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장에 있어서 언제든지 주체적 입장에 서자

오늘날 통일교회의 선생님이 종교 단체의 지도자로서 한국이 무슨 필요 있어요? 한국의 사상문제니 남북문제니, 국가 비상사태에 접어드는 이런 환경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 이거예요.

헤어나는 하나의 길은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은 한국관이 있어야 돼요. 이것을 내가 수습하지 않으면…. 내적인 주체의 자리라는 것은 외적 주체의 자리를 보호해 줄 수 있어야 됩니다. 내적인 주체의 자리는 사탄편에 있으니 들이치는 거예요. 반대하는 그 반대를 극복해야 돼요. 열 번 친 자는 열 번 맞은 자 앞에 빌어야 돼요. 잘못을 알게 될 때 친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이 사과해야 돼요. 그렇게 보는 거예요. 우리나라의 주권자들도 통일교회를 반대했지만 반대한 것이 잘못됐다는 걸 알게 될 때는….

어차피 역사는 귀결되어 나오는 거예요. 그렇게 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댄버리에 있으면서 미국을 구해 주는 거예요. 지금 여기 와서도 일하고 있는 것을 뭐 정부가 후원했나요? 비판적인 입장에 서 있는 나라가 원치 않는 길을 걸어가려면 그 환경을 복귀할 수 있는 길을 가야 됩니다. 주체가 못 됐으니 상대적 기준에서 주체를 보호할 수 있는 자리에 나가 그 주체를 따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는 교체돼 나간다 이거예요.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런 사상을 가지고 환경부터 정리할 줄 알아야 돼요. 알겠어요? 「예」 불평해도 안 되고 다다다다 해도 안 되겠어요. '왜 이래, 이 자식아!' 하면 그거 안 되는 거예요. 소화하는 거예요. '저 사람 앞에 내가 주체가 되겠다. 내가 주체가 되겠다'는 마음을 갖고 성실하게 전부 소화해야 되는 거예요.

어떤 부처든지 이런 자리를 감당하면 그 환경에서 추방당하지 않아요. 이 환경을 수습하고 자꾸 올라가는 거예요. 밤이나 낮이나 올라가는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는 40여 년 동안 이때까지 시궁창에서부터 핍박받아 왔어요. 핍박받으며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위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구요. 움직이지 않으면 올라가지 못해요. 그러니까 움직이는 거예요. 그러려고 하니 선생님이 모든 세상을 이렇게 수습해 나오는 거예요. 이것이 공식입니다. 이건 원칙이예요. 천지의 창조원칙이 이렇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이상적 구성은 상대권을 만드는 거예요. 그 환경을 만들려면 반드시 아담 해와를 중심삼은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잘못된 것을 수습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은 주체와 대상이 완전히 하나되는 사랑의 이념권 내에는 어김이 없어요.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가는, 이런 길을 찾아갈 수 있는 우리는 놀라운 철학을 갖고 있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실천생활에 있어서 낙오자가 될 수 없습니다. 알겠어요? 「예」 아무리 여자들이 입은 옷은 단조롭더라도 그 마음은 무한한 희망 가운데 벅차 있어야 됩니다.

내가 생활의 본이 되어야 해요. 내 생활에 있어서 실천자로서 당당하게 세계와 더불어 저울질하면서 그 세계의 사방에, 동쪽에 있는 사람이 서쪽에 있는 사람을 이해하면서 가는데 맨 저변에서 중부, 상부로 올라가는 거예요. 저 정상에 올라가게 되면 동서남북이 내 품에 품긴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새로운 세계를 위해서 하늘나라로 올라가지요. 높은 데 올라가는 거예요. 자기 틈바구니 밑에서 허덕이는 사람은 아무리 실천생활을 했댔자 그 무대를 뚫고 올라갈 수 없어요. 우리는 벌써 사회적 의미에서 천주이상, 천주복귀라는 이상, 심정적으로 이 모든 것을 포괄하고 소화하겠다는 이념권 내에 있느니만큼 외롭다고 낙심할 수 없고 어렵다고 거기서 후퇴할 수 없는 거예요.

그런 길이 우리의 길인 것을 알고 실천장에 있어서 언제든지 주체적 입장을 대행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책임자가 대신 자꾸 시키는 거예요. 그런다면 열 사람 가운데 그가 제2의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라구요.

하나님의 뜻으로 볼 때 하나님이 주체자면 이 천지 가운데서, 이 세계의 40억 인류 가운데서 누가 하나님의 제1 대상이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마찬가지예요. 마찬가지 이치라구요. 하나님도 그러고 남을 수 있다 이거예요. 이 우주 창조의 환경이 어느 주체자로 되어 있어 가지고 상대적 평균 기준, 밸런스 기준을 취해 나온 상대적 길로 가는 데 있어서 그런 사람이 누가 있느냐 이거예요.

그런 사람이 없고 그럴 때는 하나님이 세계의 자리로, 세계의 자리에서 그것이 없게 될 때는 국가의 자리로, 국가의 자리도 없게 될 때는 민족으로 내려오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복귀섭리에 있어서 종의 자리에서 종의 종의 자리까지 내려왔다는 것입니다. 그런 논리가 되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주체자라는 기반이 그 밸런스 특유의 새로운 환경을 요소로 해 가지고 쌓아 올려서 지금까지 올라온 거라고 보는 거예요. 그런 가운데서 세계에 40억 인류가 있지만, 그 환경 가운데서 인류 전체 앞에 있어서 그 환경의 수습의 주체성을 지닌 것은 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나를 떠나서는 일을 못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거라구요. 그거 이론적이지요? 「예」

그렇게 딱 하면 세계 가운데서 그렇게 나가는 거예요. 나의 일생은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비록 내가 어려운 길을 가더라도 그 길을 가면 하나님이 내 뒤따라 오면서 고개를 넘길 바라는 거예요. 저 고개를 넘게 될 때에 하나님이 보는 거예요. 왜? 하나님은 전부 다 상대의 수평기준을 생각하기 때문이예요. 수평기준에 올라오기 전에는 구원 안 하는 거예요. 하늘의 역사가 그렇습니다. '야, 나는 너를 기다렸다' 그런 말을 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것이 창조이상이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