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절대자의 사랑과 일체돼야

자, 그러면 몸과 마음이 참된 사랑을 중심삼고 언제 하나되었느냐? 못 됐어요. 그게 타락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고 하면 그 사랑을 이 몸뚱이가 모르게끔 돼 있겠어요? 우리 마음이 그것을 모르게 돼 있겠어요?

오늘날 현대 자연 과학자들이 말하기를 '이 우주는 힘으로 되어 있다' 라는 말을 하고 있어요, 힘으로 되어 있다는 거예요. 힘이 그런 주먹구구로 밤에 불쑥 이렇게 나오나요? 그러면 힘이 먼저냐, 작용이 먼저냐? 선후를 가려야 된다 이겁니다. 그런 생각 해봤어요? 우리 윤박사님, 물리학 박사로 유명하신 분! 힘이 먼저예요, 작용이 먼저예요?

전기의 힘이 먼저예요, 작용이 먼저예요? 어떤 거예요? 작용이 먼저지요? 그 작용은 맹목적으로…. 모든 세계에 작용하는 작용체가 그냥 두루뭉실하지 않아요. 작용하는 데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규정을 인정해야 되는 거라구요. 플러스 마이너스, 주체 대상이 있어 가지고 서로 주고받는 작용에 의해서 힘이 나오지요. 안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우주는 힘으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힘이 나오기 전에 작용이, 작용이 나오기 전에 주체와 대상 관계를 인정하라 이겁니다. 이러한 목적관의 세계를 논리적으로 인정해야 된다는 얘기입니다. 안 그래요? 그러한 것이 오늘날 철학적으로 근거가 미분명하다는 것입니다, 전부 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양심작용이라는 것은 우리 선조로부터 지금까지 우리 마음속에서 한번도 떠난 적이 없었다 이겁니다. 잠을 자다가 새벽에 일어나 가지고 '아이구, 배가 고파! 아무 데에 무엇이 있는데, 먹을 것이 있는데 나가서 주인이 없으면 훔쳐다 먹고 싶어' 그러면 마음은 어떻게 해요? '네, 이놈!' 하며 사정없이 제재를 합니다.

천년 만년, 억만년 인간세계를 떠나지 않고 이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이 되라! 높은 데 가라! 더 높은 데 가라!' 하는 마음의 작용은 그냥 그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작용이 있기 전에 주체와 대상의 마음 앞에 주체 될 수 있는 우주 목적의 근원이 이 관계를 중심삼고 운동을 하기 때문에 그런 작용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된다는 거예요.

관계적 작용이 없는데 성사가 있을 수 있어요? 그러니 여러분들, 시장에 가 장사하는 사람이 하루 손해보기 위해서 움직이는 사람 있어요? 없습니다. 그런데 왜 양심은 그렇게 손해나는 작용을 하기 위해서 움직이는 것이냐? 그것은 논리적 모순이예요. 이런 작용을 하는 것은 이익보기 위해서, 몸뚱이를 제재해서 일보 일보 전진하여 선에 도달하기 위한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양심작용을 인정하려는 그 배후에는 주체 대상 관계에서 우리 인간이 추구하는 욕망의 어떤 주체가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세계를 점령하여 그걸 전부 다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지요? 그것은 천년 전 사람이나 만년 후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허사의 마음 작용이 아니예요. 그것은 주체에 도달하려는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목적이 어디에? 욕망을 전부 다 완성시키기 위해서 정착시킬 수 있는 그것이 무엇이겠느냐? 절대자가 있다면 절대자를 중심삼아 가지고, 절대자의 사랑과 일체가 되는 날에는 모든 것이 완성됩니다. 다 끝난다는 거라구요. 그런 놀라운 것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한테 소개합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말이예요. 사람은 왜 태어났느냐? 사랑의 뿌리를 중심삼고 사랑에서 자라 가지고 사랑을 하면서 살다가 사랑의 열매를 거두어 사랑의 본연인 하나님의 사랑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