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깊은 사랑을 원하는 인간의 본질

이 모든 전부가 '좋다!' 할 수 있는 그러한 생활이 어떤 생활이예요? 사랑의 생활 외에는 없어요. 사랑 갖고 부모를 대할 때 '이놈의 자식아' 그래요? '오냐!' 언제든, 밤이든 낮이든 '오냐, 지금 왔느냐? 왜 지금 오노, 더 빨리 오지' 이러는 거예요. 사랑 외의 것 가지고 그게 가능해요? 안 된다는 거예요. 영원히, 영원히 그걸 되풀이하더라도 싫지 않다 이거예요, 영원히 되풀이해도. 천번 만번 되풀이하고 영원히 돌더라도 싫지 않다는 거예요. '또 돌자, 또 돌자, 또 돌자!' 하는 거예요. 아이들이 시소놀이를 하듯이 말이예요. '너 올라갔구나. 나 내려갈께' 이렇게 내려갔다 올라갔다 하듯이 돌며 사는 거예요.

할아버지가 왜 손자를 사랑해요? 사실은 늙어 죽게 된 할아버지가 아들 낳았을 때보다도 손자 낳았을 때 더 기뻐한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소원이 그래요. 아담 해와를 지었을 때보다도…. 손자 바라다가 하나님이 '꽝' 했지요? 손자를 못 보고 망해 떨어졌다 이거예요. 그게 왜 그러냐 하는 것이 문제예요. 그것이 상·중·하가 있어야 도는 거예요, 여기 하나에. 그렇기 때문에 3단계라는 지극히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언제든지 성경역사에서 둘째가 문제가 됐어요. 둘째가 문제라구요.

가인 아벨에 있어서 둘쨋번, 아담 노아에 있어서 둘쨋번, 아브라함 이삭에 있어서 둘쨋번, 에서 야곱에 있어서 둘쨋번, 이 둘쨋번이 문제 되는 거예요. 둘쨋번이 뭐예요? 사탄은 둘쨋번을 노리는 거예요. 왜? 중앙이예요, 중앙. 중앙선에 있기 때문에. 요걸 중심삼고 빼앗기 싸움 하는 거라구요. 그 중앙선에 서 있었던 것이 뭐냐? 그것이 사랑이예요. 그 사랑의 본질적 내용을 희미하게 약화시키기 위한 놀음, 그러니까 사랑 반대의 길만 확장시켜 놓으면 영원히 사탄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알알이 전부 다 갈라놓는 거예요. 전부 다 갈라놨어요.

'어머니 아버지, 너하고 내가 무슨 상관 있어!' 하는 이놈의 자식…. '어머니 아버지가 나를 뭐 생각해서 낳았어? 자기들 좋아하다 낳았지' 해 가지고 전부 다 갈라놓아요, 전부 다. 사탄이, 사탄이 전부 다 갈라놓아요. 이 중앙을 중심삼고 전부 다 멀리해 놓는 거예요. 사랑은 무슨 사랑? 자기 중심 사랑. 이게 돌겠어요? 하나님이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인간과 만물이 돌 수 없다는 거예요. 그걸 총합해야 합니다.

하나의 뿌리도 원형을 이루어요, 원형. 이렇게 크는 거예요. 뿌리, 순이 뭐냐? 횡적 센터를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여기 딱 돼 있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은 우주를 품으려고 해요, 우주를. 우주를 품으려고 합니다. 여러분도 우주적인 인격자가 되고 싶어하지요?

그래서 원형으로 넓혀야 돼요. '더 넓히겠다' 해야 돼요. 넓혀 가야 내 갈 길이 있는 거예요. 어디든 통한다는 거예요. 여기서 통해서는 안 된다구요. 원만히 넓게, 저 세계 끝까지 가고 싶어하는 거예요. '아이고, 하늘 높이까지. 아! 바다 깊이까지' 이렇게 다 가고 싶다구요. 거기 가서야 도는 것입니다. 그 끝의 자리에 가게 되면 돈다는 거예요. 끝에 가면 돌아가는 거예요. 안 그래요? 끝에 가면 도는 길이 생기는 거예요. 또, 높이 올라가도 도는 길이 생깁니다. 또 깊이, 무한히 깊이 깊이 가면 도는 길이 생깁니다. 악마는 중앙을 격리시키려고 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