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기록되기가 어려웠던 눈물로 이어진 초창기 시대

질문 없어? 방이 좁아? 이제 1년만 지나면 마포에 우리 빌딩이 생긴다구요. 그거 한 층을 줘야겠구만. 한 층 가지고 안 되겠는데? (박수)

금년까지 책을 다 끝내라고 했는데 어떻게 하겠나? (웃음) 「저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아버님의 말씀의 뿌리가, 근래보다는 더 일찍 하신 말씀에 더 비중과 진함과 섭리적으로 요긴한 내용이 많이 들어 있는데, 아버님이 성진님 태어나시고 난 뒤에 이북 가실 때부터가 공식노정이신데 그때부터 1956년 4월 8일까지 10여 년간에 걸친 말씀이 공중에 떴습니다(장진환)」 그건 뭐 평양에서 말씀했으니까 그렇지. 「그러니 선배 형님들의 필기 말씀이나 전체를 취합해 보면, 1952년부터는 남한의 생활과 여러 가지 많은 말씀이 계셨으니까…. 지금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실체 아버님을 모시고 듣고, 말씀을 보고 읽기 때문에 애절한 마음이 적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후세 만민들이 예수님 제자와 아버님 제자의 수준 차이가 나지 않느냐 하고 참소할 때에는, 이건 호미로 막을 일을 무엇으로 막아도 안 된다는 그런 평까지 듣게 될 것을 상상하게 됩니다. 아버님, 이것을 탕감해 주시는 관용에서 그 방향을 설정해 주십시오」 방향은 무슨 방향? 지나간 역사인데 뭐. 「전부 다 모으는 것을 직접적으로 좀…」

그때 식구들이야 그런 생각 할 때가 아니지. 요즈음은 환경이 다 이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모여 가지고, 세계가 요구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왔기 때문에 준비도 할 수 있지만 그때 사람들은 전부 다 핍박받았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던 거예요. 백 사람이면 백 사람 전부 다 오늘 하루를 피해 다니며 살기에 바빴던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환경이 다르다구요.

지금 여러분은 현재 같은 입장에서 수난과정을 다 거쳐 가지고 말씀의 가치를 알면서, 필요한 것을 느끼면서, 그것을 타진할 수 있는 입장에 섰지만 그때 사람들은 각자가 진 십자가가 있었던 거예요. 어느 가정이나 어느 개인, 전부가 핍박을 안 받은 사람이 없었다구요. 자기 일신이 짊어지고 가는 십자가 처리 문제도 힘든 입장이었다구요. 그런 여유가 없었던 거예요.

또 그들은, 선생님이 말씀을 하더라도, 공식적인 말씀을 하더라도 지금같이 뭐 이렇게 테이프 레코더를 만들어 놓고 다 기록을 남길 수 있는 그런 환경이 못 됐어요. 전부 다 방에 앉아 가지고 말이예요, 옛날 마가 시대의 마가 다락방과 같이 전부가 꿇어 엎드려 가지고 기도하고, 가다간 그 즉석에서 얘기하고, 그러면 눈물의 바다가 되는 거예요. 언제 뭐 펜을 가지고 이렇게 딕테이션을 하겠다는 그런 생각 없었다구요. 그거 환경을 몰라서 하는 말이라구요.

그러니까 나타날 때까지 배후에…. 모든 역사가 그렇듯이, 어떤 역사가 나타날 때까지는 말이예요, 뿌리가 있어 가지고야 새로운 순이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뿌리가 얼마나 수고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구요. 싹 하나를 틔우기 위해서 얼마나 수고했다는 것을 모른다는 거예요. 그 싹은 보지만 뿌리는 모르는 거예요. 딱 그와 마찬가지라구요.

