원한 나라에 맞게끔 가르치는 것입니다. 영원한 나라에 가서 박자가 맞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호흡에 지장이 없게끔 가르치는 것입니다. (12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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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부모의 사랑

 

  ① 부모의 사랑은 본질의 사랑이다.

 

자식은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의 실현체요 투입체입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생명의 연장체입니다. 또한 어머니 아버지의 이상의 구현체입니다. 자식을 낳아서 사랑해 본 사람들은 알겁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아들에 대해 '이는 내 사랑의 실체요, 생명의 연장체요, 이상의 구현체다. 제2의 나다'라고 하는 겁니다. (54-81)

 

자식은 사랑과 생명과 이상적 기반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부모는 그 자식을 보면 볼수록 사랑스럽고, 보면 볼수록 생명이 약동하고, 보면 볼수록 이상적인 상대로 등장되는 것입니다. (54-81)

 

부모가 변할 수 있어요? 부모의 사랑을 혁명하는 것은 역사시대에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혁명이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사랑을 혁명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랑은 영원히 존속해야 된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부모, 그러한 사랑의 주체 되는 부모가 나를 절대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유일적으로 필요로 하고, 불변적으로 필요로 하고, 영원히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18-12)

 

자식은 왜 부모를 그리워 해요? 거기에 나의 사랑의 집이 있기 때문입니다. (137-141)

 

부모의 사랑을 왜 존중시하느냐? 보답을 바라지 않고 희생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어떠한 결과를 바라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만족하고, 그것으로 다 행복하다는 겁니다. 주는 것으로써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받는 것으로써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습니다. 왜 복이 있느냐? 하나님편을 대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46-36)

 

부모가 자식에 대해 하는 사랑은 그냥 그대로 생활적인 인연만을 통해서 하는 사랑이 아니라, 뼛골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인 것입니다.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고, 끊을래도 끊을 수 없는, 사랑의 마음을 부모는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자식과 생명의 인연이 맺어져 있다는 것을 느낄 때, 부모에게서는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자연적으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32-15)

 

참사랑은 무엇이냐? 위하는 사랑인데 주고는 그냥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새삼스럽게 준 것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또한 아무리 부어 주어도 지치질 않습니다. 70이 된 아들보고 '얘야! 차 조심 해라'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고, 몇십 년 동안 그 말을 수없이 되풀이했다 하더라도 싫증나거나 지치는 법이 없습니다. 타락한 세상의 부모가 이렇거늘 하물며 본질세계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주고 받을 때 지칠 리가 있겠습니까? (139-103)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는데 자기를 주장하지 않고 자기가 없는 자리에서 자식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권한을 가지고 언제나 당당한 자리에서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는 자신을 희생하더라도 자식이 훌륭하게 자라기를 바랍니다. 부모는 변하지 않는 사랑의 주인입니다. 부모라는 존재는 자식이 천태만태로 변해 별의별 짓을 다 해도 자식을 위하는 마음만은 변함 없습니다. 때문에 변하지 않는 부모의 사랑이 귀한 것입니다. (59-293)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뼛골이 녹아나도록 고생을 하지만 힘든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피살을 깎아주고 그 값어치가 얼마인지 장부에 치부해 둡니까? 안 합니다. 오히려 몽땅 주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는 것입니다. (39-335)

 

부자관계는 어떤 것이냐? 사랑을 중심삼고 무슨 관계겠느냐? 부자관계는 부모의 사랑이 원인이면 그 자식은 사랑의 열매요 결실이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결실과 원인이 동떨어진 자리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한 자리에서 출발을 본 것입니다. 부모님의 사랑이 원인인데 그 사랑 가운데 내가 결실로 나타났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 부모님이 현재 사랑하는 자리의 결과로 등장한 것이 '나'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사랑과 더불어 일체화한 원인과 결과의 자리를 대등하게 갖고 태어난 것이 부자의 관계에 있어서 자식이라는 것입니다. (144-233)

 

부자관계는 종적인 면을 대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자관계의 사랑은 변할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 역사상에도 그렇잖아요? 부부의 사랑은 횡적인 면의 인연이기 때문에 사방성을 갖춘 겁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식을 버릴 수 없고 자식이 부모를 버릴 수 없다는 겁니다. (145-275)

 

자식에게 있어서 부모를 대하는 기쁨은 그야말로 세계를 대표한 기쁨이 되어야 되고, 부모에게 있어서 자식을 대하는 기쁨은 세계를 대표한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부자의 관계는 그야말로 우주의 근본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기쁨의 근본이 거기에서부터 싹틀 것이고, 슬픔이 시작된다면 그 이상의 슬픈 자리가 없다는 것을 결론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62-18)

 

부자의 관계는 뭘 두고 말하는 거예요? 이것은 핏줄이 연결된 것입니다. 아버지라는 말 가운데는 사랑이 개재돼 있고 핏줄이 개재돼 있다는 것입니다. 직계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사랑으로 한몸이 돼야 됩니다. 핏줄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피는 생명을 구성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전통을 이어받은 생명을 지니는 겁니다. 무엇에 의해서? 사랑에 의해서. (142-287)

 

내가 어디서부터 태어났느냐, 나는 부모의 사랑이 지극히 꽃피는 자리에서 태어났다는 겁니다. 꽃이 피는 데는 아름답게 피고, 아름답게 필 뿐만이 아니라 향기가 풍기고, 그 향기는 어머니 아버지도 좋아하고 하나님도 좋아하고 만우주도 좋아하는, 이상적인 꽃으로 필 수 있는 그런 가운데에서 내가 태어났다 이겁니다. (83-162)

 

우주를 종합한 남자요, 여자로 태어난 그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의 꽃을 피우는 그 자리에, 기쁨의 자리에서 하나의 씨로 심어진 것이 자녀인 것입니다. (83-162)

 

나는 누구냐? 부모의 사랑의 출발 근원에 동참한 자인 것입니다. 이것은 원인과 결과가 한 곳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뗄래야 뗄 수 없습니다. 원인적인 부모의 사랑과 결과적인 내 생명의 사랑의 근원은 하나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사랑을 중심삼고 부자일신(父子一身)이라는 말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190-118)

 

사랑을 빼놓고는 일신이나 일체라는 말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나는 복중에서부터 부모의 사랑을 받습니다. 내가 사랑의 본질로 말미암아 복중에 잉태된 그 시간에서부터 부모의 사랑과 모든 관심이 집중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 그러냐? 사랑의 결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으로 태어나, 사랑에서 생명의 인연을 이어받아 가지고, 사랑을 받으면서 커 가지고 상대를 맞을 수 있는 때가 되면 상대를 취하는 겁니다. (140-234)

 

부자의 관계는 어떤 무엇으로도 깰 수 없습니다. 원자탄으로도 깰 수 없습니다. 절대로 깰 수 없고, 헤어질 수 없고, 버릴 수 없는 관계입니다. (21-69)

 

부모와 자녀의 인연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다는 겁니다. 내 사랑과 내 생명의 주체성을 가진 것이 자녀이기 때문에, 이걸 끊으면 나를 부정하고 내 생명을 부정하는 자리에 서게 되므로, 사랑의 결실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생명을 버릴 수 있다 하는 논리를 찾을 수 있는 겁니다. (83-162)

 

부처끼리 살면서 아무리 재미있게 사랑한다 해도 자식이 없는 부부가 행복한 부부예요, 자식이 있는 부부가 행복한 부부예요? 자식이 없는 것은 미완성품입니다. 미완성 부부라는 겁니다. 그런가요, 안 그런가요? (92-219)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칠 법이 없습니다. 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주가 보호하게 돼 있습니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사랑하는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을 안고 좋아하는 그 자리는 이 우주의 법이 공격할 수 없고 보호하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이것을 몰랐습니다. (130-152)

 

자식이 병자가 되어 있고 병신이 되어 있을 때에는 높고 깊은 부모의 심정은 그 병신 자식에게로 흐르는 게 원칙입니다. 그게 틀렸어요? 그런 불구자의 심정은 계곡과 같은 것입니다. 부모의 심정은 꼭대기의 큰 자리와 같습니다. 그러한 부모의 심정이 꼭대기로부터 그 깊은 골짜기로 흘러갑니다. (147-166)

 

자식을 위하는 부모의 품에는 나쁜 것이 없습니다. 옷이 누더기면 누더기일수록, 비참하면 비참할수록 그것이 눈물의 깊은 골짜기를 파내려가고 있다는 겁니다. (173-263)

 

여러분, 애기가 똥싸는 걸 부끄러워 한다면 어떻게 되겠나요? 똥을 싸놓고 오줌을 싸놓고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어머니가 똥 치우는 것 보고 벌쩍벌쩍 웃고 있습니다. 그거 얼마나 순진해요, 그것은 사랑에서만 가능합니다. 사랑에서는 추한 게 없다는 것입니다. 다 극복할 수 있습니다. (175-113)

 

품 안에서 젖을 먹여 키우는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 자식이 똥 싸고 오줌을 싸서 냄새가 나더라도 사랑으로 그 환경을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타락한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사랑의 주체 되시는 하나님께서 본연의 심정을 통해 아담과 해와를 사랑하고 싶었던 그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겠습니까? 한 번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175-113)

 

부모의 마음은 주고도 부족함을 느끼고, 사랑하고도 덜 사랑한 것이 있지 않겠나 하여 더 사랑하고 싶은 마음, 주고 나서 섭섭하고 안된 마음, 이러한 것이 있기 때문에 영원한 사랑과 통하는 본질에 속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출발의 전통적 동기입니다. (60-82)

 

부모가 이혼하는 것은 칼로 자식을 절반으로 자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우주의 공법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를 거역하는 부모는 어디를 가든지 화를 받고 불행이 따르지,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기가 배가 고파오면 어머니의 젖이 불어납니다. 젖이 불어 가지고 아파오면 안 조이는 데가 없습니다. 배고파하는 아이를 안고 젖을 먹이는 어머니의 기분이란 말로는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불었던 젖이 줄어들면 어머니는 시원하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건 어머니가 아니고는 모릅니다. 또 아기가 쪽쪽 빨아 먹으면서 젖을 만지는 걸 볼 때는 사랑이 듬뿍 우러나는 것입니다. (187-100)

 

자식을 가진 어머니는 남편과 자식 중에 누구를 죽음의 자리에 내놓겠느냐고 묻게 되면, 그 어머니가 진짜 자식을 사랑한다면 남편을 죽음의 자리에 내놓으면 내놓았지 자식은 안 내놓겠다고 하는 겁니다. 남편들이 들으면 섭섭할 수도 있습니다. 요즘 세상 같으면 '그거 뭐 자식이야 죽으면 또 낳으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것은 부가조건이고, 원칙을 따지고 들어가 순서가 어떻게 돼 있느냐 하면, 부부라는 것은 횡적이요 맨 나중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사랑의 역사가 그렇다구요, 사랑의 역사가. (48-214)

 

본연의 사랑이 도대체 뭐냐? 그것은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생명을 바칠 수 있는 그게 사랑입니다. 자기 생명을 넘어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본래 이 우주가 창조된 것은 생명 때문이 아닙니다. 사랑 때문에 지어졌기 때문에 사랑이 먼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에 부합될 수 있는 생명이지, 생명에 사랑이 부합되는 것이 아니다 그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은 생명을 희생해서 생명을 넘어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게 하늘의 사랑이요, 우주와 통할 수 있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132-153)

 

연어의 일생을 보면, 연어는 알을 낳고는 죽습니다. 그런데도 알을 배기 위해서 수놈 암놈이 그저 하나되어…, 그거 보면 죽을 날을 정한 사형수의 입장에서 부부가 사랑하는 이상의 사랑을 하지 않느냐 이겁니다. 암놈이 알을 낳게 되면 수놈은 땅을 파서 보호해 줍니다. 그야말로 이상적인 한 쌍입니다. 그리고 알을 낳게 되면 죽는 겁니다. 죽어가는 암놈 수놈들의 여러 가지 모양을 볼 때 참으로 큰 충격을 받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 어미의 몸은 새끼들의 먹이가 되는 것입니다. (128-269)

 

창조주가 있다면 왜 그렇게 만들었을까? 그걸 보면 새끼가 얼마나 중요한가,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이 최고의 것이요, 새끼가 최고의 것이라는 걸 보여 주기 위한 하나의 표본으로 연어를 만들었을 것이라는 이론은 지극히 당연한 말입니다. 연어의 일생은 참 놀라운 인간의 교재입니다. (128-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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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나누고 또 나누어도 완전한 부모의 사랑

 

자녀는 왜 사랑하는가? 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위업을 우리가 횡적인 실체권에서 이어받은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해와를 지어 놓고 하나님이 기뻐하던 그 기쁨을 우리도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이어받고 하나님의 창조적 권한을 이어받는 것입니다. (128-260)

 

자식을 많이 키워 본 부모는 무엇인지 모르게 사랑의 심정이 넓고 크고 깊은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자식을 많이 기른 사람은 악한 원수도 칠 수 없는 것을 스스로 느낄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만큼 무엇인지 모르게 넓은 터전에 서 있고 넓은 법도를 가지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132-5)

 

아기가 태어나면 어머니의 사랑의 전파를 따라 자동적으로 젖꼭지를 찾아갑니다. 추녀이든 미녀이든 상관없이 어머니면 그만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조화무쌍하고 거룩한 모습인 것입니다. (93-146)

 

사람은 사랑으로 태어나서 사랑을 받으면서 큽니다. '나' 라는 존재는 부모의 사랑의 열매인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이 어떻다는 것을 실제 열매로 보여 준 것이 '나'입니다. 부모님은 사랑의 열매인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열매를 통해서 무한한 사랑이 다시 열매맺는 것입니다. 개인적 사랑, 가정적 사랑, 종족적 사랑, 세계적 사랑?우주적 사랑?그리고 본질적 하나님의 사랑까지 연결될 수 있는 길이 여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부모앞에 둘도 없는 사랑의 동참자요 동반자입니다. 사랑을 가지고 어머니 아버지와 대등할 수 있고 대등한 자리에 올라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의 특권입니다. 부모는 참되게 사랑하는 아들딸에게 자기의 모든 것을 상속하려고 합니다. 우주의 상속은 사랑의 전통상에서 동등한 사랑의 가치적 위치를 찾게 될 때, 모든 것을 마음놓고 백 퍼센트 상속하게 돼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효자를 원하는 것입니다. 효자란 부모의 영원한 사랑의 동참자로 사랑의 상속을 이어 주는 것입니다. (190-118)

 

사랑으로 태어난 아기가 무슨 짓을 해도 밉지가 않고 마냥 좋은 것은 그 아기가 자기의 피와 살로, 그리고 사랑으로 만들어진 분신체이기 때문입니다. 오줌을 싸고, 똥을 누고, 코를 흘려도 마냥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한 것입니다. 그것들 속에는 사랑이 젖어 있기 때문입니다. (175-113)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은 부모로부터 옵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의 사랑을 받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고 성장하여 횡적인 부부의 사랑을 하게 되고, 부부의 사랑이 계속되기 위해서는 또 자녀를 낳아 사랑해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가 있어야만 참된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형제끼리의 사랑만으로는 부모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모릅니다. 다시 말해서 부모로 시작해서 한 바퀴 돌아 부모로 돌아가봐야 그 사랑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137-67)

 

나에게는 어머니, 부모의 사랑줄과 이상줄이 연결되어 있는데, 이 줄은 누구도 끊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주의 모든 힘이 이를 옹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어딜 가든지 부모는 따라오게 됩니다. 저 영계에서까지도 부모는 언제나 함께하려 합니다. 때문에 부모가 동행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부모님을 자기 몸같이 생각하고 사랑하고 효도하는 것이 인간에게 최고로 가치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태어나게 된 것은 부모의 사랑에서입니다. 부모의 사랑에서 접붙여서 나온 겁니다. 생명의 연결을 말하기 전에, 핏줄을 말하기 전에, 사랑으로 말미암아 핏줄이 이어지고 생명이 이어진 것입니다. '나'라는 것이 왜 귀하냐. 생명을 가졌기 때문에 귀한 것이 아니라 부모의 사랑에 동참했기 때문에 귀한 것입니다. 사랑은 부모가 했지만 사랑의 열매는 '나'입니다. 시작과 결실을 지니고 태어난 것이 바로 '나'이기 때문에 귀한 것입니다. (190-118)

 

참된 부모는 사랑의 전통을 계승시키기 위해서 애쓸 것입니다. 그것은 동양인이든 서양인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종족을 초월해서 모든 부모들이 세우려고 하는 것이 보편적인 사랑의 전통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가정을 온전히 화목하게 결합하여 행복하고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고자 합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은 그러한 인생을 갈망합니다. 이러한 경우에 전통은 본질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전통만이 미래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통일세계 1978. 11-11)

 

부부간의 사랑과 부자지간의 사랑 중에 어느 것이 크냐? 서양 사람들은 부부간의 사랑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부부간의 사랑보다 자식을 위하는 사랑이 더 큽니다. 부부끼리의 사랑에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싸움이 벌어지지만 부모와 자식간에는 사랑해야 한다고 싸움이 벌어집니다. 부자의 사랑이 중심이요 종적인 것으로 하늘의 법도에 가까운 길을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위하는 사랑이, 위해 주는 사랑이 보다 참된 사랑에 가깝다는 것을 우리는 찾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강한 남자도, 아무리 독한 여자도 그 사랑 앞에는 고개를 숙인다는 것입니다. (90-85)

 

부모가 귀한 것은 자식을 위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꿔치는 겁니다. 부모가 나이 많아지면 어린애가 되는 겁니다. 옛날에는 부모가 자식의 선생이 되었지만, 나이가 70,80이  되면 부모는 도리어 애기가 되는 겁니다. 그때는 자식이 아버지를 대신하는 것입니다. 자식은 부모가 자기를 키워 주었던 것처럼 그 부모를 사랑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것이 천지의 이치입니다. (13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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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부부의 사랑

 

  ① 부부사랑은 만우주의 꽃이다

 

남자는 하나님의 양성적 형상을 지닌 존재요, 여자는 하나님의 음성적 형상을 지닌 존재입니다. 부부는 천하를 한 보자기에 싼 것과 같습니다. 고로 부부는 하나님의 이상적인 사랑의 심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13-67)

 

