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랑은 자꾸 주고 잊어버리는 것

그럼 참된 사랑이 뭐냐? 참된 사랑은 남을 위하는 사랑입니다. 거짓 사랑은 뭐냐? 자기를 위하라고 하는 사랑입니다. 참과 거짓이 이렇게 달라요. 열 친구 가운데 제일 좋은 친구가 어떤 친구냐? 열 친구 전체를 위해서 살려고 하는 친구가 제일 좋은 친구라 하지요? 응? 그 열 친구 가운데 한 친구가 만나기만 하면 전부 자기를 위하라 하고 '야 너희들 전체 아홉은 내 말대로 해, 이 녀석들아!' 한다면 그가 제일 나쁜 친구예요. 선악의 기준이 여기에서 갈라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가 왜 이렇게 사악하게 되었느냐 이거예요. 자기 위주하고 위하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기원에 배치되는 것입니다. 악마에 예속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까지 인류를 사랑하고 위하고 잊어버리는 거예요. 사랑하고 잊어버리는 거예요. 잊어버리고 또 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역학에 있어서는 말이예요. 입력과 출력이 있는데 출력은 입력보다 언제나 작은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러나 참사랑의 원칙에 있어서는 입력보다 출력이 크다는 거예요. 그런 논리가 성립됩니다. 사랑을 투입하게 되면 자꾸 커집니다, 자꾸. 그러니 영원히 영원히 계속되는 거예요. 그럴 수 있는 자리에 있다면 행복한 거예요.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90된 노인 부모님이 계세요, 70이 넘는 아들에 대하여 그 어머니가 하는 말이 '야 야, 너 오늘 외출할 때 차 주의해라' 그런다구요. 그 70된 아들은 그 아들이 아들을 낳아 손주 며느리를 얻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그거 세상으로 보면 말이 안 되잖아요. 90세가 넘도록 아들을 대해서 매일같이 같은 말을 반복해도 지치지를 않았어요. 영원히 계속하더라도 또 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사랑은 참사랑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위할 수 있는 사랑에서만이 참사랑의 기원이 시작되고, 위하는 도리를 통해서만이 참사랑의 인연이 맺어지는 것입니다. 서로서로 자기를 위주로 하는 곳에는 파괴 분열밖에 있을 수 없다 이거예요. 그건 악마의 무대로 화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된 남편이 어떤 남편이예요? 아내를 영원히 위하겠다는, 위하면서 사랑하겠다는 그 남편이 참된 남편이예요. 그럼 어떤 아내가 참된 아내예요? 영원히 남편을 위하면서 사랑하겠다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변함이 없어요. 하루살이 사랑인 미국의 젊은 청년들이 가는 것과는 달라요. 절대적인 사랑을 표준으로 했기 때문에 한 번 사랑이 영원이예요. 사랑했다고 해서 탈락되는 것이 아니예요. 해가 감에 따라서 승화될 수 있는 놀라운 행복의 기지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 사랑입니다. 이러한 도리를 찾아 세우지 않는 한 행복한 세계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참된 교수님과 가짜 교수님이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가짜 교수님과 참된 교수님은 무엇으로 알 수 있어요? 학생을 위하여 교수가 생겨났다구요. 학생을 위하여 교수가 있다는 존재의식을 갖고 학생을 위하여 모든 정성을 퍼붓고 학문에 대한 사랑의 대상자로 만들겠다고 완전히 자기를 투입하는 사람, 그러한 분이 참된 교수님입니다. 돈에 팔려 다니고 인간사의 사정에 이끌려 다니면서 편의주의적인 입장에서 자기 이익을 취하는 교수들은 무슨 교수예요? 이건 다 가짜 교수라구요. 듣기 좋지 않지요? '저 문선생 수백 명의 교수들을 불러 놓고 가짜 교수라고 이렇게 밀어제끼다니…' 이래도 할 수 없다구요. 그런 사람은 가짜 교수예요.

사제지간에는 나라도 없고 사회도 없어요. 서로 위하는 사제지간에서는 나라가 그 안에 품기려고 하고, 사회가 그 안에 품기려고 하고, 가정이 그 안에 품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위하는 사랑권에 안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부부가 위로는 부모,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아래로는 아들딸을 낳아 위하면 그 부부의 사랑의 품에는 부모도 들어가려고 하고 아들딸도 들어가려고 합니다. 안 그래요? 모든 것이 그리로 투입하려고 한다는 거예요.

오늘날 현대의 감각으로 보게 될 때 '똑똑한 세계에, 지금 경쟁과 투쟁의 세계에 있어서 그런 논리 가지고 어떻게 돼?' 그럴지 모르지만 잘 몰랐다는 거예요. 위해서 사는 사람이 중심자가 되고 책임자가 된다는 이 논리를 몰랐다는 거예요.