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하여 꼬부라졌지만 선을 추구하는 뿌리

자, 이렇게 볼 때에, 오늘날 세계를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과연 인간 세계가 어디로 가고 있느냐 이거예요. 인간의 뿌리, 이 뿌리가 어디에 있느냐? 이걸 모르고 있다구요. 뿌리가 동에서 뻗었는지, 서에서 뻗었는지, 남에서 뻗었는지, 그렇지 않으면 북에서 뻗었는지 어디서 뻗었는지 그 뿌리의 방향을 모르고 있다구요. 뿌리, 그 뿌리가 어떻게 돼 있느냐? 그 뿌리가 바른 뿌리냐, 꼬부라진 뿌리냐? 이게 문제예요.

그리고 줄기 자체가 자라 나가는 데 있어서 곧게 자라고 있느냐, 제멋대로 자라고 있느냐? 아무리 곧은 뿌리를 갖고 줄기가 바르게 자란다 해도 그 순까지도…. 이 순이 문제예요. 언제나 문제가 순이예요. 그 순이 잘 자라고 있느냐 이거예요.

자,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 세계를 바라볼 때, '도대체 인간의 뿌리가 어디에 있느냐?' 하고 뿌리를 생각하고 뿌리를 사랑하고 뿌리를 찾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늘 아침에 여기에 참석하신 여러분들도 뿌리를 더듬어 나가야 되는 거예요. 뿌리 가운데에는 나쁜 뿌리, 좋은 뿌리가 있습니다. 우리 조상이 있다면 그 조상이 선한 조상이냐, 나쁜 조상이냐 이거예요.

종교적으로 볼 때 인간의 시조가 타락했다고 한다면, 타락했다면 나쁜 조상이고 나쁜 조상이라면 꼬부라진 것이다 이거예요. 어떤 선을 중심삼고 표준적인 그 형에 일치되지 못하고 거기에 반대되는 노선을 취했다는 사실이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뿌리가 꼬부라졌다, 뿌리가 틀렸다 할 때, 이것이 바로 뻗을래야 바로 뻗을 수 없어서 꼬부라졌다면 꼬부라진 형을 향해서 줄기가 뻗고 순도 거기에 따라서 뻗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나 인간은 어디까지나….

이 나무로 말하면 나무는 어디까지나 태양 빛을 따라 가지고 곧게 자라려고 하는 그런 본질이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게 꼬부라졌다가도 왔다갔다하면서 그대로 잡아끄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도 자기는 모르지만, 뿌리는 모르지만, 자라는 그 근원은 모르지만 오늘날 내가 바라는 양심은, 식물이 태양 빛을 생명력으로 흡수하기를 바라듯이 선을 추구하고 좋은 걸 추구한다고 야단하며 자기 멋대로의 생활을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래에 있어야 할 그 뿌리의 자리, 그 자리와 오늘날 내가 있는 이 자리는 어떤 관계가 돼 있느냐? 만약에 뿌리가 동쪽에 있는데 이것이 서쪽에 있으면 이것은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소용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소용가치가 없는 거라구요. 뿌리가 있다면 그 뿌리를 중심삼아 가지고 순이 그 뿌리와 수직선상에 있어야 할 것인데, 그 순이 동쪽으로 가든가 서쪽으로 가든가 남쪽으로 가든가 북쪽으로 가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순을 중심삼고 뿌리가 이렇게 직선상에 선 나무는 동쪽의 가지도 정상적인 가지요, 남쪽의 가지 혹은 북쪽, 서쪽의 가지도 정상적인 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이 순이 자랄 수 있게끔 모든 영양보급과 곧은 뿌리로 자랄 수 있게끔 영양 보급에 필요한 환경적 여건을 조성해 주는 것이 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쪽 가지나 서쪽 가지나 남쪽 가지나 그 순의 안팎을 중심삼고 아무리 뻗었다 하더라도 바르면 그것은 자기가 정당한 존재의 가치를 지닐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에 순이 찌그러졌다 할 때는 거 전부 다, 아무리 동서남북으로 가지가 뻗었다 하더라도 그 가지는 효용가치가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