하나님은 종적 이성성상을 가진 분이요, 인간은 횡적 이성성상을 가진 실체로서 둘이 합해서 완전한 둥그런 사과모양을 이루어 가지고 네 개의 성상형태를 가진 동서남북에 사랑이상을 끌어붙일 수 있는 모체를 삼자는 것이 부부의 이상입니다. (1982. 5. 5)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조화와 만상은 하나님께 향취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아름다운 향취 속에 살고 싶어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찾아올 수 있는 터전이 곧 부부의 사랑자리라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모든 만물과 우주가 화동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216-20)

 

부부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의 바탕 위에서 폭발될 듯이 서로 사랑한다면, 그 가정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취하고 우주가 취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하나님을 위한 사랑이요, 인류를 위한 사랑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뿌리는 어디에 있느냐? 자기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랑의 근원이요, 인류의 사랑이 근원인 것입니다. (35-240)

 

이상적 부부란 어떠한 부부냐? 최고의 예술을 실체로 전개시킬 수 있는 부부, 최고의 문학을 전개시킬 수 있는 부부인 것입니다. 최고의 이상, 최고의 문화세계를 접하기 전에 최고의 사랑으로 부부가 주고 받는 달콤한 사랑이 세계 최고의 예술작품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부부생활 자체가 최고의 문학작품이요, 그 자체가 문학의 실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2-270)

 

사람에게는 항상 자극이 필요합니다. 행복은 자극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자극이 있어야 됩니다. 항상 먹는 밥도 먹을 때마다 배가 고파야 맛이 새로운 것처럼 부부간의 사랑도 마찬가지로 항상 새로워야 됩니다. 부인과 남편이 서로 보면 볼수록 더욱 보고 싶고 온종일 함께 있고 싶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나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하고, 하나님에 대한 연구를 해야 됩니다. (23-57)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의 3대 사랑을 중심삼고 같이 꽃필 수 있는 가정을 이루는 것이 세계의 소원이요, 인류의 소원이요, 미래의 소원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비로소 천지의 법도 앞에 역사의 향기를 풍길 수 있고, 새로운 꽃으로서 등장할 수 있는 귀하고 아름다운 것이 부부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35-240)

 

사랑은 영원합니다. 그런 사랑은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 사랑으로 맺어지면 지상에서 백년해로를 해야 하고, 죽어서도 영원히 함께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몸은 둘이지만 하나되어 돌아감으로써 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두 몸이 하나되면 하나님과 돌게 되어 사랑의 사위기대를 이루게 되니 그것이 바로 이상세계인 것입니다. 거기에는 거짓 사랑이 침범할 수 없으며, 오직 참사랑만이 임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207-20)

 

심정적인 사랑에 의해 맺어진 부부는 그 애정이 생활권을 타고 넘고 생애를 타고 넘어 하나님의 목적과 일치되었음에 틀림없다고 하는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이 계신 천국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35-180)

 

남자와 여자의 사랑 완성이 우주의 완성입니다. 이 사랑이 깨어지는 날에 우주의 질서가 파괴되고 종적인 세계가 다 결딴나게 됩니다.

(통일세계 1982. 7-21)

 

부부의 사랑을 통해 하나됨으로 하나님과 같은 입장에서 창조능력을 이룬 것이 자녀입니다. (1973. 2. 3)

 

순수한 남성 여성으로서 붉은 사랑의 정열의 마음을 지니고 천지를 대표할 수 있는 남성 여성, 그렇게 묶어진 부부를 하늘은 찾고 있습니다. 그런 부부의 사랑을 가지고 그러한 사랑에서 아들딸을 키워야 되겠습니다. (회보 172-3)

 

남자 여자가 포옹하고 키스하는 장면은 평면적 극에서 사랑을 찾아가기 위한 충돌의 빛이 나는 장면입니다. 거기에 흰 빛이 나면 색깔을 가해서 오색찬란한 빛을 만들어야 됩니다. 그 빛이 종적인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서 섞어질 때 무지개 빛깔 같은 이상적인 찬란한 광명의 세계로 전환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134-142)

 

요즈음 인스턴트 식품 같은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도처에 널려 있는데 그것이 문제입니다. 향수탕에 들어가 목욕한다고 해서 사랑이 깊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시골에 살면서 냉수에 몸을 담가 씻어내고 잠자리에 드는 부부의 사랑이 더욱 순수하고 오래 가며 깊어지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통일세계 1986. 2-34)

 

신랑 신부는 돈이나 권력, 명예를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본연의 사랑을 중심삼고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을 위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는 가운데, 부부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정을 꾸며 나가야 합니다. (1983. 5. 1)

 

남성은 참아버지의 분신이요 여성은 참어머니의 분신입니다. 때문에 남편이 아내를 무시하면 참어머니를 무시하는 것이요, 아내가 남편을 속이면 참아버지를 속이는 것이 됩니다. 남자가 여자를 주관하고 여자가 남자를 주관할 수 있는 힘은 사랑입니다. 사랑 외에 어떠한 힘도 남녀간에 상호 주관할 수 없으며, 오직 사랑만이 주관할 수 있는 것입니다. (128-132)

 

여자와 남자를 힘으로 비교하면 상대도 안 되지만 사랑이 개재된다면, 아내와 남편이 서로 밀고 끌어 당기며 하나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 대상적인 사랑의 존재가 되었다면 하나님이 좋아하실까요?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6. 4-22)

 

최고로 좋아하는 멜로디가 무엇이냐 하면, 남자 여자가 서로 좋아서 기뻐하는 부부의 웃음소리인 것입니다. 그런 부부가 세상을 품을 수 있고, 우주 전체를 수용할 수 있는 마음으로 삶을 영위할 때 그 웃음은 자연발생적이 됩니다. 그런 부부의 아름다운 모습이 하나님 앞에 한 송이 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은 단순한 이상이나 추상이 아닙니다. 본래의 세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216-20)

 

사랑하는 부부간의 대화는 세상의 어떤 시나 그림보다 아름다운 것입니다.

또 '사랑하는 사람끼리 주고받는 우리끼리, 우리 둘이서' 하는 말은 얼마나 아름답고 멋있는 말입니까? (통일세계 1986. 2-28)

 

남자와 여자가 축복을 받아서 완전한 사랑을 주고 받으며 기쁨을 누릴 때 하나님이 보시기에 지상에 핀 꽃과 같다는 것입니다. 또 그들의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조화만상은 하나님에게는 향취와 같은 것입니다. 이와 같은 아름다운 향취 속에 하나님은 살고 싶어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찾아올 수 있는 터전이 곧 부부의 사랑자리입니다. 그 자리는 만물과 우주가 화동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2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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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부부사랑은 나누어지면 불완전

 

인간은 본성적으로 상대의 자기에 대한 사랑이 나누어지기를 원치 않습니다. 부부간의 횡적인 사랑의 관계는 부모와 자식간의 종적인 사랑의 관계와 달리, 나누어지면 벌써 그 온전성이 파괴됩니다.

부부간에는 절대적인 사랑의 일체를 이루게 되어 있는 창조원리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기 상대를 절대로 위해야 할 사랑의 책임성이 있습니다. (성약말씀?구원섭리의 원리관)

 

사랑의 강력한 힘으로 맺어진 부부라면 상대가 무슨 짓을 하거나, 어떤 일을 해도, 기쁘고 사랑스러워야 하는 것입니다. 남편 몸에서 나는 냄새가 싫다고 한다거나, 부인이 하는 몸짓이 싫다고 생각하거나 느끼는 것은, 둘 사이에 완전한 사랑이 이루어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부부는 목적을 위해 이해관계로 맺어졌기 때문입니다. (통일세계 1983. 3-22)

 

부부가 함께 사는데 있어서 일생 동안 편안히 사는 것보다 사랑을 중심삼고 곡절을 겪으면서 태풍도 불고, 폭풍우도 내리고, 벼락도 치는, 그러한 다양한 느낌을 느끼면서 이상의 사랑을 추구하는 게 더 행복할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돈이나 지식이 아닌 사랑이 필요합니다. (167-213)

 

사람의 말소리를 가만히 들어보면 여자의 말소리가 남자의 말소리보다 높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높게 만들었느냐? 힘에 있어서는 남자보다 약하지만 정에 있어서는 여자가 높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자는 어떤가. 남자는 넓은 사랑을 합니다. 자기 남편과 아들딸만을 생각하는 사랑에 있어서는 여자가 높지만 친척이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남자들이 더 깊습니다. 그래서 아들딸을 사랑하거나 가정을 사랑하는 것은 어머니에게 배우고,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아버지에게서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한쪽만으로는 불안하지만 이것을 엮어 놓음으로 균형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129-55)

 

맨 처음 한 3년 동안은 접붙이려면 안 맞습니다. 집안이 다르고 풍습이 다르고 예절이 다른 남자와 여자가 맞을 것이 뭡니까? 하나될 때까지는 맞추어 나가는 노력을 해야 맞게 됩니다. (188-13)

 

사랑을 통해서만 더 큰 것이 나옵니다. 위하는 사랑에서만 수가 불어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가 싸우는 사랑에서는 망국지종(亡國之種)이 태어납니다. 그렇지만 위하는 사랑에서는 천지의 모든 정수(精髓)를 뺀 하나님 같은 지혜의 왕자 왕녀가 태어납니다. (204-106)

 

부부가 왜 싸움을 하느냐? 서로가 사랑을 받겠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사랑을 받겠다고 하는 패들은 오래 못 갑니다. 서로가 사랑을 받겠다고 하는 가정은 깨집니다. 그러나 서로가 사랑하겠다고 하는 가정은 깨지라고 제사를 지내도 안 깨집니다. 서로가 위해주려고 하는 사랑은 영원한 것입니다. (36-76)

 

사랑은 우둔하고 미욱한 것입니다. 어떤 상황도 개의치 않습니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옆에서 누가 보든지 상관하지 않습니다. 누가 볼 것을 의식하는 사랑은 한계권 내의 사랑입니다. 누가 보든 의식하지 않는 그러한 경지의 사랑이니 얼마나 우직하고 미욱합니까? (33-113)

 

경제문제를 중심삼은 어려움이 부부의 인연에 금이 가게 할 수 없습니다. 유식과 무식이 부부의 사랑을 흐리게 만들 수 없습니다. 순수한 남성, 여성으로서 붉은 사랑과 정열의 마음을 지니고 천지를 대표할 수 있는 남성 여성, 그렇게 묶어진 부부를 하늘은 찾고 있습니다. (통일세계 1986. 2-28)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 왜 이혼문제가 생겨나게 될까요? 이혼한 사람이나 이혼을 하겠다는 사람 모두가 처음에는 죽자살자 사랑하는 관계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이혼하게 된 사유는 여러 가지이겠지만 결국 무엇인가 달라졌다는 것이고, 둘 사이가 변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들은 사랑을 지키고 가꾸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사랑 그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사람의 마음이 변한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6. 2-28)

 

세상의 부부관계에 있어서는 남편이 돈을 벌어 올 때에 힘이 생겨납니다. 부인은 남편이 벌어온 돈을 보고 힘이 나고, 남편도 힘이 나는 부인을 보고 힘이 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돈을 벌지 못하면 불안하고 부부관계가 깨어지기도 합니다. 참된 부부는 하나님을 중심하고 사랑의 일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통일세계 1982. 7-26)

 

어떤 남자는 자기 아내가 있어도 예쁜 여자를 보면 자기 아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두 마음 가진 남자를 가리켜 도둑 심보를 가졌다고 합니다. 두 마음으로부터 시작한 것이 사탄이니 두 마음 가진 남자를 가리켜 사탄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사탄이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38-281)

 

부부는 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얼굴이 제각기 다른 것처럼 사람의 운도 다릅니다. 일생의 운명이 다릅니다. 남편의 운명이 나쁘더라도 아내의 운명이 좋으면 그로 인해 남편의 운이 좋아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아내의 운명이 나쁘더라도 남편의 운이 좋으면 그도 역시 좋아집니다.

그러므로 부부의 운명은 산과 골짜기를 허물어서 평지를 만드는 것과 같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평지를 만들어 거기에 부부의 이상을 가지고 나무를 심고 밭을 갈고 여러 가지 사랑의 계획을 추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이치를 생각해 볼 때, 상대를 외면적으로만 보고 결합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결혼이란 두려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세계 544)

 

남편을 만나면 좋을 줄 알았더니 나쁠 때도 있다는 겁니다. 좋은 것만 바라면 안됩니다. 24시간 계속 햇빛만 쬐면 되겠어요? 밤도 있어야지. 높으면 낮아지는 것이 원칙이 아니겠습니까? (30-143)

 

행복한 가정은 남편이 나갔다 들어오면 밖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아내와 더불어 상의하고 새롭게 개척할 수 있는 요인을 발견하는 가정입니다. 서로가 힘을 합해 연구하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부모가 그렇게 하면 자식들도 거기에 힘을 보태어 우리도 이러한 가정을 만들자고 하며 동조하게 되는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6. 2-28)

 

사랑하는 부부끼리 일방적으로 상대방의 얼굴이 어떻다고 규정짓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상대의 얼굴이 한 모양으로만 느껴진다면 그것처럼 싫증나는 것은 없습니다. 상대방의 얼굴은 기쁜 마음으로 보게 되면 기쁜 상태로 나타나고, 사랑의 마음을 갖고 볼 때는 아름답게 보이는 것입니다. 물이 흐를 때 굽이치는 것과 같이 한 굽이 돌 때마다 새로운 모양이 나타나듯 늘 상대의 얼굴을 새롭게 느껴야 됩니다. (1976. 3. 3)

 

인간의 아름다움이란 것은 얼굴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방 팔방에서 보고 느낄 수 있습니다. 아름다움은 공과 같이 입체적인 것입니다. 위에서 보아도, 옆에서 보아도, 어떤 방향에서 보아도 자기 나름의 완성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아내의 얼굴을 함부로 평해서는 안 됩니다. 미인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덕이나 복을 지니고 있는 여성은 다릅니다. 얼굴이 예쁜 미인도 아이를 두세 명만 낳으면 벌써 얼굴이 이상해지는 경우를 봅니다. 그러므로 아이를 낳아도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름다운 여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87-13)

 

남편과 아내가 서로 사랑하는 데도 하나님 대신자로서 남편이면 남편, 아내면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인간적인 자리에서 사랑하게 되면 서로 부족한 면이 나타나게 되어 결국에 가서는 이혼하는 사태까지 일어나게 됩니다. (1983. 5. 1)

 

사랑은 서로 그리워할 때 가치가 있습니다. 입이 있으면 입을 벌리고, 눈이 있으면 눈을 벌리고, 사랑을 달라고 해야 사랑을 주는 사람도 기분이 좋지, 멍청하게 있으면 사랑이 오다가도 도망가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심각하지 않고 소극적으로 나올 때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습니까? (205-11)

 

부부가 키스를 하기 위해서 이를 닦는다고 하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사랑이 아니며, 치약 냄새 때문에 사람만이 갖는 고유한 체취를 맛볼 수 없을 것입니다. 이를 닦고 키스하는 사람을 보고 있으면, 그 사람이 사랑의 맛을 보기 위한 것인지, 치약냄새를 맛보기 위한 것인지 모를 정도입니다.

요즈음 세태를 보면 인간의 행복이 어떤 것인지 혼동할 정도로 계산적이고 인위적이며 가식적인 사랑이 만연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그런 사랑이 멸망의 길로 이끌어 가고 있는 주범이라 하겠습니다. (통일세계 1986. 2-34)

 

된장국은 뚝배기에 담아야 제 맛을 냅니다. 텁텁하고 구수한 된장국 맛은 한 번 맛들이면 어디 가나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구수하면서 텁텁한 맛 같은 사랑에 한 번 맛들이면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달기만 한 인스턴트 식품은 금방 싫증을 느끼는 것처럼, 사랑도 인스턴트 식품처럼 아무 곳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참사랑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6. 2-34)

 

에덴동산에서 벌거벗고 춤추는 것을 누가 보았겠습니까? 사람이 없는 곳에서는 그런 일도 할 수 있는 겁니다. 방에서 부부가 벌거벗고 춤춘다고 그것이 걱정할 일입니까? 부부끼리야 벌거벗고 춤 아니라 무슨 짓을 해도 누가 상관하겠습니까? 부부끼리 하는데 무슨 상관입니까? (21-242)

 

비둘기도 서로들 '구구구'소리를 내면서 좋아하는데 부부끼리 만날 때, 진짜 사랑하는 사람끼리 만나는데, 만나는 소리가 있다면 어떤 소리일까요. 벼락치는 소리보다 크면 컸지 작지 않을 것입니다. (통일세계 1979. 6-15)

 

부부가 잠자리에 들어서 속삭이는 밀어는 세상의 모든 피로와 미움을 녹이는 청량제가 되는 것입니다. 부부가 속삭이는 말 가운데,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돼' 라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랑이 자연스럽듯이 사랑의 밀어도 부드럽고 아름다운 것이어야 합니다. (통일세계 1986. 2-26)

 

부부가 사랑을 하는데 시아버지가 옆에서 자건 시어머니가 옆에서 자건 클라이막스가 될 땐 솔직하게 소리질러도 괜찮다는 겁니다. '저 집은 얼마나 부부의 의가 좋은지 밤에 요지경 소리가 나면 동네 쥐들이 깜짝 놀라고 울던 닭들도 뚝 그치더라' 할 정도로 동네방네 사랑의 소문을 내야 합니다. '쥐들이 놀라고 닭들이 울다가 그치게끔 소리가 나는 변이 왜 일어나느냐'고 물으면 '왜 그러긴 왜 그래? 천지가 진동하는 사랑의 함성이 울려 나오니까 그렇지' 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136-34)

 

부부 사랑의 자리는 만우주의 꽃입니다. 역사시대 종합실체로 나타난 신랑신부가 사랑으로 하나되는 신방자리에는 하나님이 오셔서 정주(定住)하십니다.

