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자는 보다 희생하는 자

아무리 요란스럽게 세상을 휘저어 놓아도 자기 때문에 휘저어 놓지 않게 될 때는 다 수습된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사실입니다. 전체를 위해 태어났기 때문에 전체를 위해 가지고 문제를 제시하는 사람은 전체의 중심자가 되고 전체의 미래에 있어서 필요한 기반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어머니 아버지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 가지고 '야, 이놈의 자식들아! 빨리 나오너라' 하고 암만 야단하더라도, 문제를 이루어 놓더라도 그 어머니 아버지가 자기를 위해서 하지 않고 아들딸과 전체 가문을 위해서 야단하고 모든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좋은 것으로 수습된다는 것입니다. '아이구, 우리 어머니 아버지 새벽부터 왜 이렇게 떠들어, 잠 못자게. 그럴 수 있어요? 남의 어머니 아버지는 그렇지 않은데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왜 그래!' (웃음) 하고 반대하는 자식도 어머니의 진의(眞意)를 알게 될 때는….

그건 누구 때문에 그래요? 떠드는 것보다 가만히 있으면 좋은 것이고, 에너지도 소모 안 되고 자연적으로 주위도 좋아요. 그런데 그런 걸 뻔히 알면서도 왜 말하느냐 이거예요. 야단하는 사람이 얼마나 힘들어요. 나도 여러분 대해서 야단할 때 사실 힘들다구요. (웃음) 안 할 수 없으니 나도 야단을 하는 거예요. 선생님은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나를 위해서 야단한 것이 아니라 전체를 위해서 야단했기 때문에 그건 정의에 귀결된다 이거예요. 자기 욕심이 개재되어 있고 자기의 사적 이익이 여기에 추가됐다 할 때에 그것은 앞으로 올 미래의 역사에 규탄을 받지만 그걸 초월해서 전체를 위해 염려하고 문제를 제시하는 것은 역사시대에 환영의 조건으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상의 위인들 혹은 성현들은 그 시대에 있어서 전부 다 배반자로 몰렸고, 피를 흘려 가고 역사의 제거자의 입장에 섰지만 역사가 지난 후에 있어서 역사를 지배할 수 있는 자리에 선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 살지 않았고 자기를 위해 문제를 제시 않고 전체를 위해서 제시했기 때문에 전체는 기필코 그들을 중심삼고 수습되기 마련인 것입니다. 이것은 사필귀정으로 그런 자리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기 때문에 태어났다는 사람은 일생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불행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불평거리라는 거예요. 불평의 씨앗이 있는 거예요.

자, 시집가는 아가씨가 시집가기 전부터 부모님 앞에서 '너는 남편을 위해서 태어났다' 이렇게 교육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편을 만나서부터는 전체를 남편을 위해서 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살려고 안 합니다. 남편을 위해서 살려고 합니다. 그러면 주인이 누구냐? 보다 위해서 사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보다 위해서 희생하는 사람이 중심자가 되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그렇잖아요? 위해 사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구요.

열만큼 위하는 사람 앞에 열 하나만큼 위하는 사람이 있다면, 만(萬) 사람에게 '너 열만큼 위하는 사람 가질래, 열 하나만큼 위하는 사람 가질래!' 하고 물어 보면, 만 명이면 만 명 다 '나 열 하나만큼 위하는 사람 갖겠다' 하고 대답하는 거라구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건 억만 인도 마찬가지라구요. 그 말은 뭐냐 하면 오늘 현재 세계인이 다 그걸 원하고, 과거의 우리 조상도 원했고, 앞으로 올 우리 후손도 원할 것입니다. 거기에는 이의가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기에 피난 와 가지고 한국에서 문제를 많이 일으켰습니다. 그러니 정부기관에서 '통일교회에서 통지부장은 왜 만들고 반지부장은 왜 만들어?' 하고 야단하는 거예요. 그게 나를 위해 만들어요? 암만 야단해 봐라 이거예요, 누가 물러가나. 내가 물러가게 안 돼 있다구요. 아무리 핍박을 하더라도 핍박한 너희들이 물러가면 물러갔지 나는 물러가지 않아요. 핍박받으면 받을수록 나는 반드시 중심에 들어가는 거예요. 또, 그렇게 하는 일은 모든 우주가 협조를 합니다, 우주가. 밤이나 낮이나 우주의 원소는 그런 환경을 찾아서 돌고 있다는 거예요. 어디에 그런 운세만 있으면 세계 운세가 전부 다 모여 가지고 휙 돈다는 거예요.

