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주는 참사랑을 찾기 위해 오신 분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복지에 입성할 때, 앞에 모시고 갔던 법궤가 있었습니다. 그 법궤는 사람이 만든 것이겠지만, 사람이 만든 법궤 이상의 절대가치를 가졌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법궤를 절대신앙으로 모셔야 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사랑을 법궤 이상의 절대가치로 모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날이 와야 할 것입니다.

타락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타락이란 본연의 이상적 인간으로서 하나님이 바라시던 참된 사랑의 부부가 되어 하나님과 함께 사랑을 중심하고 살지 못한 것입니다. 구세주는 어떤 분이십니까? 인간은 타락으로 참사랑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세주는 참사랑을 찾기 위해 오신 분이십니다. 다시 말해 잃어버린 참사랑을 되찾아 주기 위해 오신 분이 구세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신랑으로 이 땅에 다시 오겠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신랑으로 오신 예수님 혼자서 사랑을 완성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찾고 계시는 완성된 여성이 있다면, 예수님의 상대자로서 완성된 여성이 있다면, 예수님이 그 여성을 사랑하겠다고 해서 무슨 죄가 되겠습니까? 예수님이 완성된 여성과 사랑을 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말리시겠습니까?

예수님이 죽지 않고 이상적 상대자를 만나 하나님과 하나된 그 사랑 가운데서 부부가 되어 직계 자녀를 낳았다면 오늘의 세계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예수님의 직계 자녀가 태어났다고 하여 하나님이 노하시고 죄를 지었다고 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의 후손이 탄생했다면 지금쯤은 세계 인구의 상당 부분이 예수님의 후손들로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 후손들로 인하여 오늘의 세계는 이미 천국이 이루어졌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한 타락 인간을 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이것은 예수님이 직계 자녀를 갖는 것과는 비길 바가 못 되는 것입니다. 타락한 이후 하나님께서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딸, 하나님의 손자 손녀를 대할 수 있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