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준 은사를 유지해 나가려면

그러면 여러분들 은혜의 생활을 하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그 은혜로운 생활을 어떻게 유지해 나가느냐? 이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기쁠 때에는 그 기쁨을 중심삼고 거기에 중심 되었던 그 기쁨으로 어떻게 어려운 환경을 커버해 나갈 수 있느냐? 이것이 지극히 중요한 문제라구요.

참 은사의 자리에서 좋았는데 거기에 반대되는 상황에 부딪치게 될 때 그 반대되는 상황이 지금 은사의 환경으로 맺어진 모든 것을 취소시켜 버리면 안 된다 이거예요. 그 은사의 환경이 반대될 수 있는 환경을 맞이해 가지고 커버해 나가야 됩니다. 감사의 마음, 은사의 마음이 이걸 커버하고도 제1에서부터 제2를 커버하고 제3의 과정에 올라갈 때 은사가 남아져야지, 은사가 아니고 슬픔이 남아 맺어지면 이건 되돌아가게 마련입니다. 후퇴밖에 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앞으로 가던 것이 뒤로 돌아갈 수 없어요. 그것은 반드시 탈락해 버려야 됩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신앙생활에 있어서 제일 문제 되는 것이 습관화다 이겁니다, 습관화. '통일교회는 그저 일요일 아침이 되면 경배식이 있고 열 시가 되면 이렇게 와서 모이는 것이다. 그저 그렇게 또 오누만. 그것이 그렇게 순환해 가는 거야. 아이고 이게 없으면 좋겠는데, 안 하면 좋겠는데, 안 그러면 좋겠는데, 왜 이래야 돼요, 이게?' 그러는 사람들은 거기서 다시 생각해야 됩니다, 내가 후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은사의 이런 모든 날들이 제정된 것은 우리가 발전할 수 있는 하나의 동기를 촉구하기 위한 것이예요. 그것이 짐이 되고 자기가 후퇴할 수 있는 조건의 날들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새로운 우리를 추구하는 데는 이것이 절대 필요하다는 거예요.

오늘날에 있어서 자신이 후퇴의 일로에 있느냐, 전진의 일로에 놓여 있느냐 하는 것을 확실히 캐치해 가지고 나는 전진하고 있다….

과거의 신앙생활을 보면, 통일교회에 맨 처음에 들어와서 전부 다 날듯, 천하가 다 내 마음대로 될 듯했던 그런 은사의 한때가 있었으면 그 은사의 마음을 어디에서나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구요. 만일에 올라간 그때가 있다면 반드시 내려갈 때도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구약역사를 보면 은사의 시대가 있었으면 반드시 핍박의 시대가 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핍박이란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구요. 여러분, 그걸 알아야 돼요. 은사를 주기 위한 하늘의 하나의 작전이라구요.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된다구요. 큰 핍박이 올 때에 그 핍박에 대해서 내가 후퇴하면 이것은 큰 은사의 자리에 절대 못 나가는 것입니다. 큰 은사의 자리에 나가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내가 받은 은사의 기준을 중심삼고 큰 핍박이 오는 것을 대해 가지고 후퇴하지 않고 넘어가야 됩니다. 그걸 밀고 넘어가게 되면 밀고 넘어간 그것으로 말미암아 다음에 찾아오는 은사는 더 큰 은사로 찾아온다구요.

예를 들어 말하면 고개를 한 고개를 넘었는데 한 고개를 넘고 나면 가고 싶은 의욕, 넘을 수 있는 능력 자체를 중심삼고 제2의 고개를 여유만만하게 넘어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 고개가 작은 고개가 아니라 큰 고개라면, 큰 고개라도 무난히 넘을 수 있다면, 반드시 그것을 넘은 그 후에는 또 더 큰 고개도 넘을 수 있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어떤 시련이 있더라도 은사의 생활을 중심삼아 가지고 발전해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고개를 넘고 나서 다음에 찾아오는 고개를 향해서 전진해야 될 때 기쁨의 은사의 충동이 거기서 소모돼 가지고 '아이고, 힘들어! 아이고 이런 고개를 넘나들지 않았던 옛날 그때가 좋았구나!' 하게 되면 안 되는 거예요. 이렇게 볼 때, 통일교회가 이제 며칠만 있으면, 5월 1일이 되면 창립 32주년이 되는데 창립 이후의 통일교회가 걸어온 길은 핍박의 길이었다 이거예요. 산을 넘었다고 한다면 히말라야 산정을 넘어오는 그런 과정을 거쳐 왔다구요. 이제는 어느 정도 다 넘었어요. 이제는 다 넘었다구요. 통일교회를 핍박할 수 있는 환경이 전부 다 갔어요. 밤과 같은 그런 절기가 지나갔다구요. 새로운 아침 시대가 됐어요.

밤 절기를 맞이할 때는 방향을 몰라요. 방향을 모르고 신음하고 고통을 느꼈지마는 그 밤이 지나가게 되어 아침이 되면 방향을 알 수 있는 거라구요. 동쪽이 저기고 남쪽이 여기고 북쪽이 저기로구나, 서쪽이 어디로구나, 그리고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어떤 곳이다 하는 걸 알게 된다는 거예요.

그런 밤이 지나가고 아침이 되면 밤에 지내던 그 모양을 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아침이 되면 이제 활동을 하고 딴 일을 하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활동하는 그 환경이 달라져야 된다 이거예요. 밤과 같은 그런 입장의 환경이 되어서는 안 되는 거라구요. 다른 환경이니 다른 환경을 중심삼고, 소위 우리 말로 말하면 수수작용을 해 가지고 잘 주고 잘 받아서 자체의 역량을 충만히 보충시킬 수 있는 그런 아침으로 맞는 사람은 영광스러울 수 있는 낮을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광스러울 수 있는 낮을 맞이했다면 저녁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저녁이 되면 또 내려가요. 내려가는데 어젯날에 그 내려가는 밤을 맞던 거와 다르다는 거예요. 은사가 따라가요. 은사가 가해 준 저녁을 맞아 가지고 그 밤의 시련과정에서 은사를 가져 가지고 어제와 같이 어려운 자리에 서지 않고 무난히 밤을 지낼 수 있는 환경을 거쳐 나가는 것입니다. 밤이라도 어제와 같은 밤을 맞아서는 안 되는 거예요.

또 그렇게 되면 그 이튿날 제3일이 찾아오는데, 그 아침도 역시 밤을 통하는 거기에서 새로운 아침의 은사를 가해 가지고 어제보다도 오늘에 영광스러운 낮을 맞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신앙생활에서 가는 길이 아니겠느냐 이겁니다. 그러니 절대 정지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절대 같은 모양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