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을 알지 못하고는 잘못된 결과를 해결할 수 없어

그렇게 되었더라면, 그 하나님은 누구냐? 바로 우리 아버지입니다. 내가 누구냐 할 때는 마음과 몸이 하나된 나를 말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아담 해와가 누구냐 하면 우리 인류시조임과 동시에 하나님의 몸이다 이거예요. 이 하나님의 몸은 누구를 닮았느냐 하면 완전히 하나님의 마음을 닮았습니다. 하나님을 닮은 외적인 몸이었습니다. 고린도 전서에서 '우리의 육신,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 한 것과 마찬가지예요. 우리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거예요.

성전은 어떠한 성전이냐? 예배당에서 강대상을 앞에 놓고 교인들이 모여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전이 아니예요. 교훈적 성전이 아니예요. 무슨 지도, 외적인 지도체제를 갖추어 가지고 통솔하기 위한 방향성을 가르쳐 주는 성전이 아닙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성전이 되어야 됩니다. 이것을 역사 이래 지금까지 그 누구도 몰랐다는 거예요.

지금 기성 기독교인은 하나님은 창조주고 인간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창조주는 지극히 신성한 것, 피조물은 지극히 악한 것이라고 규정을 짓습니다. 이 모든 사실의 근본을 확실히 모르기 때문에, 그 오류된 신학설이 나와 가지고 오늘날 기독교 역사가 딴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을 우리는 직시하고 있습니다. 끝날에 있어서 이와 같이 근본을 모르게 되면, 그 근본을 알지 못하고는 그 과정의 그릇됨을 시정할 수 없고, 과정의 그릇된 것을 모르고는 결과의 그릇된 자체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이 세계에 살고 있는 모든 인류는 결과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의 세계에 살고 있는 인류 전체는 이미 혼돈, 혼란 가운데 서 있습니다. 이걸 그 누구도, 어떤 종교라든가, 어떤 국가라든가, 어떠한 주의가 수습해 가지고 '이렇게 가야 된다' 하는 어떤 정립된 그 기준에서 하나의 원칙을 중심삼고 가야 할 방향성을 잡아 주지 못하게 되는 것도 그 원인과 과정에 미확실한 역사성을 남기고 왔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원인적 역사의 기반, 과정적 역사의 기반, 기원을 확실히 깨쳐야 됩니다. 그 기원이 확실함으로 말미암아 그걸 비준삼아 가지고 현대의 오류가 얼마만한 오류였다는 사실을 측정할 수밖에 없다구요. 하나님이 살아 있음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통일교회를 내세워 가지고 종교의 근원, 인간의 근본문제, 이상의 근본문제를 파헤치는 것입니다. 그 근원의 핵이 어디에 있느냐? 그것은 오늘날 여러분의 마음속의 무슨 인격…. 인간이 바라는 완성의 기준보다 앞서 가지고 타락한 인류가 바라기 전에 이상하였던 본연권, 본연의 이상의 기준을 파헤치지 않고는 이 세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짊어진 사명은 지극히 섭리사적이요 역사적입니다. 이 중차대한 사명을 짊어졌다는 것을 우리는 각성해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