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주체 대상의 상응관계에서 성립돼

자, 참된 사랑을 찾기 위해서 참된 신이 있느냐 하는 문제를 철학자들이 상고하고 연구했어요. 또, 모든 학자들이 번대머리가 되고 지팡이를 들고 별의별 놀음을 다 했어도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인본주의, 사람이 하나님 대신 하자는 주의도 실패했고, 물질을 중심해서 하나님 대신 하자는 주의도 실패했습니다.

그러면 종교는 뭐냐? 종교와 철학의 다른 점은 뭐냐? 철학은 참된 하나님을 발견하자는 것이고, 종교는 하나님을 만나 가지고 하나님과 이상적으로 살자는 것입니다. 그런 종교가 지금 어떻게 됐어요? 그런 종교가 있어요? 하나님에 대해서 설명할 줄도 모르고,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사람과 마찬가지가 돼 버렸다구요. 종교도 거기에 전부 다 부딪친 거예요. 그러니 하나님을 확실히 알고, 하나님과 같이 살 수 있는 세계를 발견하지 않으면 이상세계니 뭣이니 하는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문제를 제시하노니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자, 신·구약 성경 66권의 핵심으로써 그것을 전부 다 결론지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뭐 그 성경의 구체적인 얘기는 안 하겠지만 말이예요.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으니 이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라' 한 거예요. 누가 지켜야 할 계명이냐? 사람이….

자! 그렇게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이냐? 하나님께서 떡 버티고 앉아 가지고 '잘한다' 하면서 사랑받으시겠다는 거예요? 그런 것이 아니예요. 사랑은 혼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체와 대상의 상응관계에서 사랑이 성립되는 겁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라' 하신 말은 하나님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을 사랑하니 그게 첫째 계명이라'는 뜻입니다. 마찬가지예요.

그러면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사랑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 요한복음 3장 16절을 기독교인들은 다 알지요. 주일학교에서부터 똘똘하게 외우는 그 귀한 말씀이 뭐냐 하면,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했어요. 하나님은 감리교를 이처럼 사랑하고, 장로교를 이처럼 사랑하고, 천주교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안 했다구요.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세상은 빼놓고 믿고 있다구요. 매일같이 외우면서도 '세상을 이처럼 사랑했다'는 것은 다 잊어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독생자를 주셨으니 얼마만큼 사랑했느냐 이거예요. 독생자를 죽음의 자리까지 내놓게끔 세상을 사랑한 하나님입니다. 그러니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려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듯이 세상을 사랑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 기독교인들이 되어야 될 텐데 전부 반대의 기독교인들이 되었으니 끝날에는 전부 다 멸망한다 이거예요.

하나님이 원하는 게 뭐예요? 사랑이예요. 돈이 아니예요. 지식이 아니예요. 권력이 아닙니다. 무슨 사랑? 참된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원하는 것하고 사람이 제일 원하는 게 뭐냐? 그다음에는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는 것이 둘째 계명이니라' 그게 전부이더라 이거예요. '네 몸과 같이 이웃을 사랑하라' 이것이 인간세계에 있어서 둘째 계명이라는 거예요. 결국은 뭐냐? 하나님을 절대 사랑하고 그다음에는 사람을 절대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람이고 참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결론이 나왔어요.

참사람이 어떤 사람이라구요? 하나님을…. 그렇지 않아요?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목을 내놓고 사랑하는 거지 목을 접어 놓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예요. 그다음에는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했어요. 이웃 사랑하기 위해서는 생명도 던지는 겁니다. 이웃 사람들을 위해 생명을 던져 가면서 사랑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참사람이 되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