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랑만이 모든 부족하고 결여된 것을 보충하고도 남아

자, 이젠 대개 감이 잡혔으리라 봐요. 그러면 오늘날 문이라는 사람이 세계 도처에서 반대를 받으며―지금까지 그래요―피해 다니고 별의별 놀음 하고 쫓겨 다니고 다 했는데 종국에 가 가지고는, 결국에 가 가지고는 오늘날 세계적인 발판을 어떻게 닦았느냐? 참다운 사랑의 길은…. 하나님이 창조할 때에 자기 자체를 전부 다 투입한 거예요. 위해서 투입한 거예요. 사랑 때문에 모두를 투입했어요. 이걸 알아야 돼요. 위해서, 위해서 상대를 지었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위해서 존재하는 입장에 선 거예요. 그러니까 놀랍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영원하신 사랑입니다.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부모의 사랑이 귀하다 하는 것은 천 번 사랑하고도 잊어버리기 때문이예요. 구십된 노인이 칠십된 아들 대해서 '야, 야, 너 나가서 차 주의해라' 이러는 거예요. 이렇게 칠십 난 자식에 대해서 부모가 권고를 한다는 것입니다. 구십 당년을 전부 다 매일같이 권고했지만 지칠 줄을 몰라요. 왜? 참사랑의 인연에 달려 있기 때문이예요. 매일같이 잊고 또 되풀이해도 싫지 않아요. 천년 만년 안 변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참사랑이 없어 가지고는 영생 개념을 이론적으로 찾을 길이 없다는 거예요. 사랑만이 영원한 거예요, 참사랑만이. 참사랑만이 모든 부족한 것을, 결여된 것을 보충하고 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같은 양반이 십자가에 못 박히면서 로마 병정에 대해서 복을 빈 놀라운 사실,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저들이 짓는 죄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저러니 자기를 봐서 그 죄를 탕감해 달라고 호소했던 내용이 뭐예요? 죄보다도 더 큰 사랑의 힘이 작용했다는 것입니다. 죄를 기억하기 전에 사랑이 벌써 나타났다는 거예요. 이게 위대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 통일교회는 위하는 종교입니다, 위하는 종교. 효자가 뭣입니까? 생명을 걸고, 생명을 바치면서 부모님을 위하는 것입니다. 충신이 뭐예요? 나라를 위해서 생명을 바치고, 또 더 넘어서 바치고 싶어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힘은 사랑만이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생명 가지고 안 되는 거예요.

자, 그러면 사람이 왜 태어났느냐? 결론을 짓자구요. 여러분은 여러분의 권위를 절대시하지요? 누가 조금만 무시해도 욕을 하고 대번에 복수하려고 한다는 거예요. 누가 침범하면 용서치 않아요. 절대시한다구요. 그거 왜 절대시하느냐? 여러분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나'라는 존재는 참다운 부모의 사랑의 동참자로 태어났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아야 돼요. 이걸 몰랐지요, 지금까지?

내가 누구냐? 내가 누구냐? 내가 왜 귀하냐? 나는 부모님의 사랑의 동참자예요, 동참자. 생명의 동참자가 아니예요. 사랑에 동참해 가지고 생명이 거기서 가지를 쳐 나온 거예요.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 사랑은 우주를 움직일 수 있는 모체의 원인적 사랑에 속해 있어야 되는 거예요. 절대적입니다. 그 사랑을 갖고 나올 때는 우주는 어디든지 순응해야 돼요. 그러한 본성의 권위의 사랑 기준을 중심삼고 나를 존중시하는 이 내용을 모르고 있다는 거예요. 그저 덮어놓고 '나 제일주의' 안 된다는 거예요. 부모님의 사랑은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사랑의 길을 찾아가는 길이니, 부모님의 사랑에 동참한 나는 그 하나님의 사랑 길을 밝혀 가야 할 교량이요, 디딤돌이라는 거예요. 내가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 이 길에 들어가는 것은 절대적이어야 돼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우리 같은 사람은 일생 동안, 40년 동안 핍박을 받아 왔습니다. 지치지 않았어요. 어째서? 위대한 힘을 알아요.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피곤하더라도 그 사랑의 세계를 거쳐 나오면 힘이 폭발돼요. 아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