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여건을 받아들이고 소화할 때 행복이 있을 수 있어

선악에 대한 결정을 지었느냐? 우리 인간들은 자타를 막론하고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행복이라는 것이 뭐냐? 행복이 어디서 찾아지느냐? 행복도 자기 혼자 찾을 수 없는 거예요. 자기 혼자 있으면 외로와요. 행복이라는 개념도 결국은 상대적인 환경권 내를 벗어날 수 없는 거라구요.

자, 악한 세계에 행복이 있을 수 있느냐? 악한 세계 가운데서 행복을 향유할 수 있느냐? 내가 행복하더라도 가정이 불행하게 되면 그 행복은 불행한 가정의 환경에 휩쓸리는 거예요. 아무리 가정이 행복하다 하더라도 나라가 불행하게 되면 나라에 휩쓸리는 거예요. 아무리 나라가 잘산다 하더라도 세계가 전부 다 불행하게 되면 그 불행한 세계 앞에 휩쓸림을 받는 것입니다. 세계가 아무리 행복하다 하더라도 이 우주가 불행한 운세에 말려들게 되면 세계도 불행한 운세에 휩쓸림을 당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내가 찾는 행복은 어디서부터 출발할 것이냐? 문제가 심각한 거예요. 그것이 선한 세계를 넘어 가지고 이루어질 것이냐? 선한 세계 가운데 이루어질 것이냐? 선한 세계를 대하는 데서부터 이루어질 것이냐? 이거 문제입니다. 행복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선한 세계…. 선이라는 것을 떼어 놓고는 행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불행이 뭐냐? 그것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행복하고 불행하다는 것은 누구를 중심삼고 하는 말이냐? 이게 문제 돼요. 나를 중심삼고 하는 말이냐? 어디를 중심삼고 하는 말이냐 이거예요. 행복이라는 말을 할 때에는 반드시 환경을 중심삼고 말합니다. 그 환경 가운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들어갈 수 있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환경 가운데 가정이 들어갈 수 있고, 가정 환경 가운데 내가 들어갈 수 있지, 내 가운데 가정이 들어와 있을 수 없고, 나 가운데 대한민국이 들어와 있을 수 없고, 나 가운데 세계가 들어올 수 없다구요. 안 그래요?

자, 이렇게 볼 때에 내가 세계에 들어가야 돼요. 세계 환경에 들어가야 된다구요. 또, 우리 가정이 세계의 환경에 들어가야 되고 우리 나라가 세계의 환경에 들어가야 됩니다. 그러려면, 나라의 행복을 찾기 위한 사람들이 되려고 한다면, 나라의 행복을 먼저 찾아야 되겠느냐, 개인의 행복을 먼저 찾아야 되겠느냐? '나라든 뭐든 행복이 나부터 시작해야지, 나라부터 시작해야 되느냐?' 그런 생각 한다면 문제가 커요. 가정이 먼저 행복해야 되느냐, 내가 먼저 행복해야 되느냐? 어디를 중심삼고 하는 말이냐?

이렇게 볼 때, 흔히 생각하듯 나를 중심삼고는 할 수 없는 말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나를 중심삼는다는 건 모든 걸 부정하는 환경에 선다는 거예요. 자기가 환경을 긍정하고 인정해 가지고 그 긍정된 환경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그 기준을 찾지 않고는, 환경적 행복을 찾지 않고는 내 행복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행복 자체가 자기 개인만을 중심삼은 것이 아니예요. 안 그래요?

여자로 태어났으면 여자에게 행복한 것이 뭐냐? 애기 때는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자라니 그건 행복할는지 모르지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공급받을 수 있고,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을 자유롭게 공급받을 수 있어서 행복할는지 모르지만 여자가 장성하게 되면 자기 혼자만이 아니예요. 다시 말해서 하나의 나무로 말하면, 나무의 종대가 있으면 종대가 자라는 데 있어서 가지도 자라게 되는 것이다 이거예요.

가지로서의 나는 행복한 종대를 따라 자라게 되어 있지 종대를 넘어서 자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게 우주의 이치입니다. 그건 뭘 말하느냐? 내가 행복하려면 가정과 같은, 먼저 종대와 같이 자라난 터전 위에 붙어야 돼요. 그래야 내가 행복할 수 있지 종대를 부정하면 행복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지의 행복이 먼저여야 되겠느냐, 종대의 행복이 먼저여야 되겠느냐? 그건 말할 필요도 없어요. 가정의 행복이 먼저여야 되겠느냐, 내 행복이 먼저여야 되겠느냐 할 때, '내 행복이 먼저다' 그럴 수 없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