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권에 선 사람들을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이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통일교회에 있어서 선생님의 가정을 두고 보면, 1984년 그때가 선생님의 가정에 대해 사탄이 총공세를 취하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흥진군이 영계에 가고, 선생님은 외국에서 새로운 기동대편성을 중심삼고 1983년서부터 시작한 것이 2년째에 들어가고 1985년까지 40년 고비를 향해 갈 때 법정투쟁을 중심삼고 댄버리에 들어갔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탕감원칙에 의해서 전부 다 걸머졌습니다. 댄버리서부터 완전히 탕감해 가지고 해방이 됨으로 말미암아 미국 자체가 반대하던 입장에서 환영하게 된 거지요. 미국 기독교하고 통일교회, 가인 아벨이 하나된 기반 위에 미국 자체를 굴복시킬 수 있는 기반, 세계기반을 닦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돌아와 가지고 한국을 국가적 기준에서 종적으로 올라가게 하고 횡적 기준에서 다시 연결시켜야 된다는 거예요, 세계적으로.

이래서 지금까지는 시민을 대하는 일을 안 했다구요. 외적인 기반을 중심삼은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교회를 중심삼아 왔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선생님이 돌아와서 뭘하느냐? 통일교회의 아벨이 누구냐 하면 우리 통일교회 조직이고, 가인이 누구냐 하면 승공연합 조직이예요. 이번에는 승공연합을 중심삼아 가지고 국가기준을 묶는 거예요. 승공연합 중심삼아 가지고 지금까지 선생님을 후원해 왔기 때문에 와 가지고 석 달이 지났지만 교회방문을 안 했다구요. 이것도 지금 곁다리로 들어간 거예요, 곁다리. (웃음)

승공연합이 하늘편 가인이기 때문에 하늘편 가인이 통일교회와 하나되게 된다면 아벨권이 됩니다. 따라서 그 아벨권을 중심삼고 국가를 움직여 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국가를, 꼭대기서부터 밑창까지 한민족을 움직여야 되겠기 때문에 이 움직이는 대상을 서울로 택한 거예요. 제사를 드리는 데 전국 제사를 드릴 수 없다구요. 특정한 한 곳을 설정해 가지고 해야 합니다. 따라서 서울이라는 곳을 중심삼아 가지고 총탕감기준을 세워 민족적 해원식을 해야 할 시대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와 가지고 승공연합을 중심삼아 구(區)로부터 동(洞)으로, 그다음에 통·반까지, 통·반장 1만 2천 8백 명의 교육을 선생님이 직접 지휘한 거라구요. 그리고 이것이 끝났기 때문에 이제는 12만 반 조직을 한 달 이내에, 4월 10일 이내에, 선생님의 결혼기념일 전까지 끝내야 되는 거예요.

이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선생님이 지금까지 가인국가, 가인민족을 위했다는 것입니다. 이 민족들이 전부 다 선생님을 처음 만났지만, 나를 지금까지 반대하고 입에 침을 물고 야단하던 사람들인데 전부 다 리틀엔젤스 회관에 데려다가 교육하는 거예요. 교육하는 데는 그 사람같이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통일교회 사람같이 교육하는 거예요. 욕을 하고 뭐 하고 싶은 말 다하는 거예요. 그래도 눈을 껌벅껌벅하며 좋다고 입만 벌리고 있지요. (웃음) 그 말은 뭐냐 하면 역사적으로 반대하던 가인권이 통일교회와 하나되었다는 거예요. 이러면서 이번에 교수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전국에 강연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한국의 중심 지도층의 사람들이 통일교회로 휙 돌아오는 거예요.

또, 이번에 선생님이 아랫사람만 대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가인의 맨 꼭대기들이 누구냐? 대통령이나 장관들은 빼놓고 맨 꼭대기에 있는 것은 교수들이예요. 교수들이 전부 다 대통령의 고문입니다. 이 각료의 고문관들이 전부 다 학자들이거든요. 그래 학자들을 모아 놓고 전부 다 정비작업을 하는 거예요. 그 말은 뭐냐? 맨 꼭대기로부터 맨 밑창까지 사탄편, 가인 자리에 있던 사람을 사랑했다 하는 조건을 세우는 것입니다.

어저께도 대구의 제일이라 하는 교수들을 한 300명을 모아 놓고 야단치고 '이 무식장이들아' 하고 욕을 퍼부은 거예요. 그래도 가만있더라구요. (웃음. 박수) 언제나 그러는 게 아니예요. 실력만이라도 받아들여야 된다구요. 탕감복귀하는 거예요. 그렇게 가만있었다는 조건들을 볼 때, 과거에 교수들이 야단하고 '문선생 죽어라'고 얼마나 반대를 했어요? 기성교회의 바람을 타 가지고 반대하던 이 사람들이, 전부 다 그랬던 패들이 선생님이 와서 좋은 말 나쁜 말을 하더라도 '으히히' 하는 거예요. (웃음) 이렇게 걸려 넘어가는 거라구요. 이제는 세 고개를 넘었기 때문에 부산은 까짓거 부산스럽게 야단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예요. 부산은 부산스러운 것의 사촌 아니예요? (웃음)

이래서 우리는 지금 대한민국의 대학가에 낫다 하는 사람을 전부 다 한데 묶는 거예요. 선생님은 그렇게 만나 가지고는 평하지 못한다구요. 하는 일이 너무 방대하니까 아무래도 자기들보다 낫지 뭐. (웃음) 하는 일을 볼 때도 낫고, 힘으로 하더라도 자기들보다 낫지 뭐. (웃음) 생긴 모양으로 봐도 전부 다 얼굴이 못생겼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교수들이 된 거예요. (웃음) 욕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욕먹으면 환장하는 거예요. (웃음) 그래서 이제 대전으로부터 전주, 대구로 해서 오늘 부산까지 왔다구요. 그런데 부산에 오다 보니 지내온 과거 생각이 간절하기 때문에 이런 회상을 하며 '복귀노정이 이렇게 힘들었구나!' 하는 것을 얘기해 봤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