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모든 걸 희생시켜 만민을 사랑한 전통을 이어받아야

보라구요. 내가 일본에 있을 때, 그때 왜정 말기에 곤륜환(곤진마루)이라는 배가 깨졌다구요. 9월달인데 졸업식하고 나올 때인데 내가 고향 간다고 전보를 해 놓고 가만 보니 안 되겠다 이거예요. 내일이면 떠날 텐데 동무들이 와서 전부 다 부사산(후지산)에 가자고 그러는 거예요. 내가 왜정 때 일본 나라에 와 가지고 일본 천황의 모가지를 떼어 버리려고 했던 녀석인데 일본 높은 산에 가자고 한다고 가겠어요? '구경 나 싫다' 이거예요. 요즘 같으면 한국에 있으면 부사산 제1호로 올라갈 텐데 내 일본이 자랑하는 부사산에 올라가지 않는다 이거예요. 그래 안 갔다구요. 안 가고 배를 타러 가려니까 아주 발이 떨어지지 않고 이렇거든요. 그래 안 돌아갔다구요. 그런데 그 배가 깨졌다구요, 그 배가.

그러니 전보를 받아 놓고 있던 어머니는 난리가 벌어졌지요. 그래서 정주에서 부산까지…. 여기가 어디던가? 「서울」서울이지요? 서울을 지나서 부산을 가 볼 게 뭐예요, 시골 아줌마가? 아들이 죽었다고…. 틀림없이 아들이 죽은 거지요, 온다고 했는데 안 왔으니 말이예요.

여러분, 한국 부인들 속곳 알아요, 속곳? 치마도 안 입고 속곳바람으로 떠나 가지고 부산까지 왔댔어요. 정신이 있어요? 그러니까 신발이 벗어졌는지도 모르고, 발바닥에 아카시아 나무 가시가 박혀 아픈 것도 잊어버리고 부산까지 온 거라구요. 그리고 나서 내가 죽지 않았다는 소문을 듣고 나서 보니까 발에 티눈같이 알이 배겼더라는 거예요. 그걸 파 보니 그렇게 되었더라 이거예요. 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부모의 사랑이 얼마나 크냐 이거예요. 그렇게 사랑하던 자식이었어요. 사랑받던 나입니다. 그런데 통일교회 임자네들 나를 우리 어머니의 십분의 일이나 생각했어요? 사랑했어요? 이 쌍것들! 이것들 때문에 우리 어머니를 버리고 우리 형제…. 우리 형제가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아요? 8 남매 가운데서 내가 둘째 아들인데 말이예요, 모든 형제들을 희생시켜서 나 하나 출세시키겠다고 집안 문중이 전부 다 밀어 주고 있었다구요.

왜? 가만 보니까 똑똑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역적이 안 되면 뭣이 된다는 말을 했다 이거예요. 씨름판에 가서 씨름도 잘했고 뭘하더라도 잘했어요. 동네 방네 20리 안팎에서 나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구요. 그렇게 손꼽고 전부 다 잘되기를 바라는데 이 녀석이 돌아다니고 뭐 어떻다 하면서 감옥에만 들락날락한다 이거예요.

그러니 어머니 신수가 좋겠어요? 내가 못된 놀음 하고 다녔으면 기가 찼지요. 나 잘못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왜정 때에도 어머니가 감옥에 와 가지고 '아, 네가 뭐 어떻고 어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야, 집어 치워!' 한 거예요. 그때에는 이름을 부른 거예요. '아무개! 내가 아무개 여인만의 아들이 아니오. 나는 이러이러한 길을 걸어간다고 이미 통고했는데 뭐요?' 한 거예요.

울다가, 눈물 흘리다가 돌아서 가지고 부끄러움을 느끼게 할이만큼 부모 앞에 불효한 사람입니다. 그거 알아야 돼요. 불효 중에 그 이상의 불효가 없어요. 일생 동안 내가 손수건 하나 어머니 아버지 사 주질 않았어요. 오늘날 통일교회에 집을 사 주고 별의별 짓을 다 하지만 말이예요. 세계 녀석들에게 양복을 가랭이에 끼워 가지고 해주었지만 어머니 아버지에겐 손수건 하나 안 사다 주었다구요.