그러니 사랑 가운데 이루어지는 신방자리가 얼마나 엄숙하고 무서운 자리입니까? 하나님과의 길을 이어 놓고 완전한 사랑의 마이너스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여기서부터 천지 사랑의 태양이 뜨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생명의 보금자리, 이상의 보금자리로 화해 가지고 아내의 방을 찾아야 됩니다. (179-91)

 

요즘에는 버선을 안 신지만 옛날에 버선 신을 때는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발가락이 나오도록 신었어요. 그러면 구린내가 나고, 시큼털털한 오만가지 냄새가 다 나지만 사랑하는 아내의 코에서는 '그 냄새가 향기보다도 더 좋다'는 겁니다. 구린내나는 발가락도 사랑할 때는 가서 핥는다는 겁니다. 가서 핥아도 맛이 알알하고, 달콤하고, 시큼하고, 얄궂다는 겁니다. 사랑의 안테나를 달고 측정하면 측정치가 싫다는 계수보다도 좋다는 계수가 쑥 올라간다는 겁니다. (148-319)

 

아들딸 재창조한다는 것이 쉬워요? 별짓 다해야 새로운 아들딸이 태어나지. 지독한 일을 다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남편 침이 더러워요, 더럽지 않아요? 남편이 자기 손에다 침을 뱉아 놓았다고 할 때, 비단 치마 저고리를 입고 있어서 문지를 데가 없으면 그거 핥아서 먹고 싶어요, 안 먹고 싶어요? 솔직하게 얘기하라구요. '먹고 싶지요' 해야 참사랑입니다. 사랑에는 더러운 것이 없는 겁니다.

부부 사랑이 불붙으면 두 생명이 하나되고, 그 다음에 혈통이 합해 가지고 사랑으로 끓기 시작합니다. 그 가운데 내 생명이 주인으로 씨가 심어지는 겁니다. 남자 생명체, 여자 생명체가 이렇게 만나가지고 원심력 구심력이 합해져 사랑으로 운동하기 시작하면 전부 돌아갑니다. 올라가고, 내려가고…. 올라가는 자리에 싹이 트면 아들이 되고, 내려가는 자리에 싹이 트면 딸이 된다. 이론적으로는 그렇습니다. 나 그런지 안 그런지 모르겠어. 이론적으로 맞으니 사실이 그런가 안 그런가 연구해서 맞추면 박사학위 노벨상 수상감이 될 겁니다. (162-48)

 

아기를 낳는 자리는 하나님의 상현세계(上弦世界)를 점령하는 겁니다. 하나님 자리에 올라감으로 말미암아 자녀를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이 창조 이후에 인간을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내연(內緣)을 체휼시키는 놀음입니다. (224-7)

 

사랑을 중심삼은 생활에서 모든 것이 다 해결됩니다. 욕심 많은 영감의 호랑이 같은 눈도 사랑을 하게 되면, 그림의 달님 같은 모습이 되고, 얼어붙었던 입도 히죽 벌어집니다. 얼었던 것이 완전히 녹을 수 있는 것이 사랑이요, 녹았던 것이 얼 수 있는 것도 사랑입니다. 극과 극을 포괄하고도 남을 수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좋을 호(好)자를 가만히 보면 남자 여자 합해 놓고 '좋을 호(好)' 이렇게 썼습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는 말이 있는데, 칼로 물을 베면 자국이 남느냐? 남지 않습니다. 한 번 싸우고도 이마를 맞대고 웃고 나면 다시 평화가 찾아옵니다. 부부가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까지 연결하기 위해서입니다. (127-245)

 

진짜 사랑은 온 몸이 하나되고 심정과 핏줄이 전부 다 하나되어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부부입니다. 부부 없는 세상이라면 사는 맛이 있어요? (26-151)

 

타락한 세계에 있어서도 남녀가 서로 사랑할 때 '아, 전기가 통한다'고 합니다. 그때 생기는 전기는 천사장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단세포적인 것입니다. 본연의 세계에서 생겨나는 사랑의 전기는 우주적인 사랑의 번개로 강도에 있어서 수천 배를 넘어설 뿐 아니라 인체의 각 기관 세포가 움직이는 소리도 천둥소리와 같은 것입니다.

본연의 세계에서 참사랑을 하는 남녀는 사랑의 번개가 만나는 접촉점을 향해 총력을 결집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만날 수가 없다는 것이 사랑의 원리관입니다. 그것이 창조목적의 완성이기도 합니다. (통일세계 1986.9-26)

 

여러분들 사랑하는 것을 하나님이 보겠나, 안 보겠나? 천하 시공을 초월하는 하나님이 이 세계 50억 인류가 사랑하는 밤이 되면 눈을 감겠나, 어쩌겠나? 보고 있으면 기분이 어떻겠나? 좋은 아내, 좋은 남편이 얼마나 많아요? 생각해 보세요. 천만사가 다 벌어질 텐데 말입니다. 할 수 없이 여편네 놀음하고, 할 수 없이 끌려가고, 할 수 없이 비위 맞추고,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게 무슨 사랑이예요? 그게 인생살이예요? 세상이 전부 다 하나님이 바라던 창조이상대로 꽃향기가 풍기는 에덴동산같이 나비와 벌이 마음대로 날아다니며 천지에 화동하면서 살 수 있는 환경이 돼 가지고 하나님이 거기에 취해 잠이 들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나. 그거 생각해 봤어요? 한 번 그렇게 살아 봐야 합니다. (222-142)

 

여자는 왜 수염이 없느냐.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수염을 기른 모습을 보시고 기분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해와를 만드실 때는 수염이 없게 만드셨다는 겁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물 가운데 가장 걸작품은 누구냐? 여자들입니다. 여자들이 걸작품인데 누구를 위한 걸작품이냐? 바로 남자를 위한 걸작품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을 해 보세요. (38-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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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성애(性愛)

 

  ① 성(性)은 사랑의 본궁, 하늘의 지성소

 

하나님의 지성소가 어디냐? 사랑이 깃드는 남녀의 성기관(性器關)입니다. 이곳이 하늘의 지성소입니다. (132-247)

 

남자 여자의 사랑의 상징이 무엇이냐? 사랑의 종착지점이 어디냐? 남녀를 한몸 이루게 하는 성기관(性器官)입니다. 그것은 사랑을 중심삼고 마음과 몸이 완전히 합할 수 있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1984. 5. 31)

 

남자와 여자는 무엇이 서로 다릅니까? 성기관(Sexual Organ)을 포함한 그 몸이 우선 다릅니다. 그러면 남자의 성기관은 누구에게 절대로 필요합니까? 남자의 성기관은 여자를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성기관이 하나는 오목하고 하나는 볼록인데, 왜 그렇게 되어 있습니까? 둘 다 뾰족하게 하든가, 둘 다 납작하게 할 수도 있는데 왜 그렇게 다르게 생겼습니까? 모두 상대를 위해서입니다.

남자의 것은 여자가 절대 원하고, 여자의 것은 남자가 절대 원합니다. 절대로 여자 것이 남자 것이고, 남자 것이 여자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것을 점령함으로 말미암아 사랑을 안다는 것입니다. (성약말씀?우주의 근본을 찾아서)

 

남자 여자들 생식기는 왕궁의 보고입니다. 하늘나라의 왕궁의 보고입니다. 하나님도 마음대로 못 합니다. 그 열쇠는 제사장만이 열 수 있습니다. 여자로 생겨나 가지고 옷을 두 번 벗으면 안됩니다. 주인 앞에서 옷 벗는 것은 허락되지만 딴 것은 악마입니다. 요즘 남자 녀석들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120-19)

 

생식기가 뭐냐면 사랑의 왕궁이요, 영생의 생명이 탄생하는 왕궁이요, 영원히 변치 않는 하늘의 전통을 이어받을 혈족을, 혈통을 이어받는 왕궁이라는 것입니다. 참된 생명의 왕궁, 참된 사랑의 왕궁, 참된 혈통의 왕궁이라는 것입니다. 가장 귀한 곳입니다. 맘대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공인이 없게 되면 열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주의 공인받은 자기 남편, 자기 아내 외에는 터치할 수 없는 것입니다. (128-329)

 

생식기는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 것일까요?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을 찾기 위해서 생겨났다는 말입니다. (132-112)

 

생식기라는 게 뭐예요? 그것은 참사랑을 중심삼은 왕궁이요, 참생명을 중심삼은 왕궁이요, 참혈통을 중심삼은 왕궁입니다. 제일 귀한 것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하나님의 이상, 하나님의 가정,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체의 완성을 이룰 수 있는 하나의 기원입니다. (194-9)

 

생식기를 절대적으로 귀하게 여기는 세계가 된다면 그 세계가 좋은 세계일까요, 나쁜 세계일까요? 흥하는 세계일까요, 망하는 세계일까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가장 중요하게 정성들여 만드신 곳이 어디겠어요? 눈이요? 코요? 심장이겠어요? 아니면 두뇌일까요? 이것들은 전부 죽어 없어집니다. 사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성약말씀?우주의 근본을 찾아서)

생식기는 사랑의 왕궁입니다. 지금 그 사랑의 왕궁이 어떻게 되어 있어요? 사랑의 왕궁이요, 생명의 왕궁이요, 혈통의 왕궁인 것, 그렇게 귀한 것이 인간의 생식기입니다. 성스러운 것입니다. 그게 타락으로 말미암아 더러운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본연의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더러운 것이 아니라 성스러운 것입니다. 가장 귀한 것입니다. 생명?사랑?혈통이 여기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성스러운 것을 사탄이 더럽혔습니다. (193-130)

 

내 생식기는 사랑의 본궁입니다. 내 생식기는 생명의 본궁이다, 왕궁이다 이겁니다. 내 생식기는 혈통의 왕궁입니다. 이렇게 되어야만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왕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왕의 왕이시니 본궁에 찾아가서 거하실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모시기 위해 사랑의 본궁이 되어야 하고, 생명의 본궁이 되어야 하고, 혈통의 본궁이 되어야 되고, 양심의 본궁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 아멘 아멘. 말씀한 대로 되어지이다. 아멘. (194-72)

 

사랑이 중심이 되어, 둘이 생명의 합일체가 되어 합하는 자리, 남자의 피, 여자의 피가 한 도가니에서 하나되는 자리가 생식기입니다. 그 자리는 아들딸보다 귀하고, 남편보다 하나님보다도 귀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말 하니까 이단자라 하겠지만…. 그 자리가 어떻다구요? 자식보다 귀하고, 남편보다 귀하고, 부모보다 귀한 자리야. 그것이 없으면 부모도 무가치한 것이고, 부부도 무가치한 것이고, 아들딸도 무가치한 것입니다. 그렇게 귀하기 때문에 보화 중의 보화로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게 일생 동안 자물쇠를 채워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열쇠는 남자의 것은 여자가 갖고, 여자의 것은 남자가 지니고 있는데 각각 하나밖에 없습니다. 하나의 키만 가져야 합니다. 프리섹스처럼 열 개 스무 개 가지고 싶습니까? 문을 열어 주인이 없는 집처럼 지나가는 사람 모두 들락날락하는 폐허의 집과 같이 되고 싶습니까? (206-118)

 

남자와 여자가 사랑하는 본궁, 생식기가 뭐예요? 사랑의 왕궁이요, 생명의 왕궁이요, 혈통의 왕궁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그것 붙들고 살고, 어머니 아버지도 그것 붙들고 살고, 자기 부부도 그것 붙들고 살고, 앞으로 태어날 아들딸도 전부 다 그것 붙들고 살지요? 그것 안 붙들고 사는 여자가 있고 남자가 있어요? 그런데 그것이 왜 나쁜 것이 됐어요? 쌍소리라고 하지요? 왜 쌍소리예요? 거룩한 소리입니다. 거룩한 말로 받아들여야 됩니다. 거기에서 영원한 사랑이 연결되어 영원한 생명, 영원한 혈통이 나옵니다. 가장 귀한 것입니다. (210-47)

 

여자 남자의 정조를 지키고 보호한다는 것은 우주를 보호하는 것과 같습니다. 남자 여자의 사랑의 질서가 우주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176-221)

 

왜 남자와 여자가 지구상에 태어났느냐? 서로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지혜의 대왕이시기 때문에 남녀의 사랑의 기관을 서로 바꿔 주었다는 것입니다. 남자의 것이라고 해서 그 주인이 남자가 아닙니다.

여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인을 남겨 놓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한 사람은 사랑을 위반한 것에 대한 심판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법 중에서 가장 무서운 법의 벌을 받는다는 것을 안다면, 자기 아내를 두고 감히 딴 생각을 할 수 있습니까? 반대로 부인들은 남편을 두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습니까? (140-245)

 

하나님은 공평한 분입니다. 그래서 서로 네 것, 내 것하며 싸우면 안 되겠으니까 남자의 것은 여자에게 갖다 심어 놓고, 여자의 것은 남자에게 갖다 심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흉측한 것 같지만 참 기가 막힌 것입니다. (205-193)

 

사랑은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에는 더러운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생식기를 보더라도 생식기는 가장 귀한 것인데 인체에 제일 더러운 데 가까이 있습니다. 왜 그래요. 화합하는 것이 천지의 조화 이치이기 때문에 가장 귀한 것을 그곳에 갖다 배치한 것이 남자 여자의 생식기입니다. 그래서 제일 좋지 않은 더러운 부분에 좋게 장치한 것입니다. (194-9)

 

남자 여자의 생식기가 어디에 있어요? 그곳은 제일 안전지역, 제일 안전지인 동시에 제일 더러운 곳입니다. 그거 보면 하나님이 참 지혜의 왕입니다. 인간 세상에 가르쳐 주기를 '사랑은 그러한 더러운 것도 지배하느니라'하는 걸 가르쳐 주는 겁니다. 항문 가까운 자리에 있거든. 소변 나오는 길하고 또 다른 길하고 똑 같습니다. (194-147)

 

여러분 손가락 하나 자를 거예요, 생식기 자를 거예요? 그거 웃을 게 아닙니다. 종적인 기준이 있어야 됩니다. 사지는 횡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딱 가운데에 종(縱)이 달린 겁니다. 삼위기대 아니예요? 그게 하나님 대신입니다. 남자의 그것 중에서 둘은 아담과 해와 이성성상이고, 뻗친 하나는 하나님 대신입니다. (205-328)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결혼하는 것입니다. 놀라운 말입니다. 하나님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그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하나님이 살아 계십니다. (203-197)

 

머리보다도 그게 더 중요합니다. 머리에는 참사랑의 기원이 없습니다. 머리에 참생명의 기원이 없습니다. 머리에 참혈통의 기원이 없습니다. 그 기원이 어디에 있느냐? 생식기입니다. 그거 틀림없지요? 생식기에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거기에 생명이 있고, 사랑이 있고, 혈통이 있습니다. 그곳이 사랑의 본궁인 것입니다. 생명의 뿌리도 거기에 있습니다. 혈통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몸뚱이뿐만 아니라 인간세계와 인류 역사를 통해서 제일 귀한 데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인류의 번식이 불가능합니다. (203-88)

 

인간에게 사랑의 안테나는 생식기입니다. 그래서 남자는 볼록이고 여자는 오목입니다. 이 둘이 합하게 되면 둥그렇게 되면서 없어집니다. 그것은 음전기와 양전기가 합해서 벼락을 치고 나면 영(零)으로 돌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상태로 돌아갑니다. (187-54)

 

생식기를 만약에 남자가 남자의 것을 자기것으로 가졌다면 절대로 안 주려고 할 것이고, 여자도 여자의 것을 안 주려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자와 여자는 그냥 그대로 맞서 가지고 천년이고 만년이고 버틸 수밖에 없지만, 사랑을 중심삼고 서로 엇바꿔졌기 때문에 서로가 필요해 주고 받아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주고받는 작용을 반드시 엇바꿔 가지고야 가치가 나타나게 돼 있는 것입니다. (140-245)

타락한 세계에 있어서 사랑은 가장 위험스러운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랑을 잘 관리하지 못하면 천하가 깨지고 뒤집어지는 것은 타락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간은 사랑이 왜 거짓되고 추하게 되었는지는 잘 알지 못했지만, 그 사랑을 지키고 보호하려 했던 것은 참사랑이 나타나 주기를 바라는 본능 때문이었습니다. (26-331)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남녀의 생식기가 이 요사스러운 사망의 물결, 사망의 법, 멸망의 지옥을 개문시킨 본궁이 되고, 천도를 파탄시킨 요물단지가 되었기 때문에 나쁜 것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역사에 숨겨진 비밀이었습니다. (197-120)

 

사랑의 왕궁이 어디예요? 이런 얘기 한다고 이상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걸 바로 못 잡으면 세상이 다 틀어집니다. 아구가 안 맞으면 천하가 다 요사스러움이 벌어집니다. 문총재가 지금까지 고심해 가지고 인간의 근본문제, 우주의 근본을 파헤치다보니 딱 도착한 곳이 생식기였습니다. 생식기에 도착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천지의 조화가 여기에서 소용돌이치더라 이겁니다. 놀라운 사실입니다. (197-9)

 

사랑할 때 왜 남자가 위로 올라가야 되느냐? 그래야 종(縱)이 되기 때문입니다. 씨는 어디서 나오느냐? 하늘로부터 옵니다. 무엇을 통해서 오느냐? 사랑을 통해서 옵니다. 그 하나가 전부 증명합니다. 그리고 씨라는 것은 아버지에서, 종적인 사랑의 볼록을 통해서 옵니다. 볼록이 오목과 맞추게 되면 천지가 진동합니다. (187-52)

 

사랑을 하게 되면 행복해지고, 사랑에 취해서 느끼는 감정은 요지경이라고 해서 빨리 경험해 보겠다고 달려든다면 그것은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의 문은 때가 되어야 열리는 것이고, 문이 열리는 때를 기다려 들어가야 합니다. 자신이 사랑의 주인이 되었다고 했을 때 당당하게 열어야 하는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6. 2-27)

 

남자 여자가 왜 사랑을 좋아하느냐? 인간의 몸뚱이는 대략 4백조 개나 되는 세포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세포들이 언제 전체가 작동을 하느냐 하면 사랑할 때인 것입니다. 인체의 모든 세포를 움직일 수 있는 때가 바로 남녀가 사랑을 하는 때입니다. (통일세계 1982. 7-18)

 

남녀가 서로 사랑할 때 '아, 전기가 통한다' 고 합니다. 그때 생기는 전기는 천사장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단세포적인 것입니다. 본연의 세계에서 생겨나는 사랑의 전기는 우주적인 사랑의 번개로 강도에 있어서 수천 배를 넘어설 뿐 아니라, 인체의 각 기관의 세포가 움직이는 소리도 천둥소리와 같습니다. 본연의 세계에서 참사랑을 하는 남녀는 사랑의 번개가 만나는 접촉점을 향해 총력을 결집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만날 수가 없다는 것이 사랑의 원리관입니다. (통일세계 1986. 9-26)

 

누가 하나님의 사랑의 파트너가 되겠어요? 남자 혼자서일까요? 여자 혼자서만 파트너가 될까요? 하나님은 무슨 파트너를 원하시겠습니까? 돈의 파트너입니까, 지식의 파트너입니까, 권력의 파트너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파트너를 원하시기 때문에 남편과 아내가 성기관을 통해 하나되는 그 자리를 중심삼고 현현하시어 인간과 만나는 것입니다. (성약말씀?우주의 근본을 찾아서)

 

자기 몸뚱이를 전부 다 자기 것이라고 하지만 사랑만은 자기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전부 상대의 것입니다. 구약을 보게 되면, 성소니 지성소니 하는 말들이 나옵니다. 성소는 사람을 상징하는 것이요, 지성소는 사랑의 집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성소를 갖고 있고 지성소를 갖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소는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집입니다. 지성소는 하나님만이 특권적 사랑의 주관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장소입니다. 지성소를 지키는 제사장은 절대 둘이 아닙니다. 하나입니다. 옛날 해와 앞에 그 지성소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이는 아담이었고, 아담의 지성소 열쇠를 갖는 이는 해와였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남자 여자의 입은 성소라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입은 소생이고, 여자에게는 젖이 장성이고, 그 다음에 음부가 완성입니다. 그것들이 우리 몸뚱이의 성소라는 겁니다. 그 성소를 열 수 있는 열쇠는 아무나 갖는 것이 아니라 천도에 의해 상속받지 않으면 열쇠를 가질 수 없게 돼 있습니다. (103-237)

 

종교는 수난길을 가야 됩니다. 몸뚱이와 싸워야 됩니다. 제일 원수가 뭐냐 하면, 악마의 피가 격동하는 색(色)입니다. 음란에서 해방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 사랑에서 해방해야 됩니다. 사탄의 피로 엮어진 혈통에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음란에서 해방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생명에 접붙이려면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야 됩니다. 그래야 사랑이 시작됩니다. 사랑의 전통적 중심은 하나님입니다. 생명의 조상도 하나님입니다. 이 우주에 제일 무서운 것이 남녀문제입니다.

