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자리에서 주체자가 되라

그래, 선생님 같은 사람은 종교 지도자고 말이예요, 선악에 대한 개념을 확실히 알고는 있지마는 어떤 단체, 바(bar;술집) 같은 데 가서 춤추고 그 놀음 하는 것을 보고 '이게 뭐야?' 하지 않습니다. 나 그런 놀음 안 한다는 거예요.

그런 관계의 환경을 수습하여 주체 대상이 하나되어야 한다구요. 악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그 주체 앞에 그 이상 될 수 있는 상대적 기준을 세워야 돼요. 그것을 뭐 하려고 세우느냐? 이렇게 해 놓으면 자연히 모든 사람보다도 내가 더 낫기 때문에 나한테 의논하는 거예요. 의논하는데 그가 열만큼 알 때 내가 열 다섯만큼 안다면 나한테 완전히 굴복당하는 거예요. 환경의 수습 방법은 반드시 주체와 대상 관계의 인연을 통해서 수습되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불교를 보더라도 불교 문화권, 불교는 고대 문명권 내에 있어서 그 환경권 내의 주체 대상 관계를 중심삼아 인도를 수습하고 새로운 이상을 제시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 가운데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주체인 부처님의 사상과 불교 신자에 있어서 평균 기준이 있듯이, 우리가 언제나 그들과 하나 안 되면 망하는 거예요. 그거 재미있지요? 무엇이나 다 그렇다는 거예요. 어느 세계에나 이 원칙이 있어요. 크고 작은 차이일 뿐이지 이 공식이라는 것, 이 공법이라는 것은 어디든지 있어요. 영계에 가도 마찬가지예요. 거기에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는 사랑의 주체 대상 관계, 사랑이라는 시공권 내에서 이것을 평균적으로 이루지 않고는 이상적 사랑이 나올 수 없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척 가서 몇 년 일해 가지고 사장을 내 말 듣게 만들겠다고 한다면 사장한테 가서 이런 것을 그 환경에서 보여야 돼요. 상대권 내에서 최고의 자리라는 것은 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사장이 하지 못한 것을 내가 하게 되면 그 회사의 상속자가 되는 거예요. 그렇게 상속되어 나간다구요.

이렇게 볼 때에 실천생활에 있어서 그런 게 없는 사람은 안 된다구요. 환경이 좀 다르다고 해서 나하고 상관없다는 사람은 그 환경 이상의 인정을 못 받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농촌에 가면 농민이 돼요. 그리고 어디 가든지…. 운동장에서 운동하는 사람과도 친구가 되는 거예요. 내가 운동하는 것에 대해서는 모르지요. 모르면 모르는 입장에서 잘 배우는 거예요. 그의 말을 잘 들어주는 거예요. 내가 행동으로는 못 하더라도 그 마음은 맞출 수 있는 거예요.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환경을 확대시킬 수 있는 거예요. 환경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이러한 훈련이 필요하다구요. 농촌에 가면 농촌에서도 그렇게 해야 돼요. 제일 잘하는 영농가가 있으면 그 영농가에게 딱 찾아가 가지고 제일 낮은 자리에 서서, 아무도 모르는 자리에 서서 해야 됩니다. 농촌의 할아버지가, 농사 잘 짓는 사람들이 많지마는 자기를 찾아와서 의논하게 되면 벌써 심정적으로 지고 가기 때문에 그런 배경을 가지고 가면 농촌에서 새로운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나는 농사에 대해서 모르더라도 거기서 그 할아버지가 하는 운동을 상대방에 대해 실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그렇게 발전하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혼자가 아니예요. 혼자가 아닙니다. 절대 아니라구요. 이 환경에서는 얼마든지 주체가 된다고요. 생활철학, 철학적으로 딱 해놓으면 이 개념을 공식화시켜 버린다는 거예요. 언제나 말이예요. 모든 것이 그렇잖아요, 모든 것이. 내가 말하는 것도 주체 대상, 이 관계가 되어 가지고 말이 성립되지 그렇지 않으면 이것이 손해를 보는 거예요. 나의 손해인 동시에 여러분의 손해예요. 시간상 서로 손해이기 때문에 이것은 파탄이 벌어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앞으로 세계를 지도한다는 것은 간단한 것입니다. 이 원칙 가지고는…. 어디 가나, 미국 가면 미국에서 내가 반대를 받지마는 말이예요, 반대를 받는 자리에 있어서 미국 대통령이 제일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다 이것 때문입니다. 이게 무서운 사상이예요. 통일교인들은 어디에 가든지 이 사상을 가지고 주체와 하나 되어야 되고 그 이상까지 나가야 됩니다.

그 주체자 되는 사람이 자기 회사, 이 부처밖에 모르거든요. 그래, 부처밖에 모르는 사람은 전체 책임자가 못 된다는 거예요. 우리는 그 이상의 자료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무한히 발전할 수 있는 거예요. 통일교회는 그런 소성을 갖고 있는 거예요. 이게 놀라운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개인은 가정을 위해야 돼요. 가정을 위하는 데는 개인을 버려야 해요. 개인이 가정을 위해 가정 주체 앞에 완전히…. 위한다는 게 뭐냐 하면 하나되겠다는 거예요. 가정은 종족을 위해서 종족 주체 앞에 상대적 자리에서 빨리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벌써 그런 사상적인 것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