내 집안, 내 사랑하는 모든 걸 팔아서, 전부 다 희생시켜 가지고 만민을 사랑하고 돌아와서 만민이 내가 세운 전통을 따라, 내가 우리 어머니를 버렸으니만큼 버린 이상 사랑할 수 있는 가정적 울타리를, 사랑의 울타리를 그리워한 것입니다. 그 울타리 가운데는 대한민국도 들어가서 살고 세계 인류도 들어가서 산다고 봤기 때문에 휘젓고 지금까지 살아온 것입니다. 그렇게 살다 보니 내가 오늘날 유명한 사람이 됐어요? 유명의 반대가 뭔가? 무명인가? 유명하게 됐어요, 안 됐어요? 너무너무 유명해져서 탈이예요. 나 싫어요! 얼마나 귀찮은지. 어디 가서 앉더라도 그저 옛날식으로, 상 있으면 뭘해요, 손으로 집어서 맛있게 먹으면 되는 거지요, 상은 뭐….

서양 가게 되면 내프킨하고 뭐 하고 그래요. 이놈의 자식들! 변소 가서도 내프킨 하나요? (웃음) 변소 같은 세상인데. 변소보다 더 나쁜 세상이예요, 지금이. 그러한 과거를 엮어 왔다구요. 그때 어머니 아버지가 울고불고, 여편네가 이혼하자고 목을 조르고 와서 전부 다 모둠 매를 치고 하는 자리에서…. 기가 막혀요. 내가 한 손으로 내갈겨 다 날려 버릴 수 있는 사람이라구요. 그런데도 참고 오는 거예요. 참고 지금까지, 일생 동안. 말을 다 못 하고 분풀이 못 하고 이렇게 살아 나온 거예요.

대한민국이 나를 버렸댔지요? 임자네들, 통일교회 여러분들은 선생님을 버렸나요, 안 버렸나요? 「안 버렸습니다」절대적으로? 「예」 소리가 크질 않구만. 안 버릴 게 뭐예요? 통일교회 그만두려고 생각 안 한 사람이 어디 있어요? '통일교회 힘들어서 안 가면 좋겠다' 안 해본 사람 어디 있어요? 어디 안 해봤다면 손들어 봐요, 내가 물을께요. 이 쌍것들! (웃음) 눈치가 훤하지 뭐. 통일교회 믿기가 쉬워요? 통일교회 믿기 쉽지 않았다구요.

자, 오늘날 통일교회가 있는데, 선생님이 소년시대에 결심하고 결정했던 것을 변경했더라면 통일교회가 있겠어요? 나도 고생하는 거 싫어요. 지금도 내가 흥남 감옥생활 얘기를 안 하는 거예요. 내 자신이 얘기를 하자면 목이 멜 수 있는 사연이 얼마든지 있어요. 지도자가 자기 지난날의 서러움을 가지고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싶은 생각 없다 이거예요. 거기에 앞서 진리와 실제 행동 면에 있어서 본이 되는 것을 위주로 했지요.

지금도 그렇다구요. 지금 제주도에 가더라도 떡 둘러앉아 있다구요, 벌써. 열 시만 되면 '선생님 고단하실 텐데 주무셔야 되겠습니다' 그러면서 일어선다구요. 이놈의 자식들! 진정 그래? 자기가 자고 싶으니까 그런 거 아니야? (웃음) 그만큼 편안하다는 거예요. 여유가 있다는 거라구요. 난 여유가 없어요. 딱 찼어요. 잠이 뭐예요?

그래도 내가 언제나 들어 주었어요. 잘들 가누만. 가라는 얘기도 안 했는데 인사를 하고 떡 돌아가는 거예요. 어떤 때는 호출 명령을 내린다구요, '이놈의 간나 자식들, 집합!' 하고. 그러고 있더라구요. '선생님 죽으면 저것들이 다 어떻게 될 거야? 통일교회 전부 다 팔아먹을 패들이구만' 하고 손가락질하고 바라보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말이예요. 이제 가면 그러지 말라구. 따라다니는 재석이도 말이야. 재석이는 뭐예요? 석재라는 말 아니예요, 돌재료?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