사랑하게 되면 피가 끓지요? 후루루 떨리지요? 그거 왜 떨리는지 알아요? 섞어지라는 겁니다. 동서남북이 섞어지고 아래 위가 섞어져서 후루룩 하나되어 가지고 모든 초점이 사랑의 불꽃 튀는 방향에 행렬의 방향성을 갖추어 남자를 위해서 완전투입이요, 여자를 위해서 완전투입, 내 생명 재산을 다 잊어버리고 투입 또 투입하려고 달려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의 길이기 때문에, 그것이 영원히 그치지 않는 길이기 때문에 영원히 좋아하는 것입니다. (205-133)

 

하나님이 인간 앞에 선물 주는데 나쁜 선물 주었겠나요? 좋은 것 중에도 제일 좋은 선물을 주게 돼 있는 겁니다. 그거 어디에 있는 것, 깊은 곳에 있는 것. 자기 속속들이 깊은 곳에서 빼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좋은 것입니다. (206-118)

 

참된 자유는 책임성을 전제로 합니다. 만일 책임성이 없이 개개인의 사랑의 자유만 주장하고 실천한다면 얼마나 큰 혼란과 파국이 오겠습니까? 지고한 사랑 이상을 이룰 인간의 완성은 사랑에 대한 책임성을 지닐 때 가능한 것입니다. (208-73)

 

인간은 사랑의 자유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자기 수양, 자기 관장으로 자유의 주체가 되는 책임성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사랑의 책임성은 법이나 이목 때문에 지켜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의 생명적, 종적 관계 속에서 자아 주관, 자기 결단으로 지켜지는 것입니다. (성약말씀?우주의 근본을 찾아서)

 

생식기를 눈먼 장님처럼 방향을 잃은 채 사용하게 되면 지옥행이요, 반대로 이것을 하나님의 절대사랑에 기준을 맞추어 쓰게 되면 천국 높은 곳에 가는 것입니다. 깨끗한 결론입니다. (성약말씀?우주의 근본을 찾아서)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해와가 청소년기에 그늘 아래서 음란으로 타락을 하여 프리섹스를 심었기 때문에, 추수기인 끝날에는 반드시 세계적으로 청소년들의 프리섹스 풍조가 만연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약말씀?우주의 근본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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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사랑법은 배워아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은 가정에서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까. 어떤 아버지가 자녀에게 아버지한테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고 합니까. 또 어머니도 자녀에게 어머니한테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고 합니까. 또 부모가 자식 사랑하는 법을 누구에게 배웠습니까. 누구로부터 신랑 신부는 이렇게 사랑해야 한다고 배웠습니까. 배운 바가 없지만 잘 알고 있습니다. 참 신비로운 일입니다. (23-20)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데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가지고 사랑합니까? 여기에 있는 아주머니들, 아기를 낳아가지고 사랑하게 될 때 그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어요? 어디에 사랑을 가르치는 학교가 있어요? 거기에 무슨 학박사가 있어요? 아무것도 없지만 누구나 그 기준은 만점입니다. 부족하다고 느껴지면 느껴질수록 더욱 완전하다는 겁니다. 완전한 것은 손 댈 필요도 없고, 배울 필요도 없습니다. 가감이 필요하지 않을수록 완전한 것이기 때문에 완전한 것은 변치 않는 것이요, 변치 않는 것은 영원히 간다는 것입니다. (23-121)

사랑이라는 것은 말로는 이해가 잘 안 됩니다. 부모의 사랑을 아무리 설명해도 부모가 없는 사람은 알 수 없습니다. 부부의 사랑을 아무리 설명해 보았자 혼자 살고 있는 사람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결국 자기가 느낄 수 있는 주체나 대상권에서 행동의 일치점을 갖출 수 있는 데서, 그가 좋아할 수 있는 것을 내가 좋아할 수 있는 데서, 그의 일체가 내 일체로 연결될 수 있는 그 자리에서 상대의 사랑을 느끼는 것입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바로 어머니의 젖을 찾는 것이나, 동물들이 태어나면서 어미의 젖을 찾는 것이 교육과 훈련을 받지 않았어도 자연스럽게 행위로 옮겨지는 것은 바로 사랑의 힘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통일세계 1983. 9-19)

 

진실한 사랑은 천리 법도이기에 교육되기 이전에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이 태어난 자식의 얼굴이 밉고 예쁜 것에 따라 크고 작게 나타나지 않는 것이고, 부모가 잘나고 못나고에 따라 부모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달리하는 자식은 없는 것입니다. 당신의 얼굴이 밉게 생겼으니 나의 어머니가 아니라고 하는 자식이 있습니까.

너는 내가 비록 낳았다고는 하지만 얼굴이 못생겼으니 나의 자식이 아니라고 하는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만약 그러한 부모나 자식이 있다면 그들을 인간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3. 9-19)

 

참사랑은 경험을 통해 얻고, 체휼을 통해 알게 되어 있습니다. 참사랑은 말이나 글, 혹은 일반 교육을 통해 터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활을 통해서만 완전히 체득하는 것입니다. 아기로 지음받은 아담과 해와는 성장하면서 참된 자녀의 심정, 참된 형제의 심정, 참된 부부의 심정, 참된 부모의 심정을 단계적 생활을 통해 경험하고 체휼함으로써 완성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참사랑을 전체적으로 체득할 때 비로소 창조 목적을 완성한 이상적인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성약말씀?우주의 근본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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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자녀의 사랑

 

  ① 자녀는 부모 사랑의 결집체

 

사랑하는 부모들 앞에 자식이라는 것은 지극히 세계적인 대표입니다. (143-17)

 

자식이 없으면 왜 고독한 사람이라고 할까요? 사랑을 중심삼고 만우주를 지으신 주체되신 하나님의 심정적 사연을 체휼하기 위한 것이 자식입니다. 자식은 나로 말미암아 내가 동기가 되어 태어났지만, 그 자식을 낳아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아, 하나님이 인간을 이렇게 사랑했구나' 하는 것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136-202)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부모로서 자식을 통해 하나님께 돌아가고 싶은 바램 때문입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가운데 부모의 사랑을 체휼하게 되고, 나아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본연의 발로인 것입니다. 자식을 가져 보지 못한 사람은 부모의 사랑을 느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사랑까지 깨달을 수 없기에, 그가 가진 사랑은 항상 불완전한 것이 됩니다. (1984. 7. 10)

 

천국에 남아질 수 있는 자식은 어떠한 자식이냐? 부모의 사랑으로 진 빚을 자기 스스로 갚아야 합니다. 부모가 나이 들어 노망을 했을 때는 자기가 어린 시절에 똥싸고 오줌쌌던 것을 닦아 주던 그 부모의 마음으로 어려움을 참고 부모를 모셔야만 효자가 되는 것입니다. (35-241)

 

사랑을 가진 부모에게 채찍을 맞거나 꾸중을 듣더라도 그 자식은 기쁜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1. 4-8)

 

부모가 자식을 위해 생명까지 주었습니다. 자식도 부모를 위해서 생명까지 바쳐야 합니다. 생명이 사랑에서 생겨났으니 본질적 사랑 앞에 생명을 희생하고 가는 것이 이론적인 결론입니다. 모순적인 이론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1985. 12. 18)

 

자식이 부모에게 빚 안 지겠다고 노력하게 될 때 부모도 보람을 느낍니다. (통일세계 1975. 10-12)

 

사랑을 중심삼고 채찍이 오가더라도, 때리고 나서 통곡하는 부모에 대해서 자식이 덤벼들고 욕할 수 있습니까? 참사랑은 조화의 양면적 가치를 지닌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1. 6-22)

 

훌륭한 어머니는 자식을 품에 안고,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선한 존재가 되기 위해 어떤 어려운 입장에서도 참을 수 있어야 한다고 자식에게 가르칩니다. 어머니는 선은 망하지 않는다는 천리를 통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자식을 낳아서 젖을 먹이며 귀엽다고 하지만, 누구 때문에 귀여워합니까? 그것은 하늘 땅을 대신하여 귀여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나라 이 세계 때문에, 하나님 때문에 귀여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따른 천륜의 운세는 세계를 넘어 천지를 포용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자식을 품고 젖을 먹이는 어머니는, 하늘땅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딸을 품는다는 사무친 심정으로 아들딸을 품어야 됩니다. (8-105)

 

자녀들의 사랑과 행복의 기지는 부모의 사랑입니다. 자녀들은 참사랑으로 화합 일체된 부모를 통해 생명이 태어나고, 그러한 사랑 속에서 양육되기를 바랍니다. 자녀에 대한 가장 귀한 책임은 외적인 양육만이 아니라 그들의 영성(靈性)을 온전하게 해줄 참사랑의 생명적인 요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무리 자식을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어머니의 사랑에는 못 당합니다. 어머니가 정성을 들였다면 누구보다도 정성을 들였고, 고생을 했다면 누구보다도 고생했으니, 사랑한다면 누구보다 더 사랑한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여자들이 정서적인 분야에 있어서 높고 귀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무리 아기를 사랑한다 해도 애기에 대한 사랑을 어머니만큼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에 간다면 여자들이 심정의 천국에 갈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여자로 태어난 것이 나쁘지 않습니다. 또 하나님은 공평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85-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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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참된 자녀의 도리는 '효'

 

부모를 알았으면 부모 앞에 뭘해야 됩니까? 효도를 해야 됩니다. 효자가 되어야 해요. 또 부모를 중심삼고 그 나라의 충신이 되어야 됩니다. 부모가 나라를 거느리고 세계를 거느려 왔기 때문입니다.

충신이 되기 전에 효자가 되어야 하고, 효자가 되기 전에 참된 형제를 놓고 사랑할 수 있는 식구가 되어야 합니다. 식구는 형제지간에 찬양할 수 있는 권을 내세운 이름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35-220)

 

효자가 귀한 것은 변함 없는 사랑으로, 어릴 때나 장성할 때나 노년시대나 부모를 공경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을 효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효자가 되려면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언제나 부모의 마음 방향과 일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효자의 길을 가는 사람은 부모와 동떨어진 행동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부모가 동으로 가면 동으로 가야 되는 것이고, 부모가 서로 가면 서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이의가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열 번 갔다가 열 번 돌아서라 하더라도 또 돌아서서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효도해라' 하는데 이것은 부모를 중심삼고 부모가 가야 할 사랑의 길에 동참자가 되라는 겁니다. 부모의 참된 사랑의 길에는 천륜이 따라갑니다. 부모만 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종적인 천륜이 여기에 인연되어 함께 가는 것입니다. 때문에 부모와 하나되라는 것은, 종적인 역사와 횡적인 역사의 심정권을 이어서 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 앞에 효도하라는 것입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부모 앞에 효도하는 것이 아들딸로서의 책임이라는 겁니다. 왜 효도해야 되느냐? 효도하는 길은 나라에 대한 충신의 길과 연결된다는 겁니다. 대나무와 같이 연결된다는 겁니다. 충신, 나라에 충성을 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 세계에 대해 성인의 길을 가야 된다는 겁니다. 그것이 한 직선이 되어야 됩니다.

이렇게 볼 때 효도는 못하더라도 나라에 충신이 된다면 그 부모가 '아, 너, 나한테 효도를 안 했다'고 못하는 겁니다. '너, 참 잘했다' 하는 겁니다. 부모를 버리고 집을 떠나서 불효를 했더라도 나라의 충신이 될 때는 어머니 아버지가 죽어서 영계에 갔더라도 '야, 너 참 잘했다'고 칭찬하는 것입니다.

효자가 뭐냐? 효자는 부모의 슬픔을 대신 책임지기 위해 어려운 자리를 찾아가서 책임을 다함으로써 부모에게 기쁨을 드리는 사람입니다. 부모가 열만큼 일을 하는데 자식은 열 다섯만큼 노력하였다면 부모는 다섯에 해당하는 기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분야를 어떻게 보충하여 부모를 위해 드릴 수 있겠는가를 생각하면서 노력하는 사람이 효자인 것입니다.

참된 부모는 어떤 부모냐? 자식을 영원무궁토록 사랑하기에 끝이 없는 부모입니다. 그러면 참된 자녀는 어떤 자녀냐? 참된 자녀는 참된 부모의 사랑 앞에 영원무궁토록 부모를 사랑하고 또 사랑이 넘칠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을 가진 자녀다. 그런 자리가 참된 효자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자녀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돈 많이 번 백만장자가 되는 것입니까? 나라의 최고 권력을 손에 쥔 대통령이 되는 겁니까? 하나님이 아들딸인 아담과 해와에게 바라신 것은 그들이 자라서 효자-충신-성인-성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과 같이 가정에서 효자가 되겠다는 생각, 나라에서 충신이 되겠다는 생각, 세계에서 성인이 되겠다는 생각, 그리고 하늘 땅 앞에 성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까? 역사적으로 볼 때 모든 성인들은 효자가 되고 충신-성인-성자가 되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사랑의 전통 속에서 자라난 자녀들이, 만일 부모가 이혼을 원한다면 무관심할 수 있겠습니까?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자녀들은 모두 '나는 부모님들의 자녀입니다. 나는 부모님의 결합체입니다. 나를 위해 부모님은 어떠한 타협이라도 해야 하며, 나에게 훌륭하신 부모님이 되어 주셔야 합니다. 나는 부모님이 필요해요' 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우리는 젊은이들에게 '부모란 그들의 자녀들 때문에 이혼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부모들에게 일깨워 주어야 합니다. (미래의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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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형제의 사랑

 

  ① 형제사랑은 만민동포애의 모형

 

형제를 왜 주었느냐? 형제가 왜 필요하냐 하면, 남자는 여동생이나 누나를 보면서 '우리 엄마가 그렇게 자랐구나!' 하는 걸 알게 됩니다. 엄마 자라는 걸 보는 겁니다.

또 여자는 오빠나 남동생의 자라는 것을 가만 보니까 아버지가 그렇게 자라고 산 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게 형제애라는 걸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라 가지고 하나되는 겁니다. 그러니 형제를 사랑해야 되겠나요, 안 해야 되겠나요? (184-60)

 

부모한테 아들딸 둘밖에 없다면 어떻겠습니까? 아들을 두고 볼 때 그에게는 누나가 필요하고 또 형이 필요하지요? 또 딸에게는 오빠가 필요하고 언니가 필요합니다. 또 그들에게는 남동생과 누이동생이 필요합니다. 형님이 있어야 되고, 누나가 있어야 되고, 남동생 누이동생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다 갖추어지지 않으면 불행한 것입니다. 여동생, 남동생, 누나, 오빠 다 갖추어져 완전히 하나되는 가정은 하나님이 보호하십니다. 이것이 씨족과 민족과 국가의 기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형과 누나는 동서를 말하고 남동생과 여동생은 남북을 말하는 것이니, 그것이 완성되면 입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법도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법도가 자리를 잡게 될 때 평화의 기원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0-40)

 

오빠의 자리에서 동생을 사랑하고 동생의 자리에서 오빠를 사랑하는데, 그냥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부모를 개재시켜 가지고 어렸을 때 부모의 품에서 자라던 것을 중요시하면서 사랑해야 됩니다. 부모와 자녀가 하나된 기반에서 연결된 형제라야 하는 겁니다. 그래야 커 가면서 같이 올라가는 것입니다. 국민학교, 중학교를 쭉 그렇게 올라가는 겁니다.

세상을 암만 돌아다녀 봐도 가정에 있는 형제의 사랑, 피를 나누어 갖고 태어난 형제애 같은 것은 없는 것입니다. 사회에 나가 가지고 자기 형제 이상 가까운 사람이 있어요? 가까워졌다가도 갈라집니다.

