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인간과 하나님에게 제일 귀한 것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귀한 것이 뭣이냐? 가장 귀한 것이 뭣이냐? 이렇게 볼 때에 사랑까지 우리는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 생명이 먼저예요, 사랑이 먼저예요? 어떤 게 먼저예요? 일반 사람들은 생명이 먼저다 하지만 그게 아니예요. 우리가 태어나게 될 때 부모의 사랑에서부터 태어났습니다. 사랑에 앞서 생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생명보다 앞서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들은 자기를 절대시하려고 합니다. 자기를 절대시했습니다. 거 왜 그러느냐? 모든 사람은 다 생명을 지니고 있으되 자기를 중심삼고 절대시하려고 왜 주장하느냐? 이렇게 볼 때 나라는 사람은 부모님의 사랑의 동참자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귀한 부모님의 사랑으로부터 내가 생겨났는데, 나라는 사람은 부모님의 사랑의 동참자였다는 놀라운 사실을 우리 인간은 모르고 있다는 거예요. 부모님의 그 사랑은 본래 타락이 없었다면 참사랑의 기준이 되어서 우리 생명의 뿌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생명의 뿌리가 될 수 있는 그 사랑에 동참한 자가 나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참사랑을 기반으로 하여 내 자신이 여기에 동참한 가치를 지니게 되면 그 참사랑은 우주와 통하는 것입니다. 우주와 통하는 것이다 이거예요. 비단 인간뿐만이 아니라 광물의 세계도 그렇다는 거예요. 광물세계도 그냥 그대로 작용하지 않는다 이거예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통하여 작용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의 사랑의 힘과 마찬가지로 주고받을 수 있어야 됩니다. 동물의 세계도 사랑을 바탕으로 해 가지고 모든 작용이 연결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참된 부모의 사랑의 동참자는 우주와 연결할 수 있는 사랑의 본질에 처하여 있으므로 어디 가든지 환영받을 수 있고 어디 가든지 그를 주장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의 동참자로서의 나를 제일 존중시한다는 것은 이 우주가 환영한다는 거예요.

그럼 참된 사람이 뭐냐? 대관절 참된 사람이 뭐냐? 참된 사랑에 뿌리를 두고 참된 부모의 사랑으로부터 태어나 가지고, 참된 사랑을 중심삼고 키워지고 참된 사랑을 중심삼고 살다가, 또 참된 사랑을 하고 참된 본연의 사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참된 사람일 것이다 하는 것을 추리적인 입장에서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만일에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겠어요? 참된 주체자가 계신다면 그 주체자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겠어요? 그 절대자가 좋아하시는 것이 물질이요 돈이겠어요? 물질을 마음대로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그분에게 있어서 물질이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예요. 물질이 가장 귀한 것이 아니예요.

그러면 지식? 하나님은 지식의 왕자이신데? 하나님이 제일 귀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지식일 수 없어요. 지식은 얼마든지 하나님에 의해서 시작되니까 그게 하나님에게 있어서 귀한 것이 아니예요.

권력? 전지전능하신데? 이렇게 볼 때 하나님 앞에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역시 사랑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절대자라도 혼자서는 기쁨을 느낄 수 없어요. 반드시 사랑의 상대자와 사랑할 수 있는 그 자리에서만이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사랑을 제일 귀하게 여긴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을 왜 지었느냐? 사람을 왜 지었느냐, 피조세계를 왜 지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가 지식을 원해서, 돈을 원해서, 혹은 권력을 원해서가 아니라는 거예요. 사랑을 원해서예요. 피조세계를 지어 가지고 그 가운데 고등동물로 우리 인간을 지었습니다. 모든 피조세계를 쌍쌍으로 지었습니다. 거기에 대표적으로 모든 인격을 갖출 수 있는 주체자로 우리 인류시조를 세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한 신이냐 이거예요. 인격적 신입니다. 지·정·의를 합한 내용을 갖춘 인격적 신입니다. 그런 인격적 신이 최고로 원하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에 그 사랑의 대상을 위해서 우리 인간시조를 지었다는 거예요. 이건 놀라운 사실입니다. 사랑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의 신학은 창조주와 피조물에 대하여 창조주는 거룩한 분이로되 피조물은 속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상적인 사랑의 상대자를 찾고자 하는 상대이상이 절대 필요하다고 보게 될 때 그럴 수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신성하시니만큼 그 신성한 분이 상대이상을 통해서 찾고자 하는 사랑의 대상자도 신성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특권적 권위가 여기에 있어서 성립된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