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관계를 맺으면 동위권에 참석해

인간이 제일 좋아하는 것도 사랑이요,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사랑입니다. 이 둘이 하나되게 될 때, 절대적인 하나님이라면 나도 절대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거예요. 하나됐다면 모든 것이 다 끝난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관계를 맺은 그날부터는,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사랑의 관계를 맺은 그날부터는 동위(同位)가 되는 것입니다. 같은 자리에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주체가 가진 그 모든 소유가 내 소유가 되는 겁니다. 이건 놀라운 일입니다.

여기 유명한 교수님들도 그렇잖아요? 훌륭한 교수님, 남자로 말하면 아주 미남자로, 호남자로 생겼고 지식으로 봐도 천하에 제일이라고 할 수 있는 고명한 학자님인데 사모님을 가만히 보게 되면 시골에서 아무 공부도 안 하고 순박한 여자로 상대가 안 되는데…. 그 교수님이 어디 가게 되면 떡 옆자리에 앉더라도 '아! 사모님 뒷자리에 좀 떨어지소' 그래요? '우리 고명한 학자들만 모이는데 사모님은 동참하지 말라' 그래요? 절대적으로 동위권에 동참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곳은 사랑밖에 없다는 겁니다. 아시겠어요?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집사람도 나하고 사랑관계를 맺었으니 여기에 와 앉잖아요? 안 그래요? 레버런 문만큼 노력도 안 하고 그냥 그저 따라다니면서 시중 좀 해주고 복은 다 같이 받는 것 아니예요. (웃음) 사랑관계에는 그런 위대한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에 따라서 천지를 창조한 대주재 되시는 절대적인 하나님과 사랑관계를 맺었다 할 때는 어떨까요? 어떻겠어요? '너희는 피조물이고 나는 창조주이니 창조주는 신성한 것, 피조물은 속된 것' 그래요? 오늘날 기독교 신학이 여기에서 암적 내용을 내포하고 있다는 거예요. 속되다고 하면서 왜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겠다고 그래요? 그것은 논리적 모순이라구요. 이걸 알아야 됩니다.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사랑관계를 맺은 그 시간서부터 하나님과 같은 동위권에 동참할 수 있는 권위가 있다는 거예요. 그것이 사랑의 힘이라는 것입니다. 그거 부정할 수 있어요?

이러한 논리적 관점에서 추리한다면 사랑과 일치될 수 있는 그 자리에 갈 때에, 절대적인 하나님이 사랑하던 것은 영원불변의 절대적인 것이니까 우리 생명을 가진 인간도 영생할 수 있다는 논리가 여기에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영생해야 돼요. 당당코 영생해야 돼요. 믿음 가지고요? 생명 가지고? 아니예요. 사랑으로, 사랑으로 다 해결하는 겁니다. 이것은 위대한 말이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