왜 형제가 필요하냐? 종횡을 중심삼고 연결되는 것이 형제입니다. 아담과 해와를 횡적이라고 하게 되면, 하나님과 아담과 해와는 종적인 것입니다. 이것은 평면밖에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횡적인 기준이 필요하고 전후가 필요합니다. 가정애(家庭愛)를 초월할 수 있는 것은 형제애밖에 없습니다. 만민동포애란 말과 같습니다. 그것이 있어야 구형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28-170)

 

동포애, 형제애를 가지고 세계를 품어야 모든 것이 이상적인 구형이 되는데 부딪치더라도 충격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하나님이 생각하던 모든 실체가 여기에 와 가지고 결실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이상이 여기에 와 가지고 결실되어서 합함으로 자녀의 사랑 결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형제의 사랑 결실체, 부부의 사랑 결실체, 부모의 사랑 결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무형의 하나님이 창조 당시에 구상했던 모든 실체를 다 이루면, 하나님과 상하 전후 좌우가 일치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형제를 통해서 국민이 형성되고 인류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형제는 전후를 표시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살이 되는 겁니다. 이것이 납작하게 있다가 살이 붙은 것입니다. 거기에서 원형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원형을 만드는 것이 형제요 국민인 것입니다. 형제가 확장되어서 국민이 되는 것입니다.

형제애라는 것은 세계애와 통하는 것입니다. 많은 형제들이 자라는 가정은 세계의 인류를 품고 이상적인 천국,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을 만드는 모델과 같은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제는 여기에서 확장되는 것입니다. 형제가 많으면 밥을 먹어도 한 그릇 가지고 둘이 나눠 먹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밥 한 그릇밖에 없다고 싸움하는 것이 아닙니다. 형제가 많아 어렵게 살더라도 '내가 밥을 굶더라도 누나 줘야겠다, 동생 줘야 되겠다' 이런 사랑의 마음을 가지면 얼마든지 좋다는 겁니다. (112-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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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애국, 애세(愛世), 인류애

 

  ① 효자-충신, 성인-성자의 길로

 

하나님과 하나될 때는 천태만상으로 돌게 됩니다. 그러므로 형제간에도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을 본받아서 형은 동생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게 사랑으로 일원화된 가정은 가정애가 꽃핍니다. 이것이 또 사회애가 되고, 더 나아가 민족애가 됩니다. 이와 같이 나아가면 세계애(世界愛)가 됩니다. (43-342)

 

인류의 공동적인 목적을 위해 사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인류애를 중심삼고 하나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국민이 조국애를 갖고 있다면 애국사상을 중심삼고 하나될 것입니다. 애국하는 마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국가를 이루기 위해 애국사상을 중심삼고 하나될 것입니다. 애국운동을 혼자서 할 수 없는 입장이라는 것을 알면 횡적인 인연을 연결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동지 규합이라는 것입니다.

참된 사랑이 정착할 수 있는 기지는 가정입니다. 그러므로 본래의 가정은 우주애를 장악하고 우주의 보호 양상을 체득하면서, 우주애권(宇宙愛圈)을 확대시켜 가정을 넘어 국가를 사랑하는 애국의 길을 가야 하고, 나아가서 민족과 국가를 넘어 세계를 사랑하는 길로 가야 합니다. 가정을 사랑하는 사람을 효자 또는 열녀라고 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을 애국자라 한다면, 세계를 사랑하는 사람을 무엇이라고 하느냐? 그 사람을 바로 성인(聖人)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1982. 10. 29)

 

세계적인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인륜도덕만을 중심삼아 가지고는 안 됩니다. 사람만을 중심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만 중심삼고는 나라를 넘지 못합니다. 나라를 넘을 수 있는 그러한 내용은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천주사상을 갖지 않고는 나라를 초월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들이 무엇을 소개했느냐 하면 인간만 소개한 것이 아니라 신을 소개했습니다. 성인의 반열에 동참한 사람들을 보면 신을 숭상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신을 빼놓고 성인이 된 사람 있어요? 또, 성인들은 인륜의 도리만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천륜의 도리를 겸하여 가르쳐 준 것입니다. (33-291, 39-316)

 

가정에서 부모를 위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효자요, 나라를 위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애국자요, 세계를 사랑하는 사람은 성인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가르치는 것이 뭐예요? 하나님과 세계와 우주를 사랑하는 성자가 되라는 겁니다. 여러분은 어떤 것이 될 거예요? 성자가 될 거예요, 효자 효녀가 될 거예요? 그러려면 하나님과 같은 사랑을 마음에 가져야 됩니다. (129-99)

 

사랑은 생활과 역사에서 뺄 수 없는, 실재 내용을 움직이고 있는 실체입니다. 그리고 사회제도라든가 모든 것을 움직이는 내적 힘의 모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할 때도 국가애를 가르칩니다. 형제애?부모애?부부애, 세계적인 박애, 전부 사랑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인류의 생활권이라든가 역사과정을 거치면서 사랑을 더듬지 않고는 역사를 연결시킬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돼야 하느냐? 충신이 돼야 됩니다. 충신이라는 것이 뭐냐? 나랏님에 대해서 정성들이는 것이 충신이냐? 아닙니다. 백성을 나랏님같이 위할 줄 아는 사람이 충신인 걸 알아야 됩니다. 효자가 뭐냐? 부모를 위해서 정성들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부모를 위하듯이 형제를 위해 정성들이는 사람이 효자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133-242)

 

그 다음에 성인은 뭐냐? 성인은 세계 인류를 위해서 지금까지 희생하고 간 사람입니다. 성자는 뭐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세계로 가자, 세계 사람을 하나님같이 위해 가는 사람이 성자라는 겁니다. 역사적인 성인은 지금까지 세계 사람을 위해서 죽어 간 사람이고, 하나님의 아들 성자는 뭐냐? 하나님에게도 충성을 하지만 하나님같이 만민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133-242)

 

그렇기 때문에 효자-충신-성인. 성인 다음에는 뭐예요? 성인이라고 해서 성자가 못 되는 겁니다. 하나님 아들이 못되는 겁니다. 성자가 돼야 됩니다, 아무리 나랏님을 사랑하고 백성을 사랑했더라도 성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늘나라의 왕궁법을 알아야 됩니다. 왕궁법의 치리를 받아 거기에 박자를 맞출 수 있는 다른 하나의 법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133-242)

 

본래 효자는 마음이 변하지 않고 부모에게 똑바로 가는 사람이요, 충신은 마음이 군왕에게 똑바로 가는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성인은 마음이 변하지 않고 하나님에게 똑바로 가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죽는 자리에 나가더라도 그 마음이 변하지 않고 똑바로 가야 효자요, 충신이요, 성인이 될 수 있습니다. (133-242)

 

가정에서 부모를 위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효자요, 나라를 위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애국자요, 세계를 위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성인입니다. 여러분은 세계와 우주를 사랑하는 성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하나님과 같은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효자는 집안이 망하더라도 살아있습니다. 그래서 효자비가 있고, 충신의 비가 있고, 성인의 비가 있는 것입니다. 성자는 성인과 다릅니다. 성자는 인간세계의 나라법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의 왕궁법까지 지킬 줄 아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효자의 길, 충신의 길, 성인의 길과 직통할 수 있는 것이 성자의 길입니다. 그것은 굵고 둘레가 크지만 그 핵의 흐름은 수직입니다. (162-306)

 

인간이 어떻게 사느냐, 우리 인생 항로의 그 골자를 추린다면 효자가 가는 길, 충신이 가는 길, 성인이 가는 길, 성자가 가는 길의 근본이 있을 것입니다. 같이 있고 싶고, 같이 살고 싶어하는 마음, 위 아래를 막론하고 같이 있고 싶어하고, 전후좌우 주야를 초월하고 생애를 넘어서 같이 살고 싶은 마음에 사무친 삶이 아니겠느냐? 이러한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잘났다고 하더라도 사랑이 없을 때는 쓸모가 없습니다. 행복이라는 것 또한 무엇을 중심삼고 연결되느냐, 사랑입니다. 형제지간, 친구지간, 동포지간, 인류지간, 천지지간 등 이 모든 것의 사이를 연결시켜 줄 수 있는 매개체가 바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누룩과 같은 것입니다.

우주를 만든 하나님은, 우주의 법도를 세운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온 우주를 통해서 누구보다도 위해 사는 대표적인 자리에 선 분입니다. 그분이 하나님이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을 만나려면 위해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지식의 대왕이지만 지식 가지고 하나님 앞에 오라고 하지 않습니다. 능력의 대왕이지만 능력가지고 오라고 하지 않습니다. 권력에 대한, 돈에 대한, 물질에 대한 주인이요 대왕이지만, 그것을 가지고 오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위해서 오면 전부가 올 수 있다고 하는 겁니다. (133-16)

 

하나님이 인간 앞에 있는 것은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년만년 하나님을 따라가려고 한다는 겁니다. 위하는 천리의 우주의 존재세계 앞에 자기 스스로의 존재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위해서 존재해야 합니다. 위하는 데 있어서 동서양을 통할 수 있고 고금을 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다 같은 사랑을 갖고 있기 때문에 동양 서양을 극복할 수 있고 과거-현재-미래를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건 뭐냐 하면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극복할 수 있으니 언제나 발전할 수 있다, 동서양을 극복하니 동서양을 통일할 수 있다 이겁니다. 이건 사랑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18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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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자연사랑 (自然愛)

 

  ① 하나님이 만물세계를 지으신 뜻

 

하나님이 왜 만물을 지었느냐? 자기가 사랑할 대상을, 대상자를 갖기 위해서입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권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가 먹고 살다가 자기의 본연의 세계로 돌아와 가지고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의 본국에 들어와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142-76)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은 생각하기를 아, 하나님은 전지전능하기 때문에 뭐 말 한마디로 '이러한 천지가 되라.'해서 이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안 된 겁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투입했다는 겁니다. 있는 정력을 다 투입했다는 겁니다. 있는 사랑의 힘을 다 투입해 가지고 미래에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딸, 자기의 사랑하는 가정을 위한 예물로, 선물로 지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관념을 가지고서 우리가 만물을 바라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112-289)

 

하나님이 피조세계를 지으실 때 거기에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지어 놓고는 보기에 선한지라 하셨습니다. 기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기쁨이 무엇입니까? 어떤 목적을 이루었을 때 느끼는 것입니다. 지으신 만물에 하나님의 목적의식이 내재되어 있기에 창조된 만물을 놓고 하나님은 기쁨을 느끼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복귀의 세계는 어떠한 세계이뇨? 한마디로 말한다면 삼라만상의 개체 개체를 보면서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심정적인 인연을 입체적으로 갖춘 사람들이 사는 세계입니다. 하늘이 보시는 인격의 가치는 거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에 성 프란체스코 같은 양반이 동물을 보고, 혹은 새를 보고 설교했다는 말도 거짓말이 아닙니다.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다만 꿈이 아니고 사실입니다. (9-168)

 

피조세계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딸이 사랑의 이상을 찾아 나갈 수 있도록 교재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상대적 구조입니다. 광물도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서 작용하고 원자도 양자 전자가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서 작용을 하는 거라구요. 작용하지 않고는 존속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운동을 하지 않고는 영속, 존속이 안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는 인간을 중심삼고 그 중심점에 도달할 수 있도록 창조된 세계라는 것입니다. (137-59)

 

우주는 신비로운 세계입니다. 하나님이 장난거리나 놀음거리로 지은 것이 아니라 정성들여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지었다고 한다면 과연 이 세계가 얼마나 아름답겠느냐? 그러니 우리는 이 우주를 바라볼 때, 아버지가 나를 위해서 지었다는 지극히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동산을 거닐고, 초목과 꽃을 바라보고, 새를 바라보고, 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 바람이 부는 이런 모든 것을 보면 참으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28-123)

 

우주의 완성은 외적인 세계도 좋지만 내적인 내 자신, 나도 좋아야 합니다. 좋은데는 마음도 좋고 몸도 좋아야 됩니다. 내 세포로 보면 세포가 전부 다 좋아야 됩니다. 눈의 세포하고 발바닥에 있는 세포하고는 다르지요? 다르다구요. 다르지만 그 세포들이 다 좋아하고 손의 세포도 좋아하고 모든 세포들이 좋아하고, 몸과 마음 어디 하나 남기지 않고, 전체가 좋아할 수 있는 그것이 그냥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돼 가지고 연체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공명적인 사랑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세계라야 우주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166-210)

 

인연이란 지극히 작은 데서부터 맺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체도 4백조 개나 되는 세포로 인연되어 있는 생명체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한 창조이념세계, 즉 대우주의 모든 존재물은 어느 것 하나도 하나님 심정 밖에서 생겨난 것이 없습니다. 이런 것을 느끼는 시인은 위대한 시인일 것입니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천주적인 심정을 느껴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시인이 있다면, 그는 우주적인 시인일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우리도 모르게 벌어져 있는 천하만상이 하나님의 사랑과 더불어 존재하는 것들이란 사실을 몰랐습니다. 신령한 경지에 들어가 보면 조그만 모래 한 알에도 우주의 이치가 들어 있고, 하나의 원자에도 무궁무진한 우주의 조화가 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잘 알 수는 없지만, 어떤 복합적인 힘을 통해 나타난 결과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분자를 지나 원자, 원자를 지나 소립자…. 이런 것들이 무의식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의식과 목적을 갖추고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거쳐 나온 것이요, 반드시 하나님과 심정적인 관계를 맺고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철두철미하게 알아야 되겠습니다. (9-168)

 

도인은 어떤 사람이뇨? 풀 한 포기를 붙들고도 '하나님!' 할 수 있는 심정으로 자기의 가치와 동등하게 그 가치를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 최고의 도인일 것입니다. 그렇게 그 가치를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이 최고의 예술가일 것입니다. 각양각색으로 존재하는 만상을 보고 하나님의 각양각색의 사랑과 심정의 묘미를 발견하고, 그것들과 친구가 되어 더불어 즐길 수 있는 감정을 가진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런 감정으로 세포 하나하나가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만우주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만물의 영장입니다. 그런데 먹을 것밖에 모르는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 되겠습니까? (9-168)

 

하나님은 우주를, 피조세계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아들딸이 사랑이상을 찾아 나갈 수 있도록 교재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전부 다 상대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광물도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 작용합니다. 물질의 구성단위인 원자도 양자와 전자가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 작용합니다. 작용하지 않고서는 존속할 수 없습니다. 운동을 하지 않고는 영속, 존속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작용을 해야 합니다. (13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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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자연은 사랑이상을 가르쳐 주는 교재

 

인간은 커가면서 자연을 보고 습득합니다. '곤충세계가 이렇구나!'하고 배웁니다. 달이 비치고 별이 빛나는 가을 밤에 가만히 들어 보면, 곤충들의 울음소리가 하나의 오케스트라 연주로 들립니다. 무엇 때문에 곤충들이 그렇게 우느냐? 그것은 상대를 찾아 이상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속삭이는 것입니다. 새나 다른 모든 동물들도 슬픈 소리, 기쁜 소리를 무엇으로 표시하느냐 하면, 사랑이라는 공통분모를 따라서 소리를 냅니다. 급은 낮지만, 축에서 먼 거리에 있지만 그 축을 중심으로 평형선을 취하며 돌고 있습니다. 모든 존재는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새들의 노래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배가 고플 때 신호하는 노래하고, 다음에는 서로 사랑하는 상대를 위해서 하는 노래하고, 그 다음에는 위험할 때 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게 다 다르다는 겁니다. 우리는 뭐, 보통사람들은 모르지만 자기들 세계에서는 다 안다는 겁니다. 배가 고파서 울면 벌써 안다는 것입니다. 매일의 생활이 무엇을 중심삼고 돼 있느냐? 배고픈 거야 한 번 먹으면 끝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매일같이 뭐 위험한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대부분의 노래는 무엇을 중심삼고 하느냐 하면, 상대와 주고받는 관계에서 노래가 오고 간다는 겁니다. (137-211)

 

인간은 주체와 대상, 즉 상대적인 쌍으로 지은 바 되었고, 또 인간을 위하여 있는 온 만물세계도 사랑의 원리 아래 조화를 이루고 또 인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생명과 이상을 실현하게 되어 있습니다. 만물세계는 인간에게 있어서, 특히 자라나는 아담과 해와에게 있어서는 사랑의 교과서요, 사랑의 진수가 무진장으로 진열된 박물관이라는 것입니다. (135-12)

 

모든 새나 동물은 쌍쌍으로 되어 있습니다. 서로가 사랑을 중심으로 화동합니다. 꽃과 나비는 극과 극이지만 서로 화합합니다. 이것은 천지 조화입니다. 우주의 극과 극이 사랑을 중심으로 화동이 벌어집니다. 철새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쪽에 있던 새가 북쪽으로 날아가고, 북쪽에 있던 새가 남쪽으로 날아가서, 지역을 넘나들면서 사랑을 이룹니다. 사랑을 중심으로 해서 영원히 돕니다. 인간은 이와 같은 사랑을 하나님이 지은 박물관의 교재를 통해서 배웁니다.

인간과 하나님이 좋아 사랑하면 천하의 모든 만물들은 거기에 박자를 맞춰 화동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고 좋아하면 천사세계도 좋아하고, 이 모든 피조세계가 좋아 박수를 보내고 찬양을 보냅니다. 노래할 줄 아는 새는 노래를 부르며 찬양하고, 아름다운 꽃은 향기를 풍기며 찬양합니다. 최고 사랑의 주인공들이 즐거워 할 수 있는 향취의 분위기를 확장시키기 위한 것이 이 피조세계입니다. 보기에 흉측스러운 두꺼비도 사랑을 할 때는 '욱욱욱' 합니다. 얼마나 멋집니까? 다리를 척척 치고 뒷다리를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사랑하는 그 모습이 얼마나 근사합니까? 그것은 최고의 예술입니다.

봄이 되어 새가 노래를 하면, 그 새의 노래를 듣자마자 자기 아내를 생각하고 자기 자식을 생각하고 자기 나라를 생각하고 세계를 생각하고 하나님까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다 됩니다. 새는 새들끼리만 생각하지만 인간은 관계성을 갖습니다. 동물세계?식물세계?천상세계의 중간 매개체로서의 관계성을 가진 것이 인간만의 특권입니다. 전부 연결시킬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만의 특권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성숙해감에 따라서 '아, 저렇게 사랑하는구나!'하고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만물세계를 인간 사랑이상을 성숙시킬 수 있는 교재로 펼쳐 놓았습니다. 그걸 배워 가는 것입니다. 점점점 커감에 따라 '아하, 옛날에는 동생과 같이, 오빠와 같이 지냈는데 가만 보니까….' 이렇게 감정이 달라집니다. '아, 이렇구나!'하며 배워 갑니다. 그래서 '너와 나는 죽더라도 안 만나면 안 되겠다. 딴 데 못 간다.'하고 평형선으로 직행하면서 부딪치게 됩니다.