통일교회 배후에는, 나타나지 않은 과거역사에는 비참한 일들이 참 많아요. 일화도 많고, 곡절도 많고 나타나지 않은 게 많다구요. 일천 구백 몇 년도부터, 1960년도 선생님 성혼식 때는 이미 나타난 것입니다. 나타나 가지고 일반 대사회운동으로 전개된 거예요. 그것은 이제 대중이 대할 수 있는 시대에 들어왔기 때문에, 대중에게 필요한 말씀을 그때그때 했던 거예요.

그전의 말씀은 대중에게 필요한 말씀이 아니라 하나의 심령을 어떻게 부활시키느냐, 하나의 생명을 어떻게 유지해 나갈 수 있는 힘을 주느냐 하는 문제가 책임진 지도자인 선생님으로서 말하게 되는 전부였다 이거예요. 그것 못 하게 되면 문제가 벌어지는 거예요. 식구들이 아침에 와서는 울고, 집에 돌아갈 때에는 전부 울면서 돌아갔습니다. 왜? 핍박받아 쫓겨 다니니까 찾아갈 사람은 선생님밖에 없으니 기가 막히거든요.

선생님의 자리가 편안한 자리가 아닙니다. 전 식구들이 반대받는 자리에 서서 총책임을 지고 중앙에 앉아 있으니 선생님에게 밀어닥치는 고생이 자기 일개인에게 밀어닥치는 고생과 비교할 바가 아니예요. 그러나 식구들로서는 자기가 집에서 핍박받아 가지고 쫓겨나서 갈 데가 없게 되면 선생님을 찾아오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 그거 통곡이지요. 찾아오는 것도 눈물이고, 또 만나서 선생님이 권고해 주는 말도 눈물로 해주고, 돌아가는 것도 눈물이었지요. 그런 것은 오늘날 상상도 못 할 일이지요? 그런 것 없지요? 안 그래요?

별의별 역사가 다 있었어요. 머리를 깎이고 쫓겨난 사람이 없나, 팬티만 입고 추운 겨울에 쫓겨난 여자들이 없나. 그런 여자들이 갈 곳이 있어요? 자기 친정집에 가겠어요? '이놈의 간나 같으니라구. 그 이단 요술사 같은 문 아무개 찾아가 가지고 저렇게 됐다'고 말이예요. 전부 다 반대하고…. (웃으심) 친정에 가서 말하겠나, 남편한테 쫓겨났으니까 자기 아들딸한테 가서 말하겠나? 사돈의 팔촌까지 이미 다 소문났으니 아무데도 갈 수 없는 입장에 몰린 사람들의 심정을 누가 이해하겠어요? 세상 아무도 그것을 이해해 주지 않는다는 거예요. '저거 미쳤지, 자기 친정이 반대하고, 자기 시집이 반대하고, 남편이 반대하고, 아들딸이 반대하는 길을 무엇 때문에 가 가지고 저 모양이냐?' 하는 거라구요. 그러니까 주변에서 동정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거예요.

자, 자기가 직접 받은 체험이 있고 가야 할 길은 확실히 알고 있는데, 천지가 부정하더라도 자기는 부정할 수 없는 참, 사실을 알고 나선 걸음을 후퇴할 수 없다 이거예요. 후퇴할 생각 하면 대번에 영적으로 탕감받는 거예요. 그때는 매일 그저 눈으로 보여 주고 다 가르쳐 주는 거예요. '내일은 이런 역사가 벌어진다' 하고…. 그러니까 어떻게 도망가겠어요?

그러니까 선생님이 보고 싶어 찾아갈 때에도 눈물 아니면 찾아갈 수 없고, 또 대하는 시간에도 눈물이요, 떠나는 시간에도 눈물이예요. 또 자기들도 그렇잖아요? 자기 때문에 선생님이…. 자기만 핍박받는 것이 아니거든요. 선생님까지 핍박을 받고 있다는 거예요. 누군가 잘못한 것을, 통일교인들이 잘못했다 하면 그것을 전부 다 문 아무개가 잘못했다고 전부가 결론짓는 것입니다. 그러니 문제가 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