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를 어디에 내릴 것인가

벌써 한 시간이 되었구만, 오늘은 얘기 길게 안 하려고 그랬는데. 자, 이제 알았어요? 그래 여러분 결정을 했어요? 말하라구요. 나는 이것을 찾은 자리에서 변치 않는다는 결정을 지었느냐? 언제나 팔려 다닐 수 있는 사람이냐 이거예요. 부평초, 뿌리 없는 나무는 죽어 버리는 거예요. 뿌리 없는 풀도 죽어 버려요.

그 뿌리를 어디다 박을 것이냐? 선한 뿌리를 남길 것이냐, 악하고 병들어 가지고 죽을 수밖에 없는, 뽑아 버릴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 나를 결정할 것이냐? 어떤 거예요? 이게 문제입니다. 아무리 미래의 세계가 좋은 세계가 되었더라도 내가 병나서 곯아 떨어지게 되면 그 미래의 세계가 나와 무슨 관계가 있어요. 그 행복의 세계가 나를 기다려 주지 않아요. 지나가 버리고 말아요?

그래, 성공하는 사람은 일대 충격을 받고도 그 일대 충격을 제껴 버리고 그걸 박찰 수 있는 자리에서 뒤돌아 서 가지고 새로이 결심하는 사람이예요. 그렇게 될 때는 다른 면에 가서 성공하지 그 길을 따라가서 성공 안 하는 거예요. 결심이라는 것은 실패한 자리에서 그 길 따라가려고 하는 게 아니예요. 실패한 그 길을 따라가는 자리에서 그것을 계속적으로 연결시키는 놀음 할 것을 결심하지 않는다구요. 실패한 자리에서 180도 다른, 그걸 박찬 그 반작용적 힘을 이용해서 도약해 가지고 방향을 달리하는 데서 성공이 벌어지는 거라구요. 달리할 수 있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거예요. 내리지 못하게 되면 그 사람은 거기서 꺼져 버리는 거라구요.

아무리 세계의 사연을 구하고 동정을 구하더라도 그 사연과 동정은 통하지 않는다구요. 자기가 결정해야지요. 결정지어 가지고 오를 수 있는 방향에 들어오게 되면 하늘편 운세는 그리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 힘이 그리로 흘러가는 거라구요. 태풍이 불어도 태풍의 방향이 있는 거예요. 태풍이 정지될 때까지는 그 방향으로 전부 다 흘러가는 거예요. 그 권으로 흘러가지 않을 때는 그걸 박차고 그 이상의 결심을 해 가지고 도약할 수 있는 결정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핍박의 길이었다는 것입니다. 출발에서부터 환영이 아니었어요. 그게 멋지다는 것입니다. 출발에서부터 환영 안 한 그것이 멋지다 이거예요. 출발부터 환영 안 하니 끝에도 환영 안 해요. 환영 안 하는 곳이 어디냐? 악한 세계예요. 선한 세계가 환영 안 하면 칼을 갈 터인데 악한 세계가 환영하지 않고 끝에도 악한 세계가 환영하지 않으니 그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기대 위에서 생각이 없지 않은 레버런 문 같은 사람도 전부 다 처음부터 대한민국 3천만이 반대하고 세상에서도 요사스러운…. 그때는 3천만이라고 그랬는데 이제는 4천만이 되었어요, 한 40년 되니까 말이예요. 하나님도 참 작전을 잘하셨다구요. 환영하면 내가 따라갈 수 있는 가능성이 많거든요. 들이제기니까 분해서라도 안 가는 거예요. 그렇다구요. 그게 하늘의 작전인 거예요. 그래 반대, 반대, 반대받으면서 통일교회는 후퇴해 나왔나요, 발전해 나왔나요? 「발전해 나왔습니다」(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