사랑은 신경과 같습니다. 우리가 머리카락 하나를 당기면 몸 전체가 끌려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만 당기면 우주가 끌려오고, 사랑만 움직이면 우주가 다 화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 있으면 춤도 추게 됩니다. 춤은 왜 생겨났느냐? 사랑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또 노래도 사랑 때문에 생겨났고, 웃음도 사랑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사랑을 빼게 되면 전부 다 굳어집니다. (115-237)

 

사람은 벌보다는 나비를 좋아합니다. 나비가 춤을 추며 날기 때문입니다. 모든 나는 것은 박자에, 가락에 맞추어서 납니다. 빨리 나는 놈도 박자에 맞추어서 날고, 느리게 나는 놈도 박자에 맞추어서 납니다. 나는 형은 여러 가지지만 어쨌든 전부 박자에 맞춰서 납니다. 또 산에서 사슴이 뛰어다니고 토끼가 노는 것도 음악적입니다.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것이 하나의 리듬이 있습니다. 무엇을 먹는 것도 음악적입니다. 사람도 무엇을 먹을 때 아주 음악적입니다. 그게 다 음악의 상징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그런 이 우주를 영원히 나를 위해서 만들고, 나를 위해서 장치했다면 그분에 대해서 우리는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구경꾼처럼, 이웃 동네 일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산도 높은 산이 있고 낮은 산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산이 높기도 하고 낮기도 한 것이 좋으냐, 밋밋하고 평평한 것이 좋으냐? 높기도 하고 낮기도 한 것이 좋습니다. 그거 왜 그러느냐? 그 모양이 춤추려고 하는 어떤 형을 갖기 때문입니다. 별의별 모양의 곡선을 그리면서, 올라가고 내려가고 하면서 가지각색의 형태를 나타내면서 형성되어 있어야 좋은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이 바로 춤입니다. 자연 가운데는 멋진 춤이 있고, 멋진 음악이 있습니다. 멋진 예술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자연 가운데는 참 많습니다.

맨 처음 하나님의 자녀로서 태어남을 입은 아담과 해와도 하나님의 보호권내에서 어렸을 적부터 자라 올라감에 따라서 점점 커가는 겁니다. 그럼으로써 지능이 발달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왜 피조세계를 지었는지를 알게 되고, 그 피조세계를 통해 교육해 나오는 겁니다. 피조세계가 움직이는 모든 것은 우리 인간시조, 본래의 조상이 되어야 할 아담과 해와가 생활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르쳐 주는 교재였습니다. 완성된 아담과 해와가 아니기 때문에 이상생활을 해 나가는 데 있어 표본이요, 하나의 박물관이었다 하는 사실을 알아야만 됩니다. (137-128)

 

아침에 눈을 뜨고 자연을 바라보면, 그 자연이 은은하게 내 본성과 인연되어 새로운 이상의 감정을 싹트게 합니다. 그러나 인간세상은 바라보면 볼수록 절망과 슬픔의 감정을 돋구어 준다는 사실을 잘 알 것입니다. 본래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인간들이 사는 세상이라 하면, 인간의 가치는 그렇게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슬픔을 느끼게 할 정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풀 한 포기나 꽃 한송이, 나무 한 그루와 같은 정도의 가치로 지어진 인간이 아닌 것입니다. 피조만물의 그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인간이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의 모습으로 천상을 대신하여 나서야 할 인간이었습니다. (9-97)

 

하나님의 사랑이 깃들어 있는 자연을 바라보고 '세상의 왕, 혹은 어떤 유명한 사람이 갖고 있는 훌륭하다는 물건에 비할소냐. 골동품에 비할소냐. 어떤 유명한 부인이 입고 있는 호화로운 옷에 비할소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자연세계 앞에 자신도 모르는 죄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의 생명체를 볼 때, '인간이 만든 어떤 물건에 비할소냐.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보다 훌륭하겠는가.'하며, 하나님이 심정을 기울여 지으신 만물을 붙들고 무엇보다도 귀하게 느끼는 자가 있다 할진대, 이는 틀림없이 하늘의 아들딸일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기도가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사는 사람입니다. 하늘은 인간을 그러한 자리까지 내모는 것입니다. (9-175)

 

자연은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길가에 값없이 서 있는 나무 하나도 유명한 화가가 그린 어떤 그림과도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유명한 화가가 최고의 걸작품으로 꽃을 그렸다 하더라도 그린 그 화폭에서는 아무리 쳐다보아도 꽃이 피지 않습니다. 향기도 나지 않습니다. 또 씨도 맺지 못합니다. 그러나 값없이 길가에 서 있는 나무에서는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 씨를 남깁니다. 그리고 그 씨를 심으면 그 나무보다도 더 좋은 나무가 얼마든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어떤 유명한 화가가 그린 그림과도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인간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의 것은 무엇이든지 좋아하고 귀여워합니다. 그러면서도 제일 사랑해야 할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은 귀여워할 줄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돼요? 탄식하는 만물의 한을 해원해 주어야 할 책임을 진 여러분은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에서도 6천년 전 그것들을 지으실 때의 하나님의 심정과 창조의 손길을 체휼해야 됩니다. 그런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길을 가다가 풀 한 포기를 보고도 눈물지을 수 있어야 됩니다. 나무 한 그루를 붙들고도 울 수 있어야 됩니다. '주인을 잃어버렸으니 얼마나 외로웠느냐?'하면서 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 사람은 많이 울어 보았습니다. 바위를 붙들고도 울어 보고, 바람이 부는 것을 보고도 울어 보았습니다. 왜 그래야 되는지 이제 말씀을 들었으니 이해할 것입니다. (9-175)

 

'하나님이 지으신 가치있는 만물이,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한 인연을 맺은 귀한 만물이, 오늘날 어떠한 왕궁에서 뭐 국보니 보물이니 하며 귀하게 여기는 물건만큼의 취급도 받지 못하는 서글픔을 나는 알아줘야지, 나만은 알아주어야지.' 하면서 나왔습니다. '이 땅에 사는 세계 인류가 전부 몰라주어도 나는 알아줘야지.' 하는 마음을 여러분들이 가진다면, 이 민족은 앞으로 세계 인류를 지배할 수 있는 새로운 민족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관념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어느 누가 만물을 놓고, 대대로 내려오는 자기 가문의 보물보다도, 세상에서 제일 귀한 보석이라 하는 다이아몬드보다 귀하게 여겨 붙들고 놓지 않으려 합니까?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요? 하나님은 당신께서 지으신 것을 심정적으로 알아주고 그것을 붙들고 눈물짓는 사람을 보고 '오냐.' 하십니다. (9-175)

 

자연은 뭐냐? 하나님이 나를 위해, 위하는 사랑을 가진 아들딸이 태어날 때 위할 수 있는 만물로, 선물로 준 전시품입니다. 새 소리 하나, 자라고 있는 풀 한 포기라도 사랑의 아들딸들의 생활의 미화를 위해 만들어진 장식품이라는 것입니다. 길거리에 굴러가는 바위도 아들딸이 나라를 다스리는 주인이 될 것을 알고 그 나라의 장식품으로 지었다는 겁니다. 흐르는 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무미건조하고 단조로우면 안 되겠으니 조화무쌍한 화합의 동산, 사랑을 위하는 그러한 세계를 보고 그것을 상속받을 수 있는 꿈의 왕자, 희망의 왕자를 만들기 위해서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을 통해서 배우는 겁니다. 수놈 암놈이 '짹짹'할 때는, 이것을 주인되는 아주머니도 배우라는 겁니다. 서로 위하는 세계를 향해 자기 일생을, 생명을 걸고 사는 본연의 피조세계의 아름다움을 찬양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 집 울타리에 새 새끼도 와서 살려고 한다는 겁니다. 새끼를 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175-187)

 

박물관에 있는 무슨 작품이 아무리 귀중하다고 해도 살아 있는 작품에 당할 수 있어요? 하나님의 작품인 이 지구성 만물 박물관을 누가 하나님 이상 사랑했느냐 이겁니다. 자기 나라의 박물관 이상 사랑했느냐 이겁니다. 길가에서 밟히는 민들레 짜박지 한 포기도 박물관에 있는 신라시대의 금관에 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건데? 그러한 하나님의 심정을 가지고 '너를 본연의 하나님이 위할 수 있는 왕의 자리에서, 사랑을 받던 그 자리에서 사랑을 못 하는 내 자신이 미안하다. 부끄럽다.'할 수 있는 마음을 지니고 위하는 그런 왕이 있다고 할 때는 풀포기도 그 왕을 따라가서 영원불변 같이 있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야 할 인간인 것입니다. (175-187)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고 자연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걸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물은 하나님의 상징적 존재요, 인간은 실체적 존재이기 때문에, 만물과 인간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자연을 사랑해야 됩니다. 자연을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인간을 사랑해야 됩니다. 인간 가운데서도 오색인종을 다 사랑해야 합니다. '어, 나는 백인들만 좋아.' 하나님이 그럴까요? 그러면 전부 흰옷만 입어야 됩니다. 백인들은 전부 다 흰옷만 입어야 됩니다. 색깔있는 옷은 전부 다 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검정옷은 왜 입어요? 색깔이 있는 옷은 왜 입어요? 모순이라는 것입니다. (133-30)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존재를 사랑의 대상으로 느껴야 됩니다. 모든 미물까지 사랑하고, 사람은 물론이요, 모든 하늘에 있는 것까지 무형의 것, 유형의 것을 사랑할 수 있고 사랑 받을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아침에 새가 짹짹짹짹 할 때는 '야, 요놈의 참새야, 내가 늦잠 자려는데 왜 짹짹짹 해?'하지 말고, '아이고, 너 고맙구나. 아이고, 나를 깨워 주러 왔지 하하, 귀한 손님이 나를 맞으러 오는 걸 네가 알려 주는구나.'이렇게 생각해야 한다는 겁니다. 사상이 다릅니다. 이게 바로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11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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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사랑과 결혼

 

 1) 참결혼은 우주적 합일의 사랑을 이루는 것

 

결혼은 왜 하느냐? 하나님의 모양을 닮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이성성상(二性性相)으로 계신 분으로서 각 일성(一性)이 합체화한 일체적인 존재이시고, 하나님의 분성적(分性的) 인격들이 남녀이기 때문에, 그들이 합성일체화하여 씨와 같이 되어 하나님의 본성의 자리에 돌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결혼의 최고 신성을 우리는 노래해야 됩니다. 남자 여자가 사랑할 수 있는 길은 결혼생활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누구를 닮느냐? 하나님을 닮습니다. 남자 여자가 하나돼야만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신 하나님을 닮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임하시는 것입니다. (164-148)

 

남자는 하늘을 상징하고, 여자는 땅을 상징합니다. 두 사람이 합하여 조화를 이루고 평형선을 이루어야 합니다. (통일세계 1984. 7-15)

 

남녀가 합하는 것은 천지가 합하는 것입니다. (1963. 4. 7)

 

남자와 여자가 서로 좋아하여 포옹하는 그것 자체가 우주가 일체를 이루는 자리가 됩니다. 하나님의 이상 가운데 이루어지는 창조본연의 모습은 그러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세계 28)

 

결혼은 왜 하는 것이냐? 세계를 사랑하는 훈련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또, 만민을 사랑할 수 있는 자격을 갖기 위해서입니다. (37-109)

 

결혼식이란 것은 사랑의 현현을 말하는 동시에 창조권과 주관권을 부여받는 것을 말합니다. (통일세계 1975.4-15)

 

결혼의 목적은 남자와 여자의 마음 세계를 일치시키자는 것이요, 남자와 여자의 사랑 완성을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했다는 것은 그러한 증거를 보이겠다고 선포를 하는 것입니다. 결혼 생활을 통해 사랑의 완성과 마음의 완성을 이루었다면 가정의 이상을 실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죽을 때 이것을 이루었다면 틀림없이 천국 간다는 것입니다. (216-16)

 

결혼은 무엇입니까? 왜 결혼이 중요한 것입니까? 결혼은 사랑을 찾아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하는 길, 생명을 창조하는 길입니다. 남자와 여자의 생명이 일체가 되는 길입니다. 남자와 여자의 혈통이 혼합되는 것입니다. 결혼을 통해서 역사가 생겨나고, 여기서부터 나라가 생겨나고, 이상세계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성약말씀?우주의 근본을 찾아서)

결혼은 누구 때문에 하느냐, 인류를 위해서 하는 것이고, 인류의 공동이익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결혼은 세계를 대표한 것입니다. 그 남자는 세계를 대표한 남자이고, 여자 또한 세계를 대표한 여자입니다.

그러면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되느냐. 세계를 대표한 자리에서 출발해야 되는 것입니다. 결혼하는 뜻은 인류가 공적으로 바라는 뜻을 위한 것입니다. (37-108)

 

누이동생처럼 키워서 아내와 같이 사랑하고 어머니와 같이 섬겨 주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사랑은 누이동생으로부터, 즉 누이로 사랑하기 시작해서 아내로 사랑해야 하고 동생?누나?신부?어머니와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하나님이 다 못 하신 사랑을 복귀할 수 있습니다. (37-108)

 

나라를 사랑하기 위해서 무엇을 사랑해야 하느냐. 먼저 남자는 한 여자를 이 나라의 대표적인 여자로서 알고 사랑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또 여자들은 남자에 대해 그냥 한 사람의 남자로서가 아니라, 온 세계 남성들 가운데서 대표적으로 빼낸 사람이라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대표자의 입장에 선 남자 여자가 합해서 가정을 이루게 되면 이 가정은 하늘나라의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200-19)

 

여자에게 진정한 행복은 사랑의 주체자를 만나는 일입니다. 사랑은 혼자서는 느낄 수 없습니다.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방과 동등한 상대적 관계를 맺으면서 서로 느끼고 사랑할 수 있어야 참된 행복을 느끼는 것입니다.

결혼할 때는 그 남자가 미남이라고 해서 좋아했는데, 그 남자가 한 주일이 지난 후 사고가 나서 몸이 병신이 됐을 때 이혼하자고 하며 나서는 것은 참사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건 가짜 사랑입니다. 참된 사랑은 절대적이요, 불변이요, 영원한 것입니다. (203-18)

 

결혼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를 위해서 한다는 신조를 가져야 합니다. 결혼할 때 잘난 사람, 예쁜 사람을 얻겠다고 하는 것이 잘못된 생각입니다. 인간은 남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원칙을 알았다면, 결혼을 할 때에도 상대를 위해서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미인보다 더 사랑하겠다는 신념을 가지는 것이 원칙적인 결혼관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상대를 하나님같이 사랑하고, 인류같이 사랑하고, 이 세계 누구보다도 더 사랑할 수 있다는 생각이 서지 않고는 하늘나라에 복귀하지 못합니다. 한 남성으로서 한 여성을 사랑할 줄 모른다면 하나님과 인류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통일세계 1978. 6-14)

 

결혼은 행복한 궁전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의식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결혼은 인륜의 대사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시공을 초월하여 인간사에 있어 가장 위대한 것이며, 결혼은 그러한 사랑을 드러내고 확인하는 의식인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6. 2-26)

 

결혼하는 데는 미녀의 남편이 되겠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추녀의 남편이 되어 누구보다도 잘 살 수 있는 남편이 되겠다고 해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어떤 미인도 추앙할 수 있는 그런 남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관(觀)을 가지고 여자를 잘 대해 나가야 합니다. (16-333)

 

어떠한 아내, 어떠한 남편을 만나서 시집가고 장가가겠느냐? 제일 못난 사람을 만나 열녀가 되어 사랑하겠다는 원칙을 세워 가지고 시집 장가를 가서 살아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의 도수가 높을수록 무한한 우주의 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습니다. (참가정 3-16)

 

인간에게 있어서 사랑은 영원한 것이며,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으로 맺어지면 지상에서 백년해로를 해야 하고, 죽어서도 영원히 함께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몸은 둘이지만 하나되어 돌아감으로써 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두 몸이 하나되면 하나님과 같이 돌게 되어 사랑의 사위기대를 이루게 되니, 그것이 바로 사랑의 이상세계인 것입니다. 거기에는 거짓 사랑이 침범할 수 없으며, 오직 참사랑만이 임재하게 됩니다.

개체 완성, 상대 완성을 이룬 후 하나님을 중심한 사랑으로 공인을 받아야 진정한 이상이 이루어집니다.

