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조화무쌍한 것

그러면 참된 사랑이 둥그냐, 납작하냐? 그것이 어떤 모양이냐? 그것은 둥근 마음을 갖고 보면 무한히 둥글고, 납작한 마음을 갖고 보면 무한히 납작하다는 거예요. 두껍게 보면 무한히 두껍고, 얇게 보면 무한히 얇다는 거예요. 그렇게 조화무쌍한 것이 사랑이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무한히 확대시킬 수 있는 가능성, 무한히 축소시켜도 그 한계선이 아직까지 무한에 미칠 수 있는 그 내용의 힘을 가질 수 있는, 작용을 할 수 있는 바탕을 지닌 것이 뭐냐? 그것이 있으면 좋겠지요, 천년 후도 전부 다 축복을 해줄 수 있고, 천년 지나간 날도 내 친구라고 좋아할 수 있는 작용을 할 수 있는 힘이?

여러분, 생각해 보라구요. 하나님이 계시지요? 「예」 하나님에게는 시간이 있겠소, 없겠소? 「없습니다」 왜 없어요? 시간이 없다면, 영원히 끝이자 영원히 시작이라는 그 말이 아니예요?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그렇게 하더라도 싫지 않을 수 있는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하나님이 안식하실 수 있는 본 바탕이 뭐냐? 그런 것이 문제가 돼요.

그것이 뭐예요? 아, 전지전능하신 능력 가지고 가능하냐? 안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지혜, 전지전능, 모름이 없는 것 가지고 안 된다는 거예요. 아무것도 안 된다는 거예요. 사랑의 힘만이 가능하다는 거예요. 하나님도 '사랑' 하면 '오냐!' 한다는 겁니다. 그 이외는 하나님께 필요하지 않다는 거예요.

아까 무엇이 어디서 출발하느냐 하고 물어 봤나요? 「영계입니다」 영계. 영계라 해서 어린 닭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뭘 말해요?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 거예요? 사후의 세계라고 대개는 말하지만, 사후의 세계가 아니예요. 왜 사후의 세계가 될 수 없느냐? 사랑과 관계돼 있는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관계돼 있는 세계이기 때문에 사후의 세계가 아니예요. 참된 사랑을 중심삼고 출발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참된 사랑의 자리에 서 있게 될 때는 지금 여기가 영계예요. 안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 위대하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제 영계가 있어 가지고 여러분이 '야야, 영계야!' 부르면 영계가 '왜 그래요?' 말할 것입니다. '너, 어디에 살고 싶어?' 물어 본다면, 그 영계가 '아, 나는 하나님의 지식의 세계에 가서 안식하겠소' 이렇게 대답하겠어요? '아, 천지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자리에 가서 살겠다'고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뭐 돈은 더더우기나, '아, 황금판에 들어가서 엎드려 자겠다'고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너 어디 살고 싶어' 할 때에 '하나님의 사랑에 살고 싶소' 이렇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에 살고 싶소'라고 영계 자체도 그러한 대답을 하게 될 때, 우리 자신들도 '그래야 되지' 하며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 영계도 하나님의 사랑하고 살고 싶다 한다면 영계를 지으신 하나님은 어디에 살고 싶겠느냐? 하나님은 어디서 살고 싶으냐? 그 영계 복판에 살고 싶어하는 겁니다. 영계 복판에 중심으로 사는 분이 하나님이라면 영계 자체가 사랑에 살겠다 하니까 영계 복판에 있고 중심에 있는 하나님도 물론 사랑의 복판에서 살고 싶어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아시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랑의 조화의 행군을 위해서 우리 천지만물을 지었다는 논리가 형성된다는 거예요. 지혜를 위해서 지으신 것도 아니요, 권력기반을 위해서 지으신 것도 아니요, 우리 인간들이 좋아하는 황금, 다이아몬드를 보고파서 지으신 것도 아닙니다. 사랑의 조화의 미궁이 아니지요. 무슨 비유를 할까요? 신비로운 궁에서 사랑에 잠겨 살기 위해서 이 천지만물을 하나님이 지었어야 그 하나님이 우리 인간의 꿈의 이상적 하나님이 될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가치는 무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