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망하더라도 배반자의 길을 가지 말라

선생님은 형무소에도 많이 갔기 때문에 사형수들하고도 많이 살아 봤다구요. 보통 죄수들은, 면회 오면 이름을 부르니 이름 부르기를 참 귀가 늘어지도록 기다리고 있다고요. 이름을 부르게 되면 나가서 면회를 하든가 외부의 소식, 새로운 소식이 생기기 때문에 자기 사건에 좋을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름을 불러서 나가야 조서도 빨리 꾸미고 일이 빨리 처리된다구요. 그래서 이름 불리우기를 바란다구요. 그렇지만 사형수들은 이름만 부르면 새파래져요. 제일 무서운 게 이름 부르는 거예요. 이름만 부르면 그저 순식간에 달라진다구요. 왜? 그것이 마지막, 형장으로 가는 그 시간일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보게 되면, 사형수들을 보게 된다면 '참 내가 아무때에 그 짓을, 그 일을 안 했으면 이렇게 안 될 텐데…' 하고 언제나 생각하는 거예요. 그것을 벗어날 수 없어요. 죽을 때까지 벗어날 수 없는 거예요. 마찬가지예요. 여러분이 지옥에 가게 되면, 지옥을 왜 찾아가느냐 하면 지옥에 보내 주는 것이 아니예요. 자기가 자기 같은 동료들과 있어 가지고 자기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을 잊어버릴 수 있는 환경이 지옥이예요. 자기 같은 사람끼리 다 있으니까. 서로가 고통받는 걸 볼 때 '너도 고통받으니 나도 할 수 없이 고통받는다' 하고, 그래도 위안이라도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렇지만 천국 가게 되면 가책이 스며들어요. 못 간다는 거예요, 못 간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통일교회를 한번 믿다가 나갔던 사람들이 들어와서 아무리 자기가 일을 잘하더라도 주위의 사람들이 보기를 '아, 저 녀석은 지금까지 나가 있다가 다시 나와서 열심히 일한다. 뭐 어떻고 어떻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전부 다 자아비판하는 자극적인 모든 여건으로 생각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편하려야 편할 수 없어요. '왜 내가 나갔더랬노! 왜 나갔던고! 왜 내가 그때 실수를 했을까?' 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배반자의 길을 가지 말라는 거예요.

같이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배반자의 길을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망하면 영계에 가 가지고 좋은 입장에 서는 거예요. 배반자가 안 됐으면 그 배반자가 안 된 그룹에서 앞으로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지만, 배반자는 발전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언제나 가로막고 있다구요. 그것을 소화해 가지고 넘어갈 수 있는 힘이 자기에게 없는 거예요. 그러니 나라에 대한 배반자라든가…. 더 큰 목적을 위한 입장에서 따라가야 한다는 결의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배반하게 될 때는 거기에 큰 목적이 나를 언제나 심판하는 자리에서 책임 추궁하는 거예요. 거기서 벗어날 길이 없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