신랑 신부는 돈이나 권력, 명예를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연의 사랑을 중심삼고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최고 걸작품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남성과 여성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랑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최고의 사랑이요 초월적인 사랑이지 세상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그 사랑은 최고의 아름다운 사랑이요, 사랑 중의 대표적인 사랑이요, 영원히 빛날 수 있는 사랑입니다. 참사랑의 맛을 느끼기 위해서는 이상권을 가져야 하는데, 남자에게는 여자가 필요하고, 여자에게는 남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참사랑을 위한 절대적 남자와 여자는 일심노력에 의하여 맺어지며, 절대적 남자와 여자가 하나로 맺어졌을 때는 하나님이 두 사람 가운데 임재하게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165-178)

 

전세계의 인종이 하나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은 국제결혼밖에 없습니다. 두 가지의 전혀 다른 문화권과 환경으로부터 선택된 남녀가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완전한 조화와 통일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위대한 일을 성취하기 위해 우리는 거대한 사랑의 힘을 찾아야 합니다. 최고의 사랑만이 국경을 넘고, 인종의 경계를 넘고, 문화의 경계를 넘고, 지식의 경계를 넘는 것입니다. (목회 22-16)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은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사랑은 하나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남녀가 서로 그리워하는 이유는 남자는 여자, 여자는 남자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소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서로 좋아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독처하는 사람은 절대로 가지 못합니다. 독처하는 사람에게 천국은 절망강산입니다. 적막강산은 희망이 있으나 절망강산은 희망도 없는 상태입니다. (216-20)

 

남성은 여성을 위해서 태어났고, 여성은 남성을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자기라는 존재를 주장하는 곳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을 것이며, 남을 존중하는 경우에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원칙적이고 원리적인 사고에 의해서 우리들은 두 다리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여자는 남자를 만나려고 태어났고, 남자는 여자를 만나려고 태어났지요? 그것이 최고의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원칙에 따라서 축복권을 찾아나가야 됩니다. 최고의 진리권을 이탈하는 것은 최고의 악입니다. 우리나라의 전통혼례를 보면 서로가 큰절을 합니다. 왜 큰절을 하는 줄 알아요? 서로 위(爲)하자고 큰절을 하는 것입니다. 서로 위하지 않으면 사랑은 도망가고 맙니다. (1982. 10. 29)

 

한국의 민법은 동성동본의 결혼을 금하고 이족결혼을 장려하는데, 이것은 통일을 사모하는 민족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9-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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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남녀의 사랑, 서로가 필요로 하는 사랑

 

자라면서 제일 꽃다운 시절, 제일 아름다운 시절이 청춘시절입니다. 그 청춘시절의 모습이 최고의 꽃봉오리 같은 시기입니다. 그걸 흠뻑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안방에 초대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는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안방에 초대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6-152)

 

인간의 행복은 어떤 것이냐? 돈이 많아 다이아몬드를 몸에 걸치면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느냐? 진실한 행복이란 상대자와 함께 사랑에 취해서 웃고 노래하며 속삭이는 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연인으로부터 속삭이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 하겠습니다. 귓볼에 대고 사랑을 속삭이는 것은 꼭 꿈을 꾸는 것처럼 행복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때는 연령적으로 볼 때 젊음이 가장 화려하게 피어나는 때라 하겠습니다. 사랑으로 한껏 부풀어 하나될 수 있는 때가 청춘시절입니다. (통일세계 1986. 2-19)

 

내 일생일대에 남녀간에 사랑하는 사랑보다도 세계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고 난 나머지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을 하는, 상대를 맞이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이상적인 사람입니다. (127-26)

 

여자에게 진정한 행복은 사랑의 주체자를 만나는 일입니다. (통일세계 1983. 7-29)

 

남자가 혼자 앉아서 아무리 사랑을 찾아봤자 그 사람은 미친사람으로 밖에 취급되지 않습니다. (167-14)

 

남자 여자가 아무리 잘났다고 하더라도 사랑이 없을 때는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생리적으로 전부 다 반대입니다. 여자들은 일방적인데 비하여 남자들은 삼방 사방적입니다. 또 여자들은 집안에 있지만 남자들은 이리저리 세상을 돌아다닙니다. 이와 같은 성격이 전부 다 반대입니다. 이러한 주체적인 남성과 상대적인 여성이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되느냐?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겁니다. 인간과 하나님을 하나되게 하는 것도 사랑입니다. (38-256)

 

하나님은 사랑이상 완성 때문에 인간을 창조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는 최고의 사랑을 중심한 주체와 대상의 관계입니다. 그러면 인간은 언제 완성되느냐? 남자나 여자가 사랑의 인연을 맺고 사랑의 가치를 아는 자리에 나아가야 비로소 완성됩니다.

한 남자가 미남이고 건강한 사람이라 해도 여자가 없이는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자신의 미모나 건강에 취해서 사는 남자는 쓸모없는 존재일 뿐입니다. 그렇게 자아도취에 빠져 사는 남자들이 세상에는 많습니다. 이는 역사가 비극으로 흘러온 한 요인이기도 합니다. 자기도취에 빠져 돌아가는 세상을 개선하고 변화시켜 나오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이 무엇이냐? 남자에게는 여자, 여자에게는 남자가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남자들이 좋아하는 사랑은 남자의 것이 아니요, 여자들이 좋아하는 사랑도 여자의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요? 혼자 있을 때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까? (151-2)

 

남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여자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완전히 사랑했다. 시작부터 끝까지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을 했다.' 고 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또 여자는 그런 자리에 서기 위해서 자기 몸을 꽁꽁 잘 봉해야 됩니다. 함박꽃처럼, 수많은 꽃잎이 겹겹으로 싸여 있듯이 꽁꽁 묻어두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봄절기라는 천지의 조화를 맞아 거기에 화합하여 새로운 인생을 출발해야 됩니다. 이것을 잘 해야 됩니다. (26-152)

 

여러분은 꽃 중에서 아름다운 꽃을 무엇이라고 봐요? 여러분은 어떤 꽃을 좋아하는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나팔같이 생긴 꽃을 좋아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나팔같이 생긴 꽃은 향기를 멀리 풍깁니다. 나팔 같이 생긴 꽃은 깊은 사랑을 의미합니다. 나팔같이 생겨야 향기가 멀리 퍼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팔꽃형일수록 향기가 많이 납니다. 그러니까 여자들이 꽃이라면, 깊은 사랑의 심정을 여자들이 가져야 합니다. 아름다운 향기를 가진 꽃은 만민이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백합꽃은 단조롭지만 우아한 멋이 있습니다. 깨끗하고 우아한 백합꽃은 잎인지 줄기인지 알 수 없으리 만큼 같은 색으로 피어 있는 것을 보면, 감상적이고 정서적인 꽃이라고 봅니다. 그와 같이 아가씨들은 나팔꽃, 혹은 백합꽃같이 되어야겠습니다. 우아하고 깨끗한 꽃이 돼야 합니다. (187-27)

 

아무리 어여쁜 아가씨도 사춘기는 단 한때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때는 꽃중의 꽃이요, 일생에서 가장 귀한 때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 혼자 살지'하고 생각하는 여자가 있어요? 그건 여자가 아닙니다. 또한 남자들 중에서도 허우대가 멀쩡해 가지고 좋고 좋은 이팔청춘에 자기 혼자 살겠다고 하는 녀석 있어요? 그런 때에는 반드시 상대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를 닮아서 그렇겠습니까? 하나님을 닮아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일생의 가장 귀한 때인 사춘기때 상대를 찾아 나서는 것은 남자나 여자나 마찬가지입니다. (32-248)

 

남자는 왜 생겨났습니까? 남자들이 흔히 자기 혼자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고들 하지만, 남자는 여자 때문에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여자가 없으면 남자는 필요없습니다. 자기 때문에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32-248)

 

우리 오관을 볼 때 내 눈이 내 눈을 보기 위해서 생겨났습니까? 코나 귀, 입, 손도 모두 상대를 위해서 생겨났습니다. 오관을 총동원해 집중하게 할 수 있는 그 힘이 뭐냐 하면 참사랑입니다. 눈?코?귀?입 그리고 손은 참사랑을 위해 생겨난 참사랑의 도구입니다.

여자에게는 제일 귀한 게 무엇이냐? 남자입니다. 어떤 남자가 필요하냐? 잘나고 못나고 병신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남자에게서 가치있는 사랑을 찾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215-19)

 

남자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여자가 있고, 여자의 마음 속에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남자가 있어서 함께 기리게 될 경우에는 하나님도 그것을 보고 기뻐하실 것이며, 만물도 서로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포옹하는 기쁨의 내용이 하늘과 땅이 함께 기뻐하는 가치가 됩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좋아하며 포옹하는 그것 자체가 우주가 일체를 이루는 자리가 됩니다. 하나님의 이상 가운데 이루어지는 창조 본연의 모습은 그러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세계 28)

 

본래 남자가 태어난 본뜻이 어디에 있느냐, 여자 때문에 태어났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여자는 여자 때문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남자 때문에 태어났다는 사실을 스스로가 확신하지 못하는 자리에서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천지창조의 대주재이신 하나님이 창조의 원칙으로 했기 때문에, 그 원칙을 따라가지 않고는 선하고 참되고 행복하고, 평화스러운 세계 혹은 사랑과 이상의 세계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통일세계 1975. 2-16)

 

세상에 수많은 남자들이 있더라도 곁눈질해서는 안 됩니다. 절개는 생명보다 더 귀한 것입니다. 남편이 사랑할 수 있고, 아들딸이 사랑할 수 있고, 나라가 사랑할 수 있고, 세계가 사랑할 수 있는, 청사에 남을 길이 여성에 의해 열려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여성의 아름다움과 고귀함과 정서적인 전통이 빛날 수 있는 터전을 닦아 내려가는 엄숙한 과제 앞에 여러분은 진실과 참된 모습으로 있는 성심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39-218)

 

제일 꽃다운 시기, 꽃이 활짝 핀 청춘시대가 언제냐 하면 사춘기 때입니다. 그 시기가 바로 18세부터 24세까지의 7년 간입니다. 이 7년 간은 일생에 둘도 없는 꽃다운 사랑의 꽃이 필 시기입니다. 한번밖에 없는 꽃다운 시절이 얼마나 귀합니까. (215-152)

 

함박꽃을 알지요? 꽃봉오리는 수십 꺼풀로 꽁꽁 싸여 있는 그것을 쉽게 헤칠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남자나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붉은 사랑, 노란 꽃과 같은 그 사랑의 봉오리를 어느 때에 활짝 피울 것이냐? 천지의 조화 가운데 아름다움이 가장 잘 드러나는 때가 청춘시기입니다. 인간으로 볼 때도 최고로 피는 때입니다. 하나님의 걸작품이 되어 제일 중심의 절정으로서 반짝이는 기간이 청춘시기인데, 그때 하나님의 축복 속에 활짝 피워야 합니다. (215-152)

 

청춘시대에 순정을 잃어버렸던 아담과 해와의 한을 밟고, 탕감할 수 있는 귀한 때인 사춘기에 순정을 더럽혀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 순정을 깨끗하고 귀하게 보존해 가지고 '천세만세 혼자 가더라도 사랑이 유린되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는 지조와 결의를 가져야 합니다. (37-108)

 

청소년으로서 타락한 세상에 더럽혀지지 않고 물들지 않은 거룩한 순정을 고이 보관해 가지고 이것을 어디다 갖다 놓을 것이냐? 하늘이 제일 기뻐할 수 있는 제단에 올려놓아 하나님이 기뻐하고, 그러한 순정을 가진 남자와 여자가 만나 가지고 하나로 묶어질 수 있는 거룩한 터전이 신랑 신부가 만나는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215-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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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축복 결혼식은 하나님 사랑의 전수식이다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결혼하는 것을 축복이라고 표현합니다. (1975. 1. 21)

 

축복은 참부모와 참자녀가 상봉하여 창조목적을 이루는 것을 의미합니다. (19-73)

 

축복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과 함께 하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되면 전체를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 주체가 가지고 있는 전체를 받는 셈이 됩니다. (통일세계 1982. 8-21)

 

여러분은 아직까지 참부모와 완전한 인연을 맺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인연을 맺어 주기 위해 해주는 것이 축복입니다. (23-333)

 

축복받은 사람은 영계에 가서도 선생님이 영원히 책임을 집니다. 선생님이 주관하고 지도합니다. 축복이란 이와 같이 선생님과 영원한 인연을 맺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세계 538)

 

축복은 천국 문을 여는 것이며, 자녀를 갖추어 가지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12-266)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 크게 둘로 나누어 보면,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됩니다. 이들이 하나될 수 있는 비법을 모색하는 것이 우리의 근본목적인 것입니다. 이제까지 그러한 하나의 결실적인 가정의 기원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모색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원이 나타나 씨를 뿌리면 새로운 나무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축복결혼식입니다. (31-191)

 

축복 결혼식은 단순히 남녀가 만나서 한 가정을 이루는 혼례식이 아닙니다. 지금까지의 결혼식은 자기를 중심한 것이었지만, 우리의 결혼식은 하나님께 기쁨을 되돌릴 만한 내용을 가지고 역사를 탕감하는 귀한 조건으로, 성스럽고 성대하게 거행돼야 합니다. 우리들의 결혼식이란, 아담과 해와의 타락으로 비롯된 하나님의 한(恨)을 해원해 드리고, 예수님께서 이루지 못한 신랑 신부의 기준을 통과하는 것임을 원리는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세계 37)

 

하나님의 섭리로 믿음을 세웠다고 해도 하나님의 자식으로 복귀시키기 위해서는 접붙임을 받아야 합니다. 다시 태어나야 된다는 것은 타락한 아담과 해와의 후손된 부모의 혈육을 통해서 다시 태어나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 타락과 관계없는 부모의 혈육을 통해서 다시 태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죄의 근본 뿌리는 아담과 해와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밟고 넘어서서, 즉 원죄와 인연이 없는 자리에서 태어났다는 자격을 갖추지 않고는 하나님의 곁으로 돌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세계 140)

 

거듭나는 데는 아담과 해와보다 못해 가지고는 안 되며, 또한 근본복귀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거듭나는 데도 개인이 거듭나야 되고 가정, 민족, 국가, 세계가 거듭나야 합니다. 이 사실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80살이 넘은 할머니들도 축복 못 받고 죽으면 천국 못 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에라도 몇 천리 밖에 남자가 있고 몇 천리 뒤에 남자가 있어도 둘이 명주실을 매어서 축복의 조건이라도 받고 싶어합니다. 축복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 일을 해내야 하니 팔자가 사나운 사람입니다. (22-18)

 

참부모라는 뜻은 완전한 남자와 완전한 여자라는 겁니다. 종적 횡적으로 90각도가 된 남자와 여자라는 겁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이것을 접붙이기 위해서 처녀 총각들을 모아 가지고 모가지를 잘라 버리고, 어머니 순과 아버지 순을 갖다 심어 놓는 것이 축복입니다.

축복식은 바로 사랑의 전수식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부모가 살 듯이 여러분들도 부모의 사랑을 하나님의 사랑 대신 받아 가지고 '이렇게 살라!'고 하는 사랑의 전수식이 축복식이라는 것입니다.

축복식은 하나님의 사랑을 부모로부터 받는 것입니다. 어떤 이름난 사람으로부터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천사장이 해주는 결혼입니다. 이름있는 사람이 외짝으로 와 가지고 결혼식해 주는 것은, 전부 다 천사장으로부터 받는 결혼식입니다. (206-2)

 

축복을 해준다는 것은 하늘의 전권을 옮겨 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7-328)

 

축복은 역사가 추구해 온 만민해방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세계 32)

 

선생님이 생애에서 가장 귀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무엇이었느냐? 축복입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도 인류 역사 이래 최고의 선물은 축복입니다. (23-317)

 

하나님을 중심한 새 사랑, 즉 창조 법도에 의한 사랑이 결정된 자리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이상이 출발됩니다.

혈통이 다르다는 것은 아버지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다른 혈통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은 본래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부모에 의하지 않고는 죄를 탕감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역사는 타락하지 아니한, 종지조상이 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그 한 분이 올 때까지 종교의 이념을 중심으로 연결시켜 왔습니다. (20-115)

 

축복받았다는 것은 메시아가 2천 년 동안의 수고로 땅 위에 기반을 닦아 선택받은 민족과 교단과 자기 종족을 중심하여 신랑 신부의 이름으로 출발할 수 있는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종족적인 메시아가 될 수 있는가? 선생님과 부자(父子)의 인연이 맺어졌기 때문에 사탄도 꼼짝못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축복은 참으로 엄청난 것입니다. (21-14)

 

천주주의는 어떤 주의냐? 참부모주의입니다. 결국 이 두 주의는 부모의 주의입니다. 이것은 우리집 주의요, 우리나라 주의요, 여러분 개인의 주의입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세계는 누구의 주의가 되느냐? 아담의 주의가 될 것입니다. 그 아담주의가 바로 참부모주의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주의라는 것입니다. 이 이상의 다른 주의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심정적인 문제를 본연의 이상적인 가정의 테두리 안에서 참부모라는 이념을 중심삼고 하늘주의와 결부되게 해야 합니다. 이런 이념으로 제도화된 가정의 인연이 남아 있는 한 망하지 않습니다. 망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26-201)

 

천주주의는 무엇이냐? 가정을 두고 말하면, 내가 살고 있는 가정에 금은보화가 천하를 꽉 채우고도 남을 만큼 있다 하더라도, 거기에 취해 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잊어버리고 언제든지 하나님의 사랑에 취해 살 수 있는, 그런 가정입니다. 아들의 것은 부모의 것이요, 부모의 것은 하나님의 것으로, 고스란히 연결시킬 수 있어야 됩니다. (35-281)

 

참가정주의는 무슨 주의입니까? 참가정주의는 하나님의 사랑주의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제아무리 세계 제일이라고 배통을 내밀고 다녀도 그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참가정주의는 부모가 가면 아들딸은 부모의 뒤를 영원히 따라가는 주의, 또 형님이 가면 동생이 영원히 따라가는 주의, 동생이 가면 형님이 영원히 따라가는 주의입니다. 그러니 동생의 나라가 있으면 형님의 나라가 따라가고, 형님의 나라가 있으면 동생의 나라도 따라가겠다고 해야 합니다.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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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사랑과 가정

 

1) 사랑이상 실현은 가정에서 이뤄진다

 

가정은 만고불변의 기원이며 기틀입니다. 이것은 아버지도 고칠 수 없고, 형제도 고칠 수 없으며, 어느 나라 어떤 제도로도 고치지 못합니다. 또한 세계적으로도 고치지 못하며, 하늘 땅도, 하나님도 고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이라는 것에는 영원히 혁명이라는 명사가 필요없습니다. 가정은 사랑의 자리이기 때문에 혁명이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25-87)

 

왜 부모가 좋은 것이 될까요? 그리고 남편과 아내, 자녀가 왜 좋은 것이 될까요?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사랑, 이것은 자식에게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부부의 사랑, 이것은 남편과 아내에게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됩니다.