그건 뭐냐 하면, 지구의 표면에 공기가 있잖아요, 공기가? 공기가 저기압이 될 때는 우주적인 모든 고기압이 전부 다 보충하려고 '전진!' 명령을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거 태풍이 그래요, 태풍. 태풍 불 때 야단하지요? 그게 뭐냐 하면, 어떤 한 면에 공기가 결합돼 있으니 결합된 그 세계를 보충하기 위한 작용이 태풍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건 누가 그러라고 그래요? 그건 공존의 원칙이예요. 그러니 살고 간 후에는 반드시 무엇을 남기고 가야 됩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위해 산다고, 그저 자기를 위해 눈을 부릅뜨고 싸우고 뭐 어떻고 옥닥복닥하고 살다 보니 죽을 때가 되어서는 '아이고, 내가 뭘했노!' 하는 거예요. 자기 과거를 생각하기가 끔찍하다 이거예요. '나는 쓸데없이 일생을 다 마쳤구나' 하는 거예요. 결국은 자기가 산다고 눈을 부릅뜨고 별의별 놀음을 하면서 자기 중심삼고 악을 쓰고 살아 봤는데, 나중에 죽을 운명의 시기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자기 일생은 헛된 일생이었다는 결론이 난다 이거예요.

그러나 돌아보게 될 때 '나는 일생을 부모를 위해서 살았다' 할 때는 그야말로 '아멘'이예요. 또, 생각하게 될 때 '나는 자식을 위해서 살았구만. 위하는 데 있어서는 어머니들 가운데 빠지지 않고 보다 차원 높은 자리에 섰구만' 하면 그것도 '아멘'이예요. 또, 그다음에는 남편을 위해서 살았다 할 때 그것도 '아멘'이예요. 그 가정뿐만이 아니고 사회를 위해서, '우리 가정은 사회를 위해서 살려고 하는 것이다' 하는 그 가정은 불행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불행한 것 같지만 그 사회는 반드시 보다 위하는 것을 중심삼고 열매맺히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씨앗이라는 것은 무엇이 만드느냐? 보다 깊은 뿌리와 연결된 높을 수 있는 숭고한 순이 연결돼 가지고 진액을 전부 다 보급받을 수 있는 데에서 참된 열매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중간 가지, 중간 뿌리에서 오는 진액만으로 참된 열매가 될 수 없고, 저 꼭대기의 순과 저 깊은 뿌리의 끝을 통할 수 있는 진액의 영양분을 가질 때 그 주위에 있는 모든 작은 가지와 작은 뿌리는 자연히 하나되는 겁니다. 원만한 씨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를 놓고 가만히 생각해 볼 때 통일교회 역사가 뭐냐? '통일교회 역사는 통일교회 교인을 위해서 사는 역사였다' 그러면 '아푸― 아푸―' 이럽니다. 그런 통일교회는 이 세계에서 제거돼야 돼요. 그렇지만 세계를 위해 사는 역사였다 할 때는 이 세계에서 전부 다 통일교회를 제거하려고 아무리 밀치더라도 한 자리 더 가운데로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때리면 이 가운데 들어오고 이렇게 때리면 이 가운데 들어오고 점점 중앙선으로,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틀림없는 중앙선에 들어온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