그리고 형제간의 우애, 자녀가 부모에 대해 가지는 효성의 마음도 한 가정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미래의 주인공 169)

 

가정이 왜 좋은가? 가정에서는 사랑을 서로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는 터전이 되어 있어서 흥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은 고향을 그리워하고, 부모와 형제가 있는 가정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38-328)

참된 가정은 자기 어머니같이 아내를 사랑하고 위하며, 자기 아버지같이 남편을 위하고 사랑하며, 동생 오빠같이 서로를 사랑하는 곳입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같이 자기 아내를 사랑하고, 하나님같이 자기 남편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세계가 이상가정이 사는 천국입니다. 이러한 전통이 이 지구성에 세워져야 합니다. (208-18)

 

하나님을 중심삼은 영원한 부모의 사랑, 영원한 부부의 사랑, 영원한 자녀의 사랑, 이 세 가지 사랑이 있는 것이 이상적 가정입니다. (200-19)

 

부모와 자녀, 부부, 그리고 형제 자매들이 모두 참사랑을 중심으로 합하기를 원하는 곳이 우리의 이상가정(理想家庭)입니다. 여기에서 영원한 세계적 평준화가 시작됨으로 말미암아 지상천국(地上天國)이 출발되는 것이요, 또한 천상천국(天上天國)도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미래의 주인공 172)

 

행복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이냐? 콧노래를 부르며 맞을 수 있는, 그런 환경은 어디서부터 오느냐? 가정에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가정의 행복은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또 심정, 사랑이 없어도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23-121)

 

불행이 어디에서부터 출발하겠습니까? 사랑의 보금자리가 없어지게 될 때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은 그 집에 울타리가 되는 부모를 모시고 사는 가정입니다. 그 가정은 위로는 하늘을 대표한 부모를 모시고, 횡으로는 부부를 묶어 이 부부들이 천륜의 법도를 받들며 그 계대를 이으면서 사는 가정입니다. (19-305)

 

여러분은 어떠한 사랑을 찾았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찾았다면 여러분의 마음과 몸이 완전히 하나되어 하나님의 사랑이 임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부부천국이 생겨나고 가정천국을 이뤄야 합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완전히 하나돼 사랑하게 되고, 아들딸도 어머니 아버지같은 대상을 얻어야 가정천국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플러스가 되고 아들딸이 마이너스가 되면 가정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203-19)

 

부모, 부부, 자녀로 형성된 가정은 세계의 축소체입니다. 가정적 사랑을 확대해서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 인류가 살아갈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나이 많은 사람은 할아버지 할머니같이, 중년은 아버지 어머니 같이, 나보다 조금 나이가 들어 보이는 사람은 형님 누나같이, 적어 보이는 사람은 동생같이 생각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세계 624)

 

천국은 어디서부터 이루어지느냐? 우리들의 가정에서부터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슨 주의냐? 가정주의입니다. 우리가 표방하는 천주주의(天宙主義)는 하늘 천(天)자에 집 주(宙)자, 즉 하늘집주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천주라는 뜻이 확실해지는 것입니다. (26-103)

 

가정은 작은 사회에 입각한 작은 국가입니다. 작은 국가요, 작은 세계요, 작은 천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을 떠나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한 가정은 사회의 윤리적(倫理的) 기반이며, 인간 세계에서 가장 본이 되고 근원적이고 일차적인 조직입니다. 이러한 가정에서 사랑이 최선의 가치기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미래의 주인공 169)

 

사람이 일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때는 어느때냐 하면, 태어날 때, 결혼할 때, 죽을 때입니다. 그러면 날 때는 어떻게 나야 하느냐? 잘 태어나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결혼할 때입니다. 결혼이란 살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즉, 사위기대를 이루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우주의 공법을 지구성에 세워 놓아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인간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주의 법도가 지향하는 내용을 갖추고 그 형태를 갖추기 위한 것이 가정입니다. (24-230)

 

가정은 천국 완성의 기본 단위입니다. 천국은 한 번 가보면 되돌아가고 싶지 않고, 열 번 백 번 만나도 또 만나고 싶은 그분이 계시는 곳입니다. 만민이 공통으로 그곳을 가고 싶어하고, 그분을 보고 싶어하고, 그분과 같이 살고 싶어한다면 세계는 통일될 것입니다. 그곳을 향하여 가고 있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개인의 기대가 서고, 다음에 가정의 기대가 서고, 그 다음에 민족, 국가, 세계로 뻗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12-180)

 

천국이 어디 있느냐? 공중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식지간에 주고 받는 생활적인 무대를 키우고, 또 모든 피조물을 우리의 생활에 이용하고 우리의 이상의 조건으로 이용하는 재미, 그 재미를 백 퍼센트 누릴 수 있는 곳이 천국입니다. (173-9)

 

천국은 혼자서 갈 수 없습니다. 축복은 천국문을 훌쩍 넘어가는 것입니다. 천국은 가정적으로 들어가는 곳입니다. 3대의 인연을 가지고 들어가는 곳입니다. (12-266)

 

종교는 마루되는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의 마루되는 가르침은 인류를 가르치고 인류를 사랑해 보자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참된 부모는 자식에 대해서 세계가 좋아하고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천국은 누가 가르쳐 주어서 가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양심적으로 사는 사람은 자동적으로 가게 돼 있는 곳이 천국입니다. 태양이 떠오르면 모든 나무의 순은 태양을 향합니다. 초목까지도 스스로 방향성을 갖고 돌아가거늘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자기의 갈 길을 모를 리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75-42)

 

천국은 사랑의 세계요, 중심자인 하나님을 위해 있는 세계,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세계입니다. (98-35)

 

천국은 사랑의 궤도를 타고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실감나지요? 그 사랑의 줄은 당기면 당길수록 고무줄처럼 가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고무줄은 당기면 당길수록 가늘어지지만, 사랑의 줄은 당기면 당길수록 반대로 굵어집니다. (32-232)

 

인간은 부자지관계가 있어야 되고, 부부관계, 형제관계가 있어야 됩니다. 즉 이 세 관계가 한 점에 있어야 됩니다. 그 중심점은 하나입니다. 상하?좌우?전후의 중심이 달라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중심점이 틀리게 되면 상하, 좌우, 전후관계의 균형이 다 깨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상?하?좌?우?전?후 그리고 하나의 중심점까지 모두 7수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7수를 이룬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중심삼고 완전한 참사랑으로 하나되어 이 모든 전부가 완전히 구형을 이루어 조화와 통일을 이루는 가정이 된다는 것입니다.

세계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어머니 아버지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부부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아들딸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몇 종류냐 하면 이런 네 종류의 사람이 전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천국 사람이 될 수 있는 교육의 교재로서, 경전으로 삼아진 것이 우리 가정이라는 관념을 가져야 됩니다. (161-314)

 

가정이라는 것은 천국과 인연맺게 하기 위한 교재입니다. 교육의 텍스트 북(text book:교과서)이라는 겁니다. 그것은 축을 중심삼고 나라에 적용하면 애국자가 되는 것이요, 세계에 적용하면 성인이 되는 것이요, 하늘땅을 중심삼고 하게 되면 하나님의 아들딸, 성자가 되는 것입니다. (1985. 12. 18)

 

가정은 죽을 때 하늘나라, 평화의 왕궁에 입적할 수 있는 수속권을 탈 수 있는 사랑의 교과서요 사랑의 수련장입니다. 이것을 확대한 것이 세계입니다. 할아버지 같은 세계가 있고, 할머니 같은 세계가 있고, 아버지 어머니 같은 세계가 있고, 남편 같은 세계가 있고, 아내 같은 세계가 있고, 아들딸 같은 세계가 있다는 겁니다. 이것을 확대하면 곧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142-242)

 

사랑의 왕국을 이루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랑의 이상세계를 발전시켜 세계화시키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할 때, 국민학교 졸업으로부터 대학 학박사 졸업까지 패스할 수 있는 실험장이 어디냐 하면 가정입니다. 가정을 확대하면 세계입니다. 세계를 가만 보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는 세계, 그 다음에 아저씨 아줌마들이 사는 세계, 오빠 누나 같은 사람들이 사는 세계, 그 다음에 청소년들이 사는 세계, 아이들이 사는 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노년으로부터 장년?중년?청년?소년들이 사는 이곳이 모양이 클 뿐이고, 수가 많을 뿐이지, 가정을 확대시켜 놓은 것입니다. (147-281)

 

가정의 중심은 부모인데, 왜 부모가 되느냐? 부모는 가정의 모든 전체를 위해서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는 가정이 필요하고, 나라가 필요하고, 세계가 필요하고, 본연의 세계와 우주가 필요합니다. (141-302)

 

사랑을 중심삼은 가정에서 부모는 나라의 대표자요, 하나님의 대표자라고 보는 겁니다. 그것을 훈련하기 위한 제1단계의 훈련 무대가 가정입니다. 지상에 천국을 이룰 수 있는 제1교화장(弟一敎化場)이 가정이고, 그리고 국가가 제2교화장입니다. 거기에 애국자가 필요한 겁니다. 그 다음 제3교화장이 세계입니다. 거기에 성인이 필요합니다. 영계는 제4교화장입니다. 그 다음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겁니다. 성인이라고 해서 하나님의 아들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전부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야 되는 겁니다. 성자의 자리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되어 가지고 영원히 하나님을 소유할 수 있는 자리로 들어가게 됩니다. (14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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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정은 천국생활을 위한 사랑의 훈련도장

 

천국은 사랑의 세계요, 하나님을 위해 있는 세계,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세계입니다. (98-35)

 

가정은 역사를 압축시킨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와 연결됩니다. 그래서 가정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수직으로 이어받는 것입니다. 90각도 수직으로 이어받아야 합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이것을 인수한 대신입니다.

그러니까 조상을 압축한 것이 바로 할아버지 할머니입니다. 할아버지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역사시대의 선조들을 대표한 상속자요, 대표자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역사를 연결시키는 상속자라는 것입니다. (216-239)

 

할아버지 할머니는 과거, 지나간 시대의 대표자요, 어머니 아버지는 현 시대를 대표합니다. 그리고 아들딸은 미래를 대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할아버지 할머니는 과거고, 어머니 아버지는 현재고, 나는 미래를 대표합니다. 여기에 아들딸이 있게 된다면 아들딸은 과거-현재-미래의 총화(總和)이기 때문에 세 부모, 세 조상들의 3사랑을 연해서 4대를 사랑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손자를 못 본 것이 타락입니다. (211-132)

 

천국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할아버지는 하나님 대신이고, 어머니 아버지는 현재 대신이고, 아들딸은 미래입니다. 과거-현재-미래가 축소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 아버지는 이 세상을 대표합니다. 할아버지는 하나님을 대신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과거의 하나님 자리요, 어머니 아버지는 현재의 하나님 자리요, 앞으로의 아들딸은 미래의 하나님 자리입니다. 참사랑을 중심삼고는 동등합니다. 평등 동등한 내용의 가치, 본질적인 일체 이상관을 형성할 수 있는 참사랑을 중심삼고, 그 하나의 위하는 사랑을 핵으로 하여 동서사방이 하나로 엉클어질 때, 그 자리는 영원히 하나님의 사랑의 운세가 보호할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참사랑의 논리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의 상대로서 영원불멸, 영생한다는 것입니다. (211-225)

 

하나님과 내가 직접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입장에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귀하겠느냐? 도(道)의 목적은 자기 가정을 완성해 가지고 거기서 무한한 사랑을 느끼고 무한한 행복을 누리자는데 있습니다. (33-68)

 

가정이 무엇이라구요? 이상의 나라와 이상의 세계를 사랑으로 점령할 수 있는 훈련장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늘나라와 하나님까지도 점령할 수 있는 훈련장입니다. (106-9)

 

사랑하지 못한 사람은 저나라에 가서 질식합니다. 호흡이 맞질 않습니다. 지상생활은 그 세계에 들어가서 호흡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훈련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가정이 교재입니다. 할아버지 연령의 사람이 있으면 자기 할아버지보다도 더 사랑하겠다고 생각해야 되고, 어머니 아버지 연령이 된 사람이 있으면 외부의 사람이든, 흑인이든 백인이든, 국가를 넘어 어디에 가든지 환영해야 합니다. 젊은이가 있거든 자기 아들딸같이 사랑해야 됩니다. (121-268)

 

천국이 뭐냐? 자기 가정과 같이 세계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곳이 천국이요, 그런 사람이 천국 백성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자기 아내, 형제, 자녀 이 4대가 뭐냐? 하늘나라의 백성으로서 사랑을, 우주의 참사랑을 체험하기 위한 교재로서의 가정입니다. 교재로서 나에게 가르쳐 주는 기반이 가정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129-98)

 

하나님의 사랑은 피조만물에 나타납니다. 부모의 사랑은 어디에 나타나느냐. 자식에게 나타납니다. 또 남편이 있는 곳에는 아내의 사랑이 나타납니다. 자식을 보아 부모의 사랑을 알 수 있고, 남편의 옷끝을 보아 아내의 사랑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세상에 나타난 사실을 보아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순서에 따라 사람에게 나타납니다. 먼저 부모의 사랑, 다음으로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 형제의 사랑입니다. 사랑만 가지면 하나님과 친구같이 지낼 수도 있고, 아버지 같이 지낼 수도 있습니다.

인생행로는 나그네 길이지만 우리는 종횡의 사랑을 체휼하고 가야 됩니다. 참부모의 사랑, 참부부의 사랑, 참형제의 사랑, 참아들딸의 사랑을 중심삼은 가정을 이룬 후, 이를 횡적으로 확대하여 사방으로 많은 가정을 벌여 놓아야 됩니다. 그래서 그들이 종횡을 연결시킬 수 있는 참가정의 형태를 이루어 종족권, 국가권, 세계권으로 하나님과 연결될 때 참사랑으로 연결된 그 세계를 천국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1985. 12. 18)

구원의 문을 여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참사랑과 참생명과 참혈통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구원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헤쳐 버리고 깨뜨려 버리는 것은 죄 중의 죄입니다. 원수 중에서도 제일 지독하고 미운 원수는 사랑을 파탄시킨 원수입니다. 한 가정을 중심으로 자식이 부모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들고, 부부끼리 사랑할 수 없게 깨뜨려 버린 악마 이상의 악마가 없습니다. 인류 시조가 타락함으로써 첫째는 형제의 사랑을, 둘째는 부부의 사랑을, 셋째는 자녀의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이를 재현시켜 사랑하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참사랑과 하나되어 살다가 들어가는 곳, 하나님의 참사랑의 혈족을 준비해 가지고 함께 들어가는 곳이 천국입니다. 이 참사랑을 점령하지 못하면 영원히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 날을 위하여 수천만 년을 기다려 준비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참사랑의 본체이므로 참사랑과 연결되면 모두가 같은 몸이 됩니다. 부모는 하나님을 대신한 살아있는 하나님이고, 남편과 아내는 서로 다른 한쪽의 하나님이고, 아들딸은 또 하나의 작은 하나님입니다. 이렇게 3대가 참사랑을 중심하고 이루어진 가정조직이 천국의 기반입니다. 그런 기반을 이루지 않고는 천국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가정이란 우주의 중심입니다. 가정완성은 우주완성의 기초가 되기 때문에 가정에서 사랑하는 것과 같이 우주를 사랑하면 어디든지 무사통과입니다. 이럴 경우 하나님은 전체 우주의 부모로서 사랑의 복합적인 중심 자리에 계십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창조 본연의 가정적 기대에는 남자의 사랑, 여자의 사랑, 아들의 사랑, 딸의 사랑, 부모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이런 소화된 자리에서 부모를 사랑하고, 남편을 사랑하고, 아들딸을 사랑하면 누구나 천국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천국생활은 어디서부터냐? 가정입니다.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은 가정을 입체적으로 확대시킨 것뿐이지, 가정권을 벗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아내나 남편을 품을 때 이것은 세계의 남성과 여성이 하나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세계 인류를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울 수 있는 자리가 바로 이 가정입니다. (130-289)

 

여러분의 혈족을 존중해야 됩니다. 어머니 아버지를 존중해야 되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하늘나라의 왕권을 대신한 우리 집의 주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나이가 많다고 천대받는 패가 됐지요? 그래 놓고 뭐 세대차이? 이거 누가 만들었어요? 사탄이 만들어 놓은 말이라구요. 세대차이가 어디 있어요? 사랑에 세대차이가 있어요? 천년 전에 사랑하는 방법하고 천년 후, 지금 사랑하는 방법하고 달라요? 방법도 같고 그렇게 하는 것도 같아요. 내용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았다면, 사랑의 내용은 공식이 돼 있기 때문에 억만 년이 가도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천만 번의 천지개벽이 있더라도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아들딸의 3대가 하나되어 철옹성같이 똘똘 뭉쳐서 거기에 하나님을 핵으로 모시면, 어디든지 천국을 실현할 수 있는 하나의 씨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씨요, 생명의 씨로서 혈통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걸 찾아가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상천국, 평화의 천국, 행복과 자유의 세계라 할 수 있는 소망은 있을 수 없습니다.

천국이란 무엇이냐? 극락 또는 천당 간다고 하지만 자기 혼자 가는 곳이 아닙니다. 자기 부모와 형제가 다 같이 가야하는 곳이 천국입니다. (15-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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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사랑과 영계

 

1) 영계의 공기는 사랑, 사랑이 생명요소다

 

우리는 하나님 대신 사랑으로 태어나 사랑으로 살다가 아들딸을 낳아 사랑의 목적지에 도달하여 영원히 하나님과 더불어 살기 위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즉 우리 일생이란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무르익어 사랑의 열매로 거두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사랑의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144-224)

 

죽음이란 인간이 육신생활을 마친 다음 제2의 출생을 하는 것입니다. 제2의 출생을 하는 곳, 죽어서 가는 세계가 바로 영계입니다. 그 세계에 들어가서 제3의 부모인 하나님으로부터 우주 전체를 대표한 참사랑을 공급받는 것입니다. 영계는 사랑을 호흡하고 사랑을 중심삼고 사는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완전한 참사랑의 인격을 이루지 못하면 왔다갔다 하는 길이 제한받고 사방을 통하지 못합니다. 문을 통하더라도 하나의 문만을 통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춘하추동 언제 어디서든지 맞추어서 살 수 있는 자격을 갖추려면 지상생활에서 완전한 사랑의 인격을 구비해야 됩니다. (116-172)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태어나는 것이 죽는 것인데 인간세계에서는 '아이구, 죽는다' 하고 야단하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걸 보고 껄껄하고 웃으십니다. 인간세계에서 울고불고 하는 걸 하나님이 볼 때 슬퍼하겠어요, 좋아하겠어요? 제한된 사랑권 내에서 무제한의 사랑권 내로 돌입할 수 있는 기쁨을 맞을 수 있는 순간이 제2의 출생의 순간인 죽음길을 통하는 그 순간이 아니겠느냐. 그래서 그 길은 승화의 길입니다. (49-285)

 

죽음을 극복해야 됩니다. 제2의 생을 촉진시키는 변화 과정이 죽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은 슬픈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세계로 비약하는 것이요 승화(昇華)하는 것입니다. (139-214)

 

세상에서는 죽음이 생명의 끝남을 의미하지만 죽음은 다른 세계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죽음 때문에 침울해 하거나 슬퍼하거나 좌절해서는 안됩니다. 대신 주어진 사명을 위해 한 생을 살다가 영적인 승리 가운데서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